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필로그 (15/18)

“가리지 말고 이것도 먹어야 많이 크지.”

접시 위에 올라가 있던 생선구이 가시를 발라낸 지혁이 장난스레 말했다. 한낱 생선 살 발라내는 일에 쓰인다고 상상하기엔 낯 뜨거운 근육질의 팔이 주인의 움직임에 따라 선명하게 갈라졌다.

해교는 핏줄이 꿈틀거리는 두꺼운 아래팔을 넋 놓고 응시하다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보면 안 되는 것을 훔쳐보다 들킨 기분이었다.

능숙하게 밥그릇 위에 생선 살을 얹어 준 지혁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해교는 눈을 마주치지는 못한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생선 살을 중심으로 크게 뜬 밥 한 숟가락을 제 입에 밀어 넣었다.

“맛있어요.”

“또 발라 달라고? 하여간 정말 애기가 따로 없네.”

말과는 달리 지혁은 잔잔한 웃음을 띠며 다시 생선 살을 발라 냈다. 이깟 생선 살이야 애초에 말 한마디면 사용인에 의해 깨끗하게 발려 접시에 오를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이를 배제해 두고 있었다. 제 손길이 닿는 음식을 해교가 얌전히 받아먹는 이 순간이 좋았다.

“저도 할 수 있는데…….”

“그냥 먹어요. 고양이는 그만 보고.”

입속으로 들어간 음식이 혀 위를 유영하다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까지 쏟아지는 따스한 시선을 받아 내는 건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도 해 준 적 없는, 생선 살을 발라 주는 것과 같은 애정을 받아 낼 때면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온몸에 퍼져 나갔다. 지금도 그 때문인지 도통 눈 마주치는 게 어려웠다.

“애기. 고양이 그만 보고 밥 먹으라니까?”

“……네.”

제 무릎 위에 올라온 메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해교가 이내 시선을 다시 테이블 위로 돌렸다. 도대체 어떤 의도로 그리 부르는 건지. 어느 순간부터 종종 이름과 ‘애기’라는 호칭을 자연스레 섞는 지혁 때문에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부끄러웠다. 시간이 지나도 잘 적응되지 않았다.

당연히 싫은 건 아니었다. 좋았다. 태연한 얼굴로 종종 저를 그리 부를 때면 정말 자신을 아기만큼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아 가슴이 간지러웠다. 자신이 지혁을 더 먼저,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까닭에 늘 불안정했던 감정을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어제는 많이 늦게 들어오셨어요?”

“음. 새벽 즈음이긴 했어요.”

“그럼 오늘은…….”

“주말엔 일 안 해요. 그러려고 어제 늦게 들어온 거고.”

제 말을 듣고 눈에 띄게 밝아진 해교의 표정을 인지한 지혁이 부드러이 웃음 지었다. 기실 아직 새벽녘의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단번에 떨친 것처럼.

자신과의 진료를 아예 그만둔다는 지혁의 이야기에 해교는 처음에 매우 불안해했다. 저와 지혁의 마음이 닿아 연인이 된 것은 좋으나, 혹시라도 지혁이 저 아닌 또 다른 양성구유 환자를 진료하기라도 할까 덜컥 겁이 났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지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 닥터를 구해 병원의 원장 자리를 채워 넣었고, 사외 이사직 임기가 끝날 때에 맞추어 이동할 새로운 임원직까지 세팅을 마쳤다. 모든 건 오롯이 저와 해교의 미래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절대적으로 주말만은 양보할 수 없단 일념으로 맡은 업무는 모두 주중에 끝냈다. 어떤 일을 처리하든 늘 스케줄 조정을 최우선으로 한 결과였다.

“다 먹었으면…….”

해교가 반짝이는 눈으로 지혁을 바라보았다. 다 먹었으면 이제 뭐 해요? 평일 동안 거의 그와 시간을 보내지 못한 터라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새로 시작한 게임도 거의 끝나 가고 있었고, 저번에 둘이 같이 보다가 해교가 잠들어 마저 보지 못한 영화의 엔딩도 궁금했다. 그게 아니라면 껴안고 누워만 있어도 좋았고……. 또…….

“공부 좀 할까요. 주중에 못 봐준 게 마음에 걸리는데.”

“아…….”

해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 왔다. 이 좋은 주말 날씨에 검정고시 공부를 하라니. 하지만 지혁이 하는 말은 해교에겐 곧 법이었다. 처음 만남 이후로 단 한 번도 잘못된 말을 한 적도, 그가 하는 일이 제게 해가 된 적도 없었으니까. 해교는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천천히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 작은 한숨을 흘리긴 했다.

서재 한편에 해교의 공간이 생긴 지도 어느덧 꽤 시간이 흘렀다. 초반엔 묵묵하게 자리에 앉아서 책만 들여다봤다. 하지만 거의 한평생 동안 공부와 담을 쌓고 살아온 해교가 하루아침에 책과 친해질 수는 없었다.

자신을 생각해서 분에 넘치는 것들을 준비해 준 지혁 때문에 해교는 어쩔 수 없이 조금이라도 책을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고 책상 앞에 자리 잡고 나면 눈앞에 떠다니는 먼지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부터 시작해 평소엔 TV 채널을 바꾸다가 나오기만 하면 돌려 버리는 뉴스까지 흥미진진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거실에서 앵커의 음성이 듬성듬성 낮게 들려오는데…….

“하아…….”

안 돼. 해교는 거실을 향해 돌아가는 목을 애써 고정했다. 덥지도 않은데 푹푹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이번에 붙지 못하면 내년엔 또 올해의 문제를 반영한 새로운 문제집과 자료집들이 서재에 깔릴 게 분명했다. 그 비용과 수고를 감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아무리 돈이 차고 넘치는 지혁일지언정 가뜩이나 그에게 기대고 있는 데다 한술 더 얹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서는 목적어가 잘못 왔으니까…….”

해설집을 읽던 와중에 거실과 현관을 잇는 복도에서 짐승의 발톱과 대리석 바닥이 딱딱,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근 메리의 방으로 내어 준 끝 방을 벗어나는 듯한 소리에 해교는 곧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서재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야아옹!”

메리가 재빠르게 창가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민첩하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메리와 갑자기 나타난 지혁에 해교가 눈을 굴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왜 벌써 나왔어요? 나갈 준비 마치고 부르려고 했는데.”

“아…….”

지혁이 한 손에 들고 있던 고양이 이동 장을 내려놓았다. 잠시 동그랗게 뜬 눈으로 자신과 메리를 번갈아 살피는 해교를 본 지혁이 피식, 작게 웃음 지으며 중얼거렸다.

“잊고 있었구나.”

오늘은 메리의 정기 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굳이 고양이를 잡아 이동 장에 넣는 고생을 할 필요 없이 사람을 시켜 검진을 보면 되는데도 해교는 늘 메리를 직접 병원에 데리고 가고 싶어 했다. 혼자만 보내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서글플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주 논리였다.

하지만 메리는 그런 해교의 마음을 몰라 주고 병원 가는 날마다 이를 귀신같이 알아채서는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지혁 앞에서 면이 안 서게. 오늘도 언제부터인지 소파 밑으로 숨어들어선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해교가 슬금슬금 발을 옮기다 포복 자세를 하자마자 이를 눈치챈 메리가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선생…….”

지혁을 부르는 말을 끝맺기 전, 지혁은 이미 2층으로 올라가는 메리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길목 계단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액체처럼 유려하게 빠져나가는 메리의 뒷덜미를 낚아챈 지혁이 가고 싶지 않다고 버둥거리는 메리를 붙들고 이동 장 문을 열었다.

지혁의 손에 제 몸이 닿는 것이 진저리 나게 싫다는 듯, 이동 장 문이 열리자마자 메리가 재빠르게 이동 장에 제 몸을 구겨 넣었다. 그러고 들어가선 아예 막다른 벽을 향해 고개를 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르르르, 몸을 떨며 하악질하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저게 진짜……. 사료값을 벌어 오는 게 누군지 알고. 지혁은 한참이 지나도 변함없는 메리의 태도에 엄지로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성질을 죽였다. 참자. 참자…….

어느새 계단참에 오른 해교가 이동 장 고리를 붙들었다. 그런 뒤 흥분한 메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용히, 가만가만 말을 걸었다.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에 털을 바짝 세웠던 몸이 진정되고 곧 포기한 듯 메리가 방향을 바꾸어 이동 장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고양이였다.

* * *

“안녕하세요. 이번 검진도 잘 맞춰서 오셨네요.”

“네에. 혹시 몰라서요.”

해교가 병원 직원과 인사하며 가벼이 웃음 지었다. 지혁은 그닥 의미 없는 그 미소마저도 남에게 보여 주기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이래서 굳이 사람이 복작대는 동물 병원까지 나오고 싶지 않았는데.

인위적으로 대기 인원을 모두 물려 둔 터라 결코 복작댄다 할 수 없을 휑한 병원 안, 입구 앞 데스크 위에 놓였던 컵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직원의 손을 맞고 쏟아졌다. 커피가 쏟아지면서 컵 주둥이가 앞으로 향했고 이내 직원과 마주한 해교의 옷에도 갈색 액체가 흔적을 남기며 산란하게 튀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네. 뜨겁지 않아서 괜찮아요. 그냥 화장실 가서 닦고 올게요!”

남자가 사과하며 얼레벌레 닦을 티슈를 찾는 사이, 해교가 재빨리 화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혁의 미간이 살짝 구겨지는 모습을 본 직원이 입도 벙긋하지 못한 채 얼굴을 굳혔다. 고의가 아니었는데.

표정에 기색이 드러나지 않았던 과거가 무색할 정도로 지혁은 해교와 관련된 일에 한정해 다양한 심경을 속속들이 낯 위로 드러내고 있었다. ‘다양하다’고 표현하기엔 대부분의 감정이 애정에 기반한 것이기에 어폐가 있을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그랬다.

면밀히 따져 보아도 고의성은 없었다. 잔뜩 긴장한 채 자신의 눈치를 보는 직원을 알아챈 지혁이 야트막한 한숨을 내쉬며 가 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해교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겨우 이딴 일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에게는 늘 다정하고 인정 많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었다.

직원은 익히 지혁에 대해 알고 있던 터라 그가 트집을 잡지 않는 모습에 놀라 더더욱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언짢은 기색을 지운 지혁을 살피다 살짝 힘이 빠진 직원이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았다. 철푸덕, 의자에 앉는 소리가 크게 나는 바람에 병원에서 기르는 개가 놀라 벌떡 일어나 짖기 시작했다.

“멍! 멍! 멍!”

사람을 물리라고 했지 개를 물리라고 한 적은 없어 일어난 일이었다. 새로 들인 듯 그간 보지 못했던 개가 짖기 시작하자 메리가 겁을 먹은 것처럼 이동 장 벽에 몸을 붙였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꼬리를 감싼 털까지 몽땅 쭈뼛 세운 채였다. 주변을 휘휘 둘러봐도 기댈 곳은 오로지 지혁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메리가 돌연 애처롭게 갸르릉, 울며 지혁을 찾았다.

“이제 와서?”

지혁은 심드렁해진 얼굴로 메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짖는 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동글동글, 순하게 생긴 소형견이 생김새와는 달리 꽤 앙칼졌다. 체구가 워낙 작아 둘을 붙여 둔다 해도 메리가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것 같지도 않은데……. 하물며 지금은 이동 장이라는 거대한 벽까지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하여간 유난인 고양이였다. 지혁은 곧 메리에게 주었던 관심을 거둬들였다.

지혁이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메리는 되레 지혁을 더욱더 간절하게 바라보며 애옹, 울었다. 그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절박함이 느껴졌다.

얄밉긴 했지만 선심을 쓰기로 했다. 지혁은 저를 찾는 메리의 부름에 맞추어 이동 장 속에 제 손을 넣어 톡, 톡 두들겼다. 그러자 언제 외면했었냐는 듯 메리가 다가와 지혁의 커다란 손에 제 몸을 비벼 댔다. 잘 관리해 윤기 머금은 털이 부드러웠다.

역시나 고양이는 요사스러웠다. 이러면 사료를 사다 나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어린 애들 말로는 ‘사료 셔틀’이라고 한 것 같다.

지혁과 메리가 불편한 듯 불편하지 않게 서로에게 접촉하는 동안 화장실을 다녀온 해교가 나타났다. 서서히 해교가 보이자 메리의 간절함은 곧 소강상태로 들어섰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제 몸에 닿은 지혁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해교는 메리와 지혁에게로 향하다 잠시 대기실에 설치된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푸른 물빛이 넘실거리는 바다에서 자유로이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깊은 바닷속 빨갛고 노란 물고기들과 빛을 내는 산호가 번갈아 가며 비추어지는 장면에 해교는 저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 예쁘다, 하며 중얼거렸다.

