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14)

6.

오늘은 드라마 ‘파고’ 촬영이었다. 어제 조금 친분을 튼 장준혁, 이지운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선 지한은 그대로 김신우를 주시했다. 그는 오늘도 어김없이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오늘은 여주인공이 떠난 뒤에 김신우 홀로 독백을 곱씹는 씬이였다. 정 감독이 슛을 외치자마자 금세 눈가를 붉게 물들이는 그를 보며, 지한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삽시간에 감정을 이리저리 조절하는 것이 신기하게만 보였다. 근무를 서는 동안 그 흔한 대사 실수 한번 하지 않았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정말 프로다웠다.

[차라리 내가 죽을까. 그러면 네가 좀 편할까….]

시작된 독백에 촬영장이 고요해졌다. 짙은 적막 속, 김신우의 목소리만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기다란 눈매 끝을 따라 굵은 눈물방울이 뚝, 떨어진다. 뺨을 타고 흐른 구슬이 턱 끝에 맺혀 대롱거렸다.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응시하며 손을 쥐었다 편다. 홀로 중얼거리는 입매는 살짝 올라가 있었으나, 온갖 아픈 감정을 다 담아놓은 듯한 눈동자는 쓸쓸하게 일렁거렸다. 공허한 얼굴의 김신우는 웃는 얼굴로 울고 있었다.

모두가 숨소리마저 죽인 채 그의 눈물 연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한의 미간이 조금씩 굳었다. 속이 불편하게 울렁거렸다. 머리가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던 그가 헛숨을 내쉬었다. 오래간만에 마신 술 때문에 숙취가 남아 있는 건지 멀미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장준혁에게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이야기한 후 밖으로 나갔다. 인적 없는 곳에서 담배 한 대를 짧게 피우곤, 촬영장으로 돌아가기 전 화장실을 찾았다. 정신 차리려면 찬물로 세수라도 해야 할 듯했다.

혼란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반쯤 열린 화장실 문고리를 잡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신우? 얼굴 좀 잘나고 반반하니까 막 나가는 거지…. 그 새끼 성격 존나 더러운 거 소속사 직원들은 다 안다더라…. 거기 대표도 치를 떤다고 소문 다 났어.”

남자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어엉, 너도 들었어? 스폰 얘기만 해도 봐라. 왜 그 김인희 사장 아래 빨아 주면서 배역 땄다잖아. 당연한 거 아냐? 시발 밀어주니까 그렇게 빵빵 뜨지. 요즘 얼굴 잘난 놈들이 한둘이냐.”

돌연 문밖에 멈춰선 지한이 미간을 좁혔다. 누군진 몰라도 김신우의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살살 눈웃음치면서 가식 떨고 다니는 것만 봐도 딱 삘 오잖냐. 속으론 다 지 아래로 깔보고 있는 거 존나 티 난다니까.”

들어갈지 말지 잠시 고민에 빠져 멈춰있는 차였다. 모기처럼 왱왱대는 목소리가 멈출 줄 모르고 이어졌다. 지한의 심기가 차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김신우가 성격 더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는 외모뿐만 아니라 실력으로도 인정받는 배우였다. 게다가 그 성격에 누구한테 절절매며 스폰 같은 걸 할 리도 없었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공장소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난 비위 상해서 시발, 아무리 뜨고 싶어도 그런 아줌마들이랑 못 해. 하여간 그 새끼도 졸라 대단한 놈이야.”

생각도 전에 몸이 절로 움직였다. 화장실 안으로 턱, 걸음을 내딛자 낄낄대던 웃음소리가 뚝 멈췄다.

인위적인 정적 사이로 지한이 느리게 걸어갔다. 벽에 기대어 떠들던 두 남자는, 별안간 등장한 지한이 풍기는 싸한 분위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을 스치듯 바라본 지한이 세면대 앞에 섰다. 눈을 내리깐 채 수전을 틀고 손을 씻기 시작하자, 적막과 함께 두 남자가 서로 눈치를 봤다.

“밀어준다고 다 뜨는 거 아닙니다.”

거울 속 남자들을 힐끗 바라본 지한이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갑작스레 건넨 말에 남자가 올챙이 같은 눈을 치켜떴다.

“뭐요?”

지한은 별 표정 없는 얼굴로 핸드워시를 쭉 짜내고는 느리게 손을 씻기 시작했다.

“밀어준다고 다 뜨는 거 아니라고요.”

“무슨….”

남자가 송충이 같은 눈썹을 구겼다. 목소리를 보아하니 종전까지 실컷 떠들고 있던 놈인 듯했다. 지한이 시선을 들었다. 살짝 올라간 눈매와, 냉랭한 검은 눈동자가 거울 속 남자들을 위에서 아래로 느리게 훑었다.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쪽은….”

“…….”

“비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말하며 턱을 비스듬히 들곤, 거울 속 남자를 내리깔듯 응시했다. 당황한 두 남자가 말꼬리를 흐렸다. 난데없는 공격에 둘 다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수전을 잠그자, 물소리마저 사라진 화장실 안에 싸한 적막이 찾아왔다.

“상대해 줄 생각도 없는 여자 떠올리면서 비위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요. 그 스폰서도 보는 눈이 있을 거 아닙니까.”

“…….”

“쓸데없이 남 걱정할 시간에 본인들이나 좀 관리하세요.”

그는 세면대에 물기를 툭툭 털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연예인에게 소문은 출처 없는 사실과 같았다. 분명 김신우의 앞에선 한마디도 하지 못할 것들이 뒤에서 저런 식으로 비아냥대는 것이 썩 보기 좋지 않았다.

“뭐? 당신 말 다 했어?!”

와락 인상을 구긴 남자가 욱, 소리를 질렀다.

“진짜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야!! 너 어디서 온 놈이야! 내가 누군 줄 알…!”

“야야! 시발, 무시해. 무시해 그냥.”

옆에 서 있던 이가 그의 팔을 이끌었다. 가뜩이나 체격도 좋고 서늘한 인상의 남자가 시비를 걸어오니 괜한 불상사는 피하잔 생각이었다. 또렷한 삼백안과 멀끔한 블랙 슈트도 위압감을 주는 데에 한몫했다.

얼굴이 잔뜩 벌게진 남자가 콧김을 뿜으며 지한을 노려보았다. 지한 또한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에라이. 씹.”

남자는 어쩔 수 없이 끌려나가는 척 구시렁대며 등을 돌렸다. 지한은 그들이 문을 나설 때까지 거울 속으로 빤하게 지켜보았다. 어린 애들도 아니고 하는 짓이 그저 한심하게만 보였다.

놈들이 사라지자, 지한은 다시 수전을 틀었다. 솨아, 찬물로 서너 번 얼굴을 적시곤 레버를 닫았다. 그는 세면대를 짚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아무리 그래도 저런 타입은 딱 질색이었다. 괜한 시샘으로 남을 깎아내리는 족속들, 어딜 가나 꼭 있는 저런 인간들은 지한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였다. 아무리 김신우가 싫다고 해도 그들의 뒷담화가 딱히 듣기 좋지도 않았다.

같이 산다고 편이라도 들어준 건지.

제 생각에도 황당해 피식 입꼬리를 올린다. 티슈를 뽑아 눈가를 대충 찍어 닦은 후 쓰레기통에 버렸다. 손을 탁탁 털며 문을 나서는데, 별안간 앞을 가로막은 인영에 흠칫 멈춰 섰다. 시야에 잘 닦인 구두가 들어왔다.

“이거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나….”

지한이 느리게 시선을 들었다. 팔짱을 낀 김신우가 비스듬히 벽에 기대 있었다. 시원스러운 입매는 살짝 올라간 채였다. 살짝 찡그린 지한이 아직 물기가 묻은 뺨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내심 놀랐으나 티는 내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와 있던 거지…

“공지한 씨, 생각보다 나 좋아하나 봐.”

뭐라 말을 하기도 전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지한의 눈썹이 작게 씰룩였다.

아뇨… 싫습니다. 싫어합니다.

차마 뱉지 못한 글자들이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김신우라서가 아니라 평소 제 성정에 뒷얘기 하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말이었다. 그러나 객관적인 상황만 보아도, 그를 위해 편들어 준 거라 보일 수밖에 없을 듯했다. 약간의 후회와 함께 조금 민망해졌다.

…좋아서 그런 건 아닌데.

“좋진 않습니다.”

단호한 어조에 김신우가 실소를 터뜨렸다. 하나 평소 기가 찬다는 듯 웃던 것과는 조금 다른 웃음이었다. 턱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지한을 응시하던 김신우가 기다란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사람이 왜 그렇게 솔직해요. 상처받게.”

중저음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렀다. 이어 과장 된 한숨 소리가 푹, 퍼졌다.

…너무 대놓고 말했나.

내심 툭 뱉어 놓고 신경이 쓰였다. 힐긋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마주친 새하얀 얼굴엔 예상과 달리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세수했어요?”

“…예.”

돌연 또 뻗어오는 팔에 지한의 어깨가 경직되었다.

“아무 데서나 세수하면 피부 상해요.”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 삐뚤어져 있던 넥타이를 고쳐 매 주었다. 나긋한 말투에 지한이 눈을 내리깔았다. 표정도 단단히 굳은 채였다.

저건 가짜다. 김신우는 이중인격이다. 병이 발현했을 때도, 아닐 때도 제 기분에 따라 180도로 번번이 뒤집히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살살 눈웃음을 치다가도 수틀리면 거친 욕설을 내뱉기 일쑤인 뒤틀린 인성을 가진 자다. 지금 제 앞의 모습은 그저 가식일 뿐이었다.

“공지한 씨는 머리 내리는 게 예뻐요.”

“…….”

“잘 가리고 다녀.”

난데없는 말에 지한의 시선이 느리게 올라갔다. 시야로 살짝 호를 그린 입매가 보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지한의 뺨을 툭 건드리곤 스쳐 지나갔다. 등 뒤로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지한의 미간이 좁아졌다. 자리에 잠시 굳은 듯 서 있던 그는 그대로 걸음을 내디뎠다.

잘생겼다도 아니고…. 예쁘다니.

살면서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게다가 뒷말이 더 이상했다. 예쁘다면서 잘 가리고 다니라는 건 어폐가 있었다. 보기 싫다는 걸 돌려 이야기한 건가. 하기야 그런 거면 보기 싫다고 직접 이야기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눈 위로 차분하게 내린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지한이 눈가를 찡그렸다. 그저 생각에 잠긴 것뿐이었으나, 남이 보면 마치 화라도 난 듯한 얼굴이었다.

“형!”

돌연 등 뒤에서 툭 건드는 손길에 고개를 돌렸다.

“형. 지한 형.”

돌아보니 이지운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어제 기억나십니까? 제가 형이라고 부르기로 한 거. 설마 필름 끊긴 건 아니시죠?”

별안간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냐는 말에 답을 하지 않고 지나갔지만….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어제 거의 처음 말을 나눠 본 이지운은 싹싹하고 넉살 좋아 귀여운 면이 있었다.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던 지한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 형님! 솔직히 이 정도로 친해졌으면 말 놓으시는 센스 챙겨 주셔야죠!”

