12.
계획은 실패했다.
*
붉은 머리 시종의 일 이후 한동안 조용한 날이 이어졌다. 잠자리가 전보다 과격해진 것뿐. 키릴은 크게 달리진 것을 느끼지 못했다.
거친 잠자리도 금방 익숙해졌다. 오히려 키릴이 야쿠치 위에 스스로 올라타기도 했다. 야쿠치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화풀이하듯 거칠게 대하는 것이 많이 줄었다. 살벌한 기운도 얼마 못 가 자취를 감췄다.
남자 가슴에서 액이 흐르는 것이 신기했는지 집요하게 가슴을 괴롭히는 건 여전했다. 키릴은 그때마다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 모습이 야쿠치의 기분을 풀어 계속 그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수인들은 그 모습에 키릴이 야쿠치에게 흠뻑 빠졌다고 착각했다. 그들은 키릴이 도망가기는커녕 당연히 야쿠치와 함께 성으로 갈 것으로 생각했다.
키릴이 쾌락에 약한 몸이라 다행이었다. 어설픈 연기가 아니었기에 착각을 사기 쉬웠다.
야쿠치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지 경계가 살짝 누그러졌다. 그 사이 키릴은 하나씩 준비를 이어갔다.
감시가 강하진 않았지만 보는 눈이 없지 않았기에 마음과는 달리 천천히,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제한적이었지만 원하는 것을 하나씩 얻어냈다. 일꾼들이 입는 옷과 얼굴을 가릴 후드 망토를 몰래 챙겨 두었다. 오가는 이들 중 밖으로 물자를 이동하는 이들 또한 눈여겨 봐두었다.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최후의 보루로 장신구에 사용된 작은 마석을 빼내 작은 탁자 안에 숨겼다.
마석은 자력으로 탈출이 불가하다고 여겨지면 그때 쓸 물건이었다. 자칫 일이 커질 수도 있기에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았다. 키릴은 부디 무사히 탈출할 수 있기를 바랐다.
키릴이 주변의 눈을 피해 후드를 깊이 눌러 쓰고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조심스럽게 일꾼들 무리에 섞여들었다. 그 속에서 짐을 옮기는 것을 슬쩍 도우며 탈 없이 물자 이동 무리에 합류했다. 이제 수레에 오르기만 하면 끝이다.
어쩌면 다른 곳에 한눈을 팔지 않았다면 그대로 수레에 올라타고 이곳을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쇠창살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했다면 말이다.
상처투성이의 어린 수인족이 좁은 쇠 감옥 안에 갇혀 있었다. 아이들은 치료받지 못해 엉망이 된 몸을 웅크리고 부들거리고 있었다. 안에는 아이들 외에도 이제 갓 성인 된 듯 보이는 청년이 다른 수인족에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어제 잡혀들어온 흑랑족이라지. 반란군의 자식들이니 괜히 가까이 가지 말어. 같이 있다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짝도 저 지옥으로 가는 거여.”
어린애들 앞에서 저게 무슨 짓이냐고 외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키릴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볼그람의 내전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다만 어린아이라 그게 눈에 밟혔다. 이곳이 주신전의 영향이 강한 곳이었다면 어떻게든 뒤에서 손을 써 볼 텐데. 이곳에선 제 한 몸 지키기 힘든 처지라 무턱대고 손을 내밀 수 없었다. 그럴 능력도 없고 그걸 감당할 처지가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키릴 자신이 잘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떠나기에는 마음에 걸렸다.
너무 어렸다. 하다못해 저 안에 갇힌 이들이 죄다 성인이었다면 키릴은 눈을 꾹 감고 떠났을 것이다.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구할 수 없다. 저 아이들이 죄인의 딱지를 단 이상 키릴이 원 신분으로 이곳에 있었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대신관이 아이들의 처사에 대해 언질을 줘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거나, 최악의 경우 바로 처형할 수도 있었다. 하물며 반란의 대상이 그 야쿠치다. 돼지우리에 갇혀 평생 수탈당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지.
