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게 무슨. 왜 문이 안 열리지?”
두 달여 만에 방문한 집은 열쇠가 맞지 않았다. 문고리에는 누가 걸어 두었는지 종이 상자로 된 포장 케이스가 걸려 대롱대롱 흔들렸고, 열어 본 상자 안에는 알록달록한 마카롱이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다. 누가 이런 걸……. 배달이 잘못 왔나.
해교는 마카롱을 들여다보다 고개를 돌려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였다. 바쁘게 짐을 챙겨 나오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휴대폰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부재중 전화 몇 통과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해 선생님의 연락은 나중에 자세히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우선은 열쇠가 어떻게 된 건지 집주인 할아버지께 여쭤봐야 했으니까.
- 여보세요.
“할아버지. 저 반지하 101호 사는 해교인데요.”
- 어? 아……. 차해교 학상이…… 웬일이여? 큼.
“그게, 제가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열쇠가 안 맞아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 그거……. 흠, 흠! 월세 2달 치나 밀린 상태에서 집 비웠길래 거 느 아부지처럼 야반도주라도 한 줄 알았지.
“네?”
- 그게 그렇게 됐어. 그 방에 새로 들어온다는 이, 입주자도 생겼고, 차해교 학상이 알다시피 보증금도 없는 집이었잖여? 내가 언제 돈이 들어올 줄 알고 그 집을 비워 둬? 짐은 얼마 있지도 않던디. 거 있는 짐 필요하믄 말혀. 창고에 옮겨 놨으니께.
“아…….”
생각해 보니 도윤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월세를 보낸 적이 없었다. 어쩌다 잊어버렸을까. 늘 월세 입금 날짜로부터 일주일 전에 입금 독촉을 시작하는 집주인의 연락이 없어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던 걸 이제야 깨달았다.
“어, 어떡하지…….”
졸지에 집이 사라진 해교가 급하게 휴대폰 속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몇 번 스크롤을 올리고 내려 보아도 이런 상황에 연락하거나 기댈 사람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 눈앞이 어질어질해졌다.
[의사 선생님]
바삐 오가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이래도 될까……. 해교는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쉰 뒤, 발밑에 내려 두었던 가방을 메고 힘들게 올라왔던 언덕길을 다시 내려갔다. 돌아온 길을 되짚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워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 * *
“하아…….”
해가 지고 어스레해진 무렵이었다. 목적한 곳에 도착한 해교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을 외면했다. 휴대폰은 이미 배터리가 닳아 시간을 확인할 수조차 없었고 기다리는 사람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뭘 바라고 여기까지 온 걸까. 착잡한 마음을 터놓을 곳을 잘못 찾은 듯해 해교는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며 울음을 참아 냈다.
“차해교 씨?”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에 해교가 수그렸던 고개를 들었다. 검은 그림자가 다가와 하얀 얼굴 위로 쏟아지던 가로등 빛을 가렸다.
“선생님…….”
고개를 치켜들자 얌전히 깜빡이는 속눈썹 끝에 맺힌 눈물방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해교는 지혁과 마주하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져 곧장 눈가에 차오른 눈물을 쏟아 냈다. 여기까지 왔으니, 온 이유를 말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궁금해하실 텐데…….
입을 열자마자 울컥 솟아오르는 서러움에 숨이 가빠지는 해교를 보고 지혁은 잠시 놀란 듯 행동을 멈추었다.
그놈의 마카롱을 전해 준답시고 쓸데없이 그 집 앞에서 기다리지 말걸. 어차피 며칠 뒤면 볼 얼굴이었는데 욕심내지 말고 조금 더 빨리 집에 돌아올걸. 갑갑하지도 않은지 턱 바로 아래까지 셔츠 단추를 채운 채 둥글게 만 몸을 떠는 모습에 지혁이 애꿎은 자신을 탓했다.
“집에 없더라니, 여기 있었네.”
“네…… 끄으, 그게…….”
“잘 왔어요. 일단 들어가요.”
당장에라도 팔을 뻗어 애처롭게 떨고 있는 그를 껴안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 낸 지혁이 해교를 조심스레 일으켰다. 그러곤 대문을 열어 해교와 함께 집에 들어간 뒤, 멈춰 선 지혁의 차 때문에 골목을 지나지 못하는 차량이 클랙슨을 울려 대는 소리에 뒤늦게 차고와 길목 사이에 걸린 제 차를 이동했다.
“일단 이거 좀 마셔요. 마음 좀 가라앉히고 얘기해요.”
“……감사합니다.”
지혁이 레몬을 우려낸 따스한 차가 담긴 머그컵을 들고 해교에게 다가갔다. 거의 영혼이 나간 듯, 파리해진 안색의 그는 무척이나 처연해 보여 절로 안타까움을 일으켰으나 그러한 이면에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환희가 밀려와 지혁의 몸 곳곳에 스몄다.
차해교가 직접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진료하지 않는 날, 제 품으로 직접. 이유를 막론하고 제 품으로 직접 걸어 들어왔다는 것, 그게 중요했다.
묘한 만족감에 자연스레 입술 끝이 휘어졌다. 지혁은 올라간 입꼬리를 간신히 힘주어 끌어 내린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교를 다독여 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월세, 월세를 못 내서…… 쫓겨났어요.”
“월세를 못 내서 나가라고 했다고? ……확실합니까.”
“네……. 주인 할아버지가, 그, 그렇다고…… 흐윽…….”
임대차 계약서가 왜 있는데. 절차 없이 집에서 내쫓다니 이 좆같은, 돈에 눈이 먼 영감탱이. 어리고 예쁜 게 월세 좀 밀릴 수도 있지. 그걸 내쳐? 당장에 법이 뭔지 매운맛을 보여 줘야…….
분노한 지혁이 잠시간 얼굴도 모르는 해교의 집주인을 속으로 마음껏 힐난하다 멈칫했다. 격분한 나머지 사고 회로가 잠시 꼬인 것 같았다.
제가 준 돈도 있었을 텐데. 월세를 내는 걸 잊었다면 그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냈다는 건가? 정말 전의 그 친구 집?
무수히 많은 물음표가 꼬리처럼 따라붙었지만 정신적으로 지친 어린애를 붙들고 전후 사정을 따질 수 없었다. 지혁은 오늘은 그저 위기에 처한 해교가 자신을 찾았다는 현실에 주목하기로 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섹스로 맛본 그 어떤 쾌감보다 풍족한 아드레날린이 넘쳐흘렀다. 위험에 처해 선택한 도피처가 자신이라니, 당장에라도 차해교의 궁둥이를 두들겨 주며 잘했다고 칭찬을 쏟아붓고 싶었다.
이제 서서히, 조금씩, 물 흐르듯 관계를 바꿔 나갈 타이밍이었다. 그 어떤 미친 짓을 해서라도 지혁은 절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지금까지 해 온 미친 짓 리스트에 하나가 추가되는 것뿐이었으니까.
“그래요. 많이 피곤하겠어요. 어떻게든 내가 도와줄 테니까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 좀 더 이야기할까요?”
해교가 찾아온 것이 큰일이 아니라는 듯, 태평한 얼굴로 웃어넘기는 지혁 때문에 해교는 실로 제가 처한 상황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마법을 경험했다. 무작정 찾아오긴 했으나 지혁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재울 걸 예상하지 못한 해교는 그가 이끄는 대로 휩쓸려 어느덧 욕실 안이었다.
늘 그랬듯 지혁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할 것처럼 해교는 그의 말을 착실히 따랐다. 그 결과로 옷을 벗고 몸을 씻은 뒤에야 욕실 안에 가지고 들어온 여분의 옷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터였다.
번거롭게 선생님께 가방을 가져다 달라고 할 수도 없어 쭈뼛쭈뼛 눈치를 보던 해교가 욕실 한구석에 걸린 배스 가운을 발견했다. 입어도 되……겠지……? TV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가운이었는데 지금 입을 수 있는 거라곤 하나밖에 보이질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었다. 해교는 어색하게 가운을 들어 어깨에 걸친 뒤 팔을 끼우고 허리를 조였다.
가운이 퍽 커서 해교의 손은 손가락 끝만 겨우 보일 듯 말 듯 했다. 해교는 제게 맞지 않는 가운을 대강 입곤 고민에 빠졌다. 일단 생각나는 게 선생님밖에 없어 오긴 했는데…… 이제 어떡해야 할까. 해교는 치미는 두통에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비비다 욕실 문을 열어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저녁은 먹었…….”
배스 가운을 입는 게 처음이라 제대로 여며지지 않은 옷자락을 본 지혁이 희미하게 웃음 지으며 다가섰다. 손이 많이 가면 많이 갈수록 더더욱 귀엽고 사랑스럽단 생각을 하며.
그러다 어깨를 움츠린 해교의 하얀 목덜미에 새겨진 울긋불긋한 자국에 지혁의 시선이, 그리고 사고가 멈추었다.
순식간에 지혁의 눈동자에 서늘한 빛이 서렸다. 해교가 배고플까 신경 쓰여 꺼내 둔 요깃거리를 제쳐 둔 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매를 좁히며 해교의 목선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이동했다.
마침내 미끄러지듯 드러난 살결을 모조리 훑어 내리자 지혁은 다급하게 배스 가운의 라펠을 당겨 젖히며 제 짐작을 확인하였다.
“읏? 선생님?”
“차해교 씨.”
“……ㄴ, 네?”
“누가 이딴 거 달고 다니라고 했나요.”
“네?”
“네 목에 쪼가리 달린 거 말하잖아.”
“그, 게 무슨 말씀이신지 몰라서…….”
내리깔린 목소리가 퍽 음산했다. 다정하던 지혁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이나.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놀란 해교가 멀거니 지혁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지혁이 이렇게 행동하는 까닭을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하……. 씨발.”
지혁이 기막힌 듯 짧게 한숨을 내뱉더니 고개를 숙여 도윤이 만들어 낸 키스 마크 위를 제 입술로 덮었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에 움찔, 어깨가 떨렸다. 뜨겁고 말캉한 살덩이가 솜털 난 목덜미를 문지르며 훑어 내렸고, 뒤이어 느릿하게 지나온 길을 되돌아 올랐다.
예상치 못한 접촉에 소스라치게 놀란 해교가 흠칫 몸을 물리기도 전에 쥐어짜 내듯 살갗을 씹는 감촉이 선연하게 뇌리에 퍼져 나갔다. 그러곤 목덜미에 아찔한 열감이 번졌다. 어느덧 사타구니 힘이 풀린 채 바들바들 떨려 와, 해교는 발바닥에 힘을 주고 양 무릎을 붙여 버텼다.
“흐읏…….”
지혁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희미해진 울혈 위에 발긋한 자국이 새로이 생겨났다. 도윤이 남긴 흔적을 덮는, 더 크고 짙은 흔적이 만들어진 것이다. 목덜미를 물어 뜯기기라도 한 듯 지혁의 입술이 닿았던 부근 어귀로 두근, 두근, 불규칙적인 맥박이 이는 파동이 느껴졌다.
당황한 해교가 색색 벅찬 숨을 몰아쉬었다. 멍한 얼굴은 여전히 지혁의 의도를 읽지 못한 채였다.
“이런 거, 말하는 겁니다. 난 어떤 새끼가 차해교 씨한테 이런 짓 했냐고 묻고 있는 거고.”
지혁이 여전히 화가 난 듯한 낯빛으로 해교와 눈을 지그시 마주쳐 왔다. 두 사람의 얼굴 사이에는 손가락 하나 들어갈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열기 어린 지혁의 눈빛에 해교가 뒤늦게 목덜미에 손바닥을 올려 더듬거렸다. 살갗에는 방금 닿았던 입술이 남긴 온기가 뜨끈하게 남아 있었다.
아……. 이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목덜미를 쓸며 목선을 따라 울긋불긋하게 남았던 자국들을 문지르던 해교가 대답 대신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누군데.”
“…….”
“……그동안 했던 모든 일들은 진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거였습니까. 그렇다면 진작 말을 해 줬어야지. 빠짐없이 이야기해 줘야 진료에 도움이 된다고 했었죠. 환자와 의사 간 가장 중요한 게 신뢰라고 했었는데. 차해교 씨는 별로 내게 신뢰감이 없나 봐요.”
“……그……게, 흣…… 그런 거 아니에요.”
“나 지금 눈깔 돌아간 거 보이죠. 참을성 없으니까 단답형으로 대답해요. 만나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평정심을 잃은 지혁이 짓씹듯 읊조렸다. 단호한 어조였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흥분해 있었다.
“어, 없어요.”
“……없어?”
“네…….”
“그럼 이런 개짓거리는 누가 한 걸까.”
흥분한 지혁의 말이 끊기자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눈가가 금세 뜨거워졌다.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처진 눈꼬리를 타고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눈물이 한가득 차올랐다. 연이어 해교의 어깨가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화가 난 지혁의 모습은 처음이라 쉽사리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눈물에 젖은 속눈썹이 축 늘어져 눈을 깜빡일 때마다 조그만 눈물방울을 떨구어 냈다. 아직 채 진정이 되지 않은 입술 새에서 끊겨 나오는 목소리가 흐느낌으로 변모해 흘러나왔다.
“흐으, 윽…… 정말, 흡, 죄…….”
당황한 지혁이 저도 모르게 일그러뜨렸던 얼굴 근육을 풀었다. 엉겁결에 살던 집에서 쫓겨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버거울 텐데 어른답지 못한 태도를 보였다는 자각이 일어서였다.
지혁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 인내하듯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몇 번이고 허공을 쥐었다 펴는 그의 손가락 끝이 자잘하게 떨렸다.
“미안해요. 다그쳐서 무서웠구나.”
지혁이 최대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내뱉고는 손가락을 뻗어 해교의 양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찬찬히 닦아 주었다.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까 한 글자, 한 글자 검열하며 꺼내는 말들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이야기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요.”
“읏…… 흐읍…… 선생, 흐읏, 죄송…… 끄으…….”
해교는 여전히 눈물을 매단 채로 지혁을 바라보았다. 물기가 스민 목소리 사이사이 숨넘어갈 듯한 잔기침이 연달아 이어졌다.
“대신 하나만 물을게요.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한 건지, 그건 말해 줄 수 있을까요.”
해교가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동의하에 한 관계는 아니라는 듯한 신체적 표현에 지혁이 헛숨을 들이켜며 뇌까렸다.
“하, 그럼 아주 개새끼인데.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그런, 흐으…… 그런 거 아니에요. 그, 그냐앙…….”
해교는 지혁이 경찰서를 들먹일까 두려웠다.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고 이 세상에 자신의 신체적 비밀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더는 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의사 선생님이 자신과의 인연을 끊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역시 욕심일까.
“선, 생님…… 다 제가, 흣, 잘못했어요.”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는 해교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원점에서 나아가지 못한 채 뱅뱅 맴돌고 있었다. 지혁이 하나씩 짚어 갈 때마다 두서없는 말을 지지부진하게 나열하면서 해교의 붉은 눈 밑은 거멓게 변해 갔다.
결국 지혁이 종일 치 피로감이 쌓인 해교의 얼굴 지척에서 한 발짝 물러났다. 더러운 상상이 마구 내달려 그의 뇌리를 뒤흔들었지만 더 캐물었다간 금방이라도 다시 울릴 것만 같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법 운운할 일은 아니라고 끝까지 버티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지혁은 가볍게 해교의 뺨을 툭툭, 매만져 주고는 허리를 폈다.