“가요.”

“네?”

지혁의 말에 TV를 향했던 해교의 고개가 돌아갔다. 갑자기 어디를 가자고 하는 건지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가자고. 시험 끝나면 어디든. 저기는 태국에 있는 작은 섬인데 다이버들이라면 꼭 한 번씩 가 보는 곳이에요. 난 그냥 취미로 펀다이빙하는 정도지만.”

다이……빙? 물에 떨어지는 거 말씀하시는 건가. 아니면, 저렇게 물 안에 잠수하는 것도 다이빙인가. 뭐든 수영을 못하는 자신과는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냥 바다가 너무 예뻐서 화면을 본 건데.

“선생님. 저는 수영 못하는데…….”

“알아요. 다이빙은 수영과 상관 없어요. 다음에 꼭 오픈 워터까지 따고 놀러 가요. 꼬따오에.”

“오픈…… 네?”

멍한 눈빛과 마주한 지혁이 다감한 미소를 지으며 해교의 윗머리를 쓰다듬었다.

“제일 초보 과정. 진짜 애기들도 하는 거니까 우리 애기도 할 수 있지. 당장은 그게 아니라 스노클링 정도만이라도 좋을 것 같아요.”

“네, 네. 할래요.”

스노클링,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홀린 것처럼. 지혁과 함께라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이제 메리 진료 보러 가셔도 될까요?”

지혁과 해교의 대화 사이에 낄 틈이 없던 직원이 마침내 타이밍을 잡고 끼어들었다. 시야 가장자리에 걸쳐 있어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그의 말에 화들짝 놀란 해교가 그제야 메리의 진료를 보러 병원에 와 있던 중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죄송하다 웅얼대며 급히 이동 장 손잡이를 잡고 진료실로 향했다.

1달 만에 만나는 수의사는 꽤나 예민한 메리를 능숙하게 다루며 기본 검진을 마쳤다. 볼 것도 없이 건강 상태는 양호했다. 기실 매번 병원에 올 때마다 각종 예방 주사와 영양제를 잔뜩 맞고 과잉보호에 가까운 진료를 하고 가는 터라 건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음 검진일에 뵐게요. 조심히 가십시오.”

“네, 안녕히 계세요.”

해교와 수의사가 깍듯하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지혁은 비스듬히 서서 고개를 까딱였다. 수의사는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배웅을 마치고 뒤돌아섰다. 고양이 검진일마다 반나절 동안 통째로 병원을 비우게 만들지만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 딱히 불만은 없었다. 다음 생엔 일개미 대신 저런 돈 많은 인간에게 사랑받는 고양이로 태어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기왕 나온 김에 밖에서 조금 더 있고 싶어 하는 해교의 기색을 눈치챈 지혁이 차를 교외로 몰았다. 차를 탈 때마다 조용해지는 메리를 무릎에 올린 해교는 모처럼 이어지는 드라이브에 상기된 표정이었다.

해교는 차창을 내리고 부드럽게 불어오는 초여름의 바람을 만끽하였다. 보송한 솜털이 남아 있는 뺨을 스치는 바람이 포근했다. 차창 밖으로 살짝 손을 내어 손가락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을 어루만졌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지혁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내릴까요?”

“네, 네. 우와…….”

고즈넉한 분위기의 한정식 식당은 돌담으로 이루어진 벽 사이에 아치형으로 입구가 뚫려 있었다. 꼭 동화 속 성문 같은 그곳을 통과할 때 초록빛 잔디가 사부작, 소릴 내며 발에 밟혔다. 이전까지 걸었던 흙길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해교가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쳐다보았다. 그 동작에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휘날리며 뽀얀 뺨을 간지럽혔다.

하늘거리는 해교의 머릿결을 바라보던 지혁은 문득 작년 이맘때쯤에 해교를 처음 만났었던 것을 떠올렸다. 딱 그때와 비슷한 날씨와 온도였다.

“이맘때였네.”

“네?”

“우리가 만난 거, 말이에요.”

“아…….”

해교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곱씹었다. 다시 생각해도 기적과 같았다. 어떻게 선생님처럼 완벽한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데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인 관계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건지. 지혁이 늘 넘치도록 애정 표현을 해 주고 있지만 해교는 모든 것이 자신에겐 너무나도 과분하다고 느껴 왔다. 그렇다고 이 사랑을 놓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제가 모자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진 해교를 내려다본 지혁은 곧 해교가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지혁이 맞잡은 해교의 손을 당겨 제게 바짝 붙인 뒤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반대편 손에는 그와 어울리지 않게 고양이 이동 장이 들려 있었다.

깨끗한 물이 고인 인공 연못 안에 알록달록한 색상의 금붕어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고 바로 옆에 지어진 한옥은 개별 룸으로 이루어져 한적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동 장 안에서 금세 잠이든 메리를 살펴보던 해교는 곧 테이블 앞 좌석으로 돌아가 자리를 잡았다.

“나오고 싶어 해서 왔는데 왜 표정이 울상이에요.”

“아…… 아닌, 아닌데요. 좋아요.”

팔자로 내려앉은 눈꼬리를 급히 끌어 올렸지만 일그러져 쳐졌던 입매는 감출 수 없었다. 여전히 불안해 보이는 눈동자에 지혁은 요즘 전혀 화제로 꺼내지 않았던 해교의 아버지, 차윤식을 떠올리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긁어 부스럼일지 모르지만 괜찮다고 말을 전해 줘야 하나, 고민하면서.

지혁은 겉치레로나마 해교 아버지를 가끔 들여다보았다. 그러지 않았다간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해교의 마음을 끊임없이 갉아먹을 것을 잘 알기에 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만하면 진저리 칠 때도 됐건만 해교는 하나뿐인 피붙이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했다. 그건 지혁이 폭우처럼 퍼부어 주는 연인으로서의 애정과는 결을 달리했기에, 그는 이를 인정하고 기약 없는 병원비를 대 주는 선에서 연을 이어 나갔다.

“혹시 아버지 때문이에요? 병원에서 치료 잘 받아서 호전되고 있다고 하던데.”

“아, 아니에요. 아빠는 전에 통화해서…… 괜찮아요. 아빠까지 챙겨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눈물 젖은 상봉을 주선해 주진 못했지만 전화 통화로나마 안부를 확인하겐 해 주었다. 녹취록을 확인한바, 차윤식은 눈치껏 쓸데없는 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고.

그럼 뭐가 문제지. 여전히 어두운 해교의 얼굴을 훑으며 지혁이 입가를 쓸어내렸다. 축 처져 유순한 눈꼬리가 오늘따라 더욱 처량해 보였다. 한참 동안 입술을 달싹이던 해교가 자신이 입을 열길 기다리는 그의 기색을 눈치채곤 결심한 듯 질끈, 눈을 감고 제 생각을 내뱉었다.

“그냥, 그냥요. 저 같은 애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워서요……. 저도 선생님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입장이 다르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이미 충분한 도둑놈이지만 더 했다간 도적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지만, 저와 해교 사이에 애 셋쯤은 낳을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지혁으로서는 억울한 말이었다. 아무래도 확신을 줄 필요성이 있어 보였다.

* * *

“후…….”

귓가 지척에서 떨어지는 습한 숨소리에 해교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보다 더욱더 긴장하고 흥분한 듯한 손길이 은근하게 떨리며 유두를 스쳤다.

조그마한 알갱이는 지혁의 손가락이 닿자마자 발딱 고개를 세우며 일어났다.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반응과 크기, 그리고 색상까지. 여기에 더해 이제 완연하게 다른 모습을 완성할 피어싱까지 더한다면…….

꼴깍, 지혁이 마른침을 삼켜 넘기며 손톱으로 톡, 톡 유두를 건드렸다. 예민해진 유두는 약간의 자극에도 부풀어 오르고 딱딱해졌지만 여전히 앙증맞았다. 조그마한 유두 크기에 걸맞게 은침의 얇은 피어싱이 그의 또 다른 손에 대기 중이었다.

넓은 손바닥이 해교의 젖가슴 전체를 가늠하듯 뒤덮었다. 혹여 여기서 또다시 자극을 주었다가 괜히 유즙이라도 픽, 터져 나올까 조심스레 위치를 잡는 손길이었다. 지혁은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매단 채 눈꺼풀을 감은 해교의 얼굴을 확인하였다.

“정말 괜찮겠어요? 무서우면 하지 말아요.”

“괜찮아요. 하, 할래요.”

얼핏 침이라도 보았다간 경기를 일으킬 것처럼 잔뜩 얼어붙은 주제에 물러서지 않았다. 꽤나 굳은 결심을 한 듯했다.

해교는 젖꼭지 끝에서 느껴지는 이상야릇한 느낌이 좋았다. 거기다 더해 유두 피어싱을 언급하는 지혁의 눈동자에 비추는 열기를 느끼자 당장 제 조그만 젖꼭지에 어울리는 피어싱을 달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그날 이후로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잠깐의 고통 정도는 감내할 수 있었다. 정말 아기는 아니니까.

“하다가 그만하고 싶으면 움직이지 말고 말해요. 위험하니까.”

“네에.”

지혁은 꽤나 신중했다. 무작정 유두에 피어싱을 달기 전, 오늘을 위해 장비를 갖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피어싱 시술을 해 본 의료인과 만남까지 가졌다. 또한 생살을 뚫는 것인 만큼 지겨울 정도로 해교의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몇 번을 물어도 답이 달라지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마침내 니트릴 장갑을 끼고 모든 준비를 마친 지혁이 작게 헛숨을 들이켰다. 열에 다섯 번쯤은 함몰되어 있는 젖꼭지를 단단히 그러잡곤 조물거리며 잡아당겼다. 정점을 당긴 손길에 연한 살점이 잇따라 늘어지면서 바들바들 진동했다.

살짝 출렁이는 가슴살을 문지르며 젖가슴 전체에 열이 오르도록 비볐다. 뾰족한 침 끝을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잔뜩 겁을 먹은 젖꼭지가 발발 떨리고 긴장한 목 뒤로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지혁은 이를 달래듯 유두를 손가락으로 한 번 갉작인 뒤 차가운 알코올에 젖은 솜으로 유륜 전체를 닦아 냈다.

말랑말랑한 살점이 둘러싼, 평소보다 조금 더 부푼 젖꼭지 사이로 뾰족한 침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해교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해서 밀어 넣던 지혁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내렸다. 갑작스레 다가온 따스한 온기에 해교가 반사적으로 입술을 열며 맞이하던 순간, 단번에 손끝을 옆으로 밀어붙였다.

삽시간에 동그란 유두가 날카로운 이물질에 눌려 비틀리며 짜부라졌다.

“읏! 흣!”

“쉬이…….”

바르작거리는 몸을 진정시키듯 다독이면서도 끝끝내 피어싱이 조그만 유두를 푹 꿰뚫었다. 순식간에 얇고 뾰족한 금속에 압박당하고 꿰뚫린 젖꼭지가 화끈거렸다. 피어싱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방울방울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고정하느라 쥐어짜 낸 젖가슴은 손아귀 모양대로 울긋불긋한 자국이 남았다.

“좀 살펴볼게요.”

지혁은 면봉으로 꼼꼼히 젖꼭지 주변을 소독하며 재차 피어싱 부위를 확인했다. 얇은 은침이 통과한 유두는 조금 부푼 것을 제외하곤 크게 이상이 없어 보였고, 은침 끝에서 달랑이는 조그만 방울이 살살 흔들리는 모습에 지혁은 등골이 흥분감으로 저릿해짐을 느꼈다.

“아파요?”

“으, 흐읏. 살짝 따끔했어요.”

사실은 보지나 뒷보지 첫 경험보다는 훨씬 덜 아팠다. 워낙에 순간적으로 뚫리고 만 거라 더 그럴지도 몰랐다. 늘 함몰되어 들어가 있던 오른쪽 젖꼭지가 은빛을 띤 얇은 금속 피어싱에 걸려 살짝 도드라져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더불어 반대쪽 젖꼭지는 여전히 쏘옥, 평평하게 들어가 있는 모습까지도.

“고생했어요. 이제 조금 쉴까요?”

“어…… 이, 이쪽은 안 해요?”

빈 왼쪽 젖꼭지를 바라보며 해교가 되물었다. 뾰족한 피어싱 때문에 충혈되어선지 양쪽 젖꼭지는 눈에 띄게 달라 보였다. 욱신거리며 땅겨오는 오른쪽 유두와는 달리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왼쪽 유두가 어쩐지 휑했다. 허전하기까지 했다.

