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IF 외전 : 도윤과 맺어졌다면. (17/18)

해교에게는 요즘 취미가 하나 생겼다. TV에 나오는 유명 요리사가 요리하는 걸 보며 재료와 계량, 조리법 따위를 유심히 봐 두었다가, 주방에서 기억을 더듬어 따라 해 보는 것이다. 몇 번 간이 지나치게 심심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짜거나 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를 티 내지 않고 맛있다는 듯 깔끔하게 먹고 음식을 담았던 그릇의 바닥을 보여 주는 도윤 덕에 유지되고 있는 취미였다.

이틀 전에도 도윤의 귀가 시간에 맞춰서 내 간 미트 라자냐는 살짝 색이 옅게 나온 겉보기와 달리 아주 맛있었는지 도윤이 놀라워하며 한 덩이도 남김없이 입 안으로 삼켜 넘겼다.

그날 저녁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꽤나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농어요리가 있었음에도 도윤은 라자냐만으로 충분히 배가 부르다며 준비된 다른 식사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아 해교를 기쁘게 했다.

물론 해교의 입맛에는 라자냐보다 아주머니가 준비해 둔 농어요리가 훨씬 더 맛있었다. 이 맛있는 요리보다 제가 한 요리가 맛있다니. 살짝 믿기지 않았지만 단호하게 해교가 만든 요리만을 내리 골라 먹는 도윤 덕에 슬며시 믿기기도 했다.

그래서 요리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 늘 주기만 하는 도윤에게 유일하게 무언가를 보답하는 듯한 착각이 이는 시간이기도 했고.

다행히 여기까지 송출되는 한국 방송에서도 한인 마트에 가야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닌, 집 아래 마트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보여 줄 때가 잦았다. 따라서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요리가 가능했다. 오늘은 그런 과정을 통해 쌓인 자신감으로 미트로프에 도전해 볼 작정이었다.

“좋아. 지금 사 오면 시간에 맞출 수 있겠다.”

처음 도윤 없이 갔을 땐 꽤나 긴장해 입장하는 데만 한나절이 걸렸던 마트였는데 이제는 익숙해져 별다른 망설임 없이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해교는 꺾인 코너를 지나자마자 한눈에 들어오는 고기 가판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글이라곤 눈을 씻고 둘러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상표들이지만 자주 사다 보니 어떤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정도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필요한 재료를 사는 내내 완성된 요리를 맛있게 먹는 도윤의 모습이 떠올라 해교의 표정이 절로 환해졌다.

집에 도착해 무거운 봉투를 내려놓고선 다진 소고기와 돼지고기에 간을 했다. 한국에 살 땐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파슬리까지 넣어 섞으니 제법 요리하는 느낌이 났다.

지난번 미트 라자냐를 퍽 맛있게 먹어 주었던 도윤을 생각하자 평소보다 더 기합이 들어가 뭐든 계량보다 더 넣었는데, 그저 더 맛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마저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대강 섞는 손길과는 달리 진중한 표정이 결연했다.

준비된 모든 재료를 다 넣은 뒤, 오븐에 넣고 굽기 시작하니 꽤 맛있는 냄새가 났다. 서서히 미트로프가 완성되어 갈수록 해교의 자신감은 주방 천장을 뚫을 만큼 치솟았다. 시간이 흐른 뒤, 오븐에서 완성된 요리를 꺼내 확인해 보니 얼추 해교가 TV에서 보았던 미트로프와 비슷한 외형이었다. 마지막으로 소스까지 남김없이 발라 주었다. 제 눈에 안경이겠지만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요리 느낌도 났다. 얼른 도윤이 왔으면 좋겠다.

해교는 도우미 아주머니께서 해 주신 요리 옆에 자신이 만든 요리 접시를 세팅했다. 굳이 무엇이 해교가 한 건지 알려 주지 않아도 어딘가 엉성하게 담긴 요리는 도윤이 모양만 보아도 충분히 눈치를 챌 법했다. 해교는 알지 못했지만.

이윽고 예고한 귀가 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도윤이 등장했다. 달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 해교의 허리를 껴안아 오는 단단한 품이 느껴졌다.

“나 다녀왔어.”

다정다감한 표정으로 해교를 꼭 껴안은 도윤은 늘 하듯 해교의 목덜미에 얼굴을 푹 묻었다. 따스한 숨결이 내려앉으면 자동으로 솜털이 삐죽 서는 목덜미에서는 늘 은은한 해교만의 향기가 났다. 도윤은 가만가만 제 앞에 주어진 체취를 음미하듯 들이켰다. 공기 중에 흩어지는 조금의 향도 아쉬운 듯 크게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러다 고개를 든 도윤이 체향을 덮을 정도로 집 안을 강타하는 음식 냄새에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형. 요리……했어?”

“응. 배고프지?”

“그렇구나……. 고생했어. 냄새만 맡아도 너무 맛있겠다. 일단 씻고 올게.”

살짝 들뜬 해교를 뒤로한 채 욕실로 향한 도윤이 보이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요리에 취미를 붙인 해교를 잘 알기에 그가 해 주는 모든 음식을 걸신들린 것처럼 맛있게 먹어 치우고 있으나 속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도윤은 집안에서 특별히 구해 준 한인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 주는 음식이 입에 잘 맞아서 밖에서는 거의 식사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특히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점심을 해결할 때면 느끼하고, 속이 더부룩해지는 음식들을 잘 알기에 애써 최소한의 양만 섭취하였는데. 이를 알지 못한 해교는 최근 각종 현지식을 만들어 내는 데 취미를 붙이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 거주할 때 함께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던 적도 있어 도윤이 더는 양식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도윤은 음식을 내었을 때 자신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해교를 잘 알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매번 그가 내오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 결과가 결국…….