“하아……. 일단 자야 하는 시간이니까 잡시다. 참고로 이 집에 손님방으로 빼놓은 곳은 없어요.”
“아…… 네, 네……. 나갈……게요. 선생님. 오늘…… 감사했어요.”
이대로 길바닥으로 쫓겨난다 한들 할 말이 없었지만 이제 그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게 조여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해교는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죗값이라 생각하고 아연하게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숨기려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딜 가요?”
물기 어린 눈을 건조하려 몇 번이고 눈꺼풀을 깜빡인 뒤 방향을 틀려 하는 해교의 팔목을 지혁이 잡아챘다. 힘을 주지 않고 조심스레 잡으려 노력한 것이 무색하게 가느다란 손목은 지혁의 손길에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흐려진 눈동자가 갑작스러운 접촉에 어찌할 바 모른 채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그…… 흣, 선생님이…… 소, 손님방 없다고 하셔서…….”
“말 그대로 손님방이 없다는 거지 나가라고 한 적은 없는데. 이 밤에 어딜 가요.”
“그, 그럼 소파 좀 써도 될……까요?”
“소파?”
“네……. 시, 싫으시면 저는 바닥도 좋…….”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침실에 이스턴킹 사이즈 침대가 있는데. 알잖아요.”
주말이면 지혁의 집에 방문하면서 진료를 핑계 삼아 침대에 눕는 일은 빈번했지만 함께 수면을 취한 적은 없었다. 해교는 지혁 옆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누워 어색함과 불편함에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 감아요.”
“네, 네…….”
당장 자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듯, 옆에서 뚫어져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지자 해교는 어쩔 수 없이 눈꺼풀을 내렸다. 그가 눈을 감자마자 지혁은 기다렸다는 듯 은은하게 방 안을 비추던 수면 등을 껐다.
이윽고 방 안에 정적이 감돌자 종일 시달린 해교는 곧 밀려오는 잠기운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점차 고르게 변하는 숨소리에 지혁은 몸을 일으켜 제 옆에 잠든 조그만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탐탁지 않았다. 잠든 얼굴은 아찔할 만큼 달콤했지만 머릿속을 부유하는 상념들이 이가 갈릴 만큼 불쾌했던 까닭이다.
“후…….”
지혁은 해교가 자신의 몸을 부끄러이 여기는 걸 잘 알았다. 그렇기에 먼저 나서서 누군가와 몸을 섞을 일이 없다는 것 또한 확신했다. 하지만 차해교가 나서는 게 아니라 상대가 먼저 나선다면 어떨까.
제 개수작에 걸려들어 마침내 이 집까지 스스로 걸어 들어왔듯, 얼굴 모를 씹새끼의 농간질 역시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저와 비슷한 짓을 한 상상 속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눈동자에 날카로운 한기가 어렸다.
* * *
“나야.”
- 이렇게 이른 시간에 형이 웬일이야?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 대한 애정이 막 샘솟는 건가. 어제 병원에 가길 잘했네.
“……마카롱.”
- 어?
“어제 그 마카롱 구입 좀 하려고 하는데.”
- 형이? 왜?
“필요해서.”
- 혀, 형이 먹게? 유명하다더니 정말 맛집이었나 보네. 희진이도 좋아하긴 하더라만 형까지 사로잡을 줄이야. 사람 보내서 가져다줄게.
설탕이라면 질색하는 지혁이 아침 일찍부터 전화해선 마카롱을 찾아 대는 진풍경에 수화기 너머의 지헌이 말을 더듬으며 전화를 끊었다. 어제부터 낯선 일만 반복하는 제 형의 모습에 곤혹스러운 듯했다.
“후우…….”
지혁은 오늘은 병원 문을 닫고 종일 밖에 나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무리 병원 운영을 귀찮게 여겨 온 그라 한들 이렇게 충동적으로 출근하지 않는 일은 이례적이었으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혁은 곧 있으면 자택으로 출근할 청소 인력과 병원 직원들에게 유급 휴가를 알린 뒤 제가 앉은 의자 팔걸이를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어떻게 할까. 드디어 제 손에 들어왔으니 누구에게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제 위치를 공고히 하면서 상대를 떼어 낼 수단과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이 잠든 얼굴을 떠올리자 다시금 어제 느꼈던 환희가 생생하게 되새김질되었다. 곱씹을수록 달았다. 앞으로도 내내 그 환희를 잃지 않으려면 할 일이 많았다.
주말로 바꾼 진료 시간이 패착의 요인이었을까. 대체 그사이 누굴 만나서 그런 좆같은 자국을 달고 온 건지 알아봐야 했다. 진료 초반에 항문 입구를 찢어 놓은 놈과 같은 놈은 아닌지,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지혁이 서재 책상을 쾅, 주먹으로 내리쳤다.
당시엔 그저 차해교에 대한 관심이 흥미에 그쳤기에 대수롭잖게 넘겼던 일이라 아예 잊고 있었다. 그땐 저도 제 마음이 이렇게 변할지 몰랐었으니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단 걸 잘 알지만.
“젠장…….”
일개 의사로서 머물러 온 터라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제 몫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지헌을 떠올리자 항상 멀찍이서 그를 따라오는 수행원 두어 명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졌다. 책상 위에 놓인 빈 종이에 펜을 긁적이던 지혁은 곧 몇 가지 숫자를 나열하였다.
엉망으로 날뛰는 감정들을 겨우 갈무리해 쑤셔 넣고는 지혁은 방금 전 통화를 마쳤던 지헌에게로 다시 전화를 걸며 기대 있던 의자를 뒤로 젖혔다. 전화번호를 누르는 손등은 돋아난 핏줄 위로 붉은 기운이 번져 오른 채였다.
“씨발. 이런 일은 딱 질색인데…… 수가 없네.”
몇 번 신호가 가지 않아 지헌은 금세 전화를 받았다. 1년에 두 번 먼저 전화를 걸면 많이 거는 편인 지혁이었는데 오늘 이미 할당량을 채웠다.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한 지혁이 아무래도 이상해 그로부터 오는 연락을 확인하자 지체할 수가 없었다.
- 형? 대체…….
“어. 나야. 또 보낼 게 생겼는데. 내가 줄 수 있는 것도 있고.”
* * *
지혁이 도착한 인부들을 확인한 뒤 집 안에 들였다. 전선과 카메라를 한가득 짊어진 이들이 지혁의 손짓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가지고 온 것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설치를 진두지휘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보지 못할 만큼의 초소형 카메라가 집 안 곳곳에 놓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일렬종대로 각을 잡은 또 다른 무리가 정원을 거쳐 집주인을 찾았다. 지혁은 팔짱을 낀 채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조심스레 해교가 잠든 제 침실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잠든 해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굳어 있던 지혁의 표정이 단숨에 풀렸다. 역시 이 정도의 수고로움이야 충분히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일어났어요?”
“네에…….”
해교가 서서히 눈을 떴다. 잠결에 무언가가 벽에 박히는 듯,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분주히 오고 가는 사람 발걸음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그저 꿈에서 들은 환청인 것도 같았다. 지금은 제 숨소리 외엔 들리는 것 없이 한없이 적막했기에.
어제 실컷 울어서인지 퉁퉁 부은 눈두덩은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아 연하게 진 쌍꺼풀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지혁은 흔치 않게 부어오른 해교의 얼굴이 귀여웠다. 단언컨대 이만하면 중증이다.
“더 자도 돼요. 종일 쉬어요. 이제 당분간은 뭐든 하지 말고 편히 지내요.”
“네?”
“진료든 청소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말이에요.”
“왜……요?”
“안 하고 싶을 거 같으니까. 지금은 그냥 진료, 그따위 것보다 휴식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어제 그 일이 있었으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손을 뻗을 수 없었다. 차해교는 싫다거나 거북하다는 표현을 하지 못할 게 뻔했으니까.
모처럼 배려심을 한껏 발휘한 제안이었으나 개수작질을 하지 않겠단 그의 말을 들은 해교에게서 의외의 반응이 흘러나왔다.
“제가…… 제가, 거, 걸레라서요?”
순식간에 해교의 눈망울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어제 그렇게 울어 놓고도 투명한 눈물은 수도꼭지를 튼 것 마냥 금세 뚝, 뚝 흘러내릴 듯 커다란 눈동자에 똬리를 틀었다. 느닷없는 단어가 등장하자 지혁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믿을 수 없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제가, 제가 정말 걸레 같아서……. 그래서…… 선생님이, 흐으, 그러시나 해서…….”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워 왔어요?”
“…….”
“차해교 씨가 걸레면 나는 창놈인가?”
“그, 그건 무슨…….”
“해교야. 네가 누구랑 몇 번 씹질을 했건 더 오래 살아온 나만큼 했겠어요? 어디서 그딴 거지 같은 말을 배워 와서는……. 하아.”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눈빛으로 해교의 목덜미를 바라보던 지혁이 구겨진 미간에 검지를 대곤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려 애를 썼으나 생각처럼 쉽게 가라앉힐 수 없어 몇 번이나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어제 목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는 말은 못 하겠지만 걸…… 하, 아무튼 그렇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네…….”
“나에게 숨기는 게 있나 싶어 조금 더 흥분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앞으로 나 말고 다른 사람 앞에서 보지 보여 줄 일 있을 거 같아요? 억지로라도?”
“아니, 아니요……. 절대…….”
절대 그럴 일 없다는 듯 해교가 젖은 눈동자를 깜빡이며 거세게 도리질했다.
“잘 생각했어요. 착하네요. 그럼 그딴 말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말아요. 대신…… 오늘 이후 어제 같은 일이 생긴다면 그땐 그 새끼 족치는 꼴 본다고 생각하세요.”
이미 족칠 준비를 시작했지만. 마지막 말은 삼켜 넘긴 지혁이 아까부터 힘이 들어가 딱딱하게 굳은 제 어깨를 한 손으로 눌러 풀었다. 당분간 본의 아니게 바빠질 텐데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했다.
* * *
눈꺼풀이 평소보다 내려앉자 시야도 좁아진 듯했다. 해교는 애써 눈을 치켜떠 마주한 지혁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기분은 나쁘지 않아 보였으나 제대로 본 게 맞는지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이런 거 혹시 좋아해요?”
지혁에게 이끌려간 다이닝룸 테이블 위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마카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개당 가격이 비싸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던 거였는데. 해교는 이걸 먹어도 되나, 고민하는 얼굴로 다시 한번 지혁을 바라보며 그의 허락을 기다렸다.
“먹여 달라는 겁니까. 그것도 괜찮지. 그럼 아, 해요.”
지혁이 정말 당장에라도 마카롱을 집어 입에 넣어 줄 것처럼 상체를 약간 든 채 눈매를 휘며 웃었다. 아, 정말 다행이다. 해교가 익히 알던 다정한 미소였다. 정말 선생님의 기분이 다시 좋아지신 듯했다.
“……아니, 아니에요……. 이런 거 처음 먹어 보기도 하고. 지, 진짜 많아서요.”
“많이 좋아해서 많이 사 뒀으니 입에 맞으면 말해요. 더 줄 수도 있어요.”
그제야 해교가 고개를 저으며 눈앞의 마카롱을 하나 집어 들었다. 어제 집 앞에서도 이렇게 생긴 마카롱을 봤던 것 같은데. 망설이다 입에 밀어 넣은 노란 색상의 마카롱은 씹자마자 달콤한 레몬 향이 입 안에서 확 퍼져 나갔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탄성이 퍼지는 해교의 표정에 지혁이 입 안 살을 깨물며 웃음을 참아 냈다. 어떡하지. 귀엽고 사랑스러워 미치겠는데 도무지 그러한 감정을 표현할 만한 상황이 아닌 터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었다.
해교는 중간중간 우유를 곁들여 마시며 마카롱을 우물댔다. 그리고 마침내 마카롱이 수북이 쌓여 있던 접시가 바닥을 드러냈을 때, 무언가 생각난 듯 주변을 힐끔 둘러보았다.
“뭐 찾는 거 있어요?”
“아, 어제 가져왔던 제 가방이요.”
“그거 2층에 가져다 놓았는데. 필요한 거 있어요?”
“휴대폰 확인 좀 하려고…….”
두 달이 넘게 신세 진 도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연락은 한 번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엔 좋지 않은 일이 있었지만 차후 신세를 갚으면 그 일은 털어 낼 작정이었다.
“가방 여기 있어요.”
지혁이 건네준 가방 속 휴대폰은 배터리가 닳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의사 선생님을 기다릴 때에도 배터리가 없어 시간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뒤늦게 떠올랐다.
해교는 휴대폰 충전기를 찾아 가방을 뒤적거렸다. 하지만 한참 동안 가방을 뒤져도 충전기 대신 애꿎은 속옷 몇 장과 티셔츠 따위의 것들만 나올 따름이었다. 느긋했던 마음이 한층 급해졌다.
“저, 선생님. 휴대폰 충전기 있으세요?”
“어떡하지. 내 충전기 단자는 C핀이라 차해교 씨 휴대폰과는 맞지 않을 것 같네요. 급하게 연락할 데라도 있어요?”
“아…… 괜찮아요. 그냥요.”
어차피 집에 간다고 했을 때 그럼 잘 가라고, 곧 또 보자고 미련 없이 웃어 준 도윤이었으니 지금 굳이 의사 선생님을 귀찮게 하며 연락할 수단을 찾을 필요는 없을 듯했다. 도윤과는 달리 바로 옆에 서 있던 우연제는 뭔가 찜찜한 듯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핥았지만. 그날 이후로 우연제에 대한 이해는 포기했으니 의미를 둘 필요는 없었다.
“당분간 지낼 곳은 있어요?”
“아, 아직…….”
해교가 암담한 표정으로 쭈뼛쭈뼛 대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윤이 말려도 가사 서비스 일은 계속하는 거였는데……. 한동안 잠적했던 탓에 가사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상에서 평가가 좋지 않아 예전만큼 그를 찾는 수요가 없는지라 돈을 벌기가 요원한 상황이었다.
“그럼 여기서 지내는 건 어떻습니까. 괜찮다는 사양은 말고. 어차피 진료하느라 늘 왔던 곳인데 새삼 집 구조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하고……. 말했듯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건 묻지 않을게요.”
“그게, 그게요…… 어제는 정말 감사하긴 했는데…….”
“어차피 차해교 씨는 내 사업 파트너나 다름없잖아요. 사업 파트너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는데 외면해서야 되겠습니까. 도의상 그러면 안 되지.”
“사업…… 파트너요?”
“양성구유 연구로 정부 지원비가 나온다고 했잖아요. 병원 굴러가는 데 차해교 씨가 일조해 주니 사업 파트너지, 뭐겠어요? 사실 병원 운영에 적자가 나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시기적절하게 차해교 씨를 만나서 구사일생한 거나 다름없어요.”
그새 머리를 굴려 급조한 멘트치고는 꽤나 차분하게 흘러나왔다. 지혁은 해교가 이런 식의 설득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설마 친구 집에 머무는 건 되고 나는 친구가 아니니까 안 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나 정도면 친구에 가깝지 않나요. 파트너인데. 당장 차해교 씨가 머무를 곳이 없어서 곤란해지면 더 곤란해지는 건 나라서 제안하는 겁니다.”