반대로 어쩌면 야쿠치 쪽의 사람들 역시 반란군 쪽에 잡혀가면 비슷한 꼴을 당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 야쿠치보다는 덜 잔인하겠지. 애초에 반란군은 야쿠치의 성정 때문에 그를 반대하던 이들이지 않던가.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리석다는 걸 알면서도 키릴은 죽어 가는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디라,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그래서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 키릴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쉽게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저 자신의 어리석음만 거듭 탓했다.
키릴이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목소리를 가장했다.
“잠깐 바람이 쐬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그런 꼴로 말이지.”
“자꾸 쳐다보는 게 싫어서요.”
“그래? 그런데 뭘 그리 보고 있었지?”
“저 아이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야쿠치가 쇠창살 안을 힐끗 보았다.
키릴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말이나, 조금 가혹한 듯하여…….”
“그런 걸 생각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뒤질 것들인데.”
“…….”
그 또한 알고 있다. 알면서도 멈칫했다. 키릴이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 봐야 저 아이들을 치료하거나 식사를 주거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험한 꼴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 말곤 없었다. 그것조차 야쿠치가 허락했을 때의 일이다. 몰래 하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키릴이 무얼 할 수 있을까. 무얼 하든, 살리지 못한다. 데리고 도망칠 수도 없다. 잠시의 안온은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건 키릴의 자기만족일 뿐.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목숨이다.
“내게 반기를 든 놈들의 자식이다. 나이 같은 건 상관없어. 일을 저질렀으면 그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야쿠치가 키릴을 내려다보았다. 표정과 말투에서 빈정거림이 가득 묻어났다.
“너도 마찬가지야, 디라.”
나지막한 목소리가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금적색 두 눈은 차갑게 얼어붙다 못해 냉기로 하얗게 끓어오르는 듯했다. 그 냉랭한 분노 앞에 키릴은 눈을 질끈 감았다. 들켰다. 야쿠치는 다 알고 있었다. 애초에 산책이란 변명이 통할 턱이 없었다.
그대로 숙소로 끌려왔다. 언뜻 태연한 듯 보였던 야쿠치는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사나운 기운을 드러내더니 키릴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얻어맞은 키릴이 바닥을 굴렀다. 입안이 터져 입술 밖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입가에 피를 흘리는 키릴을 보면서도 야쿠치의 화는 식지 않았다.
이대로 죽여버리고 싶다는 살심이 끓어올랐다.
“윽!”
커다란 손이 키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들어 올렸다.
“귀여워해 줬더니 앙큼하게 달아날 생각을 해?”
짝-!
뺨을 치고 지나간 손이 키릴의 목을 움켜쥐었다.
“윽, 크흑……!”
숨이 막혀 괴로웠다. 생리적인 눈물이 쏟아졌지만, 키릴은 반항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어리석음의 대가라 여겼다. 어차피 죽지 못하는 몸이다. 망가져도 다시 회복되니 분풀이가 필요하다면 얌전히 맞아 줄 생각이었다.
늘어진 두 손이 움직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야쿠치가 손에서 힘을 뺐다.
“헉! ……쿨럭, 쿨럭!”
“왜 그랬지?”
키릴은 대답 대신 쿨럭거리며 핏물을 토했다. 야쿠치가 키릴을 노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은 한참 뒤에 흘러나왔다.
“몸이 점점 이상해져서…….”
키릴이 자신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야쿠치의 눈이 꼿꼿하게 선 빨간 유두로 향했다.
“가슴에서 이상한 물이 나옵니다.”
“그래, 며칠 전부터 나오더군. 젖도 아니고 그냥 물이지만 수컷 주제에 모유를 흉내 내는 거 같았지.”
“수인과 관계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해서 무서웠습니다.”
