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장 (10/18)

“네……?”

“우리 집에 갈지 물었는데, 가요. 오늘은 혼자 있기 무섭잖아요. 아깐 그 씹ㅅ…… 아니, 그쪽도 당황해서 사라지긴 했지만 형 말대로 또 올 수도 있고. 어차피 저 혼자 사는 집이거든요.”

“그, 그래도…… 돼요?”

부드럽게 달래 주는 음성을 듣자 한순간 메리를 구해 주던 날 도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공포감에서 기인한 절박함에 해교는 주저 없이 도윤의 옷자락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붙들었다.

헝클어졌던 연갈색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공중에 붕 뜬 도윤의 손등 주변을 간지럽혔다. 살갗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감각에 도윤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그토록 다시 맡고 싶어 했던 옅은 체향이 폐부 가득 스며들었다.

그 향기에 잠시 멈칫한 도윤은 검붉은 핏자국이 남은 제 오른손을 잠시 바라보다 반대쪽 손을 뻗어 해교의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바들바들 떨리는 자그마한 몸이 맥없이 도윤의 품 안으로 떨어졌다.

커다란 손이 이제는 괜찮다는 듯 다정하게 해교의 등허리를 쓸어 주었다. 마침내 마지막 남은 눈물 한 방울까지 모조리 쏟아 냈을 때, 현기증이 일어 눈앞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리고 해교의 눈앞에 검은 장막이 드리웠다.

* * *

도윤은 잠이 든 해교의 동글동글한 눈매를 훑었다. 창백한 피부 위로 누군가 정성 들여 한 올, 한 올 그려 낸 듯한 고운 선이 자리했다. 그 유려한 선과 살결 사이로 이질적인 푸른 멍이 보였고, 이를 발견한 도윤의 반듯한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하얀 손등엔 링거와 연결된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기어코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해교 때문에 도윤이 집으로 부른 주치의가 조치한 것이었다. 진정제와 영양제를 혼합한 수액이 약물로 주입되는 터라 맞고 있는 동안은 꿈꾸듯 잠들 수 있다고 했다.

도윤은 조심스레 해교의 피 묻은 입가를 닦아 주었다. 꽤 아릿한지 잠든 와중에도 눈썹 앞머리 사이가 모이고 부푼 입술이 꼬물거렸다. 이미 피딱지를 다 닦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도윤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 끝으로 폭신한 입술을 덧그리며 매만졌다.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붉고 부드러운 점막이 손끝에 닿자마자 격통이 느껴질 만큼 복부가 당겨 왔다. 도윤은 숨을 쉬느라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느릿하게 검지 끄트머리를 밀어 넣었다.

말캉한 촉감과 함께 습한 숨결이 느껴져 도윤의 입술이 바싹 말라 왔다.

혹시라도 깰까 긴장한 도윤이 호흡마저 멈춘 채 여린 점막을 살살 훑어 내렸다. 연한 살결을 손끝으로 은근히 문지르자 야릇한 감각이 찌르르 솟았다. 미약하지만 존재감이 분명한 쾌감이었다.

단숨에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걸 인지한 순간, 도톰한 입술을 뭉근히 치대던 손가락을 꺼내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이런 식의 행동은 자신답지 않았다. 적당한 선에서 끊지 못하고 상대를 피떡으로 만들어 놓은 것부터 시작해서 진실을 터놓지 않고 해교를 이 집에 데려온 것 하며, 거기다 더해 잠든 사람을 앞에 두고 충동적인 행동까지.

그리 오래 산 삶은 아니지만 충분히 자제할 줄 안다고 생각했던 자아가 단번에 무너져 내렸다. 언제 멎었는지 버석하게 마른 눈물 길이 난 뺨을 내려다보며 도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만. 상처가 나을 때까지만. 도윤은 자신에게 되뇌듯 중얼거리며 제 침대 위에서 잠든 해교를 한 번 더 바라보곤 방문을 닫고 나왔다.

“으으…….”

입 안에서 감돌던 비릿한 쇠 맛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간신히 눈을 떠 보니 손등엔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희끄무레한 액체가 링거를 통해 몸 안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혼몽한 정신을 다잡으려 하니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어슴푸레한 빛 한 줄기가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낯선 곳이었다.

해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낮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는지 간혹 침착한 음색과 어울리지 않게 짜증이 묻어나기도 했다.

“……일단 일도 배울 겸 그 건은 제가 맡아 볼게요. 알아보니까 그렇게 큰 금액도 아니라 형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정적을 가르는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잠시간 자신이 여기에 왜 있는지, 이곳은 어딘지 파악하지 못하던 해교는 두어 번 더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순차적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간만에 채권자를 만났다.

채권자에게 엄청 맞았고, 빌었고, 다시 맞다가…… 도윤을 만났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보다 더 어린 도윤에게 매달려 엉엉 울었고……. 그리고……. 해교는 삽시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를 벗어나려 했다. 틱, 손등에 꽂힌 링거와 연결된 거치대가 흔들리며 뻗어나가는 손을 잡아채듯 당겼다. 하마터면 바늘이 빠질 뻔해 손등에서 미미한 통증까지 느껴졌다. 놀란 해교가 다시 자리로 되돌아가 옆에 놓인 링거 거치대를 끌고 방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어…….”

분주하게 오가던 시선이 마침내 멈추었다. 방 밖으로 나오자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듯 기시감이 느껴진다 했는데 일전에 우연제를 맞닥뜨린 바로 그 오피스텔이었다.

환한 대리석 바닥, 거실 전면에 나 있는 커다란 통창에 드리운 촘촘한 블라인드, 어두운 색상의 소파까지. 매일같이 새로운 집을 방문했었지만 결코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다.

하기는 우연제의 집에 말도 없이 자주 찾아오는 도윤을 생각하면, 도윤이 어떤 연유에서건 우연제에게 집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이 색다르게 느껴지진 않았다. 새삼 이곳이 우연제와 강제로 몸을 맞대게 된 곳임을 알았다 한들, 그런 곳이 이 집 하나뿐인 것도 아니었다.

통화 도중 자리를 옮겼는지 멀어져간 목소리가 천장 쪽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고 복층 쪽을 살피니 난간을 두드리는 마디진 손이 설핏 보였다.

“……어쨌든 그렇게 처리하는 걸로 알게요. 어라, 형. 일어났어요?”

도윤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곤 귀에서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나머지는 내일 얼굴 보고 이야기해요, 하며 통화를 마친 뒤 다급하게 계단을 밟고 해교가 있는 거실로 내려왔다.

“혹시 통화하는 소리 때문에 깬 거예요?”

“아니에요. 그냥…… 잘 만큼 자서 일어난 거예요.”

많이 울어서인지 갈라진 목소리가 나와 당황스러웠다. 실컷 울 땐 언제고, 도윤과 눈 마주치는 게 낯부끄러워 거실 끝 블라인드를 응시하였다.

조용히 블라인드를 바라보는 해교를 의식한 도윤은 소파 팔걸이에 놓인 컨트롤러를 쥐었다. 위이잉, 전자동으로 움직이는 소리가 나면서 거실 창을 가렸던 블라인드가 위로 올라가며 걷혔다.

커다란 창을 통해 서울의 야경이 분주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현란하게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을 보아하니 시간은 꽤 늦은 밤이나 새벽인 듯했고 야경을 등진 도윤은 한숨도 자지 못한 듯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좀 갑갑했죠. 제가 귀찮아서 블라인드를 잘 안 걷어 놔요.”

“아, 그냥 멍하게 있던 거예요. 저기, 제가 아까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냥 따라왔는데…….”

“잘 왔어요, 형. 뭐 좀 먹을래요? 입 안에 상처가 있는 거 같아서 미음으로 준비해 뒀는데.”

“가, 감사하지만…….”

“준비한 성의를 생각해서 딱 반 그릇만요. 일단 수액 다 맞은 거 같으니 빼 줄게요.”

이런 일이 꽤 익숙한 듯 도윤이 해교는 있는 줄도 몰랐던 호스의 장치를 만지작거리더니, 무릎을 굽힌 채 해교의 손등에 연결된 주삿바늘을 뽑아냈다. 거치대 위에 올라가 있던 반창고까지 챙겨 꼼꼼하게 손등에 붙여 주곤 씨익 웃음 지었다. 그 따스한 미소에 덩달아 해교의 굳은 표정도 풀렸다.

다이닝룸 테이블에는 이미 정갈하게 차려 둔 식사가 올라가 있었다. 워낙에 넓은 테이블에 혼자 사는 집에 어울리지 않게 많은 의자 개수까지. 대체 어디에 앉을지 몰라 눈만 굴리는 해교 대신 도윤이 앞서 나가 의자를 빼 주었다.

“어…….”

“여기 앉으세요.”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도 아니고 느닷없는 에스코트에 해교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차를 얻어 탈 때 차 문도 자연스럽게 먼저 열어 주었던 기억이 났다. 워낙에 다정다감한 성품이라 남들을 배려하는 습관이 밴 것 같았다.

해교는 자신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도윤의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도윤의 말처럼 입 안이 찢어진 듯 숟가락을 들어 식은 미음을 입 안에 밀어 넣는데도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도윤은 앞의 음식을 간신히 넘기는 해교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물이며, 반찬이며 자꾸만 밀어다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해교가 그릇을 거의 비웠을 즈음 물어 왔다.

“내일 일은 안 잡혀 있었어요?”

“아. 그게, 저는 기억력이 안 좋아서 휴대폰을 봐야 알 수 있어요.”

“아 참, 휴대폰이요.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난 도윤이 해교의 휴대폰을 가져와 내밀었다. 받자마자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려는 해교에게 도윤이 손을 뻗으며 고개를 저었다.

“식사 마저 끝나고 확인하세요. 그리고 형, 당분간 일 안 하는 게 어떨까요?”

“……왜요?”

“오늘 왔던 그놈들이 형 일하는 데라고 안 찾아간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근데, 예약이 들어와 있으면.”

“형. 아직 못 봤겠지만 형 얼굴에 상처도 났어요. 그 얼굴로는 무리 아닐까요.”

도윤의 말에 깜짝 놀란 해교가 뒤늦게 제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부어터진 얼굴은 평소보다 열감이 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불법 추심이라고 쫓아 보내긴 했지만 그런 일들이 아직도 비일비재하긴 해서요. 경찰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고.”

“그, 그럼…….”

“어차피 이 집엔 저 혼자 살거든요. 주말이면 본가에도 자주 가고. 방도 많이 남아요. 그러니까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는 게 어때요?”

“그게…… 저는 감사하지만…….”

“싫은 게 아니라면 다행이에요. 저도 혼자 살아서 적적했거든요.”

“그러면 너무 신세 지는 거 같아서 좀…….”

“저 방학이라 심심하거든요. 방학 끝물이지만 자주 놀아 주고 밥도 같이 먹어 줘요. 제가 외로워서 형 계속 귀찮게 했었잖아요.”

결국 도윤의 언변에 넘어간 해교가 며칠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청소를 잘한다고 칭찬도 해 준 적 있으니 머무르는 동안 집안일이라도 하고 지내면 될 것 같았다.

“워, 원래 일하시던 분은 언제 나오세요?”

예전에 이곳에서 우연제를 만났을 때, 스치듯 이 집엔 원래 일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이 뒤늦게 기억났다. 당연히 일하는 사람 있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럼 정말 쓸모없이 신세만 지는 꼴을 면치 못할 텐데.

“다른 사람 있으면 신경 쓰이죠? 마침 휴가예요.”

해교의 걱정을 지레짐작한 도윤이 대답했다. 당장 내일도 도윤이 집을 비운 시간대에 평소처럼 청소하러 올 아주머니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지만 말한 것처럼 정말로 휴가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며.

* * *

해교는 도윤이 내어 준 복층 침실에서 초조한 듯 방 안을 뱅뱅 맴돌았다. 이제야 확인한 휴대폰엔 우연제로부터 발신된 부재중 통화가 백 통 넘게 쌓여 있었다.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알림도 10개는 넘게 띄워져 있었지만, 도저히 무서워서 내용을 볼 수가 없었다.

전에 1시간가량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까지 찾아왔었는데 지금은 어림잡아도 우연제가 보자고 했던 시간에서 반나절 이상 흘러 있었다. 해교는 결심한 듯 방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빠르게 내려갔다.

도윤은 거실 창가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생각에 잠긴 듯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다. 꽤 심각한 고민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에 한동안 그저 그의 눈치만 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뒤늦게 해교를 발견한 도윤이 기댄 몸을 바로 하며 물어 왔다.

“형. 언제 나왔어요?”

“방금요.”

“좀 더 쉬지. 할 말 있어요?”

“저기, 그러니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니까, 제가 여기 있다는 것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어요. 정말 아무도……. 그래 주실 수 있나요?”

“사채업자가 또 올까 봐 그런 거죠? 걱정 마세요. 정말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아니. 사채업자뿐만 아니라 우연제까지 염두에 둔 이야기였다. 차마 당신의 친구도 몰랐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을 덧붙이진 못했지만 여러 번 강조했으니 도윤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이후 따뜻한 차를 내어 온 도윤 덕에 차를 마시며 현실에서 동떨어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부드럽고 낮은 음색의 도윤과 이야기를 하며 수면에 도움이 되는 차까지 마시니 금세 잠이 쏟아졌다. 해교의 눈에 어린 수면욕을 읽어 낸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가지를 가져왔다.

“일단 오늘은 급한 대로 제 옷 입고 주무세요. 휴대폰 말곤 챙겨 오질 못했어요.”

“아……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제가 어떻게든 나중에 보답할게요.”

“같이 놀아 주는 게 보답이라니까요? 그럼 형, 얼른 씻고 주무세요.”

“네. 먼저 잘게요. 감사합니다.”

해교는 침실에 딸린 욕실에서 지친 몸을 씻어 냈다. 씻으면서 확인해 보니 멍이 심하게 들어서 그렇지 이도 멀쩡하고, 깊은 상처로 남을 곳은 없어 보였다. 보송한 수건으로 꼼꼼히 물기를 닦아 낸 뒤 도윤이 준 티셔츠와 바지를 꿰입었다. 어린아이가 아빠의 옷을 입은 것만큼이나 품이 큰 셔츠가 조금 당혹스러웠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수마가 찾아왔다. 사채업자도, 그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안전한 집이라는 생각을 되풀이하며 눈을 감아서인지 해교는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도윤이 희미한 어둠을 가르며 계단을 올랐다. 힘든 하루를 보낸 해교가 안쓰러워 살짝 확인하려는 의도였다. 문을 꼭 닫고 자는 게 무서웠는지 해교에게 내어 준 복층 침실 문은 약간 열려 있었다.

똑똑. 도윤이 낮은 노크 소리를 내며 해교의 수면 여부를 확인했다. 반응 없는 고요함에 열린 문 틈새를 살며시 잡고 방에 들어섰다.

“아…….”

체구 차이 때문에 바지 허리춤이 골반쯤에 걸려 있어 판판하고 하얀 아랫배가 드러났다. 매끈하고 하얀 피부 중심엔 옴폭 파인 일자 배꼽이 자리해 해교가 작게 숨을 내쉴 때마다 가늘게 떨렸다. 얇은 허리 위로는 티셔츠가 사선으로 말려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젖꼭지를 가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순진한 얼굴로 고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자 단번에 도윤의 아래가 단단해졌다.

어느덧 파자마 바지 천이 불룩 솟아올라 거대한 윤곽이 잡혔다. 무의식적으로 열이 오른 몸에 이어 팔뚝의 털까지 바짝 곤두서 있었다. 다른 층에 머물도록 한 것이 몹시도 다행이었다.

* * *

[우연제♡]

해교는 아침 댓바람부터 우연제의 전화에 잠이 깼다. 여전히 전화를 받을 생각은 들지 않아 한참을 망설이다 쩌렁쩌렁 울리는 전화기를 이불 속에 넣고 외면했다. 방문을 연 뒤 계단을 조심조심 밟고 내려가니 거실 소파에 앉은 도윤이 고개를 들어 해교를 맞이하였다.

“잘 잤어요?”

“네. 덕분에 정말 잘 잤어요.”

도윤은 일이 있어 종일 밖에 있을 거라고 했다. 따로 이 집에 올 사람은 없으니 정말 본인 집처럼 편하게 지내면서 TV도 보고, 영화도 보고, 냉장고 속에 준비된 음식도 마음껏 먹으라며 해교에게 신신당부했다.

“저기…….”

“도윤아, 하면 더 좋을 텐데.”

“아……. 노력해 볼게요.”

“그래요, 형. 무슨 할 말 있어요?”

아까부터 우연제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도 틀림없이 이불 속에서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울려 대고 있을 터였다. 똑똑한 도윤이라면 방법을 제시해 줄지도 몰랐다. 해교가 달싹이던 입술을 떼고 말했다.

“저기, 싫은 사람 없어요?”

느닷없는 이야기에 일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띄워졌지만, 도윤은 금세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왜 없겠어요. 저도 사람인데 있죠.”

“그럼 싫은 사람이 자꾸 연락을 하면…… 어떻게 해요?”

“글쎄요. 저라면 눈치를 줄 거 같은데요. 티 나게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아요. 싫은 사람이 자꾸 형한테 연락해요?”

“아,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면 도와줄 수 있을 텐데, 거짓말에는 틀림없이 소질이 없는 것 같은 해교였다.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라 저 외에도 달라붙는 사람이 많나 보다 생각한 도윤은 정 못 알아들으면 차단해 버리라는 말을 덧붙이고 집을 나섰다.

해교는 침대맡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어제부터 미뤄 둔 문자 메시지는 차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도 읽지 않은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우연제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와 그 위에 덧씌워졌다.

[우연제♡

어디예요? 화 안 낼 테니까 답장만 해요. 오전 10:25]

[오전 10:58 알아서 뭐하게 이제 그집가도 업고 일도 안할거니까 찻지마세요.]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작성한 문자를 송신했다. 질끈 감은 눈을 뜨자마자 우연제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꽤 오랫동안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를 바라보던 해교는 도윤의 조언을 떠올리며 그의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

벨 소리는 차단과 함께 무력화되어 더 이상 고막을 괴롭히지 않았다. 싱거울 정도로 쉬웠다. 물론 일상으로 되돌아가면 언제고 다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문제지만 이 집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만이라도 잊고 지내고 싶었다. 우연제가 아니라도 저를 괴롭히는 문제가 많았으니까.

