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IF 외전 : 연제와 맺어졌다면. (16/18)

“잘못……했어요…….”

“…….”

“하아, 잘못……했으니까…….”

가지 마…….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연제가 웅얼거렸다. 매끈한 미간 사이가 삽시간에 구겨지고 눈꼬리 끝엔 눈물이 맺히기 시작해 살갗이 촉촉이 젖어 갔다. 무표정할 땐 한없이 차가운 얼굴이었으나 이를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애달픈 표정으로 누군가를 찾고, 매달리고 있었다.

잠자코 이를 바라보던 해교가 연제의 품 안에 파고들어선 제 몸보다 훨씬 큰 그의 몸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잠결에 느껴지는 따스한 체온과 익숙한 체취, 그리고 마법 같은 주문. 헐떡이던 연제의 호흡이 점차 안정되고 침실은 다시 적막해졌다. 창문 새로 희미하게 스며드는 은은한 달빛만이 간간이 모습을 달리할 뿐이었다.

* * *

자고 일어나자 거실 창가에 놓여 있던 몬스테라 화분을 대신해 거대한 트리가 통창 절반을 막아선 채 우뚝 솟아 있었다. 해교는 여전히 꿈을 꾸는 것인가, 눈이 휘둥그레져선 트리 앞으로 다가갔다. 도저히 이런 가정집에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트리가 난데없이 서 있었다.

“이게 웬…….”

해교는 12월도 아닌 7월에 이렇게 큰 트리가 집 안에 놓인 경위에 대해 기억을 거슬러 보았다. 설마.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거실 천장까지 닿는 트리가 이 집에 온 까닭은 하나밖에 없었다.

며칠 전, 해교는 연제와 집에서 영화를 보다가 반짝이는 전구로 가득한 트리 아래서 주인공이 선물을 푸는 장면을 보았다. 아무리 미국 영화라지만 집 안에 트리가 있다는 게 너무 멋져서 아무런 생각 없이 ‘우와…….’ 하고 감탄했었고…… 그 뒤로 이어진 연제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집에 트리 있으니까 좋아 보여요?〉

〈응. 되게 멋지다.〉

“…….”

억울했다. 정말 멋져서 멋지다고 대답한 것뿐이었는데. 12월도 아닌 7월에 대체 누가 집 안에 트리를 장식해 놓나 싶었지만 연제는 단단히 결심을 한 듯 트리를 꾸밀 장식품들과 밑동에 둘 선물 상자까지 준비해 둔 듯했다. 예쁘게 포장된 상자만 해도 이미 방 하나는 꽉 채울 것처럼 잔뜩 쌓여 트리 옆에 놓여 있었다. 지나가듯 하는 말마다 이렇게 반응하는 바람에 해교는 어떤 말도 허투루 던질 수가 없었다.

이래서 애 앞에서는 물도 못 마신다는 말이 나왔구나.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연제가 이런 식으로 나올 때마다 해교는 제 연인의 어린 정신연령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하고 또 실감했다.

멍하니 트리를 바라보던 해교가 몸을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물 한 컵을 따라 마시면서 냉장고 위에 자석으로 붙여 놓은 연제의 시간표를 확인했다. 해교의 아르바이트가 없는 금요일, 연제는 오후 3시에 수업이 끝난다. 지금은 어느덧 3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조금만 있으면 거실 인터폰에서 차량이 도착했다는 안내 음성이 나온 뒤 연제가 현관문을 열고 등장할 테다.

꽤나 무계획해 보이는 연제였지만 귀가 시간은 늘 칼 같았다. 자신이 없는 동안 집에서 목 빼고 기다릴 형을 위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나 뭐라나. 연제는 해교를 이 집에 들이면서 장난스레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주겠다고 던졌던 말을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키고 있었다.

덕분에 해교는 물을 마시거나 씻을 때 외에는 실로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지냈다. 연제가 있을 때에는 씻을 때조차 스스로 물을 묻힐 일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황제 같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연제가 해교에게 극진해진 데에는 자존심을 굽히고 눈치를 보면 볼수록 마음 약한 해교가 점점 더 그에게 마음을 열었던 과거에 까닭이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무려 3년 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의사 선생님의 집에 머무르고 있을 때 연제가 해교를 찾아왔었다. 비가 내리는 날, 어울리지 않게 흐르는 빗물을 몽땅 맞고 서서는 커다란 덩치를 하고선 잘못했다고 수십, 수백 번 중얼거렸다.

당연하게도 그런 사과의 말로 마음이 풀리지 않았지만 이어진 연제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지내고 있는 연제의 친구 도윤과 저를 진료해 주는 의사 선생님에 대한 숨겨진 진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같은 자신을 농락했다는 이야기가 붉은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거짓말. 안 믿을 거예요.〉

〈……그럴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확인해 봐요. 이걸 보고도 안 믿는 건 형 자유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해교에게 믿지 않을 수 없는 증거 자료까지 보여 준 연제가 당장 이 집에서 나가자고 권유해 왔다.

쏟아지는 비를 맞고서 몇 시간을 서 있어서일까. 눈을 떠 보니 꽤나 익숙한 우연제의 집이었다.

나가겠다고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내딛는 순간,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연제가 해교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늘 두르고 다니던 오만한 기색은 무색할 정도로 자취를 감추었고 두 무릎을 흔들림 없이 바닥에 고정한 채 연제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해교의 말만이 자신을 움직일 수 있다는 듯, 또다시 잘못했다는 말만 내내 되뇌었다.

잘못했다는 사과의 말은 얼마든지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 치 혀를 움직이는 정도야 멍청한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라면 눈 하나 깜짝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무릎을 꿇는 일은 논외였다. 거기에다 더해 덩치나 여태 보여 준 모습과 상반되는 눈물까지 터져 나왔다. 제발 가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 좀 들어 달라는 부탁이 너무나도 간곡해 해교의 마음이 흔들렸다. 믿고 의지하던 의사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 항상 부드러운 낯을 하고 있던 도윤의 실체……. 그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뭉쳐 충격으로 다가와 버겁기도 했다.

〈최소한 난 형 속이지는 않았어요, 정말. 개새끼 짓을 하긴 했지만 늘 마음 가는 대로 했고 진실했다고…….〉

갑작스레 알게 된 진실이 벅찬 와중에 연제의 말이 가슴 속 깊이 와닿았다. 앞으로도 속이지는 않겠다고, 정말 형이 싫다는 짓은 안 할 테니 지낼 곳이 생길 때까지만 이곳에 머무르라는 제안 아닌 부탁까지.