키릴은 거짓말이란 걸 들킬까 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다행히 야쿠치는 키릴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는지 대차게 코웃음을 치며 키릴을 탓했다.
“내가 한 건 본능을 부추기는 것뿐이다. 네 몸이 그렇게 된 건 네가 음란해서겠지. 네 몸은 원래 이상했다.”
“…….”
“아마 신성을 품은 탓이겠지. 대체 어떤 신인지 몰라도 보통 놈은 아니야. 같은 사내 밑에서 매일 헐떡이는 널 아직 품고 있는 걸 보면.”
야쿠치는 키릴의 몸이 변한 이유가 그가 품은 신성 탓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화장실을 잘 가지 않는 것도, 뒷구멍에 숨어 있는 내장 기관인지 의심스러운 두 번째 구멍도 모두. 애초에 이상한 부분이 많았기에 가슴에서 액이 흐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래서 임신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은 듯했다. 남자인 키릴이 임신할 리 없다는 생각이 밑바닥에 깔린 까닭이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주 뒤엔 투명한 물이 아닌 유즙이 나올 것이다. 그때는 의심을 살지 모른다.
“고작 그런 걸로 도망치려고 해? 며칠간 머리 굴려 가며 준비했겠군. 내 밑에서 좋다고 앙앙 울면서 뒤로는 개수작을 부리고 있었단 말이지.”
“…….”
“내가 실수했어. 암캐는 암캐답게 다뤄야 했는데.”
야쿠치가 키릴의 목에 목줄을 채웠다. 체인이 달린 가죽 목걸이는 개 목걸이를 연상케 했다.
“벌을 주겠다. 아량을 베풀어 네게 선택권을 주지.”
야쿠치가 검지를 들어 보였다.
“첫째, 사지를 묶고 형틀에 끼인 채로 삼 일간 이 마을 수컷의 정액을 받을지.”
검지에 이어 중지가 위로 올라갔다.
“두 번째, 짐승화한 내게 하루 동안 직접 벌을 받을 건지.”
키릴의 눈가가 벌게졌다. 습기 어린 푸른 눈이 깜빡거릴 때마다 눈 밑의 살이 부르르 떨렸다. 야쿠치는 키릴의 눈가에 박힌 점이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흐트러진 숨소리가 마치 흐느끼는 것 같았다. 문득 자신의 아래에서 흐느끼며 허리를 흔들던 키릴이 겹쳐 보여 아랫도리에 열이 올랐다.
“선택해.”
최악과 차악 중 선택하라는 것 같았다. 둘 다 최악이었지만 삼 일과 하루라면 하루가 나았다. 다수의 수인보단 야쿠치 하나가 나았지만 짐승화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두, 두 번째. 두 번째 벌을 받겠습니다.”
“……그래?”
야쿠치가 양쪽 입꼬리를 올리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흉악한 미소였다.
*
야쿠치가 옷을 벗어 던지자마자 으드득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잠시 뒤, 야쿠치가 있던 자리에 두 발로 선 짐승이 서 있었다.
전신이 회색과 검은 털로 뒤덮인 몸뚱이 위에 툭 튀어나온 주둥이와 커다란 이를 가진 짐승의 머리가 있었다. 호랑이와 인간의 것이 섞인 듯한 이질적인 생김새였다.
머리 아래 털로 뒤덮인 육신도 많이 달라졌다. 어깨가 보다 커지고 등과 가슴의 근육이 더 두꺼워졌다. 키릴이 두 팔로 안으면 옆구리만 겨우 감쌀 것 같았다. 하체 역시 전보다 두꺼워졌고 길쭉했던 이전과 달리 조금 구부러진 형태가 짐승의 뒷다리를 연상케 했다.
짐승의 머리를 한 인간. 아니, 이족보행 하는 짐승이라고 봐도 좋았다. 무엇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마물 같기도 했다.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한 몸놀림으로 야쿠치가 침대 위로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짐승이 벌거벗은 키릴의 몸으로 손을 뻗었다.