그가 와락, 눈썹을 끌어 내리며 애교스럽게 어깨를 흔들었다. 난데없는 고함에 주변을 훑은 지한이 슬쩍 웃었다. 없던 동생이라도 생긴 기분이었으나 커다란 목소리에 차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조만간 한 잔 더 하시죠? 술 진짜 잘 드시던데. 특전사 출신은 주량도 남다르다더니 형님 보니 맞는 말 같습니다! 아니!! 도대체 부족한 게 뭐….”

“…그만.”

어제에 이은 2차전에 지한이 손을 저었다. 주변을 한번 보고는 다시 이지운에게 시선을 돌렸다. 학창 시절부터 유난히 저를 따르는 동생들이 종종 있었기에 이런 상황은 익숙했으나, 주변의 시선이 모이는 건 원치 않았다.

“당분간은 개인 일정을 못 잡으니까, 합숙 경호 기간 끝나고 날 잡자.”

담백한 답에 고개를 마구 주억거린 이지운이 눈을 반짝거렸다.

“아! 맞다, 같이 사신다고 하셨지…. 와, 좋으시겠습니다. 탑 배우랑 같이 살다니.”

딱히 좋은 건 없었다. 나쁜 건… 많기도 했지만.

“아아. 팀장님 노려보신다. 형님, 형님, 그럼 저 달력에 동그라미 치면서 그날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잊으시면 안 돼요! 충성!”

이지운이 신이 나선 장난스럽게 경례를 했다. 장준혁의 눈치를 보며 헐레벌떡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기가 다 빨렸다. 낮게 웃고는 자리로 향했다.

촬영은 특별한 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지한은 늘 그렇듯 망부석처럼 서서 김신우를 주시했다. 그를 지켜보는 일이 업무였기에, 종일 억지로라도 김신우를 보고 있어야 했다.

전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많이 맡긴 했었다. 일하다 보면 의뢰자의 행동반경, 흡연 빈도나 습관 등을 간간이 외우기도 했다. 하나 어차피 며칠 보고 만 사람들뿐이라 일 끝나면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다.

하지만 김신우의 경우는 달랐다. 이처럼 오랜 기간 한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벌써 몇 달째 종일 그만 지켜보고 있으니,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에 대해 알아 가고 있었다.

지한의 시선의 끝엔 항상 그가 머물렀다. 지겨우리만큼 익숙한 얼굴을 눈에 새기고, 사소한 습관들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김신우는 이가 매우 하얗다. 환히 웃을 때 희고 고른 치열이 드러났다. 무지개처럼 휘어지는 눈 아래에는 애교살이 살짝 올라오곤 한다. 촬영 중 웃는 게 아니라 이따금 진짜 웃음이 터질 땐 눈을 감으며 웃는 버릇도 있었다. 물론 이건 굉장히 보기 어려운 표정이다.

더도 없이 부드러운 얼굴을 가졌으나 무표정할 때에는 그렇게 매정해 보일 수가 없다. 특히 화가 난 얼굴일 때에는 더 그랬다. 몇 년 전 주연으로 연쇄 살인범을 연기한 액션 스릴러 ‘DO NOT DISTURB’를 보았을 땐 공포 영화에 덤덤한 지한도 찌릿한 소름을 느꼈다.

당시 언론에선 국민 첫사랑 순정남 김신우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이라 떠들어댔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주 잘 어울리는 배역이었다.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여대는 미친 사이코와 그렇게 찰떡같이 어울릴 수가 없다.

그는 화를 내기 전에 눈꼬리를 살짝 찌푸리고, 틈틈이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는 스트레칭을 한다. 아마 평소 어깨가 잘 굳는 듯하다. 걸음걸이는 런웨이를 걷는 모델처럼 올곧은데, 아마 타고난 비율과 바른 자세 탓에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카메라가 꺼지면 대부분 무관심한 얼굴이지만, 주변 사람이 다가오면 기본적으로 옅은 미소를 띤다. 물론 가식이고 영업용이다. 기분에 따라 종종 굳어 있을 때도 있는데…. 그건 뭐 파악할 수 없이 제멋대로다.

키가 매우 크기 때문에 늘 누군가를 내려다보는 편이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지 않고 턱이 살짝 들려 있다. 기저에 남을 내리깔아 보고 싶은 심리가 반영된 걸까. 덕분에 그가 누군가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모습은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생각에 잠겨 있던 지한이 별안간 김신우와 눈이 마주쳤다. 금세 시선을 돌릴 줄 알았건만 가만히 눈을 맞춰 온다. 지한은 일순 굳어 버렸다. 그를 샅샅이 분해하듯 속으로만 하던 생각을 들키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화장실 앞에서 보았던 미소 띤 얼굴과 달리 또 무심한 시선이 꽂힌다. 제게 머무는 딱딱한 시선을 피해 지한은 눈길을 돌렸다.

김신우는 차갑고 뜨겁다.

그 온도 차를 느낄 때마다 자꾸 묘한 기분을 느꼈다.

***

“내일부터 이틀간 일정이 비었어요. 길게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일정을 짜다 보니 뒤에 좀 빡빡하게 스케줄이 밀렸었는데, 며칠 동안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한이도 고생했고.”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한정원이 찾아왔다. 김신우의 스케줄은 밤샘 촬영이 많은 대신, 종종 휴무를 몰아서 받을 때가 있었다.

빡빡한 일정 속 꿀 같은 휴무였으나, 24시간 경호를 의뢰받은 지한은 어차피 발이 묶여야 했다. 적어도 박 대표와 약속했던 근 두 달간은 개인행동을 하기 어려운 처지란 소리였다.

뭐, 발이 묶였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들여다봐야 할 핏줄도 없었고, 동기나 친구들은 있으나 회사에 양해를 구해 가며 만나야 할 만큼 급한 사람도 없었으니 괜찮았다.

“그리고, 저번에 그 압정이랑 쥐 사체는 아직 수사 진전이 없대요…. 그나마 증거라고 잡힌 게 저희 차 블랙박스인데 마스크로 다 가려서 확인도 어렵고…. 도망간 동선 중간에 시시티브이가 끊겨서 추적이 어려워지고 있다네요.”

눈치를 보던 한정원이 우물쭈물 이야기했다.

“그래서… 쉬시는 동안에도 나가지 마시고 최대한 조심하셔야 할 것 같아요. 혹시 모르니까…. 한아, 알겠지? 배우님 잘 지켜 드려.”

“응. 형도 조심히 다녀.”

습관처럼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후로도 한정원은 조잘조잘 떠들며 헤실거렸다. 휴무 동안 여자 친구와 동해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더니 퍽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의 연인은 평범한 직장인이고, 불규칙한 근무 시간에 시간 맞춰 만나기도 퍽 어려웠을 테니 오래간만의 휴무 일정에 들뜬 것도 이해가 갔다.

한정원을 배웅하고 돌아온 지한이 소파에 앉은 김신우를 향해 까딱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도 들어가 보겠습니다.”

“…….”

“안녕히 주무세요.”

그는 지한을 흘끔 바라보곤 다시 티브이에 시선을 돌렸다. 지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역시 창조신은 저 얼굴에 능력을 쏟느라 인성은 전혀 돌보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방문을 닫는다. 침대에 늘어지게 눕자 푹신한 시트가 포근하게 감겨 왔다. 요 며칠 빡빡한 일정을 따라 다니느라 잠을 못 잤더니 온몸이 노곤했다.

그나저나 김신우는 잠을 안 자나…. 어제도 밤샘 촬영이었는데.

체력이라면 어디서 뒤지지 않는 저 또한 피곤한 정도였다. 돌연 그의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수면제가 떠오른다. 아, 불면증이라 잠을 못 자는 건가. 그건… 어떻게 치료하는 거지.

살면서 다쳐 본 적은 많아도 정신적으로 아파 본 적은 없었다. 지한은 잠이 오지 않는 기분이 어떤 건지 떠올려 보다 무겁게 늘어지는 눈꺼풀을 감았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진 지한이 부스스 눈을 떴다. 평소 깊게 잠드는 편이었으나 마음 편한 곳이 아니라 그런지 새벽에도 종종 깨곤 했다.

그대로 누워 몇 번 눈을 깜빡이다 보니 시야에 어둠이 익었다. 다시 잘까, 하다가 물도 한 잔 마실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고요한 사위에 자연스레 발소리를 죽였다. 힐끔 쳐다본 김신우의 방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복도를 걷는데 점점 가까워지는 거실의 빛이 평소보다 밝아 보였다. 뭐지? 별생각 없이 걸음을 내디디던 지한이 우뚝 멈춰 섰다.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김신우와 별안간 눈이 마주쳤다.

뭐야. 안 잔 건가.

지한의 시선이 느리게 움직였다. 뭔가 이질적인 듯하더니,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는 티브이는 음소거 상태로 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화면에 흘러나오는 영상은… 토이 X토리였다.

토이 X토리?

상황을 판단하는 지한의 눈이 찌푸려졌다. 새벽 4시가 훌쩍 넘은 시간까지 잠도 안자고 보는 영화가 애니메이션 영화라니. 무엇보다 놀란 이유는 ‘김신우’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그의 눈이 놀란 듯 크게 뜨여 있었다. 커다란 눈이 느리게 깜빡인다. 그리고 곧 또렷한 목소리로 흘러나온 말은….

“여기 있었어요?”

그가 반가운 얼굴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왔다. 느닷없는 말에 지한은 어쩌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여기, 살아요? 계속 있어요?”

짧은 순간, 상황을 판단하는 지한의 눈이 그를 가볍게 훑었다. 차츰 웃음기가 번져 가는 얼굴에 멈춰있던 사고 회로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옷차림은 아니었다. 잠들기 직전에는 늘 실크 재질의 홈웨어로 갈아입고는 했으니, 아마 한 번은 잠자리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느닷없이 저를 향해 환히 웃는 얼굴, 그것은 본디 김신우가 제게 짓는 표정은 아니었다. 적어도 저를 보면서, 제 앞에서는 더더욱.

“아….”

지한은 곤란해졌다. 여태 한 번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한 지붕 아래에 살면서 지난번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막상 정말로 맞닥뜨리니 말문이 다 막혔다.

“네. 여기, 삽니다. 두 달간만요.”

머뭇거리는 말에 감탄한 김신우가 지한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았다. 단단한 어깨와 가슴팍이 그대로 지한의 위로 밀착되었다. 달큼하고 포근한 향기가 코끝으로 흘러들었다.

“좋아요. 진짜 좋아요.”

지한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김신우가 뺨을 비비적거렸다. 부드러운 음색은 상기되어 있었다.

얼어버린 지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굳어 있었다. 하나 머릿속으로는 수십 가지 생각들이 엎치락뒤치락 100미터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내 방에 왔던 형, 맞죠.”

금세 몸을 떼어낸 그가 지한의 어깨를 잡았다. 아주 즐겁고, 환희에 찬 얼굴이었다. 적응하기 어려운 행동에 지한은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금세 진지해진 김신우가 심각한 눈빛으로 지한을 응시했다.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이 팔을 타고 내려와 지한의 양 손목을 잡는다. 그는 조금 전과 달리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그날 일은…. 미안해요. 무서운 꿈을 꿔서…. 무서워서 그랬어요.”

말하며 기다란 눈을 내리깐다. 어느새 그늘이 드리운 표정은 슬퍼 보였다. 아무래도 제 앞에서 울었던 일을 기억하는 듯했다.