이제 의사 선생님과의 약속을 해결해야 하는데. 하나 이 얼굴로 병원에 갈 수도 없었고, 아직은 도윤의 집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연구 지원비 받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너무 뻔뻔한 환자 같았지만 이번만은 선생님께 핑계를 대고 진료를 미뤄야 할 듯했다. 아. 연구 지원비……. 어떡해. 문득 의사 선생님이 주셨던 돈 봉투가 떠올랐다. 아마도 그 사람들이 그대로 가지고 갔을 것 같았다. 치료가 끝나면 무슨 돈으로 의사 선생님께 보답을 하지. 당장 다음 달 월세는.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버지가 그들로부터 정확히 얼마를 빌렸는지 알지도 못했고, 돈을 빌려 어디로 자취를 감췄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오늘따라 저 자신이 더욱더 한심하게만 느껴져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더 한심한 인간이 될 순 없던 해교는 나지막한 한숨 뒤에 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 주말 잘 보냈어요?

“아…… 네에.”

- 차해교 씨가 먼저 전화를 주니 좋네. 오늘 저녁 식사로는 장어구이 생각 중인데. 괜찮아요?

“저기…… 정말 죄송한데…….”

* * *

전화를 받은 지혁은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차해교 입에서 죄송이라는 단어가 나올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주말 내내 기다렸는데 얼굴을 보지 못한다니 김이 샜지만, 얼마나 망설이면서 꺼낸 이야기인지 잘 알기에 다그칠 수도 없었다.

“병원에 오기 힘들면 내가 가는 건 어때요?”

- 그게…… 어, 집이 아니라서요.

“집이 아니면 어딘데.”

- 치, 친구 집요.

“친구 집엔 왜 갔어요.”

다그치지 않겠다는 다짐과는 달리, 지혁은 집요히 물어 댔다. 오늘 해교가 먹은 밥그릇 속 쌀알 개수까지 알아낼 기세로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어디에 가 있는 건지, 몸이 아픈 건 아닌지, 왜 오늘 만날 수 없는 건지.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평생 보지 못하던 특이한 몸을 봤고 그래서 호기심이 동했다. 막상 겪어 보니 생각보다 좋았고, 그리고……. 그저 존재 자체가 신기하고 환경이 짠해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거라고, 알고 보면 저도 동정심이 꽤 많은 인간이라 결론 내리며 덮어 두었던 감정은 뜻하지 않게 병원을 방문한 사촌 때문에 선명히 자각하게 되었다.

“친구는 옆에 있어요?”

- 아니요. 지금은 저뿐이에요. 선생님, 그런데 이렇게 진료 빼먹어도…… 돼요? 나라에서 돈까지 받았는데…….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긴 하죠. 그럼 잠깐 영상 통화 가능합니까.”

개수작 레퍼토리야 입만 열면 한가득 쏟아 낼 수 있었지만 예전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함부로 시도할 수 없었다. 기껏 형성한 레포가 단번에 무너질지도 모르는 짓 따위, 확신이 설 때까지 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새로운 관계로 안착할 때까지만 지금 하던 짓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벗어난다면 지금처럼 제 취향대로 야한 몸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을지 미지수였으니까.

시꺼먼 속을 숨긴 지혁의 제의에 머뭇대던 해교가 작은 목소리로 알겠다는 대답을 해 왔다. 해교는 침실에 설치된 조명을 어둡게 하고 최대한 방 구석진 벽에 등을 붙이곤 휴대폰을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혁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왜인지 이런 상황이 몹시 부끄러웠던 해교는 카메라 가득 커다란 동공만 비추었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 지혁은 낮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눈 예쁘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예뻐요. 잘 봤어요. 더 예쁜 얼굴은?”

- 세, 세수를 안 해서 조금…….

“눈곱이 꼈어도 예쁠 거 같은데.”

아무리 조명이 어둡다 한들 얼굴을 비추면 티가 날 것 같았다. 지혁의 제안을 단 한 번도 거절해 본 적 없는 해교가 차마 거절을 입에 담진 못한 채로 정적을 유지했다.

“……알았어요. 나중에 실물 보면 되니까 아쉬워도 참을게. 그럼 이제 보지 보여 줘요.”

- 아…….

지혁의 말에 고민하는 듯 해교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애초에 진료가 목적이니 보지마저 거절할 순 없는데, 셀 수 없이 많이 보여 준 보지지만 카메라 너머로 비추려니 망설임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보이다 사라진 붉은 혀가 아쉬워 지혁이 숨을 삼켰다.

못 만지는 대신 보는 것도 못 하나. 또 어떤 개소리를 늘어놓아야 카메라를 아래로 비출까. 기다리는 시간이 영겁처럼 다가왔다.

- ……부, 부끄러워서……. 진짜 이건 부끄러워서 사, 살짝만요.

“……씨발.”

- 네?

“아닙니다. 계속해요.”

답이 없었다. 무얼 보여 주지도 않았을진대 벌써 자지가 빳빳이 고개를 들고 앞섶이 끈적하게 젖어 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지혁은 괜히 굳게 닫힌 진료실 문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해교는 지혁이 원하는 각도를 물어보며 성심성의껏 제 몸을 비추려 노력했다. 허벅지를 벌리고 앙증맞은 손으로 보지 양 날개를 열어젖히니 미끈거리는 붉은 살이 화면 가득 비쳤다. 윤기가 흐르는 조갯살이 통통하게 부푼 모습에 지혁이 혀를 꺼내 아랫입술을 핥았다.

“자지를 위로 좀 치워 봐요.”

아직 피가 몰리지 않은 조그만 자지가 축 처져 자꾸만 보지 입구를 가렸다. 지혁의 말에 해교는 제 좆을 잡아 올리고 벌름거리는 보지가 잘 보이도록 전방 카메라를 가져다 댔다.

“손바닥을 펼쳐서 보지 앞을 눌러요. 내 손바닥으로 차해교 씨 보지를 세게 눌렀던 걸 기억하면서 그대로 하는 겁니다. 내가 직접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 거기.”

- 여기이, 흣, 여기요…….

해교는 지혁의 말대로 지그시 힘을 주고 말랑한 보지 둔덕을 압박했다. 조그만 불알을 가르고 들썩이는 보짓살을 강하게 짓누르자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다 마침내 보지가 해교의 악력에 적응을 했을 때, 지혁은 누른 손바닥을 빠르고 잘게 흔들 것을 요청했다.

“기분이 어때요?”

- 하, 아아, 아응, 조아……하요……!

짓눌린 상태에서 잘게 진동까지 일어나니 질 안이 뜨끈하게 녹아내렸다. 더는 손바닥을 움직이지 않아도 보지 근육이 알아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펄떡거렸다. 치미는 야릇한 기분을 참아 낼 수 없던 해교가 손을 고정한 채로 엉덩이를 마구 흔들었다.

찐득하게 젖은 보짓살이 이리저리 밀리면서 비벼지는 소리가 났다. 보지 안에서 폭죽이 팡팡 터지는 것만 같아 해교가 아앙, 하앙, 가느다란 신음성을 내뱉었다. 이를 들은 지혁의 좆이 맥박 치며 단단히 기립하였다.

흥분한 해교가 휴대폰을 놓치면서 카메라 렌즈에 보지가 닿았다. 순식간에 보짓물이 치덕치덕 휴대폰 카메라에 묻어났다. 뿌예진 화면 속, 선홍빛 소음순이 빼꼼 고개를 내민 채 저릿저릿 떨리는 모습에 당장이라도 바지 앞섶을 뚫고 나올 듯 지혁의 아랫도리가 힘을 받았다.

지혁은 무작정 바지 지퍼를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 퉁, 튕겨 나오는 좆을 꺼낸 뒤 손바닥으로 탄탄한 것을 감싸자 울끈불끈 돋아난 핏줄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는 흔들리는 화면을 통해 보이는 보지를 당장 범하는 듯 허리를 앞뒤로 움직여 댔다.

지혁만 남은 진료실 안, 젖은 살이 손바닥과 닿아 만들어 내는 마찰음이 고요한 건물을 울렸다. 쩍쩍쩍, 끈적한 선액이 뜨거운 살 기둥과 맞붙으면서 나는 음란한 소리였다.

- 아, 선생님…… 읏.

“크읏. 내가 보지에 지금 자지를 박고 있어요. 하, 씹. 보지 좀 작작 조여요.”

- 하아앙…… 아아, 아, 아, 아!

해교는 어느덧 무릎에 힘이 풀려 가랑이가 활짝 벌어져 있었고 엉덩이를 맞댄 시트 위는 치덕거리는 보짓물로 흥건히 젖었다. 황홀한 압박감에 뜨거워진 보지와 함께 자지까지 꺼떡였지만 해교는 단단히 발기한 자지를 외면하며 오로지 압박 자위만으로 절정에 닿았다.

마침내 닿은 절정에 얇은 허리가 파르르 요란스레 요동치고 모였던 발가락은 쫙 펼쳐진 채로 움찔댔다. 자지를 쑤셔 넣지 못한 보지 구멍과 뒷보지 구멍이 감질난 듯 입구를 잘게 조였다 풀며 음란하게 뻐끔거렸다.

엉덩이가 제멋대로 경련하며 꼬리뼈 근처 근육까지 움푹 패었다. 해교는 잘게 진동하던 엉덩이의 움직임이 서서히 멎자 뒤늦게 휴대폰을 주워 들어 지혁을 찾았지만, 지혁 대신 화면 가득 희뿌연 덩어리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 * *

“형……?”

종일 둘째 형과 씨름하며 해교의 아버지, 차윤식의 채무를 알아본 도윤이 귀가했다. 불러도 응답이 없는 해교 때문에 도윤은 자연스레 복층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색정적인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제 옷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욕실 문 안에서는 솨아아, 씻는 소리가 났다. 거기다 더해 코를 찔러 대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야한 냄새까지. 야릇한 상황에 습한 공기까지 얹어지니 아찔했다.

순식간에 뇌리를 파고들며 퍼붓는 오감에 도윤의 숨이 뜨거워졌다.

얼마 전, 엉겁결에 보게 된 하얀 나신 곳곳을 떠올리자 단번에 몸 전체에 열이 올랐다. 끓어오른 머릿속에서 해교는 제가 내준 티셔츠만 입은 채 다리를 벌리고 자위하고 있었다.

‘뭐 해요. 형?’

‘아, 아으…… 아니,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도와줄까요?’

‘읏…….’

해교는 눈꼬리에 눈물이 맺힌 채로 하얀 사타구니를 내밀었다. 도윤은 드러난 해교의 자지를 살살 만져 주다 같이 떨리는 통통한 볼기로 손을 가져갔다. 아으응…… 응! 흥분한 가느다란 신음이 들려오고, 엉덩이 사이에 손을 넣자 어느덧 도윤의 목울대도 울리기 시작하는데.

들려오던 물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아마도 해교가 샤워를 끝낸 듯했다. 도윤은 방을 나와 다시 아래층으로 향하며 몇 번이고 제 뺨을 두들겼다.

해교가 씻고 난 뒤 복도로 나오자 아래층에서 일정한 소리가 들려왔다. 거실을 거쳐 소리가 들리는 부엌으로 향하니 도윤이 어설프게 칼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뭐 해요?”

“간단하게 파스타 만들어 보려고요.”

“아, 파스타. 칼 저한테 주세요. 칼이랑 안 친할 거 같은데……. 집안일은 제가 할게요.”

도윤의 눈썹이 둥그렇게 올랐다. 어울리지 않게 단호히 내밀어진 작은 손바닥에 정신이 얼떨떨해진 까닭이었다. 직접 칼로 사람을 찌른 적은 없지만 찌르는 걸 본 일은 몇 번 있었는데. 도윤은 해교가 생각하는 제 이미지가 어떤지 짐작이 돼 얼굴 근육에 힘을 주고 겨우 웃음을 참아 냈다.

한사코 물러나지 않는 손바닥에 닿았던 시선을 위로 옮겼다. 욕실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뽀얀 살결 곳곳에 물기가 묻어났다. 촉촉해 보이는 발긋한 살결에 눈길이 닿자 간신히 진정시킨 성적 욕망이 다시 고개를 들려 했다.

도윤은 식칼 손잡이를 해교에게 쥐여 주다 새어 나오는 뜨거운 숨을 힘껏 참아 냈다. 해교의 손바닥에서 옮겨 붙은 물방울에 마른침을 삼켜 넘길 때, 아무것도 모르고 눈을 끔뻑이는 그가 아니었더라면 칼 따위 저 너머로 던져 버린 채 그의 손가락과 제 손가락을 얽었을지 몰랐다. 살짝 닿은 것만으로도 말초 신경이 아찔했다.

“양파 썰면 되는 거죠?”

근육이 세밀하게 갈라진 팔뚝을 움직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 고작 양파 두 조각이라니. 해교는 알게 된 이래 처음으로 도윤이 동생처럼 느껴져 작게 웃음 지었다.

같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사람은 잠시 후, 합심해서 요리를 하느라 곧 동일한 목표를 가졌다.

빈말로라도 썩 잘한다고 할 수는 없는 칼질이었지만 오밀조밀한 손을 열심히 움직여 만들어 낸 결과물은 제법 그럴듯했다. 해교는 왠지 기분이 우쭐해졌다. 눈에 띄게 밝아진 해교의 표정에 도윤이 부러 더 호들갑을 떨며 그를 추켜세워 주었다.

소꿉놀이하느라 도윤의 정신이 팔린 사이, 방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초인종이 빈 거실을 울렸다. 혹시라도 우연제일까 긴장한 해교가 도윤보다 빨리 인터폰 앞으로 달려가 방문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 선배님.”

- 도윤아. 바빠? 학과장님 만나러 왔다가 잠깐 들렀어. 전화했더니 안 받더라고.

“아, 아뇨. 안 바빠요.”

반가운 기색이 만연한 얼굴로 도윤이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선 미남자는 방문 선물인 듯 한 손으론 와인병을 들고 나머지 손으로 도윤과 악수했다. 잠시간의 인사가 끝나자 도윤 뒤에 어색하게 서 있는 해교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이건 전에 내가 말했던 와인. 이분은 누구셔?”

“아, 저랑 친한 형이에요. 일이 있어서 당분간 같이 살아요.”

“안녕하세요? 도윤이 학교 선배……라고 해도 되나? 너무 시조새라서. 하하. 한지헌이라고 합니다.”

뜻밖의 방문자는 해교가 아는 누군가와 닮은 듯했다. 서늘한 인상이면서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흔치 않은 사람의 얼굴이 그에게 겹쳐 보였다.

“의사 선생님?”

“예?”

“아니, 아니에요.”

도리질하며 머릿속에서 지혁을 지워 낸 해교가 어색하게 웃으며 현관에서 비켜섰다.

때마침 식사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손님은 화려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소탈한 성격이었다.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쉽게 형성되었고 어설픈 파스타와 지헌이 사 온 와인을 곁들여 제법 식사다운 식사를 마친 뒤, 도윤과 지헌은 해교까지 끼워 담소를 나누었다.

동시대에 함께 학교를 다녔던 적이 없음에도 도윤과 꽤 친한 사이라는 지헌은 얼마 전엔 도윤네 학교에서 강의를 할 만큼 대단하고 멋진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볼수록 의사 선생님과 많이 닮아 있어 자꾸만 눈을 힐끔거리게 됐다.

셋이서 함께한 저녁 시간은 유독 빠르게 흘렀다. 해교는 도윤과 함께 저녁에 방문한 손님을 배웅한 뒤 온통 어려운 활자들만 가득한 서재를 구경했다. 도윤을 따라 그나마 글자 크기가 커 보이는 책을 꺼냈다가 한 줄도 채 읽지 못하고 포기하곤 서재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도윤의 모습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 지루해 보이는 해교를 눈치챈 도윤은 그가 흥미를 가질 만한 DVD를 골라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 흐리멍덩하던 해교의 눈동자가 단숨에 반짝이는 모습을 보며 도윤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서재 벽면에 붙어 있던 흰색 스크린에 슈퍼 히어로가 등장했다. 무적의 슈퍼 히어로가 악당을 잡아 혼내 준다는 줄거리의 영화는 내용이랄 게 없었지만 펑펑 터지는 특수효과와 변화무쌍한 주인공의 옷차림 때문에 러닝타임 내내 해교의 흥미를 유발했다.

늘 조그마한 TV 화면으로만 보던 영화를 커다란 화면으로, 옆집에 들릴까 걱정해 낮은 볼륨으로 듣던 소리를 생생한 홈 시어터 스피커로 듣느라 해교는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도윤은 옆에 앉아 영화 대신 스크린에서 쏘아진 각양각색의 빛으로 인해 일렁이는 해교의 얼굴을 응시했다. 가끔 놀라 얼굴 근육이 살짝살짝 움직일 때면 그 모습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영화 관람이 끝난 뒤,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해교를 보곤 다음번엔 팝콘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윤이 자리를 정리했다.

상기된 표정의 해교는 덕분에 잘 봤다는 말을 열 번쯤 되뇌고는 복층으로 올라가 손님방에 다시 몸을 뉘었다.

도윤은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도 잠기지 않은 침실 문을 열고 해교를 바라보았다. 잠결에 간간이 몸을 뒤칠 때마다 미간이 얕게 꿈틀거렸다. 낮에 본 야릇한 장면 때문인지 별것 아닌 그 모습이 걷잡을 수 없이 색정적으로 느껴졌다.

느낄 때 저런 표정이 되지 않을까.

순간적으로 진한 흥분감이 피어올랐다. 평소 도윤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표정이었다. 깊은 눈매는 열기가 올라 한결 더 그윽해져 있었고 혹여나 해교가 깰까 긴장한 아랫입술은 꽉 깨물린 채였다.

도톰한 입술 사이로 새근새근 얕은 숨결이 느껴졌다. 충동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맞댄 뒤, 부드러운 입술 안쪽 살을 살짝 혀로 쓸어 내고 빼냈다.