“음. 생활할 때 어떨지 모르니까. 일단 한쪽만 해 보는 건 어때요? 불편하면 했던 쪽을 제거하고, 괜찮으면 하나 더 해도 좋으니까.”

그런가. 하긴 했다가 막상 부작용이 있으면 한쪽만 제거하는 게 낫지, 두 쪽을 동시에 그랬다간 많이 아플 터였다. 지혁의 설명에 해교는 금세 수긍했다. 역시 선생님은 늘 자신보다 앞선 생각을 하셨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으응…….”

더 이상 오른쪽 젖꼭지에는 통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아릿한 통각 대신 간질간질, 미묘한 감각이 저릿하게 차올라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해교는 어느새 문제를 풀다가 막힐 때면 티셔츠를 들추어 올린 뒤 한 손으로 살살 오른쪽 유두를 매만지다 누르고 튕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아래를 바라보았는데, 이상했다. 눈에 띄게 양쪽 젖가슴 크기가 달라 보였다. 젖꼭지를 마구 쥐어뜯고 괴롭히기라도 한 양, 유독 피어싱을 한 부위가 발긋하게 도드라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해교는 울상이 된 얼굴로 서서히 반대쪽 생유두를 만지작대며 아래위로 굴렸다. 일자 모양으로 폭 패인 함몰 유두가 알갱이를 굳혀 가며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양옆의 젖꼭지 크기를 대칭시키고 싶은 마음에 해교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곤 연한 살점을 꾹꾹 짓뭉갰다.

하으, 으……. 응……. 열기 오른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어찌나 집중했었는지 문이 열리고 지혁이 서재로 들어선 것도 모른 채 가슴을 주물렀다. 달뜬 숨이 서재를 채워 갔다.

“아!”

지혁이 인기척을 내지 않고 다가서 해교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묻었다. 후우, 뜨거운 숨결이 쏟아지자 귓가의 솜털이 바짝 일어나며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예민한 귓바퀴에 뜨겁고 말캉한 살덩이가 닿자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저릿해 절로 아랫입술을 감쳐물게 됐다.

분명히 형체가 있는 덩어리인데도 불구하고 뜨겁게 녹아내리는 액체인 양 질펀한 것이 귓속을 후벼 파면서 질척이는 소릴 냈다. 결이 좋은 머리카락이 사각, 사각 뺨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간지러워 소름이 돋았다.

“선, 생님. 으, 흐으…….”

“공부하라고 내버려 뒀더니 혼자 젖 만지고 있었네.”

“그게…… 하, 한쪽에만 피어싱을 달아서, 흣, 가슴 크기가 달라진 것 같아서……. 하으, 읏.”

“음?”

지혁은 간만에 진료를 하듯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상체를 숙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피어싱을 한 오른쪽 젖꼭지가 눈에 띄게 퉁퉁 부어올라 먹음직스러웠다. 은색의 피어싱 끝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소량의 유즙이 달랑이며 매달려 있었다.

지혁이 모른 척 살짝 바람을 불어 넣자 피어싱 끝에 조그맣게 달린 방울이 딸랑, 청아한 소릴 내며 흔들렸다. 곧 방울 끝을 타고 우유 한 방울이 또록 흘러내렸다.

애매하게 걸쳐진 해교의 셔츠를 걷어 올린 지혁이 하얀 살결을 은근하게 쓸었다. 피어싱이 박힌 오른쪽 젖꼭지가 아닌 왼쪽 젖꼭지 몽우리 주변을 살살 매만지는데도 진동이 전달되어 말랑말랑한 살결이 흔들릴 때마다 피어싱에 매달린 방울이 계속해서 소리를 냈다.

지혁은 팔을 좀 더 뻗어 왼쪽 젖가슴을 지나쳐 오른쪽 젖가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힘줄이 서 유독 더 단단해 보이는 팔뚝이 부드러운 가슴을 스치고 지나자 쓸리는 살결 부근 전체가 달아올랐다.

“으응…….”

“후으.”

저도 모르게 젖꼭지를 거칠한 팔뚝에 비벼 대는 해교의 몸짓에 지혁의 목울대에서 낮은 신음이 울렸다. 점점 더 손가락을 가슴 정점으로 가까이 가져가자 유두가 단숨에 형체를 부풀렸다.

바짝 올라붙은 핑크빛 유두를 피어싱에 닿지 않게 조심해서 누르니 금세 여무는 젖꼭지에서 유백색의 유즙이 질질 흘러나왔다. 쪼륵, 뜨거운 액체를 방울방울 흘려 내는 모습이 무척 자극적이었다.

“흐윽!”

“하……. 미치게 하네.”

지혁의 잇새에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씨발. 혹시나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재빨리 젖가슴을 한입 가득 베어 문 지혁은 새어 나오는 젖물을 모조리 핥고, 빨아들이기 위해 혀를 굴렸다.

차가운 금속이 혀에 닿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뜨끈하고 끈적끈적한 액이 밀려들었다. 지혁이 혀끝으로 유두를 짓뭉갤 때마다 딱딱한 재질의 피어싱과 부드러운 젖가슴이 번갈아 가며 감겨 왔다. 비릿한 쇠 맛과 달짝지근한 즙의 맛이 섞여 든 혀끝에선 자꾸만 침이 흘러나왔다.

해교가 할딱거릴 때마다 픽, 픽 흘러나오는 유즙이 지혁의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한참을 그렇게 정신없이 탐했다. 어느 순간 입 안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유두를 압박해도 더 이상 모유가 터지지 않았다. 지혁이 이를 세워 잘근잘근 젖꼭지를 긁고 깨물었다.

그럴 때면 마른 듯하던 젖물이 다시금 차올라 지끈거리는 젖꼭지에서 뜨거운 액체를 콸콸 흘려 냈다. 아, 하아, 흐으…… 오랫동안 가슴을 맴돌던 근지러운 느낌이 해소되며 해교의 잇새에서 새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젖을 빨던 지혁이 마지막으로 쪼옥, 젖꼭지를 유린하며 입술을 떼었다. 붉은 입술 주름 사이사이가 찐득한 액으로 번들거렸다.

“선생님…… 하으. 하, 한쪽에만 피어싱을 한 거요. 그게, 그게에…….”

“응. 그게 뭐. 계속 말해요.”

“여기이, 여기도 똑같이 해 주시면 안 돼요? 흐으…… 여기도…….”

울상인 얼굴이 발그레했다. 부끄러움을 잊고 생유두를 집게처럼 집어선 뾰족하게 솟은 돌기를 흔들어 댔다. 부드러운 살결이 가느다란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비틀리고 금세 발개져선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똑같이요.”

“그게에…….”

요는 자꾸 한쪽만 자극을 받고 쓸리니 오른쪽 젖꼭지만 커지고, 덩달아 유륜이며 가슴 몽우리까지 짝짝이가 되어 가는 것만 같아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쪽만 피어싱을 해 두지 말고 나머지 한쪽도 공평하게 피어싱을 달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음…….”

지혁은 젖가슴 양쪽 모두에 피어싱을 해 놓긴 싫었다. 이물질이 끼워져 있지 않은 젖은 그대로 보존해 두었다가 함몰인 상태로 쭉, 빨아올리고 싶었다.

제 상상 속 모습 그대로 한쪽 젖은 도드라지지 않은 채로 나머지 젖만 발딱 세운 채 낑낑거리며 조르는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에 들었다. 공들인 보람이 있었다. 이 순간에도 자꾸만 좆이 커지고 있었으니까.

“며칠 안 됐으니까 조금 더 두고 봐요. 그때도 양쪽에 다 하고 싶으면 해 줄게요. 공부하라고 뒀더니 젖이나 만지고……. 보지도 이미 젖었죠? 보짓물을 질질 싸 놔서 보지 냄새가 여기까지 나.”

“아, 아니에요…….”

해교가 허벅지에 힘을 주며 고개를 저었다. 꽉 맞붙은 가랑이 사이가 척척한 것이 느껴져 부러 더욱 아닌 척하며 다리를 오므리고 말랑한 아랫배에까지 힘을 주었다. 그런 해교의 몸짓을 바라보던 지혁이 코웃음을 치며 조거팬츠 안으로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그래서 싫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말고. 오늘 공부는 텄네. 애기 보지 때문에…….”

“응, 으응…… 죄송, 흐읏, 해요.”

“죄송할 건 아니고. 좋은 구경 해서 나만 횡재했지.”

되받아치는 지혁의 말에 해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는 익숙할 법도 했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끄러워 절로 숙여진 고개 때문에 마치 처음 만났던 날처럼 새하얀 목덜미만 눈에 들어왔다. 보송한 솜털이 가득한 목덜미를 응시하던 지혁이 시선을 올려 거두다 해교의 책상 위에서 멈칫했다. 스치듯 지나는 눈길에 걸린 문제집은 며칠째 진전이 없어 거의 새것과도 같이 빳빳하고 깨끗했다.

초반에 검정고시를 권유하며 던졌던 말과는 달리 바쁜 탓에 매일 봐주기가 힘들었다. 본격적으로 과외라도 부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누굴 집에 들인다는 게 못 미덥긴 하지만 CCTV도 있고 감시를 할 사람까지 하나 붙인다면 못 부를 것도 없었다.

“많이 어렵죠. 요즘 국어는 내가 봐도 어렵더라고.”

“아……. 네, 네.”

백지장 수준의 문제집을 들킨 해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보지에 올랐던 열이 순식간에 얼굴로 몽땅 몰려 후끈해졌다. 혼자 풀려고 했지만 문제를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지난번 지혁과 마지막으로 살핀 뒤로 한 문제도 더 풀지 못한 터였다. 선생님은 매일 바쁘게 일하시는데 집에서만 있는 주제에 공부도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고 부끄러웠다.

“과외 시작하는 건 어때요? 내가 매일 봐주기가 힘들어서 더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아.”

“아니, 아니에요.”

과외라니. 그냥 하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제게는 너무 과분했다. 아주 기초적인 밑바탕조차 부족한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을 것이다. 더 이상 그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학원은 안 될까요.”

도무지 이대로는 붙을 자신이 없고 과외는 너무 비싸고. 나중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취업하게 된 이후 그간 지혁에게 빚진 것들을 조금이나마 갚는다고 친다면…… 현실적으로 학원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해교가 어렵사리 의견을 냈다.

“……학원?”

불현듯 던져진 말에 지혁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곳곳에 설치해 둔 CCTV 덕분에 안심하고 당장에 과외를 붙여 줄 생각을 했었는데 학원이라니. 어떤 인간들이 모여 있을지 모르는 소굴에 굳이. 동물 병원처럼 갈 때마다 다 내보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일 텐데.

“네. 모르는 사람이랑 둘만 있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

정말이지 뜬금없는 소리였으나 저 아닌 타인과 단둘이 있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해교의 모습에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매번 운전기사를 보내 등원과 하원을 책임지도록 하면 들러붙는 것들을 최소한으로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마련해 준 해교의 휴대폰으로 송수신되는 모든 데이터는 복제해 둔 별도의 기기에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으므로 크게 염려할 일은 없을 듯했다.

“음. 그럼 제대로 알아보고 생각해 볼까요.”

* * *

그렇게 해교는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에는 홈스쿨링으로 인해 제 나이보다 빠르게 검정고시를 보려는 어린아이들도 꽤 많았지만, 해교처럼 각자의 사정으로 고등학교 진학이나 졸업을 하지 못한 케이스 또한 상당해 적응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저기, 오늘 끝나고 다 같이 밥 먹기로 했는데. 같이 안 가실래요?”

“아…….”

종종 옆자리에 앉곤 하던 애였다. 이름이…… 뭐더라. 매번 출석할 때 들었던 것 같은데 관심을 두지 않아서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상대는 우물쭈물,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해교를 눈치챘으면서도 쉬이 떠날 것 같지 않았다.

“선생님도 같이 가신대요. 검정고시 전략도 알려 주신다는데. 이제 시험 얼마 안 남았잖아요.”

시험이 얼마 안 남긴 했다. 남들에 비해 늦게 학원에 들어온 듯해 조급했던 터에 솔깃한 제안이었다. 요즘 들어 지혁 또한 종종 늦을 때가 있으니 그에게도 일이 있다면 잠시 저녁 식사에 들렀다가 집에 가도 좋을 것 같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해교는 더욱 절실하게 이번 시험을 통과하고 싶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늘 학원 앞에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세단을 향해 다가갔다. 해교가 다가가자 재빠르게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오늘 저녁 좀 먹고 들어갈까 하는데요. 혹시 선생님 일정 있으신가요?”

“예, 확인해 보겠습니다.”