지한의 손목을 만지작거리던 커다란 손바닥이 찬찬히 내려와 손등을 감싸 쥐었다. 흠칫, 시선을 들자 본 적 없는 애틋한 얼굴의 김신우가 지한을 응시하고 있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형 생각만 했어요.”

“…….”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만날 수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입술을 굳게 다문 지한은 묵묵히 침묵을 유지했다.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으나 그 또한 속으론 매우 당황한 상태였다. 지금 눈앞의 그는 김신우의 다른 인격이었다. 지난날 제 위에서 처연하게 눈물을 떨어내고, 키스하다 잠이 들었던 그 사람이었다.

“왜, 왜… 아무 말도 없어요? 나 싫어요? 혹시 내가… 멋대로, 뽀뽀해서 그래요?”

손등을 감싸 쥔 악력이 살짝 드세졌다. 가만히 눈을 든 지한의 눈가가 굳어졌다. 김신우의 눈동자에 어렴풋이 물기가 어린 탓이다. 짧은 침묵에 반질거리던 눈동자가 금세 축축이 젖고 있었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지한은 얼른 답했다. 혹여 그가 또 울기 시작할까 봐 표정을 살폈다. 자신은 우는 사람을 잘 대해 주지 못할뿐더러, 그런 상황을 또 맞닥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본인이 이상하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 걸까. 정신적인 문제는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실수라도 할까 염려되었다.

“그런 거 아니면, 좋았어요?”

눈가를 붉게 물들인 김신우가 말갛게 웃었다.

“그럼 한 번 더 해도 돼요?”

지한의 심각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붙든 손을 한 번 더 꽉 잡아 쥐었다.

이게 무슨 맥락 없는 소리지. 할 말을 잃은 지한이 눈을 깜빡이자, 김신우가 상체를 기울여왔다. 뭐라 말을 하기도 전 하얀 얼굴이 불쑥 다가온다. 쥐도 새도 모르게 말캉한 것이 입술에 쪽, 닿았다가 떨어졌다.

두 번째 입맞춤이었다.

“…….”

“하하, 이리 와요.”

그가 생글거리며 굳어 있는 지한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같이 영화 봐요. 졸리진 않죠?”

지한이 말 한마디를 꺼내기도 전,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살갑게 말을 건네기 바빴다. 뒤통수를 쇠망치로 후려 맞은 듯 정신이 없었다. 모든 상황이 또 다른 김신우의 페이스에 정신없이 말려들고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좋아하던 영화에요. 그동안 외울 만큼 봤는데 볼 때마다 더 재밌어요.”

김신우는 지한의 어깨를 잡고 소파 위에 털썩 앉혔다. 그리곤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그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어릴 때? 그럼 지금은 어른이라는 소린가. 정신없는 와중에도 지한은 그의 말들 속에서 하나씩 작은 단서들을 찾기 시작했다. 오늘 이렇게 보아하니 이쪽 또한 멀쩡해 보였다.

아니, 제게 입을 맞추거나 좋다는 등의 말을 빼고는 평소의 김신우보다 훨씬 사회화가 잘 된 타입이었다.

“아, 소리 켜 줄까요? 자막 나오긴 하는데….”

웃음기 어린 얼굴로 지한을 보던 그가 돌연 눈썹을 찡그렸다. 무엇을 찾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린다.

“어릴 때 소리 틀어 놓고 티브이 보면 시끄럽다고 많이 맞아서…. 나는 끄고 보는 게 습관 됐어요.”

지한은 저도 모르게 설핏 인상을 찡그렸다. 돌연 한정원이 말해 주었던 그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별안간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이 입 안에서 툭, 튀어 나갔다.

“아니, 괜찮아요.”

그 말에 김신우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편한 대로 보십… 세요.”

여간 당황한 게 아닌지 말도 막 헛나갔다. 그 말에 김신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기다란 눈을 내리감으며 웃는, 평소엔 보기 힘든 진짜 웃음이었다.

제 말실수에 즐거워하는 그를 보며 지한은 묘한 감정을 느꼈다. 평소라면 달갑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어쩐지 지금은….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분명 눈앞의 얼굴은 똑같은 김신우인데도, 완전히 다른….

“귀여워.”

“…….”

“귀여워요, 형.”

그대로 손을 뻗어 지한의 머리를 감싸 끌어당긴다. 멀거니 앉아 있던 지한은 그의 손길에 툭, 가슴께로 머리를 기댔다. 마치 연인의 어깨에 기대는 것처럼.

“…김신우 씨.”

“편하게 말 놔요.”

“…….”

“아니, 그냥 신우라고 불러 줘요. 성은 빼고.”

그가 작게 속삭였다. 그 부드러운 음색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생각 없이 발을 푹 담가 버린 기분이었다. 발을 빼내려 버둥거릴수록 점점 더 아래로 깊게 처박히는, 그런 질척하고 진득한 늪.

“걔 싫어하죠?”

“…예?”

“못된 놈 있잖아요. 성격 더럽고… 이상한 사람.”

예상치 못한 말에 눈썹을 치켜떴다. 가만히 눈을 들자 그의 날카로운 턱선이 보였다. 정면을 주시하는 시선과 굳게 다물린 입술은 평소의 김신우와 같아 보였다.

그가 말하는 못된 놈이 원래의 김신우인 걸까. 지금 이 사람은 본래의 김신우와 자신을 완전히 분리해서 생각하는 걸까. 아니, 그 전에 이 정도로 수준이었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이미지를 중시한다고 해도 이건 좀 심각한 수준이었다.

“나는 싫어하지 말아 줘요.”

문득 시선을 들자 김신우가 시선을 맞춰 왔다.

“난 미움만 받고 자랐어요.”

“…….”

“누가 좋아해 준 적도 없었고요.”

금세 붉어지는 눈가에 지한이 표정을 굳혔다. 불 꺼진 거실 소파에 붙어 앉은 사람이 김신우인 것도, 그리고 그런 김신우의 품에 거의 안겨 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아프고 괴로운 얼굴이었다.

“나 싫어하지 마요.”

삽시간에 눈자위를 채운 눈물이 뚝, 떨어진다. 동시에 지한의 눈가도 찡그려졌다. 소리 없이 궤적을 그린 눈물방울들이 흰 뺨을 타고 느리게, 느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와중에도 그는 지한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형이 좋아….”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하나 애절한 어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한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뭐 때문에 이렇게 자신을 좋다고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제정신이 아니니 헛소리일 뿐일 것이다. 그의 의중을 하나하나 다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

“그러니까…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김신우의 턱 끝에 맺힌 눈물이 지한의 손등 위로 툭, 떨어졌다. 붉게 물든 눈가가 코앞에 있었다. 고요했던 수면 위로 잔잔한 파동이 일렁인다. 지한은 가슴이 뭉근하게 옥죄여 오는 것을 느꼈다. 묵직하다. 무언가 가슴 위를 꽉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자다 일어나 돌연 그와 마주친 지 겨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인격이 어떠한 타입인지는 짧은 시간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제 감정을 막힘없이 표현하고 드러내는 그를 보며 지한은 선명한 감정을 느꼈다.

불쌍했다.

불쌍하다. 평소 김신우의 성정을 알았기에 더 그랬다. 불우했던 과거를 분리하지 못한 채 아직까지 그 자리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아….”

지한은 긴 숨을 내쉬었다. 힘줄이 툭 불거진 손등 위에 떨어진 눈물이 주르르 미끄러진다. 그는 연이어 제 손등 위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착잡한 마음에 입 안 여린 살을 살짝 씹었다.

우선은…. 해가 뜨면 한정원과 이야기를 한 뒤, 치료 방법을 찾아보자고 박 대표에게 말해 봐야….

“형….”

김신우가 조심스레 지한의 턱을 감싸 쥐었다. 자연스레 비스듬히 턱이 들렸다. 지한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더 가까워질 거리도 없는데, 또, 이렇게.

“…….”

입술이 맞닿았다. 그대로 깊게 맞물리자, 달큰한 향과 함께 뜨거운 숨결이 흘러 들어왔다.

키스는 아주 느리게 이어졌다. 턱을 쥔 손에 살며시 힘을 주자 지한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리고 마치 맛을 보듯, 뜨거운 혀가 입술 사이를 쓸어내리며 조심스레 밀고 들어왔다.

간밤에 꿨던 꿈 속 저돌적인 입맞춤과는 다른, 부드럽고 섬세한 키스였다.

놀란 지한은 굳은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찬찬히 시선을 내리니 곡선으로 뻗은 김신우의 속눈썹이 보인다. 당혹스럽게도 벌써 몇 번이나 겪어 본 일처럼 기시감이 느껴졌다.

“음….”

낮은 울림과 함께 추웁, 말랑한 것이 입술 전체를 뒤덮었다. 지한의 입술이 온통 미끈한 타액에 젖어 질척해졌다.

뒷목을 타고 느리게 올라온 김신우의 손바닥이 지한의 뒤 머리칼을 가볍게 쥐었다. 여전히 입술을 맞댄 채, 그가 미세한 틈 사이로 속살거렸다.

“하아. 형. 안이 따뜻해요.”

말을 하면서도 그는 축축하게 젖은 입술을 물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지한은 그대로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외설스런 숨소리와 질척한 감촉에 돌풍과도 같은 충격이 밀려왔다.

“좋아요. 너무….”

그대로 스르륵 어깨를 꽉 끌어안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지한이 흠칫 그의 어깨를 밀었다. 하나 밀어내기가 무섭게 다시 맞붙은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몸을 감싸 안은 두툼한 팔은 더 단단히 지한을 조여 왔다.

“음… 읍.”

왜인지 혓바닥 아래를 문지르는 혀의 놀림이 다소 어색했다. 그러나 빈틈없이 입 안 구석구석을 핥고 문지르며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지한이 힘을 주어 그를 밀어냈다. 그러나 묵직한 상체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전에 겪어 봤던 것과 같았다.

끝내 그대로 또 몸이 뒤로 기울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파 위로 드러눕게 되었다.

바짝 맞붙은 그의 하반신이 확연하게 부푼 것이 느껴졌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하체를 느리게 문지르는 행위에, 아래에서 꿈틀대던 지한이 다소 거칠게 그를 떼어냈다.

춥, 소리와 함께 겨우 약간의 틈이 벌어졌다.

“왜 그래요. 싫어요?”

김신우가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멀리 나가떨어지길 바랐으나, 의도한 대로 되지 않자 지한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김신우 씨. 이러지 마세요. 저는….”

“형도 내가, 오갈 곳 없는 고아 출신이라서.”

느닷없는 말에 멈칫, 하던 말을 삼켰다. 말문이 막힌 지한은 눈썹을 치켜뜬 채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내가, 정신 이상자에 불쌍한 놈이라 싫은 거예요…?”

일렁이는 눈망울로 옅은 숨을 흘린다. 마치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다. 이윽고 그의 입술 사이로 울먹이는 목소리가 쥐어짜듯 새어 나왔다.

“나… 처음이에요.”

“…….”

“형이 내 첫 키스라고요.”

나직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멈춰있던 지한의 머릿속이 또다시 삐걱삐걱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첫 키스 가져가 놓고, 모른 척 버리려는 거예요…?”

얼어붙은 채 바라본 얼굴이 가련하기도 하다. 지한은 일순 어린 상대의 처음을 빼앗아가 놓고 모른 척하는 파렴치한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남자는 배우, 패션모델, 신인 아이돌까지 온갖 연예인들과 스캔들을 일으켰던 김신우였다. 어디 가냐는 말에 섹스하러 간다며 단호하게 답하던 문란한 남자가, 바로 이 사람이었다.