“흐으…….”
본능적인 거부감에 키릴이 몸을 비틀며 손길을 피했다. 얻어맞아 욱신거리는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키릴은 아픈 몸을 억지로 움직여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야쿠치가 주둥이를 벌리며 입가를 찢어 올렸다. 마치 키릴을 비웃는 것 같았다.
야쿠치는 엉망이 된 인간의 몰골을 잠시간 구경하듯 내려다보다 불쑥 키릴을 덮쳤다. 커다란 체구로 키릴을 깔아뭉개고 두 팔 안에 그를 가뒀다.
위에서 들리는 그르렁거리는 듯한 거친 숨소리가 퍼져 나올 때마다 희미하게 짐승 특유의 날것 냄새가 났다. 짐승화로 체향마저 달라졌다.
생김새도 체향도 전부 전과 다르니 야쿠치가 아닌 것 같았다. 반인반수의 마물을 앞에 둔 것 같아 섬뜩했다.
그때 크고 두꺼운 혀가 키릴의 얼굴을 핥았다. 한 번 핥았을 뿐인데 얼굴의 반이 축축해졌다. 찐득거리고 냄새나는 침이 불쾌했다.
얼굴을 핥던 혀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목덜미를 혀로 비비다 가슴을 핥았다. 평소에도 자주 빨고 핥으며 온갖 애무를 해대는 곳이지만 지금은 그때와 느낌이 달랐다. 마치 개에게 핥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라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거기다 아까부터 야쿠치의 침이 닿은 피부가 근질거렸다. 야쿠치의 성기에 달린 돌기가 흘리는 액에 닿았을 때와 느낌이 비슷한 것이 어쩌면 단순한 침이 아닐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키릴의 얼굴빛이 해쓱해졌다.
“흐으……. 벌이라면서요. 그냥, 그냥 하세요.”
그냥 안에 넣고 흔들고 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키릴은 짐승화한 야쿠치와 이러고 있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키릴이 왜 불편해하는지 이유를 눈치챘는지 야쿠치가 또다시 주둥이를 크게 벌리며 웃었다. 활짝 휜 두 눈이 마치 키릴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키릴은 불길한 기분에 휩싸였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야쿠치가 키릴의 전신을 정성껏 핥기 시작했다.
할짝대는 소리가 이어질수록 키릴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흐읏, 흣, 하아…….”
커다란 혀가 침을 뚝뚝 흘리며 가슴을 집요하게 핥아 댔다. 인간의 것과 다르게 까슬한 혀가 연신 피부와 마찰하자 따갑기까지 했다. 젖구멍에서 흐르는 물과 짐승의 침이 뒤섞여 가슴팍이 순식간에 축축하게 젖었다.
체액에 젖은 피부가 간지러웠다. 너무 간지러워 유두를 할퀴며 마구 긁고 싶단 생각마저 들 때.
“흐학! 아아……!”
뾰족한 이가 말랑한 살을 짓뭉개듯이 긁어내렸다. 그 순간 찌릿한 자극이 아랫배를 치고 올라왔다. 키릴의 입에서 날카로운 신음이 튀어나왔다. 야쿠치가 푸릉 거리며 웃었다. 웃음소리마저 인간 같지 않아서 소름이 끼쳤다.
“하으, 아, 아……!”
싫은데, 이 상황이 너무 무섭고 싫은데. 거부감과 별개로 불규칙하게 쏟아지던 숨소리는 점점 습하게 젖어 들었다.
“앗! 뭐, 뭘 하려…… 힉!”
야쿠치가 키릴의 다리를 잡고 허리째로 들어 올렸다. 무릎 뒤를 잡아 누르자 몸이 반으로 접히다시피 했다. 성기와 음낭은 물론 젖은 뒷구멍까지 천장의 불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났다. 털이 부숭부숭한 손이 뒷구멍을 툭 건들더니 히죽 웃었다. 짐승의 모습을 한 자신이 싫다면서 몸을 핥아 주자 바로 뒤로 물을 흘린 키릴이 웃긴 듯했다.