해교는 더는 연제가 무섭지 않았다. 물론 연제를 볼 때마다 껄끄럽고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일긴 했으나 그에 대한 두려움을 떨쳤다는 것은 꽤나 큰 변화였다. 그게 양가감정이라는 걸 알지 못한 해교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다 서서히 연제의 감정에 동화되어 갔다.

매일 밤, 사람에 대한 배신감에 자다가도 눈이 번쩍번쩍 떠질 때마다 같은 침대에서 잠들지는 않으면서 해교를 지켜보던 연제는 ‘시간이 약’이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을 주문처럼 되뇌며 해교를 도닥였다.

기실 존재하던 일이 마법처럼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심은 통했고, 해교는 물렀다. 그리고 맹목적인 애정이 고팠다.

300일을 넘게 되뇌던 간절한 주문이 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삐빅.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고 있는 사이, 현관문이 열리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났다.

“형!”

연제였다. 분명히 해교가 잠든 아침에 지겹도록 본 얼굴이겠건만 연제는 잠시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날 때면 이산가족이었던 양 늘 그를 갈급하게 찾아 댔다. 해교는 식탁 위에 컵을 놓고 천천히 돌아서 팔을 활짝 벌리고 서 있는 연제에게 파고들었다. 연제는 자면서 제법 뒤척였는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삐죽이 솟아 있는 머리꼭지를 쓰다듬어 주며 반색했다.

“오늘은 몇 시에 일어났어요? 배 안 고파?”

“응……. 이제 막. 근데 저 트리…….”

말을 시켜 놓고는 대답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입술부터 맞대 왔다. 혹여 잠을 깨울까 조심조심, 아주 가볍게 한쪽 뺨에만 입술을 대었다 떼고 나선 터라 종일 이 입술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막 물을 마신 탓에 아직도 촉촉한 입술을 살살 빨다가 혀를 밀어 넣고, 닿는 점막 모두에 제 흔적을 남기며 해교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기다란 손가락을 넣어 쓰다듬고 찬찬히 빗겨 주었다.

“으음…….”

꽤나 무더운 7월에도 연제는 늘 온몸이 서늘했다. 맞닿은 입술마저 서늘한 연제의 체온을 느끼며 해교가 눈을 감았다. 가냘픈 어깨를 쥐던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고 자연스레 해교를 소파 위로 눕히며 올라타려던 연제가 발끝에 닿는 상자를 느끼고 기울이던 몸을 멈추었다.

“아, 맞다.”

“……?”

개구진 표정을 지은 연제가 무수히 많은 상자 중 눈에 띄는 민트색 상자를 잡아 해교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이건……. 도저히 기억을 하지 않으려 해도 않을 수 없었다. 1년 전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랍시고 제가 차고 다니는 시계와 같은 시계를 준비해 손목에 채워 주면서 함께 내밀던 슬립 세트였다.

해괴망측한 망사 소재의 옷을 확인한 후, 도저히 입지 못하겠다는 말로 거절했었다. 그러곤 잔뜩 실망한 표정을 한 연제에게 다음 생일 때 입어 주겠다는 말을 면피용으로 던졌었는데. 대망의 ‘그’ 생일이 며칠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으…….”

“형. 기대할게요?”

어떻게든 상황을 회피하고파 느릿느릿 눈동자를 굴리는 해교를 눈치챈 연제가 돌아가는 뺨을 단단히 그러잡으며 눈을 마주쳤다. 한참을 입술만 짓씹던 해교는 푸욱 한숨을 내쉬며 죽상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연제가 양 뺨에 짓눌린 포동한 입술에 쪽, 가벼이 뽀뽀한 뒤 입꼬리를 바짝 끌어 올렸다. 함께 폭 패여 들어가는 볼우물이 매력적이었다.

* * *

[오후 13:07 지금 카운터에서 8시 방향 쪽 회색 후드티가 자꾸 쳐다보니까 가서 마크하세요.]

[카페점장

네. 오후 13:07]

슬쩍슬쩍 노교수의 눈치를 보던 연제가 책상 아래로 손을 내렸다. 그러곤 재빠르게 문자를 전송했다. 점장이 자신의 문자를 확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휴대폰 화면 속 회색 후드티를 입은 남자 앞에 익숙한 남자의 뒤태가 보였다. 화면 구석에서 바삐 움직이던 사랑스러운 제 연인은 자리를 이동해 카운터로 돌아왔다.

연제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빔프로젝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해교 씨, 그쪽 손님 응대는 내가 할 테니까 여기 와서 케이크 진열 좀 할래요? 포터필터 좀 닦아 주고.”

“네, 네.”

해교가 유산지 위에 조각 케이크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직 오전이라 케이크가 덜 나간 상태에도 불구하고 종종 점장은 갑작스레 케이크의 진열을 바꾸거나 기구들을 닦아 내라고 주문할 때가 있었다. 몇 번을 가르쳐도 나아지지 않는 커피 내리는 솜씨가 점장을 답답하게 해 해교는 늘 음료를 만드는 데에는 철저히 배제된 채였다.

그러니까, 해교가 어설프게 음료를 만드는 솜씨에도 불구하고 이 카페에 몇 달간 무사히 정착한 데에는 때아닌 혼잣말로부터 기인한 사건이 있었다.

마침 그날은 주말이었다. 연제의 허벅지 위에 기대 누워서 TV를 보는 해교와 무념무상으로 그와 TV 화면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는 연제가 나른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한참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해교는 카페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에 채널을 고정한 뒤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굴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 해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해 보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어지간히도 하고 싶었는지 한 번에 그치지 않는 해교의 혼잣말이 연제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우며 창밖을 보는 연제가 야속했던 해교가 그의 허벅지를 아프지 않게 꼬집곤, 콕 집어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칭얼대며 되뇌었다. 금세 제가 손댔던 허벅지에 사과하듯 기대 보드라운 뺨을 비비고 사르르, 녹아내릴 것만 같은 눈빛까지 보내 왔다.

말문이 막힌 연제는 쉽게 그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지은 죄가 있었기에 몇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해교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걸로 알 수 있듯, 연제는 해교에게 매우 약했다. 기존에 살던 아파트에서의 일이 그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을 이유로 이사까지 감행했으니.

따라서 연제에게는 그가 하고 싶다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막을 힘이 없었다.