“설마… 그런 사람 아니죠?”

그러니까,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형이 이제 저 책임져야 돼요.”

도대체 이 사람을….

“대답해 줘요. 나 무섭게 하지 말아요.”

도대체….

멀거니 그를 보는데 드센 손길에 손목이 잡혔다. 지한은 그제야 정신이 번뜩 드는 듯했다.

찡그린 채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김신우가 팔을 뻗어 지한을 확 끌어안았다. 코끝으로 또 포근한 향이 흘러들었다. 평소 그와는 퍽 어울리지 않는 달큼한 향이었다.

“형도 내가 좋으니까 키스한 거잖아요.”

당혹스러운 지한이 저항 없이 있었음에도, 김신우는 그를 안은 팔에 거듭 힘을 주었다.

“아니, 좋다고는 안 해도 되니까…. 싫어하지만 마요, 네?”

애절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말문이 막힌 지한이 침묵을 지키는 사이, 김신우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돌연 찌릿함과 함께 따끔한 고통이 찾아왔다.

“윽…. 자, 잠깐.”

쪽, 쪼옥. 그는 강한 압력으로 지한의 목선을 따라 깨물고 빨며, 혀끝으로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지한은 반사적으로 턱을 꽉 물었다. 야릇한 감각에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붙들어 떼어냈다.

그러나 그는 쉽사리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한보다 체격도 크고 늘 운동까지 챙기는 김신우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적당한 힘으로 대해서는 상대하기 어려운 타입이란 것이었다.

생각하는 사이 그가 지한의 검정 티셔츠를 죽, 위로 밀어냈다. 삽시간에 하얀 복부가 훤하게 드러났다. 지한의 위에 자연스레 올라탄 그는 말릴 새도 없이 불그스름한 유두를 머금었다.

“읏.”

갑작스런 쾌감에 지한의 복근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하얀 아랫배 위로 단단한 잔근육들이 더 극명한 윤곽을 드러냈다. 와락 눈썹을 찌푸린 그는 김신우의 어깨를 아프도록 움켜쥐었다.

“하아, 형. 기분, 좋게 해 줄게요.”

할짝, 솟아오른 돌기를 혀로 핥으며 젖은 숨을 내뱉는다. 혓바닥으로 유두 위를 넓게 문지르자, 찌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따라 피어올랐다.

혼란한 와중에도 지한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무릎으로 복부를 가격하거나 명치에 주먹을 세게 꽂아 넣으면 잠깐이라도 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이 선 지한의 표정이 차츰 딱딱하게 굳어갔다. 꽉 다문 입매 옆, 날카로운 턱선 위로 굳은 심줄이 섰다.

하나 진심으로 그를 폭행했다가 정말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지금 김신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환자란 소리였다. 아마 원래의 그로 돌아온다면 기억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아니지…. 기억 못 하면, 더 때려도 되는 건가.

춥, 츠읍. 쭙….

생각하는 사이 또 외설스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신우는 마치 뭐라도 뽑아낼 듯한 기세로 지한의 유두를 거칠게 쭉쭉 빨아댔다. 그 정신없는 혀 놀림에 따라 지한의 단단한 몸이 발작하듯 움칠거렸다.

“아, 으….”

지한이 다른 사람에 의해 성적 쾌감을 느껴 본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20대 초반, 제 정체성을 모르고 한정원에 대한 마음을 뒤늦게 자각한 이후로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았다.

김신우에 대한 감정을 떠나, 묵혀있던 원초적인 본능이 전신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묵직한 아랫배 또한 금세 뻐근해졌다.

“좋아요?”

나긋하게 묻는 얼굴이 부드럽게 휘어져 있다. 그는 마치 연인을 대하듯 다정한 눈빛으로 지한을 보고 있었다.

“아니, 이것 좀…!”

지한은 다시 한번 몸을 버둥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두꺼운 흉통에 완전히 눌려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나도…. 하, 좋아요.”

그는 금세 다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쪽쪽거렸다. 질척하고 음란한 소리와 함께 김신우가 지한의 트레이닝 바지를 홱 벗겨 내렸다. 말릴 새도 없이 휑해져 버린 하체엔 딱 붙는 검은 드로즈 하나만 달랑 남았다.

흥분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난 지한의 좆이 불룩한 윤곽을 내보였다. 당황한 허벅지 근육에도 바짝 힘이 들어갔다.

“잠, 김신우 씨. 뭐 하는.”

드로즈 끝에 검지를 건 김신우가 말릴 새도 없이 그것을 훅 끌어 내렸다. 동시에 딱딱하게 기립한 지한의 성기가 퉁, 제 크기를 드러냈다. 두 손으로 그의 치골을 꽉 붙든 김신우는 단번에 기다란 좆을 입 안에 머금었다.

“흐읏, 아!”

뜨거운 점막이 지한의 좆을 척척하게 조여 왔다. 발기한 좆은 단숨에 삼키기엔 버거울 크기였으나, 김신우는 살짝 눈가만 찌푸릴 뿐 목구멍까지 열어 입술을 꽉 다물었다.

하얀 둔부에 바짝 골이 패였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상체를 반쯤 들어 올린 지한이 반사적으로 김신우의 머리칼을 꽉 움켜쥐었다. 넓은 어깨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머리통을 양손으로 쥐고 떼어낸다. 그러나 온몸에 철근 덩어리를 덧대기라도 했는지 움직일 생각도 않았다.

춥, 쯥, 츠읍. 바지런히 우물거리는 입술이 지한의 좆을 쉼 없이 빨아 삼켰다. 그가 뾰족하게 세운 혀를 귀두 끝 구멍에 쑤셔 넣을 때 지한은 수치심과 함께 미칠 듯한 쾌감을 느꼈다.

“아, 씹. 으윽…!”

저도 모르게 욕을 중얼거리며 입술을 콱 깨문다. 잔뜩 찡그린 지한이 제 가랑이에 코를 파묻은 김신우의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 그는 여전히 홀쭉해진 볼로 게걸스레 좆을 빨아대고 있었다.

핏줄이 불거진 붉은 성기의 표면을 따라 타액이 질질 흘러내렸다. 엄청난 압력에 생경한 쾌감이 솟구쳤다. 그러니 지한 또한 당연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는 거의 반 체념 상태였다.

“큿, 하…. 윽.”

강력하고 낯선 쾌감이 전신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가 김신우의 머리칼을 꽉 쥐곤 턱을 뒤로 젖혔다. 날카로운 턱선이 도드라지며 관자놀이가 툭 불거졌다. 한 번씩 드세게 빨아 당길 때마다 저도 모르게 무릎이 펄떡 펄떡 위로 튕겼다.

“아, 헉, 빼세, 요.”

신음 같은 말에 김신우가 벌겋게 물든 눈을 들었다. 그는 흥분으로 잔뜩 달아오른 지한의 얼굴을 주시했다. 단정하고 금욕적인 얼굴이 쾌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 으, 빼, 라고…!!”

지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당연하게도 평소보다 훨씬 빠른 사정감이 올라왔다. 꽉 다문 잇새에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몸을 버둥거려 봤으나 아니나 다를까 김신우는 철탑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로 쌀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발작하듯 들썩이자, 두툼한 귀두 끝이 의도치 않게 김신우의 목구멍을 콱콱 찔러댔다. 숨구멍이 막힌 김신우는 어깨를 움칠거리면서도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외려 손을 뻗어 지한의 유두를 꼬집고 비틀어가며 제가 할 수 있는 쾌감을 주기 위해 최선으로 노력했다.

“하아, 으흑…!”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한계까지 치달은 사정감에 지한은 툭, 이성의 끈을 놓았다. 지독한 절정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귀두 끝에서 울컥울컥 정액이 사출되기 시작했다. 불뚝 선 허벅지 안쪽이 바르르 떨렸다. 그러나 여전히 입술을 물리지 않은 김신우는 그것을 마치 뽑아내듯 빨아 먹고 있었다.

“하아, 흣….”

마지막 한 방울이 나올 때까지는 제법 느린 시간이 흘렀다. 지난번 그의 앞에서 자위한 이후로 하지 않았으니, 꽤 오래간만의 사정이었다.

소파 위에 다리를 벌리고 늘어지게 누운 지한은, 자포자기한 채 이마 위로 손등을 툭 얹었다. 탈력감이 잦아들자 넋이 나간 기분이 들었다.

“나 잘했어요?”

씨발….

지한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평소에 잘 쓰지도 않는 쌍욕들을 머릿속으로 곱씹었다. 마치 강간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럼 뽀뽀해 줘요.”

손등으로 입가를 슥 훔친 김신우가 재빠르게 지한의 위로 올라왔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지한의 입술 위로 김신우의 말랑한 뺨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셀프 뽀뽀를 마친 그가 지한의 다리 아래로 가서 앉았다.

지한은 헛숨을 내뱉었다. 수치심도 잊고 아래를 추스를 생각도 없이 널브러진 채,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나른한 몸도 몸이지만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은 탓이었다.

아… 이게 무슨 미친 짓이지.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꾹 지압하니 새카매진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별 탈 없이 돌아가던 세상이 팝콘 기계 속 옥수수 알갱이들처럼 이리저리 튀어 나가고 있었다. 전부 김신우를 만난 이후 벌어진 일들이었다.

망할. 아무리 강제로 아래를 빨렸다고 한들, 제정신이 아닌 사람과 이러는 건 찝찝할 수밖에 없는….

“하아…. 형.”

생각에 잠겨 있던 지한은 불현듯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에 눈을 떴다.

젖은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한 예감으로 손등을 느리게 치우고 아래를 보자, 제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은 김신우의 얼굴이 보였다.

“…….”

살갗이 문질리는 익숙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예의 그 커다랗고 붉은 좆을 손바닥으로 감싸 쥔 채 흔들어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뺨을 하고서, 일렁이는 눈빛으로 지한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고서.

“좋아요…. 야해, 하아.”

귀두 끝에서 흘러나온 액 탓에 질척이는 소리가 점점 짙어졌다. 예쁘게 뻗은 속눈썹 끝이 살짝 젖어 있었다.

“형은, 읏. 왜, 털도 야해요?”

지한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으로 지한을 핥았다. 끈적끈적하고 진득한 눈길이 지한의 뺨과 입술을, 그리고 적나라하게 늘어진 좆을 스쳤다.

…미친놈.

지한은 말 그대로 굳어 버렸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소리를 칠 수도 없었다. 욕이 아니라 지금 지한에게 그는 정말로 정신 이상자로 보였다.

노곤하게 늘어진 몸과 바짝 굳은 얼굴로 그를 내려다본다. 불현듯 목을 울리며 낮게 앓는 신음에 다시 느리게 눈을 감았다.

현실성 없는 모든 일이 마치 꿈같았다. 아니, 분명 이 또한 꿈이어야만 했다.

***

지한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옷을 추슬렀다. 온몸의 관절이 퇴화해 삐걱거리는 듯했다.

하….

지한은 머리를 비운 채 느릿느릿 드로즈를 끼워 입었다. 딱 달라붙는 검정 팬츠 아래로 쭉 뻗은 다리가 조화로운 근육과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했다. 탄탄하게 힙업 된 동그란 엉덩이는 유독 눈길을 끌었다. 웬만큼 운동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몸매였다.