야쿠치가 키릴의 고간에 얼굴을 박고 킁킁 냄새를 맡자 성기에 뜨끈한 숨결이 쏟아졌다. 키릴은 수치스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야쿠치의 혀가 키릴의 성기에 닿았을 때는 긴장감에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축축하고 끈적한 살덩이는 인간과 달리 까칠했다. 짐승의 주둥이에서 흘러나온 타액에 키릴의 성기가 질척하게 젖었다. 축축하게 젖은 살기둥을 야쿠치가 커다란 혓바닥으로 핥아 올렸다.
“히익! 하, 하지 마세요!”
짐승의 혀끝이 요도 구멍을 찌르고 헤집어 댔다. 예민한 살갗이 집요한 괴롭힘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으읏! 흑! 그만, 하, 그만 핥아!”
민감한 곳에 쏟아지는 자극에 키릴은 몸을 뒤틀며 흐느꼈다.
“하아, 하……. 흣!”
성기를 괴롭히던 혀가 점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키릴이 헐떡이며 고개를 마구 저었지만, 야쿠치는 멈추지 않았다. 키릴의 하반신은 야쿠치가 흘린 침으로 엉망이었다.
항문에 야쿠치의 혀가 닿았다. 질척하게 입구를 적시던 혀가 기어코 구멍 안을 침입했다. 안으로 기어들어 온 혀가 제멋대로 속살을 휘저었다.
“힉! 흐…… 읏!”
물컹한 혀가 인간의 혀는 닿지 못할 곳까지 침범했다. 이리저리 점막을 비비고 찌르는 것이 마치 작은 뱀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몇 번의 혀 놀림만으로 아랫배가 찡하게 울렸다. 몸이 안달하듯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허공에서 흔들리던 발끝이 곱아들었다.
“으, 흣, 아……. 으응…….”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렸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구멍이 수축하며 물컹한 살덩이를 조였다. 구멍이 움찔거릴 때마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키릴의 귀에까지 들렸다.
“크흥…….”
벌벌 떨리는 허벅지의 감촉을 느끼며 야쿠치가 목을 울렸다. 말을 못 하는 건지 일부러 하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정말로 말 못 하는 짐승과 하는 것 같아서 키릴은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아, 아……! 흐, 하으……!”
하지만 마음과는 별개로 몸 안에 퍼져가는 기이한 열기는 점점 강해졌다. 야쿠치의 혀가 안을 강하게 찌를 때마다 안에서 애액이 흘러넘쳤다. 침대 시트가 흠뻑 젖어 들었다.
발칙한 몸뚱이가 짐승의 혀에 희롱당하며 발정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야쿠치의 정액을 받다 결국 그의 씨까지 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그가 이종이란 것이 와닿은 적이 없었다. 아니, 이종이라기보단, 차라리 마물이나 짐승에 가깝다.
그리고 끔찍하게도 자신은 그런 존재에게 깔려 흥분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한 가닥의 이성과 본능적인 강한 거부감에 쉽게 쾌감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도. 어느새 아랫도리가 잔뜩 달아올라 애액을 물처럼 흘렸다. 키릴은 미약한 자기혐오에 휩싸였다.
배 속의 아이는 걱정되지 않았다. 아무리 거친 잠자리를 가져도 키릴이 죽지 않는 이상 자궁 안의 아이에겐 아무런 해도 없을 것이다.
키릴은 아이보다 자신이 걱정되었다.
차라리 아프게 해 줬으면. 고통밖에 없는 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더는 참지 못한 키릴이 야쿠치의 머리를 밀었지만, 야쿠치는 그의 사타구니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가득 들어찬 수북한 털에 기분만 더 이상해졌다.