〈아……. 카페 아르바이트요?〉

〈응. 재미있을 거 같아. 나도 뭔가 하고 싶어. 생활비도 벌고…….〉

〈……생활비 부족해요? 더 줄…….〉

〈아니. 그런 거 말고. 그냥……. 내가 돈 벌고 싶어.〉

연제가 집 안 청소를 하는 가사 도우미를 꼬박꼬박 부르고 있는 터라 집 안에서는 해교가 손댈 일도, 생산적으로 무엇을 할 일도 없긴 했다. 직접 생활비를 벌고 싶다는 말에 멍하니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한 연제는 그날로 밤을 새워 가며 시험공부에 돌입해 기어코 A+로 도배한 학점을 만들어 냈다. 그러곤 난데없이 이를 제 부모에게 때 이른 재산 증여 합의 조건으로 내놓았다.

연제의 부모는 초반엔 기막혀했으나 곧 태도를 바꾸었다. 연제가 여태껏 가져온 적 없는 성적으로 도배된 성적표를 제출할 따름만 아니라 제 나름대로 인생 계획까지 흡족하게 제출해 그들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아마도 심연에서부터 사고뭉치로 낙인찍은 아들이었기에 더더욱 감격스러웠을 터였다.

연제는 결국 집 근처에 매물로 나온 카페를 인수했다. 해교는 덕분에 때맞추어 구인 광고가 나온 집 근처 카페의 점장과 면접을 보았고, 다음 날부터 출근하라는 합격 통지도 받았다.

일손이 급해 보이는 카페는 아니었는데. 어쭙잖아 보인 것인지 풀타임 근무는 아니었으나 어쨌든 기대치 않았음에도 손쉽게 일자리를 구한 바람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주에 3회, 반나절 나가는 알바일지언정 간만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온 세상이 저의 재취업을 축복하는 것만 같았다. 제일 먼저 연제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연제야. 나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 합격했어.〉

〈정말? 잘됐네. 형이라면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시급이……. 마, 말도 안 되게 높아.〉

연제는 카페를 인수하면서 기존의 직원들을 그대로 껴안았고, 곧 면접을 보러 올 해교의 시급에 대해서는 점장과 사전 협의까지 마친 채였다. 또한 점장에게 해교 근처에 그 누구도 껄떡대지 않게 늘 신경 쓸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매출 따위보다 그게 중요했다.

그러고도 불안해 수업 중간중간마다 가게의 CCTV를 확인하며 해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은 연제의 일과 중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연제의 감시가 하등 쓸모없는 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종종 성별을 가리지 않는 손님들이 해교에게 추근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연제는 혹여 해교가 여지를 줄까 걱정 가득한 눈을 빛내며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늘도…… 씨발.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수업을 그만두고 뛰어나가 화면에 보이던 새끼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졸업 때까지의 학점을 이른 재산 증여의 도구로 삼은 연제로서는 요원한 일이었다.

슬쩍 다시 확인한 휴대폰 화면 속, 해교가 와락 눈살을 구기곤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나는 모습에 연제의 일그러졌던 표정이 간신히 제자리를 잡아 갔다.

* * *

“점장님, 저 잠시만 화장실 좀…….”

“예, 다녀오세요.”

아르바이트에 나올 때마다 출퇴근을 전담 마크하고 있는 연제 때문에 해교가 그의 생일 선물을 살 시간은 지금뿐이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는 모두 그런 건지, 점장은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관여하고 신경을 써서 잠시 친구 생일 선물을 사러 나가겠다고 했다간 따라붙을 기세라 간신히 거짓말을 하고 나섰다.

해교는 건물 밖에 화장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카페 문쪽을 향해 스윽, 일별한 뒤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며칠 전, 연제는 생일을 맞아 저가 크리스마스에 선물했던 속옷을 입어 달라고 했었으나……. 사람이 염치가 있지 연제가 제게 해 주는 게 몇 가지인데 그것만으로 입을 닦기엔 양심에 찔렸다.

집에만 있기 답답하다는 핑계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였으나 사실 해교는 몇 번이나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한 연제의 생일을 이번에도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다.

케이크는 집에 미리 배달시켜 가져다 놓았으니 남은 건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란제리를 입는 것과 선물을 전달하는 거였다. 오늘을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몇 번이나 상점을 방문하고 골라 두어 선물은 결제만 남겨 둔 채였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금세 당도한 가게의 문을 여는 해교의 얼굴이 터질 듯 불그스름했다.

잠시 후, 매장을 나온 해교는 바지 주머니에 선물을 구겨 넣곤 상기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카페가 번화가에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정도면 완벽 범죄였다.

“조금 늦었네요?”

“아, 화, 화장실에 사람이 많아서.”

“그랬구나. 얼른 들어와요.”

점장은 하던 행동을 멈추고 종종 저를 바라보곤 했다. 내가 빤질거리게 생겼나……. 이래 봬도 청소든 뭐든 열심히 하는데. 하긴, 오늘은 화장실을 핑계 삼아 5분 정도 시간이 비긴 했다. 내일은 10분 더 먼저 오면 되겠지. 해교는 왠지 모를 점장의 시선을 받아 내며 아르바이트를 이어 나갔다.

“해교 형, 혹시 금요일에 시간 괜찮아요?”

“아? 왜요?”

“제가 친구랑 급한 약속이 있어서 그날 형이 대타 해 줄 수 있으실까 하고요.”

“음…….”

금요일이면 연제가 일찍 수업을 끝마치고 집에 오는 날이긴 하지만 뭐, 하루 정도인데 별 탈 없을 듯했다.

“괜찮을 것 같…….”

“안 돼.”

해교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점장이 언성을 높여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분명히 로스팅실에 들어가셨던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 대화를 듣고 계셨지. 놀란 해교와 상훈이 동시에 점장을 바라보았다. 늘 서글서글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웬일로 인상을 찌푸리고 서 있었다.

“상훈이 너, 성실히 근무한다는 말에 뽑아 놨는데 네 멋대로 대타를 구해?”

“아, 저, 점장님…….”

“알바생들끼리 멋대로 타임 테이블 섞어 버리는 거, 나 아주 싫어해. 너희 근무 기록 정리하는 것도 힘들고, 아무튼 친구랑 약속은 알바 끝나고로 미루는 게 좋겠다. 알겠니?”

“네……. 죄송합니다.”

말주변이 없는 해교는 상훈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한마디도 벙긋하지 못한 채 덩달아 기가 죽어선 점장에게 꾸벅, 인사하고 뒤를 돌았다. 탈의실에서 앞치마를 벗고 소지품을 챙기는 와중에는 언제 도착했는지 연제에게서 빨리 나오라는 문자가 도착해 상훈을 가엾게 여기는 생각도 길게 할 수 없었다.

“오늘은 뭐 했어요?”