그는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떨어진 트레이닝 바지를 주워 입다 말고 슬쩍 시선을 드니, 쿠션을 끌어안은 채 물끄러미 저를 보고 있는 김신우가 보였다.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김신우씨.”

“네.”

낮은 목소리로 부르자, 제 말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있던 듯 퍼뜩 답이 돌아왔다. 윤기 나는 갈색 머리칼 위, 세모로 접힌 귀가 달려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좀 주무세요. 오늘 휴무니까…. 푹 주무셔도 됩니다.”

지한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빨리 그를 재우고 혼곤한 머릿속을 정리해야 했다. 지금은 저 또한 제정신이 아니었다.

새벽 4시에 자다 말고 일어나 뜬금없이 아래까지 빨렸다. 그와는 벌써 몇 번째 빨아 주고 빨렸다. 무슨 기브 앤 테이크도 아니고 그걸 주거니 받거니 했다. 다른 인격까지 저 모양인 걸 보니 분명 뼛속 가득 변태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만행에 아래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싹 빨린 기분이었다.

“싫어요.”

단호하게 돌아온 어조에 지한이 눈을 들었다. 그는 그저 눈을 뜬 것이었지만, 김신우의 시야엔 더없이 날카롭고 냉랭한 얼굴로 비춰졌다. 혹여 제 반항에 화가 났을까 입을 꾹 다물었다가 뗀 김신우가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안고 있는 쿠션을 더 꽉 끌어안는다.

“안 잘래요. 자면 나 다시 못 만날지도 몰라요.”

“…….”

“기약도 없어.”

덧붙여 혼잣말하듯 작게 중얼거린다.

아…. 지한은 낮게 침음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잠을 자고 일어날 때만 바뀌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 머릿속에 한정원의 말과 이사 첫날 만남이 떠올랐다.

지한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오늘이야 당장 이틀이나 휴무를 받았으니 상관없겠지만, 계속 이런 상태라면 배우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텐데 여태까진 어떻게 지내 온 거지….

“그래도 며칠 계속 못 주무셔서 피곤하실 텐데요.”

나름 달래는 어조로 말을 건네며, 소파 위에 다시 살짝 걸터앉았다. 최근 그는 연이은 밤샘 촬영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수면 부족은 곧 건강과 직결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어쩌면 잠을 자지 못해서 머리가 회까닥 돌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스쳤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지한은 턱을 비스듬히 들곤 말없이 그를 주시했다. 인상을 찌푸린 김신우가 벌떡 일어났다.

“싫어. 싫어요.”

인상을 찌푸린 김신우가 벌떡 일어났다. 훌쩍 커진 커다란 풍채가 느리게 걸어온다. 그는 또 지한을 꽉 끌어안으며 털썩 붙어 앉았다.

“재우려고 하지 마요.”

그가 지한의 어깨에 코를 묻고는 느리게 비비적거렸다. 진드기처럼 들러붙은 것이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미동 없이 앉아 있던 지한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몇 시간뿐이었으나, 어르고 달래야 하는 게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잠들면 맨날 악몽만 꿔서 자기 싫어요.”

돌연 나직한 목소리가 흘렀다. 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느닷없는 심각한 분위기에 지한이 입을 다물었다. 불현듯 정적이 흘렀다.

“어릴 때….”

“…….”

“형을 죽였어요.”

그는 고백하듯 중얼거렸다. 급작스런 토로에 지한의 어깨가 빳빳이 굳었다.

“아빠도, 모르는 여자도 내가 죽였어.”

읊조리는 음색은 애달팠다.

한정원에게 한 번 들은 적 있는 이야기였다. 지한은 그것이 단순한 사고였던 것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으나, 구태여 답하지 않고 묵묵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나도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그런 꿈을 꿔 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한 번도 못 꿨어요. 왜냐면 나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죽여 놓고…. 감옥도 안 갔으니까, 꿈에서도 행복하면 안 되니까. 나 같은 건 평생 벌 받아야 하니까.”

속삭이는 목소리는 음울했다. 지한은 목이 바싹 말라 옴을 느꼈다. 점점 작아지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괜스레 숨을 죽였다. 저를 끌어안은 채 제 과거를 끄집어내는 이 남자가 김신우라는 것 또한 현실 같지 않았다.

“언제쯤 맘 편히 잠들 수 있을까요.”

“…….”

“무서워요. 차라리 아무 꿈도 꾸지 않으면 좋을 텐데…. 나 같은 건 평생 바랄 수 없는 일 일 거에요, 죽을 때까지 지금처럼 벌 받아야 하겠죠….”

그는 울고 있지 않았으나 푹 젖어 있었다. 바닥으로 끝없이 내려앉는 듯한 우울함이 지한에게까지 전해졌다.

지한은 답 없이 낮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았다. 마치 산소가 모자란 방 안에 갇힌 듯,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불현듯 피어오른 새붉은 동정심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그는 저도 모르게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가만히 멈춰있던 지한은 느리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제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김신우의 머리칼 위를 살며시 덮고는,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벌은 없어요.”

그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이어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끝내 아무 말도 잇지 않았다.

하여 그의 손이 위로를 대신했다. 단단한 손바닥이 부드러운 머리칼 위를 스치듯 쓰다듬는다. 아주 느리게, 손길이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괜찮다는 무언의 표현이었다.

눈앞의 남자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어떤 말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남을 다독이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김신우 또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의 손길을 받았다. 그리고 마치 잠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몸을 웅크렸다.

어느 순간, 턱 아래에서 김신우의 옅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지한은 누구보다도 강인해 보이는 남자를 품에 안은 채, 이토록 조심스레 다루고 있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지금은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어쩐지 심장 아래쯤이 쿡쿡 쑤시는 것 같기도 했다.

괜스레 눈가를 작게 찡그렸다. 그는 문득 손길을 멈추고 갑갑한 숨을 내쉬었다.

“더 쓰다듬어 주세요.”

턱 아래쪽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분 좋아요.”

말하며 제 품 안으로 좀 더 파고든다. 얇은 면 티셔츠 위로 단단한 상체가 빈틈없이 밀착되었다. 김신우의 위로 새카맣던 우울이 걷히고 잔잔한 웃음이 어렸다.

묘한 기류가 흘렀다. 가만히 제 품에 안겨 있는 김신우도, 그런 그를 밀어내지 않는 자신도 모든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지한은 멈추지 않았다. 머리 몇 번 쓰다듬어 주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닐뿐더러, 지금 그는 제가 알던 김신우가 아니었다. 상황이 어떻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라도 이 가련한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것이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은 제법 오래 이어졌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흘러들어오던 커튼 사이로 노랗고 따뜻한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여전히 음소거 된 티브이에서는 이제 파란 화면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잔잔하게 내쉬던 숨소리가 곧 일정한 박자로 흘러나왔다. 자연스레 지한의 허리를 감고 있던 김신우의 팔이 아래로 느슨하게 늘어졌다.

그가 완전히 잠든 것을 깨달은 찰나, 지한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눈썹 끝이 씰룩였다. 손을 물리지 않고 그대로 김신우의 머리칼을 살짝 쥐었다. 지한은 숨을 삼킨 채 눈을 감고는 고개를 살짝 떨궜다.

“미치겠네….”

낮은 목소리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상처로 얼룩진 ‘그’는 떠났을 것이다. 생각하니 심장이 뭉근하게 조여왔다.

벌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그러니까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고 말해 줄 것을.

옅은 후회가 밀려온다. 어쩐지 목이 콱콱 막혔다.

***

김신우는 오래간만에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지 모를 개운함에 가벼운 몸으로 기지개를 켰다. 흘끔 창밖을 보니 해가 쨍쨍하다.

몇 시지.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은 3시를 가리켰다. 분명 어제 약을 먹고 2시쯤 잠든 것 같은데. 평소 서너 시간 자기도 힘들건만, 열두 시간을 넘게 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마 최근에 고된 밤샘 촬영이 여럿 있었으니 몸이 지쳤을지도 모른다.

침대 밑의 실내화를 신고는 습관처럼 책상으로 걸어갔다. 느린 동작으로 서랍을 열자 두툼한 공책 한 권이 드러났다. 식은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김신우는 곧 공책을 꺼내 들고 장을 넘겼다.

감흥 없는 시선으로 책장을 넘기던 김신우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전날 보지 못했던 글자가 적혀 있던 탓이다.

[그런 벌은 없대.]

벌?

저와 달리 감수성이 풍부한 놈은 헛소리를 지껄일 때가 많았다. 글자조차 꼴 보기 싫었으나 유년 시절부터 차근히 이어진 습관은 고쳐지질 않았다.

또 좆같은 영화 따위나 봤겠지.

김신우는 다소 거칠게 공책을 덮었다. 이제 저런 영양가 없는 개소리엔 익숙했다.

시선을 돌리자 한 번 고장이 났던 문고리가 보인다. 저것 또한 분명 멍청한 그놈의 짓이다. 바로 사람을 불러 수리했으나 혹시나 공지한과 마주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신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지한은 아무런 기미가 없었다. 제게 덜미를 잡혀 빌빌 기는 놈이라면 약점을 발견한 순간 거래를 걸어올 것이다.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딱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제 병 탓에 집 안에 사람을 들이는 것은 위험했다. 하나 김신우는 왜인지 아무렴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모든 것이 지루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란 생각과 흥미로운 장난감에 관한 관심이 공존했다. 제 좆까지 빨아 가며 설설 기는 놈이니 한정원 목덜미라도 쥐고 흔들면 그만인 것이다.

확실히 그건 좀 의외긴 했지만.

문고리를 느리게 돌려 열었다. 늘 그렇듯 집 안은 휑하기 그지없었다. 가구를 채워 넣어도, 상시 보일러를 가동해 훈기가 가득한데도 그랬다.

실내화가 대리석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김신우의 눈은 자연히 공지한의 방문으로 향했다. 반쯤 열린 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였다. 빡빡한 스케줄 탓에 근 한 달간 제 옆에만 붙어 있었다. 즉 슬슬 바깥으로 나돌 시간이 됐다는 것이다. 제가 늘어지게 자는 사이 어디 좆질이라도 하러 갔을지도 몰랐다.

거실을 지나 부엌을 둘러보는 김신우의 눈길이 차츰 서늘해졌다. 공지한이 보이지 않았다. 제 심증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건 말건 섹스는 별개였다. 안 그래도 좋다고 지랄 난 연놈들이 많은 데다, 신체 건장하고 반반한 놈이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나 그의 임무는 24시간 경호였다. 자는 사람을 두고 나가서 딴 새끼를 만나다니, 얼마 전 일로 좋게 봐 주려 했더니 하는 짓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하니 짜증이 난다.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아졌다.

확 잘라 버릴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 찰나였다.

“일어나셨어요.”

수건을 목에 건 지한이 땀에 젖은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헬스 기구를 들여놓은 방에서 운동을 하다 나온 듯했다.

“운동했어요?”

우연히 마주친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묻자, 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새카만 흑발이 이마에 붙어 가닥가닥 갈라져 있었다. 땀에 절어 딱 붙은 검정 티셔츠는 넓은 어깨와 날렵한 허리로 완벽한 삼각형을 이뤘다. 평소처럼 무감한 얼굴의 그를 보고 있으니 일렁이던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계속 집에 있었어요?”