하아. 어쩔 수 없었다. 종일 집에만 있고 유일하게 말 붙이는 상대가 저뿐인 걸 잘 알기에 이 정도쯤은 고난과 역경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해교와 함께 지금과 같은 나날을 누릴 수만 있다면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아니라 흙을 퍼먹으라고 해도 먹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도윤은 결심한 듯 크게 숨을 들이켠 뒤 저를 기다리는 해교를 위해 빨리 욕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 * *

“…….”

“왜. 별로야?”

별안간 도윤이 말이 없어졌다. 오늘따라 향신료를 많이 넣었는지 평소 해교가 내오는 요리보다 좀 더 버거운 맛이었다.

“……아니야. 맛있어. 정말로.”

찰나의 정적 끝에 열린 입술은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해교는 도윤의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말만 듣고는 밝게 웃음 지으며 접시를 더욱더 도윤 앞으로 밀어주었다.

도윤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고 비강을 닫아 미각을 차단하려 애썼다. 느끼하다. 느끼해도 너무 느끼했다. 김치가 먹고 싶다. 냉장고에 새로 담근 김치 있던데……. 아무리 음미를 해 봐도 제가 아는 미트로프의 맛과 괴리가 있었다.

도윤은 제집에 조미료가 무엇이 있는지 내일 꼭 알아봐야겠다며 속으로 다짐했다. 아무래도 분명 무언가를 헷갈린 채 넣은 듯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하아. 안 그래도 싫어하는 음식인 미트로프가 더더욱 싫어질 것만 같았다.

“형. 이거 내가 다 먹어도 될까?”

맛보라고 조금이라도 줬다간 제 실수를 깨닫고 축 늘어져선 미안하다며 땅굴을 파고 들어갈 게 분명했다. 해교를 생각하니 이편이 나을 것 같았다.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도윤이 분주하게 제 앞에 놓인 미트로프를 썰어 입에 욱여넣기 시작하였다. 차라리 형이 맛보기 전에 자신이 다 없애 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입 안과 위장이 걷잡을 수 없이 괴롭다 해도.

“그렇게 맛있어?”

해교가 허기진 것처럼 급히 식사를 이어 가는 도윤의 모습에 눈을 반짝였다. 마치 그를 우쭈쭈, 어린아이를 어르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도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남아 있는 미트로프를 몽땅 쓸어 입 안에 집어넣었다. 어색한 미소를 유지한 채 커다란 컵에 물을 잔뜩 쏟아붓곤 꿀꺽꿀꺽 물컵을 들이켰다. 빨리, 최대한 빨리 입 안에 남은 음식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 버리고 싶었다.

“급하게 먹었더니 목이 마르네. 형도 얼른 밥 먹어.”

미트로프 옆에 정갈하게 준비된 음식들은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도윤은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해교 앞 빈 접시를 눈짓하며 식사를 권했다.

“나는 아까 늦게 점심을 먹어서 배가 안 고파. 피자 남은 거 데워 먹었어.”

도윤이 고개를 젓는 해교를 빤히 바라보았다. 늦은 점심 식사에 대해 언급하는 장밋빛 입술이 자꾸만 두 눈에 아른거렸다. 이번 주 내내 논문 준비 때문에 몸을 맞대지 못했다는 점이 뒤늦게 상기되고, 아직 한창인 분신이 솟아오르면서 바지 앞섶의 윤곽을 만들어 나갔다.

“그럼 다른 거 할까?”

“응?”

“밥 말고 다른 거 먹자.”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히 앉아 있는 해교의 팔목을 잡아당기곤 둥그런 귓바퀴에 천연스레 속삭이듯 말했다. 귀청 안으로 습한 숨결이 속살거리며 쏟아졌다. 바지춤이 둘린 가느다란 허리를 보며 숨을 죽이던 도윤이 서서히 제 손을 해교의 바지로 가져가 만지작대었다.

미트로프를 먹다가 갑자기 탈의라니. 난데없는 상황이었지만 해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남김없이 제 위에 걸친 모든 옷을 벗어 내렸다.

해교를 품에 가둔 채 식탁을 짚은 양 팔뚝엔 굵은 핏줄이 서서 단단한 근육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였다. 도윤이 해교의 허리를 한 손으로 짓누르자 찹쌀떡 같은 엉덩이가 높이 솟아올랐다. 포동포동한 볼기가 흔들리는 사이를 응시하던 도윤이 분홍빛 좁다란 구멍을 보며 아랫입술을 핥았다.

“오랜만에 ‘그거’ 하고 싶어서.”

“그거, 그거언 싫어어…….”

“내가 하는 거 싫으면 형이 직접 풀래?”

“흐읏, 으…… 부끄, 러워…….”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쉬이 내어 주기 힘든 것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요 근래 논문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겨우겨우 가벼운 입맞춤 정도만 하고 넘어갔던 도윤을 잘 알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애널 섹스를 예감한 해교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도윤의 손길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 * *

뉴욕 맨해튼 어퍼이스트 사이드의 한 고급 아파트에 도윤과 해교가 둥지를 튼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이다. 도윤이 처음 겪는 감정에 미쳐 앞뒤 재지 않고 경거망동하던 시절이었다.

차윤식의 채권을 제멋대로 열외로 두고 해교의 동선이며 거주지를 엉망으로 파헤치는 것을 들켰을 때, 그의 아버지는 유학을 종용함과 동시에 해교를 놓고 거의 협박에 가까운 제안을 해 왔다.

무슨 용기에서였을까. 처음으로 아버지가 휘두르는 손찌검에 뺨을 맞았을 때에도 흔들림이 없던 도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형의 사람에게서 칼을 빼앗아 패악을 부렸고, 마침내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아래팔에 칼을 그으며 기어코 피까지 냈다.