해교가 거절한다는 가정만으로도 기분이 나쁜 듯 지혁의 눈썹이 삐뚜름히 올라갔다. 그리고 그 표정에 놀란 해교가 주눅 드는 모습에 금세 장난이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해교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해 볼게요.”
“최대한 늦게 해결해도 좋아요. 어차피 우리는 진료 때문에라도 자주 만나는 게 좋은 사이니까. 차해교 씨가 여기 머물면 차해교 씨뿐만이 아니라 나도 편하고 좋아요. 서로가 이득인 거예요.”
“……네에.”
“보통 혼자 있을 때 제일 많이 하는 건 뭐예요?”
“청소요.”
“청소?”
그래. 가사 도우미 일을 했으니 청소를 많이 하긴 했겠지.
“그거 말고 좋아하는 일은 없어요?”
“어…… 아…….”
딱히 생각이 나지 않는 듯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지혁이 짧게 헛숨을 들이켰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라 왔는지 세세하게 알 순 없지만 풍족하게 이것저것 경험하지 못했단 것만은 확실했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청소년기를 보냈을 해교가 짐작되자 지혁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거칠게 짓씹었다.
“시간이 많으니까 이제 천천히 알아봐요.”
“아, 네에…….”
지혁은 드문드문 생각나는 대로 해교 또래가 좋아할 법한 취미들을 예시로 들며 그의 반응을 살폈다. 잘 모르겠다는 듯 어색하게 웃어 보이다가도 일순 표정이 밝아질 때면 그런 반응을 일으킨 취미 활동을 머릿속에 되새기며 준비할 목록을 정했다.
“선생님, 근데요, 진료……요. 계속 봐 주실 거죠…….”
해교가 풀이 죽은 얼굴로 지혁에게 물어 왔다. 당분간 진료를 하지 말자고 했던 말이 내내 걸려 눈치가 보였다. 연구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머무는 건데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민폐만 끼칠까 걱정되었다.
“당연하죠. 소중한 환자이자 사업 파트너라고 했잖아요. 2차 지원금도 며칠 뒤엔 나올 예정이니까 다시 성실히 임해 봅시다.”
퉁퉁 부은 눈매가 급격히 휘는 모습에 지혁이 작게 웃음 지었다. 심경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이라 파악이 쉬워 좋았다. 아니, 좋지 않게 느껴지는 게 있을 리 없다.
“어, 그럼 언제…… 어? 선생님. 오늘 병원은 안 가세요?”
“네, 안 가요.”
“왜…… 혹시 어디 아프세요?”
“아뇨. 급하게 준비할 일이 있어서 좀 쉽니다. 잠시 그것만 끝내고 진료 시작할까요.”
기저에 깔린 음습한 욕망을 전혀 읽어 내지 못한 해교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이 금방 끝내고 오겠다며 서재로 향하자 해교가 긴장이 풀린 듯 입술 새로 얕은 숨을 흘려보냈다. 선생님과의 인연이 끊기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 * *
“아…… 으읏…….”
배스 가운을 벗어 내리자 천에 젖가슴이 쓸렸다. 이제 젖꼭지는 옷을 입고 벗는 것만으로도 자극을 받아 반응해 왔다. 천이 유두와 유륜을 스치면 기다렸다는 듯 발딱 솟아올라서는 저릿저릿한 감각을 선사하는 것이다.
“벌써 섰네.”
“으응…….”
지혁이 빳빳이 일어난 유두를 검지 손톱 끝으로 톡, 건드리며 말했다. 탐스럽게 익은 유두 알갱이를 보자 태연한 척하는 지혁의 혀끝에 절로 침이 고였다.
지혁의 손길을 느낀 유두는 더욱더 단단하게 형태를 잡아 갔고 해교는 아랫배에 잔뜩 힘을 준 채 허벅지를 떨었다. 미묘하게 모여드는 쾌감에 해교의 얼굴은 꼭 깨물어 피가 통하지 않는 입술 외엔 온통 붉었다.
해교는 침대 위에서 지혁과 마주 앉은 채 나신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지혁은 모든 옷을 입고선 사타구니를 벌리고 앉아 있었고, 그가 조금만 힘을 준다면 그의 발끝에 손쉽게 해교의 엉덩이가 닿을 수 있을 법했다.
지혁이 검지에 힘을 주곤 튀어나온 젖꼭지를 아래위로 긁었다. 토, 독. 연분홍빛 돌기에 자극을 주면 줄수록 해교는 저도 모르게 점차 허리를 꺾으며 가슴을 내밀었다. 젖가슴 주변에서 간질간질한 느낌과 저릿한 느낌이 동시에 들면서 자꾸만 젖꼭지가 쑤셨다.
아아. 이걸론 부족했다.
더, 더 세게 선생님이 만져 주셨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자꾸만 일었다. 지혁은 그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고 더욱더 감질나도록 은근하게 유륜 주변을 손가락으로 맴돌았다.
“아…… 하으읏…….”
해교가 허리를 뒤틀며 양팔을 교차한 채로 침대에 손바닥을 대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상체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 몸의 무게 중심이 이동한 탓에 앞을 향해 상당히 쏠려 있었다.
지혁이 제 앞에 대령된 분홍빛 유륜의 지름을 따라 느릿하게 손가락을 둥글렸다. 살살 자극을 주어 민감해진 젖가슴에 안달이 난 해교가 참지 못하고 오른손을 들어 스스로 만지려 할 때, 지혁이 단호하게 해교를 막아섰다.
“어허.”
“하으으…….”
“가슴 만지고 싶어요?”
“흐으, 으응……. 아…… 느에…….”
해교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뒤 어쩔 줄 몰라 하며 상반신을 뒤틀었다. 그 행동에 양감 있는 젖가슴이 출렁출렁 얕게 흔들리며 지혁을 유혹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살결이 지나치게 부드러워 몇 번이나 거세게 그러잡고 싶었지만, 지혁은 결코 해교가 원하는 만큼의 악력을 주지 않은 채 계속해서 느릿느릿 여린 살갗 위를 손끝으로 부유했다.
아슬아슬, 조금만 손가락을 뻗어 주면 튀어나와 있는 젖가슴 끝을 푹, 눌러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교묘하게 손가락에 힘을 조절한 채로 가슴 끝만 덧그려 해교를 애태웠다.
어느덧 해교는 움칠 엉덩이에 힘을 준 채 무릎 사이를 점차 벌려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지혁이 침대맡에 두었던 스포이트형으로 생긴 니플 펌프를 가져왔다.
아까 방에 들어올 때부터 있었던 터라 용도가 매우 궁금했던 차였다. 해교는 착실히 흥분한 와중에도 지혁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시선을 움직이며 이상하게 생긴 기구를 관찰하였다.
일자로 들어간 함몰 유두 위에 끼운다면 더욱 좋았겠으나 볼록 솟아오른 유두 알갱이에 끼우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 같았다. 지혁은 투명한 관형의 니플 펌프를 젖가슴 정점에 씌운 뒤 흡착시켰다.
“아, 서언, 아응, 흐읏……!”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밀려오는 압력에 진공 상태에 갇힌 젖꼭지가 점차 몸집을 불리며 부풀어 올랐다. 사방에서 짓치는 압력에 피가 몰린 유두는 점점 더 붉게 변하며 발발 떨렸고, 유륜에서 뻗어 나가는 핏줄 또한 더욱 넓게 번져선 연한 푸른색을 띠었다.
마침내 자극이 쌓이고 쌓여 무르익은 유두 끝에서 지혁이 한없이 기다리던 변화가 일어났다. 투명한 관 안에서 봉긋하게 솟아오른 젖가슴이 오르내리는 모습이 심상찮았다. 그렇게 갇혀 있는 젖꼭지에 거듭 자극을 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유두 끝에 허연 유즙이 방울방울 맺혔다. 막 생겨난 유즙이 또르르 흘러내려 맺힌 플라스틱 관이 점차 뿌옇게 변해 갔다.
지혁은 유두에 덧씌운 니플 펌프를 거칠게 뽑아 버리고 양 유두를 엄지와 검지로 쥔 뒤 바깥쪽으로 비틀어 돌렸다. 하읏! 유두 끝이 저릿해지는 통각과 함께 정체 모를 액체가 돌기 끝에 조금씩 고여 들며 해교가 허리를 파들파들 떨었다.
“아! 흐으으…….”
지혁이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쥔 뒤 강하게 쥐어짜 냈다. 꼬집듯 누른 손가락 끝에서부터 끈적한 젖물이 터져 나왔다.
“이, 이게…… 뭐야……. 흐읏!”
지혁의 기다란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하얀 액체를 뒤늦게 발견한 해교가 깜짝 놀라 몸을 튀었다. 지혁은 해교의 반응을 신경 쓸 새 없이 계속해서 젖꼭지를 비틀고 누르며 모유를 짜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상했다.
가슴 끝에서 묽고 하얀 액체가 솟아나면 솟아날수록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해교는 하아응…… 으응…… 뜨거운 숨을 토해 내며 허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순간 팍, 터져 나오는 유즙과 함께 여태껏 막혀 있던 댐의 수문이 단번에 열리는 듯한 해방감이 쏟아졌다. 어느덧 해교의 자지 또한 곤두선 채로 투명한 액체를 흘리기 시작하였다.
지혁은 제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불투명한 유백색 액체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붉은 혀를 내밀었다. 당장에 이 역작을 핥아 내리고 싶었다.
갈급하게 맛본 유즙은 익히 알던 우유의 맛과 닮아 있었으나 오래 기다려 그런지 조금 더 달게 느껴지는 듯도 하였다. 젖물을 맛보던 지혁의 손길이 멈추자 방치해 둔 유두 끝에 맺힌 모유가 쪼르르 젖꼭지를 타고 흘러 해교의 배꼽을 적셨다.
“서, 선생니임. 더어, 더 해…… 주세요. 네? 흐으, 우응.”
젖꼭지에 쏟아지는 자극이 멈추자 안달이 난 해교가 가슴을 흔들며 지혁에게 매달렸다.
돌기 끝에 유즙이 흥건하게 고일 때마다 힘을 주어 짜낸 젖꼭지는 어느덧 짓무른 채 퉁퉁 부어올랐다. 지혁은 이를 달래듯 젖꼭지에 입술을 댄 채 힘을 주어 터져 나오는 젖을 빨았다. 지혁이 젖 먹는 아이가 된 듯 젖가슴을 쥔 채 쭉쭉 빨아 대자 뾰족하게 솟아오른 돌기가 잘게 떨렸고, 쪽, 빨린 가슴 언저리의 핏줄이 한층 푸르게 도드라지며 지혁의 흥분을 돋웠다.
부드럽고 따뜻한 입술이 젖꼭지를 뒤덮자 쾌감은 더욱 짙어졌다. 해교는 가슴 정점에서 퍼지는 찌릿찌릿한 쾌감을 어찌할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발꿈치가 매트를 치고 문질러 대는 통에 여린 발꿈치 살갗이 분홍빛으로 변했다. 지혁이 다시 한번 침대를 내려치려는 해교의 두 발을 붙들고 마사지하듯 주물렀다.
“하……흐으! 서, 선생……!”
깜짝 놀란 해교가 동작을 멈추자, 지혁이 느른하게 웃으며 제 손아귀 안에 붙들린 조그만 발을 천천히 만지작대다 다시 젖꼭지에 혀를 대었다. 아아앙……. 해교가 다시 초점이 풀린 눈을 한 채로 지혁의 입술에 더더욱 가까이 제 젖꼭지를 밀착했다. 지혁은 살짝 이를 세운 채 턱을 들었고, 해교는 허리를 비틀며 가슴을 빨기 좋게 가져다 대었다.
조금이라도 지혁이 약하게 모유를 빨아 댄다고 느낄 때면 더, 더 세게 빨아 달라는 듯 가슴을 마구 앞으로 내밀었다.
이에 화답하듯 지혁이 게걸스레 젖꼭지를 빨아 삼키자 그 순간 해교의 헐떡임이 점차적으로 격해지며 조그만 자지에서 유즙보다 짙은 색깔의 액체가 울컥울컥 흘렀다. 젖을 빨리는 것만으로도 절정에 오른 것이다.
벼락처럼 내려진 절정감에 해교가 부르르 몸을 떨자, 이에 흥분한 지혁이 젖가슴에서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보지 둔덕을 더듬었다. 지혁의 팔꿈치를 타고 유백색 즙이 흘러내리고, 뜨끈하게 열이 오른 보지가 펄떡이며 거대한 자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어……?”
이상하다. 휴대폰 충전기를 사러 나가야 하는데, 현관문이 안 열렸다. 해교는 아무래도 자신이 문 여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큰 집이라면 일반적인 가정집과는 다른 잠금 해제 시스템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어차피 1시간 정도만 더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 퇴근해서 집에 오실 시간이니 그때 물어보는 게 좋겠다. 안 그래도 휴대폰을 켤 수 없어 마땅히 의사 선생님께 연락할 방법이 없기도 했으니.
“그럼 게임이나 좀 더 할까…….”
뜻하지 않게 외출이 막힌 해교는 거실 TV와 연결되어 있는 비디오 게임기를 바라보았다. 지혁이 준비해 둔 거치형 게임기는 CD를 넣는 형식으로 진행돼 ‘대강 20대 초반 남자애가 좋아할 만한 걸로 아무거나’를 외친 지혁의 말에 따라 준비된 CD가 거실 한편에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다.
해교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심심하면 게임을 하라며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게임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던 순간을 떠올렸다.
〈일단 오늘은 이거 하면서 보내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의 기다란 팔을 따라 시선이 내려오고 곧 그 시선은 그의 손에 들린 게임 CD와 컨트롤러에 닿은 채 멈추었다. 조건반사처럼 벌어지는 입술에 의사 선생님이 쿡, 작게 웃으셨던 것도 같다.
지혁은 당장 멍한 얼굴 전체에 뽀뽀 세례를 해 주고픈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곤 게임 컨트롤러를 해교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조작 방식과 방법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 유저 간 대화나 대결 또한 기본적으로 가능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쏙 뺀 채였다.
요령 없이 버튼을 연타하는 해교가 레벨을 높이길 기다리는 것은 꽤 많은 인내심을 요구할 터였다. 사실 지혁도 직원이 설명해 준 걸 다시 읊어 주는 수준이라 해교가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을 때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당분간은 게임에 시선을 돌려놓을 수 있겠단 생각으로 준비했던 터, 지혁은 곧 기대감에 부푼 해교와 시험 삼아 게임을 같이 시작하였다.
이상하게도 의사 선생님은 해교가 앞서 달려 나가서 불을 뿜는 악당들을 무찌르고 있을 때면 맥없이 죽기 일쑤였다.
〈아아…… 또 해교 씨만 살아남았네.〉
불퉁한 말과는 달리 바닥을 가볍게 쳐 대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경쾌했다. 이를 알 리 없는 해교는 이번 주말에는 꼭 선생님께 다음 판으로 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열정적으로 게임에 임했다.
그렇게 해교가 기억을 더듬는 사이, 언제 대문을 거쳤는지 현관문이 열리며 지혁이 들어섰다. 밤새 해교와 놀아 주느라 피곤했을 텐데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다녀오셨어요?”