“네. 푹 주무셨나 봐요.”

김신우를 힐긋 바라본 지한이 목에 건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런 그를 느리게 훑던 김신우의 시선이 멈췄다. 이내 어처구니없는 듯 헛웃음을 터뜨린다.

“왜 거짓말을 하지.”

딱딱해진 어조에 지한이 눈을 들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눈썹을 치켜뜨자, 금세 굳은 얼굴의 김신우가 보였다.

그는 지한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그의 목덜미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한의 눈길 또한 아래로 찬찬히 향했다. 라운드 티셔츠 아래로 붉고 선명한 자국에 시선이 머문다. 당혹스러움에 돌연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아….”

지한은 굳은 얼굴로 제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흘끗 내려다본 곳엔 누가 봐도 붉은 울혈이 짙게 남아 있었다. 지난 새벽 내내 물고 빨던 김신우 탓이었다. 이런 걸 몸에 남겨 본 적이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벌레에…. 물린 겁니다.”

말하며 손가락으로 목을 만지작거리자, 김신우의 입꼬리가 느리게 올라갔다.

“어떤 벌레가 목도 빨아 줘요?”

그의 눈빛이 싸하게 빛났다. 지한은 흠칫 어깨를 굳혔다. 그제야 제 말실수를 깨닫는다.

이런 문란한 남자가 키스 마크도 구분 못 할 리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당황하는 바람에 통하지도 않을 변명을 했다.

모든 걸 꿰뚫어 보듯, 집요한 시선이 목덜미에 닿았다. 그는 이미 지한의 속을 전부 들여다본 듯했다.

“자는 사이에 집까지 비워 놓고.”

“…….”

“솔직한 줄 알았더니 거짓말 잘하네, 공지한 씨.”

할 말을 잃은 지한의 눈썹 끝이 작게 움직였다.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이 뚝, 흘러내린다. 졸지에 멍청한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최근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김신우의 옆에 항상 붙어 있었다. 당연히 함께 일어나고 같이 집에 귀가했으며, 비슷한 시간에 방으로 들어갔다. 그로선 거짓말한다고 생각할 법도 했다.

“아니, 이건….”

지한은 곤란해졌다. 밑도 끝도 없이 당신이 한 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건 당장 그가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이었고,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까발려졌을 때 어떠한 후폭풍이 닥칠지 몰랐다. 그러니 일단 머리 아픈 일들은 충분한 생각의 정리를 끝낼 때까지 보류해 둬야 했다. 저 성격에 사실대로 말했다간 망상증 환자 취급받고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늘… 생긴 게 아닌데요.”

별것 아니라는 듯 답하며 손등으로 턱 끝에 맺힌 땀을 훔쳤다. 그대로 살짝 눈을 내리깔곤 시선을 사선으로 내렸다. 뭐가 됐든 우선은 인정해야 했다.

돌연 김신우가 하,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미지근하게 식은 시선이 지한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오늘 아니면, 나 몰래 밤마다 밀회라도 즐겨요?”

“그런 거 아닙니다.”

단호한 답에 김신우의 눈매가 가느스름해졌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놈은 아까워서 먹지를 못하니, 이제 다른 놈이랑 붙어먹고 다니는 건가?”

조롱하는 어조는 다분히 악의적이었다. 희미하게 경멸 어린 눈빛에 지한이 눈가를 찌푸렸다. 불쾌한 눈빛에 기분이 저조해진다.

“놈이 아니라 년이에요? 내 사인회에 왔던 여자. 그새 따먹었어요?”

일자로 꾹 다물린 지한의 입술이 점점 단단해졌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은 그저 제 기분을 망치려 드는 것뿐일 거라고. 하나 그것과 별개로 바닥을 치는 제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그러나 억눌러야 했다.

말려들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진작 알아봤지만 공지한 씨 정말 발랑 까졌네요. 아무 데서나 몸 막 굴리는 게.”

김신우의 빈정거림은 계속 이어졌다. 무엇 때문인지 전보다 더 싸해진 표정과 함께였다.

가뜩이나 어젯밤 김신우 때문에 잠들지 못했다. 잠을 청하다 포기하고 머리를 비우기 위해 운동을 택한 차였다. 아파트 바로 앞에 근사한 한강 공원이 있었으나,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그 탓에 그냥 방 안에서 러닝머신을 뛰었다. 그러나 결과는 또 이런 꼴이었다.

지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가 오해하고 있다고 한들, 저렇게까지 사람을 내리눌러야 할 일인가 싶었다.

“좀, 그만하시죠.”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린 지한의 얼굴이 다소 짜증에 차 있었다. 김신우는 여전히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그를 주시했다.

하아…. 긴 숨을 내쉰 지한이 느린 손길로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다물린 입술 사이로 고저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리 비운 적 없고, 밀회 같은 거 안 했습니다. 적어도 김신우 씨 옆에선 떨어진 적 없으니까 근무 태만 지적하실 필요도 없고요.”

반발심이 어린 또렷한 삼백안이 김신우를 똑바로 응시했다. 다소 반항기가 깃든 눈빛에 김신우의 시선이 짙어졌다.

떨어진 적 없다는 걸 보니 상대는 사내 직원일 지도 모른다. 스태프, 아니, 그 경호 나부랭이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촬영장 주변으로 워낙 들러붙는 연놈들이 많은 데다, 공지한이라면 남자, 여자 가리지 않을 테니 선택의 폭도 넓다.

어쩐지 중간에 한 번씩 사라지더라니, 어디 비품실 같은 곳에 처박혀서 쪽쪽대고 있었을 상상을 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시발. 그러라고 퍼 주는 월급이 아니었다.

김신우의 상상의 나래와는 별개로 지한은 이를 악물었다. 정리되지 않은 혼란한 머릿속이 온통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데서나 몸 막 굴린…. 하. 아니.”

문득 말을 멈춘 지한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며 긴 숨을 뱉어냈다. 공과 사를 지키자. 상대하지 말자. 그러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김신우 씨랑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

“당신이 눈 뜨고 있을 땐, 옆에 있을 거니까.”

정적과 함께 둘 사이로 팽팽한 기류가 흐른다. 누구도 먼저 시선을 물리지 않았다. 지한의 무정한 얼굴 위로 일렁이는 감정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굳은 얼굴의 김신우는 눈도 깜빡이지 않는 지한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오묘한 뉘앙스의 말에, 뱉은 이와 받아들이는 이의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다.

눈 뜨고 있을 땐, 옆에 있는다… 라.

속으로 말을 곱씹는다. 지한에게는 당연한 말이었으나, 김신우에게는 아니었다.

급격하게 치닫던 감정이 스물스물 가라앉는다. 턱을 비스듬히 든 김신우는 느리게 팔짱을 꼈다. 고개를 기울이곤 지한을 응시했다.

지한은 피곤한 듯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날카롭고 냉랭한 인상이 찬 기운을 펄펄 뿜고 있었다. 그 모습을 샅샅이 훑는 눈길 속에 흥미의 빛이 스쳤다. 이어 가지런한 입매가 살짝 올라갔다. 실로 재밌는 광경이었다.

화가 났나?

그 모습을 감상하듯 바라보던 김신우의 기다란 눈꼬리가 나붓이 휘어졌다. 제 말 한마디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의 감정을 들춰 보며, 김신우는 다시금 묘한 감정을 느꼈다.

“왜 또 화를 내고 그래요.”

하얀 손가락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은근한 손길이 라운드 넥을 따라 슬쩍 끌어 내린다. 흰 살결 위로 점점이 이어진 붉은 흔적들이 드러났다. 김신우는 검지로 그 울혈 위를 도장 찍듯 누르곤 떼어냈다. 아래로도 죽 이어진 자국에 기분이 더러워지는 걸 느꼈다.

신나게도 물고 빨았나 보지.

아무리 제가 잠들어 있던 시간이라지만 저 몰래 나가 이 짓거리를 하고 왔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지한이 제 집에 있는 이상 그의 24시간은 전부 김신우, 자신의 경호에 써야 했다. 딴 새끼한테 목이나 빨리는 게 아니라.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즐기자고 말하려던 건데.”

속마음과는 달리 옅은 미소를 유지했다. 김신우는 눈치가 있었고, 공지한은 지금 예민했다. 조금 더 건드려 보고 싶었으나 참기로 한다. 그는 제게 아주 재미있는 놈이었으니 목줄은 적당히 풀어주어야 했다.

“나도 좋아하거든.”

“…….”

“섹스.”

우아한 목소리와 상반되는 저렴한 단어에 지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불현듯 지난밤 들었던 익숙한 음성이 귓가를 스친다. 또 다른 김신우의 목소리였다.

‘나… 처음이에요.’

‘형이 내 첫 키스라고요.’

지한은 어처구니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은 누가 했는데.

고개를 슥 저었다. 이렇게 따지면 또 밑도 끝도 없이 빠져들 것이다. 잠들지 못한 지난 새벽처럼 말이다.

“…예, 그런 것 같네요.”

툭, 내뱉고는 걸음을 옮겼다. 등 뒤로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빨리 온몸에 들러붙은 찝찝한 것들을 전부 씻어내야 했다.

***

달칵, 지한은 방문을 닫고 들어왔다. 한차례 개운하게 씻고 나니 그나마 정신이 좀 맑아졌다. 다행히 내일까지는 휴무이기에 아직 남은 시간이 많았다. 어차피 집 안에서 할 일도 없으니 오늘은 조금 일찍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양팔을 교차해 상의를 훌렁 벗으며 거울 앞에 섰다. 벽에 걸린 드라이어를 들고는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혼자 살 때는 대부분 벗고 다니는 게 습관이었으나, 이 집에서까지 그럴 순 없었다. 같이 살면서 가장 불편한 점이었다.

아니지. 가장, 불편한 점은… 따로 있었지만.

불현듯 지난 밤 김신우의 얼굴이 떠오른다. 고요히 안겨 속삭이던 목소리, 툭 건드리면 울어 버릴 듯 처연한 눈망울, 애처롭게 토로하던 목소리까지.

인성은 지나가던 개에게 준 본래의 김신우가 아니라면 어젯밤 김신우는 귀엽게 봐 줄 만한 사람이었다. 아니지, 오히려 조금 귀여웠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거울 속 지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자연스레 이어진 상상에 고개를 푹 떨구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돌연 찾아온 급격한 수치심에 휩싸였다. 제 아래에서 얼굴을 파묻고 게걸스레 빨던 그가 떠오른 탓이다.

“아….”

펠라를 처음 받아 본 것은 아니었으나 성관계는 여자와만 해 봤다. 남자와 무엇을 하는 건 익숙하지도 않았을뿐더러 그가 해 주던 건 빨아들이는 압력부터가 달랐다.

본능적으로 짜릿했던 감각이 떠오른다. 그의 입 안에 사정을 한 것이 불과 반나절 전이었다. 짙은 배덕감과 함께 생리적인 흥분이 따라붙었다.

“하…. 돌겠네.”

일생일대의 혼란이었다. 처음 김신우에게 약점을 잡혔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한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아무래도 무슨 수를 써야 했다. 이대로 가다간 그가 잠들어 있을 때마다 첩보 영화를 찍어야 할지도 몰랐다.