“윽, 왜, 벌이라면서…… 이렇게…… 흣! 으흐, 싫어, 싫습니…… 으응! 그만……!”
게걸스럽게 구멍을 핥던 야쿠치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키릴의 표정을 보고 히죽 웃었다. 저 표정을 보기 위해 당장 짓뭉개버리고 싶은 것을 참고 그답지 않게 뜸을 들였다.
야쿠치가 몸을 일으켰다. 털 사이로 꺼떡거리는 성기를 본 키릴의 눈이 커졌다. 보기 드문 대물이던 야쿠치의 것보다도 컸고 살갗에 돋아난 돌기도 한층 더 흉흉했다. 선단과 돌기에서 흘러나온 점액 덩어리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성기는 이미 흠뻑 젖어 징그러울 정도로 번들거렸다. 마치 저 커다란 게 살아서 침을 흘리는 것 같았다. 사람의 몸 안에 들어올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해쓱해진 키릴을 본 야쿠치가 입을 벌리고 그르렁거렸다. 벌어진 입 사이로 보이는 흉악한 어금니와 삼킬 생각이 없는 듯 연신 흐르는 침에 키릴은 고개를 돌려 눈앞의 현실을 외면했다. 아무래도 선택을 잘못한 것 같았다. 차라리 단체 윤간이 나았을지도.
야쿠치가 키릴의 종아리를 제 어깨 위에 두르고 위에서 전신을 짓눌러왔다. 어깨 위에 올려진 다리를 제외하고 하얀 몸이 순식간에 거대한 짐승의 육신에 가려졌다.
까슬하고 푹신한 털 너머로 탄탄한 근육이 느껴졌다. 키릴은 마치 맹수에게 덮쳐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야쿠치의 커다란 손이 키릴의 턱을 쥐었다. 턱이 아플 정도로 꽉 짓누르자 키릴의 입술이 벌어졌다. 짐승의 혀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입안을 파고들었다.
“읍…… 으흡, 흐우읍…….”
커다란 혀가 입안을 제멋대로 유영했다. 혀를 반만 넣었는데도 입안이 꽉 차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키릴이 헐떡이는 사이 야쿠치의 남은 한 손이 아래를 파고들었다. 엉덩이가 위로 들린 채라 손끝에 바로 벌름거리는 구멍에 닿았다. 검지와 중지로 안을 푹 쑤시자 내벽이 기다렸다는 듯 손가락을 감쌌다.
“우응……! 흡, 후흥……!”
오돌토돌한 육벽이 오물거리며 털로 뒤덮인 손가락을 맛있게도 씹었다. 두꺼운 손가락이 축축한 안을 사정없이 들쑤셨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리고 안을 누르고 비벼 댔다. 찌걱찌걱, 손가락이 안을 드나들 때마다 음란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끈적하고 찰지게 달라붙는 감촉을 즐기던 야쿠치가 제 아래 깔린 키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꾹 감고 제 혀를 받아내는 흰 얼굴에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뒷구멍에서 손을 빼내자 몸이 크게 흔들렸다. 으, 으응,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을 흘리는 키릴의 얼굴 한편에 불안과 안도의 기색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는 알까. 제 안이 벌렁거리며 안을 다시 채워 달라고 조르는 것을. 야쿠치는 키릴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성기를 입구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뾰족한 귀두 끝을 뻐끔거리는 안에 찔러 넣었다. 갑작스러운 삽입에 키릴의 몸이 경기하듯 튕겨 올랐다.
“후흐윽……!”
커다란 것이 안을 밀고 들어왔다. 아팠다. 늘 빠듯하게 안을 채우던 야쿠치의 성기보다 더 흉악한 물건이라 안이 흠뻑 젖었는데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입구가 찢어질 것 같았다. 이물감이 커질수록 고통이 뒤따랐다. 귀두만 겨우 들어왔을 뿐인데 벌써 안이 꽉 찬 것 같아서 키릴은 헐떡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와 반대로 야쿠치는 지독한 압박감에 저릿한 쾌감을 만끽 중이었다. 키릴의 입안을 범하던 야쿠치가 고개를 들고 목을 울렸다.