해교가 쪼르르 현관문으로 달려가 인사하자 지혁이 잠시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그래요. 다녀왔어요. 잘 있었어요?”
“네에…….”
“점심은 맛있게 먹었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게 입맛에 맞았나 모르겠네요.”
“네에……. 그런데요, 선생님. 제가 여니까 현관문이 안 열려요.”
“그래요?”
지혁이 해교의 말에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하였다.
“왜 나가려고 했어요?”
“어…… 휴대폰 충전기 사려고요……. 편의점에 갈까 하고……. 선생님 댁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편의점이 있어서…….”
“음…….”
지혁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대폰 충전이 급해요? 왜?”
“그, 그런 건 아닌데……. ‘여러분의 집사’ 확인 좀 해 보고 싶어서…….”
“평점도 많이 떨어졌다면서 왜 굳이. 이 집에 있는 게 불편해요? 내가 많이 부족하게 대접했나 봅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나갈 필요 없잖아요. 환절기에 괜히 나갔다 감기 걸리지. 문 여는 건 다른 집이랑 별다를 게 없어요. 손에 힘이 없어서 비껴 나간 거 아니에요? 더 많이 먹여야겠네.”
지혁이 사르르, 감미롭게 웃으며 해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가. 하긴, ‘여러분의 집사’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해 봤자 새로운 예약이 들어왔을 확률도 낮은데, 그렇다면 지금 자신에게 휴대폰이 급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크고 좋은 집이라면 비싼 물건도 많을 텐데 제대로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가 괜히 도둑이라도 들면 큰일이었고.
해교는 다시 짧은 제 생각을 탓하며 지혁의 말에 금세 수긍하였다.
“……네.”
“오늘 게임은 많이 했어요?”
아직까지 TV 액정에 정지 상태로 띄워진 게임 화면을 보며 지혁이 물었다.
“네에…… 그, 그런데 아직 마왕 만나러 가는 길에서 자꾸 죽어요.”
“그랬구나. 그래도 차해교 씨가 나보다 훨씬 더 잘하니까, 조만간 마왕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맞아요. 제가 꼭 먼저 마왕 만나는 거 보여 드릴게요!”
“응. 고마워요. 부탁할게요.”
지혁이 1층 욕실로 간 사이 해교는 그가 다이닝룸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찬합 통을 살폈다. 아무래도 음식 같은데……. 그동안 선생님과 병원에서 먹었던 것처럼 식당의 음식을 포장해 왔다기보다는 가정식을 담아 온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지혁이 준비해 두고 간 음식 역시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배달 음식이 아니라 직접 조리한 걸 잘 담아 둔 모습이었다. 또한 낮 동안 구석구석 살핀 집은 먼지 한 톨 하나 없어 해교가 그 어디에도 손댈 곳이 없어 보였다. 거기다 식재료까지 다듬을 필요 없이 조리된 식품들만이 냉장고 안에 가득했고.
해교가 고개를 갸웃하며 테이블 앞에 서 있을 때, 어느새 샤워를 마친 지혁이 다가왔다. 같은 배스 가운인데 해교가 입었을 때와는 완전히 태가 달랐다.
직각으로 떨어지는 어깨에 딱 맞는 가운의 품, 살짝 보이는 갈라진 가슴 근육, 그리고 턱 끝에 맺힌 물방울이 굵다란 목선을 따라 또르르 흘러내리는 것까지. 공을 들여 세팅이라도 한 것만 같은 형상에 해교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점심은 양식이어서 저녁은 한식으로 받아 왔어요.”
“받아 와요?”
“밖에서 사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집안일 해 주는 분이 시간 맞춰 가져다줘요. 오늘 해교 씨 점심 식사도 그분 솜씨예요.”
“저는 그분을 못 만났는데…….”
“당연하지. 아마 당분간은 마주칠 일 없을 거예요.”
지혁이 해교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곤 각종 음식이 든 찬합을 테이블에 하나씩 풀어 놓았다. 고작 반찬을 내려놓는 움직임에도 팽팽하고 견고한 근육이 선명하게 너울거렸다. 해교는 눈치껏 수저를 가지러 부엌으로 가며 연이은 의문을 털어 냈다.
* * *
내내 집 안에만 있어 기온의 변화를 모르던 해교가 창문에 매미처럼 붙은 채로 뒤뜰에 있는 수영장을 바라보았다. 초가을임에도 불구하고 한낮은 여전히 여름의 끝자락 같아 볕이 좋은 날씨였다. 해교는 모처럼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어 창문을 열려 했다.
“어……?”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좋은 집은 창문을 여는 방법이 따로 있는 듯했다. 해교는 별수 없이 커다란 나무들이 살랑살랑 은근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거실 창을 통해 지켜보기만 했다. 때마침 서재에서 지혁이 나오는 모습에 해교가 비스듬히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저기, 창문이 안 열려요…….”
“창문은 왜 열려고 했어요.”
“수영장 보다가 주변에 나뭇잎이 움직이길래요. 그냥, 바람 쐬고 싶어서.”
“그랬구나. 창문이 자주 고장 나더라고요. 나중에 고쳐야겠네.”
지혁은 해교가 신기한 듯 눈동자를 굴리며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보곤 다가가 어깨를 감싸 쥐었다.
“수영하고 싶어요?”
“아니요. 수영할 줄 몰라요. 집에 수영장이 있으니까 신기해서 본 거예요.”
“나가 볼까요? 아직 날이 춥지는 않아서 수영장 쓰기 나쁘지 않은 날씨 같은데.”
“수, 수영복이 없어서…….”
“어차피 우리 둘만 있는데 뭐 어때요.”
높다란 담이 성벽처럼 주택 전체를 둘러싸고 있을뿐더러 프라이빗한 공간 설계를 위해 수영장은 불투명한 유리 벽이 한 번 더 둘러싼 채였다. 해교는 수영장에 물이 찰 동안 간만에 바깥 내음을 맡으며 뒤뜰을 구경했다. 지혁의 말처럼 심하게 무덥지도, 춥지도 않아서 물놀이하기 좋은 주말이었다.
유리창이 덧대지지 않은 채 바라보는 나무와 꽃들에서 은은하게 좋은 향기가 났다. 킁킁대며 식물의 향을 맡아 보고 쓰다듬어도 보았다. 그렇게 바로 앞의 조경들을 구경하다가 어느덧 시선이 먼 창공을 향했고, 저도 모르게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바라보게 되었다.
“어디 봐요?”
지혁이 집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해교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쥐면서 당긴 탓에 해교의 몸은 지혁에게 한결 더 가까이 다가갔고, 동시에 뜰과 멀어지게 되었다. 지혁의 표정이 어울리지 않게 초조해 보였다.
“아…… 하늘이 예뻐서요. 그리고 선생님 집에 전에 올라올 때 예쁜 카페를 봤었는데요, 그 카페 지붕도 여기서 보여서…….”
“스무디든, 라테든 주방에 있는 머신이면 다 만들 수 있어요. 이따 배달시켜 먹어도 되고. 이제 수영하러 갑시다.”
모처럼 맡는 바깥공기를 즐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지혁은 금세 주의를 수영장으로 돌릴 심산으로 해교를 이끌었고, 해교는 그 의도에 맞추어 유리 벽이 세워진 공간으로 들어섰다. 어느새 모든 준비가 끝난 수영장은 지혁의 의도처럼 해교가 곧 다른 생각들을 하지 못하게 유도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간은 외부와는 완연히 단절된 것처럼 온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주택에 딸렸다고 생각하기엔 다소 큰 수영장 턱 옆엔 빼곡한 데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데크 주변엔 선베드 2개와 작은 테라스로 꾸며진 공간이 있었다.
“만들어 놨으면 써야 하는데 사실 잘 안 써요. 여기 부지를 매입한 이유도 이게 컸는데 말이에요. 차해교 씨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쉬어 보네.”
지혁이 굳었던 표정을 푼 뒤 양팔을 교차해 셔츠를 벗었다. 선명하게 솟아오른 가슴 근육을 해교가 넋 놓고 바라보던 사이, 뒤이어 허리를 숙여 바지 또한 벗어 내렸다. 순식간에 회색 드로어즈만 걸친 채로 섬세하게 조각된 몸체가 드러났다.
“아무도 못 봐요. 편하게 해요.”
지혁의 말에 용기를 얻은 해교가 망설이다 그를 따라 상의와 하의를 차례대로 벗었다. 지혁처럼 드로어즈만을 남기고 몽땅 내려놓자 왠지 말랑말랑하기만 한 몸이 부끄러워 어깨를 움츠리게 되었다.
자신에게는 그다지 높지 않은 높이였지만 해교가 들어온다면 까치발을 해야 겨우 얼굴을 꺼낼 수 있는 수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혁이 잠시 곤란한 표정을 하였지만 그 낯은 길게 유지되지 않았다.
지혁이 어서 들어가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하자 해교는 허벅지를 수영장 턱에 걸친 뒤, 종아리만 수영장 안으로 내렸다. 햇볕이 반사된 물 표면이 종아리에 갈라져 반짝이며 물결 모양을 이뤘다. 지혁은 조심조심 종아리를 흔드는 해교를 바라보며 다정히 미소 지은 뒤 해교와 별개로 수영장 물속에 제 몸을 담갔다.
몇 번 자맥질하며 몸을 놀리던 지혁은 곧 수영장 밖으로 나와선 데크 옆에 설치된 테라스로 가 고개를 내리고 제 아랫도리를 바라보았다.
드로어즈 왼쪽 천이 사선으로 또렷이 솟아 있었다. 이래선 도무지 수영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지혁은 미련 없이 드로어즈를 아래로 내렸고, 늘 자지를 수납해 둔 왼쪽 허벅지에서 튕겨 나온 거대한 좆 귀두 끝에 수영장 물과는 확실히 다른 점성의 선액이 맺혀 질질 흘러나오는 광경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물보다 무거운 그것이 기둥을 타고 흘러내리자 뒤이어 투명한 물까지 함께 휩쓸리듯 지혁의 좆 기둥을 타고 내려왔다.
지혁이 종아리만 담근 채 물장구치고 있던 해교의 옆으로 다가와선 풍덩, 수영장에 다시 한번 제 몸을 담갔다. 그러곤 눈가에 물이 튀어 깜짝 놀란 해교가 손등으로 미처 눈을 비비기도 전에 해교의 허리를 감싸 안아 수영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앗! 서, 선생님! 저 수영, 흐으, 수영 못……!”
“응. 괜찮아요. 나 잡아요.”
지나치게 태연한 표정을 한 지혁이 해교를 바짝 안아 주었다. 해교는 아기 코알라라도 된 것처럼 지혁에게 딱 달라붙어선 그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버둥거리는 해교의 엉덩이로 얇은 천을 사이에 둔 단단한 좆 대가리가 꺼떡이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지혁이 한 손으로는 해교의 허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엉덩이를 감싸 안은 채로 느릿하게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해교의 엉덩이를 받쳐 안은 지혁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바위처럼 단단하게 일어난 좆이 해교의 회음부와 보지를 문질거리며 지나쳤다.
“흐으으……!”
해교는 어느새 허벅지에 힘을 주고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선연한 자극을 참아 내려 애썼다. 낑낑거리며 숨이 뜨거워지는 해교를 진작 알아챈 지혁이 짓궂은 표정으로 모르는 척 계속해서 제 좆을 해교의 보지에 치댔다. 시원한 수영장 물 안에 몸을 담갔는데도 불구하고 해교에게선 더운 숨이 마구 쏟아졌다.
“서언…… 흐응!”
어느덧 물에 젖은 드로어즈는 흘러나오는 보짓물로 더욱 질척하게 적셔졌고, 드로어즈와 밀착된 지혁의 자지에도 흥건한 애액이 번져 나갔다. 해교는 지혁이 고간을 살짝 맞대 올 때마다 슬쩍슬쩍 엉덩이를 움직여 스치듯 지나가는 기둥에 조금이라도 보지를 비벼 대기 위해 노력했다.
은근히 보지를 비비적거리는 것을 느낀 지혁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작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사타구니를 제대로 맞닿게 하면 해교의 꼬리뼈까지 닿는 지혁의 자지 때문에 해교는 눈을 꼭 감은 채 기다란 속눈썹을 파르르 떨어 댔다.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 느껴지는 감촉이 너무나도 버거웠다.
지혁은 다시 한번 추삽질하듯 허리를 물렀다가 깊숙이 아래를 파고들었다.
이제 회음부 주변이 욱신거릴 정도로 얼얼했다. 직접적으로 닿는 자지의 느낌도 선연했지만, 자지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함께 갈라지고, 휩쓸리는 물살이 주는 이상야릇한 촉감 역시 해교를 견디기 힘들게 했다.
“하아앙…… 아앙! 쟈으, 흣, 쟈안깐, 아앙, 만……. 흐응!”
파도치듯 물살이 드로어즈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소스라칠 만큼 거대한 전율에 해교가 지혁의 목덜미를 더더욱 세게 감으며 하체를 붙여 왔다. 어느덧 해교의 자그마한 자지는 단단히 곤두선 채 지혁의 복부를 문지르고 있었다.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빳빳한 느낌을 주는 살덩이를 모른 척하며 엉덩이를 꽉 붙들고 다시 한번 자세를 바로잡자, 아슬아슬하게 사정감을 참아 내던 해교가 마침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아, 아응!”
복부에 닿은 천에서 뜨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해교가 사정한 것이었다. 당황한 해교가 엉덩이를 들썩이는 와중에 지혁이 해교의 골반에 걸린 드로어즈 밴드를 붙잡고 단숨에 허벅지께까지 끌어 내렸다.
드로어즈를 내리자 방금 좆물을 사출해 낸 조그마한 성기가 물살에 휩쓸린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흐으…… 서, 선생님……. 제, 제가……. 학, 읏!”
지혁이 변명하려는 해교의 입술을 제 입술로 막고선, 단숨에 민감해진 질을 가르고 흉측한 살덩이를 짓이겨 넣기 시작하였다. 수압 때문에 보지 구멍을 꿰뚫는 일은 수월하지 않았지만 잘게 떨리는 질 점막에서 쏟아져 나오는 보짓물 덕택에 자지는 곧 좁은 입구를 거쳐 깊숙한 곳으로 굵다란 귀두를 밀어 넣을 수 있었다.
“후으…….”
“으응, 으읏……!”
지혁이 착실히 달군 붉은 점막이 자지 모양에 맞추어 내벽을 꿀렁였다. 지혁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해교가 자지러지듯 고개를 꺾은 채 마구 교성을 흘렸다.
지혁은 엄지 끄트머리로 어느덧 팽팽하게 일어난 해교의 유두를 꾹 눌렀다. 그리고 뭉근하게 자극을 주다 멈추길 반복하였다. 잠시 후, 지문에 뜨끈한 액체가 묻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투명한 물에 잠긴 가슴께에서 하얀색 물감을 푼 것처럼 한 줄기의 액체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즙이었다.
해교는 유두에서 퍼져 나가는 야릇한 감각에 매몰된 채 뿌옇게 번져 나가는 모유를 흐리멍덩하게 바라보았다.
“아, 으, 가, 가슴에서, 우유가…… 흐으으…….”