냉철한 판단력과 자비심 없는 무정함으로 뒷세계를 평정해 온 아버지에게 있어 단 하나의 약점은 어머니였다. 애지중지 길러 온 막내 도윤이 엇나갈까, 다칠까 노심초사한 어머니로 인해 도윤은 결국 아버지의 제안을 무력화하고 역으로 유학길에 해교를 동행시킬 수 있었다. 이대로 한국에 두었다간 추후 혼담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던 아버지는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이를 수용하고 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뉴욕까지 해교를 데리고 오는 데에는 자해 쇼보다 더한 노고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다정다감함으로 무장한 도윤의 헌신적인 모습과 설득에 해교는 곧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도윤은 타지에서의 외로움 상쇄와 집안일 해결을 미국행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해교가 무조건적인 제안에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걸 알아서였다. 도윤의 예상처럼 가사 도우미 애플리케이션에서 나오는 수익을 기대하기엔 지나치게 떨어진 평점과 머물 반지하 월세방마저 사라진 터에 막막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제안은 해교에게 달콤했고, 안식이 되었다.

그저 친구이자 가사 도우미의 역할로 따라온 뉴욕이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매일매일 극진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도윤을 버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른 성정상 단단하게 세우지 못한 벽은 금세 허물어졌다. 시간이 거듭 흐르면 흐를수록 무너진 성벽은 도윤이 새로 굳건하게 세워 나갔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관계가 정립됐다.

우연제와 셋이서 했던 섹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터라 도윤과 해교, 단둘만의 첫날밤은 서로가 말을 놓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괜히 해교의 트라우마라도 자극할까 걱정되었던 도윤은 문득문득 치미는 성욕을 가까스로 삼켜 넘기며 지내고 있었다.

〈하, 후으……. 형. 흣, 읏.〉

어느 날 새벽, 혼자 서재에서 해교의 이름을 부르며 수음하던 순간이었다. 때마침 잠에서 깨어난 해교가 이를 목격한 것이 관계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해교의 보지 구멍도 잘 찾지 못하던 도윤은 시간이 지나면서 꽤 능숙하게 해교의 성감대와 자신의 성감대를 짚어 내기 시작했고, 비로소 그들은 완벽한 연인이 되었다.

보지만을 이용한 섹스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나날들이었다. 굳이 삽입 기관이 아닌 뒷보지까지 건들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보지만 꿰뚫으며 지내던 도중 도윤은 문득, 보지 안에 자지를 쑤셔 넣었을 때 함께 자지러지는 뒷구멍 모습을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어떤 느낌일까.

대체 어떤 느낌이길래 이제는 연을 끊은 우연제가 그렇게까지 발정이 났을까. 해교와 함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과거의 일은 모두 털어 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따금씩 떠오르는 기억에 걷잡을 수 없는 질투가 일었다.

그렇게 질투심에 눈이 멀어 도윤은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애널 섹스에 대해 알아보기에 이르렀다. 알아본 바로는 뒤로 할 경우엔 전립선이 있어 고통만 따르는 게 아니라 쾌감이 어마어마하다고 하니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차라리 뒤를 한번 개척해 보는 게 좋을 듯했다. 물론, 형이 싫다면 하지 않을 테지만.

〈형, 빨고 싶어. 해도 돼?〉

부드러운 입맞춤 뒤, 조심스러운 손길로 해교의 허벅지를 움켜쥔 도윤은 그의 입술이 허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빠끔거리는 아랫구멍을 응시하였다. 아연해진 얼굴을 한 채 곧바로 도리질을 하던 찰나, 예감했었다는 듯 풀이 죽는 도윤의 표정을 본 해교는 아랫입술을 바짝 깨물고는 가로젓던 고개의 방향을 바꾸었다.

〈해도…… 돼. 해…….〉

도윤의 의도를 알아서였다. 자신의 몸 어느 한 곳에도 타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는 열망을 느껴서였다. 꽤나 조심스레 물어보던 도윤의 맥이 빠질 만큼 해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네가 하고 싶다면 할래, 하며.

〈후으. 형. 적극적으로 엉덩이를 들이밀라곤 안 할 테니…… 하아, 도망만 마.〉

〈흐읏, 으, 응……. 아…….〉

뒷구멍은 보지와 비슷한 듯,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항상 물이 많아 뜨끈한 물속으로 잠겨 드는 듯한 느낌을 주는 보지와는 달리 아랫구멍은 뻑뻑해 풀어 줄 시간이 필요했다. 잔뜩 긴장한 허벅지가 자꾸만 오므라들면서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해교는 수치심에 차마 도윤이 빨기 쉬운 자세를 취해 줄 여력조차 없었다.

침대 위에 걸터앉아 어정쩡하게 다리를 벌리고 있는 해교를 내려다보던 도윤이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았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해교의 사타구니 사이에 들어갔다. 갈라진 엉덩이 살 사이에 따스한 숨결이 내려앉은 것을 느낀 해교가 파르르, 몸을 떨자마자 곧바로 도윤은 제 얼굴을 습한 가랑이 안으로 묻었다.

〈아흐으……!〉

하반신이 아예 도윤의 입술 앞에 대령된 거나 마찬가지라 해교가 어떻게 몸을 뒤틀어도 도윤은 흔들림 없이 혀를 놀릴 수 있었다. 넓게 편 혀로 주름진 구멍 전체를 한 번 핥고 난 뒤 쭈욱, 쭉 욕심껏 힘을 주어 빨아 대는 통에 해교는 차칫 연약한 구멍 어귀의 살점이 몽땅 딸려 나갈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외설적인 소리가 날 때마다 여린 내장이 바깥으로 흡입되는 것처럼 아래가 쑥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뒷보지가 빨리는 게 처음은 아니었음에도 이제는 기억 저편에 희미하게 남은 경험인지라 간만에 말캉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구멍을 마구잡이로 핥고, 빠는 느낌은 온몸을 들썩이게 했다. 흐느낄 만큼 느껴지는 버거운 감각에 울 듯이 신음을 내지르며 어느샌가 도윤의 어깨 위에 걸쳐진 발목에 바짝 힘을 주어 발끝을 팽팽하게 당겼다.

〈하아, 아앙…… 으응…….〉

두 손을 입술 위에 포개고 최대한 신음을 참아 보려 애썼지만 격렬하게 꿈틀대는 하반신의 움직임에 그가 느끼는 쾌감이 여실히 드러나 의미가 없었다.