최대한 조용히 입술을 떼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쵹, 젖은 점막이 맞닿았다 떨어지는 소리가 푸른 새벽을 갈랐다. 도윤은 혀끝에 묻어나는 타액을 음미하듯 입 안에 머금었다. 설탕이라도 녹여 넣은 듯 느껴지는 타액의 맛이 달았다.

큰 움직임 없이 부드러운 점막이 닿았을 뿐인데 온몸의 말단에 전기라도 통한 듯 몸체가 저릿저릿해졌다.

미동 없이 깊은 잠에 빠진 해교를 내려다보는 열기 어린 눈동자가 일순간 혼란에 차올랐다. 미친……. 한심한 스스로를 지탄하는 욕설과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자조도 잠시, 쥐 죽은 듯 잠든 해교의 모습에 어느덧 도윤은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드로어즈를 내리고 자신의 얼굴처럼 반듯하게 선 묵직한 성기를 꺼냈다. 진득한 선액으로 범벅이 된 커다란 귀두 아래 흉흉히 발기한 기둥이 둔중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찔걱, 찔걱 습한 소리가 적막한 방 안을 울렸다. 그래도 손이 움직이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뜨겁고 거대한 것이 도윤의 손 움직임에 따라 맥동하며 점점 더 몸집을 키워 나갔다.

역치를 가늠하듯 도윤의 움직임이 약해졌다 거세지길 반복하였다. 거친 손바닥 표면이 온통 끈적거렸다.

더럭 치미는 야릇한 감각에 숨이 뜨거워지고, 억누른 신음이 낮게 새어 나왔다.

“하아, 후으…….”

도윤은 살 기둥을 붙들고 아래위로 오갈 때마다 점차 자지를 쥔 손가락 폭을 좁혀 갔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살덩이를 조이고 뿌리 표피까지 문지르자 자지를 감싼 핏줄이 선연하게 불뚝였다.

도윤은 손에 쥔 거대한 성기를 하얗고 말간 얼굴 위에 문지르는 상상을 했다. 붉고 도톰한 입술 주변을 불그죽죽한 살덩이로 치대는 것에서 시작된 상상은 마침내 비릿한 정액을 살짝 벌어진 입술 새로 쏘아 내는 음험한 장면까지 이어졌다.

삽시간에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에 해일처럼 거대한 성감이 들이쳤고, 곧이어 눈앞에 번쩍번쩍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크읏…….”

기어코 이런 짓까지 해 버렸다.

후회보다 더 큰 욕망이 이성을 집어삼켰다. 여태껏 혼자 해 오던 수음과는 차원이 다른 성감이었다. 혼자 제 것을 쥐고 흔든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지만 떠올리고 상기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놀랄 만큼 어마어마한 고양감을 일으켰다.

도윤은 손바닥에 가득 찬 눅눅한 액체를 내려다보다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 * *

“저번에 여기에서 진료하니 편하지 않았나요.”

편했나? 모르겠다. 자세는 한결 편안했을지 모르나 병원에서보다 훨씬 격하게 지혁이 몰아붙이는 통에 해교는 그다지 컨디션에 차이가 없었다. 병원 침대보다야 의사 선생님 댁 침대가 훨씬 폭신하고 넓긴 하지만……. 당연히 그럴 거라는 전제로 지혁이 물어 오자 해교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한테 진료받는 거면…… 저는 어디든 좋아요.”

“……어디든 좋아요?”

“그, 서, 선생님이 친절하게, 잘 진료해 주시니까…….”

어디까지나 진료에 한정하려는 것처럼 모호한 대답이 들려오자 지혁의 얼굴에 어렸던 희미한 미소가 사라졌다. 저를 대하는 차해교의 태도를 보면 호감은 있어 보였지만 단순히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그런 결론이 도출된다.

한동안 가사 도우미 일을 쉰다는 해교 때문에 지혁은 평일 저녁에 만나던 시간을 주말로 바꿀 것을 제안하였다. 기왕에 일을 쉬는데 굳이 평일 저녁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고, 넓은 집에서 종일 함께 있다 보면 진료를 빙자한 씹질 외에도 할 수 있는 것은 많았으니까.

변곡점을 노리는 지혁의 눈동자에 음습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

“오늘 클립은 잘 끼고 있었어요? 보여 줘요.”

“하, 하긴 했는데……. 조금 이상했어요.”

“어떻게 이상했어요. 잘못 끼운 건 아니고?”

“아니에요! 저번부터 쭉 알려 주신 대로 했어요. 정말이에요.”

해교가 억울한 듯 눈썹을 내리곤 침실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혁의 집이니 방문자가 있지 않은 이상 열리지 않을 테지만 우연제의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도윤이 방문했던 경험이 있어 지혁의 집에서도 경계는 늦출 순 없었다.

움직이지 않는 문을 잠시 바라보다 티셔츠를 살짝 올려 지혁에게 속살을 내보였다. 손가락에 걸려 비스듬히 올라간 티셔츠 천 아래, 굴곡진 하얀 젖가슴 사이 더 도톰하게 부어오른 유두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자극을 주지 않으면 대부분 옴폭 들어가 있는 함몰 유두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고정된 클립을 확인하는 척하며 맞은편에서 나와 은근히 톡, 치고 지나가는 손가락에 가뜩이나 예민하게 부푼 젖꼭지가 얼얼할 만큼 올라붙었다.

놀라 티셔츠를 놓자마자 느릿느릿 내려가는 천의 감촉에 젖꼭지가 아닌 부위의 살결도 덩달아 파들파들 떨렸다. 유두 클립 위를 덧그리고 사라지는 손길을 느낀 해교가 달뜬 숨을 내쉬었다. 어느덧 말간 얼굴이 발긋해지고 귓바퀴마저 붉게 물이 들어 있었다.

“흐으읏…….”

“뭐가 그렇게 이상했어요?”

“그게, 그게에…….”

“차해교 씨와는 이제 모든 걸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서운하려고 그러네. 우리 사이에 말 못 할 일이 있나요?”

“그게에…… 아닐 수도 있는데……. 클립을 끼울 때 여기 끝에서 뭐가 나온 것 같아요.”

해교의 말에 지혁이 조용히 침을 삼켜 넘겼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찔한 장면 때문에 태연한 척하던 손길에 조급함이 묻어났다.

지혁은 해교의 허벅지 바로 앞 시트를 짚고 갈급한 손길로 그의 입가에 티셔츠를 물렸다. 그러곤 유두 클립을 벗겨 낸 뒤 퉁퉁 분 유두를 찍어 눌렀다. 아흐응…… 하응……. 긴장한 돌기가 또렷이 솟는 모습을 본 지혁이 유륜 주변을 강하게 쥐고 짜부라뜨렸다.

“학, 아흐읏!”

찌릿한 감각에 신음이 터져 입술 새가 벌어졌다. 놓친 천에 반쯤 가려진 말캉한 젖가슴은 희롱하는 대로 짓뭉개지며 모양이 변했다. 손가락에 착 감기는 유두를 일부러 건드려 밀 때마다 오싹한 쾌감을 느낀 해교가 할딱였다.

매혹적으로 튀어 오른 젖꼭지 끝을 붙잡고 좌우로 재빠르게 흔들었다. 하얀 살결이 출렁출렁 움직일 때마다 투명한 피부 아래 자리 잡은 핏줄이 살짝 보였다 사라지고, 유륜과 유두의 색깔은 점점 더 붉게 변해 갔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상상만 해 오던 모유가 이 자그마한 젖꼭지에서 나올 터였다.

처음에 그렸던 모습, 딱 그 정도까지만 욕심을 내고 싶었다. 타고난 몸을 인위적으로 조금 변화시키긴 했지만 뭐, 그까짓 거 책임지면 될 일 아닌가. 지혁은 해교에게 결핍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채워 줄 생각이었다. 해교만 자신에게 넘어온다면.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빈집 대신 제가 기다리는 집에서 지내도록 하고, 일을 하러 다니는 대신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마음껏 하게 해 줄 자신이 있었다.

아, 정정해야겠다. 방금 떠올린 생각에는 오류가 있다. 차해교를 목 빼고 기다릴 일이 생기게끔 내돌릴 일은 없을 테니 누군가 그를 기다리는 집은 제공되지 않을 터였다.

지혁이 젖가슴을 진득하게 주무르다 볼록 튀어나온 젖꼭지를 깔짝였다. 산란하는 전율에 보지 속살을 가르고 뜨거운 물이 콸콸 터졌다. 해교는 허벅지를 붙여 찰싹 올라붙으려는 자지와 흥건해진 보지를 감추려 들었다.

“후우, 허벅지 벌려요.”

“하으으…… 네에…….”

해교가 힘겹게 대답하며 붙였던 허벅지를 다시 떼 내었다. 가랑이를 모은 동안 짓눌려 촘촘하게 입구를 다물었던 보지가 쫘악 펼쳐지면서 질척한 애액이 가늘게 늘어지고 쩌억, 쩍 음란한 소리가 귀를 울렸다.

하얀 사타구니가 드러나자 감추려 했던 음탕한 보지와 자지가 동시에 드러나 치욕스러웠다. 하지만 보지는 해교의 그런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살집을 부풀리곤 울컥울컥 보짓물을 흘려 댔다. 이에 화답하듯 연약한 젖가슴을 느릿하게 주무르던 손길이 곧장 으슥한 보지 안을 침범하였다.

* * *

“형, 불도 안 켜고 뭐 하고 있…….”

도윤이 들어서며 자동으로 켜진 현관 센서 등이 희미하게 인영을 비추었다. 소파 위로 길게 늘어진 곤한 몸이 쌔근대고 있었다. 집 안의 모든 블라인드를 걷어 놓은 통에 커다란 통창을 통해 드리운 빛과 바람이 동시에 해교를 뒤덮었다.

도윤은 한참 동안 말없이 창밖에서 들어온 빛이 반사된 해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의하기 힘든 감정이 일렁였다. 그러다 시간이 꽤 흘렀음을 인지해 잠든 어깨에 손을 올리곤 조심스레 그를 흔들었다. 해교는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들어 이렇게 깨우지 않으면 도통 일어나질 않았다.

“형. 저녁 먹어야죠.”

“우응…… 왔어요?”

아직 잠이 덕지덕지 묻은 눈으로 웅얼대는 해교를 보며 도윤이 미소 지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순간 도윤의 머리칼이 흐트러졌다. 해교가 손을 높이 뻗어 자꾸만 도윤의 눈을 찌르는 머리카락을 제법 형처럼 쓸어 넘겨 주곤 배시시 웃었다.

“……곧 가을이라 이제 바람이 세네요. 창문 닫을까요?”

도윤은 해교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네모난 창문을 투과한 노을빛이 가늘게 부서지는 뺨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어려운 질문이라도 들은 것처럼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꺼내어 살펴볼 수 없는 심장을 깃털로 간질이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을 직감한 도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본가에서 가져온 반찬들로 식사를 마친 뒤, 도윤이 넌지시 해교에게 물어 왔다.

“형. 혹시 아버님 보고 싶진 않아요?”

“네. 그, 아빠가 미운 건 아닌데 자꾸, 자꾸 누구 돈 빌렸다는 이야기만 듣게 되니까…… 별로 안 만나고 싶어요.”

“그럼 아버지 찾지 말고 저랑 지내요. 형 만나기 전엔 몰랐는데, 꽤나 삶이 무료했던 거 같아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같이 지내고 싶어요.”

“안 그래도 일도 오래 안 했고 그래서 할 말이 있었는데요, 저기…….”

“아직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저는 그래요. 얼마 전에 형네 집 근처 간 적이 있는데 전에 봤던 사람을 얼핏 본 거 같아요.”

해교의 입에서 나올 말을 직감한 도윤이 말허리를 잘랐다. 이대로 집을 나가겠다는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 동네에 가 본 적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입술 새에서 거짓이 흘러나왔다.

“저, 정말요?”

“네. 그러니까 좀 더 여기 있어요. 저는 형이랑 있어서 좋은데 형은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형이 워낙 집 정리도 잘해 주셔서 가사일 하는 분도 안 부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형이 그 몫 한다고 생각하고 그냥 있어 주세요.”

늘 이런 식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이 집에 머문 시간이 꽤 흘러, 오늘처럼 슬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도윤은 여러 핑계로 해교를 설득해 주저앉혔다.

결국 오늘도 도윤의 말에 넘어간 해교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일 따름이었다.

습관처럼 거실 소파에 앉아 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니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져 왔다. 해교가 먼저 인사 후 사라지자 도윤은 제 침실로 돌아가 침대에 올랐다. 한참 동안 숨을 골랐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도윤은 불 꺼진 복층으로 올라가 반쯤 닫힌 문을 열었다. 해교는 전혀 모르는 도윤의 일상이었다.

하던 대로 해교를 내려다보며 바지 안에서 자지를 꺼내려던 중, 평소보다 젖꼭지에 바짝 달라붙은 티셔츠가 그의 눈길을 끌었다.

어두운 와중에도 주변과 확연히 색상을 달리하는 동그란 자국이 천 위로 번져 있었다. 젖꼭지를 두른 유륜을 표시하듯 경계를 이룬 액체가 척척했다. 도윤은 해교의 얼굴을 슬쩍 확인하며 티셔츠 옷자락을 잡아 올렸다.

ㅆ…… 순간적으로 놀라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옴폭 파인 분홍색 젖꼭지가 불투명한 즙에 잠겨 있었다. 함몰 유두 부분에 꽉 찬 즙은 젖꼭지를 넘어 유륜 근처까지 질질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일반적인 물의 점도는 아니었다.

도윤이 조심스레 오돌토돌한 젖꼭지 표면을 문지르니 찔끔찔끔 허연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결 과감하게 넓은 유륜 바깥 젖샘을 누르자 팟, 쪼르르…… 돌기에서 젖물이 터져 나왔다.

점성이 있는 물, 내지는…… 우유로 추정되는 액체였다. 뭐가 되었든 멀쩡한 남자의 가슴에서 나올 리 없는 것들이었다.

“하…….”

참았던 숨이 터지며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라도 해교가 깨진 않았을까 일순 당황이 어렸지만 도윤은 곧 손가락에 묻어난 정체 모를 물줄기의 출처를 향해 혀를 내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이면 괜찮겠지.

똑, 또독. 방울방울 흘러나오는 액체를 살짝 핥고 떨어지자마자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강렬한 충동이 몰아쳤다. 도윤이 재차 혀를 내어 젖꼭지를 길게 핥아 내렸다. 으, 우웅……. 잠귀가 매우 어두운 해교지만 자면서도 자극은 그대로 느껴지는지, 고르던 숨결이 점차 불규칙적으로 변해 갔다.

도윤은 말랑말랑한 젖가슴을 타고 흥건히 흐르는 여러 줄기의 액체를 모조리 핥고 빨았다. 목울대가 선연하게 움직일 때마다 할짝이는 소리가 났다.

첫맛은 살짝 비렸으나 유륜에 입술을 대고 쭉 빨아 당기다 보니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묘한 쾌감에 머릿속이 혼탁해져 쪽쪽거리며 젖물을 몽땅 빨아 먹었다. 더는 젖꼭지에도, 젖가슴에도 젖물이 나온 흔적이 없을 때까지 쫍, 쫍 흡착하며 압박해 대는 바람에 발딱 선 젖꼭지와 빈 젖통이 잘게 떨렸다.

평소보다 더 흥분한 도윤이 손으로 잡고 흔들던 자지를 해교의 복숭앗빛 뺨 위에 올렸다. 힘줄이 선 손등을 움직이며 보드라운 살갗 위를 살살 문질렀다. 고아한 얼굴에 딱딱한 좆 기둥이 밀리면 밀릴수록 점차 살덩이가 커다랗게 몸체를 부풀렸다.

아직도 입 안에서 느껴지는 젖내와 미처 내리지 않은 옷 때문에 그대로 보이는 새하얀 젖가슴에 아찔한 흥분이 몰아쳤다. 치미는 흥분감에 어느덧 가빠진 호흡을 내뱉으며 저돌적으로 좆을 문질렀다. 표피가 쓸릴 때마다 열기와 점액질이 엉겨 노골적인 소리가 났다.

“후으…….”

얼굴에 문지르던 자지를 거둔 뒤, 말아 쥔 손바닥 안에 정액을 사출하였다. 사정의 여운으로 잠시간 몸을 떨던 도윤이 잔뜩 흐트러진 바지를 추어올렸다. 전에 없던 짓을 하기 시작한 지도 어언 1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불과 1달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모든 게 바뀌어 있었다.

과거의 자신에게 넌 조만간 남자에게 좆을 세우다 못해 그를 반찬으로 쓰며 자위하게 될 거란 말을 한다면 믿어 줄까. 가능할 리도 없는 가정이지만 지금 상황은 더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도윤은 자조적인 웃음을 띤 채 고개를 저었다.

* * *

이도윤이 달라졌다.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근래 들어서는 불쑥불쑥 연제의 집에 들이치는 짓을 하지 않을뿐더러, 혼자 가만히 하늘을 보고 웃거나 괜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늘었다. 지금처럼.

“이도윤.”

“어?”

역시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수상쩍었다.

“너 여친 생겼어? 연애해?”

“무슨 말이야? 갑자기.”

태연한 척 대답하면서도 도윤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후 15:32 형,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저녁은 뭐 먹을까요.]

연제의 말대로 꼭 연애하듯 해교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도윤은 그 질문을 듣자마자 우연제가 저와 해교의 사이를 모르는 새 인정이라도 한 듯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존나 좋아 보여서.”

“내가 좋아 보여? 그럼 그런가 보다. 넌? 방학 동안 뭐 했어?”

도윤이 뒤늦게 연제의 안부를 물어 왔다. 연제는 희미하게 한숨을 내뱉으며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뭐 하긴. 좆 빠지게 차해교 찾아다녔다.

“빨리도 묻네.”

“내가 그동안 집에 바쁜 일이 있어서 신경을 못 썼지. 이번 학기 시간표나 맞춰 볼까?”

“……그래. 그건 그렇고 나 부탁이 있는데, 사람 하나 찾아 줄 수 있어?”

“사람?”

“사립 탐정까지 써 봤는데 말도 안 되게 종적을 감췄더라고. 마치 누가 인위적으로 그 사람 흔적을 지우기라도 한 것처럼 증발해 버렸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였다.