“그러게. 우유가 나오네. 아깝게.”
지혁이 젖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것처럼 해교의 동그란 젖꼭지를 엄지로 짓눌렀다. 쪼르르, 쏟아져 나오던 모유가 막히자 부푼 가슴 끄트머리가 갑갑해져 왔다. 해교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의 엄지에 제 가슴을 비비적대었다.
지혁이 살짝 허리를 물렀다가 단번에 쳐 올렸다. 거칠게 쑤셔 박히는 자지와 함께 물살이 들이치자 해교가 파드득 허리를 떨며 지혁의 목을 감아 왔다. 뜨끈한 액체가 자꾸만 젖꼭지에서 흘러나오는데 이상하리만큼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혁이 점차 앞으로 나아가며 허리 짓을 이어 갔다. 마침내 해교의 등이 수영장 대리석 벽에 닿았을 때, 지혁은 가벼이 그의 허리를 틀어쥔 채 물 밖으로 끌어 올리곤 저 또한 데크 위로 올라왔다. 뒤이어 물의 저항감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자유로이 자지를 처박았다.
“하으, 흐, 읏, 아아앙!”
퍽! 기다란 틈을 가르고 자지를 박아 넣자, 해교의 허연 허벅지가 움찔 떨렸다. 지혁은 해교의 무릎 뒤를 가볍게 짓누른 채 길게 자지를 뽑아냈다가 다시금 단단한 귀두를 보지 안으로 짓쳤다. 묵직하고 거대한 자지가 보지를 오갈 때마다 해교의 발가락 끝이 접혔다 펴지길 되풀이하였다.
물에서 건져 낸 해교의 상체는 자꾸만 흘러나오는 유즙으로 인해 유백색의 불투명한 액체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젖물을 뱉어 내는 젖꼭지는 통통하게 부푼 채 발발 떨렸고, 모유 색과 대조되는 붉은 알갱이는 더없이 야했다.
지혁은 능선을 그리는 젖가슴을 쥐었다. 말랑말랑한 살결은 지혁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찌그러져선 젖을 짜내듯 꾹, 몽우리를 누르는 손길을 따라 위로 솟았다.
짜내면 짜낼수록 젖통에 젖이 차는 시간 간격이 점차적으로 줄어드는 듯했다.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존재감을 나타내는 데에는 충분할 만큼의 젖물이 퓻, 포물선을 그리며 흘러나왔다.
하응! 저릿함을 느끼며 해교가 갓 잡아 올린 활어처럼 팔딱거렸다. 가슴에서 오는 전율에 아찔한 쾌감이 일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혁이 하얀 젖물로 번들거리는 상반신을 바라보다 연결된 하반신에 시선을 주었다. 수영장 물과 섞여 흐르는 모유는 가랑이 사이를 타고 흘러 둔부를 지나 애널까지 적시고 있었다. 조그만 구멍을 둘러싼 주름 사이사이, 허연 액체가 쪼르르 흘러내리다 조금씩 내벽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제 몸에서 나온 모유를 다시 맛있게 씹어 삼키는 듯한 모습에 지혁이 숨을 죽였다. 벌름거리는 구멍 안 붉은 살점엔 묽고 하얀 물이 조금씩 번져 나가고 있었다.
지혁은 보지 안에서 꿈틀대던 자지를 서서히 빼내곤 제 몸을 물렸다.
“하아…… 하아. 선생……님?”
아직 사정에 도달하지 못한 지혁이 자지를 꺼내는 건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잠시 밭은 숨을 내쉬던 해교가 고개를 돌려 지혁을 확인하려던 순간.
“아……흣! 아! 아!”
해교의 엉덩이가 꼼짝없이 붙들린 채 아랫구멍 사이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았다. 해교가 뒤늦게 엉덩이를 뒤로 물리려 했지만 지혁의 단단한 손가락이 우악스레 엉덩이 살을 틀어쥐어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흥분으로 힘이 들어간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연약하고 하얀 살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채로 파들파들 떨렸다.
지혁은 아까부터 지나치게 탐스러워 보였던 구멍을 내내 핥고 싶었다. 보지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프리컴으로 진탕 흥건해져 비위생적이긴 했지만 차해교의 애액과 유즙 역시 함께 녹아들었으니 역할 리 없었다.
“하으, 힉!”
흐느끼듯 내지르는 교성을 듣자 기꺼운 흥분만이 가득 일었다. 해교가 힉힉거리며 고개를 가로젓고 거부했으나 지혁은 꼼짝 않고 계속해서 아랫구멍 여기저기를 말캉한 혀로 핥아 대기 바빴다. 혀끝에 닿는 살갗이 다디달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선생님! 더러, 흐, 워요, 아……흑! 하지, 앙, 아아읏!”
날름거리는 질척한 살덩이가 움직일 때마다 할짝이는 소리를 만들어 냈다. 촉촉한 구멍을 쑤시고 농락할 때마다 해교의 허리가 움칠 튀었다. 보지를 빨릴 때도 부끄럽긴 매한가지였으나 뒷보지는 비교가 불가능했다.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을 남김없이 내어 준다는 사실에 잊고 있었던 수치심이 온몸을 뒤덮었다.
지혁은 혀에 심을 세운 채 주름 하나하나를 덧그리며 정성스레 혀를 내렸다. 쭙쭙, 쯔읍, 젖은 살갗을 질펀하게 핥고 빠는 소리가 났다. 한참 동안 구멍 어귀를 굶주린 듯 빨아 대던 지혁은 뒤이어 주름진 구멍 속을 깊숙이 들쑤셨다.
점액질과 함께 뜨끈한 점막을 빨아올릴 때마다 보드라운 엉덩이 살이 경련했다. 매끄러운 내벽의 모양을 따라가며 게걸스럽게 살덩이를 넣고 빼길 반복하자 아랫구멍은 이를 자지로 아는 듯 거세게 좁아 들며 조였다.
집요하리만치 뒷보지를 물고 빨던 지혁이 얼굴을 들자 그의 입가는 희멀건 체액으로 뒤범벅이었다. 지혁은 손등으로 흘러내리는 체액을 닦아 낸 뒤, 곧바로 흐물흐물 풀린 뒷구멍에 자지를 맞대었다.
“하아……. 씹…….”
녹진하게 풀어져 녹아내린 구멍이 귀두를 흡착하듯 빨아들였다. 단숨에 자지를 찔러 넣자 좁은 구멍이 벌어지며 밀려오는 살덩이를 받아들였다. 혀로 녹일 듯 빨아 댔던 구멍이라 굵은 귀두가 통과하자마자 이내 자지 전체에 찰싹 들러붙었다.
배 속이 너무 뜨거웠다. 하…… 아앙…… 우응…… 어느덧 해교의 자지는 다시 한번 빳빳하게 고개를 들었고 내내 품던 자지를 빼앗긴 보지는 허전한 듯 벌렁이며 보짓물을 싸 댔다. 거대한 자지를 맛있게 씹어 먹는 뒷보지는 꿈틀거리며 뜨거운 살덩이를 삼키는 와중이었다.
지혁이 손에 감겨 오는 볼기를 꽉 주무르며 느릿하게 자지를 뽑아내자 살 기둥을 감싸던 점막이 밖으로 따라 나갈 것처럼 들썩였다. 쯔걱, 가지 말라는 듯 선홍빛 점막이 구멍 어귀까지 따라붙었다. 지혁은 이내 뽑아낸 자지를 퍽, 재차 빠르게 밀어 넣었다.
무리 없이 진입한 자지 선단은 한참 동안 달아오른 점막을 긁어대다 내벽 깊숙하고 은밀한 곳에 좆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지혁은 선단에 힘을 주곤 볼록 튀어나온 극점을 겨냥해 허리를 살살 돌렸다.
“아! 흐으……. 히이…….”
붉은 내벽을 오르내리는 귀두가 작정한 것처럼 한곳만을 뭉개고 치대자 좆 기둥과 맞닿는 점막 곳곳이 녹아내렸다. 확장된 점막이 자지를 집어삼킬 듯 질펀하게 끓어오르자 뜨겁게 데워진 피가 몽땅 작은 자지로 몰려 해교의 좆이 꺼떡거렸다.
지혁은 예민한 점막을 짓누른 채 찍어 올리는 짓을 끝없이 반복했다. 이에 해교는 벌어진 허벅지를 벌벌 떨어 대며 눈을 뒤집었고, 이윽고 건드리지 않은 유두 끝에서 한층 더 진한 젖물이 터져 나왔다. 가히 절경이었다.
지혁은 해교의 허벅지를 쥐고 밀어 올려 무릎을 가슴께에 닿게 한 뒤 흘러나오는 유즙을 한 방울도 놓치지 않을 것처럼 갈급하게 빨아 마셨다. 남김없이 싹싹 핥아 먹었다. 이에 해교는 온몸이 말린 채로 흐느끼듯 신음을 흘렸다.
“아흥, 응, 흐읏! 아! 아!”
젖꼭지를 빨면서도 허리 짓은 멈추지 않아 철썩철썩 사타구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밀실 같은 공간을 울렸다. 지혁이 계속해서 허리를 박아 넣자 해교가 먼저 두 번째 사정에 도달했다. 절정감을 느낀 해교의 뒷구멍이 빠르게 개폐를 반복하며 오물거렸다.
쏟아지는 자극에 젖은 살결을 치대는 소리는 점차 박자를 달리했다. 한참 동안 바깥과 차단된 공간에 퍼져 나가던 철퍽이는 소리는 지혁의 잇새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오자 마침내 멈추었다. 여전히 하얀 젖물은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의사 선생님이 출근한 사이 종일 게임만 해서인지 두통이 일었다. 조금 머리를 식히고 싶었던 해교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두커니 계단을 바라보다 지하로 향했다.
거실 구석진 곳의 중문을 열고 연결된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1층 거실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지하 거실이 눈에 담겼다. 이곳에는 일전에 도윤의 서재에서 보았던 것보다도 훨씬 큰 하얀색 스크린과 이를 감싸는 새카만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게임하다가 지겨우면 여기로 내려와서 영화 봐요.〉
진작 지혁이 해교에게 영화를 보라고 소개해 주었던 공간이었지만 그간 게임에 빠져 있느라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던 곳이기도 했다.
〈우와…… 서, 선생님은 여기 있는 거 다 보셨어요?〉
〈아직요. 차해교 씨가 먼저 보고 재미있는 거 추천해 줘요.〉
설마. 진작 기기만 마련해 두었지 DVD는 모조리 이번에 구비한 것이었다. 지혁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잔뜩 신이 난 해교와 눈을 마주하고 웃었다.
“뭘 보지…….”
셀 수 없이 많은 DVD가 꽂힌 벽면을 휘휘 둘러보던 해교는 눈을 감고 손에 닿는 DVD 케이스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한참 진열장을 더듬다 결심한 듯 DVD를 골라 꺼냈다. 하지만 영어로 제목이 적혀 있어서 무슨 말인지 읽을 수가 없었다.
“에이, 외국 건가? 영어는 모르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TV에서 몇 번 스치듯 보았던 한국 영화배우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조그맣게 한글로 출연 배우들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왠지 어두컴컴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표지라 꺼림칙하긴 했지만 처음 집은 걸 보기로 마음먹은 터라 일단 영화를 재생해서 보기로 했다.
누군가 친절하게 스크린으로 영화 보는 법을 일러둔 안내문을 읽으며 사투한 해교는 한참 뒤에야 고른 DVD를 재생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스크린과 반대 방향에 놓인 소파로 가 자리를 잡고는 거실 불을 껐다.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누구냐, 대체. 누가 날 가둬 둔 거야.]
삼십여 분가량 집중해서 스크린을 바라보던 해교의 미간에 줄이 그어졌다. 어디에도 나갈 수 없게 감금된 남자에게 매일 식사로 군만두가 배달되어 온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다행히 방 안엔 TV도 있고, 음식도 넣어 주고, 화장실도 있었지만…….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을 수 있는 식사는 오직 군만두뿐이었다.
“불쌍해…….”
늘 같은 장소에만 머물러야 하는데다 매끼 똑같은 군만두만 먹는다니, 정말이지 주인공이 너무 불쌍했다. 나갈 수 없게 갇혀 있다면 매일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도 모자랄 판에.
더불어 원하는 때 밖에 나가서 바깥공기를 맡지 못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어떤 맛있는 음식을 주어도 맛있게 느껴질 리 없었다. 아무리 영화라도 너무 무서운 소재라는 생각에 해교는 얼굴을 찌푸린 채 화면을 멈추었다.
감금이라니. 어려운 말은 모르지만 자유가 박탈당한 채 어디에 갇혀 있는 것을 뜻한다는 것만은 잘 알았다.
저와는 평생 상관없을 이야기지만 주인공이 너무 괴로워 보여 보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이런 소재의 영화를 고르다니 괜히 눈을 감고 골랐다 싶었다. 이렇게 끔찍한 내용의 영화를 보느니 그냥 하던 대로 게임을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해교는 미련 없이 보던 영화를 껐다.
그러곤 사념을 금세 지우고 이내 다시 거실로 돌아가 하던 게임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이 퇴근하시면 꼭 마왕을 해치웠다는 말을 전하고 칭찬을 듣고 싶었다. 주말에는 같이 게임을 하면서 엔딩을 보면 참 좋을 것 같았으니까.
* * *
“후, 그럼 그 건은 그렇게 처리하는 걸로 알죠. 끊겠습니다.”
지혁이 낮은 한숨을 흘리며 손에 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예전부터 지헌이 꾸준히 부탁해 왔던 일을 근래에서야 수락한 이후 흔히 겪는 일과 중 하나였다. 부릴 수 있는 사람을 쓰려면 이 방법이 제일이었다. 한량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었으니까.
지혁은 예전부터 자신이 경영권을 가져올 때까지 사외 이사직을 맡아 달라고 부탁해 오던 지헌의 말을 꾸준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조부가 키워 낸 H 재단은 병원을 비롯한 제약 및 다양한 의료 사업을 다루는데, 그가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이를 쟁탈하기 위한 혈육들의 사투 현장으로 변모한 지 오래였다.
동생 지헌 역시 실무 경험을 쌓는다는 핑계로 그 현장에 참여한 터였다. 유독 지혁을 예뻐한 조부는 지혁이 원한다면 당장에라도 한 자리를 뚝 떼어 내 줄 심산이었지만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지혁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저 강 건너 불구경, 아니, 불놀이에 관심도 주지 않았다. 병원 하나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찮았다.
그러는 사이 해교와 함께 지내려니 조사하고 작업해 둘 일이 자잘하게 생겼고, 시기적절하게 지헌 역시 이전보다 더더욱 지혁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결혼으로 K 메디컬과 손을 잡게 된다면 의결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지헌이 제시한 조건들 중 지혁에게 꽤나 혹하는 제안이 있었다. 사외 이사직 수락 이전의 삶과 비교해 조금 귀찮아지기야 하겠지만 지혁으로서는 저를 대신할 손발을 얻을 수 있는 격의 제안이었다.
저울질을 해 본 결과, 영 나쁘지는 않다는 판단이 일었다.