괜히 바쁜 지혁에게 연락해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만약 지혁에게 일정이 있다면 저도 학원 회식에 끼어 귀동냥할 것을 하고 나서 집에 가면 될 테니까. 막 모여든 학생들이 우글대는 건너편 무리를 바라보는 해교의 눈빛이 초조했다. 선생님이 집으로 바로 오신다고 하면 가야겠지만 바쁘시다면 저녁 정도야 먹고 들어가도 되지 않을까.

“조금 늦으실 것 같습니다.”

“아……. 저 근처에서 저녁 먹고 들어가고 싶어서요. 따로 연락은 드릴 거예요. 오늘은 먼저 가셔도 될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 합니다. 그럼 제가 식당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학원을 다니는 조건으로 지혁이 붙인 운전기사였다. 해교는 잠시 고민하는 듯 혀를 굴리다가 몇 걸음 뒤에서 저를 기다리는 학원생들의 모습에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저장되어 있는 번호는 단 하나라 따로 검색을 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눈을 감고도 누를 수 있는 번호이기도 했다.

[오후 17:49 선생님. 오늘 저녁 먹고 가도 돼요?]

문자를 송신하자마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조금 늦게 들어올 만큼 바쁘시다더니 때맞추어 휴대폰이라도 보고 계셨던 듯했다.

- 애기. 누구랑 저녁을 먹고 들어오려고.

“아, 학……원……에서 먹는다고 해서요.”

- 학원 사람들? 왜?

“그……. 학원 선생님도 같이 드시고 시험에 대해서 알려 주신대요. 제가 아무래도 자신감이 없어서…….”

- 저녁만?

“네? 네.”

당연히 저녁만 먹고 들어가지, 선생님은 내일 아침까지 먹고 들어갈 거라 생각하시는 걸까. 순순히 대답하는 해교에게 일찍 들어올 것을 당부하며 지혁이 전화를 끊었고, 곧 해교는 운전기사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학원생 무리에 끼어들 수 있었다.

* * *

“형. 제가요……. 그래서 시험만 끝나면 다시 연락해 보려고요.”

“아, 네, 네.”

해교는 아까부터 전 여자 친구 이야기를 내리 해 대는 이름 모를 남자애 때문에 좌불안석이었다. 분명히 가볍게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자리라고 했었는데. 거기다 학원 담임 선생님까지 함께하는!

하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은 학원생들은 시험에 대한 대화는 몇 마디 주고받지 않은 채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가득 늘어놓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해진 분위기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상석에 앉아 검정고시 전략에 대해 언급하던 학원 강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허무할 정도였다. 경직된 얼굴로 내내 옆에서 떠드는 이야기에 영혼 없이 고개를 주억이던 해교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선을 돌리니 가게 앞에 대기 중인 검은색 세단이 보였고,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운전기사의 모습도 보였다.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빠져야 할 순간이었다.

결국 해교는 적당히 빠져나오는 데 실패했다. 처음 예상보다 늦게 파한 자리 때문에 지혁과 동거 후 처음으로 어둑해진 밤, 저를 기다리는 지혁이 있는 집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컴컴한 골목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을 바라보자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는 집……. 그게 이런 기분이구나. 그간 무뎌졌던 감사함이 새록새록 선명하게 솟아났다.

내일부터는 다시 자신이 선생님을 기다리며 이런 포근함을 안겨 드리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선생님, 저 왔어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지혁이 해교를 마주 안아 왔다. 호시탐탐 달려들 생각을 하고 있던 메리보다 빠른 등장이었다. 해교는 미처 거실로 발 한 짝도 들이지 못하고선 거대한 남자 품에 꼼짝없이 안긴 채 눈만 굴렸다.

“서운했어요.”

“네?”

“서운하다고. 기다리는 게 이런 거였구나. 생각보다 재미없어요. 나도 이제 애기 기다리게 안 하려고.”

“서운……하셨어요? 죄송해요. 이제는 안 그럴……. 으응!”

달싹이는 입술이 채 마지막 말을 마무리하기 전이었다. 입 안을 가르고 들이친 두꺼운 혀가 여린 점막 곳곳을 핥아 내리며 혀를 휘감았다. 그러고도 부족한지 목구멍까지 쑤실 것처럼 깊이 들어와서는 입술 안쪽 점막까지 쭙, 빨아들였다.

간간이 숨을 터 주기 위해 살짝 턱을 비틀어 비낄 때 외에는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침실로 향했다.

“음, 으응…….”

농밀한 입맞춤은 계속 이어졌다. 거칠게 입술을 비비고 샅샅이 안을 헤집으면서도 지혁은 능숙하게 해교의 옷을 벗겨 나갔다. 침실 바닥 위에 쌓이는 옷이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한 점, 한 점 늘어날 때마다 미끈한 근육이 움찔거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현관에서부터 단 한 번도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해교는 나신이 되었다. 지혁은 제가 입은 가운을 가벼이 젖히고는 서서히 입술을 뗀 뒤 지그시 눈을 마주쳤다. 하아, 하아. 해교는 모자란 숨을 몰아쉬느라 호흡이 가빴다.

살짝 눕히듯 옷을 벗긴 터라 해교의 한쪽 다리는 무릎을 기준으로 접혀 서 있었고, 나머지 다리는 침대 위에 쭉 뻗어 있었다. 지혁은 늘씬한 종아리와 연결된 허벅지를 더듬다 살이 올라 촉감이 좋은 볼기를 꽉 그러쥐었다.

“흐읏…….”

홀쭉한 아랫배를 열기 띤 눈으로 바라보던 지혁의 눈길이 사타구니 사이에서 멈추었다. 초점이 정확히 보지를 향하고 있었다. 종일 다물려 있던 보지가 언제부터인지 살짝 벌어져선 음탕하게 빠끔대고 있었다.

“나한테 미안해요?”

“……네?”

“서운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냥 하는 말이었는데 내가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들은 건가요.”

“네, 네. 맞아요. 이제 안 그럴…….”

“미안하면, 오늘 내가 하자는 거 하나만 들어줄래요?”

뭐가 되었든 지혁이 원하는 거라면 상관없었다. 정말 서운하게 만든 것 같아 죄송했고, 가타부타 그런 감정을 떠나 제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해 주고 싶었다. 해교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대책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를 붙든 마디진 손이 해교의 몸을 안아 일으켰다. 잠시 서로를 마주 안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가 싶더니 곧 지혁이 몸을 움직였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기댄 팔꿈치로 두 사람분의 하중을 견딘 채 서서히 스스로의 몸을 눕히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이게 뭐지……. 지혁의 허리춤에 몸이 앉혀진 해교가 상황을 파악하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순간, 일순 시야가 뒤집혔다.

순식간에 마주하던 지혁의 얼굴 대신 기다란 종아리가 눈앞에 자리했다. 당황한 해교가 상반신을 일으키려 하자 지혁은 해교의 엉덩이 살 안쪽을 꽈악 붙들고 불시에 미끄덩한 혀를 집어넣었다.

“하아! 아! 아, 안 돼!”

도망가려 다리를 움찔거리자 주름진 구멍 속으로 더더욱 세게 살덩어릴 쑤셔 넣었다. 깜짝 놀라 허리를 튕기며 엉덩이를 끌어 올리자 뚜욱, 질펀한 액체가 지혁의 콧대 위로 떨어졌다. 보짓물이었다.

“안 된다면서 보지는 잔뜩 흥분했는데. 씹. 보짓물 좀 봐.”

“아니, 아니에요.”

순식간에 진한 살 내음이 공기 중에 섞이고 후덥지근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아랫구멍을 쑤신 혀에 자극받은 보지 틈새에서 진득한 애액이 끝도 없이 흘러나와 지혁의 입술 표면 위로 고여 들었다. 질척이는 액체는 곡선 형태의 입술을 타고 금세 턱선까지 길을 내어 흘러내렸다.

“아…… 흐읏, 제바알……. 이, 이상해요. 선생님.”

“애기 보지처럼, 내 좆도, 후우, 좀 예뻐해 줘요.”

엉덩이가 도로 내려 앉혀졌다. 발발 떠는 해교의 눈앞에 곧추선 거대한 살덩이가 들어왔다. 아래를 빠는 것만으로도 기립한 채 쿠퍼액을 질질 흘려 대는 흉기 같은 좆이 경악스러웠다.

이를 아연한 눈길로 바라보던 해교는 저돌적으로 구멍을 적시는 지혁의 혀 놀림에 곧 결심한 듯 고개를 내렸다. 무섭긴 하지만…… 선생님 자지니까. 오늘 그를 서운하게 만든 죄도 있고,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면 덜 무서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숙여진 얼굴 앞엔 수컷의 살 내음을 뿜어내는 험상궂은 자지가 꺼떡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매번 바로 보지나 뒷보지 안으로 짓쳐 넣어서 이렇게 가까이에서 선생님의 자지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낯설었다.

늘 왼쪽 허벅지 위에 수납해 둔 탓에 살짝 그쪽을 향해 각도가 기운 듯한, 맥동하는 좆에서 터질 것 같은 열감이 느껴졌다. 좆 뿌리를 감싼 새카만 음모는 흉흉했고 가까이 다가가니 굵직한 자지를 감싼 핏줄까지 돋아 있어 한결 더 무도해 보였다.

“흐으, 어, 어떡,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해교는 침대 시트에 손바닥을 기댄 채 도와 달라는 듯 살짝 상체를 들어 지혁을 바라보았다. 몸이 비틀리면서 유독 오른쪽 유두 끝이 번쩍이며 빛났다. 최근에 해 넣은 피어싱이 흔들리며 만들어 내는 빛이 반사되어 생겨나는 잔상이었다.

지혁이 손가락을 뻗어 얇은 은색 금속이 빛나는 유두를 지그시 눌렀다. 탄력 있는 젖꼭지가 금세 튕겨 오르면서 맑은 소리가 났다. 정점이 뾰족하게 솟아오르자 말캉한 유륜 또한 오그라들며 단단해져 갔다. 잘 여문 알갱이가 새빨갛게 익은 채로 파들거렸다.

“앗, 가, 간지러어, 흐응……!”

생유두를 붙들고 비트는 것보다 훨씬 더한 자극이 내리쳐 해교가 몸을 발발 떨었다. 아무런 이물질도 끼워져 있지 않은 반대쪽 생젖은 오늘따라 더욱더 자유롭게 출렁이며 부푼 젖꼭지를 자랑했다.

……씨발. 꿈에 그리던 순간이 현실이 되자 지혁이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유두 겉을 스치고 훑던 손가락의 방향을 바꾸어 느릿하게 둥글리니 젖꼭지가 딱딱하게 일어났다.

지혁이 조그만 방울을 잡아당기자 젖통에 신호가 가기라도 한 듯 허연 즙이 찔끔찔끔 유두와 피어싱 사이에 맺혔다. 곧 젖물이 터지기 시작하였다.

하얀 모유가 방울방울, 발갛게 달아오른 젖꼭지를 척척하게 적셔 갔다. 피어싱을 한 유두는 종일 짓눌려 있어선지 유난히 더 풍부한 양의 유즙이 줄줄 흘러나왔다. 지혁이 아까운 듯 몸 선을 타고 흐르는 우유를 손가락으로 훑어 내더니 혀로 핥았다. 입술 표면에 맺힌 보짓물과 모유가 만나 달큼하면서도 아찔한 맛을 만들어 냈다.

“하아, 씹. 부끄러운 척하더니 좋았나 봐요.”

“읏, 아니, 에요…….”

“우리 애기는 왜 솔직하질 못할까. 보지는 이렇게 솔직한데. 애기 보지한테, 후으, 애기가 많이 배워야겠다.”

지혁은 해교의 찰진 볼깃살을 거세게 주물렀다. 그러다가 한참 동안 볼기를 바깥으로 쥐어 당긴 채로 훤히 드러난 선홍빛 보지를 빨았다. 쭈욱, 양 볼이 살짝 패일 정도로 힘을 주고서.

벌주듯 말캉한 살점을 이로 살짝 깨물더니 잘근잘근 간질였다. 부드러운 입술만을 이용해 조갯살을 꼬집듯 조이고 당겨 대기도 했다. 그러자 질벽이 파들파들 떨려 오면서 한결 더 많은 양의 액을 쏟아 냈다. 금세 질척하게 녹아내리는 점막을 타고 주르륵, 여러 덩이의 점액질이 울컥울컥 미끄러져 내렸다.

“좋은 거, 후, 맞잖아. 물이 씹…….”

“아, 아, 모, 모르……. 응!”