수건을 어깨 위로 걸쳐 놓고는 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들었다. 한정원과의 대화방을 누른 뒤 화면을 터치해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형, 아무래도 김신

|형. 김신우 씨 바로 치료 좀 받아야 할 것 같

|형. 할 말이 있는데, 전화 돼? 한가할 때 전화 주면

쓰다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결국 대화방을 꺼 버렸다. 오랜만에 여자 친구와 한창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 문제는 출근 후에 말을 나눠도 늦지 않다. 그동안 저만 조금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똑똑.

별안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지한이 움칠 고개를 돌리며 티셔츠를 찾아 눈을 돌리는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홀딱 벗고 뭐 해요?”

어느새 멀끔하게 차려입은 김신우가 지한을 응시했다. 답도 듣지 않고 문을 열어대는 것이 하여간 제멋대로였다.

“방금 씻고 오느라…. 무슨 일이세요.”

말대꾸해 봐야 제 손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은 지한이 되물었다. 같은 남자인데 웃통 벗는 것쯤이야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하나 유난히 제 복부쯤과 가슴께를 유심하게 훑는 그의 눈동자가 퍽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몸 좋네.”

“…….”

“나와요. 갈 데 있으니까.”

지한의 몸을 주시하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느닷없는 말에 지한이 눈썹을 치켜떴다.

“어디 가시려고요?”

돌아서려는 그의 등 뒤로 지한이 뒤늦게 되물었다. 공식적인 스케줄은 없었으니 아마 개인 일정일 터였다.

물음에 동작을 멈춘 김신우가 문고리를 잡은 채로 시선을 들었다. 얼굴엔 다소 짜증이 배어있었다.

“왜. 어디 가는지 듣고 골라서 따라 다니려고?”

“아니…….”

“그냥 나오라면 나와요.”

쾅! 답도 듣지 않고 문을 세게 닫았다. 난데없이 열렸다가 닫힌 제 방문을 멀거니 바라보던 지한은 헛숨을 터뜨렸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지랄 맞다. 라는 말은 딱 김신우를 두고 만든 말일 것이다.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던 지한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느릿느릿,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익킹져스 : 익명 썰 커뮤니티]

(ㅍㅇ) 김신우랑 존잘경호원 목격썰 푼다 스압주의 두서없음주의 긴글주의

요즘 핫한 김신우 배우랑 경호오빠 썰 들고왔어ㅋㅋ직접 본건 아니고 울 사촌언니한테 들은 따끈한 얘기임ㅇㅇ(좀있다가 삭제할 예정ㅋㅋ)

울 언니가 갤리어스 백화점 브이아이피 전담팀 퍼스널쇼퍼로 일하거든? 브아피 중에서도 등급이 나뉘는데 김신우가 여기 최상위급 VVIP라함 돈이 ㅈㄴ많나봐 뭐당연히많겠지만ㅋㅋ

언니가 김신우 찐찐팬이야 아역데뷔때부터 지켜보다가 시선의끝 드라마 연하남주로 떴을때부터? 좋아했어ㅋㅋㅋ(직업 만족도 최상이라는 tmi..)

전에는 김신우 와도 대충 신상이나 잘나가는거 싹다 달라하고 금방 쓸어가서;;; 몇번 마주칠일은 없었다는데 오늘 라운지 쇼퍼룸에 김신우가 그 경호원을 데리고 왔다는거? 이름아는 킹이있냐 난 몰라 이거쓰고 찾아볼거임

암튼 언니가 퇴근하자마자 바로 전화와서 그 경호원 실제로보니까 진짜 입벌어질정도로 조오오온나 개잘생겼다고 난리를 치더라;;;; 인상이 쎄한데 분위기가 졸라 고급지다함 뭐라 말로 표현할수가 없다고 소리를 막지르는거야 김신우는 뭐 말할것도 없고ㅋ

처음엔 슈트차림 아니고 청바지에 흰티셔츠 검정 점퍼?? 이런거 입고 있어서 몰랐다는데 영상보다 훨씬 실물이 낫대, 그냥 모델인줄 알았다는데ㄷㄷ나랑 내친구는 짤만 보고도 존나 좋아했었는뎈ㅋㅋㅋㅋㅋ김신우 옆에 있는데도 안꿀린다니까 말다했지

근데 얘기는 지금부터임ㅋㅋ언니 진짜 좋아죽겟는데 표정관리 존나 하면서 서잇는데 김신우가 자기께 아니라 그 잘생긴 경호원껄 사주러왔다는거야ㅋㅋㅋㅋ얼마전에 그 음주 미친놈사건 때 안그래도 난리엿자나ㄷㄷㄷ

고마워서 사주는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시계를 몇천만원 짜릴 그냥 주문해 주더래 자기 때문에 고장났지 않냐고 사르르 웃으면서ㅠㅠㅠ심지어 모델도 자기가 미리 잘 어울릴만한걸로 골라놓고 왔다함 개쩔지 않냐 ㅅㅂ드라마야뭐야

아ㅋㅋ근데킬포는여기부터임ㅋㅋㅋ그 경호원이 시계 보면서 표정 개굳어지더니 안 받겠다고 했다는거ㅋㅋㅋ너무 비싸다고ㅋㅋㅋ분위기 갑자기 존나 싸해지고 직원들 좀 당황하고 그랬대ㅋㅋㅋㅋ

김신우 원래 약간 찐팬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성격 드럽다는 말 있었잖아??? 언니가 존나오래덕질해서 아는데 김신우 진짜 화났을때 눈끝?? 눈꼬리??를 살짝 찡그리는 버릇있는걸 아는데ㅋㅋ경호원이 존나 단호하게 고개저으니까 좀 빡친것같더니 금세 또웃으면서 어깨동무 하고 주무르고 난리가 났다는거ㅋㅋ잘어울리니까 지금 팔에 채워보라고 하면서ㅋㅋㅋㅅㅂㅋㅋㅋㅠㅠㅠㅠ들으면서 나도 존나 마빡때렸음 진짜ㅋㅋㅋ큐ㅠㅠㅠㅠㅠ미친

그러더니 온김에 또 정장한벌 더 맞춰주겠다고 시계에 어울리는거ㅋㅋㅋ피팅룸에 집어넣었대ㅋㅋ그러면서 지들끼리 속닥거리는데 김신우 혼자 무릎 어쩌고 그런 얘기했는데 자세히는 못듣고...어쨋든 그때부터 김신우는 소파에 앉아잇고 경호원은 표정관리 안되고 무슨 인형옷 입혀보듯 하나씩 입고 벗고 나오는데 나올때마다 감탄이 다 나오더래ㅋㅋ너무 잘생겨서ㅋ

근데 뭔가 하나씩 김신우 마음에 안들었나봐??? 자꾸 다른거 입어보라 시키니까(무슨 신부 웨딩드레스 봐주는줄 알았다함ㅋㅋㅋㅋㅋ)그 경호원이 표정 굳어서는 더안입겠다고 거절하니까 바로 손목을 잡고 탈의실로 끌고 들어갔다는거? 그리고 한참을 속닥거리면서 안나왔대ㅋㅋㅋㅋㅅㅂ박력뭐냐고ㅋㅋ존나친한건가??? 언니는 너무 서스럼없어보여서 원래실친인가 했다는데ㅋㅋ

암튼 결론은 계산하고 나간 옷시계 가격이 합쳐서 억소리낫다함ㄷㄷ; 김신우 고집도 고집이지만 그 경호원도 한뚝심하는지 나갈때까지 표정 계속 굳어 있었다더라ㅋㅋㅋㅋㅋ나같으면 좋아서 입찢어졌을듯ㅋㅋㅋㅋ언니가 그사람 얼굴이랑 성격 넘 찰떡이라 더 맘에 들었다구 자기도 팬할거래ㅋㅋㅋㅋㅋ울언니 맨날 슈스들만 보고 살아서 눈도 진짜 높은데 앵간한 배우들보다 훨~~씬 낫다함; 존나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썰끝

/// 언제 펑할지모름ㅂㅂ

[댓글153개]

└와ㅅㅂ읽다가 좋아서 기절할뻔함;;;;

└주작아님?뭔 경호원한테 억소리나게 사줘 지점어딘데?

└└ 주작같으면 그냥읽고 넘겨라 백화점 브아피 쇼퍼라는데 뭘물어봐

└시발 행복해라

└와;;;둘이 진짜ㅈㄴ친한가보다 김신우 주변에 업계 관련 친한 배우없지않나

└└잇긴잇음 김뚠뚠이랑 친함

└└└그건 그냥 김뚠뚠이 친한척 하는거아님?

└└└└왜 여기서 김뚠뚠 후려치기야; 친한척 하는건지 친한건지 어케아냐 글 잘읽다 짜증나네

└나 하루만 너네 사촌언니 시켜줘...부럽다.......

└저 경호원 이름 공지한임 팬카도잇어 이미ㅋㅋ내혈육 김신우 팬싸갓다가 봣는데 존나 잘생기고 벌써 팬들이 선물 주고 사진도 엄청 찍는다함 얼굴은 무심해보이는데 은근 다정하다더라 매니저도 엄청챙겨준대ㅠ이거 보니까 실물 궁금하긴 하다 영상은 존나 돌려봤음

└└└ㅇㅇ근데 김신우 요즘 보호 개쩔긴하나봐; 언니가 짐 많아서 들어주는 척 직원이랑 발렛까지 따라갔는데 주변에 어슬렁거리면서 기다리던 사람이 김신우 차 나오자마자 바로 따라갔다 함

└헐ㅋ스토커 때문에 엄청 쫄리나본데ㅠㅠ좀불쌍;

└└경호가 아니라 사생아님?

└└└몰겟어 암튼 그냥 나오자마자 티나게 따라가는거 보였대ㅋㅋ오분 뒤에 펑한다

***

“뭐, 하시는 겁니까.”

지한이 인상을 찡그렸다. 다짜고짜 손목을 붙들린 채 피팅룸 안으로 끌려 들어온 참이었다. 김신우는 손에 들고 있는 블루 셔츠를 내밀며 고개를 까닥였다.

“입 다물고 그냥 입어요.”

“…….”

“벗겨서 입혀 줘?”

나직이 묻는 소리에 지한이 문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밖에서 이런 인성질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아. 짧은 숨을 내쉰 지한이 셔츠를 툭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벌써 몇 개의 똑같은 재킷과 바지를 갈아입었다. 대부분 말끔한 검정 옷들만 대충 걸쳐 입는 지한의 눈엔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였다.

셔츠도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흰색, 파란색 색상만 다를 뿐 다 똑같아 보이는 옷이건만 몇 번을 귀찮게 하는 건지 심기가 불편했다. 헉 소리 나는 가격도 가격일뿐더러, 다짜고짜 제게 옷과 시계 등을 사 주는 행위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깨져서 고장 난 시계는 고작 몇만 원짜리였다.

김신우는 퍼스널 라운지에서 쇼핑하는 주제에,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사 주는 거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이런 걸 사 주고 또 무슨 소리를 할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 진짜 말 좆같이 안 듣네.”

잠시 망설이는 찰나 김신우의 손이 불쑥 뻗어 왔다. 그대로 지한이 입고 있는 셔츠 단추를 툭, 툭. 끌어 내린다. 주름 하나 없는 흰 셔츠 아래로 대비되는 붉은 울혈이 드러났다. 그의 눈가가 짐짓 찌푸려졌으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능숙한 손놀림은 잠깐 방심한 새에 배꼽까지 내려왔다. 그제야 지한은 그의 손목을 탁 움켜쥐었다. 적막한 피팅룸 안에서 둘의 시선이 얽혔다. 벽면에 커다랗게 붙은 전신 거울은 셔츠 사이로 드러난 자잘한 잔 근육을 적나라하게 비췄다.