연제가 핸들에 팔을 겹쳐 올린 채 물끄러미 해교를 바라보며 물어 왔다. 겹쳐진 왼쪽 팔목에는 해교가 차고 있는 시계와 같은 제품이 둘러져 있었다.

짙은 푸른빛의 판에 메탈 스트랩이 연결되어 있는 시계는 현재 타고 있는 차 1대 값에 육박하는 가격이었으나 이를 알 리 없는 해교는 종종 카페에서 손을 씻을 때 세면대 위에 시계를 풀어 놓은 채 깜빡하고 뒤돌아서기도 했다. 가격을 안다면 기함하고 쓰러질 일이었다.

“음. 오늘은 할머니 손님이 오셔서 메뉴판을 고민하면서 보시는데 어떤 입맛이신지 감이 안 잡히는 거야. 그래서 달달한 꿀차 추천해 드렸더니 아메리카노 달라고 꼭 집어 말씀하셔서 당황스러웠어. ……그리고…….”

미주알고주알, 이미 연제는 CCTV 화면과 점장의 보고를 통해 훤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해교의 입을 통해 다시 듣는 시간이 좋았다. 연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리액션을 해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 내놓으니 불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생동감 있는 해교의 모습을 볼 때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불안감이었다. 저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해교가 반나절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운전하다 보니 차는 금세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습관처럼 먼저 내려 해교가 앉은 조수석 차 문을 열어 주던 연제는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빵빵한 해교의 바지 주머니를 마주했다. 내리깐 눈동자에 동요가 일었다. 대강 모든 일이 짐작되는 순간이었다.

곧 생일인 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 것은 고마웠으나……. 일순 저걸 사기 위해 잠시 나갔던 순간을 알지 못한 점장과 자신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그새 누구라도 만나 홀연히 사라져 버릴까 조바심이 일어 자꾸만 불안해졌다. 역시 매장 안을 싹 밀고 화장실을 안으로 설치해 뒀어야 했는데. 조만간 리뉴얼을 핑계로 인테리어를 전면으로 손봐야겠단 즉흥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왜 그래?”

“아, 아니에요. 들어가요.”

저보다 한발 앞서 기다리고 있는 해교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연제를 재촉했다. 여전히 바지 한쪽 주머니는 부풀어 있었다. 연제는 곧 굳혔던 표정을 풀고 저도 모르게 내비쳤던 날 선 기색을 얼굴에서 지워 냈다. 방실대는 웃음을 머금은 채 부리나케 그에게 다가섰다.

내일 점장에게 따로 연락을 해야겠다. 이런 식이면 월급을 맞춰 줄 수가 없지.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집으로 돌아와서 미뤄 둔 트리를 장식하자는 연제의 제안에 해교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전구를 두르고 코튼볼을 얹는 등, 제 맘대로 장식을 하다 보니 은근히 재미있었다. 해교의 팔이 닿지 않는 부분은 연제가 손을 뻗어 그의 지시대로 원하는 장식을 달아 주었고, 마지막으로 트리 꼭대기를 장식할 커다란 별은 굳이 올라타지 않겠다는 해교를 억지로 자신의 어깨에 앉게 한 뒤 완성하게 도왔다.

“머리 조심해요. 혹시 부딪힐 수 있으니까.”

“응. 천천히 일어나. 너도 조심해.”

혹여 해교의 정수리가 천장에 닿을까 걱정이 된 연제가 조심조심 종아리를 펴며 높이를 재었다. 너른 어깨에 하반신을 맡긴 채 목말을 탄 해교가 커다란 황금색 별을 쥐어다 제 손으로 직접 트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마지막 장식까지 마치자 어디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화려한 트리가 완성이 되었다.

준비해 둔 장식품을 다 쓰고 나서 집 안에 들어오는 모든 빛을 차단한 뒤 트리에 감긴 전구를 켰다. 반짝반짝, 트리를 감싼 모든 곳에서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빛이 나오는 장면이 근사했다.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따스한 빛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해교는 입을 벌리고 바라보았다.

“고마워.”

“뭐가요?”

“다.”

진심으로. 아무런 언질 없이 보았을 때는 당황스러운 트리였으나 제 말을 하나하나 허투루 듣지 않는 연제가 준비한 결과물이었다. 감히 욕심내 본 적 없는 것들이지만 막상 가지니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기쁘고, 행복했다.

해교는 이제는 연제가 더 이상 밤마다 얕게 잠이 든 채로 잘못했다고 울지 않았으면 했다. 괜히 입 밖으로 끄집어냈다간 자각하지 못했던 연제에게 죄책감을 안겨다 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차마 말하지는 못했지만.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눈꺼풀을 빠르게 끔뻑이는 해교에게 한 발 가까이 다가간 연제가 그를 꼬옥 껴안았다. 정말 제 모든 걸 내어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 * *

“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나? 밥이 무슨 개밥 수준으로 떡져 있네. 이걸 어떻게 먹어. 뭐라도 시켜 먹을까요, 형.”

평소 윤기가 흐르던 밥과 결을 달리하는 밥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맛깔나게 조리되어 정갈히 담겨야 할 반찬들도 어딘가 엉성한 모습이었고 늘 가지런하게 놓여 있던 수저마저도 조금 삐뚤었다. 진하게 우려낸 국이 담겨 있어야 할 그릇엔 테이블 위를 기어 나와 덮을 것처럼 빠글거리는 미역이 소복하게 담겨 있었다.

연제는 혹시 제 부모가 가사 도우미의 월급을 제때 주지 않은 건 아닌가, 의심까지 했다. 밥 상태를 보면 꽤나 합리적인 의심이 아닐 수 없었다. 카페를 인수한 걸 들켰나. 카페 사장이니 이제 알아서 밥벌이해 살라는 건 아니겠지. 연제가 연이어 떠오르는 생각에 말을 멈추었을 때였다.

“……내가 한 거야.”

“어?”

잠자코 있던 해교가 입술을 열고선 경직된 표정으로 겨우겨우 말을 이어 갔다. 한 번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연제의 표정이 점차 미묘하게 변해 갔다.

“내가, ……내가 한 거야. 그, 그냥…… 너 생일 밥 해 주고 싶어서……. 미안. 밥이 좀 많이 맛없어 보이지. 내가 괜히 건드려서. 아, 아주머니는 잘못하신 거 없어. 그냥 내가 멋대로 퇴근하시라고 한 거야.”

“…….”

“…….”

머쓱했다. 금세 열이 몰린 눈가가 눈에 띄게 발개졌다. 일순 눈망울에 물기가 차오르고 얼굴은 홍조를 띠었다. 잔뜩 소심해진 어깨가 좁아 들며 추욱 처지기까지 했다.