도윤은 제가 아무리 해교 아버지의 채무 건에 관심을 가진다 한들 졸업도 못 한 학생인 채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알았다. 지금의 그에게는 이미 발생한 채무에 개입할 권리도, 자격도 없었다. 알아본 바 그의 아버지가 일으킨 사채가 한두 건이 아닌 터라 제 집안과 연계된 대출 외에도 추후 터질 건수가 한가득했다. 파면 팔수록 한계는 더더욱 명확해졌다.

하지만 해교를 제집에 들인 이상 어떠한 사건과 사고도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다. 도윤은 그간 보이던 불손한 태도를 바꾸어 아버지에게 금융업부터 차근히 배워 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후 아버지의 지시를 받은 둘째 형의 사무실에 부지런히 드나들며 비합법적인 일을 하는 이들과 안면을 텄다.

공공연한 오너가 핏줄이기에 그들의 협조를 구하는 일은 쉬웠다. 사건이 있던 당일 해교 집 근처 CCTV는 물론 조금이라도 그의 향방에 꼬리가 될 수 있는 요소는 남기지 않고 몽땅 정리했다. 해교의 집 주인 계좌로 몇 달 치 월세까지 송금해 잡음마저 방지하였다. 그러니 연제가 사설 업체를 동원해 해교의 종적을 찾기란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도윤은 어느 순간 해교의 아버지가 제 집안에 돈을 빌리고 도망간 것이 난데없는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더불어 걷잡을 수 없는 욕심이 생기자 진실을 알릴 생각이 없어졌다. 저 하나만 모른 척 눈을 감으면 될 일이었다.

“음. 누군데?”

“아는 건 이따 문자로 다 보내 놓을게. 급하게 찾아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야.”

“그래. 확신은 못 하지만 보내 봐.”

도윤이 해교를 찾는 것을 전면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걸 알 턱이 없는 연제는 급기야 도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도윤이 해교를 몇 번 본 적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름까지 알 리는 없으니 그를 찾는 연유야 대충 둘러대면 될 성싶었다.

간만에 집에 온 도윤이 돌아간 뒤 연제는 침대에 누워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이미 수십 번 곱씹어 보았던, 차해교가 사라져 버린 날을 떠올리면서.

그날로부터 며칠 전, 둘이 같이 여행도 다녀왔고 말미엔 차해교가 먼저 입술까지 들이댔다. 누가 봐도 꼬시는 거 아닌가? 차해교의 여우 짓에 홀랑 넘어가 폭염이 시작된단 뉴스에 에어컨 설치 기사를 대동하고 간 날이었다.

평소라면 몇 번 문을 두들기지 않았을 때 쏜살같이 튀어나왔을 텐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응답이 없었다. 창문이 난 쪽으로 가 보니 커튼이 쳐져 있어 지난번처럼 집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연제는 에어컨 설치 기사에게 팁을 주며 식사하고 오라고 하곤 현관문 앞에 철퍼덕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교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현관문에 몸을 붙이다시피 한 채로 귀를 기울였지만 벨 소리도, 진동음도 들리지 않았다.

이게 또 작정하고 피하는 건가. 사람을 홀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씨발. 폭염이라더니 실로 무지막지하게 더워 밖에서 버티고 있자니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땀이 솟아 미칠 것 같았다. 꽤 시간이 흘렀는지 식사를 하라고 보냈던 에어컨 설치 기사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1시간쯤 흐른 건가.

〈제가 다음 타임도 예약이 되어 있어서요.〉

〈언젠데요?〉

〈10분 내로 이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3시간 잡은 걸 다 썼어요.〉

〈3시간? 이 씹…….〉

결제를 마친 에어컨이지만 뙤약볕 아래 내려놓을 수 없어 연제는 기사에게 웃돈을 주고 에어컨을 되돌려 보냈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더니 대체 어딜 간 거야.

설핏 서리던 분노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안절부절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한낮의 이글대던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주변이 어둑하게 변했을 때, 연제는 앉아 있던 다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 보이는 주광색 가로등 불빛만이 연제의 곁을 외로이 지켰다.

택시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언덕진 곳이라 한참 걸어 내려가 겨우 택시를 잡아탄 뒤, 집에 도착하자마자 땀에 전 몸을 씻고 나와 다시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방금 떠나왔던 그 동네였다.

연제는 해교 집 앞에 차를 정차하고 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차 안에서 밤을 꼴딱 새웠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지 셀 수도 없고, 몇 통이나 문자를 보냈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초반에 들어갔던 협박 섞인 내용은 뒤로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종내엔 절박함만이 남았다.

[어제 오후 16:04 ㅆㅂ 어디예요]

[어제 오후 19:21 아오 집에 안 올 생각인가 봐?]

[어제 오후 21:15 전화 좀 받아 봐요]

[오전 10:25 어디예요? 화 안 낼 테니까 답장만 해요.]

연제는 제가 보내 놓은 문자 메시지를 읽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시발. 스토커도 아니고 이 무슨 좆같은 짓인지. 한숨을 내쉬며 차량 안 콘솔박스를 뒤져 나온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던 순간, 휴대폰 화면이 번쩍였다.

[좆집♡

알아서 뭐하게 이제 그집가도 업고 일도 안할거니까 찻지마세요. 오전 10:58]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 신호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우연제 인생에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던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씨……발.”

으레 그러했듯 곧 다시 만날 거라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연락이 끊긴 것이 마지막이었다. 사설 탐정까지 알아보며 여름 방학 내내 차해교의 행방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얻어 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감정의 기복이 거셌다. 화가 났다가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가. 하루에도 기분이 오락가락 널뛰는 일이 수십 번 되풀이됐다.

혹시 부정 타서 그런가. 전에 없이 든 생각에 ‘좆집♡’이라 저장해 둔 해교의 전화번호부상 이름마저 바꾸었다. 이제 좆집으로만 대하진 않겠다고 공표하듯 그의 저장 명칭을 바꾸어 보아도 당연히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 *

쨍그랑.

어울리지 않는 실수였다. 꽤 길게 얹혀사는 처지에 밥값은 해야 할 것 같아 부지런히 몸을 놀린다는 게 그만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접시를 깨 먹었다. 잔뜩 의기소침해진 해교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얼마짜릴 망가뜨려도 도윤은 전혀 개의치 않을 테지만, 부득불 뭐라도 하겠다고 우겨 놓고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제가 너무나도 한심스러웠다.

“에휴…….”

바닥에 쏟아진 접시 잔해를 치운 뒤 잰걸음으로 거실 곳곳을 뛰어다니던 와중, 현관문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강 후 살짝 바빠진 도윤이 이 시간대에 집을 방문하는 일은 없었기에 무슨 일이 있나 걱정된 해교가 그 소리에 쪼르륵 현관문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야. 이도윤. 알아본다더니 왜 소식이 없어.”

무작정 홱 젖혀지는 현관문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드리운 인영에 해교는 숨도 쉬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이…… 씨팔. 여기 있었어?”

아무리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보아도 퇴로는 완벽히 차단되어 있었다. 주춤주춤 물러나려 드는 해교의 눈앞에서 연제의 두꺼운 손이 올라가는 순간, 해교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제 죽었구나.

예상한 둔탁한 타격음과 통증 대신 연제가 팔을 벌리고 해교를 부둥켜안았다. 당황한 해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연제는 옭아맨 팔에 더욱더 힘을 주어 그를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형 때문에 좆같다는 게 뭔지 알게 됐어요. 걱정했잖아.”

“…….”

연제가 제 팔에 가두었던 해교를 놓아주며 눈을 마주쳐 왔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걱정돼 그간 살이 내렸던 저와는 달리 잘 먹고 잘 지냈는지 두 뺨에 포동포동 살이 올라 있었고 혈색도 좋아 보였다.

씨발. 이도윤이랑은 대체 언제 눈이 맞은 건지. 어쩐지 집에 자주 쳐들어오던 놈이 근래 들어 조용하다 했다. 차해교를 찾느라 정신이 팔려 미처 세우지 못했던 여러 가설들이 지금에서야 어지러이 연제의 머릿속을 헤집어 댔다.

“형. 왜 사라진 건데요? 내내 걱정했는데 별일은 없었나 봐. 그건 다행이긴 한데, 나랑 연락은 왜 끊었어요?”

연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다정함을 품고 해교에게 매달렸다.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조금이라도 제 마음의 변화를 눈치채 주길 바라며 읊조리는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

간절한 진심이 통했는지 해교의 눈에 화가 누그러진 연제는 이전과 달라 보였다. 안타깝게도 연제가 기대하던 방향과는 매우 다른 방향이었지만.

그렇게 겁을 주더니 1달이 넘게 자신을 찾아내지도 못하다가 우연히 발견해 내선 걱정했다는, 어울리지도 않는 말을 내뱉었다. 거기에 더해 매달리는 듯한 행동까지.

연제를 마주치자마자 떠올랐던 극한의 두려움은 어느덧 희미하게 모습을 감추었다. 무서운 사람들을 쫓아내고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있는 도윤이 우연제보다 훨씬 대단하게 느껴지는 시점이었다.

“이제 잘할게요. 잘해 줄게. 진짜로. 그러니까 이도윤이랑 있지 말고 나랑 가요.”

“……시, 싫어요.”

“한 달이 넘게 형만 기다렸어요. 내 멋대로 구는 거 안 할 테니까 가요, 응?”

“……싫어요. 여기 있을래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들로 긴장감이 옅어진 해교가 재차 제안을 거절하자, 연제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불쾌한 상상들로 가득 차올랐다. 대체 그동안 이도윤이랑 뭘 하고 뒹굴었길래 이렇게 겁이 없어진 걸까. 대체 그 새끼가 어떤 말 같잖은 말을 쏟아 냈던 걸까. 대체…….

어르고 회유하길 몇 번, 모든 제안을 튕겨 내는 해교를 바라보는 연제의 입매가 가느스름하게 호선을 그리며 비틀렸다.

“어떻게 하지.”

“뭐, 뭘…….”

“형. 이 정도면 내 좆같은 성질 꽤 누른 거 알죠. 참아 줘도 변화가 없으면 잘해 줄 필요가 없잖아.”

순식간에 연제의 몸 전체가 차게 식어 내렸다. 왜. 왜. 하필이면 이도윤한테 붙어서. 심사가 뒤틀리다 못해 내장이 꼬이는 느낌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짧게 심호흡하며 정리한 감정의 정체는 명백한 질투였다. 혼탁해졌던 눈빛에 살기 어린 안광이 감돌고 해교의 어깨를 붙잡은 손아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알아서 뭐 하게. 이제 그 집 가도 없고 일도 안 할 거니까 찾지 마세요?”

“흐, 읍…….”

수백 번 곱씹고 들여다본 문자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쏟아 낼 수 있었다. 특유의 건들거리는 음성으로 이를 갈 듯 뱉어 낸 문장에 해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이 집에서 사는 대가로 이도윤한테 대 줬어요?”

“무, 무슨…….”

“개년이 못 알아들은 척은. 발정 난 보지 대 줬을 거 아냐.”

“그런 거 아니…….”

“그게 아니면 이도윤이 왜 너를 감추고 있는데!”

아니라고, 네가 생각한 그런 일 하지 않았다고 제대로 말해야 하는데. 희번덕거리며 빛을 내는 눈동자 앞에서 잔뜩 쪼그라든 가슴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해교를 헐떡이게만 했다. 흣…… 흐……. 갸름한 턱이 흔들리며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도 모르고 호구처럼 내가 그날……. 씨발. 벗어요. 보지 안 대 준 거 증명하라고.”

해교는 제 옷을 우악스레 벗겨 내는 연제의 눈빛이 방금 전 자신을 설득해 내려 애쓸 때와는 달리 돌변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이 정도로 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일전에 이 집에서 재회한 날뿐이었다.

그때와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각, 단둘뿐인 우연제와 자신.

무서울 정도로 겹쳐지는 상황에 해교의 머릿속이 두려움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연제에게서 벗어나려 팔에 힘을 주고 퍽, 퍽 거세게 밀어 보아도 견고한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 잘못,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하지 마세요…….”

이제 와 하등 쓸모없는 말이었다.

“뭘 하지 마? 엉덩이 들어요. 잘하는 짓이잖아?”

잔뜩 겁먹고 바닥에 주저앉은 해교를 내려다보며 연제가 짓씹듯 말했다. 해교는 그 말을 듣자마자 우연제가 다른 데서 보지를 돌리고 왔다며 보지 안에 오줌을 쌌던 일이 떠올랐다.

거기다 언젠가는 진작 뒷보지에도 오줌을 쌀 걸 그랬다며 키들대기도 했다. 마침내 종합한 현실에서 기인해 해교의 머릿속에선 끔찍한 장면이 재생되었다.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천을 벗겨 낸 우연제가 저를 엎드리게 한 뒤 서슴없이 엉덩이만 쳐들게 만들었다. 포동포동한 하얀 볼기 사이, 잔뜩 죄어드는 아랫구멍을 뚫고 우연제의 거대한 좆이 쑤셔졌다.

커다란 귀두가 주름을 비비며 여린 구멍을 억지로 열었다. 빠듯하게 열린 내벽 안에 좆이 잠기자마자 잠가 두었던 호스를 여는 것처럼 요도 구멍에서 노란 액체가 콸콸, 세차게 쏟아져 나왔다.

흘러나온 액체는 두드리듯 내벽 여기저기를 쏘아 댔다. 곧 배 속이 뜨끈한 물로 가득 차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납작하고 판판하던 하얀 배가 볼록한 능선을 그리며 늘어나자 우연제가 자지를 느릿하게 뽑아냈고, 한계까지 벌어졌던 구멍에서 찔끔찔끔 소변이 샜다.

도윤의 집 거실을 오줌으로 더럽힐 수는 없었다. 오줌이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더욱 높이 쳐든 엉덩이 골 사이로 조금씩 묽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한 줄기씩 흘러나온 물은 허벅지를 타고 오금을 지나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다. 해교가 급하게 뒷보지 구멍에 힘을 주고 조였지만 근육의 수축 뒤에 당연하게 따라오는 이완 때문에 항문에서는 끊임없이 물줄기가 질금질금 흘러내렸다.

씰룩이는 엉덩이 살을 콱 붙든 우연제가 철썩, 엉덩이를 후려치자 깜짝 놀란 볼기가 덜덜 떨리면서 주르륵, 굵은 줄기의 오줌이 한가득 구멍을 뚫고 쏟아졌다. 마침내 도윤의 집 거실 바닥이 그날 그때와 같이 노란 오줌으로 흥건히 점철되었다.

안 돼.

마치 지금 당한 것처럼 선명한 감각이 다가왔다. 해교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아, 안 돼! 오줌…… 오줌 싸지 마! 제발…….”

“씨발. 잘해 준 건 다 까먹으면서 이럴 때만 기억력이 좋네. 또 싸 달라고 돌려서 말하는 거야, 뭐야.”

연제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정작 아직 바지 버클조차 풀지 않았는데 보지에 오줌 한번 쌌던 걸 여태 기억하고 불한당 취급하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치밀었던 까닭이다.

제가 차해교에게 해 댔던 짓이 있긴 하지만 그가 사라졌던 지난 1달 동안은 정말 오롯이 차해교의 행방 찾기에만 전념했었는데. 그 좋아하던 씹질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촉박했다. 만회할 시간도, 기회도 갖기 전에 그를 빼앗길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우연제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 * *

도윤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와 비릿한 냄새에 인상을 쓰며 발을 내디뎠다.

“해교 형?”

평소와 다른, 기묘한 위화감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시선 끄트머리에 반라의 몸으로 엉겨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셔츠와 바지가 바닥 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해교는 엎드려진 채로 연제를 받아 내고 있었다. 도윤이 서 있는 위치에서는 연제의 거대한 몸이 해교의 몸을 가려 단번에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흐으으…….”

도윤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연제가 보란 듯 예고 없이 좆을 욱여넣었고, 이에 지쳐 반쯤 뜨고 있던 해교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몇 번 허리 짓을 하다 해교가 절정을 느끼기 직전이라는 걸 안 연제가 느릿하게 좆을 빼냈다.

타고난 좆 모양 덕분에 질 안에 쑤셔 넣기만 해도 해교가 온몸을 뒤틀 만큼의 지나친 쾌감이 내리쳤다. 분홍색 자지가 괴로운 듯 프리컴으로 범벅이 된 채 퉁퉁 부어올랐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연제는 도윤을 기다리며 해교가 절정에 오를 만큼 괴롭혀 대다 코앞에서 추삽질을 멈추어 끝끝내 사정하지 못하도록 굴고 있었다.

“하아, 하아.”

연제가 떨어져 나가자마자 넋이 나간 표정을 한 해교가 소파 위에 엎어졌다. 지쳐 도윤이 온 것도 알지 못하는 듯했다. 늘어진 해교를 목격한 도윤이 재빨리 연제에게 다가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셔츠만 입고 있는 가슴팍을 잡아채 올렸다. 그러곤 연제의 뺨에 매서운 주먹을 날렸다.

“너, 씨발. 뭐 하는 짓이야?”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인데? 퉤, 차해교 못 찾는다며.”

“…….”

도윤이 쥔 멱살 때문에 피하지 못한 주먹이 꽂힌 뺨을 문지르며 연제가 날카롭게 반문했다. 입 안에 그새 피가 고였는지 바닥에 침을 퉤, 뱉는 얼굴이 서늘했다.

“친구도 버릴 만큼 보지 맛이 좋았나 봐?”

“……뭐?”

도윤이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하? 설마……. 씹선비님, 아직도 모르셨어요?”

일순간 이어지던 첨예한 대립 중, 제 질문에 적잖게 당황한 도윤의 표정이 굳자 연제가 방실방실 웃음을 띠었다. 그러곤 명징하게 도윤을 비웃으며 제 멱살을 쥔 그의 손을 틀어쥐었다.

“여기서 진작 했을 줄 알았는데 못 했나 봐. 대체 그동안 뭘 한 거야?”