지혁은 자꾸만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애액을 모조리 들이마시면서 음탕하게 혀를 놀렸다. 빨간 보짓살 사이에 혀를 마찰하고 끈적하고 미끌미끌한 살점을 두꺼운 살덩이로 휘저었다. 그러다 벽을 타고 흐르는 점액질을 집요하게 빨아올리기까지 했다. 찰박, 찰박, 젖은 살을 치대는 색정적인 소리가 적막을 채웠다.

혀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살덩이가 오고 가자 마침내 해교는 하체의 힘이 몽땅 빠져 버렸다. 아하윽……! 하체를 지탱하던 무릎이 꺾이며 까무러칠 듯했다. 애써 자극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으나 그세 다시 젖은 살을 치는 혀 때문에 결국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지혁은 아래로 내려앉는 해교의 하반신을 기껍게 받아들었다.

“하아…….”

통통하게 부푼 자지가 지혁의 턱선에 닿아 짓뭉개졌다. 지혁은 쭉 뻗은 턱 끝을 자그마한 자지에 비비적대며 계속해서 보짓살을 갈랐고, 종내엔 제 얼굴 전체를 보지에 맞붙인 뒤 잘게 흔들었다. 아, 응, 아흐응…… 보지 전체를 흐무러지게 만드는 압박감에 즙이 터져 나오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 해교는 아까보다 더욱 가까이에서 지혁의 자지를 맞이하게 되었다.

불툭이는 핏줄이 휘감고 있는 기둥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서, 만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도저히 한입에 담을 자신이 없어 양손으로 기둥을 휘어 감고 제 자지를 대하듯 아래위로 손날을 치댔다. 뜨거운 손바닥에 예민한 표피가 쓸릴 때마다 돋아난 핏줄이 더욱 선명해지고, 좆 뿌리를 감싼 음모가 쓸릴 때마다 굵은 살 기둥이 한층 더 몸집을 키워 갔다.

귀두 끝 요도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액에 젖은 살갗과 손바닥이 맞닿으며 만들어 내는 음탕한 소리 역시 더더욱 또렷해졌다. 사정을 한다고 착각할 만큼 많은 양의 쿠퍼액이 기둥을 타고 흘렀고, 음란한 소리에 흥분한 지혁이 혀에 심을 세워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학! 으흐응. 이, 이상, 해요, 흐읏……. 선, 흐으…….”

납작하게 편 혀로 보지 전체를 재빨리 문질러 올리자 눈앞에서 팍, 번쩍이는 섬광이 튀었다 사라졌다. 그 아찔한 자극에 바쁘게 표피를 밀어 올리던 손바닥이 움직임을 멈추었고, 자극이 중단되자마자 꿈틀거리는 자지가 퉁, 해교의 뺨 한쪽을 치고 섰다.

해교는 잠시 멈칫하더니 두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제 입술에 거대한 귀두를 담기 시작하였다. 고작 귀두만 담으려는 목적이었지만 턱관절에서 틱, 소리가 날 만큼 입을 크게 벌렸다. 입가가 찢어질 만큼, 한계까지 길게 입꼬리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여전히 눈앞의 자지를 담을 면적은 쉽게 확보되지 않았다.

축축한 혀끝에 귀두가 닿자마자 몸체가 요란하게 요동쳤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과는 달리 이상하게도 살짝 비린 느낌이 드는 지혁의 체액을 빨면 빨수록 야한 기분에 매몰되었다.

“웃, 흐응, 응…….”

끄트머리만 담은 탓에 헛구역질을 하지는 않았으나 호흡은 버거웠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붉은 혀가 오갈 때마다 진득한 타액이 늘어지면서 습기마저 더해 갔다.

열기에, 습기에 간간이 들려오는 지혁의 낮은 한숨 소리까지. 평소보다 한층 더 짙은 감각들이 덮쳐와 해교의 정신이 혼몽했다.

번들거리는 선단을 살살 핥다가 입술을 물린 뒤, 혀로 기둥을 타고 쭈욱 내려와 자지 뿌리를 비비적대었다. 척척한 혀끝이 뿌리에서 이어진 핏줄을 따라 궤적을 그릴 때마다 자지가 점차 불그죽죽하게 변했다.

특히 자지 밑동을 자극할 때마다 더욱더 움찔거리는 듯해 해교는 혀에 심을 세운 채 치덕치덕, 짙은 음모에 뒤덮인 살갗을 문질거렸다. 까슬한 자지 털과 살덩이를 동시에 혀로 비벼 대자 흥분한 자지가 꺼떡거렸다.

“후으……. 씨팔…….”

조그만 입에 자지를 담고서 쭙, 쭙 정성스레 빠는 모습에 지혁의 성기는 더더욱 힘이 들어갔다. 마치 재촉하는 것 같았다.

꺼떡이는 자지가 여리고 부드러운 볼 안 살을 들쑤시자 이를 달래듯 해교가 귀두 갓을 살살 쓸어내리며 길게 빼낸 혀를 굴렸다. 본능적으로 기둥과 갓 사이를 잇는 가느다란 막을 따라 궤적을 남기듯 핥아 올리고 삼켰다. 흥분한 자지가 오돌토돌한 입천장을 긁어 댔다.

몰캉한 입술이 선단에 닿자 간헐적으로 헐떡이는 숨이 새어 나왔다. 험악하리만큼 흉흉한 살덩이가 습기에 젖은 숨결에 적셔진 채로 꿈틀거렸다. 자지와 이어진 고환 역시 요동치는 느낌에 해교는 손을 뻗어 얇은 음낭 표피를 조몰락거리며 살살 문질러 주었다. 그러자 그 노골적인 자극에 음낭이 자지 기둥처럼 부푼 채로 탱탱해졌다.

“으응, 읏…….”

전 같으면 이리도 큼지막한 것이 제 안에 들어온다는 사실에 기겁했겠지만 이제는 보지 안이 기대감으로 떨려 왔다. 얼른, 얼른 보지 안에 자지를 쑤셔 박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엉덩이에 단단히 힘이 들어가 둔근이 바짝 솟았고 잇따라 힘이 들어가는 보지 구멍 또한 쫀득하게 탄력을 받았다.

자그마한 자지는 저도 좆이라고 잔뜩 피가 몰려선 번들번들한 쿠퍼액을 토해 내고 있었다. 얇은 기둥을 따라 흐른 액이 털 한 올 없는 고간을 지나 기다랗게 패인 보지 틈새로 고여 들었다.

지혁은 이를 고스란히 입 안으로 쭙쭙 빨아 넘겼다. 목울대가 빠르게 꿈틀거렸다. 하아, 흐으……. 참을 수 없어진 해교가 입술을 조이고 새하얀 엉덩이를 살살 흔들었다.

“하아…….”

지혁이 보지 상태를 가늠하듯 둔덕에 손바닥을 올렸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따라 작게 미동하는 보짓살을 느끼니 이제는 윗입이 아닌 아랫입에 자지를 쑤셔 박고 싶어졌다. 어차피 자그마한 입 안에 제 자지가 다 담기는 것은 요원했으니 좁지만 깊은 동굴 속으로 푸욱, 좆을 담가 축축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몸을 일으킨 지혁이 해교의 다리 한 짝은 넓은 어깨에, 또 다른 한 짝은 굵직한 허리께에 감기게 했다. 그러자 해교의 몸이 반쯤 구겨졌다. 제 아래 깔린 해교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던 지혁은 곧 고개를 숙였을 때 닿는 살결을 모조리 핥기 시작하였다.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여기저기, 하얀 살결을 죄 제 흔적으로 뒤덮으며 여린 살점을 씹고 으깼다.

최근 학원에 나간다고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해교가 잠시 걸리긴 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필요한 영역 표시였다. 흔쾌히 저녁을 먹고 오라고 하고도 길지 않은 시간 내내 초조했다. 운전기사가 바짝 붙어 마크한다는 것을 알고, 휴대폰 내역도 고스란히 제 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누구도 감히 눈독 들일 수 없게 제 흔적으로 빼곡하게 덮어 버리고 싶었다. 입술이 붙었다 떨어져 나간 자리마다 지혁이 남긴 자국으로 가득해졌다.

“읏, 서은, 생님……. 저 학원…… 가야 하는데에, 으응.”

어느덧 기어오른 혀가 쇄골을 지나 목덜미를 뭉개고 있을 때였다. 초여름이라 목덜미를 가리는 옷을 입을 순 없던 해교가 급히 정신을 차렸다. 하지 말라는 듯 지혁의 뺨을 조심스레 그러쥐며 절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든 피해 보려 동산 모양으로 등까지 말아 가면서.

키스 마크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가릴 필요성까지 생각지 않았던 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지혁은 이에 태연하게 해교의 얼굴 양옆에 팔을 짚은 뒤, 목선을 내어 주었다. 제 목을 해교의 입술 앞에 가져다 댄 것이다.

“그럼 애기도 만들어. 여기에.”

“…….”

“공평하잖아요?”

남성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굵은 목선을 뒤덮은 피부는 도자기처럼 매끈했다. 티 없이 깨끗한 그의 목에 자신의 흔적이 남겨진다니 조금 하고 싶기도 했다. 해교는 망설이다 살짝 고개를 들어 지혁이 하듯 목덜미 아래쪽을 쭈욱 흡입하였다. 셔츠 깃으로 가려질 만한 위치라 나름 배려를 한 셈이었다.

하얀 피부를 성공적으로 울긋불긋하게 물들인 지혁은 쥐면 부러질까, 가느다란 허리를 한 손으로 붙잡은 채 자지 밑동을 단단히 움켜잡았다. 그러곤 검붉게 피가 몰린 귀두를 옴찔거리는 구멍에 대었다가 서서히 고간을 밀어 올렸다. 그러자 쫀득한 속살이 거대한 귀두에 들러붙으며 자지를 쥐어짜 냈다. 자지가 얼얼할 정도의 흡착이었다.

“후으. 미친……. 보지 조임이……. 큿.”

“흣…… 아, 아앙…….”

소스라치는 자극에 지혁이 급히 자지를 빼냈고, 예고 없이 질벽을 긁고 빠져나가는 자지에 해교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지혁의 얼굴에 비벼졌던 작은 자지는 귀두 끝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로 당장이라도 좆물을 내뿜을 것처럼 꺼떡이고 있었다.

해교가 점차 발끝에 힘을 주었다. 의지와 관계없이 파들파들 떨리는 하체를 부여잡아 보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퍽! 머잖아 다시 보지 구멍을 찢을 듯 쑤시고 들어오는 자지 때문에 아랫도리가 지잉 울렸고,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 저도 모르게 지혁을 제게로 더욱 끌어당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사람의 살갗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것이 쑤욱 빠져나갔다가 단숨에 보지를 헤집었다. 그럴 때마다 젖꼭지 끝에 달린 조그만 방울이 요란한 소릴 냈다. 지혁은 이미 틈 없이 맞닿아 있으면서도 더, 더 가까이 닿고 싶어 자꾸만 고간을 매섭게 추어올렸다.

“아, 선생님, 하, 흣…… 응, 아, 아.”

“후으…….”

세차게 허리를 짓찧을 때마다 부풀어 오른 젖가슴을 반죽하듯 사정없이 주물러 댔다. 젖꼭지가 폭신한 살점 속에 박혔다 튀어 오르자 방울 소리가 재차 울려 퍼졌다. 무자비하게 들이치는 몸짓에 해교의 몸이 덜컹, 흔들릴 때면 포동포동한 엉덩이 살 또한 함께 철썩이며 뒤흔들렸다.

삐걱, 삐걱 침대 프레임이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머릿속에 들어앉은 뇌까지 움직이는 듯 시야와 사고가 점차 뿌옇게 흐려져 갔다. 형태 없는 쾌감에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아, 아, 아……!”

교태로운 신음과 함께 젖꼭지에서 묽은 우유가 다시금 찍, 쏟아져 내렸다. 정말 환장할 만한 광경이었다. 지혁이 고개를 비스듬히 내린 채 젖가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을 쪽쪽 빨아 대기 시작했다.

흥분에 솟아오른 유두, 당장이라도 정액을 쏟아 낼 듯 꺼떡이는 자지에 더해 지혁이 거세게 부딪힌 사타구니까지. 온몸의 피가 몰린 곳곳들이 한없이 음탕했다. 씨발. 낮게 읊조리곤 지혁은 다시 한번 허리 짓에 박차를 가했다.

묵직한 자지가 보지 안으로 처박히며 모습을 감출 때마다 짜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의 입술 새에서 달뜬 신음이 흘러나왔다. 지혁은 단단한 귀두로 보지 구멍을 후벼 파며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자지를 짓쳐 넣었다. 아아앙…… 너, 너무 깊, 흐응……! 해교의 허리가 곡선을 그리며 허공에 올랐다.