그제야 연제는 테이블 위에 차려진 조금은 당황스러운 음식들이 해교의 손에서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실제 개밥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역시 소화가 잘되려면 밥이 좀 질어야지. 형 덕에 생일 맞아서 소화 진짜 잘되겠다. 지금 보니까 미역국도 진짜 맛있어 보이는데 형이 한 거죠? 와. 내가 이런 생일상도 다 받아 보고. 우연제 출세했네.”

다짜고짜 힐난하던 태도를 바꾸어 무조건적인 찬양을 시작한 연제는 지옥에서 온 듯한 색깔을 머금은 미역국을 급히 한 수저 떴다. 예상한 대로 당혹스러운 맛이었지만 이를 숨긴 채 정말 맛있다는 듯한 표정과 빠르게 움직이는 숟가락에 해교가 뒤늦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독 엉성해 보이는 음식마다 쏙쏙 골라 다 먹은 연제 덕에 생일 기념으로 준비한 식사는 금세 동이 났다. 해교는 연제의 생일을 기념하는 노래를 작은 목소리로 불러 준 뒤, 서서히 그의 눈치를 보며 적당한 때에 제가 준비한 생일 선물을 건네려 했다. 하지만 해교보다 연제가 빨랐다. 얼른 그동안 기다린 란제리를 입고 등장해 달라고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간 못 들은 척 버티던 해교는 어쩔 수 없이 연제가 들이미는 란제리를 쥐고 침실로 향했다. 죽어도 그의 앞에서 입을 자신은 없었던 까닭이었다.

“으…… 연제……야. 마, 맞게 입은 건지 모르겠어.”

“…….”

씨팔. 골이 다 띵할 정도였다. 남자에게 여자 속옷을 입히는 취미 따위 없었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랍시고 란제리를 건네준 것 또한 장난에 가까웠다. 평생 여체에 관심을 가져 본 적 없던 만큼 이걸 입은 해교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노리고 준비한 거였는데. 그랬는데…….

지나치게 야릇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은 연제가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하얀 망사 레이스 소재로 만들어진 슬립은 입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반투명해 분홍색 젖꼭지가 볼록 도드라져 있었고 반쯤 일어난 조그마한 자지의 형체도 전혀 가리지 못했다.

얇은 망사 사이사이에 투명한 살결과 색이 짙어 음란해 보이는 유륜이 희끗희끗 모습을 드러냈다.

“같이 들어 있던 팬티도 입었어요?”

“…….”

아니라는 듯,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지만 연제는 확인하듯 슬립 끄트머리를 거머쥐고 들추었다. 미처 연제의 손길을 붙잡지 못한 해교의 얼굴이 한층 더 후끈 달아올랐다.

“입었네.”

연제가 씨익, 시원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리자 특유의 볼우물이 패며 만면에 청량한 미소가 떠올랐다. 해교는 잠시 그 미소에 홀린 듯 입을 벌리고 쳐다보다가 이내 제 꼴을 인지하고 슬립 끄트머리를 붙잡아 어떻게든 뭔가를 가려 보려 의미 없는 몸짓을 이어 갔다.

“생일인데 가리면 어떡해요. 반년을 기다린 건데.”

“아, 알았어…….”

연제의 말에 해교가 입 안 살을 짓이기며 버둥대던 손을 모두 물렸다. 그러자 반쯤 발기했던 연제의 자지가 단숨에 곤두서며 꺼떡이기 시작하였다. 연제는 붉은 혀를 꺼내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아랫도리를 감싸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몽땅 벗었다.

“형은 벗으면 안 되죠. 입은 걸 보고 싶은 건데. 내가 이걸 반년이나 기다렸다니까?”

해교가 연제를 따라 치욕스러운 속옷을 벗으려 하자 연제가 이를 단호히 저지했다. 여전히 한 손으로 슬립을 들춘 채였다.

손바닥만 한 천으로 만들어진 레이스 팬티는 앞부분은 조그만 역삼각형 모양을 한 천으로 덮여 있었고, 애널 인근은 자지와 보지를 덮은 천보다 훨씬 면적이 좁은 데다가 돌돌 말리기까지 한 천이 간신히 허리에 얇게 이어져 연결되어 있었다. 꼭 말로만 듣던 티 팬티 같았다.

말랑거리는 자지가 살짝 발기한 탓에 레이스 천이 앞으로 팽팽히 당겨져 엉덩이 부근이 죄어 왔다. 봉긋한 엉덩이 골 사이, 돌돌 말린 얇은 천에 짓눌리는 뒷보지가 근지러웠다. 주름진 구멍 어귀가 퉁퉁 부어오른 채 빠끔거려 은근히 흥분한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속옷을 입은 해교를 상상하며 고르긴 했지만 실제로 입혀 보니 더더욱 꼴렸다.

“그…… 그리고…….”

“응? 왜 그래요.”

“이거……. 생일 축하해.”

해교가 쭈뼛대며 포장된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남들의 몇 배에 해당하는 시급을 모아 준비한 선물이었다. 어차피 제 돈을 주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연제는 해교의 조그마한 손바닥 위에 올라간 은빛 상자를 보자 벅찬 숨이 터졌다. 아까 주머니에 들어가 있을 때 짐작하던 마음과는 사뭇 달랐다.

* * *

연제는 촛불을 불고 난 케이크를 거실 테이블 구석으로 밀어 놓은 뒤 해교를 그 위에 눕혔다. 원체 대형 테이블인데다 높이도 낮아 해교의 상체에서부터 허벅지까지 대리석 위에 얌전히 놓이게 되었다. 잠자리 날개처럼 훤히 속이 비치는 슬립은 이미 배꼽 위로 말려 올라간 채였다.

벗은 것과 다름없는 레이스 팬티가 감싼 음부를 조용히 바라보던 연제가 까슬한 레이스 천을 입술로 깨물고 옆으로 젖혔다. 털 한 올 없는 민둥하고 새하얀 보지가 드러나며 연제를 반겼다. 후우……. 흥분한 숨을 내쉬자 젖은 숨결이 촉촉한 보지 위로 마구 쏟아졌다.

이로 잘근잘근, 여린 보짓살을 씹고 혀로 그 위를 덮어 내리며 간질였다. 붉은 살덩이로 통통한 보지를 꾸욱 짓뭉갤 때마다 가느다란 허리가 파들파들 떨려 왔다. 몇 번 혀로 문지르지 않았는데도 자극이 컸는지 끈적끈적한 애액이 길게 늘어지며 보지와 혀 사이에 가느다란 거미줄 같은 실이 생겨났다.