연제가 방금 전까지 자신과 차해교가 흘레붙었던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전에 제가 차해교에게 좆질하느라 더럽혔던 가죽 소파와 같은 제품이었다. 당시 소파에 체액을 묻혀 놓았다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이도윤이었는데 새로 산 소파 또한 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고고하게 굴 수 있을지 두고 보자.

연제는 죽어도 차해교가 이도윤이 구원자라도 되는 양 믿고, 기대고, 찾아 대는 꼴을 볼 수 없었다. 이도윤이 깨끗한 얼굴로 저만 정의의 기사인 양 구는 것도 배알이 꼴렸다.

그래서 결심했다. 절대 차해교를 다른 새끼에게 넘기는 꼴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도 선택할 수밖에.

연제는 굳은 도윤의 손을 손쉽게 떨구어 내며 방금 전 맞은 주먹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당황 어린 낯의 도윤은 부어오르는 뺨을 어찌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연제가 하는 짓을 바라만 보았다.

연제가 다시금 소파에 자리했다. 도윤의 등장을 뒤늦게 눈치챈 해교는 다리를 감싸 안아 제 몸을 가린 채 떨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파들파들 떠는 해교의 허벅지 사이에서 씹질의 증거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이리 와. 같이 하자.”

저가 가질 수 없다면 이도윤도 그럴 수 없었다. 이대로 눈 뜨고 차해교를 뺏길 수 없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너 미쳤어?”

네가 이래도 안 할 수 있을까. 연제가 뒤에서 해교를 껴안곤 오금에 제 양팔을 걸어 활짝 가랑이를 벌렸다. 씹물이 점철돼 축축한 사타구니 사이를 넓게 벌린 후, 보지를 붙들어 양손으로 죽 잡아 열자 연제의 허벅지 위에 앉혀진 몸이 작게 바르작댔다.

보지를 찢을 것처럼 넓게 벌리니 다물렸던 살갗이 쪼개지면서 보짓물에 진창이 된 선홍빛 속살이 드러났다.

“아흣! 보지 마!”

“이렇게 예쁜 걸 왜 보지 말래……. 형은 진짜 이기적이야.”

연제가 손가락으로 소음순을 느릿하게 쓸어내리며 도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를 지켜보는 도윤의 눈이 크게 벌어지고 숨이 멈추었다. 가랑이 사이에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 달려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보지였다. 그것도 그냥 보지가 아니라 깨끗하고 말간 백보지. 그 위에 달린 자지 역시 마찬가지 사정을 자랑하고 있었다. 도윤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여태 지레짐작하며 혼란스러워했던 감정이 파도를 치며 너울거렸다.

“우연제 혹시 네가…….”

“뭐?”

“억지로 제모시켰어? 미친 새끼.”

“뭔 헛소리야. 타고난 거야. 보지 달고 태어난 거 보면 모르겠어? 사람 홀리려고 작정했잖아. 그쵸, 형.”

연제의 입에서 재차 흘러나오는 ‘보지’라는 단어에 도윤이 말을 잃었다. 대체 남자 몸에 저런 게 왜. 혼란과 동시에 합리화가 이루어졌다. 역시, 자신이 괜히 남자에게 관심이 간 것이 아니었다. 저렇게 말도 안 되게 보지가 달렸으니 본능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연속해서 떠오르는 상념에 뻣뻣한 통나무처럼 서 있는 도윤을 유혹하듯 연제가 해교의 양감 있는 젖가슴을 받치고서 살포시 유륜을 잡아 비틀었다. 하앙, 아아앙……! 연분홍빛 유륜에 주어지는 자극에 함몰 유두가 고개를 들고 해교가 작은 어깨를 말며 몸을 떨었다. 그 바람에 연제의 손에 잡힌 돌기도, 그렇지 않은 반대쪽 유두도 함께 얕게 흔들렸다.

처음 본 날부터 한시도 잊히지 않고 떠올랐던 젖가슴이었다. 얼마 전부터 종종 유두에서 흘러나오던 정체 모를 즙이 도윤의 머릿속 한편을 차지했다.

저 가슴에서 나오던 묽은 우유도 진작 맛보았지만 우연제처럼 거세게 그러쥐었다간 해교가 깰까 봐 마구 주무를 수는 없어 내내 아쉬웠던 터였다.

연제는 도윤과 눈을 마주친 채 혀를 내어 해교의 목덜미를 빨아올렸다. 목선을 타고 끈적하고 말캉한 살덩이가 흘러내리듯 살결을 문지르자 하아……아, 해교가 자지러지듯 신음을 내지르고 어깨를 움츠렸다.

연제는 고개를 좀 더 숙여 내린 뒤 뾰족하게 심을 세운 혀로 해교의 젖꼭지를 톡, 톡 두들겼다.

“아, 하지, 마아! 제바알……. 하으, 응…….”

해교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작은 얼굴은 금세 붉어졌고 연제의 혀가 긁어 대다 짓뭉갠 돌기와 유륜 색깔 역시 비슷하게 변했다. 연제는 게걸스럽게 붉은 혀를 날름대며 타액에 젖어 촉촉한 젖꼭지를 튕기고 빨았다.

눈앞에서 라이브로 펼쳐지는 색정적인 행위에 도윤이 어금니에 힘을 꽉 주고 깨물었다. 상처가 날 만큼 꽉 말아 쥔 주먹 역시 부들부들 떨려 왔다.

“뭐 하는 짓이야. 우연제!”

“뭐 하긴. 형이 좋아하는 짓 하지. 형이 부끄럼이 많아서 괜히 그러는 거야. 넌 아다라 모르겠지만 몸은 솔직하거든, 이도윤.”

꿈에서 그리던 모습이었다. 제 상상보다 곱절은 더 야한 모습으로 해교가 신음을 흘려 대고 있었다. 도윤의 말아 쥔 주먹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형. 나 같은 새끼랑 하는 것보단 도윤이가 낫지 않을까요? 쟤라면 하자고 해 놓고도 발 뺄걸? 도윤이 성격 알잖아. 그래서 붙어 있던 거 아니에요?”

연제가 도윤에게는 들리지 않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악마처럼 해교의 귀에 속삭였다. 귓바퀴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 넣으면서도 손가락은 바삐 보지를 들쑤시고 있었다.

“흐읏…….”

뭘 같이 한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뭐가 됐든 차라리 우연제보단 도윤이 나을 것 같긴 했다. 도윤이라면, 도윤이라면 우연제가 떨어져 나가고 다가오자마자 손을 내밀며 ‘형, 여기서 나가요.’ 할 것만 같았으니까.

“아, 알겠, 으응, 아……. 흣!”

해교는 연제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연제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도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도윤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보지를 향했다. 저 미친놈 하는 짓을 말려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반응을 보면 정말 우연제의 말대로 좋아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같이 하자는 우연제의 개소리를 듣고도 빤히 손을 내밀었으니 그간 형도 잠든 척하며 자신이 오는 것을 기다렸던 건 아닐까.

생각이 많아져 도리어 침착해진 표정과 상반되게 아랫배가 욱신거릴 만큼 근육이 땅겼다. 바지 천을 뚫고 나올 듯 꼿꼿이 선 자지가 선연하게 느껴졌다.

망설이는 기색을 눈치챈 연제가 그를 유혹하듯 계속해서 해교의 보짓살을 쩌억, 쩍 요란하게 비볐다. 보지에 연제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야들야들해 보이는 붉은 살이 조였다 늘어나며 벌름거렸다.

“그래 봐야 너도 남자 새낀데. 씹선비인 척 그만하지?”

연제는 도윤이 잘 볼 수 있는 자세를 취한 채로 커다란 귀두를 보지 구멍에 문질렀다. 잔뜩 선액에 젖은 좆 대가리가 움찔거리며 젖은 속살을 지분거리자 해교의 보짓살이 잘게 떨려 왔다. 이미 너무도 잘 아는 쾌감을 기대하면서 갈라진 틈 사이 자리한 미미한 클리토리스가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하아, 앙…… 아으……!”

뜨거운 선단을 거칠게 쑤셔 넣자마자 공중에 뜬 해교의 발가락이 접혔다. 제 오금을 쥔 단단한 팔뚝을 벗어나려 종아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에 연제가 피식, 작게 웃음 지으며 말랑한 엉덩이 살을 꽉 틀어쥐었다.

“도윤아. 씨팔. 존나, 후으, 조인다.”

“…….”

보지 위, 조그만 자지가 당장이라도 정액을 뱉어 낼 듯 요동쳤다. 이를 바라보는 도윤의 앞섶은 거대한 무언가가 묵직하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주먹 쥔 손등에 푸른 핏줄이 돋아난 채 바들바들 떨리는 모양새가 꽤나 혼신의 힘을 다해 참는 듯했다.

연제는 도윤 쪽을 향해 제 좆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는 보지를 보여 주며 느릿하게 허리를 쳐 올렸다. 그러곤 자지가 움직일 때마다 찔걱, 찔걱 새어 나오는 끈적한 액체를 손가락으로 문질거렸다.

“이게 뭔지 알아? 우리 선비님은 알까 몰라.”

검지와 중지를 맞붙였다 떼어 냈다. 눅진한 점성을 가진 것이 손가락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불투명하게 번들거렸다. 거기다 더해 누가 봐도 느끼는 표정을 한 해교가 달뜬 얼굴로 밭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형이…… 네가 안 한다고 하면 다른 새끼한테 대 주자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응?”

“아……니, 아니이, 아니야! 으응!”

“……미친. 진짜.”

도윤이 메마른 입술을 혀로 적셨다. 그러곤 낮게 욕설을 내뱉더니, 바지 버클에 손을 가져갔다.

곧이어 허벅지 아래로 내려가는 드로어즈 위로 퉁, 피가 몰려 발기한 자지가 등장했다. 단단하게 쪼개진 허벅지 근육 사이 곧추선 자지는 연제가 보여 준 광경 덕택에 선액으로 뒤덮여 온통 번들거렸다.

고운 도윤의 얼굴과 상반되는 거친 음모가 달린 거대한 살덩이가 금방이라도 보이는 보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꺼떡이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연제가 얕게 조소하며 도윤에게 얼른 오라는 듯 턱을 들어 눈짓하였다.

늘 다정하게만 굴었던 눈동자가 점차 빛을 달리했다. 상의까지 모조리 벗어 낸 도윤이 양 무릎을 소파 위에 댄 뒤, 해교 앞에 다가가 연제의 팔에 걸린 그의 오금을 받아 들고 제 팔에 걸쳤다. 그 바람에 중심이 뒤로 쏠린 해교의 등허리가 연제에게 기대며 무너졌고, 도윤은 해교의 발목을 쭉 잡아당겨 아예 제 어깨 위에 올렸다.

해교가 고개를 내저으며 떠는 새 도윤이 허리를 살짝 물렀다 둔부에 바싹 붙여 왔다. 이미 연제의 자지를 머금은 보지 구멍이 찢어질 듯 벌어지면서 단단한 귀두를 추가로 삼키기 시작하였다.

“흑! 아…….”

해교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눈동자의 흰자위를 드러내곤 울먹였다. 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처럼 아픈데, 앞뒤로 거대하고 단단한 몸이 맞붙어 조금의 도망갈 틈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작은 몸을 파드득 떨며 흐느끼듯 고통을 호소할 따름이었다.

“찌, 찢어져! 찢어져어……! 아, 안 돼!”

마침내 귀두가 구멍을 통과하자 빠듯한 입구가 당장이라도 찢길 듯 팽팽하게 조여 왔다. 시야가 단번에 새하얗게 번져 나가 앞에 보이던 도윤이 보이지 않았다. 도윤과 연제의 좆을 욱여넣은 조그만 보짓구멍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이 금세 해교의 몸 전체를 장악했다.

넘치는 압박감에 해교도, 도윤도, 연제까지도. 모두가 얼굴을 구긴 채 쏟아지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아, 흐으윽.”

“아…… 후으.”

“하아……. 형, 힘 풀어요.”

연제가 해교의 젖꼭지를 살살 둥글리며 긴장을 풀어 주었다. 파들파들 떨리던 몸이 살짝 이완되자마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윤이 나머지 기둥을 곧장 밀어 넣었다. 진입하는 살 기둥이 해교의 음낭을 치고 지나가며 철썩이는 소리가 났다.

“학! 아아…….”

어느덧 두 자지가 보지를 꿰뚫었다. 거대한 살덩이가 삽시간에 좁은 구멍을 통과하자 보짓살이 벌어지며 단숨에 흉흉한 좆을 감쌌다. 그러곤 흡착하듯 살 기둥 전체에 들러붙은 뒤 첫 경험 하는 자지를 뜨겁게 빨아올렸다.

후우……. 보지 안에 처박힌 선단에서부터 지독히도 오싹한 소름이 돋아나 도윤이 더운 숨을 내쉬었다. 홧홧한 호흡에 숨이 절로 막혀 왔다. 혼자 손바닥으로 제 좆을 감싼 뒤 흔드는 수음과는 차원이 다른 자극이었다.

상상 그 이상으로 보드라우면서도 스스로 쫀득하게 달라붙는 것 같은 살결이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생소한 감각에 척추를 타고 전류가 흘러내려 도윤의 몸이 절절 끓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등골을 타고 기분 좋은 전율이 올랐다. 조금의 틈 없이 흘레붙은 점막이 살갗을 쓰다듬듯 조여 왔다.

마침내 그동안 꿈꾸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태껏 늘 그랬듯 혼자 딸을 치며 상상한 게 아니었다. 딱딱하게 일어난 자지를 감싸는 부드러운 점막이 주는 느낌은 현실이었다.

드디어.

고양감에 휩싸인 도윤이 짐승 같은 거친 신음을 내뱉었다.

* * *

경직되었던 몸은 몇 번의 허리 짓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풀려 갔다. 연제가 해교의 몸을 지분거릴 때부터 흉흉하게 몸집을 부풀린 도윤의 살 기둥은 보지 안에 박혀서도 제멋대로 꺼떡거렸다.

“하아……. 씹.”

도윤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그답지 않게 상스러운 욕까지 내뱉었다.

제 좆인데 저가 제어할 수 없었다. 씨발. 뜨겁고, 너무 뜨거운데…… 뜨겁게 자지를 감싸는 점막이 꿈틀거리는 느낌이 오싹할 만큼 생생했다. 분명히 우연제의 좆도 함께 맞닿아 있어 기분이 더러워야 하는데, 그걸 생각할 겨를 없이 조여 대는 질벽 때문에 오직 열락만이 가득했다.

인위적으로 뇌를 제거하고 머릿속을 비워 낸 것처럼 사고가 불가능했다. 욕망이 자신을 휘두르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쭈뼛 세우는 농밀한 자극에 도윤은 본격적으로 허리를 쳐 올리기 시작했다. 묵직한 살 기둥이 연제가 몇 시간 동안 공들여 풀어놓은 촉촉한 육벽을 가르며 파고들었다.

아, 아흑, 읏……! 한계까지 보지 구멍이 벌어진 해교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도윤의 가슴을 밀어냈다. 하지만 이미 이성의 끈이 끊어진 도윤에게는 느껴질 리 없는 미미한 저항이었다. 보지는 해교와 달리 얌전히 굵은 자지 2개를 쑥쑥 맛있게도 받아먹고 있었다.

“흐으…… 아……아프, 아으, 응.”

도윤은 애원하는 해교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계속해서 허리 짓을 이어 갔다. 적나라한 마찰음이 해교의 고막을 두드렸고 당장이라도 보지 점막이 찢어질 것처럼 얇게 펴져 땅겨 왔다. 고통만이 느껴지는 행위였지만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 줬던 도윤이기에 해교는 그를 때리거나 할퀼 수가 없었다.

해교는 발작하듯 파들거리며 저를 안고 있는 연제라도 밀어내려 노력했다. 뒤로 맞닿은 연제의 몸을 벗어나려 해교가 허리를 비틀자 연결된 엉덩이가 찰싹이며 흔들거렸고, 되레 어긋난 채 들이친 자지를 살살 비비며 끌어당기게 되었다.

절대적으로 큰 자지 2개가 보지를 가르는 바람에 두 좆 모두 뿌리 끝까지 보지에 담기지 못했었는데, 해교의 움직임으로 자지가 한결 더 깊은 구멍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순식간에 갈라진 두 살덩이 사이로 좆 2개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씨……팔. 조르는 것 봐.”

“흣, 아니이, 으응…….”

해교가 어쩔 줄 모르는 듯 몸을 뒤틀자 깊숙하게 파고든 좆 뿌리까지 둔부로 문질거리는 꼴이 되었다. 따끈하게 익은 질이 귀두부터 밑동까지 모조리 빨아 삼켰다. 연제가 철썩, 해교의 뽀얀 엉덩이 살을 손바닥으로 내리치자 동그란 볼기짝이 벌겋게 물든 채 버르르 떨렸다.

그 자극에 근육이 놀라 보짓구멍이 한결 더 조여들었다. 자지를 당기는 보지 근육을 느낀 연제는 하반신을 움직여 해교의 몸에 좀 더 바짝 다가갔다.

자리 잡은 연제가 아래를 쳐 올리자 도윤의 자지에 그의 자지가 비벼지며 쩌걱, 쩍, 젖은 살갗 밀리는 소리가 났다. 예민해진 자지와 보지가 끈끈한 점액질로 뒤덮여 서로 진득하게 엉겼다.

소리보다 한결 더 큰 자극이 기둥 표피를 꿰뚫고 세포 하나하나에 직격탄을 날리듯 쏟아져 내렸다.

“읏…….”

“후으으…….”

엇박자로 자지가 움직여 댔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어딜 가든 빈틈없이 흉흉한 좆이 따라붙어 보지를 난잡하게 쑤실 기회를 줄 뿐이었다.

처음보다 한결 더 부풀어 오른 음핵을 내려다본 도윤이 톡 튀어나온 그곳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귀두를 깊숙이 찔러 넣었다. 계속해서 허리를 쳐 올리며 들이칠 때마다 음핵을 압박하자 어느덧 고통은 희석되고 그 자리에 다른 감각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흐으, 하아, 하흣!”

보지가 덜덜 경련하며 질벽 여기저기를 남김없이 짓뭉개는 자지들을 쥐어짜 냈다. 어찔한 느낌에 발작하듯 튀어 오르는 해교의 골반을 연제가 단단히 붙들고 자지를 박아 넣었다. 튀어 오르다 강제로 내려 앉혀진 엉덩이가 연제의 음모에 짓이겨졌다.