지혁은 손가락 3개를 그러모은 채 흥분으로 충혈된 아랫구멍을 쑤셨다. 녹진녹진 녹아내린 뒷보지 점막을 꿰뚫은 손가락이 단숨에 극점을 파고들다 흥분에 겨워 구멍 사이에 걸렸다. 끼인 손가락 마디를 비틀며 빼내자 뽁, 젖은 소리가 나면서 해교의 발가락이 홱 모여들었다.

“아흐으!”

뒤이어 진짜 보지를 쑤셔 대는 자지가 빠져나오다 보지 구멍에 걸렸다. 자지에서 가장 굵은 귀두를 질벽 안에 다시금 살짝 밀어 넣다 단숨에 허리를 물리자, 씹물에 푸욱 절은 귀두가 짜부라지며 퐁, 동굴 속을 빠져나왔다.

“아……흑!”

연이어 몸에서 빠져나오는 이물질이 만들어 내는 반동에 해교의 붉은 혀도 따라 입안에서 빼꼼 튀어나왔다.

묵직한 귀두가 붉은 조갯살에 재차 대가리를 비벼 대자 바로 눈앞에서 수백 개의 촛불이 불타오르는 듯 껌뻑껌뻑 화려한 불꽃이 튀었다 사라졌다. 해교는 그저 온몸에 저릿저릿 쏘아지는 쾌감에 벅찬 숨을 내쉴 뿐이었다.

벌겋게 익은 질벽 점막이 들이치는 자지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쫀득하게 달라붙은 채 사방에서 조여 댔다. 조이다 못해 씹어 대는 것처럼 굴었다. 그럴 때마다 자궁 안이 꽉 찬 채로 경련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 으응, 보지 안이 꽉 차서어어……. 흣!”

“그래서, 싫어요?”

“아니, 응, 아, 아아, 너무, 흐응, 조아아…….”

“여기 내 좆물을 가득 싸서, 하아, 보지를 채우면, 아기가 생기는 거 알아요?”

지혁이 거칠게 목울대를 울리며 뇌까렸다. 언젠가부터 사정 직전이면 자꾸만 임신을 이야기하게 됐다. 이렇게 누누이 밑밥을 깔아두면 정말로 임신을 하게 되어도 놀라지 않으리란 계산 하에 떠들어 대는 것이었지만 단순히 계획만을 염두에 두고 입을 놀리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순간마다 진실로, 진심으로 그를 임신시키고 싶었다.

“흐응, 응……. 네에……. 알, 아요, 으응.”

지혁은 보지에서 자지를 꺼내 회음을 살살 긁었다. 얇은 살결을 은근하게 문지르자 해교가 눈을 뜨지 못한 채 요란하게 자지러졌다.

몇 번 회음을 비비던 지혁이 다시금 뻑뻑하게 다물린 연분홍빛 구멍에 애액과 선액으로 흥건해진 좆 대가리를 짓뭉갰다. 지금부터는 오늘 쑤셔주지 않은 아랫구멍에 좆을 처물릴 생각이었다. 젖은 살갗이 닿는 느낌에 지독하게 흥분한 뒷보지 구멍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귀두를 빨아들일 것처럼 움찔거렸다.

“으응, 거, 기 말고오…….”

해교가 고개를 저으며 뒷보지로 향하는 자지 기둥을 붙잡았다. 아기를 임신하려면 뒷보지가 아니라 앞보지 구멍 안이 질펀해질 때까지 정액을 싸질러야 했다. 뒷보지 말고 진짜 보지를 그의 좆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씨발. 진짜 임신시켜 버릴 수도 없고.”

“여기이, 흣, 여기에다 가득 싸 주세요. 이, 임신하고 싶어요.”

“하아, 곧 시험 쳐야 하는데, 어떡하려고.”

“으응, 애기 낳고오…… 임신하고 생각할래요. 빠, 빨리이…….”

큼직한 귀두가 재차 보지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분명히 선단만 대었을 뿐인데 점막은 마치 빨아올리듯 촉촉하게 귀두를 조여 왔다. 뜨끈한 보짓물에 적셔진 질벽이 꿀렁대는 것이 느껴지자마자 자지 끝에서부터 오싹한 감각이 내리쳤다. 마구 달라붙는 보지의 온도가 자지에 전이되어 서로와 엉겼다.

한층 더 격렬해진 허리 짓이 이어지고 점성 있는 액체를 가르는 질퍽이는 소리 또한 농밀해졌다. 샅끼리 부딪칠 때마다 흔들리던 조그만 자지는 이미 정액을 뱉어 낸 지 오래였고 사정으로 인해 쪼그라든 말랑한 덩어리가 지혁의 허리 짓에 따라 퍽, 퍽, 짓뭉개졌다.

그 모습마저 자극적이었다. 지혁이 눈을 내리깐 채 해교의 몸 구석구석을 살피며 피치를 올리자 조금이라도, 한 방울이라도 놓칠까 다급해진 해교가 엉덩이를 위로 들며 보지를 조였다.

“흐읏…… 씹……. 이런 건, 어디서 배워서.”

지혁이 골반을 잡은 손가락에 더더욱 힘을 주며 짓씹듯 말했다. 성기를 보지에서 완전히 빼내려 허리를 물렸지만 자지를 단단히 문 점막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반쯤 걸린 자지를 다시금 질 안으로 거칠게 쑤셔 넣었다.

“배운 거, 흣, 아니에요……. 으응, 그냥, 아기이, 생기면 좋으니까아…… 아앙!”

“이 씨발…….”

치밀던 분노 대신 쾌락이 자리했다. 지혁이 흔들리는 해교의 엉덩이를 콱 틀어쥔 채 쾌감이 튀는 지점에 자지를 박아 넣고선 잘게 허리를 털기 시작하였다. 제 안에 남아 있는 모든 좆물을 몽땅, 모조리 다 그의 안에 쏟아붓고 싶었다. 무서운 속도로 사타구니가 맞물리며 음낭이 보지 겉을 거세게 때렸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질벽 안에 더욱 뜨거운 것이 마구 쏘아졌다. 마치 장기에 화상이라도 입힐 것처럼 높은 온도의 좆물이 자궁을 후려치듯 들이치며 끝도 없이 해교의 안을 가득 메웠다. 아랫배가, 자궁이 빠듯해지는 느낌이 생생했다.

“아, 아! 다아, 으응, 다 싸 주세요, 흣, 으읏!”

보지 안을 틈 없이, 모조리 지혁의 씨물로 메우고 싶었다. 선생님이 하는 말이 실제가 되도록 임신하고 싶었다. 해교는 질척한 액체로 보지를 적셔 가면서도 더, 더 뿌려 달라는 듯 낑낑대며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사타구니 사이, 연한 핑크빛 보지 안 붉은 속살이 빠끔대며 떨리는 모습이 아찔했다.

이제는 해교가 힘을 주지 않아도 보지가 알아서 자지 기둥을 꽉꽉 물고 빨아 댔다. 조금의 액이라도 흘리고 싶지 않아 본능적으로 살덩이 전체를 감싸곤 쭈욱 빨아들이며 압박에 자지러질 듯 살점을 떨었다. 으, 흐응, 조, 아아……. 정신없이 수축을 반복하는 보지에서 비롯된 쾌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보지가 달린 몸이 싫었던 시절이 있지만 이제는 싫지 않았다. 만약에 보지가 없었더라면 선생님과 자신 사이에 아이가 생기는 것을 꿈꿀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얼른 임신하고 싶었다.

* * *

“선생님…….”

“왜. 할 말 있어요?”

출근 직전, 모든 준비를 마친 지혁이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다 해교를 돌아보았다. 평소 셔츠 깃 끝까지 단추를 채우고 넥타이를 매던 모습과는 달리 셔츠 깃 근처의 단추를 두어 개 똑똑 풀어 두고 타이의 매듭도 짓지 않은 채였다.

“모, 목…….”

못 보신 거겠지. 자랑스럽게 제가 남긴 흔적을 드러낸 지혁에 당황한 해교가 팔을 뻗어 그의 셔츠 단추를 잠가 주려 했다. 그러자 다가오는 해교의 목적을 알아챈 지혁이 반걸음쯤 뒤로 물러나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안달 난 해교를 내려다보며 부러 천천히 대답을 던졌다.

“오늘은……. 열고 다닐 거예요.”

“……네?”

“날씨가 꽤 덥더라고.”

“그, 그런……. 목에, 목에 빨간 거…… 보여요. 선생님.”

“괜찮아요. 지들이 어쩔 건데.”

“…….”

해교는 지나치게 태연자약한 지혁의 태도에 오히려 저가 사회적 통념을 과대 해석 해 받아들인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전에 선생님이 화내셨던 것과 다르게 생각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당당하게 보일 흔적은 아닌 것 같았다. 지혁이 남긴 흔적이 조금이라도 티가 날까 걱정된 해교는 거울 앞에서 몇 번이고 다시 제 목덜미를 점검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학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 * *

“여러분 모두의 합격을 바랍니다. 조심히 집에 돌아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마지막 OMR 답안지를 제출하면서 그간 준비했던 검정고시 시험이 막을 내렸다.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시험장 분위기는 유했고 시험 문제도 공부했던 것들에서 많이 나왔다.

그래도 채 절반은 풀지 못했지만 검정고시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하루였다. 아마도 시험 통과를 바라볼 성적은 아니겠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고 봐서인지 생각만큼 우울하진 않았다.

해교는 시험장 건물 현관으로 향하는 계단참 모퉁이에서 꺼 두었던 휴대폰을 켰다. 시험이 끝났다고, 무사히 보고 나왔다고 지혁에게 말을 전할 참이었다. 아침에 시험장에 같이 오긴 했으나 아마도 업무를 보러 다시 떠났을 테니 곧 만날 운전기사보다 더 빨리 그에게 연락을 해 주고 싶었다.

까맣던 화면이 밝아져 오고 곧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수고했어요.”

“어?”

내가 통화 버튼을 눌렀나. 아닌데. 휴대폰에 닿아 있던 시선을 거두고 눈앞을 바라보자 도저히 여기 있으리라 생각지 못한 사람이 서 있었다. 지혁이었다. 분명히 다시 일을 하러 가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돌아오신 걸까.

아침엔 잔뜩 긴장한 채라 미처 그가 걸친 옷들에 신경을 쓸 수 없었는데 이제야 평소와 다른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각을 맞추어 다려진 하얀 셔츠도, 단색의 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 하늘하늘한 셔츠만을 걸친 가벼운 옷차림의 그는 그 덕분인지 평소보다 좀 더 어려 보였다. 조금 과장 보태서 제가 스물일곱처럼 보인다고 둘러댔던 나이가 진짜라고 우기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만큼 아주 조금은 더 쳐줘야겠지만.

“점심은 어땠나요. 맛 괜찮았어요?”

“네. 저, 정말 많이 먹었어요. 선생님은요?”

점심 식사로는 가사 일을 봐주는 아주머니께서 준비해 준 8첩 도시락을 꺼내 먹었다. 시험장 책상에 반찬 통을 다 꺼내 나열할 수도 없어 번갈아 가며 먹고, 뚜껑을 닫길 반복했다. 존재하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하게 시험을 보던 해교였으나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에는 모여든 시선을 받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오후 시험엔 다시 시험지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나도 많이 먹었어요. 그럼 바로 가면 되겠네.”

“어딜요?”

해교는 영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얌전히 눈만 깜빡였다. 지혁은 그런 해교의 어깨에 걸린 가방을 받아들곤 말없이 대뜸 그의 손을 부여잡았다. 지나가듯 던졌던 말을 실행에 옮기는 날이었다.

시험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낯익은 세단으로 가 문을 열어 주었다. 종일 지혁과 함께 학부모인 양 시험장에서 대기한 운전기사는 꽤 피곤한지 살짝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금세 입을 다물었다.

“지금 출발하면 얼마나 걸립니까.”

“1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딩 시간까지 넉넉합니다.”

도무지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는 지혁과 운전기사에 해교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어디를 가길래 여기서 1시간 반이나 걸린다는 거지.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나 보다, 생각했다.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은 이미 고속도로 위였지만 늘 그랬듯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전에 내가 동물 병원에서 시험 끝나면 놀러 가자고 했었죠.”

“아……. 네에. 꼬까? 꾸까? 인가에 가자고…….”

“그게 오늘이에요. 뭐, 꼬따오보다는 몰디브가 나을 것 같아 노선 변경을 하긴 했지만.”

“네?”