〈좋아? 보지에서 물이 엄청…… 나온다.〉

빠듯한 구멍을 풀어 주면서 함께 흥분한 보지 덕에 보짓물 역시 척척하게 흘러나와 애액과 타액을 모아 적시면 구멍은 금세 야들야들하게 변했다. 단 한 번도 경험이 없는 도윤조차도 이만하면 충분하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 도윤이 구멍에 붙였던 혀를 떼어 냈고, 어찌나 집요하게 깔짝였으면 입술이 떨어져 나가도 열기가 몰린 입구는 쉬이 오므라들지 않았다.

〈형. 이제 할게.〉

〈흣, 응……. 해애…….〉

목울대가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가 침실을 울리고 도윤이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후으……. 평생 몸을 맞붙인 이라곤 해교뿐인 도윤은 초반에 꽤 헤맸다. 우선 각도부터가 조금 달라 습관적으로 보지에 넣듯 아래를 물렸다 허리를 쳐올렸을 때 퉁, 자지가 회음부를 치고 진입하지 못했다.

귀두만 가져다 대어도 펄떡이며 탐하기 시작하는 보지와는 달리 배설을 목적으로 생겨난 기관은 선단을 우악스럽게 잡아 밀어 넣어야 꾸역꾸역 점막이 밀리기 시작하는 탓이었다.

그렇게 쉽지 않게 삽입에 성공했을 때, 빼곡하게 다물렸던 항문 주름 전체가 펴지면서 자지가 욱신거릴 만큼 강한 조임이 일어났다. 도윤은 겨우 반절 집어넣은 성기를 뽑아 먹을 듯한 자극에 목 안을 긁는 소리를 내었다. 쫀득하게 좆을 짓뭉개는 점막에 속절없이 함락당했다. 처음으로 해교의 보짓살과 그의 자지가 맞닿았을 때가 떠오르면서도 그때의 느낌과는 또 다른 아찔한 감각이 인정사정없이 그를 짓눌렀다.

그리고 또, 어땠더라.

……그때를 떠올리며 복숭아처럼 말간 볼기를 와앙, 장난치듯 크게 한입 베어 문 도윤이 식탁 테이블에 올려 둔 해교의 손가락에 입술을 내렸다. 그러곤 경건한 의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가락부터 시작해 그의 몸 곳곳에 부드러이 입을 맞추었다. 익히 잘 아는 따스한 체온이 맞닿자 해교는 바싹 솟아오른 어깨를 내렸고, 이를 확인한 도윤은 망설임 없이 구멍에 입술을 대었다.

“도윤, 흐으…… 아!”

훅, 간질이는 숨결이 느껴진 것도 잠시.

말캉하고 뜨거운 살덩이가 예고 없이 뒷구멍을 헤집었다. 벌써부터 구멍이 제멋대로 움찔움찔 욱신거렸다. 다가올 쾌감을 단단히 학습했기에 자극에 앞서 날뛰듯 요동치는 것이었다. 따끈따끈하면서도 질척한 혓바닥이 선사하는 묘한 감촉은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어 자꾸만 몸을 뒤치게 되었다.

퍽, 퍽 몸부림치며 발생한 의도치 않은 발길질을 고스란히 받아 내고도 도윤은 흔들림 없이 제가 하던 짓을 이어 나갔다. 잔잔한 호수 같은 성정이 잠자리에서도 이런 식으로 반영됐다.

흠칫흠칫 엉덩이가 떨어질 때마다 접착제로 붙여 두기라도 한 듯 쭉쭉 따라붙는 두꺼운 혀는 제멋대로 모양을 바꾸어 보지에도, 뒷보지에도 알맞게 짜 맞춘 듯 드나들었다.

“아, 흣, 하아, 으응!”

해교의 잇새에서 습한 숨이 마구 쏟아지고 신음이 뒤섞여 나왔으나 곧 신음성의 대부분은 울먹임으로 뒤덮였다. 도윤과 셀 수 없이 많은 체위와 행위들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지와 분비물이 드나드는 구멍에 그의 입술이 닿을 때면 견딜 수 없는 자극에 온몸이 간지러웠다.

아마도 자지나 손가락을 쑤셔 넣을 때보다 더한 압력과 함께 끊임없이 타액이 솟아나는 살덩이가 내부를 적시며 달궈 나가는 예열감 때문일 터였다.

뜨거운 혀가 여태 연분홍빛 잇자국이 남은 엉덩이 사이를 핥아 내리자 구멍 안이 끓어오르다 못해 녹아내렸다. 보드라운 두 살덩이를 가르는 오뚝한 콧날 아래,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제가 잘 아는 살결이 착실히 젖어 가는 살 내음이 났다.

추읍, 쫍, 게걸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두꺼운 혀가 구멍 안을 쑤시고 빠져나오자 투명한 타액이 질질 새어 나오며 회음부를 타고 흘렀다. 한껏 젖어 버린 구멍은 저 스스로를 적시는 체액과 애액, 도윤의 타액으로 금세 흥건해진 채로 붉은 속살을 뻐끔거렸다. 한없이 색정적인 색상이었다.

“으, 흐읏……. 아, 아…….”

도윤이 아랫구멍에 박아 넣은 혓바닥을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찌걱, 찌걱 허리를 털듯 빠르게 혀를 쑤시고 비빌 때마다 주름진 구멍에서 뜨거운 열감이 일었다. 아아……! 흐느끼듯 신음을 내지른 해교가 숙인 허리를 펴며 자리를 벗어나려 들었지만 도윤은 그를 감싼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계속해서 질척한 살덩이로 하는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해교가 이를 악물고 자극을 참아 내는 사이 도윤은 한결 더 거센 힘으로 뒷구멍을 쭈욱 빨아올렸다. 내장 안을 몽땅 긁어낼 듯 강하게 압박해 오는 압력감에 해교가 자지러지듯 몸을 떨었다. 바르작대며 어떻게든 도윤에게서 벗어나려 드는 것이 실패하자 뒤늦게 팔을 내저으며 울먹거렸다.