“흐읏, 윽, 하으…….”
“아니야, 안 돼…… 하윽! 싫어, 흣, 싫… 읏! 아……!”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야쿠치의 성기에서 미끄덩한 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그 커다란 성기가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왔다. 기이할 정도로 수월하게 삽입되었지만 돌기가 주름을 득득 긁을 땐 키릴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느새 발기한 성기에서 투명한 액이 줄줄 흘렀다. 마침내 배가 야쿠치의 성기로 꽉 차며 귀두 끝이 제일 안쪽의 극점을 찔렀다.
“흐앗! 아, 아……!”
키릴의 안이 성기를 남김없이 빨아먹었다. 성기가 꿈틀거릴 때마다 뱃가죽 위로 불뚝거리는 형태가 드러났다. 야쿠치의 손이 배를 꾹 누르자 안에 있던 성기에 내장이 짓눌려 잊고 있던 배뇨감마저 들었다. 야릇한 전류가 등골을 찌릿하게 훑어내렸다. 동시에 안에 든 것을 빨리 밀어내고 싶은 강한 거부감에 다리 사이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싫어, 싫어. 키릴이 정신없이 중얼거리며 사지를 버둥거렸지만, 야쿠치 앞에선 어린아이의 반항일 뿐이었다.
“으응! 아, 안 돼, 제발, 그냥 원래 모습… 으로…… 읏, 흐윽!”
야쿠치는 키릴의 애원을 무시하고 바로 허릿짓을 시작했다. 온 체중을 실어 키릴의 몸을 깔아뭉개다 못해 털투성이의 몸을 비비적대며 발정 난 짐승처럼 허리를 흔들었다.
키릴의 유두에서 흘러나온 액에 야쿠치의 털이 젖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학, 학, 헥, 크흐, 크르르, 짐승의 허덕임이 키릴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난잡하게 허리를 흔들어대면서도 집요하게 극점을 마구 찔러 키릴을 끔찍한 쾌락으로 몰아갔다. 팡팡, 짐승의 하체가 키릴의 엉덩이를 쉴 새 없이 쳐댔다.
“아, 아, 아! 하으…! 흐, 윽! 하악, 흐웅!”
허릿짓이 점점 거세졌다. 야쿠치가 고개를 돌려 제 어깨 위에 있는 키릴의 다리를 잡고 발바닥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키릴은 연신 신음을 지르며 그만해 달라고 애원했다.
키릴의 아랫배가 꽉 조여들었다. 야쿠치가 허리를 처박는 순간, 참을 새도 없이 키릴의 몸이 멋대로 정액을 싸질렀다. 키릴이 진한 사정감 속에서 고개를 저으며 흐느꼈다.
사정으로 인해 내벽이 경련하는 것을 즐기던 야쿠치가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가 다시 콱 박혀 들자 키릴의 몸이 벌벌 떨렸다. 밀어닥치는 강렬한 감각에 한껏 젖혀진 키릴의 목에 핏대가 돋았다.
움직임이 점점 빠르고 거칠어졌다. 들끓는 폭력적인 충동을 전부 그 안에 쏟아냈다. 거구의 몸이 격렬하게 움직이자 매트가 비명을 질러 댔다.
짐승의 성기가 안을 거침없이 드나들었다. 절정을 코앞에 둔 몸짓이 포악하기까지 했다. 흉물 같은 성기가 안을 침범할 때마다 몸 안쪽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
찌걱찌걱찌걱-
위에서 헉헉대는 짐승이 징그러웠다. 그 짐승에게 꿰뚫려 흥분한 자신 또한 이 순간은 똑같은 짐승 같았다. 심지어 그 짐승의 정액을 받으며 지금 또 한 번 사정하고 있었다.