지혁이 미리 만들어 둔 해교의 여권을 그의 얼굴 앞에 대고 흔들었다. 태어나 두 번째로 찍어 보는 증명사진에 잔뜩 기합이 들어간 표정을 한 제 얼굴이 여권 속지에서 팔랑대고 있었다. 저 사진이 왜……. 지혁이 제멋대로 준비한 여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우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와 보는 공항이었다.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가는 건지 캐리어를 들고 알파벳으로 나누어진 카운터마다 빼곡하게 줄을 서 있었다. 해교는 자신이 탑승하는 비행기의 항공사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괜히 마음이 조급해져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며 목을 쭈욱 뺐다.

“이쪽으로 와요.”

말과 동시에 지혁이 해교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이상했다. 자신들보다 먼저 도착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길게 줄을 서고 있는데 의사 선생님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걸으셨다. 물론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늦지 않겠다고 채신머리없이 뛰어가서 줄을 서는 것도 좀 웃기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느린 자신도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그는 태평해도 너무 태평했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해교가 빠르게 눈동자를 굴리다 지혁과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랐다. 뭐든지 다 안다는 듯한 그 눈빛에 속마음을 들킨 것만 같았다.

“왜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

“아니, 아니요…….”

“그럼?”

“그게, 저어, 저기 사람들이 줄을 많이 서서. 제, 제가 뛰어가서 줄 설까요?”

말만 물음이지 사실은 이미 줄을 서고 싶다는 의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지혁은 그런 해교의 의중을 뒤늦게 파악하고 파안대소했다. 아까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굴더라니 혹시라도 늦어 제때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할 게 걱정이 되어서였나 보다.

얼굴에 만연해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해교는 지혁이 이끄는 대로 K 항공사 카운터 옆 라운지로 향했다. 바글바글한 사람들이 모두 줄을 서려고 나가서 그런지 라운지 안은 딴 세상이었다.

그럼 진짜 우리도 빨리 줄 서야 하는 거 아닌가. 상당히 여유로워 보이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해교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카운터에 서 있던 직원과 같은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그들에게 다가와 정중히 인사한 뒤, 여권과 캐리어를 넘겨받았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해교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사람이 많은 카운터 앞에 줄을 설 일도, 직접 위탁 수하물을 부칠 일도 없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직원의 안내에 따르다 출국장 앞에서 건네받은 보딩패스를 확인하고서야 해교는 뒤늦게 멋쩍어졌다.

‘FIRST’……. 첫 번째. 검정고시 과목에 영어가 포함되어 있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단어였다. 이래 봬도 이제 두 번째를 의미하는 ‘SECOND’까지는 스펠링도 말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세 번째는 뭐였더라. 기억 안 나지만 두 번째까지만 알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는 없었다.

여하간 평생 비행기를 한 번도 타 보지 못했는데 처음 타는 비행기가 제일 비싼 등급의 좌석이라니. 아무리 돈이 많은 지혁이라 한들 1명분의 티켓을 더 사는 데 꽤 부담이 가지 않았을까 싶어진 해교는 검정고시 결과가 나오고 나면 짧게나마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감히 티켓 값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세울 수 있는 계획이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여기저기를 샅샅이 훑다 보니 어느새 탑승 시간이었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단 한 순간도 해교의 손을 놓지 않은 지혁을 따라 비행기에 올라 좌석까지 안내받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는 승무원이 인사를 해 와 해교는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하고 공손하게 질문도 했더랬다.

“이륙 전에 드실 음료는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음료수요?”

“예. 다양한 주스와 와인 준비되어 있는데요. 와인은 원하시면 시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어…….”

“이쪽은 구아바 주스로 내주세요.”

우물쭈물하고 있는 해교를 눈치챈 지혁이 그들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전에 위스키 반병을 비우고 만취해서는 구멍을 쑤셔 댔던 전력이 있기에 웬만해선 이번 여행에 알코올을 끼우지 않을 작정이었다. 술만 마시면 발긋해지는 두 뺨과 열이 올라 촉촉해지는 눈꼬리 같은 건 저 혼자만 보고 싶었다.

이후로도 지혁은 밥을 먹고 탑승했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준비된 기내식을 고르느라 고심할 때에도, 후식 아이스크림의 맛을 고를 때에도 번번이 해교의 주문에 관여했다. 승무원이 해사하게 웃을 때면 같이 따라 웃는 해교의 모습을 보니 그냥 둬서는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아무래도 앞으로는 좀 더 단속을 해야겠다.

“선생…….”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던 해교가 옆 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푸른 하늘을 가르는 몽실몽실한 구름이 예뻐 지혁에게 보여 주고 싶었는데 답이 없었다.

아. 주무시는구나. 해교가 좌석 시트에 붙어 있는 버튼을 만져 댈 때마다 다정다감하게 설명해 주던 지혁은 어느새 수면 중이었다. 검정고시 시험이 끝나자마자 몰디브로 함께 출국하기 위해 며칠 내리 일만 한 결과였다.

자신보다 먼저 잠이 든 지혁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해교는 숨을 죽인 채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옅은 주광색 등이 비추는 날렵한 턱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선을 올렸다.

짧지만 숱 많은 속눈썹이 그림자를 드리운 뺨 위로 길고 서늘한 눈매가 단정히 감겨 있었고, 높이 선 콧대는 미동이 없었다. 그 아래 선이 고운 입술이 살짝 벌어진 틈을 타 규칙적인 호흡이 오갔다. 그저 가만히, 고요하게 잠든 수려한 얼굴을 보기만 하는데도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사람은 평생 행복했으면 좋겠다. 주제넘지만 해교는 그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고, 제 한 몸이 바스러질지언정 꼭 그렇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빤히 그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손님. 잘 주무셨나요. 곧 착륙 예정이오니 좌석을 원래대로 만드는 걸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승무원의 말에 깜짝 놀란 해교가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지혁을 보다가 어느새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저는 조절할 줄도 모르는 좌석 시트가 이미 눕혀져 있었다. 반사적으로 옆자리로 고개를 돌리자 언제 일어났는지 한결 피로가 풀린 듯한 얼굴을 한 지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팔꿈치 옆 버튼 눌러요. 기절한 줄 알았네. 아무래도 시험 준비가 많이 힘들었죠.”

“아…….”

자신이 잠든 사이 선생님이 일어나셔서 좌석 시트를 조절해 주신 것 같았다. 큰 기대를 가지진 않았지만 어떻게든 이번 시험에 붙기 위해 꽤나 공부하긴 했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지혁을 생각하면 반드시 붙고 싶었다. 상처럼 가자고 했던 여행에도 꼭 함께 가고 싶었고. 이 정도로 호화스러운 여행일지는 상상하지 못했었지만. 매 순간순간이 꿈은 아닐까, 자꾸만 제 뺨을 찌르고 쓸어 보게 되었다.

“큰일 났네.”

“네? 왜요?”

“그동안 독수공방해서 많이 쌓였는데 이렇게 피곤해하면 오늘도 몰아붙일 수가 없잖아. 오늘 밤만 기대하고 있었는데.”

“으…… 그, 조, 조용히…….”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사색이 된 해교가 주변을 두리번대며 울상 지었다. 차마 그의 입을 막을 순 없었기에 죄 없는 제 입을 막곤 고개를 저었다. 지혁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서 있는 승무원을 무심히 한 번 쳐다보고선 웃음기 번진 얼굴로 턱을 괸 채 해교를 응시했다.

* * *

해교는 몰디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크게 숨을 들이켰다. 외국이라 공기가 다를 것 같았는데 냄새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 비하면 한결 더 쨍한 햇볕이 내리쬐었지만 바닷가임에도 불구하고 습도가 덜한 것 같아 신기했다. 아, 한국에서 해가 떠 있을 때 출발했는데 이곳도 아직까지 한낮인 점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교는 자신들을 기다리던 지프차에 오르느라 감상을 끊어야 했다. 짧은 감상에 미련이 남았지만 그 아쉬움을 곱씹을 새도 없이 바쁘게 이동이 이어졌다.

차를 타고 섬에 들어가는 건가, 생각했는데 웬걸. 수상 비행기를 타고 더욱더 깊숙한 바 아톨에 위치한 프라이빗 리조트로 향한다고 했다. 모터가 돌아가며 상당히 시끄러운 소릴 내는 수상 비행기에 지혁과 나란히 앉아선 이국적인 에메랄드빛 바다 색상에 감탄하며 창공을 또 한 번 통과했다.

온종일 이동 수단을 타고, 또 타고 이동하는데 지겹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소풍 가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들뜨기만 했다. 아니, 소풍 가는 어린애, 그 자체가 해교였다.

“드디어 왔네요.”

“우와……. 여, 여기예요?”

물 위에 띄워진 리조트는 환상 같았다. 섬에 배가 정박하자마자 우르르 몰려온 버틀러들이 앞다투어 짐을 받아 냈고, 환영을 의미하는 꽃목걸이가 목에 걸렸다. 이미 바다 위의 리조트라 따로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데 배정받은 목조 빌라에는 커다란 개인 풀장이 딸려 있었다. 성인 남자 4명이 누워도 거뜬할 사이즈의 침대 위에는 말린 분홍 장미 꽃잎이 잔뜩 뿌려져 있었고 룸 안에도 이와 걸맞은 은은한 향기가 물씬 풍겼다.

오롯이 그들에게만 허용된 빌라 안팎을 둘러보는 데만 족히 1시간이 넘게 걸릴 듯했다. 영어로 소개해 주는 버틀러가 부담스러워 두 걸음 늦게 따라붙는 해교를 눈치챈 지혁이 그를 물렸다. 그제야 해교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빌라 안을 탐색했다.

“시간이 애매하네. 혹시 배고프진 않아요?”

“네. 안 고파요.”

고플 리가 없었다. 직항이 없어 중간 경유지에 들렀다 오는 바람에 기내식이 무려 세 번이나 주어졌고 사이사이에 들렀던 VIP 라운지마다 호기심에 처음 보는 음식 한 가지는 꼭 골라 맛봤던 탓이었다.

“배고프세요?”

“아니. 나는 다른 게 고픈데. 비행기 안에서부터 보지 쑤시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지혁이 셔츠의 단추를 툭, 툭 풀기 시작했다. 새카만 동공 속에는 오롯이 해교만 담은 채 셔츠가 떨어져 나가고 단단하고 다부진 상체가 드러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래, 더욱 단단한 것이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했다.

“서, 선생님…….”

“응. 말해요.”

“그게, 그게에……. 이, 이따가 하면 안 될까요.”

“……왜?”

“바다 보고 싶은데……. 지금 하면……. 아무것도 못 볼 것 같아서요. 외, 외국 바다 보는 게 처음이라…….”

평소 흘레붙으면 구멍이 짓무르도록 허리를 쳐올려 대는 탓에 반나절은 기본으로 사라지곤 했다. 거기다 최근 해교가 시험을 앞둔 터라 자제해 와 고삐를 풀면 익히 하루는 거뜬히 잡아먹을지도 몰랐다. 해교는 초조한 눈빛을 보내며 지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선생님이 너무 좋지만 평생 오리라 생각하지 못한 곳에 왔는데 바다에 몸 한 번 못 담그는 것은 억울했기에.

“……일리가 있네요.”

픽, 입술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혁은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해교에게 다가가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상처럼 데려온 건데 수상자 말을 들어야지.

눈길도 주지 않았던 32인치 캐리어에 손을 댈 차례였다.

지혁은 해교의 새하얀 피부가 가려지도록 기다란 래시가드를 입혔다. 어차피 프라이빗 비치가 할당되어 있어 자신들 외에는 접근할 수 없는 곳이지만 혹시 몰라 꽁꽁 가려 두고 싶었다.

하지만 얇은 래시가드 천에 감싸인 잘록한 허리와 다리가 그대로 몸 선을 드러내 큰 소용은 없었다. 톡 튀어나온 한쪽 유두 피어싱의 윤곽까지도. 시발. 이를 인지하자마자 거대한 자지가 그새 스윔팬츠 천을 밀어내며 꺼떡거렸다.

“불편하면 말해요.”

“갱창아오.”

지혁은 조그마한 얼굴엔 헐거운 스노클링 장비를 씌우고 몇 번이나 꼼꼼히 확인한 다음에 구명조끼까지 남김없이 갖추게 했다. 그래 봐야 빌라 바로 앞 바다만 보고 말 테지만 수영을 못 하는 해교에겐 그 정도도 버거울지 몰랐다.

해교와는 달리 별도의 스노클링 장비를 걸치지 않은 지혁이 바다 한가운데에 내려진 빌라 사다리를 타고 먼저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뒤따라 발발 떨며 조심스레 내려오는 그의 허리를 움켜쥐고 받아 든 뒤, 곧바로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해교는 별로 세지 않은 물살에도 겁을 먹고 허우적대던 초반과는 달리 바로 옆에서 안정적으로 자신을 잡아 주는 지혁 덕분에 서서히 스노클링에 적응해 나갔다. 색색, 불규칙적이던 호흡이 점차 안정되어 가자 지혁은 이내 물살이 세지 않은 빌라 해먹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다이빙 마스터 자격증까지 있는 지혁에게는 한없이 지루한 풍경이었지만 해교에게는 달랐다. 이를 짐작한 지혁은 수면 아래 대신 해교를 구경하는 셈 치기로 했다.