“이, 이제 그마안……. 힘들어…….”

“아직 덜 풀렸는데. 이대로 넣으면 찢어질 거 같아.”

“으흣, 내, 가 할래…….”

한동안 그렇게 엉덩이 전체를 복숭아 씹듯 물고 빨던 입술을 떼자, 하얬던 엉덩이 살 곳곳이 발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실로 물 오른 거대한 복숭아 같았다. 설득력 없이 새빨개진 얼굴을 한 해교가 가느다란 팔을 내려 제 엉덩이 사이로 향했다. 도윤이 떨어져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꾸욱 다시 다물린 구멍에 얇디얇은 손가락 하나를 비집어 넣었다.

“읏……!”

도윤이 열심히 풀어 놓아서인지 아랫구멍은 별 무리 없이 손가락을 받아먹었다. 해교는 짧게 심호흡을 한 뒤 또 다른 손가락을 추가해 쑤셔 넣기 시작하였다. 손가락을 타고 체액이 흐르면서 찔걱, 찔걱 음란한 소리가 다이닝룸을 울렸다.

아흐읏…… 응…… 손가락 2개가 부지런히 구멍을 넓히며 오고 가자 준비를 마친 내벽이 들썩였다. 어느덧 바삐 꺾여 움직이던 손목에도 바짝 열이 오르고 아까 도윤이 혀로 안을 휘저을 때부터 팽팽하게 솟아오른 작은 자지는 당장이라도 픽, 좆물을 싸 낼 듯 부풀어 오른 채 하늘을 향해 고개를 흔들거렸다.

해교가 이제 넣어 달라는 듯 골반을 식탁 끄트머리에 맞닿게 한 뒤 둔부를 도윤에게 내밀었다. 유독 사랑스럽게 구는 해교를 바라보는 도윤의 눈동자에 금세 뜨거운 열기가 맺혔다.

그새 서 버린 도윤의 자지는 대강 내린 바지와 드로어즈 사이에서 쉽게 고개를 들고 튀어나왔다. 반듯한 도윤의 얼굴처럼 깔끔하게 생긴 형태였으나 크기는 결을 달리하는 좆이었다. 바닥에서 일어난 도윤이 주름진 구멍에 자지를 쑤셔 넣기 위해 허리를 살짝 낮추고 몸을 겹쳤다. 그래도 이대로 좆질을 하기에는 어딘가가 불편했다.

“내, 내가 움직일…….”

해교가 발끝에 힘을 주고 뒤꿈치를 들어 올리자, 까치발 덕택에 해교의 아랫구멍이 번들거리는 도윤의 귀두에 짜 맞춘 듯 들어맞았다. 잔뜩 달아올라 예민한 귀두에 촉촉한 살점이 닿았다. 귀두 끝에서부터 녹아내릴 듯한 열감이 느껴졌다. 도윤은 빠끔대는 구멍 안으로 거대한 자지를 짓쳐 넣었다.

“하윽!”

“하아…….”

단단하게 들이치는 자지 기둥이 버거웠던 해교가 조금 더 발끝에 힘을 주곤 도윤의 자지에서 살짝 떨어지려 노력했다. 그러자 도윤이 해교의 허리 옆에 두꺼운 팔뚝을 나란히 올린 채 한결 더 사타구니를 밀착하고선 퍽, 허리를 튕겨 댔다.

아슬아슬하게 발끝으로 서 있던 터에 묵직한 귀두가 때리자, 일순 균형을 잃은 몸이 제자리로 되돌아가며 접합부를 뭉근하게 짓눌렀다. 연이어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절로 조여 오며 자지를 압박했다.

“크읏. 벌써부터, 하아, 이렇게 조이면 어떡해…….”

“하으으…….”

양팔로 식탁을 짚고 선 도윤은 조금의 틈 없이 자지 뿌리까지 쑤셔 넣고, 귓바퀴로 젖은 숨을 흘려 댔다. 귓바퀴와 목덜미로 뜨거운 숨결이 쏟아지자 잔소름이 돋은 해교의 어깨가 절로 바르르 떨리고 말렸다. 이제 겨울을 향한 길목인데, 왜인지 여름인 양 어깨를 타고 끈적한 기운이 흘러내리는 듯했다.

“아흐응! 아, 하으!”

마침내 녹진녹진 풀린 구멍이 얇게 펴진 채 흐물거렸다. 미끌미끌해진 점막이 밀리며 쾌감이 몰아쳤다. 잔뜩 열 오른 점막이 짓이겨지는 해교도, 참아 왔던 자지를 뜨거운 구멍 안으로 쑤셔 넣은 도윤도 몸을 들썩이며 연이어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내벽이 조여지며 살짝 밖으로 밀리던 자지는 곧장 익숙한 지점으로 향해 부푼 그곳을 찍어 올렸다.

격한 허리 짓에 밀려 분명히 힘을 주었는데도 멋대로 힘이 풀린 다리가 주르륵, 아래로 내려가자 해교의 무게 중심은 더더욱 도윤을 향했다. 이를 눈치챈 도윤이 단단하게 해교의 종아리 아래를 번쩍 받쳐 안았다. 순식간에 해교의 상반신은 식탁에, 하반신은 도윤의 손아귀에 닿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아, 떠, 떨어져어…… 무서워. 흐읏……. 내려 줘.”

“하아, 절대, 후, 안 떨어뜨려.”

도윤은 해교의 접힌 종아리를 단단히 틀어쥔 뒤 계속해서 허리를 거세게 쳐올렸다. 딱딱한 장골이 봉긋한 엉덩이를 쳐 댈 때마다 볼기가 마구 뭉개졌다. 덜덜 떨려 오는 말랑한 엉덩이 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사납게 자지를 박아 넣길 반복하였다. 단단하게 그러쥔 손가락 사이, 삐죽 튀어나온 살점이 새빨갛게 변한 채로 얕게 떨렸다.