“크흥, 크흥…….”
“하악, 학! 하윽…! 응, 응으흐……!”
사정한 후에도 야쿠치의 성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정액을 끝없이 싸대며 허릿짓을 이어갔다.
키릴의 발목과 발바닥을 핥던 야쿠치가 자세를 고치며 키릴의 다리를 내렸다. 제 허벅지를 밀어 넣어 키릴의 다리를 크게 벌리고 다시 삽입을 시도했다.
안 돼. 키릴이 중얼거렸다. 이대로는 어딘가 망가질 것 같았다.
전신을 짓누르던 야쿠치의 몸이 떨어지자 키릴이 정신없이 기다시피 하며 도망치려 했다.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발목을 낚아챈 야쿠치가 그대로 키릴의 몸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다시 안에 성기를 처박았다. 살기둥이 아까와는 다른 각도로 안을 파고들며 키릴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흐앙…! 응! 그만, 으응! 흐학, 학, 죽을 것 같, 아……!”
다시 허릿짓이 이어졌다. 키릴은 야쿠치가 좀 전보다 더 흥분한 것을 느꼈다. 도망치려 한 것이 그의 가학심을 부추긴 것 같았다. 실수했다. 그 생각이 가슴을 서늘하게 찔러왔다. 하지만 그 생각마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하아, 아! 으흐……. 싫, 읏! 어… 으응, 응……!”
“크르, 후욱, 후우, 크흥……!”
끝이 뾰족한 커다란 귀두가 미친 듯이 자궁 입구를 두들겼다. 가장 예민한 곳을 강하게 몇 번이고 후려치자 내벽 전체가 경련하며 성기를 물어뜯었다. 오싹한 쾌감에 허리를 잘게 떤 야쿠치가 엉덩이가 홀쭉해지도록 힘을 주고 키릴의 몸을 쾅쾅 처대며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한계까지 벌어진 내벽 전체가 흉흉한 성기에 엉망으로 긁혀나갔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두려움이 드는 와중에도 안이 엉망으로 범해질 때마다 머릿속에 전류가 팍팍 튀었다. 흥분한 야쿠치가 커다란 것을 강하게 쿵쿵 찍어 올릴 때마다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처음엔 거부감 때문에 쾌감마저 거부하던 몸이 절정 후 짐승의 성기에 완전히 녹아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성감이 최고조로 치솟았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몸은 이성과 통제를 벗어나려 안달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을 반복하며 키릴의 정신이 흐려졌다. 그는 더, 더, 안을 엉망으로 쳐대는 성기를 탐하며 저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이며 움직였다.
품 안에서 안달하는 몸짓이 마치 유혹하는 것 같았다. 더 해 달라고 조르는 것도 같았다. 야쿠치는 예민한 곳을 비비고 찌르며 키릴의 몸 위에서 날뛰었다. 침대가 부서질 것처럼 흔들렸지만, 둘은 자제는커녕 더욱 미친 듯이 교미를 이어나갔다.
“아, 아, 아흑……!”
키릴이 털이 부숭부숭한 짐승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헐떡였다. 그는 다리로 야쿠치의 허리를 옥죄며 사정했다.
사정이 끝난 순간 잠시 정신을 차린 키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무언가 크게 잘못된 사람처럼 서럽게 눈물을 쏟아냈다.
무너져내린 키릴의 표정에 야쿠치는 진한 만족감을 느꼈다. 사정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표정만으로 정액을 싸지를 만큼.
그는 커다란 손으로 쉽게 키릴의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개처럼 엎드리게 한 후 자신 역시 수캐처럼 교미하듯 뒤에서 아랫도리를 흔들어 댔다.
“크헝! 킁, 흐응, 흐엉, 크흥!”
“으하악! 아, 아! 응! 하악! 으으응……!”
삐걱, 삐걱, 삐걱-
발정 난 짐승들이 헐떡이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침실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