거칠한 음모가 여린 보짓살을 앞뒤로 비벼 대며 자극하자, 육벽이 움찔대는 간격이 점차 짧아졌다. 도윤이 연제와 눈을 마주치곤 제 어깨에 걸린 양 발목을 한층 더 단단히 감아쥐었다. 그러곤 살짝 허리를 물리며 절반쯤 자지를 꺼냈다가 단숨에 고간을 콱 쳐 올렸다.

두 좆만으로도 꽉 찬 보지 구멍 속에 들어가지 못한 고환이 음부를 쳐 대며 찰진 소리가 났다.

“아. 미친. 씨발.”

“으흐, 흐읏!”

연제가 내뱉는 욕설과 함께 2개의 거대한 좆이 굴곡진 질벽 안을 무자비하게 쑤셔 댔다. 아래에서 위로 허리를 쳐 올릴 때마다 해교의 작은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질퍽질퍽, 젖은 살덩이가 질을 긁어 대자 보지 안에서 부싯돌이 부딪히듯 번쩍이는 불씨가 터졌다. 아찔한 쾌감이 쏟아져 해교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눈을 홉떴다. 어느덧 해교의 자지가 통통하게 발기해선 납작한 아랫배에 붙다시피 서 있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채로 쫄깃쫄깃 오그라드는 보짓살의 조임에 틈 없이 맞붙은 말 좆들에서 희멀건 정액이 분비되었다. 순식간에 뻘건 보짓살이 허연 좆물로 진창이 되었다. 하지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뜨거운 좆물을 싸 냈음에도 불구하고 연제도 도윤도 아직 허리 짓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크읏……. 숨이 끊어지는 듯한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철벅철벅 질펀한 점액질을 거세게 갈랐다.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보짓살이 주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가는 두 자지를 압박하면서 도톰한 보지 안에 꽉 찬 탁한 액체를 질질 쏟아 내며 꿈틀거렸다.

“아, 하응, 응, 으읏, 이제에, 그, 흐……만, 흐으응.”

당장 목이 쉬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만해 달라 소리를 질러 댔지만 무아지경에 빠진 두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보다 젖은 살갗이 쉴 새 없이 부딪혔다 떨어지는 소리가 훨씬 컸기 때문이었다.

우연제의 말처럼 해교의 몸은 솔직했다. 거절을 내뱉는 입술과는 달리 자지를 감싼 보지 속살이 곳곳을 요동치며 깨물어 대는 것이, 단단히 발정이 난 모양새였다. 들썩이는 하반신에 맞추어 상반신 또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도윤의 시선이 발딱 선 채 흔들리는 탐스러운 젖가슴에 닿았다. 도윤은 거칠고 큰 손바닥을 뻗어 해교의 양감 있는 가슴살을 움켜쥐었다. 힉, 해교가 신음을 내뱉으며 내빼려 하자 조심스레 쥔 손바닥에 한결 더 압력을 가해 여린 살을 세게 짓이겼다.

거칠게 젖가슴을 압박하는 손길에 야릇한 쾌감이 일었다. 해교가 새어 나오는 신음을 참아 내며 입술을 깨물자 도윤의 손바닥에 감긴 말캉한 젖가슴이 파르르 떨리며 출렁였다.

도윤이 주는 자극에 젖꼭지는 한결 더 꼿꼿하게 융기하였고 흥분한 그가 뾰족하게 선 돌기 끝을 검지로 문지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문에 닿는 돌기의 오돌토돌한 감촉이 끝내주게 자극적이었다. 불그스름해진 해교의 두 뺨보다 더욱 붉어진 유륜과 부푼 돌기에 넋을 놓은 도윤이 혀를 내밀었다.

“아앙, 아응!”

전처럼 유즙이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채로도 해교의 젖꼭지는 달큼한 맛이 났다. 넓적하게 펼친 혀로 조그만 알갱이를 문질거릴 때마다 해교가 작게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깰까 눈치 보지 않고 제가 원하는 양껏 힘을 주고 빨아들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지 안에 박힌 도윤의 자지가 더더욱 거대하게 몸집을 키웠다.

해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유일하게 자유로운 손가락을 쥐었다 펴며 신경 말단에 들이치는 자극을 털어 내려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진탕 빨린 젖꼭지에서부터 피어나는 짜릿한 감각에 보짓살이 제멋대로 요동치며 안에 담긴 자지를 주물러 댔다.

어느덧 해교의 손바닥에 붉은 손톱자국이 남을 지경이었지만, 두 남자는 해교의 퍼덕임에 오히려 자극을 받아 쉴 새 없이 자지를 마구잡이로 짓찧었다.

소파가 곧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치 쾅쾅, 격렬한 소리를 내며 밀렸다. 해교는 손날로 소파 가죽을 득득 긁어 대며 울먹거렸다.

앞으론 도윤이, 뒤로는 연제가. 어디를 보아도 괴로워 도망치듯 시선을 천장에 두었다. 어지러운 시야 속에 미색의 천장이 담겼다. 천장을 뒤덮은 옅은 줄무늬가 해교의 몸이 흔들릴 때마다 꾸물럭꾸물럭 움직이며 해교의 눈동자 표면에 달라붙었다.

좆물을 싸 내는 바람에 한결 더 부드러워진 질벽을 촘촘히 들쑤시자 작열감이 일기 시작했다. 씹물로 점철된 자지가 빠져나올 때면 척척한 점막이 질질 끌려 나가면서 아까보다 거센 물소리가 났다.

하나의 자지가 움직일 때는 들이쳤다 나가는 시간이라도 있었으나 퍽, 퍽, 떡메 치듯 좆 하나가 나가면 다른 좆 하나가 번갈아 밀려 들어와 도무지 숨 고를 시간이 없었다. 해교가 가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해교와 연제가 거꾸로 눈이 마주쳤다.

연제는 그런 해교를 내려다보며 흥분에 짓씹은 입술 위로 쪽, 짧게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느끼면 어떡해요……. 질투 나게.” 하며.

순간 해교의 커다란 눈망울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해교는 애써 눈을 감고 우연제를 시야에서 차단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내리자 무시하고픈 감각의 파고가 더욱 거세게 들이치며 해교를 뒤흔들었다.

사정없이 뭉개진 보짓살은 기꺼운 듯 두 자지에 밀착한 채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듯한 열기를 뿜어냈다. 두 좆이 맥박 치자 해교의 보지 역시 심장이라도 달린 것처럼 고동치며 흥분을 가속화했다. 온몸의 기관을 통틀어 보지에서밖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힉…… 읏! 아! 아! 아!”

“흐으……. 하아.”

붉게 달궈진 보지에 좆이 쑤셔 박힐 때마다 살굿빛 자지에서 찔끔찔끔 좆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발기한 줄도 몰랐던 미미한 존재감의 작은 기둥 끝에 맺힌 불투명한 체액이 도윤의 복근에 점점이 튀었다.

도윤은 해교의 좆이 꺼떡이며 정액을 내뱉는 모습에 자신이 지금 섹스하고 있는 상대가 여자가 아닌 남자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했지만, 믿을 수 없게 더 큰 흥분감이 일었다.

자신으로 인해 해교가 쾌감을 느끼고 절정에 닿았다는 충만감으로부터 비롯된 흥분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도윤이 한껏 더 거칠게 좆을 때려 넣었다.

퍽, 퍽, 퍽! 난폭하게 보지를 치받는 좆의 움직임에 따라 거센 압박이 일어나 해교가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도윤은 수축만을 반복하는 보지 때문에 지독한 성감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앓는 신음 소리를 내는 도윤을 본 연제가 인상을 구기며 허리 놀림을 멈추었다.

“후우…… 형, 진짜 존나 맛있는데…… 이러다 조루 될까 봐 더는 못 하겠다.”

결국 연제가 해교의 보지에서 제 자지를 쭉 뽑아내니, 잔뜩 압박되었던 보지 점막이 자지에 딸려 나가며 선홍빛 속살이 설핏 보였다 사라졌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직도 도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만 우연제라도 자지를 꺼냈으니 곧 끝날 수 있…….

“아흐!”

쾅! 예열되지 않은 뒷보지 사이를 굵은 살덩이가 가르고 들이쳤다. 불그죽죽한 살덩이는 거대했지만 점철된 보짓물 덕택에 촘촘한 주름을 뚫고 좆 대가리를 쑤셔 넣는 데에는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름진 연분홍빛 구멍을 억지로 벌리고 휘어진 성기가 박혀 들자 해교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요란하게 자지러졌다. 농담으로라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범상치 않은 크기의 자지 2개가 앞과 뒤를 가득 메우니 숨이 쉬어지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헉……헉. 아……파아, 흐으…… 윽…….”

“형……. 하아, 연제가 뺐는데도…… 크읏, 너무 조여……. 조금만, 힘 빼 볼래요?”

다정한 음성과는 달리 사나운 허리 짓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앞에서는 도윤이 보지를, 뒤에서는 연제가 뒷보지를 따먹는 상황이었다. 연제의 자지가 빠져 벌어진 보지 구멍에서 뜨거운 정액이 쑹덩쑹덩 흘러나오며 도윤의 좆을 타고 소파를 적셨다.

“후아…….”

오롯이 혼자 해교의 보지를 독차지하게 되자 도윤이 낮은 신음을 뱉어 냈다. 자지 하나가 빠져나가면 헐거워질 거라 예상한 바와 달리 보지가 여전히 꽉꽉 도윤의 좆을 빨고 물어 대는 탓이었다. 오히려 폭신한 질이 성기 지름 전체를 두른 채 차올라 한결 더 벅찬 자극이 내리쳤다.

연제가 도윤의 허리 짓에 박자를 맞추어 아래에서 위로, 좆으로 해교의 몸을 찍어 누르며 허리를 쳐 올렸다.

아……! 동시에 세 남자의 입에서 뜨거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혼탁한 숨이 공기 중에 어지러이 뒤섞였다.

앞에서 밀어 넣는 좆은 뒤로, 뒤에서 밀어 넣는 좆은 앞으로 향해 두 자지가 내장을 짓누르며 전진했다. 각각의 자지가 제멋대로 구멍을 오고 갈 때마다 둘 사이를 막고 있는 신경 조직이 점점 더 얇아지는 것만 같았다.

골반은 이미 닳기라도 한 듯 얼얼해 해교는 두 구멍을 제외한 장기에서 어떠한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앞에서 처박는 자지가 자궁을 긁어 내려 질이 욱신거리면 뒤에서 밀려오는 자지는 내벽을 비비며 전립선을 짓눌렀다.

동시에 두 구멍을 난잡하게 쳐 올리는 살덩이들 때문에 이대로 가다간 당장에 장기가 망가지고 뚫려 두 자지가 만나 버릴지도 몰랐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선연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해교가 고개를 마구 도리질하며 외쳤다.

“이제 마, 망가져, 흐으, 아, 안…… 대애!”

애처롭게 떠는 해교를 달래듯 도윤이 커다란 손바닥으로 식은땀 맺힌 뺨을 살살 쓸어 주었다. 그리고 해교의 밭은 숨이 진정되자마자 곧장 보지 안에서 쉬고 있던 자지를 사납게 짓쳐 올렸다. 이미 깊이 들어와 있던 좆 대가리가 자궁 끄트머리까지 긁어 내릴 것처럼 더욱 내밀한 곳으로 처박혔다.

한 사람이 제어하는 씹질이 아니다 보니 주기도, 세기도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두 자지가 당장이라도 인사할 것처럼 동시에, 거세게 들이쳐 쾅, 두 구멍을 짓찧었고 어떤 때는 한 자지가 내벽 안을 뜨겁게 달구고 나갈 때 다른 한 자지가 뒤를 이어 나머지 점막을 녹여 버렸다.

녹진하게 풀려 버린 내벽 덕택에 자지에 느껴지는 감도는 처음보다 훨씬 좋았다. 하나가 움직임을 쉴 때에도 다른 하나가 추삽질을 하며 만들어진 진동이 고스란히 나머지 자지로 전달되어 느껴졌다. 진득하게 녹아내리는 점막과는 또 다른 쾌감을 선사하는 자극이었다.

내장 기관이 짓눌리면서 압박감 또한 거세졌다. 혼자 구멍에 자지를 처넣는 걸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진기한 자극인지라 연제 역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보지 안을 짓누른 자지를 길게 빼내면 딸려 나오는 붉은 속살은 흥분으로 통통하게 부풀어 올랐다. 자리를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금세 저를 쑤셔 달라며 애원하듯 들러붙는 보짓살 때문에 도윤은 귀두를 완벽히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구멍에 걸쳐 두었다가 다시 쑤걱, 안으로 밀어 넣었다.

“형……. 하아.”

“아, 아흐, 흣!”

“나 처음이에요……. 형이랑 하는 게, 후, 첫 섹스예요. 하아.”

도윤이 고개를 숙여 해교의 입술을 찾았다. 어느덧 사라진 고통 대신 자리한 쾌감에 신음을 흘리는 도톰한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댄 후, 다급하게 혀를 밀어 넣었다. 조그만 혀를 휘어 감은 뒤 안에서 발생 되는 신음마저 모조리 삼켜 넘기며 끝도 없이 여린 점막을 헤집었다.

잘 때마다 도둑질하듯 살짝 입술을 맞댄 경험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입 안의 타액을 몽땅 빨아들여도 끝모르게 갈증이 일었다. 도윤은 이성을 잃은 채 해교를 씹어 먹을 듯 치열과 입천장 사이사이까지 제 흔적을 남기려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여린 입술 표피와 치아가 부딪히며 통증이 일기도 했는데, 그런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도윤은 끊임없이 갈구하며 입을 맞췄다.

마침내 입 안을 모두 점령해 내자 도윤은 혀를 빼내어 해교의 하얀 목선을 따라 이로 잘근잘근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도윤의 입술이 부드러운 살갗을 지나칠 때마다 울긋불긋한 울혈 자국이 생겨났다. 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붉은 자국에 그가 한결 더 크게 흥분해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흥분에 젖어 굵직한 귀두 끝에 힘을 주고 짓찧자, 눈 깜짝할 사이 짜릿한 쾌감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쏘아지는 듯했다.

“으, 으응, 하흐응…….”

밀려드는 도윤의 좆이 여린 보짓살 안을 후벼 파고, 연제의 좆은 뒷구멍 주름을 찢을 듯 얇은 점막 입구를 긁고 들이치는 통에 해교의 작은 몸은 발작하듯 뒤틀렸다.

강하게 틀어진 에어컨이 무색하게 세 사람의 몸은 어느덧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성인 남자 세 명이 부서져라 격하게 몸을 뒤흔드는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내는 소파 가죽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하아, 후으응…… 내지르는 신음성 사이사이마다 덜커덩, 소파 다리가 밀리는 소리와 쩍, 쩌억 소파 가죽이 살갗에 들러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뒤섞였다.

연제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벌려 제 앞의 가슴 끝을 베어 물었다. 바짝 다가선 사타구니가 더욱 깊이 맞물리고, 철썩철썩 둔부에 맞붙는 고간이 뜨거웠다.

앞보지가 터질 것 같은 상황에 뒷보지마저 자지에 밀착되니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극치의 자극이 해교에게 마구 내리쳤다. 배 속에 뜨거운 불덩어리를 던져 넣은 듯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아래를 데우기 시작한 불덩어리는 곧 들불처럼 번져 나가 전신을 작열하는 열기로 물들였다.

닿을 수 없는 깊은 안쪽 어딘가가 너무나도 간지러웠다. 이러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강렬한 자극이었다. 누가 어떻게 좀 해 주었으면. 치밀어 오른 성감에 해교는 온몸이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아…… 아으응……. 빨리이……!”

“형, 하아, 좋아? 좋은 거 맞아요?”

“하으응, 빠, 빨리 좀…….”

“형. 도윤이가 좋냐고 묻잖아요, 후으.”

“조……아, 흐으, 조아아…… 으응! 그러니까아!”

절박하게 졸라 대는 해교를 보며 본능적으로 도윤은 보지 안 지스팟을 찾아 찧어 댔다. 그 리듬에 맞추어 연제 역시 의도적으로 해교의 전립선을 찾아 강하게 짓눌렀다. 극점 두 곳이 동시에 자극되자 아래가 가닥가닥 찢어발겨지는 듯한 폭력적인 쾌감이 일면서 해교의 점막 안이 뜨겁게 들끓었다.

해교는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신경 하나하나가 숨을 쉬는 듯 맥동하는 것을 느꼈다.

“으응, 하아, 읏……!”

쉬어 빠진 신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해교의 고개가 꺾여 연제의 가슴에 그의 뒷머리카락이 닿고, 어깨가 위로 솟아올랐다. 눈앞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천둥 번개라도 치는 것처럼 망막 여기저기 잔상이 떠올랐다 사라지며 오싹한 쾌감이 번졌다.

느껴지는 건 오로지 쾌락, 쾌락, 쾌락뿐이었다.

자그마한 자지에서부터 파, 팟, 울컥울컥 튀어 오르는 뿌연 정액은 고스란히 도윤의 단단하게 조각난 복근 위로 쏟아졌다. 제 복부를 적시는 뜨끈한 좆물의 감촉에도 도윤은 초점 잃은 눈으로 허리 짓을 이어 갈 뿐이었다.

연제 역시 자지러질 듯 정액을 쏟아 내는 조그만 자지의 꺼떡임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아랫구멍 안을 흉흉한 좆으로 휘저었다. 전립선에 닿은 귀두에 사정없이 힘을 주어 누르곤 재빠르게 허리를 털었다. 거세게 눌리는 압박감에 해교의 몸이 파드득 튀어 올랐다.

“흐으, 흐으…….”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빛이 길게 내려쳤다. 강렬히 눈앞을 가르는 섬광과 함께 해교의 보지에서 팟, 투명하고 묽은 물이 뿜어져 나왔다.

“아, 안 돼……! 헤엑!”

보지는 왈칵왈칵 체액을 뱉어 내면서도 미세한 떨림을 이어 나갔다. 도윤이 보지 입구에 손바닥을 대고 잔열감과 진동을 느끼며 황홀한 절정에 빠져들었다.