무게를 감당한 탓에 도윤의 손등에는 푸른 핏줄이 불거졌으나, 신체적인 반응과 상관없이 도윤은 손쉽게 해교를 든 채로 앞뒤로 허리를 빠르게 쳐 댔다.

아, 아앙……! 힘이 빠져 비의도적으로 엉덩이가 내려오자 그 무게에 결합은 더욱 깊어져 접합부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해교는 내장을 치고 푹, 들어오는 거대한 자지의 크기에 힉힉대며 허리를 뒤틀었다.

“흐읏!”

교성을 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온전히 제 다리로 몸의 무게를 버틸 때보다 훨씬 버거운 자극이 엉덩이 끝에서부터 쏘아져 아찔했다. 종아리를 뒤로 당기며 손쉽게 들이친 자지가 내벽 끄트머리를 지나쳐 꺾인 결장 입구를 쿡, 쿡, 쑤셔왔다.

예고 없이 결장 어귀까지 찔러 대는 자지에 발등이 확 곱아들며 경련하듯 떨렸다. 점막이 진득하게 자지를 감쌌다가 떨어져 나가면서 즙 같은 체액이 주욱 늘어졌다. 아, 흐, 흐읍……! 여태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위치에까지 좆이 대가리를 힘껏 들이밀자 해교도, 도윤도 생경한 쾌감에 절로 하체를 떨었다.

“아! 윽! 응!”

이대로 자지가 가슴께를 치고 올라오면 어떡하지. 능히 걱정이 될 만큼 거대한 좆이 거칠게 내장 안을 들쑤시고 도톰한 정점을 짓뭉개는 움직임이 선연했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부위가 쑤셔질 때마다 헛구역질과 동시에 눈물이 왈칵 터졌다.

하체가 온전히 도윤에게 맡겨진 상태라 해교는 팔꿈치에 힘을 주고 테이블로 몸을 쏠리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 흐으, 흑……. 팔꿈치 끝이 새하얗게 변해 갔다. 거칠게 드나드는 자지의 리듬에 맞추어 해교의 몸은 점점 더 앞으로 처박혔고, 종내에는 한쪽 뺨이 식탁 유리에 짓눌린 채 파고들어 오는 자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퍽, 퍽 자지가 뒷보지를 쑤셔 올 때마다 해교의 복숭앗빛 뺨이 짓뭉개지고 엉덩이는 힘을 주지 않아도 저 혼자 씰룩였다. 아랫구멍을 벌름거리며 쑥쑥 짓쳐 오는 자지를 빨아 먹을 때마다 온몸 여기저기가 환희로 인해 파들파들 진동했다. 어느샌가 곧게 펴졌던 발가락은 제멋대로 곱아든 채 발작하듯 까딱이고 있었다.

턱턱, 도윤이 고간을 부딪치자 식탁 위에 엎드려진 상체가 흔들렸다. 동시에 문질러지는 함몰된 젖꼭지는 서서히 일어나 팽팽하게 알갱이를 세웠다. 아, 아앙……. 입술 사이에서 신음이 터지고 부푼 유두 끝에서부터 저릿한 감각이 솟아났다. 테이블과 밀착된 채 아래위로 짓눌리던 젖꼭지는 어느덧 어느덧 충혈되어 불그스름해진 채였다.

자지가 들어올 때마다 괄약근이 제멋대로 조여들고, 이에 따라 둔근 역시 의지를 벗어나 또렷하게 일어났다. 엉망으로 들쑤셔진 결장 입구는 흐물흐물, 풀린 채로 자지를 맞았다.

자지가 빠르게 움직일 때면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이 우물거리면서 속도에 맞추어 살 기둥을 맛있게 빨아올렸다. 쳐들린 엉덩이가 음란하게 흔들리고 철썩이는 야한 소리가 났다.

“후으……. 미치겠다. 형.”

“히, 힘들어……. 으응, 불편, 하윽!”

도윤은 무너지려는 해교의 허리를 움켜잡아 온전히 식탁 위에 올렸다. 양 무릎을 꿇은 채 체액으로 번들거리는 엉덩이가 도윤의 바로 앞에 자리했다. 도윤은 솟구치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구멍에 귀두가 걸릴 때까지 살 기둥을 뽑아냈다가 단번에 거세게 허리를 추어올렸다. 쩌걱, 살갗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살덩이가 달아오른 결장을 지글지글 다시 한번 갈랐다.

“도…… 흐으, 아…….”

“후우. 응…….”

“너무 깊, 흐으, 너무 깊, 어서…… 아아, 아!”

“하아, 좋다는 말이지. 나도, 좋아.”

마구 몰아붙이는 하반신과는 달리 귓가에 쏟아지는 음색은 다정했다. 그 부드러운 음성에 신음을 삼키고 잠시간 숨을 고르던 사이.

퍽! 더더욱 깊숙이, 뿌리까지 가차 없이 자지가 틀어박혔다. 해교는 결국 눈을 까뒤집고 파들파들, 자지러졌다. 눈꺼풀 너머로 색색깔의 오르가슴이 튀어 올랐다. 퍼붓듯 쏟아지는 쾌감에 눈을 질끈 감자 어느덧 식탁 위에 하얀 정액이 뭉텅이로 뿌려졌다.

* * *

“내일은 전에 가고 싶다고 했던 레스토랑에 갈까?”

도윤이 잔뜩 노곤해진 해교와 욕조에 나란히 몸을 기댄 채 물어 왔다. 해교가 좋아하는 장미 향이 나는 분홍빛 입욕제에서 생성된 거품이 뜨끈한 수면 위를 뒤덮고 있었다. 퍽 마음에 드는지 수십 가지를 골라 사다 놓은 목욕용품 중 같은 제품 계열만 줄어들고 있어 도윤이 눈여겨보는 중이었다.

살짝 상체를 기울인 채 넘실거리는 거품을 쿡, 쿡 누르고 터트리던 해교가 그의 말에 고개를 뒤로 했다.