연제가 이를 놓치지 않고 혀로 천을 고정한 뒤 질척한 보짓물을 쭈웁, 거센 압력을 주며 빨아들였다. 으읏, 으…… 해교가 괴로운 듯 고개를 도리질하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연제는 옆으로 젖혀진 레이스를 이로 물고 도로 가져온 뒤 턱을 살짝 들어 천을 당겼다. 팽팽하게 천이 당겨지면서 보드라운 보짓살이 압박되었다. 기다란 틈에 걸린 천을 중심으로 보지가 정확히 두 쪽으로 갈라졌다. 집요하리만치 반복되는 자극에 보짓살이 터질 것처럼 단숨에 달아올랐다.

“아앙! 읏!”

여전히 천을 문 채로 몇 번 고갯짓을 하였다. 턱이 오르내릴 때마다 보지에 주어지는 음란한 압박감에 해교가 아랫배에 힘을 준 채 점차 엉덩이를 위로 들었다. 어느 순간 보지 중앙에 걸린 천이 양 조갯살을 가르며 위아래를 오르내렸다.

흐으, 우응……. 얇은 천이 보짓살을 비비면서 펄떡거릴 때마다 음탕한 물에 적셔졌다. 하얬던 레이스 절반이 회색으로 축축하게 물들자 마침내 연제는 이 사이에 물었던 천을 놓아주었다. 입혀 놓으니 예쁘긴 했지만 어느샌가 내려와 하늘거리며 코끝을 간질이는 슬립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연제의 입술에서 물기 머금은 천이 떨어져 나가자 질척이는 애액이 늘어지다 공중에서 끊겼다.

“조, 조금만 더 세게…….”

“뭘…….”

“보지, 읏…… 보지이, 때려 줘…….”

해교가 보지 압박을 밝히는 건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했다. 다만 과거에는 자신의 취향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흥분했다면 이제는 연제와 함께 여러 해를 보내면서 가진 잠자리들을 토대로 명확히 제 취향을 알고, 말할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른 것이었다. 해교가 보지를 때려 달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절대 보지를 때리려 들지 않는 연제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트인 말이긴 했지만.

“하여간.”

철썩, 해교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제가 입꼬리를 비틀며 넓은 손바닥으로 조그만 보지 둔덕을 후려쳤다. 헤엑……! 아, 아앙! 해교가 엉덩이를 흔들며 자지러졌다. 최근 들어선 제법 매서운 스팽킹도 황홀하게 느껴질 정도로 보지에 압박을 가하는 순간이 좋았다.

보지를 얻어맞을 때면 허벅지 근육이 빠듯하게 뭉치면서 야릇한 전율이 일었는데, 그 순간이면 모든 걸 놓고 싶을 정도로 쾌감이 들끓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눈가에 눈물까지 찔끔 새 울먹거리는 신음이 흘렀다. 언제 맞아도 섹스 도중에 보지가 후려쳐지는 감각은 소름 끼치게 좋았다. 예전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때려 줬는데, 요즘에는 이렇게 잔뜩 열이 올라 부탁해야만 한 대씩 갈겨 주어 조금 얄미웠다. 해교는 잔뜩 느끼는 와중에도 연제를 살짝 흘겨보았다.

보지를 얻어맞자마자 분비되는 애액이 늘면서 한결 더 많은 양의 보짓물이 왈칵왈칵 사타구니를 타고 흘렀다. 가느다란 종아리를 타고 흘러내리던 애액은 곧 발목을 지나 바닥까지 뚜욱, 흘러내렸다. 해교는 본능적으로 허리를 살짝 휘어 올린 채로 엉덩이를 살살 흔들었다. 봉긋한 살덩이 2개가 철썩이며 뒤흔들리고 귀여운 자지는 배꼽에 닿을 듯했다.

“아……. 형, 진짜 사람 미치게 하는 건 타고난 것 같아.”

연제는 이럴 때면 예전처럼 센 단어를 퍼붓고 과격한 섹스를 하고 싶어졌지만 한번 테스트하듯 내뱉어 봤다가 금세 해교의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보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빌고, 또 빈 전력이 있어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그저 마음속으로만 온갖 상스러운 단어를 꺼내고, 유린하는 데에서 만족해야만 했다. 하루하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행복감으로 가득했지만 딱 한 가지, 이렇게 자제해야 할 때는 아주 조금 아쉬웠다.

“보지 맞는 걸 이렇게 좋아해서 어떡해. 형은 이제 평생 나한테만 박혀야겠다, 그치? 하아, 나 아니면 누가 형 취향을 맞춰 줘요.”

“아읏, 흐, 으응…….”

“아니야?”

연제가 다시는 보지를 때려 주지 않을 것처럼 보지 위를 덮은 손바닥을 떼어 내자 해교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으흣, 마, 마쟈아!”

그러면 말 안 해도 알아서 때려 주든가. 때려 주지 않는 연제가 미워 째려보듯 바라본 해교가 귀여워 푸스스, 웃음 지은 연제가 고개를 슬립 위로 내렸다. 아까부터 투명한 슬립에 투과되어 보이는 분홍 젖꼭지가 탐스러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슬립을 입고 등장했을 때부터 발딱 서 있던 젖꼭지는 점차 달구어지는 성감에 한층 더 도드라진 채로 발발 떨리고 있었다. 쪼옥, 연제의 부드러운 입술이 천 위를 감싸자마자 전류라도 내리친 듯 저릿한 감각이 젖가슴을 관통했다. 볼록 솟아난 알갱이가 질척한 살덩이에 굴려질 때마다 허리가 튀었다.

마침내 거칠한 천을 지나쳐 꼿꼿하게 발기하고 끝이 휜 자지가 물기 어린 살점을 갈랐다. 파고든 굵직한 귀두에 짓눌린 얇은 천은 금세 옆으로 밀려났고, 다물렸던 구멍이 서서히 확장되며 둥근 선단에 달라붙었다. 뜨거운 기둥에 의해 아래가 벌어지는 느낌이 선연했다.

해교는 활짝 벌린 허벅지를 오므리며 연제의 하반신을 감아 왔다. 꼭 제 보지가 자지에 하는 것처럼.

“하으, 으응…….”

질 안에 온전히 담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지의 생김새 덕에 연제는 언제든, 어떤 체위로든 금세 해교가 자지러지는 부위를 푹, 푹 쑤시고 자극할 수 있었다. 해교의 보지에 꼭 맞춘 듯한 자지였다.