해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커다란 물고기들이 바로 눈앞에 잡힐 듯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여태 길지 않은 인생에서 실제로 본 살아 있는 물고기라곤 어항 속 금붕어나 회색의 송사리 떼, 그 정도가 다인지라 눈을 깜빡이는 순간조차 아깝게 느꼈다.

화려한 원색의 물고기들은 사람이 꽤 익숙한지 달아날 생각을 않은 채 휙휙 물살을 갈랐다. 종종 몸에 다가와서 부딪히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놀란 해교가 허둥지둥 팔다리를 휘저었고, 오리발을 끼운 그의 발이 첨벙대며 물장구를 만들어 냈다.

한참 바닷속 세상을 구경하다 베이비 샤크를 발견한 해교는 제 입에 마우스 피스를 물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다 수면 안으로 처박았던 고개를 들고 아기 상어예요, 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지혁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순간 지혁은 집 안에 커다란 수조를 들여 상어를 길러 볼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스노클링을 하다 보니 어느덧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혁은 내내 잡고 있던 손을 통해 해교의 체온을 감지하고 물 밖으로 나갈 것을 제안했다. 다시 사다리를 타고 빌라로 돌아오고 나서야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에는 몰랐던 추위가 뒤늦게 몰려왔다. 해교는 그제야 덜덜 떨었다.

“잘 놀았어요?”

“네에. 바다 위에 숙소가 있으니까 너무 신기해요. 실컷 놀고 들어와서도 또 바다가 보여요. 너무, 너무 좋아요.”

……이번엔 집을 바다 위에 지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해에서 서울로 출퇴근한다고 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순간 머릿속에 안절부절못하는 수행원과 한숨짓는 조부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개의치 않았다. 여하간 한참 시간이 흘렀어도 고칠 수 없는, 고칠 의지조차 없는 중증이었다.

툭, 툭 물기에 무거워진 옷이 욕실 바닥에 떨어졌다. 드러난 알몸은 급격히 낮아진 온도 때문인지 투명하리만큼 새하얀 피부 위로 푸른빛이 감도는 모습이었다. 덩달아 시퍼런 혈관 줄기 역시 도드라졌다.

“감기 들기 전에 얼른 들어와요.”

욕조에 목욕물을 받기 시작한 지혁이 해교를 감싸 안으며 함께 몸을 담갔다. 누가 훔쳐 가지도 않을진대 제 품 안에 꼭 집어넣고선 수면 밖으로는 빼꼼히 얼굴만 나올 수 있게 한 채였다.

욕조에서도 고스란히 너울대는 투명한 바다 표면을 볼 수 있어 해교는 잠시도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서서히 해가 지면서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보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분홍빛과 보랏빛 하늘이 꼭 유화 물감을 타 섞은 것처럼 질게 얽혀 들었다. 정말 한국이 아니구나,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선생님.”

“응.”

“너무, 너무 멋져요.”

“내가? 뭘 그렇게까지…….”

“……서, 선생님도 멋지시지만 지금은 하늘이요.”

“…….”

“…….”

이 씹. 하다 하다 이제 자연까지 질투를 하게 생겼다. 사람이면 파묻을 수 있을 텐데 하늘은 어떻게 해야 하지. 찢어발길 수도 없고.

지혁은 치미는 생각과는 달리 다정한 손길로 소금기를 머금어 조금 뻑뻑해진 연갈색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성적인 함의를 없앤 손길로 토닥, 토닥 매끈한 아랫배도 쓰다듬었다.

“그, 그런데요.”

“응. 그런데?”

“이런 곳은 많이…… 비싸겠죠?”

“왜. 또 오고 싶어요?”

“또 오고 싶……은 것도 그렇고…….”

나중에는 제가 선생님을 데리고 오고 싶어서요. 정말, 정말 나중에는 제가 느끼는 감정을 선생님이 느끼게 해 주고 싶어요. 해교는 차마 에둘러 말하기조차 부끄러워 입 밖으로 내진 못한 말을 삼켰다. 지혁은 손에 닿는 보드라운 살결을 매만지며 입꼬릴 올렸다.

“별로 안 비싸요.”

“…….”

“그러니까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질릴 때까지 다시 와요. 같이.”

“……네.”

평소엔 별생각이 없어 보이면서도 가끔 작은 머리통을 굴려 바지런히 해 내는 생각은 죄 영양가 없는 것들로 가득해 보였다. 이번 여행에 함께 가져온 걸 내밀면 조금은 달라지려나, 생각한 지혁이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해교를 다시 한번 제 품 안에 꼬옥 끌어안았다.

해교는 노을 지는 하늘 감상이 끝나자마자 종일 본 물고기에 대해 종알대기 시작했다. 지혁은 별것 아닌 그 이야기가 마치 감미로운 음악이라도 되는 양 배경음 삼아 며칠 새 쌓인 피로를 씻어 냈다. 굳었던 얼굴에 그새 웃음기가 묻어났다.

노곤했던 몸이 서서히 풀리면서 해교는 점차 저를 껴안은 지혁에게 기대 늘어졌다. 그새 매끄러워진 머리카락이 지혁의 단단한 어깨 위로 흩어지며 살결을 간지럽혔다. 해교는 따스한 손길이 제게 닿을 때마다 그동안 저도 모르게 쌓아 왔던 걱정이나 근심 따위의 것들이 조금씩 녹아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교가 제 얄팍한 몸을 덮은 두꺼운 팔뚝 위로 손을 올렸다. 하얗고 가녀린 손과 대비되는 든든한 팔이 저를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옭아매자 기이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 * *

간만에 가진 잠자리는 초저녁에 시작해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 여파로 선잠에서 깨어난 해교가 조용히 눈을 떴다. 가벼운 가운 하나 걸치지 않은 나른한 몸을 뒤척이며 뺨을 긁는데 뭉툭하고 차가운 것이 얼굴을 스쳤다. 몽롱한 눈을 비비다 손을 가까이 가져와도 어둠에 익숙하지 않는 시야 속에선 희미한 손가락 윤곽만 보일 따름이었다.

대체 이게 뭐지. 오른손으로 왼 손가락을 무겁게 만드는 금속을 만져 보다 화들짝 놀란 해교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일어났어요?”

잠든 줄로만 알았던 지혁이 밤새 팔베개를 해 준 팔로 고쳐 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곤 솜털이 일어난 귓불에 살짝 입을 맞추고 떨어지더니 이내 턱선과 목덜미를 따라 쪽쪽거리며 입술로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모로 누운 채 자연스레 나머지 한팔을 뻗어 해교의 몸을 제 몸에 얽었다. 탄탄한 가슴팍과 맞닿은 등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아는 따스한 체온이 전달되었다.

스멀스멀 건너온 손가락이 말랑말랑한 가슴살을 주무르며 간지럽혔다. 살짝 침대 시트에 짓뭉개진 피어싱이 자극되어 이미 오른쪽 젖꼭지는 일어난 채였다. 지혁이 최대한 악력을 빼고 움켜쥐었는데도 불구하고 연한 피부는 가벼이 밀려 가슴 사이에 골이 생길 것처럼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해교는 여전히 제 손가락에 있는 물체가 제가 짐작하는 그것이 맞는지 궁금해 몸에 열이 오르는 와중에도 느껴지는 이물질의 윤곽을 만지작댔다.

“선, 생님……. 그게, 이게…….”

“아. 봤구나.”

컴컴하게 쳐 둔 암막 커튼이 지혁의 손에 의해 젖혀지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번쩍이는 햇빛이 마구 방 안에 들이쳤다. 일순 밝아진 시야에 해교는 실눈을 떠 제 왼쪽 손가락 약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헛숨을 삼켰다.

얇은 손가락에는 보석에 대해 잘 모르는 해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크기의 영롱한 빛을 내는 다이아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막 동이 터 차츰 창밖에서 쏟아지는 황금빛 햇살에 반사된 반지가 눈부시게 빛났다.

“아직은 애기가 너무 어리긴 한데. 점찍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기왕 도둑놈이 된 거 대도가 되어 볼까 하고. 이러면 좀 믿길까. 나랑 아주…… 오래오래 만나요. 만나고, 사랑하고, 연애해요. 아직은 이르지만 연애보다 더한 것까지도. 그래서 나를 포함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당당하게 함께 누렸으면 좋겠어요.”

지혁은 초조한 듯 아랫입술을 핥아 내며 해교의 대답을 기다렸다. 자꾸만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비하하는 해교에게 확실한 마음을 보여 주고 싶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공부하다 잠이 든 해교의 손가락을 매만질 때마다 얼른 끼워 주고 싶어 안달이 나던 참이었다.

“저기 서, 선생님.”

“응?”

돌아앉은 해교가 눈을 질끈 감고 수줍게 제 입술을 먼저 지혁의 입술에 맞대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에 놀란 지혁은 한동안 석고상처럼 굳어선 숨도 쉬지 않았다. 그러다 서툴게 먼저 혀를 꺼내는 해교 때문에 입꼬리를 휘어 당기며 순순히 입맞춤을 받아 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입술과 입술이 맞닿고 살짝 얽히는 혀끼리 서로를 비볐다. 해교의 속도에 온전히 맞춘 지혁 때문에 모든 움직임이 은근하고 느릿했다.

쪽, 마침내 마주한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다시 한번 입술에, 뺨에, 이마에 차례로 제 입술을 꾹 눌러 내린 지혁이 고개를 들었다. 온 세상이 멈춘 듯했다. 좀처럼 열리지 않아 고요한 입술 대신 깊고 검은 눈동자 가득 해교의 얼굴이 비치었다. 눈빛으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너는 내게 소중하다고.

“저……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서…….”

뺨과 입술, 하다못해 귓바퀴까지 같은 빛깔로 물들인 해교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제야 안심한 지혁이 하, 작게 헛숨을 터트리자 해교가 그의 가슴께에 툭, 제 이마를 문질러 왔다. 그러곤 참아 왔던 숨을 몰아쉬었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한 말이지만 눈을 마주하고 말하기엔 많이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렇게 좋은 사람한테 평생 선생님 소리만 듣고 살게 할 건가, 우리 애기는.”

“네?”

“전에 한지헌이 좋은 호칭 알려 주지 않았나요.”

지혁은 해교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 모든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지헌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나누었던 지헌과 해교의 대화 역시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던 터였다. 초반에 놓친 부분은 이튿날이 되자마자 지헌에게 전화해 마침표 하나하나까지 되살릴 것을 요구했었다.

그날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시험 때문에 잘 쓰지 않는 두뇌를 모조리 끌어다 써선지 한 번에 기억나지 않았다. 해교는 어느샌가 다시 고개를 들고 지혁과 눈을 마주한 채로 열심히 눈을 굴렸다. 그러니까, 선생님 동생분이 약혼하실 여자분과 전화 통화를 했었고 그러다가…….

“아…… 그…….”

“응.”

“자, 자기……님?”

발긋한 뺨을 부드러이 쓸어내리던 지혁이 멈칫했다. 의도치 않게 숨마저 멈춘 것 같았다. 시발. 이러다 뇌에 산소가 부족해 쓰러질 지경이었다. 오늘 몇 번이나 숨이 멈추는 건지.

자기님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이었다. 나이 차가 꽤 난다는 건 알았지만 제가 그렇게까지 무리수를 두었나, 현실적인 타격감이 쏟아질 정도였다.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듯했다.

“……님은 빼고. 자꾸 날 조상님 대하듯 하네. 아니, 너무 힘들면 억지로 할 필욘 없지만……. 그럼 차라리 다른 호칭을 좀 생각해 볼까요.”

역시 무리였나. 그냥 저는 평생 선생님 존칭을 들을 팔자인가 보다. 그래, 애정만 있으면 됐지.

호칭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지혁이 만지작대던 뺨에서 손가락을 떼고 헛웃음을 지을 때, 꼬물대는 입술 사이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말이 흘러나왔다.

“……자, 자기야…….”

“…….”

“읍!”

지혁이 대답 대신 폭신한 뒤통수를 감싸 안고 입을 맞추었다. 마주한 입매는 바짝 올라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언제나 해교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 나가 있지만 괜찮았다. 조금 늦어도 언젠간 이렇게 제가 먼저 온 길을 따라올 사랑스러운 어린 연인을 믿고 있었으니까.

〈다정한 진료, 에필로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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