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키릴은 파견 근무를 자청했다. 목적은 북서쪽 국경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의 구호를 돕기 위해서였다. 공식적으론 그랬다.
솔 제국을 담당하는 추기경이 그것을 허락했다. 계시의 내용을 전해 듣지 않았다면 다음 대 추기경으로 내정된 키릴을 이 시국에 그 외지고 위험한 곳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추기경은 무엇보다 몸을 보중하라며 키릴에게 신신당부하였다.
‘과연, 보중할 수 있을지…….’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성기사, 일리야가 키릴을 찾아와 동행을 요청했다.
“실종된 신관의 소식을 알아보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위험합니다. 키릴 님 혼자 보낼 수 없습니다.”
“거기에도 도와주실 분들은 많아. 넌 여기서 할 일이 있잖니.”
“당신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신전에 남으라 거듭 말해도 완강히 거부하는 일리야 탓에 키릴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네가 싫어할 일을 하게 될지도 몰라.’
계시가 내려온 이상, 이 앞은 그가 본 미래대로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일리야가 곁에 있으면 계시는 이뤄질 수 없었다.
분명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 일에서 제외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혹 일리야가 다치거나 잘못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가 국경에 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적어도 키릴이 야쿠치와 대면할 때까지는.
“부탁할게. 성하께서 곧 기도회를 여실 텐데 네가 지켜 줬으면 좋겠어.”
“……그분을 지킬 자들은 많습니다. 굳이 저까지 거기 포함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만약 폐하께서 위험한 결단을 내리시거든, 좀 말려 주고. 네 말은 듣는 척은 해 주시잖아.”
“제 말이 아닌, 제 입을 통한 키릴 님의 말씀이겠지요. 어쨌든 안 됩니다.”
“일리야, 주신께서 부르신 일이야. 너는 거기 없어야 해.”
일리야의 낯빛이 변했다. 소년티가 묻어나던 고운 얼굴에서 표정이 싹 가시자 완전한 성인 남자의 얼굴로 바뀌었다. 차가운 표정에 원래의 냉랭한 미모가 한결 두드러졌다.
잔뜩 곤두선 남자의 시선을 마주하며 키릴이 속삭였다.
“약속할게. 나는 꼭 여기로 돌아올 거야. 알잖아, 나 신성력 덕분에 늘 멀쩡한 거.”
사지는 멀쩡할 것이다. 그 외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일어날 일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그때 데리러 와.”
일리야는 서늘한 얼굴로 자신의 허리춤에 매인 검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그 눈빛을 키릴이 초조하게 살피던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단장님, 계십니까. 단장님께서 부르십니다.”
“…가 봐.”
문을 노려보던 일리야가 키릴의 긴장한 얼굴을 보곤 한숨을 흘렸다.
“곧 오겠습니다.”
키릴의 손을 잡아 올려 손등에 입을 맞춘 일리야가 기다려 달라며 부탁했다.
하지만 키릴은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일리야가 돌아오기 전에 출발하기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우선 머리 색부터 바꿨다. 눈에 띄는 은발이 아닌 평범한 갈색으로. 신관복이 아닌 평범한 옷을 입은 키릴은 미리 챙겨 둔 짐을 들고 급히 방을 나섰다.
일리야의 안위가 걱정되어 마치 다 아는 척 말하긴 했지만, 성수에 비친 환영이 정확히 어떤 일을 말하는지 다 알지는 못했다.
단 하나 확실한 건 무사히 계시를 실현한다면 어떻게든 신전으로 돌아오게 되리란 것뿐.
‘어떤 꼴로 돌아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리야가 계시의 내용에 휩쓸리지만 않는다면, 둘은 다시 보게 될 것이다.
키릴은 굳은 얼굴로 일행과 함께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