“아, 아, 아앙! 히이……!”

굵다란 기둥이 밀려오자 좁은 질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좆 모양에 맞추어 내벽을 꿀렁였다. 변형된 올록볼록한 질벽은 자지가 움직일 때마다 굽이굽이 모양을 변형하면서 오물거렸다. 쫀득한 살점을 벌리고 들어갔다가 쓰윽 빠져나오자 붉은 속살이 탱글탱글, 잘게 떨렸다. 어느덧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을 쑥쑥, 기름칠한 듯 통과하고 오가는 자지에 점점 더 보지 안이 끓어올랐다.

팬티를 벗기지도 않은 채 씹질을 하느라 보짓살 끄트머리와 사타구니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레이스 천이 액에 젖어 살갗에 찰싹 들러붙었다. 달뜬 눈으로 이를 지켜보던 연제는 문득 뒷보지 사정이 궁금해졌다.

아까부터 얇은 천에 눌리고 쓸려 땡땡 부어오른 아랫구멍은 반투명한 점액질로 범벅이었다. 특히나 천에 계속해서 쓸렸던 부위는 사선 모양으로 짙은 선홍빛 자국까지 남은 채였다.

연제는 여태 말린 레이스에 짓눌린 채인 뒷보지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주름을 쓰다듬었다. 은근하게 구멍 어귀를 쓰다듬는 손길에 연분홍빛 뒷보지가 음탕하게 벌름거렸다. 중지를 벌렁거리는 구멍 안으로 쯔윽, 쑤셔 넣자 구멍은 곧장 오그라들며 쫀득하게 손가락을 조여 왔다. 보짓물과 섞인 점액질이 진득하게 엉겨 붙는 느낌에 연제가 절로 미간을 구겼다. 얼른 보지를 마저 따먹고 뒷보지를 따먹어야겠다. 이미 보지에 좆질을 하고 있는데도 아찔한 유혹이었다.

“하아. 미치겠네.”

이대로 허리 짓의 피치를 올려 가며 좆질을 하려던 순간이었다. 자세를 잡기 위해 잠시 물러난 사이, 아직 맛도 보지 못한 생일 케이크가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간 케이크를 바라보던 연제가 한 손으론 테이블을 짚어 균형을 잡고 나머지 손을 뻗어 검지로 풍성한 하얀색 크림을 푸욱, 떴다. 손가락에 진득한 크림이 왕창 묻어났다.

“읏……. 뭐하는 거야…….”

열기에 녹아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해교가 연제를 바라보았다. 섹스 도중에 느닷없이 케이크라니. 평소 연제가 하는 짓을 생각해선 도저히 케이크를 맛보기 위해 뜬 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먹을 거 입맛대로 토핑하는 거예요.”

태연하게 대답한 연제는 질펀하게 젖은 기다란 틈 위를 크림으로 미장질하듯 처덕처덕 덮었다. 빠끔거리는 보짓구멍 때문에 꼼꼼하게 발린 크림이 오르내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보지의 열기에 점점 더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크림을 잠시 응시하던 연제가 단숨에 음부 전체를 제 입으로 덮었다. 달콤한 생크림과 더불어 시큼한 보짓물이 혀에 엉겨 녹아내렸다. 혀가 마비될 것 같았다. 다디달았다.

“아, 아, 흐읏! 아아앙!”

“하아……. 후, 존나 씨ㅂ…….”

이성의 끈이 끊길 만큼 달뜬 흥분에 연제가 나지막이 욕설을 짓씹었다. 그러다 아래가 조용해져 하던 말을 끊고 해교를 내려다보았다. 씨발. 또 실수했다. 헛숨을 들이킨 연제가 초조한 듯 입술을 마구 깨물었다.

“……흣. ……돼.”

해교가 가느다랗게 소리 내어 말했다. 당황한 연제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형, 미안. 잘못 했…….”

“해도, 돼.”

여전히 해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연제는 모든 행위를 멈춘 채 중간중간 끊어지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답답했던 해교가 눈을 꼭 감고 소리치듯 말했다.

“……욕, 해도 돼애.”

“갑자기? 왜……. 내가 실수해서 기분 나빠서 그런 거죠. 신경 쓴다고 그랬는데 흥분해서, 잘못 했…….”

“아니, 흐으……. 욕, 해도 된다구. 더, 더어 해도 돼애.”

“그러니까 왜……. 전에는 싫어했었잖아. 울 뻔한 거 같아서 자제하고 있었어요.”

흥분했던 낯을 금세 지우곤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연제가 대답했다. 아무리 지금 이성을 잃을 만큼 흥분해 있었지만 앞으로의 섹스에 있어서 지금 해교가 내뱉는 말들을 대강 듣고 넘길 순 없었다. 더 거칠게 해도 된다니. 너무 본인의 취향인 말이라 앞이 어찔했다.

“거…… 걸레는 싫어. 그거 말곤…… 괜찮아. 해, 해 줘어.”

말을 마친 해교가 조르는 듯 엉덩이를 흔들었다. 파르르, 안달 난 하얀 볼기가 덩어리지는 모습에 연제가 아랫입술을 혀로 한 번 핥아 냈다. 그러곤 크림으로 뒤범벅된 보지 안에 자지를 박아 넣는 순간을 상상하며 뇌까렸다.

“후으, 보지 조이는 맛이, 씨발.”

“으응, 흣!”

시험 삼아 던진 말에 해교가 아랑곳 않고 쫀득하게 보지를 조여 왔다. 아직 자지를 쑤셔주지 않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보짓살이 오므라드는 것이 확연했다. 흥분한 듯 잔뜩 부푼 가슴을 내밀며 양손으로 꼬집듯 쥐어짜기까지 해 댔다. 연제가 그런 해교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친 채 거칠게 유두를 꾹꾹 짓누르고는 한층 더 짙어진 욕설을 내뱉었다.

“아…… 젖 쥐어짜는 거 봐. 자지에 환장하는 년이 하루 종일 보지 구멍만 벌렁댔겠네.”

짜악!

쫀득한 살점을 손바닥으로 갈기는 소리가 났다. 아아, 조아아……. 단숨에 보짓살이 화끈해지는 감각과 함께 흥분한 해교가 엉덩이를 들고 흔들었다. 공중에 뜬 허리가 의지를 배반한 채 제멋대로 뒤틀렸다.

달뜬 몸서리에 그만 팔꿈치가 아직 맛도 못 본 케이크 시트를 꾸욱 눌러 망가뜨렸지만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버거운 쾌감이 휘몰아쳤다.

“아흣, 응……!”