막무가내로 사람을 끌어오는 것보다 면도 서고, 당사자 역시 보직이 유지되는 데다가, 지헌으로서는 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안을 이끌어 줄 지혁을 얻고. 여하튼 표면적으로 손해 보는 사람이 없는 제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초반 걱정과는 달리 겸업 덕택에 기존에 의사로서만 일하던 때보다 유용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지혁에게 필요한 정보는 일개 개인이 일일이 알아내기에는 버거웠으므로.
“이래서 자꾸 일 벌리는 건가. 한지헌은 이 맛을 봐서…….”
지혁이 조소를 머금곤 오늘 보고받은 내역을 다시 훑기 시작하였다.
40,840원……. 차해교 명의의 통장에 있는 모든 돈을 끌어모은 잔액이다. 일전에 지혁이 연구 지원비 명목으로 주었던 돈은 통장 입출금 내역에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채였다. 통장에 남아 있지 않은 지원비 명목의 돈이 어디로 증발했는지 최대한 알아보라고 지시했지만 현금 뭉치인 만큼 돈의 향방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슬슬 머리가 지끈해져 왔다. 지혁이 문제에서 도피하듯 휴대폰을 들어 해교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확대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정된 검은 봉지 같은 고양이 사진만이 화면 가득 떠올랐으나 해교가 어떤 표정으로 이 사진을 찍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혁의 입가엔 옅은 웃음이 번졌다.
지혁은 방금 통화를 마친 상대에게 다시금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채 한 번 지나가기 전 상대는 잔뜩 기합이 든 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음. 전에 알려 준 사이즈로 옷이 좀 필요한데요.”
- 예, 어떤 종류로 준비해 드릴까요?
“집에서 편히 입을 종류면 됩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준비해 주세요.”
밖에 나갈 일은 없을 테니까.
* * *
종일 게임 컨트롤러를 눌러 댄 손가락이 뻐근해 게임기를 치웠다. 해교는 소파에 늘어진 채 TV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연예인 몇 명이 나와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지면 벌칙을 받고, 이기면 음식을 먹는 간단한 규칙을 가진 프로그램이라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맛있겠다…….”
아까부터 해교가 열심히 응원하던 출연자가 승리하자 그의 앞에는 갓 튀겨 나온 바삭한 치킨이 대령되었다. 커다란 화면 가득 황금색 프라이드치킨이 확대되어 비쳤다. 출연자는 감명받은 표정으로 치킨 한 조각, 한 조각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씹어 삼켰다.
[진짜, 진짜 맛있어요. 와. 프라이드도 맛있고요, 특히 이 양념. 양념이 진짜 화룡점정입니다.]
해교는 저도 모르게 TV 앞으로 바싹 다가앉은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요즘 하루 세끼 모두 정성 들인 밥상을 받으며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있는 그였지만 기름기 가득한 치킨을 보니 점심을 먹지 않은 듯 배가 고파 왔다.
2시간 전에 간이 잘 밴 갈비찜을 먹어 놓고도 눈앞에 또 다른 맛있는 음식이 보이니 갈급하게 먹고 싶어지는 것이 퍽 제 나이다웠다.
조금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 퇴근하실 시간인데 아마 선생님은 치킨 싫어하시겠지……. 늘 깔끔하게 먹을 수 있는 담백한 음식을 준비해 오시는 걸로 봐서는 이 집에서 양손 가득 기름과 양념이 묻어나는 치킨을 먹을 일은 절대 없어 보였다.
하긴, 의사 선생님이 번들번들 기름이 묻어나는 입술을 하고 있다고 상상하니 왠지 우습기도 했다. 해교는 저도 모르게 유달리 치킨, 치킨거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채널을 돌렸다.
멍하니 TV를 바라보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러 굳게 닫힌 현관문이 열렸다. 평소보다 이르게 지혁이 퇴근한 것이었다. 해교는 습관처럼 벌떡 일어나 쪼르르, 지혁 앞으로 달려 나가 그를 반겼다. 종일 치킨 생각을 해서인지 선생님이 집에 들어오시자 치킨 냄새가 확 퍼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다녀오셨어요?”
“네. 다녀왔어요. 잘 있었어요?”
“네에…….”
“잘했어요.”
딱히 하는 것 없이 온종일 집에 잘 있기만 해도 떨어지는 칭찬이었다. 정말 어디 나갈 생각 않고 집에만 머무른 것을 잘했다는 의도로 하는 말이었지만 해교는 알 리 없었다.
해교는 지혁이 귀가할 때면 버릇처럼 덧붙이는 말에 이러다간 숨 쉬는 것도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그런 그의 행동들이 쑥스럽게만 느껴졌지만 사람이란 게 적응의 동물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잘했어요, 하는 소리가 안 들리면 숫제 서운한 기분까지 들 지경이 되었다.
“배고프죠? 금방 씻고 올게요.”
“아?”
그제야 해교의 눈에 지혁의 손에 쥐어진 무언가가 들어왔다. 지혁이 평소 가지고 들어오던 찬합 통이 아닌 하얀색 비닐봉지를 해교에게 내밀었다. 바스락거리는 봉지 소리와 이 냄새는…….
“선생님. 이거 혹시, 혹시…… 치킨이에요?”
지혁은 대답 대신 미소를 머금곤 욕실로 사라졌다. 그가 욕실에 들어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해교는 지혁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건네받은 봉지에 코를 박고 마구 숨을 들이쉬었다. 강렬한 치킨 냄새가 코를 찔렀다. 틀림없는 치킨이었다. 착각이 아니었다!
“선생님도 치킨 드시고 싶으셨구나. 우와.”
해교는 잔뜩 신이 나서 지혁이 욕실에서 나오기 전 앞접시와 포크를 테이블 위에 꺼내 두곤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 오후 내내 치킨이 먹고 싶었는데 먹고 싶었던 걸 저녁 식사로 먹는다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기쁘게 한 건 지혁과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 같은 기분, 그 자체였다.
하긴. 오늘은 금요일 저녁이니까 선생님도 금요일 저녁에는 ‘치맥’ 같은 걸 하고 싶으실지도 몰랐다. 한 주 내내 고생하셨으니까.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 해교는 맥주 대신 콜라를 곁들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한 주의 마무리를 지혁과 함께한다는 것이 새삼스레 되새겨져 괜히 기분이 들떴다.
“맛있어요?”
지혁의 커다랗고 거친 손가락이 보드라운 입가를 쓸고 떨어져 나갔다. 양념을 묻히고 먹는 해교가 귀여워 더 두고 보고 싶기도 했지만 묻은 걸 닦아 주는 걸 핑계 삼아 살결을 한번 매만지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해교는 너무 먹는 데에 매몰되었던 것 같아 뒤늦게 혀를 꺼내 입술을 핥았다. 의사 선생님은 자신과 똑같은 치킨을 드시고 계시면서도 같은 걸 먹는지 모를 만큼 깔끔하게 식사를 이어 가셔서 부끄러웠다.
“네……. 맛있어요. 선생님, 그런데요. 저 사실 오늘 치킨 먹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도 치킨을 드시고 싶으셨나 봐요.”
“그런가 봐요. 통했네.”
지혁에게서 기대하는 말이 나오자 신난 해교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통장에 얼마가 남아 있더라. 아마 많진 않아도 치킨 한 마리를 사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다음에 돌아오는 금요일엔 자신이 치킨을 주문해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부족하지만 선생님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해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결 더 좋아졌다.
* * *
모처럼 주말을 맞아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는 지혁에게 기세등등한 태도로 해교가 다가왔다. 그러곤 콧바람을 색색 내뿜었다.
“선생님, 저 방금 마왕 만났어요!”
“그랬어요? 정말 잘했네. 꼭 깨고 알려 주세요.”
“네!”
선생님도 못하시는 게 있다니 곱씹을수록 신기했다. 해교는 반드시 지혁에게 스테이지 엔딩을 보여 주고 말겠다는 사명감으로 말을 마친 뒤 비장한 표정을 짓곤 다시 거실 TV 앞에 앉았다.
그사이 내려진 커피 한 모금을 맛본 지혁이 손에 쥔 찻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해교 뒤로 다가갔다.
해교의 말처럼 조금만 더 하면 이 게임 CD는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다음엔 뭐가 재밌을 것 같다고 꼬셔야 하나……. 잠시간 주변에 널려 있는 CD 타이틀을 살펴보던 지혁이 게임 컨트롤러를 열심히 연타하느라 바쁜 해교의 볼을 가볍게 톡, 치며 말했다.
“게임은 조금 이따 하고 잠깐 일어나 봐요. 갈 데가 있어요.”
간만의 외출이라 생각하고 들뜬 해교가 지혁을 따르다 이내 의문 가득한 눈동자로 지혁이 향하는 곳을 살폈다. 지혁의 발걸음이 이 집에서 좀처럼 자신이 갈 일이 없는 2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계절감에 맞는 옷이 없어서요. 대강 준비해 봤는데 어울릴지 모르겠어요.”
사람을 들이거나, 해교를 데리고 밖에 나가 쇼핑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바람에 2층 드레스룸에는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많은 양의 옷들이 걸려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의사 선생님이 입는다기엔 너무나도 작은 사이즈의 옷들이다. 이 많은 옷을 언제 옮기셨지…….
“서, 선생님. 옷이 너무 많아요.”
“내내 집에서 가운만 걸치고 돌아다닐 순 없잖습니까. 이제 겨울이 오면 아무리 난방을 잘해 놓는다고 해도 추울 수 있고요.”
겨울? 아직 가을인데 겨울까지 자신을 데리고 있어 줄 것처럼 말하는 지혁 때문에 해교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 해교는 곧 불안해졌다.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이 넓고 좋은 집도, 고독감을 느낄 새 없게 해 주는 의사 선생님의 다정함도. 모두 제 것이 아닌 걸, 나중에 이 집을 나가 다시 혼자 살게 되면 케케묵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외로움이라는 걸 알게 될 것만 같아 두려웠던 탓이었다.
“선생님. 그런데 정말 너무 많아서 그냥 받을 수가 없어요. 얼만지 알려 주시면 제가 꼭 갚…….”
“이미 보답은 연구로 충분히 하고 있어요. 날 양아치로 만들고 싶은 거 아니면 그런 생각 않는 걸로 합시다.”
지혁이 해교가 더는 말을 이을 수 없도록 그답지 않게 정색을 했다. 해교는 간만에 보는 지혁의 단호한 모습에 더는 토를 달 수가 없었다. 모처럼 팔자로 내려간 눈썹으로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해교의 머릿속을 유영하는 생각을 짐작하지 못한 지혁은 브랜드별로 옷 사이즈가 대중없어 되는대로 주문했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대강 눈에 들어오는 옷 몇 벌을 골라 해교에게 건넸다.
해교는 의사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옷이니만큼 그가 건네는 옷을 빠르게 입고 벗으며 하나하나, 사이즈 확인을 해 나갔다.
걱정이 무색하게 준비된 옷들은 대부분이 찰떡같이 잘 맞았다. 지혁의 눈에 나기 싫었던 수행원이 최선을 다해 발품을 판 결과였다. 옷을 입은 모습보다야 벗은 모습을 보는 시간이 더 길 테지만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지혁 외의 사람과 맞닥뜨릴 일 또한 늘어날 수 있으니 여벌의 옷이 필요하긴 한 시점이었다.
지혁은 해교가 패션쇼 하듯 옷을 갈아입는 일에 지칠 때쯤에 건네주던 옷을 거두고 그의 팔을 당겨 안았다. 그러고는 뒤에서 해교를 껴안고 속삭이듯 말했다.
“고생했어요. 옷은 충분히 보았으니까 이제 중요한 일 할까요.”
“중요한 일이요?”
“차해교 씨 몸에 대해서 알아보는 거예요. 뭐가 뭔지 알아야 다시는 병에 안 걸리고 지금처럼 건강하게 지내죠.”
“아…… 네에. 그런 거라면 좋아요. 선생님께 도움이 된다면 더…… 좋아요.”
“한 번도 자세히 본 적 없을 테니 이번에 제대로 알려 줄게요.”
지혁이 드레스룸 옷장 손잡이에 띄워진 녹색 홀로그램 버튼을 눌렀다. 차락, 소리가 나면서 불투명했던 옷장 문이 단숨에 먼지 한 점 없는 깨끗한 거울로 뒤바뀌었다. 드레스룸 바닥에 앉아 있던 해교가 삽시간에 사방이 거울로 뒤바뀌는 모습에 깜짝 놀라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문을 제외하고 모든 벽면마다 장이 짜여 있던 탓에 지혁의 손놀림 한 번에 방 전체가 거울로 뒤덮였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살 색깔인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꽤나 많이 부끄러웠다. 보는 눈이라곤 저와 의사 선생님, 단둘뿐이라는 걸 알지만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제 몸을 보리라곤 상상해 본 적 없었는데.
지혁의 손길에 따라 해교의 다리가 활짝 벌어지고 열렸다. 완연히 펼쳐진 새하얀 사타구니 사이에 자리한 통통한 보짓살과 부드러운 회음, 그리고 더 아래에 촘촘한 주름으로 뒤덮인 아랫구멍이 눈동자 4개의 시선을 잡아챘다.
여태껏 자신의 성기들을 자세히 살펴본 적 없던 해교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혁은 베이비파우더 향이 물씬 나는 목덜미에 코를 박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목덜미에 쏟아지는 지혁의 숨결이 홧홧했다. 살갗을 간질이는 뜨거운 숨에 해교의 온몸에 난 솜털이 쭈뼛 서고 잘게 소름이 돋았다.
해교가 차마 거울에 비친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부끄러운 듯 시선을 아래로 주었다. 좀처럼 그가 제 하반신을 바라보지 못하자 지혁이 말 대신 손가락으로 해교의 시선을 끌었다. 부드러운 웃음을 띤 얼굴과는 달리 다소 거친 손가락이 사타구니 사이, 은밀한 살점을 쭉 찢어 벌렸다.
“흐읏!”
“여기는…… 다 합치면 외음부라고 합니다.”
지혁이 느릿느릿 손가락을 움직이며 음순을 쓸어내리다 음핵을 둥글렸다. 동그랗고 매끈한 그곳을 톡, 톡, 가볍게 두들기며 해교의 귓가에 비밀을 말하는 듯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겉에서 보면 굉장히 작잖아요. 하지만 이건 극히 일부예요. 나머지는 보지 속에 숨어 있어요.”
“으…… 네에, 하아…….”
귓가에 바짝 붙어 속삭이는 숨결이 간지러웠다. 말을 마친 지혁이 바짝 선 솜털이 감싼 귓바퀴에 혀를 내어 천천히 핥아 내렸다. 동그란 귓바퀴를 타고 끈적하게 내려오던 살덩이는 이내 도톰한 귓불을 물고 빨았다.
뜨거운 살덩이가 질척하게 귀를 오고 가는 소리가 울렸다. 겉을 느릿하게 쓸던 혀가 귓구멍 속을 파고들자 해교는 오싹한 소름에 움칠 어깨를 좁혔다.
“서, 선생…….”
“응. 얘기해요.”
의도한 것처럼 평소보다 한층 더 짙은 숨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한마디, 한마디 사이마다 섞여 드는 숨결에 더불어 의사 선생님이 숨을 쉬는 소리조차도 마치 천둥처럼 들렸다. 그 소리에 부르르, 작게 몸을 떠는 해교를 눈치챈 지혁이 웃음을 꾸욱 참으며 복숭앗빛 뺨에 가벼운 입맞춤을 한 뒤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해교의 어깨는 잔뜩 말린 채로 떨리고 있었다.