“어……디?”

“이틀 전에 말해 놓고 잊었어?”

“아…….”

눈꺼풀이 살살 감겨 와 웅얼거리는 제 연인이 귀여운지 도윤이 작게 웃음 지었다. 혹시라도 미끄러져 물속에 빠질까, 욕조 턱에 걸쳐진 팔뚝에 힘을 주고 그의 몸을 바투 당겨 안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단단한 팔뚝의 근육이 갈라지면서 이를 가로지르는 번개 모양의 흉터가 꿈틀거렸다.

이제는 옅어진 흉터지만 당시엔 꽤나 깊게 팬 데다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와 온 가족으로부터 공포를 자아냈던, 하지만 덕분에 해교를 지켜 냈던 영광의 상처였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꽤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당장이라도 생을 마감할 듯, 제 몸에 자해를 하는 남자가 떠올랐다. 안쪽에 있는 흉터에다 셔츠에 가려지는 터라 평소엔 거의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가끔 각도가 들어맞아 눈에 들어올 때가 있었다.

“잔잔한 흉터가 너무 많아. 아팠겠다. 이렇게 다칠 정도로 운동을 해야 돼?”

멋모르는 해교가 그의 팔에 팬 자상을 찬찬히, 안타까운 듯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이미 미간은 잔뜩 구겨진 채였다.

체력 비축 때문에 운동을 하느라 생긴 상처들이라 둘러댄 탓에 나온 말이었다. 물론 자상의 경우 아무리 눈치가 없는 해교일지언정 흉터가 생긴 직후에 그리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다 나은 뒤에도 한동안 거즈로 상처를 덮고 그의 눈을 속이려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안 그럴게. 이젠 그럴 일 없어.”

형만 내 곁에 있으면. 마지막 말은 다짐처럼 제 가슴에 묻어 두며 대답했다. 언급하다 보니 다시 그날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 도윤은 해교를 껴안은 나머지 팔에 더욱더 힘을 주었다.

“으응…….”

가볍게 입술이 부딪히고 숨이 얽혔다. 맞닿은 살갗에서 옮겨 오는 체온이 좋았다. 조금의 망설임도 허하지 않을 것처럼 저를 옭아매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저 맞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해교가 도윤의 몸통에 좀 더 저를 가까이 하자 그의 등과 맞닿은 도윤의 가슴이 발칵 솟으며 한결 더 단단해졌다.

도윤은 메리를 구해 주던 날 해교가 예감했던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몇 년간 증명해 오고 있었다. 해교에 한정해서 도윤은 늘 한결같이 다정했다. 또한 한결같이 사랑해 주었다. 누군가 저를 이토록 열망하고 아껴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를 통해 배웠다. 해교를 차지하기 위해 도윤이 수 써 왔던 갖은 일들이 영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터라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친구한테 이야기해서 부킹해 뒀거든. 거기 가서 내일 점심 먹고 오는 길에는 공원에서 산책하면서 아이스크림 먹자. 형이 엄청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집으로. 이제 바쁜 건 한시름 놓아서.”

“좋아!”

반쯤 감긴 눈이 번쩍 떠졌다. 늘어져 있던 팔에 힘이 생겨선 빠르게 몸에 묻은 거품을 닦아 내는 모습에 도윤의 눈이 절로 휘었다. 이거였다. 소소한 행복이라는 건. 이럴 때마다 도윤은 제가 살아 있는 이유를 찾은 듯했다.

“아……. 좋다.”

“뭐가?”

“그냥, 다. 형이랑 이러고 있으면 다 좋아.”

“……나도.”

더없이 사랑스러운 대답에 도윤이 부서져라 해교의 몸을 껴안고 쉴 새 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석사를 끝내고 나면 일단 박사까지 연장해서 체류할 예정이었지만 가능한 한 더욱더 오래, 평생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복잡한 한국에서의 일도, 문제도 모두 외면한 채 그저 조금은 지겨운 공부에만 집중하면 저와 같은 마음인 연인과 함께할 수 있는 보상이 있는 이곳이 천국이었다.

* * *

걷기에 다소 추운 날씨였지만 워낙에 거리를 걸으며 대화 나누길 좋아하는 해교 때문에 두 사람은 두툼한 외투를 입은 채로 집을 나섰다. 아직도 영어에 있어서는 거의 까막눈이나 다름없지만 제법 간단한 말은 할 줄 아는 해교가 깍지 낀 도윤의 손을 흔들며 길거리의 간판들을 하나하나 읊어 나갔다.

“파머스…… 오믈렛?”

“맞아. 잘 읽네.”

“파머스가…… 어…….”

“농…….”

“……부!”

맞다는 대답 대신 도윤이 해교의 뺨에 제 입술을 쪽, 대었다 떨어뜨렸다. 이러한 애정 표현이 익숙한 듯 얼굴을 붉히지 않은 해교가 도윤과 눈을 마주치고 방싯, 싱그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성 소수자가 더는 소수자가 아니게 되는 분위기의 거리가 도윤과 해교를 한층 더 편안하게 해 줬다. 아무리 생각해도 뉴욕을 유학지로 삼은 것은 최적의 선택이었다.

도윤이라고 해교를 집 안에만 둘 생각은 없었다. 뉴욕에 와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초반부가 지나고 해교와의 관계가 안정이 되었을 때, 해교에게 먼저 어학원을 권유한 건 도윤이었다. 한인 어학원을 다니며 쉬운 단어라도 조금 배워 두면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고립되어 있지 않고 하다못해 관광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욕심으로는 검증된 강사 1명을 집에 불러들이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해교에게도 뉴욕에 정을 붙일 준거 집단을 하나 만들어 주는 게 좋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껏 도윤이 어학원을 등록하고 데려다준 날, 해교는 잔뜩 움츠러든 채 하원해서는 학원에 다니고 싶지 않다는 말을 반복했다. 낯선 사람이 불편하면 집으로 불러서 과외를 시켜 주겠다는 말에도 고개를 저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한번 나가 본 거였는데 실제 유학 예정 중인 학생들이 대부분이라 그들의 이야기에 낄 수가 없었다. 그저 슬쩍 들려오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움츠러들었다. 저와는 결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형. 이제 영어 너무 잘하는데 아직도 아카데미 생각 없어?”