“하아, 안 그래요?”

“마, 맞아. 으응, 흣…… 보지에…… 흐으, 자지 담고 싶어서어…….”

간만에 하는 음담패설에 연제의 자지가 한결 더 단단해져 갔다. 연제가 둔중한 살덩이를 붙들고 턱, 턱 크림이 녹아내린 보지 입구를 문질렀다. 뜨끈한 귀두에 남은 생크림이 녹아내리며 귀두가 번들거렸다. 허리에 힘을 주고 체중을 실어 짓누르면서 서서히 좁다란 구멍을 재차 파헤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쾌감으로 보지가 확 조여들며 연제의 자지를 조물조물 씹어 댔다. 적나라할 만큼 확연한 반응이었다. 거칠게 쏟아지는 말과 행동과 달리 연제의 눈동자는 조심스러운 배려로 가득 차 있어 평소보다 더욱더 크게 흥분감이 일었다.

“아, 읏. 형. 어때요.”

“으응, ……아. 기분, 하읏, 조아…….”

“하아, 씨발. 이 보지는 내 거야. 다른 데 보지 돌리기만 해 봐요. 씹. 자지로 보지 허벌창 내 버릴 거니까. 후우, 하아.”

“흐으, 으, 아, 아, 응…….”

“형. 대답, 안 해요?”

연제의 이마에 또렷한 핏줄이 돋아났다. 그가 사정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허리 짓을 시작하기 직전, 해교가 연제를 껴안은 채 속삭였다. 목덜미를 감은 가녀린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읏, 응…… 마, 맞아. 이 보지는…… 우연제 거야. 하읏!”

퍽퍽, 거센 허리 짓마다 단단한 귀두가 내벽을 때리고 음낭이 눌린 조갯살을 쳐 댔다. 철벅철벅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보짓물이 뜨끈하고 보짓살은 쫄깃했다. 연제는 이미 헐떡거리는 자지로 열심히 보지를 먹고 있으면서도 부족함을 느꼈다. 이대로 가녀린 몸을 부서뜨릴 듯 몰아붙이고 씹어 먹기에 이르고 싶은 폭력적인 욕구가 들이쳤다.

더는 참아 낼 재간이 없었다. 재빠르게 허리를 치대는 연제 때문에 충격적인 자극이 펑펑 터졌다. 울퉁불퉁하게 일어난 핏줄이 득득 질벽 안을 긁어내리면서 빠져나올 때마다 무섭게 차오르는 쾌감에 시야가 순식간에 좁아 들고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급박해진 추삽질에 맞추어 조그만 좆이 연신 묽은 점성의 물을 후드득 쏘아 댔다.

“아, 아…….”

“하으……. 씨발. 먼저 가면 어떡, 허으, 해요.”

해교가 절정에 오르면서 보지의 조임은 더욱 거세졌다. 푸욱 익은 보짓살이 톡톡 튀어 오르며 마구잡이로 자지 표피를 잡아챘다. 흡착해서 주물러 댈 때마다 딱딱한 자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제멋대로 쫀득하게 들러붙는 점막 때문에 연제의 허벅지가 심을 세우고 굳어 갔다.

“이…… 씹.”

해교의 체액을 물씬 맞은 연제의 허리가 잘게 떨리면서 팽창한 귀두 끝, 요도구가 터졌다. 뜨끈한 보지 안에 뜨거운 좆물이 사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달아오른 보지는 쏘아지는 좆물을 게걸스레 받아먹으면서도 자지를 끊어 낼 것처럼 쫀쫀하게 조여 왔다. 마치 좆 안에 들이찬 희멀건 액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뽑아 먹을 듯 부풀어 오른 채로 요동치며 압박감을 주었다.

“하아…….”

“흐, 으응…….”

해교의 몸 위로 무너져 내린 연제가 그를 껴안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 보지 안에 꽂혀 있는 자지에서 움찔움찔, 맥동하는 질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연제가 여운에 파들파들 떨리는 해교의 몸을 두고 제 상체를 일으키자 축축해진 보지 사이에서 흘러내린 좆물이 후드득, 테이블 위에 고여 질펀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방금 해교가 싸지른 묽은 점액질 역시 굵은 줄기로 흘러내려 합쳐졌다. 온갖 씹물에 젖어 들어 흥건하게 적셔진 슬립이 무겁게 내려앉은 상반신이 아찔했다.

어느덧 높은 빌딩 숲 사이로 태양이 침잠하며 타오르듯 붉은 노을이 내려앉았다. 창을 통해 들이치는 붉은 빛이 해교의 몸 전체를 덮어 내렸다. 어떤 빛깔이든 쉽게 흡수하는 새하얀 피부 위로 불그스름한 음영이 지기 시작했다. 거칠게 사타구니를 맞댄 탓에 허연 볼기에 남은 벌건 자국 위로 더 붉은 노을 빛이 아로새겨졌다.

“형. 내 생일이라서 일부러 맞춰 준 거죠. 고마워요. 이제 다음부턴 형한테 맞출게요.”

가쁜 호흡을 고르는 해교가 사랑스러운 듯 연제가 달아오른 뺨에 짧게 쪽, 입술을 댔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입술이 살포시 뺨을 스쳤으나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가득 담은 키스였다. 그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서로에게 전해지는 달콤한 접촉이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시, 싫지 않았어. 다.”

말을 마치고 해교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예고 없이 상반신을 일으키자 찰박, 고여 있던 말간 체액 웅덩이에서 물방울이 튀어 오르며 사방으로 번졌다. 구석으로 치워 두었던 케이크 끄트머리까지 닿아 생크림을 녹였다. 아마도…… 다시 사러 나가야 할 듯했다.

슬립을 걸친 하얀 몸 곳곳에 씹물이 타고 흐르고 연제가 낸 붉은 울혈과 자국들이 빼곡했다. 탱글탱글,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탄력 있는 엉덩이 사이에 걸쳐진 끈처럼 얇은 팬티가 슬쩍 드러나는 모습이 야시시했다.

한동안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해교를 가만히 살펴보던 연제가 아, 하고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개구지게 웃었다. 양 뺨이 당장에라도 터질 듯 새빨간 모습이 부끄러워 자리를 피한 듯했다.

아아, 어쩌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형을 만나게 되었을까. 섹스 취향까지 자신과 찰떡이니 사랑하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었다.

해교가 살짝 뒤를 돌아보며 겸연쩍은 듯한 표정으로 우물쭈물대었다. 그러다 한껏 용기 낸 말을 입에 담았다.

“다음엔…… 뒷보지도 때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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