지혁은 보지 속에 숨어 있는 살점을 보여 주기 위해 오늘따라 유독 탐스러워 보이는 보지 양 날개를 느릿하게 훑었다. 보지 구멍 양측에 달린 매끈한 살은 손가락이 오고 갈 때마다 점차 새붉어지는 모습이었다.
손끝이 닿자마자 덜덜 떨려 오는 조그만 음순은 금세 애액으로 뒤덮였다. 지혁이 미끄러운 음순을 붙잡고 밖으로 젖히자, 숨어 있던 보지 구멍이 드러나며 움찔움찔 움츠러들었다. 따끈한 보짓살의 온기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작스레 맞이한 서늘한 공기가 낯설었던 탓이었다.
조금이라도 온기를 되찾기 위해 진득한 점액질로 뒤덮인 선홍빛 살이 손가락 끝에 달라붙었다. 손가락으로 보지 안을 휘저을 때마다 점성 있는 액체가 치덕거리는 적나라한 소리가 고요한 드레스룸 안에 울려 퍼졌다.
드레스룸 창을 통해 들이치는 밝은 햇살이 해교의 하얀 나신을 비추었다. 유독 흰 피부에 빛이 쏟아지자 분홍빛 유륜과 선홍빛 보짓살이 더더욱 대조를 이뤘다. 지혁이 한결 더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손의 위치를 옮겼다.
“차해교 씨 자지 있잖아요.”
퉁, 귀엽게 생긴 귀두를 장난스레 문지르다 조몰락거렸다. 튀어나온 갓 부분 전체를 손바닥으로 덮어 내린 뒤 쉴 틈 없이 조물대자 살갗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지혁은 뜨거워지는 귀두의 사정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것처럼 계속해서 제 할 말을 이어 갔다.
“자지에 있는 귀두보다도 클리토리스에 민감한 신경 조직이 두 배 정도 더 많이 분포해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자지로 가는 것도 기분이 좋지만…… 보지로 가는 건 훨씬 더 기분이 좋겠죠.”
지혁이 뭉근하게 계속해서 귀두를 치대자, 어느덧 작은 자지는 힘을 받아 융기하기 시작하였다. 거칠하고 넓은 손바닥이 여린 살결을 덮으니 악력과 상관없이 거센 압박감이 느껴졌다.
“아!”
“자지가 흥분하면 이렇게 서는 것처럼……. 보지 음핵 역시 마찬가지로 부풀어요.”
귀두를 괴롭히던 손가락이 다시 보지로 회귀했다. 지혁은 어느덧 축축하게 젖은 보지에 달린 양 날개를 재차 걷어내고 클리토리스를 톡, 장난치듯 건드렸다. 해교는 한 번도 자세히 본 적 없던 보지 정점이 어느덧 부풀어 오른 채 발발 떨렸다.
그 자극에 고스란히 드러난 보지 세포가 펄떡거렸다. 바짝 선 지혁의 팔뚝 근육에도 해교의 말초 신경이 작열하는 감각이 번졌다.
“보통 여성은 이 클리토리스를 이용해서 오르가슴에 닿지만…… 질로 오르가슴에 닿는 것은 훨씬 힘들다고 합니다. 하지만 차해교 씨는…….”
“흐응……. 읏…….”
“질로도 잘 느끼잖아요.”
“으읏, 선생님…….”
설명이 끝나자마자 지혁이 몸을 뒤로 물리곤 조심스레 해교의 등허리를 앞으로 누르기 시작하였다. 서서히 눌리는 허리에 해교는 어느덧 진료할 때처럼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자연스레 하체를 들게 되었다.
단단히 기립한 작은 자지는 해교의 배꼽에 붙을 듯 서서는 뚝, 뚝 말간 물을 떨어뜨려 바닥 위에 물 자국을 만들었다. 지혁의 손가락이 갈라진 틈새를 바삐 아래위로 훑어 내렸다.
“신경 말단이 많아서 자지로 느끼는 오르가슴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황홀감을 느낄 수 있다는데……. 정말 그래요?”
“흣, 하윽!”
지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보지가 정신없이 수축을 반복하며 맥동했다. 구멍 안에서 미끌미끌한 애액이 범람하듯 새어 나와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지혁이 바람 새는 웃음소리를 내며 흘러내리는 보짓물을 제 손바닥으로 쓸어 담았다.
바닥을 바라보고 있어 자신을 볼 수 없는 해교이기에 지혁은 망설임 없이 끈적한 보짓물을 제 혀에 얹었다. 언제 먹어도, 맡아도 야해 닿는 순간 거대한 지혁의 좆을 단숨에 세워 버렸다. 한동안 말을 잃은 채로 불투명하게 번들거리는 보짓물에 심취했던 지혁이 해교의 허벅지를 간질이듯 슬쩍 쓸어내리며 손가락 끝을 늘어뜨렸다.
“그럼 용어를 제대로 외웠는지 확인 한번 해 볼까요. 알려 준 용어를 써서 지금 생각을 말해 볼래요?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까.”
“우응……. 제…… 제 클리토리스를…….”
“어떻게 해 줄까요.”
“눌러 주세요…….”
안달이 난 해교가 엉덩이를 더욱 높이 들며 간청하듯 흔들었다. 철썩이는 볼깃살이 박음직스러웠다. 착하네. 지혁이 검지에 힘을 준 채로 해교의 클리토리스를 문지르기 시작하였다.
흐, 아아, 응…… 애태우듯 클리토리스를 느린 속도로 비벼 대는 손길에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오고 습한 숨이 마구 쏟아졌다.
“그리고? 이걸로 만족해요?”
팟, 팟. 노골적으로 보짓물을 튀기며 주름진 날개를 비비적대자 해교의 납작한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홀쭉한 뱃가죽이 덜덜 떨리고 연결된 클리토리스에서 번진 자극에 보지가 벌름거렸다.
자꾸만 갈증이 났다. 해교가 혀를 주욱 늘어뜨린 채 헥헥대며 버둥거렸다. 이에 지혁이 옴찔거리는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푸딩을 가르듯 폭신한 보짓살에 손가락을 쑤셔 넣자 해교가 허리를 움칠 튕기며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아읏, 흐으으…….”
지혁이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하나씩 추가하여 밀어 넣기 시작했다. 시차를 두고 늘어나는 손가락 개수에 아까보다 조금 더 빠듯해진 구멍이 뻐끔거리며 들어오는 이물질을 죄었다. 오물오물 손가락에 모여든 쫄깃한 조갯살은 삼킨 손가락 겉면에 담뿍 애액을 묻히며 제 몸을 치댔다. 한결 과격하게 보지를 헤집는 손길에 자꾸만 뜨거운 열이 올랐다.
지혁의 손가락이 귀신같이 느끼는 곳들을 부드러이 공략했다. 간지러우면서도 애가 타는, 바짝 잔소름이 돋아나는 야릇한 지점만을 들쑤신 것이다.
어찔한 상황에서 벗어나려 해교가 두 눈을 꼭 감자 보지에서 퍼지는 은밀한 감각이 더욱 짙어졌다. 보짓물을 가르는 질퍽이는 소리도 점점 더 크게 들렸다.
하지만 그래도 익히 알던 절정의 느낌까지 닿는 것은 요원했다. 조금 더 거칠게 보지 안을 긁어 보짓살을 무르게, 흐물거리게 만들어 주셨으면……. 차마 말을 하지는 못한 채 해교가 흐읍, 흐윽, 가는 숨을 몰아쉬었다.
계속해서 손가락이 움직임을 반복하자 어느덧 새하얀 피부 위로 송골송골 땀이 돋아나고 밀실 같은 드레스룸 안이 습해지기 시작하였다. 해교의 온몸은 구워 낸 오징어가 된 듯 자꾸만 오그라들었다.
다듬지 않아 길어진 옅은 밤색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흩날리지 않게 되었을 때쯤에야 지혁의 손동작이 멈추었다.
지혁이 보지를 만지던 손가락을 들어 올려 해교의 입술 사이에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르고 들이친 손가락이 잇새를 침범한 채 말캉한 점막 여기저기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제 애액을 맛보면서도 흥분이 멈추지 않아 해교는 지혁의 손가락을 혀로 감싸 쭙 빨아들였다.
“우, 흐으, 우웅……!”
“참지 말아요. 그대로 들려줘요.”
억누른 신음 소리에 지혁의 손가락이 해교의 입술을 얽었다. 손가락을 비집고 넣어 살짝 벌어진 입 속은 선정적인 붉은색이었다. 지혁은 당장에 고개를 내려 해교의 입 안에 제 혀를 밀어 넣고 싶은 충동을 참아 내며 계속해서 하던 짓을 이어 나갔다.
이윽고 타액이 점철된 손가락은 아까부터 벌름거리고 있던 아랫구멍으로 향했다. 촘촘하게 주름진 구멍 겉을 지분거리던 손가락은 미끄러지듯 위로 기어올라 부드러운 회음부를 긁어 내렸다.
보지에서부터 줄줄 흐른 애액이 회음과 뒷보지를 흥건히 적셨다. 아랫도리에서 퍼지는 간지러운 느낌에 해교가 가랑이를 모으고 허벅지에 힘을 주었다.
“눈 뜨고, 다리 다시 벌려요.”
지혁이 해교를 달래듯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고 간질이듯 쓰다듬었다. 해교는 맥없이 사타구니를 다시 벌린 뒤 제 앞에 펼쳐진 전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읏, 으응!”
“여기는 회음부예요. 보통은 조금 더 넓은 면적이지만…… 후우……. 차해교 씨는 보지 위치 때문에 일반적인 남성보다 다소 짧습니다.”
약 올리듯 살짝 살갗을 건드리고 맴도는 손가락에 해교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보지와 뒷보지 사이를 잇는 회음부에 내리치는 자극에 양쪽 구멍이 동시에 움찔거렸다. 지혁은 이미 한참 설명을 마친 보지 대신 뒷보지로 손가락을 내리며 오물오물 개폐를 반복하는 아랫구멍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이곳은 잘 알죠. 항문이지만 배출 외에도 역할이 많아요. 특히 내부에 위치한 전립선을 자극하면 단순히 자지를 흔들고 수음하는 것보다 배는 강한 자극이 내려칩니다.”
“헤에엑!”
갑작스러운 침입에 해교의 상체가 용수철처럼 퍼뜩 튀어 오르고 놀란 구멍이 수축을 이어 갔다. 깊이 쑤셔 넣지 않고 구멍 어귀만을 재차 뭉그러뜨리는 손가락에 애가 탄 구멍 점막이 펄떡펄떡 맥동했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생생한 움직임에 흥분한 지혁이 집어넣은 중지를 더더욱 깊은 내벽 안으로 짓쳤다.
“하으! 히이이!”
중지는 단번에 극점 주변에 도달했다. 해교가 자지러지듯 허리를 뒤틀었다.
“이런……. 아직 가면 곤란해요. 얇은 손가락을 자지로 받아들이는 건 조금 자존심이 상하거든.”
지혁이 느리게 손가락을 빼어 내며 중얼거렸다. 천천히 내벽을 역행하며 빠져나오는 손가락에 불긋하게 달아오른 점막이 저릿하게 떨려 오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지혁은 말과는 다르게 손가락 한 마디만 빼고 다 꺼내었던 손을 움직여 다시금 빠져나온 길을 되짚었다.
하아앙…… 으응…… 쏟아지는 신음을 고스란히 맞은 손가락이 한층 더 내밀하게 내벽을 비벼 가며 채워 올렸다.
“힉! 서, 선생님, 흐으응, 아, 쳐…… 쳐언, 흣! 천히이……! 아앙.”
아랫도리에서부터 퍼지는 찌릿한 감각에 해교의 마른 배가 바짝 당겨 왔다. 말랑거리는 살결 위로 숨어 있던 엷은 복근이 돋아나면서 동시에 잠들어 있던 감각이 또렷해졌다. 아래에서부터 작열하고 있던 열기가 번지며 해교가 차가운 바닥에 뺨을 대고 비벼 댔다.
아, 으응…… 열이 올라 미칠 것 같았다. 이제 그만하고 단단한 자지를 넣어 달라는 듯 아양이 이어졌다. 당장 의사 선생님의 단단한 자지를 몸 안에 품고 싶었다.
“하으응……. 서, 선생님 자지이…….”
“응. 내 자지가 뭐?”
“……자지로 밑에…… 밑에 쑤셔 주세요. 네에? 읏…….”
지혁은 애태우듯 회음부만 재차 문질거렸다. 절정에 닿을락 말락 한 감각이 지속되자 자지가 간지럽다 못해 욱신거렸다. 지친 해교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제 자지를 만지려 했다. 지혁이 해교의 손목을 붙들고는 단호히 말했다.
“안 돼. 하아, 정확히 짚어서 말해야지. 성기를 지칭하는 명칭을 배우고 있었잖아요.”
“선생님 자지로…… 아앙, 항……문 구멍, 흐응…… 쑤셔 주세요……. 안 해 주셔서 자지 기둥을…… 흔들고 싶어……요. 흣, 흐읏……!”
기어이 해교 입으로 원하는 말을 이끌어 낸 지혁이 작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곤 열 오른 해교의 자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압박하듯 쓸어 올렸다. 가뜩이나 흥분한 좆 대가리가 더욱 흥분해서는 조그만 요도 구멍을 통해 쉴 새 없이 프리컴을 흘려보냈다.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지혁의 손바닥을 적셨다.
지혁 역시 옷장 전면을 거울로 바꾸었을 때부터 기립한 자지가 꽤나 불편했다. 허벅지를 감싼 천을 뜯어낼 듯 빳빳하게 솟아오른 자지가 느껴져 바지 버클을 푼 뒤 지퍼를 내렸다.
드로어즈 안에 자리한 묵직한 것이 꺼떡이는 느낌이 선연했다. 속옷을 허벅지까지 젖히자마자 불그죽죽한 살덩이가 묽은 물을 토해 내며 튕겨 올랐다.
아랫입술을 붉은 혀로 핥아 낸 지혁이 가볍게 몸을 살짝 틀었다. 그러곤 꺼떡이는 제 자지를 쑤셔 넣으려 했으나 쓰러진 듯 뻗은 해교의 몸이 낮아 각도가 나오질 않았다.
“밑에……. 자지 박아 줄 테니까 제대로 엎드려 볼래요?”
“읏, 으으…… 네헤…….”
해교가 그 말에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이며 떨리는 팔로 바닥을 받치곤 무릎 역시 대었다. 잔뜩 열이 올라선 바들바들 떨리는 하얀 몸이 지혁을 한껏 고양했다. 특히나 온갖 체액으로 점철되어 번들거리는 사타구니와 허벅지 사이는 자꾸만 심호흡을 하게끔 만들었다.
지혁이 커다란 손으로 부드러운 엉덩이 살 한 덩이를 그러쥐곤 잔뜩 열이 오른 구멍을 바라보았다. 촘촘한 주름이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구에 귀두를 맞대고 은근하게 비볐다. 찌걱, 쩍 젖은 귀두가 젖은 살을 비비는 선연한 감각에 구멍 전체가 녹아내릴 듯했다. 곧 거대한 귀두에 짓눌린 구멍 어귀가 지혁의 좆에서 흐른 쿠퍼액으로 번들거렸다.