“응…….”

“나랑만 얘기하니까 심심하지 않아?”

“아니. 안 심심해. 일하시는 분이랑도 가끔 얘기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도윤은 해교에게 차마 한국행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을 절대로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도윤은 해교와 마주한 눈을 애써 반달 모양으로 만든 뒤 어학원에 대한 미련 없이 다른 간판에 관심을 갖는 해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슬슬 걷다 보니 어느새 예약한 레스토랑이었다. 손을 꼬옥 맞잡은 동양인 남자 둘에 대한 편견 없이 인사하는 웨이트리스를 따라 좌석을 안내받았다. 은은한 조명이 감도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그 짧은 순간에도 서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는 뭐가 맛있대?”

해교는 도윤이 학교로 가고 나면 그냥 쉬라는 하우스 키퍼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함께 넓은 집 구석구석을 꼼꼼히 청소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남는 시간에는 도윤의 서재에서 PC를 켜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살펴보고 댓글을 달곤 했다. 닉네임을 뭐라고 지을지 고민하다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어 ‘열심히해드려요’로 활동하고 있었다.

여기에 오자는 것도 그 사이트에 올라왔던 추천 글 때문이었다. 댓글 반응도 좋았으니 틀림없이 도윤도 좋아할 것이다. 해교는 이번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상체를 바짝 앞으로 기울이곤 속살거렸다.

“치킨 팟 파이! 어…… 그러니까 이거, 이거야.”

“아. 맛있겠네.”

Chicken pot pie. 글자 옆에 완성된 요리가 사진으로까지 인쇄되어 있어 더욱 찾기가 쉬웠다. 도윤은 해교가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몇 가지 메뉴를 더 고르도록 두다가 곧 주문을 위해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현지인과 대화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그를 잘 알기에 늘 레스토랑에서의 주문은 도윤의 몫이었다.

주문을 마친 뒤, 해교는 다음 주말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조잘대기 시작했다. 도윤은 그런 해교를 누구보다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잘못 건들면 깨어지는 예술품 감상하듯 대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도톰한 입술과 얼굴 근육 하나하나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모조리 망막에 새겨 넣었다.

“Enjoy your meal.(맛있게 드세요.)”

드디어 음식이 나오고, 바쁘게 포크를 움직이던 해교는 어느샌가 제 앞의 도윤이 어울리지 않게 입술에 음식 부스러기를 묻힌 채 식사를 하는 것을 알아챘다. 해교는 도윤의 아랫입술에 살짝 묻어난 크림을 손가락을 뻗어 슬쩍 닦아 내곤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 입술에 잔여 소스를 넣어 쪽, 빨았다.

“뭘 묻히고 먹어. 애기처럼.”

“아……. 내가 그랬어? 고마워. 묻었는지도 몰랐어. 형 아니었으면 바보 같았겠다.”

도윤과 눈이 마주치자 절로 배시시 눈웃음이 흘러나왔다. 늘 도윤이 나서서 자신을 챙겨 주는 바람에 아주 가끔, 이렇게 자신이 도윤의 보호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 때면 뿌듯했다.

도윤은 그런 해교를 위해 종종 일부러 입술이나 턱에 소스가 묻어나도록 음식을 먹을 때가 있었다. 오늘 역시 그런 의도가 드러난 식사였다. 해교는 영원히 모를 그 나름의 비밀이었다.

“공부하느라 힘드니까……. 정신없지? 나는 책상 앞에 앉는 게 제일 싫은데.”

“난 일하는 것보다는 공부하는 게 좋아서 괜찮아.”

“그럼 다행이긴 한데…….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하지? 신기해.”

“하하. 나는 요리 잘하고 청소 잘하는 형이 더 신기해.”

사실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석사 과정을 밟느라 매일이 전쟁터였다. 일상생활과는 사뭇 다른 전문 용어의 나열에 학부를 통해 꽤 적응했다고 생각했었는데도 석사를 준비하면서부터는 매일 학교 출석뿐 아니라 별도의 어휘 공부까지 추가적으로 하느라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하루라도 준비를 게을리해서 제가 걸어 두었던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피해를 입게 되는 건 제 일신이 아닌 해교와의 관계였다. 말썽을 부려 쫓겨나는 것치고는 문제의 원인과 동반해서 부족함 없이 유학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도윤은 잘 알았다.

도윤은 가능한 한 더 오래 이곳에 머물며 귀국 전에 해교와 저 사이에 아이가 생기는 경우의 수까지 생각해 두었다. 양성구유의 몸을 부끄러워하는 해교와 달리 도윤은 이를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고 보았고, 정말 하고자 마음먹으면 임신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전문가의 소견까지 받아 두었다.

한국에 들어가서까지 살림을 합친 채 있으면 방해가 따르겠지만 애까지 들어서고 나면 어머니를 봐서라도 아버지가 해교를 어찌할 수 없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간 양성구유 진료에 대한 병원 기록을 남긴 적이 없기에 해교가 아이를 갖는 게 가능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덕분이었다.

지독했던 첫사랑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바라는 바는 다 들어주고만 싶었다. 저의 곁에서 떠난다는, 말도 안 되는 일만을 제외하곤 모두 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반드시 자신이 증명해 낼 것이다.

수단으로 아이를 취급해 미안하긴 했지만 당장에 가방끈 좀 길어졌다고 해서 힘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사랑하는 이와의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였다. 언젠가 둘 사이에 아이가 잉태된다면 해교만큼은 아닐지언정 저보다 더, 세상에서 두 번째로 소중하게 대해 줄 자신이 있었다.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에 대해 다짐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제 연인을 바라보는 도윤의 눈빛이 확신에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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