“큿…….”

“후으.”

해교의 두 다리가 도윤의 어깨에서 떨어진 채 경련하듯 잘게 떨렸다. 보지에서 분수가 터지는 것을 보았지만 이번에는 오줌을 쌌다는 자각을 할 수도, 울음을 내뱉을 수도 없었다. 해교는 역치를 넘어선 거대한 쾌감에 붉은 혀를 빼낸 채 그대로 앞을 향해 쓰러졌다.

도윤이 받아 낸 해교의 눈꼬리를 타고 버거운 쾌감에 솟아난 눈물 한 줄기가 주르륵, 뺨을 지나 소파 가죽 위로 흘러내렸다.

해교가 힉힉거리며 간헐적인 호흡만을 내뱉는 와중에도 뒷보지는 벌름대며 연제의 좆을 쫀득하게 씹어 왔다. 시발. 연제는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앞으로 쓰러진 해교의 허리를 꽉 틀어쥐었다. 그리고 뭉근하게 허리를 돌리며 두 번째 좆물을 쏘아 냈다. 좁은 내벽 안이 단숨에 뜨끈한 점액질로 가득 차올랐다.

층고가 높아 드넓은 거실이 온통 열기로 후끈했다. 소파는 일전에 연제가 더럽혔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수준으로 망가져, 아예 소나기라도 맞은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연제가 고개를 비스듬히 꺾어 도윤을 살폈다. 망가트린 소파를 대신해 새로 주문한 소파가 올 때까지 며칠 내리 짜증스레 불청결 타령을 한 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본능을 좇은 남자가 밭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씹질 내내 해교의 손날로 몇 번이고 밀어냈던 가죽에 진 주름을 타고 유백색의 체액이 가득 고여 들었다. 좆 2개가 정신없이 들이쳐서인지 물러진 보지와 뒷보지 모두에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허연 거품과 엉긴 씹물이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지나치게 적나라한 장면이었다.

연제가 젖은 보짓살 사이에 끼인 덩어리진 체액을 검지로 스윽 훑더니 지친 해교를 마주 끌어안은 도윤을 바라보며 입매를 굳혔다.

도윤은 자괴감이 든 표정으로 주저하다 뒤늦게 파들대는 해교의 등허리에 손을 뻗고 있었다. 아마도 달래 주려 하는 것 같았다. 저게 또……. 절대로 이도윤이 차해교의 마음을 파고들 기회를 줘선 안 됐다.

이를 목격한 연제가 검지에 묻어난 질척한 점액을 문질거리며 사정 후 늘어진 해교의 자지를 반대쪽 손가락으로 퉁, 퉁 튕겼다.

“도윤아. 이제 그만하는 거야? 형은 존나 걸레라…… 이 정도론 만족 못 해.”

“하으!”

연제가 해교의 허리를 꼭 붙들어 올렸다가 다시 내려 앉혔다. 한순간 직격으로 내리꽂히는 도윤의 자지 때문에 동공이 활짝 벌어지고 혀가 굳은 해교 대신 기승위 자세를 돕듯 주저앉은 엉덩이를 사정없이 흔들어 주었다. 깜짝 놀란 해교가 고개를 내저으며 허리를 뒤틀려 애썼다.

“아, 하지, 흐으, 마아……!”

“우연제, 큿…… 뭐 하는……!”

틈 없이 밀착된 보지가 흡착하듯 자지를 빨아들이게 하자, 사정으로 힘을 잃었던 도윤의 자지에 단숨에 피가 몰리기 시작하였다. 급격히 몰려오는 아찔함에 미간을 구기는 도윤을 똑바로 바라보며 연제가 다시 없을 만큼 다정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우리 도윤이, 아다 떼는 날이니까 내가 많이 도와줄게. 친구잖아?”

* * *

“흐으…….”

쇳소리처럼 날카로운 신음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안구가 뻑뻑해 눈꺼풀을 밀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워 해교는 눈을 감은 채 손가락으로 보지를 더듬었다. 두 자지에 쉴 새 없이 혹사당한 보지는 여리고 미끄러운 살결 근처에 손끝만 닿아도 아렸다.

뒷보지는 손가락이 닿지 않아도 부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엉덩이 살 사이가 따끔따끔해 똑바로 누워있기 힘겨웠던 까닭이다.

두 사람이 하는 섹스도 버거운데 세 사람이 하는 게 가능할 거라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온몸이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아프고 쓰라렸다. 그러니까 도윤이…… 말도 안 된다. 그럴 리가 없었다.

늘 부드러운 모습만 보여 주었던 도윤답지 않았던 거친 몸짓, 앞뒤로 거대한 몸체에 막혀 겪었던 크나큰 고통, 그리고 이를 짓누를 만큼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했던 쾌감.

그중 가장 믿기 어려운 것은 단연 여태까지 느껴지는 선명한 쾌감이었다. 연제에 도윤까지 합세해서 만들어 낸 감각은 다시 생각해도 오싹할 만큼 역치를 넘어선 쾌락을 선사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엉성하게 엉킨 기억에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아직 남은 잔열감이 몸속 곳곳의 혈관을 타고 저릿저릿한 여운을 남겼다. 기나긴 여운에 해교가 어깨를 감싼 뒤,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게 들이붓듯 밀려오던 열감은 한참 동안 해교를 괴롭히다 그를 다시 컴컴한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시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입술 위에 간질간질, 젤리처럼 말캉한 것이 얹어지는 느낌이 났다. 무언가를 찾듯 다물린 입술 사이를 더듬던 축축한 것은 촉, 소리와 함께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해교는 눈꺼풀조차 움직이고 싶지 않아 제 입술을 지분대는 감각이 멀어지자 곧 다시 의식을 잠재웠다.

“어지간하다. 나도…….”

일단 눈이 돌아서 일을 저지르긴 했는데……. 연제가 손목뼈로 제 안구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도윤 진짜…… 미친 새끼.”

안 할 것 같은 짓은 다 골라 하고 있었다. 미친 척 같이 하자고 제안했더니 정말로 참여했고, 종내에는 소유욕마저 드러냈다. 그래서 위험했다. 이도윤이 차해교에게서 정떨어지게 하는 것은 힘들 듯해 차해교라도 그렇게 만들어 볼 요량으로 벌인 일이긴 한데. 시발. 이거 수습이 가능하긴 한 걸까.

연제는 초조한 듯 아랫입술을 마구 깨물다 조심스레 해교의 어깨선을 가리고 있는 이불을 내렸다. 그러자 이렇게 지쳐 쓰러지게 만든 게 오롯이 제 탓이 아니라는 걸 선명하게 인지하게 하는 빌어먹을 키스 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쥐면 부러질 것처럼 여린 목선을 따라 남은 쪼가리 자국을 보자마자 울분에 차서는 하마터면 이도윤 멱살을 잡으러 나갈 뻔했다.

희미한 조명에 비친 살결은 격렬하게 부딪힌 곳마다 진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도윤을 견제하고자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건만 제가 아닌 다른 놈의 흔적으로 뒤덮인 몸을 보는 건 생각보다 더 불쾌한 경험이었다.

적당히 하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이도윤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연제는 셀 수 없이 많은 섹스 경험을 통틀어 여태껏 제 영역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 자의로 키스 마크를 남길 만큼 소유욕을 나타내고 싶은 상대가 없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 꼴을 보고 있자니 달라진 제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일단 이도윤 고삐를 풀었으니, 미쳐 날뛰는 걸 구경할 셈이었다.

잰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도화선에 불을 붙이자 미친 듯 타오르는 꼴이란. 하루빨리 차해교가 이도윤에게 정이 떨어져 제게 기대는 날만을 고대할 따름이었다.

보드라운 뺨을 쓸어내리다 해교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끼워 넣고 깍지 낀 연제가 중얼거렸다.

“형. 그러니까 내가 가자고 할 때 갔으면 좀 좋았어요. 잘해 준다고 했잖아. 진짠데.”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쉰 연제가 이불을 들추어 아랫구멍을 살폈다. 아까 한차례 손가락을 넣어 긁어낸 뒷보지에선 더 이상 눅눅한 정액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연제는 제집처럼 뒤져 가져온 유백색 연고를 주욱 짜내어 검지에 올린 뒤 퉁퉁 부어오른 구멍 입구를 느릿느릿 문질렀다.

부어올라 폭신한 촉감의 점막이 검지에 밀리며 주름 사이사이마다 하얀 색상의 질은 연고가 낀 채 오므라들었다. 연제가 입구의 주름을 비벼 대던 손가락에 힘을 주고 꾹 다물린 좁은 구멍 안에 검지를 쑤셔 넣었다.

아, 흐……. 자면서도 내벽이 밀리는 것이 느껴지자 해교의 입술 새에서 옅은 신음이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 허리를 비트는 바람에 연제의 손가락이 닿아 있는 볼기가 철썩이며 흔들렸고, 이에 연제의 손등뼈 인근에 부드러운 엉덩이 살이 잘게 부딪히며 찰진 소리까지 났다.

정말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상처가 났을지 모르는 내벽에 연고를 바르는 행위였건만, 잔뜩 부은 표피와는 달리 구멍 안은 흐물흐물하게 풀려 있어 검지의 침입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이와 더불어 수차례의 섹스로 학습된 내벽 또한 손가락에 쫀득하게 달라붙어서는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오늘만은 제발 참자. 연제가 실낱같이 남아 있는 이성을 다잡으며 손가락에 남아 있는 연고를 마저 점막에 눌러 발랐다.

보통 때라면 도톰하게 돋아 있는 전립선부터 찾아서 손끝으로 짓찧었을 텐데, 습관처럼 전립선으로 향하려는 손가락을 참아 내느라 연제의 정신이 혼몽했다.

녹진녹진 풀린 내벽 안 손가락이 점막을 비벼 댈 때마다 살포시 느껴지는 압박감에 해교의 아랫구멍이 경련하듯 떨려 왔다. 바늘로 톡,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얇은 점막이 손가락을 죄며 주는 느낌이 유혹적이었다.

마침내 최대치의 인내심을 끌어올린 연제가 손가락을 꺼내자 아쉬운 듯 쩌억, 살갗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딸려 나오던 붉은 육벽이 구멍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번들거리는 유백색 연고가 잔뜩 발린 아랫구멍은 오물오물 계속해서 빈 구멍을 씹어 댔다.

구멍이 개폐를 반복할 때마다 주름 사이와 내벽 외부에 발린 연고가 녹아들며 흘러내렸다. 점성 있는 액체가 흐르는 듯한 모습이 방금 사정을 마친 뜨끈한 정액을 꿀렁꿀렁 뱉어 내는 것만 같아 보였다. 가뜩이나 피가 몰린 연제의 좆이 그 모습에 더더욱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씨팔. 우연제. 참아라. 짐승 새끼야…….”

어느덧 아래위 입술 모두를 감쳐문 연제는 뒤이어 2개의 자지를 받아먹었던 앞보지를 살피려 손가락을 이동했다.

갈라진 조갯살 사이에 손가락을 쑤셔 넣자마자 보지는 미끄덩하게 속살을 벌렸다. 선홍빛 속살을 가르는 검지를 부드럽게 휘감아 오는 질 점막은 이리저리 문질러보아도 찢어지거나 상처가 난 구석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미끄러운 살결을 주르륵, 훑어 내리는 손길에 따라붙는 보짓물이 여전히 건재한 걸로 봐서는 그사이 모든 회복을 마친 듯했다.

연제가 꾹, 꾹 여린 점막을 누를 때마다 보드라운 연두부 같은 질벽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며 손가락 끝에 황홀한 감각을 선사했다. 후우……. 저번부터 손가락 끝에도 성감대가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게 해 주는 해교의 몸에 연제가 간신히 신음을 억눌렀다.

상처 난 곳이 없는지 검사하는 손가락이 예민한 극점을 건드렸는지, 하, 아…… 으응…… 해교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작은 교성을 흘렸다. 뒤이어 보지가 한결 더 끈적한 보짓물을 흘려보내 검지를 적시자 연제의 표정이 구겨졌다.

단순히 몸 상태를 보려 했건만, 쩍쩍 맛있게 두 좆을 빨아 대던 보짓살이 떠오른 탓이었다. 따끈하게 익은 붉은 점막이 금방이라도 두 살덩이를 녹여 내릴 듯 들러붙어선 서로를 비비게 만들었다.

벌어진 보지는 조금의 빈 공간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바지런히 꿈틀거렸고, 그 결과로 뜨끈한 보지 점막에 감싸인 채로 생좆끼리 마찰하는 과정을 통해 생전 경험해 본 적 없는 충격적인 절정감을 느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쾌감이었다.

“하아…….”

더 상기해 봤자 좋을 게 없었다. 저답지 않게 치밀어 오르는 충동을 참아 낸 연제가 살살 내부를 뒤적이던 손가락을 꺼내자,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손등뼈를 타고 불투명한 애액이 주룩 흘러내렸다.

팔꿈치까지 셔츠를 걷어 올렸던 연제의 팔 상완을 타고 흐른 보짓물은 곧 회색 셔츠를 적신 뒤 바닥까지 뚝, 뚝 떨어졌다.

전 같으면 타고난 년이라고 놀려 먹었을 텐데. 연제는 저질스러운 언사 대신 밀려난 이불을 나신 위로 덮어 주며 숨을 죽였다.

“선생님……?”

가물가물한 시야 사이로 다정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누군가가 방을 떠나는 것이 느껴졌다. 제 아래에 발리는 끈적한 점성의 연고, 괜찮다는 듯 곧 도닥여 주는 손길과 은은한 음성.

아아, 그래. 꿈이구나. 의사 선생님이 나오는 꿈이야. 해교는 지혁을 떠올리며 감사합니다, 하며 희미하게 웃음을 짓고는 재차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시 눈 떠 바라본 방 안은 어두컴컴해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해교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라도 된 듯, 다리를 뻗자마자 바닥을 뒹굴었다.

휘청이다 블라인드를 걷고 뒤늦게 살핀 몸은 뒤범벅된 체액이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간헐적으로 남아 있는 통증만이 어제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렸다.

한동안 자신이 지내고 있던 도윤의 집 복층 침실이었다. 여기엔 누가 옮겨 놓은 걸까. 몸이 닦이고 뒷보지에 약까지 발려 있는 걸 보면 아마도 도윤일 것 같았다. 우연제가 이렇게 자신을 돌보아 줄 리 없으니까.

어제 도윤은…… 그러니까 도윤은 분명히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한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갑자기 돌변해서 그럴 리 없었다. 늘 친절했고 예의 발랐고, 배려심마저 넘쳤던 도윤이었다.

그래. 오해가 있으면 풀면 되는 거다. 그러니까…….

눈을 감고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다 보니 다시 피곤이 몰려왔다. 머리도 나쁜 자신이 하릴없이 머리를 굴려 대 봤자 딱히 알맞은 답을 내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해교가 또다시 도피처로 향하듯 눈을 감으려던 순간, 방문이 열리며 도윤이 들어섰다.

“괜찮아요? 형……. 걱정했어요.”

“…….”

도윤은 자신이 들어서자 힐끔 눈치 보며 뒤로 물러나는 해교를 보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세게 다문 입술 표면이 터지며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미안해요. 정말 잘못했어요. 그런 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면 안 됐는데…….”

언젠가 해교와 몸을 맞대는 날을 꿈꿔 오긴 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물론 그간 참지 못하고 잠든 해교를 농락한 날도 많았지만 그의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하는 섹스는 이렇게 이뤄지면 안 됐다.

우연제의 도발에 넘어간 뒤 우연제보다 더한 짓을 해 댔다. 도윤은 뒤늦게 밀려오는 죄책감에 휩싸인 채였다.

“집에 갈래요…….”

잠긴 목소리를 흘린 뒤, 해교는 비척비척 일어나 침대 아래 놓인 옷을 꿰입었다. 도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해교를 바라보다 다급히 팔을 뻗었다. 다가오는 손끝에 놀란 해교가 움찔, 어깨를 떨자 도윤은 내민 손을 거두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언제든 가도 좋아요. 형 마음대로 해야죠. 가도 좋은데, 지금은 아니에요. 형, 지금 그 몸으로 어딜 가요. 조금만 더 쉬어요.”

“…….”

“뭐? 형이 어디 가? 형이 어딜 가요?”

순간, 방과 연결된 욕실에서 씻고 있던 연제가 불쑥 문을 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연제는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탄탄하고 단단한 나신을 드러낸 채였다. 섬세하게 갈라진 근육이 연제의 움직임에 따라 굴곡을 내보이며 또렷이 솟아올랐다.

“집에, 집에 갈 거야…….”

연제가 이런 것 하나 정리 못 하냐는 듯 짜증 섞인 표정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 반듯한 미간 사이는 형편없이 구겨져 탐탁지 않은 심경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형. 그 집에 왜 가려고 해요……. 거기 아직 사채업자가 돌아다녀서 위험해요. 그러니까…….”

“사채업자? 그건 또 뭐야.”

“……우연제, 좀 나와 봐. 형, 그러니까 일단 잠시만요. 알았죠?”

도윤이 재빨리 연제의 손목을 붙들고 복층에서 내려와 거실에서 멀리 떨어진 서재로 향했다. 연제는 서재 문이 닫히자마자 발칵 역정을 내며 제 손목을 쥔 도윤의 손을 더럽다는 듯 털어 냈다.

사이좋게 한 대씩 주고받은 터라 연제와 도윤의 뺨 인근에 나란히 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말해. 사채업자라니?”

“하…… 그러니까……. 최근에 형네 아버지가 사채 쓰고 사라져서 일이 좀 있었어. 그 문제 때문에 형한테까지 피해가 갔었고.”

도윤이 혹여나 해교가 들을까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했다. 자세한 설명 없이 대략적인 상황만을 말했지만 눈치 빠른 연제는 단번에 돌아가는 상황 파악을 마쳤다. 그제야 전후 사정을 알아챈 연제가 예리한 눈동자를 빛내며 빈정거렸다.

“이도윤. 솔직히 말해. 사채, 너네 집 거 쓴 거지?”

“…….”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고 쏙 사라져 버릴 수 있었던 거고.”