넣기 전 간을 보듯 좆 대가리를 진득하게 문지르는 행위에 안달 난 뒷보지가 개폐를 시작하며 귀두를 빨아들이듯 움찔거렸다. 이미 안은 지독한 흥분으로 녹진녹진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진 채였다.
지혁이 오므라드는 주름을 두어 번 툭, 툭 좆 대가리로 두드린 뒤 해교의 골반을 꽉 틀어쥐었다.
“흐윽! 아, 아앙, 아으흥!”
쩌억, 젖은 살갗을 파헤치고 점점 앞으로 전진하는 자지가 만들어 내는 야릇한 소리가 드레스룸을 울렸다. 좁은 구멍이 넓게 벌어지며 좆에서 가장 굵은 부위를 빨아들였다.
귀두를 무리 없이 받아먹은 뒷보지가 더더욱 깊은 내벽 안으로 자지를 이끄는 듯 쭉쭉 빨아올렸다. 탄력 있는 내벽이 조금의 틈도 없이 짜 맞춘 듯 바짝 좆을 조여 물었다. 자지 전체를 감싸 안는 뜨거운 점막에 흥분한 좆 기둥이 꺼떡이다 못해 내벽을 때리며 들이쳤다.
아랫배가 들썩일 만큼 요란한 움직임이었다. 해교가 한쪽 팔을 들어 제 아랫배를 쥐고 내장 여기저기를 콱콱 짓치는 자지의 요동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뱃가죽이 뚫릴까 두려우면서도 무서우리만큼 강한 쾌감이 구멍에서부터 퍼졌다.
지혁이 자지를 박아 넣으면서 동시에 보지 안으로 중지를 길게 쑤셔 넣었다. 달궈진 보지 안을 휘저으며 내벽까지 난잡하게 짓이기자 해교의 눈앞에 번쩍번쩍 각양각색의 별이 튀었다. 들이친 소름에 엉덩이를 떨자마자 픽, 조그마한 자지가 단번에 절정에 올라 바닥에 뜨거운 백탁액을 흩뿌렸다.
척추를 타고 강렬한 쾌감이 마구잡이로 내달렸다. 하지만 사정으로 인한 절정감으로 파들파들 떠는 몸에 내려지는 자비란 없었다. 스크루 나사가 돌려지는 것처럼, 따끈하게 익은 내벽 안에 자지가 비비듯 박혀 들었다.
푹 익어 부푼 내벽을 찔러 대는 아찔한 감각에 해교가 허벅지를 벌벌 떨며 상체를 아래로 숙였다. 바닥을 짚고 있던 팔에 힘이 빠져 순식간에 상반신이 깊숙이 내려앉았다. 무릎은 이미 쓸리고 짓이겨져 시뻘개진 지 오래였다.
“서, 선생…… 흣, 저 갔…… 흣, 으, 으응…….”
상체가 더욱 바닥에 가까워지고 하체가 높이 들리자 결합이 더더욱 깊어졌다. 추삽질하는 자지를 쥐고 터뜨리기라도 할 듯, 주름이 사라진 구멍이 팽팽하게 지혁의 좆을 씹어 댔다. 단번에 오므라들었다 다시 펴지는 텀이 짧아 경련처럼 느껴지는 자극에 지혁 역시 한계에 내몰렸다.
“크읏…….”
지혁이 덩달아 내려앉으려는 해교의 골반을 단단히 그러잡곤 느릿느릿 자지를 빼내었다. 서서히 내벽에서 빠져나오던 자지가 마지막 귀두까지 완연히 뽑아낼 기세가 되자 녹아내릴 듯 달아오른 점막이 둥근 귀두 끝에 들러붙어선 빠듯하게 예민한 살갗을 조였다. 나가지 말라며 계속, 끈질기게 달라붙는 모양새였다.
“후우. 씹…….”
“아, 아앙! 흐으, 우으응……!”
결국 지혁은 해교와 연결되어 있는 자지를 끝까지 뽑아내지 못한 채 다시 한번 허리를 거세게 쳐 올릴 수밖에 없었다. 푸욱! 끓어오를 대로 끓어오른 점막들이 맞붙자 적나라한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엉덩이에서 불이 나는 듯, 뜨겁게 고이는 열기를 감당할 수 없었던 해교는 결국 하체마저 무너져 내렸다. 셀 수 없이 일어난 마찰에 구멍에서부터 열감이 일어 서서히 온몸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바닥에 눕다시피 엎드려 버린 해교의 골반 부근에 뻘건 손자국이 남았다. 이를 본 지혁이 고개를 숙여 손자국에 쪽, 가벼이 입을 맞춘 뒤 허리를 물렸다. 맛이 간 와중에도 그의 몸에 생채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본능이었다.
지혁이 양 허벅지를 벌린 채 앉은 뒤 해교의 허리를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반쯤 일어선 몸을 당겨 재빨리 제 위에 앉혔다.
흣……! 훅 끌려온 몸이 내려가자 대번에 달궈진 살덩이에 구멍이 닿았다. 무서운 속도로 내벽을 파고드는 자지에 해교가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지혁은 제 허벅지 위에 해교를 앉힌 채 한 손으론 바닥을 지탱하고 또 다른 한손은 해교의 가슴을 주무르며 자지를 짓찧기 시작하였다.
철썩철썩 음낭과 구멍이 맞붙을 때마다 치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혁은 해교의 작은 몸 안에 자신 모두를 쑤셔 넣고 싶은,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마 음낭까지 몽땅 집어넣는다면 작은 몸이 터질지도 모를 지경인데도.
진탕 뇌를 녹여 버릴 것만 같은 아찔한 상상을 참아 내듯 지혁이 이를 악물고 해교의 엉덩이를 가를 것처럼 밖으로 당겨 벌렸다.
엉덩이 살을 한쪽으로 팽팽히 당기자 아랫구멍이 한결 더 얇게 펼쳐져 추삽질이 용이해졌다. 자꾸만 자지를 붙들고 녹아내리려 하는 점막을 가른 채 불에 달군 쇠 같은 살덩이가 맹렬한 속도로 여기저기를 쳐 댔다.
빠른 데다 두툼하고 단단하기까지 한 살 기둥은 손쉽게 내벽을 가르고 전립선을 파고들었다. 뜨거운 것이 볼록하게 부푼 전립선을 꾹꾹 누르며 짜부라트릴 때마다 해교의 붉은 입술 사이가 자꾸만 벌어졌다.
“서언, 흐응, 생님……. 읏! 아, 아……!”
방금 사정을 마쳤던 조그만 자지에 금세 피가 몰렸다. 끈적한 씹물이 뭉쳐 흘러내리는 접합부와 발기해 흩날리는 자지, 달아오른 가슴. 모든 것이 거울을 통해 여과 없이 보였다.
해교는 제 앞에 펼쳐진 음란한 모습을 흐릿한 눈에 담았다. 자지에 쩍쩍 달라붙은 점막이 기어이 입구 어귀까지 따라붙었다 떨어져 나갈 때면 하얀 포말이 일어 접합부가 물풀처럼 엉겼다. 살짝 엉덩이를 들었다가 내릴 때면 말랑한 볼기가 뭉그러지며 살결이 잘게 떨렸다.
너무 적나라해 눈에 담기 어려운 광경이었지만 이를 자각하자마자 배 속에서 한층 더한 열기가 일어났다.
지혁이 엄지와 검지로 어느덧 바짝 융기한 유두를 꼬집듯 짓눌렀다가 힘을 빼고 가슴 몽우리 주변을 마사지하듯 매만졌다.
물오른 젖가슴의 촉감이 미쳐 버릴 만큼 좋았다. 무르익은 자두같이 붉은 젖꼭지가 중심이 되어 도톰한 젖가슴이 얕게 흔들렸다. 지혁이 만지면 만질수록 화답하듯 가슴이 통통하게 부풀어 올랐다.
거세게 아래를 휘젓는 자지에 더해 가슴에까지 저릿한 자극이 이어지자 해교의 벌어진 입가에서 타액이 줄줄 샜다. 버거운 자극에 사지에 힘이 빠지고 의지와 상관없이 신음만 쏟아졌다. 늘어진 타액은 작은 턱을 타고 쇄골을 지나 지혁이 쥐고 있는 젖가슴에까지 흘러내렸다.
“여기는 유두고…… 이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싼 부분은 유륜이라고 하죠.”
“읏, 으으…….”
지혁은 해교의 타액을 윤활유 삼아 한결 더 진득하게 가슴을 주물렀다. 부드러운 살결 위를 더욱 매끄럽게 만들어 주는 타액 덕분에 지혁은 손쉽게 젖가슴을 가지고 놀 수 있었다. 넓은 유륜의 모양을 따라 덧그리듯 손가락으로 궤적을 만들었다.
손가락으로 주무르는 대로 늘어났다 되돌아가는 여린 피부는 말랑말랑해서 잠시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다. 짜부라진 모습조차도 색정적이라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모유 분비가 촉진되는 곳이기도 해요. 가끔 차해교 씨 역시 젖이 나올 땐…… 이 부분이 일정 역할을 하고, 후, 돕는다고 할 수가 있죠.”
지혁이 콱 세게 쥐어짜 낼 듯 가슴을 짓누르니 뭉개진 살결이 새붉게 달아오르며 얕게 떨려 왔다. 가슴 끝에서부터 저릿하게 올라오는 야릇한 자극에 해교가 어쩔 줄 모르며 자지러지듯 발발 떨었다. 어느덧 새하얀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열감이 일고 있었다.
그렇게 악력에 변화를 주며 한참 동안 젖가슴을 지분대던 와중에 지혁은 점차적으로 유두 끝에 고여 드는 유백색 물방울을 발견했다. 당장 입술을 내려 쭉쭉 빨아들이고픈 욕망을 참아 내곤 모른 척 계속해서 가슴을 애태웠다.
아, 아응…… 흐응……. 가슴 정점이 너무 저렸다. 시야가 어룽거려 조금씩 맺힌 젖물은 거울을 통해서는 볼 수 없었다. 해교는 어떻게든 지혁의 손가락에 젖꼭지를 들이밀고파 상체를 뒤흔들었다.
지혁이 유륜보다 조금 더 크게 손가락을 벌린 채로 은근하고 부드럽게 가슴을 주물렀다. 그러다 손가락 폭을 확 좁힌 채로 젖꼭지만을 잡은 뒤 꼬집고 짓눌러 압박하길 반복했다.
“흐, 아앙, 앗, 이상, 해요!”
“후우, 그런 느낌은 이상한 게 아니라, 좋은 거라고 해요.”
흥분한 지혁이 몇 번 짜낼 듯이 가슴을 그러쥐고 흔들자 잠시 후 돌기에서 하얀 젖물이 터져 나왔다. 한참 동안 가슴께에서 저릿하게 감돌던 기운이 시원하게 퍼져 나갔다.
“하으!”
해교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리면서 하얀 유즙이 팍, 튀어 나갔다. 꽤나 쌓였었는지 유두에서 흘러나온 모유는 단번에 공중을 가르며 솟아올라 바닥과 거울에 점점이 튀었다. 지혁은 한 번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젖소의 젖을 짜내는 것처럼 해교의 젖통을 붙들고 힘을 주었다.
픽, 픽 얇은 물줄기가 몇 번에 걸쳐 공중을 갈랐다. 가슴 끝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쾌감에 잠식된 해교가 눈을 감은 채 젖가슴을 흔들어 댔다. 아릿하게 번져 나가는 희열감 때문에 제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신경 쓰지 못한 채였다.
길게 쏘아져 나온 모유는 바로 앞 거울에 부딪힌 채 줄줄 흘러내렸다. 어느덧 해교와 지혁 앞에 놓인 전신거울에는 해교의 가슴에서 발사된 유즙이 점철된 채였다.
헥헥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해교가 살짝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이제야 뒤늦게 거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없이 외설적인 모습으로 거울을 타고 흐르는 우유를 본 해교가 숨을 멈추었다.
그간 늘 흥분한 상태여서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만질 때마다 반응하듯 쏘아져 나오는 유즙을 거울로 확인하니 당혹스러웠다. 제 가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이 되자마자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울먹였다.
“선……생님, 흣.”
“하아……. 응.”
“또오, 흣, 우유가…… 나왔어요……. 아응!”
“그러게……. 거울에 묻은 게, 후, 아깝네.”
여전히 지혁은 거칠게 자지를 쳐 올리고 있었다. 후장 안을 다질 듯, 귀두로 잘게 짓찧는 짓이 이어졌다. 우유가 흐른 게 아까운 것은 진심인 듯, 유두에서 흘러나오는 유즙을 쯔읍, 정신없이 받아먹으면서.
예민해진 젖꼭지는 지혁이 주는 자극에 다시 한번 묽은 우유를 쪼르르 뽑아냈다.
“계속, 계속 나오면, 흐으, 어떡해요? 밖에 있을 때 갑자기 우유가 나오거나…….”
“차해교 씨가 밖에, 하, 나갈 일이 왜 있어요.”
“으으응……. 네에……? 무, 슨……. 흣.”
“그런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후으…….”
지혁이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저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귀에 꽂혀 들었다. 해교는 항상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결한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기로 했다. 금세 걱정을 지운 해교가 이내 다시금 쾌락에 빠져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거울에는 달뜬 얼굴로 더욱더 큰 자극을 원하는 듯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한없이 음란한 남자만이 비칠 뿐이었다.
* * *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는 내면의 싸움에 지친 지혁이 잠든 해교의 눈가에 꾹, 입술을 눌렀다 뗐다. 이상했다. 여전히 눈뜨지 않고 잘만 잠들어 있는 해교를 내려다보는데 심장이 마구 뛰었다.
자문이 뚜렷해지기 전에 지혁은 곧 답을 찾았다. 생각보다 해교를 향한 제 마음이 더욱 커진 것을 알아챈 것이다. 지혁이 그윽하게 그를 바라보다 다시 한번 도장 찍듯 감긴 눈가에 제 입술을 내렸다.
얕게 움찔대는 기다란 속눈썹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병원 영업시간까지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바쁜 아침 시간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홀린 듯 한참 동안 해교의 곁을 맴돌았다.
동시에 여러 일을 진행하느라 피로감은 어느 때보다 짙었지만 만족감 역시 짙었다. 보상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으니까.
간간이 느끼던 삶의 권태감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자연스레 시간이 흐르다 보면 이러한 아침의 일상이 당연해질 것 같았다.
이제 언제 진료 놀이를 그만둘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지혁이 잠깐 고민을 하며 눈매를 좁혔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로 침실에서 벗어나기 전, 해교의 머리맡에 ‘2차 연구 지원비’라 쓰인 봉투를 놓았다. 어차피 집 안에만 있느라 돈 쓸 일이 없겠지만, 사람 심리란 게 있는데 안 쓰는 것과 없어서 못 쓰는 건 느껴지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그러니까 이건 심신 안정을 위해 준비한 일종의 선물이었다. 이번에는 이렇게 돌려서 주지만 다음에는 이런 같잖은 수작질로 용돈을 줄 일은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며 지혁이 무대에서 내려올 준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