“……하.”

“차해교는 알아? 그게 너네 집 돈이라는 거. 알 턱이 없겠지. 알면 이렇게 너한테 붙어 있지도 않았을 거야.”

“나중에 말하려고 했어.”

“나중에 언제? 퍽이나.”

연제가 픽 웃음 지으며 도윤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조금만 움직이면 입술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비소를 날리며 눈을 마주쳤다. 저 혼자 선비인 척은 다 하더니 결국 본질은 자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놈이었다.

“뭐…… 굳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어쩔 수 없지. 그거야 네 선택이니까. 난 친구로서 네 의견을 존중해. 차해교를 쏙 숨겨 놓은 너랑은 달리 난 널 친구로 여기거든.”

“……그건, 미안하게 됐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형이 워낙 힘든 상황이었어.”

“맞아. 상황이란 게 있는 거니까.”

연제가 이해한다는 듯 도윤의 어깨를 가벼이 두드렸다.

차라리 잘됐다. 이미 차해교는 이도윤에게 정나미 떨어졌을 테지만 여차할 때 써먹기 좋은 패를 굳이 숨겨 주신다면야 이쪽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니까…… 당분간 이 집에 있게 할 거야.”

“뭐?”

“형은 어차피 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갈 데가 없으니까.”

“쟤 구리긴 해도 집 있어. 방금 못 들었어? 집에 간다는데 무슨 헛소리야?”

도윤은 이어지는 연제의 반응에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답 않는 도윤을 보며 연제가 무언가 눈치챈 듯 바람 새는 헛웃음을 쳤다. 진짜 미친놈이 여기 있었네.

* * *

“……형이 저한테 많이 실망한 거 알아요. 저는 그냥…… 그 순간엔 형도 그러길 원한다고 생각했어요. 미친 소리 같겠지만 제가 경험이 없어서 몰랐고 후회해요. 정말 잘못했어요.”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기운을 잃은 채 조곤조곤 사과를 읊었다. 내내 미안한 눈초리로 내뱉는 그 말이 혼란스러웠던 해교의 머릿속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모르긴 하지만, 도윤의 말대로 처음이면 그럴 수도 있을지 몰랐다. 우연제도 도윤에게 ‘아다’라고 해 댔고 섹스 도중 도윤이 내뱉는 말 역시 ‘처음’이긴 했으니까.

거기다 처음에만 아파했었지, 하다 보니 무서울 정도로 과한 쾌감이 쏟아져 종내에는 빨리, 더 해 달라고 제가 울고불고 매달리지 않았는가. 정말 우연제의 말처럼 저는 타고나길 음란해서 입으로만 싫다고 하지, 진실로는 어떻게든 구멍에 무언가 쑤셔 넣기만 하면 자지러지는 몸일지 몰랐다.

평생 보지에 자지를 넣어 본 적 없다는 우연제도 저에게는 예외를 두었고 그 이성적이고 차분한 도윤마저 회까닥 돌아 버리게 만든 걸 보면 아무래도 문제는 이 몸에 있는 게 분명했다. 만약 제게 보지가 없었더라면, 그 착한 도윤이 그런 행동을 했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제게 있었고 이건 그걸 들켰기에 일어난 재수 없는 사고, 같은 거였다. 여태 그랬듯 잘 감추며 살아가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사고.

그러니까…… 다시 겪을 일 없는 사고로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과정은 저 자신을 좀먹게만 한다는 걸 잘 알았다. 체념과 단념은 늘 빨랐기에 해교는 금세 제가 내린 결론에 수긍하였다.

풀이 죽어선 자신의 옷자락도 잡지 못한 채 계속 눈치를 보는 도윤의 얼굴 위로 여태껏 저를 돌보아 주었던 그의 모습들이 겹쳐져 떠올랐다.

위험에 빠졌던 자신을 구해 주고 지금도 역시 위험을 감수하며 해교를 보호해 주고 있는 도윤이었다. 도윤이 아니었다면 진작 조폭에게 끌려가 장기라도 팔렸을지 몰랐다. 그러니까 그런 은인을 미워할 순 없었다.

해교는 또다시 버릇처럼 제게 드리워진 현실에 순응했다. 생각에 잠겨 알겠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해교를 보며 도윤이 오랫동안 고민해 왔던 말을 꺼냈다.

“지금 이야기 안 하면 내내 못 할 것 같아서요. 성 지향성에 대한 고민을 떠나서 그냥 형이 좋아요. 형이라서 좋은 거 같아요.”

해교가 놀라 고개를 들어 도윤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형이 마음 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게요. 집에 가고 싶으면 가도 좋은데, 가더라도 기운만 차리고 가요. 딱 며칠만이라도……. 지금도 저 자신이 너무 싫지만, 형이 이대로 가 버리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요.”

“…….”

도윤은 대답 없는 해교를 응시하곤 쓴웃음을 지은 채 방문을 열고 나섰다. 그가 문을 열자 복도를 서성이던 연제가 기다렸다는 듯 무감한 표정으로 도윤을 훑었다. 이윽고 연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모, 못 해요. 진짜.”

“뭐?”

“너무,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그러니까, 안 한다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하, 연제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용기 낸 말을 던진 해교는 연제의 표정을 볼 자신이 없어 눈을 꼭 감은 채였다. 눈꺼풀에 매달린 속눈썹이 파들파들 떨렸다.

“누가 지금 씹질 하재요?”

짜증 섞인 목소리에 해교가 감은 눈을 떴다. 그게 아니면 왜 자신을 찾아왔냐는 듯한 눈초리였다.

“이도윤이 뭐래요?”

“조, 좋아한다고.”

“형이 좋대요?”

“……네.”

해교는 말을 내뱉곤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켜 넘겼다. 단순히 대답만 하는 거였는데도 언제 어디서 핀트가 나가 거칠게 변할지 모르는 우연제와 눈을 맞추기 어려웠다.

“하. 그래서? 형은요.”

“구, 궁금해하지 마세요.”

“……시발. 형, 걔가 어떤 집안 아들인지나 알고…….”

연제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리 없는 해교가 의문 가득한 눈으로 연제를 바라보았다. 또다시 무섭게 흥분한 모습에 손톱 거스러미를 짓이기는 손가락 끝이 덜덜 떨렸다. 연제는 그런 해교를 빤히 바라보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충동을 가라앉혔다.

아직은 아니다. 적어도 차해교가 제게 조금이라도 기댈 때 터뜨려야 결정타가 될 것이다. 지금 섣불리 말했다간 이도윤이고 저고 닭 쫓던 개 신세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적당한 때 도윤의 집안에 대해서 까발릴 작정이었다. 애초에 둘 중 먼저 배신을 때린 건 이도윤이었으니 죄책감 같은 건 없었다.

그러한 클라이맥스를 위해서라면, 지금 굽혀야 했다. 여태껏 살아오며 사람 뼈를 부러뜨리고도 사과한 적 없었는데 차해교를 만난 뒤 참으로 별짓 다 한다 싶었다.

“형, 내가 진짜…… 그간 형한테 못 할 짓 많이 한 거 아는데, 그래도 형한테만은 최대한 인내를 발휘하고 있다는 걸 알아줘요. 이제 정말 형이 싫다는 건 안 할게요. 좋다고, 허락한 것만 하도록 노력할게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면 이걸 인내라고 하는 걸까. 하긴 처음 만난 날부터 브레이크 없이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모든 걸 해 왔던 우연제였다.

“내가 질투 난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네.”

“놀리려고 한 말 아니고 진짜예요. 형이 그간 이도윤 집에서 지냈다는 걸 아니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생각해 봐요. 형이 그렇게 믿고 기대던 놈이 결국 형한테 어떻게 했는지. 걔가 과연 나랑 그렇게 다를까?”

“……처, 처음이라서 잘 몰라서 그랬다고…….”

“걔 아다 맞아요. 아다 맞고…… 그러니까 더 확신할 수 없는 거야. 걔 마음을. 처음 보는 눈 내린 풍경이 신기해서 날뛰는 강아지랑 다를 게 뭐예요, 걔가.”

해교가 혼란 가득한 눈으로 우연제를 바라보았다.

“나는…… 원래 남자만 만나던 놈이었고, 그래서 형한테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다는 것 정도는 확신할 수 있어요. 걔도 그럴지 생각해 봐요. 뭐, 이런 것도 다 형은 남자 싫다고 하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어느덧 낯에 어리던 시시껄렁한 표정을 지우곤 연제가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매사에 보이던 장난기가 없어 진심인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도윤도, 연제도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한가득 쏟아 내 해교의 머릿속은 금세 뒤죽박죽이 되었다.

자신이 멍청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상황이 일반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건지 판단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 눈동자만 굴려 댔다. 그래도 그 와중에 우연제가 결심한 듯 내뱉은 간결한 문장 하나만은 똑똑히 뇌리에 박혀 있었다.

“이제…… 진짜 싫다는 거 아, 안 할 거예요……?”

연제가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해교에게 다가섰다. 유달리 새까만 동공 속엔 오롯이 해교의 얼굴만이 비치고 있었다. 꼬리가 있다면 꼬리까지 살랑여 댔을 만큼 과한 동작이었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하룻밤 사이에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어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해교가 긴장에 굳었던 어깨를 풀고 입술을 짓씹었다.

방심한 틈에 우연제가 제 앞의 부드러운 입술에 쪽, 가벼이 입술을 맞댄 뒤 떨어져 나갔다.

“이걸 마지막으로 참아 볼게요. 진심. 허락해 주기 전까진 쳐다만 볼게요.”

……쳐다보는 것도 싫은데. 덧붙였다간 전처럼 회까닥 눈이 돌아 버릴까 봐 겁나 차마 그 말은 내뱉지 못하고 해교는 눈을 감았다. 연제는 해교의 행동을 허락이라 여겼는지 한숨 돌렸다는 듯, 여태 쉬지 못한 숨을 몰아쉬며 제 앞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고요해진 방 안엔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 *

“우연제, 대체…….”

“왜? 같이 공부하자고. 학기 중에 공부하자는 게 잘못됐어? 너도 우리 집 오는 거 좋아했잖아.”

연제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도윤에게 전공책을 내밀었다. 도윤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연제가 들어오자마자 쪼르르 복층으로 올라가 버리는 해교를 향해 눈짓하였다.

“형이 나 싫어하니까 오지 말라고?”

“아예 오지 말라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받아 하잖아.”

저게 씨발, 아직도 백마 탄 왕자님인 척하고 있네. 차해교 인생이 좆같아진 게 누구 집안 횡포 때문인데.

“형.”

“…….”

개똥 보듯 하네……. 어지간히도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해교의 표정을 읽어 낸 연제가 들리지 않게 불퉁거렸다. 이 또한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차해교가 이도윤의 어떤 면모를 보고 기댔던 건지 알 것 같아서였다.

“휴우…….”

해교는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시선을 느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대체 우연제가 원하는 게 뭘까. 며칠 전 그가 해 댄 믿기지 않는 소리가 떠올랐다. 정말로 도윤에게 질투라도 느꼈다는 걸까. 그렇다면 자신을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건지.

차라리 하던 대로 하지, 괜히 사람 헷갈리게 그날 이후 우연제는 우연제답지 않은 짓들만 골라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뭐 하나를 전달할 때도 손이 닿지 않게 조심한다든가, 전과 달리 상스러운 언사를 내뱉지 않으려 말을 골라 한다든가 하는 것들.

물론 종종 습관대로 앞 글자가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올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우연제가 입, 하며 커다란 손바닥으로 제 입술을 가리며 슬쩍 눈치를 보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해교로서는 손해 볼 일 없는 변화인지라 괜히 전처럼 심기를 건드렸다가 역풍을 맞느니, 얼떨떨하긴 했지만 제멋대로 그러고 있는 꼴에 말 얹지 않는 게 최선 같았다.

방문을 닫고 들어오자 도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복도를 서성이고, 간간이 문밖에서 우연제가 뭐라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사 도우미 일에 복귀하고 빨리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해교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 * *

“원장님, 누가 찾아오셨어요.”

“누구.”

“그게…… 성함은 안 밝히셨는데 뵙자마자 바로 알겠던걸요. 원장님 동생분이시죠? 얼핏 보면 헷갈릴 거 같아요.”

호들갑 떨며 문을 연 김 간호사의 뒤에 유달리 닮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방문자의 얼굴이 보였다. 지혁의 동생, 지헌이었다.

“여기까지 웬일이야.”

“나 희진…… 아니, K 메디컬 장녀랑 선봤잖아. 이야기 진행 중이야. 상대편 집이 여기 근처라 데려다주고 들렀어.”

“결혼 이야기는 많이 이른 것 같은데.”

“난 형이랑 달라. 결혼에 큰 의미 안 둬.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할 거야.”

“내가 결혼에 큰 의미를 둔다고?”

“두잖아, 형. 그러니까 안 한다고 버티는 거고. 의외로 형이 나보다 순정파일지도 몰라. 하하.”

자신의 말에 눈살을 찌푸린 지혁을 바라보며 지헌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 지혁이라고 착각할 만한 체형과 이목구비를 갖춘 지헌은 가까이 다가가 살피면 지혁보다 한층 온순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세세히 관찰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이라 김 간호사의 말처럼 작정하고 살피지 않으면 능히 헷갈릴 법도 했다.

“어쨌든 그래도 얼굴은 보고 살아야지. 점심시간 끝날 때쯤이라 식사는 했을 거 같아서 간식 사 왔어.”

지헌이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포장 케이스를 흔들었다. 그가 손목을 가볍게 흔들자 유명 베이커리 상호가 찍힌 종이 박스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게 뭔데.”

“마카롱인데 SNS 보면 어린애들이 이거 먹고 싶어서 난리야. 여긴 개수 제한도 있고 하루에 1시간밖에 운영 안 하는 곳이래. 당연히 형 먹으라고 사 온 건 아니고, 직원들 주라고.”

어린애. 지혁은 지헌의 입에서 어린애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해교를 떠올렸다. 전에 이상한 이름의 신상 김밥을 먹던 걸 보면 나이답게 유행에 민감한 것 같았다. 제 입맛에 괜찮은 음식을 이것저것 골라 먹이긴 했지만 차해교에겐 한지헌이 가지고 온 마카롱이 훨씬 반가울지도 모르겠단 추측이 일순 일었다.

“형 병원 직원들 나이대 어리잖아. 따뜻한 말 건넬 성격도 아니니 내가 뇌물 삼아 가져온 거야. 고맙지?”

“넌 어린애가 뭐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는데.”

이상한 질문이었다. 도무지 형답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좀처럼 무언가를 궁금해 않는 지혁이 던진 질문인지라 지헌은 성실하게 대답에 응했다.

“동아리 후배 중에 잘 따르는 녀석이 있어서 학부생 취향까지는 내가 커버를 좀 해. 내가 눈치 없이 계속 선후배 모임 나가잖아. 트렌드 알아보려고. 하하.”

“그 정도로 어린애랑 무슨 말을 해.”

“열정 있는 녀석이라 얼추 겉핥기 정돈 하거든. 얼마 전엔 학과장 만났다가 걔네 집에 갔었어. 거기 걔 말고 같이 사는 다른 애도 있었는데 내가 생각 외로 요즘 애들이랑 말이 꽤 통하더라고? 그러니까 이 마카롱도 잘 먹힐 거야.”

지헌은 정말 지혁의 얼굴을 보는 것이 목적이었던 듯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그가 사라진 뒤, 실컷 강조했던 마카롱이 담긴 종이 박스를 한참 바라보던 지혁은 이를 진료실 한편으로 치워 두곤 오후 진료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이름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니 어느덧 병원 영업 종료 시간에 다다랐다.

지혁은 진료실에서 나가기 직전, 서랍에 넣어 두었던 종이 박스를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를 타자마자 해교에게 전화를 건 뒤 출발을 기다렸지만 신호음이 꽤 길게 이어져도 해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후 18:13 어디예요. 일단 집으로 갑니다.]

답장이 오지 않았지만 무작정 해교의 집으로 향했다. 전에 보니 한번 잠들면 깊이 잠드는 편이라 전화벨 소리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퇴근 시간이라 꽤 막히는 도로를 뚫고 구석진 해교의 동네에 도착했다. 낮부터 잠들었던 건지 살짝 살핀 건물에선 일말의 빛도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지혁은 저번처럼 현관문을 두드리며 전화를 걸었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볼 수 없었다.

“일도 안 한다면서 대체 어디 간 거야.”

총량만 따지자면 주말 이틀간 만나는 시간이 평일 내내 만나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셈이었으나 이걸로 성에 차지 않았다. 집에 없으면 왜 없냐고, 올 때까지 집 안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고 싶었다. 조금 더 욕심내자면 그냥 아예 같은 집에서 지내도 좋을 것 같다.

난데없이 일주일 내내 진료하자고, 그냥 집에 들어와서 살라고 하면 미친놈 같겠지. 지혁이 고개를 흔들며 피식, 웃음 지었다. 이미 미친놈 같은 짓은 다 해 놓고선 매우 뒤늦은 고뇌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꽤 날이 어둑해졌는데도 차해교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얼마 전 친구 집에 잠시 가 있겠다고 지나가듯 말했던 것이 그제야 떠올랐다. 그 이후로 거취에 대해 물어보진 않았지만 설마 아직까지 그 집에 가 있는 건 아닐 텐데.

일단 집으로 가서 연락을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은 지혁은 혹시 모를 해교의 귀가를 위해 마카롱 포장 케이스는 그대로 문고리에 걸어 둔 채 뒤를 돌았다.

“뭐야. 씹.”

자택 도착까지 채 10km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차는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워 시간대인 걸 고려 해도 평소 퇴근길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까지 교통 체증이 유발될 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지나가서 나오는 사거리에서 대형 추돌 사고라도 난 듯했다.

되는 일이 없었다. 가뜩이나 해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초조한 심정에 발칵 짜증까지 얹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지극히 오랜 퇴근길을 거쳐 마침내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만났다. 평소처럼 차고 문을 열고 바로 진입하려던 찰나, 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은 조그만 몸이 지혁의 시선을 끈 것이다. 지혁은 차량의 시동도 미처 끄지 않고선 차에서 내려 대문 앞으로 성마르게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