“제가 할게요.”

미간을 살짝 모은 지한이 낮게 속삭였다. 바깥에 소리가 샐까 걱정이 된 탓이다. 김신우가 손을 물리자 지한이 마저 셔츠 단추를 풀어냈다.

그의 시선이 지한의 단단한 가슴 근육에 머무르다, 곧게 뻗은 빗장뼈와 툭 불거진 목젖을 따라 올라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둥그런 가슴께가 부풀어 오르고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입고 있던 셔츠를 스르륵 벗자 굴곡진 어깨선이 드러났다. 제 몸을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입고 있던 것을 벽에 걸고는 새 셔츠에 팔을 끼워 입었다. 이제 그의 앞에서 헐벗은 몸을 내보이는 것은 별일도 아니었다.

“이제 됐습니까?”

목 끝까지 셔츠 단추를 꼼꼼하게 채운 지한이 김신우를 응시했다. 살짝 톤다운 된 블루칼라가 지한의 하얀 얼굴과 퍽 잘 어울렸다. 잘 가꾼 몸매에 착 붙는 핏 또한 만족스러웠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던 김신우는 돌연 등을 홱 돌리곤 말없이 피팅룸을 나갔다. 밖에선 “저걸로 주시겠어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한은 다시 단추를 끌어 내리며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발렛 주차장에서 차 키를 건네받은 지한은 김신우의 페라리에 올라타며 한 번 더 망설였다. 운전 실력이 미숙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운전이란 게 본인만 잘한다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제게 차 키를 넘기는 김신우의 행동에, 터무니없이 비싼 차를 끌다 어디 긁기라도 할까 조바심이 났다. 심지어 그는 이런 류의 비싼 외제 차를 네 대나 더 갖고 있었다.

“운전도 안 하면서 차는 왜 다섯 대씩이나 사서….”

핸들을 돌리며 지한은 생각했다. 혼잣말이었으나 고요한 중얼거림이 차내에 퍼졌다. 김신우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작은 헛웃음을 터뜨린다.

“이제 아주 막 나가기로 작정했어요?”

“…아닙니다. 벨트 매세요.”

지한이 시선을 내리깔며 시동을 걸었다. 이어 부아앙, 엔진 소리와 함께 새빨간 페라리가 미끄러져 나갔다.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 그 위로 검정 항공 점퍼를 걸친 지한은 까만 머리칼과 날카로운 인상 탓에 새빨간 스포츠카와 제법 잘 어울렸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는 도로는 한산했다. 핸들을 돌리던 지한은 라디오도, 노래도 틀지 않았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시계는 환불 해 주세요.”

묵묵히 핸들을 돌리던 지한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가지고 온 옷은 몰라도 시계는 아직 주문만 한 뒤 갖고 오지 않았으니 환불 처리가 가능할 터였다.

“너무 비쌉니다. 저런 건 부담스러워서 잘 차고 다니지도 못해요.”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가며 흘길 때마다 무심한 시선이 김신우 쪽으로 스쳤다.

주는 의도를 떠나 가격이 문제다. 솔직히 비싸도 너무 비쌌다. 그런 사치품은 지한에게는 선을 넘은 물건이었다. 하나도 달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김신우 씨. 듣고 계십니까?”

힐끔, 보조석을 바라보자 창밖을 응시하는 김신우가 보였다. 그는 마치 지한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굴었다.

“라운지 물건 환불 기사로 내 이미지 조지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

“싫으면 방에 처박아 두고 고사라도 지내든가.”

그는 지한을 보지도 않은 채 툭, 내뱉었다. 유려한 옆선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에게 돈은 넘쳐났다. 가끔 필요한 것을 편히 사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실적을 채워놔야 했고, 그는 더 사고 싶은 것이 없었다. 때마침 곧 자격 갱신 기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불현듯 병원 대기실에 앉아 깨진 시계를 불쌍하게 보고 있던 공지한이 떠오른 탓이었다.

시계를 사는 김에 싸구려 무릎을 구제해 줄 정장 한 벌을 더 사 줬다. 그래도 비싼 옷 입으면 조금은 덜 저렴하게 굴겠지 싶은 생각이었다. 명색이 제 전담 경호원인데 더러운 땅바닥에 턱턱 무릎 꿇고 다니며 싼 티 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호한 음색에 지한이 입을 다물었다. 뻥뻥 뚫린 대교를 가로지르며 찝찝한 기분에 휩싸인다. 분에 넘치는 선물이 달갑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빵!! 돌연 뒤에서 들려오는 클랙슨 소리에, 룸미러를 응시하는 지한의 미간이 좁아졌다.

안전운전을 중시하는 그는 2차선으로 느긋하게 달리고 있었으나, 양옆으로 휑하니 뚫린 차선을 두고 굳이 제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는 차가 있었다.

운전 습관은 사람의 본성을 쉽게 드러낸다. 저 정도 미친놈이라면 약간의 기 싸움으로도 시비가 걸릴 수 있었다. 딱히 비켜 줄 이유는 없었으나 주행 중 싸움이 붙는 걸 좋아하지 않는 지한은 깜빡이를 켜고 순순히 차선을 변경해 주었다.

그리고 문득 바라본 룸미러에 다시 제 뒤로 옮긴 검정 차가 보였다. 눈썹을 치켜뜬 찰나, 그 차가 또다시 빵!! 경적을 울려왔다.

뭐야.

지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앞뒤로 뻥 뚫린 평온한 대교 주행 중에 마주할 리 없는 보복 운전의 느낌이 온 탓이다.

혹시 김신우의 팬인가.

워낙 유명인사니 차를 알아보고 인사하나 싶었으나, 거칠게 꼬리로 따라붙는 꼴을 보니 그건 또 아닌 듯했다. 하지만 자신은 백화점에서 나온 이후로 저런 식의 보복성 운전을 당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았다.

지한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그는 다시 왼쪽 2차선으로 차선을 변경했다. 그러자 뒤차가 또 따라붙었다.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챈 김신우가 힐끗 시선을 돌렸다.

“왜 그래요?”

“좀, 이상한 놈이 따라와서요.”

차를 세울까, 하다 괜히 김신우에게 꼬투리라도 잡을까 그만두기로 했다. 유명 연예인은 사소한 가십도 최대한 민감하게 피해야 했다.

미간을 찌푸리고는 다시 3차선으로 차선을 바꿨다. 사이드미러를 힐긋 보자, 이번엔 차선 변경 없이 2차선에서 그대로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포기한 건가. 왜인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일순 부우웅, 살짝 열어 놓은 창문 사이로 액셀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불안한 직감이 스며들었다. 사이드미러로 뒤차가 빠르게 질주하는 것이 보였다. 눈썹을 치켜뜬 지한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삽시간에 속도를 올린 검정 차가 운전석 뒤 범퍼를 강하게 들이받았다.

콰쾅!

강렬한 충격과 함께 새빨간 페라리가 반동으로 튀어 나갔다. 지한은 빠르게 급브레이크를 꽉 밟았다. 상체를 가로지른 안전벨트가 가슴 사이로 콱, 파고들었다. 끼이익!! 찢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와락 일그러진 얼굴의 지한이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김신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이미 힘을 받은 차는 인도로 거칠게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완전히 빙글, 반쯤 돌아갔다.

사고다.

곧 다가올 충격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빠르게 눈동자를 돌리자 앞 유리 앞으로 가드레일이 날아오듯 훌쩍 다가왔다. 굳어 있는 김신우의 얼굴 너머론 짙푸른 한강이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삐삐삐삑! 차 내부의 격렬한 충돌 방지음과 함께 앞 범퍼가 가드레일에 ‘쾅!’ 처박혔다. 몸의 중심이 앞으로 홱 쏠리자 쿵, 충격과 동시에 에어백이 퍼덕퍼덕 폭죽처럼 터졌다. 단 한 번의 충격과 함께 그대로 차체가 멈췄다. 삽시간에 사방이 희뿌연 풍선으로 가득 찼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윽,

지한은 숨을 삼켰다. 브레이크를 꽉 밟고 있는 발이 떨려왔다. 푸쉬쉬.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시퍼런 정적이 이어졌다. 지한은 빠르게 수축하며 쪼그라드는 에어백 위로 파묻혔던 얼굴을 들었다. 전신이 뻐근하게 저렸다.

“…김신우 씨.”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 그는 찌푸린 얼굴로 김신우의 이름을 불렀다. 낮게 갈라진 목소리엔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시큰한 눈꺼풀을 억지로 치뜬다. 어깨 옆에서 가라앉는 중인 에어백 잔여물을 거칠게 걷어냈다.

“김신우 씨!”

고개를 숙인 김신우가 인형처럼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크게 눈에 띄는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안도와 함께 지한은 차게 식은 숨을 들이쉬었다.

“괜, 괜찮으십니까?”

그의 어깨를 잡는 순간, 조수석 창 너머로 넘실거리는 파란 강물이 넓어졌다가 좁아졌다. 흠칫 놀란 지한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삐걱. 어디선가 묵직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차체가 비스듬히 기울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제야 뒷창문 밖으로 노란 안전 테이프와 공사 중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의 충돌로 인해 야트막한 가드레일이 완전히 날아갔다.

지한의 얼굴 위로 짙은 낭패감이 스쳤다.

침착해. 침착하자. 머릿속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위험하다. 보조석 쪽의 하중이 움직이면 바로 추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좁은 스포츠카 안에서 먼저 내린 뒤, 그를 끌어 올릴 만한 시간은 없을 것 같았다.

“김신우 씨, 정신 차리세요. 차가 기울고 있습니다. 추락할지도 모르니 우선 움직이지 마세요.”

대교의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극한 상황의 특수 훈련은 자주 받아 본 데다 수영엔 자신 있었다. 포기하고 함께 떨어지는 게 차라리 나은 선택일 지도 몰랐다. 수십 가지 경우의 수가 단 몇 초 동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일단 벨트를 풀고, 아니. 하. 씨발. 풀지 마세요. 풀지 마시고.”

빠른 어조로 읊조리며 손을 뻗어 오픈 에어링 버튼을 눌렀다. 위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페라리의 뚜껑이 뒤로 걷히기 시작했다.

그제야 김신우가 고개를 들었다. 굳은 얼굴로 상황을 판단하곤 느리게 지한을 올려다본다. 비정상적인 각 탓에 지한의 얼굴 뒤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먼저 내려요. 내릴 수 있잖아.”

김신우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운전석 쪽은 대교 위에 비스듬히 걸쳐 있었다. 그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을 터였다. 하나 혼자 바빠 보이는 지한은 들은 체도 않고 걷혀 가는 차 지붕을 조급히 쳐다보았다. 한기가 서린 시린 바람이 한꺼번에 훅, 뺨을 스치며 들어왔다.

“수영할 줄 아세요?!”

물음에 김신우는 단번에 그의 생각을 읽었다. 개같이 무식한 모험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떨어질 생각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김신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를 꽉 문 채 고함을 쳤다.

“내리라니까. 시발, 차라리 내려서 신고를 해!”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상태를 확인한 지한이 짙은 숨을 내뱉었다.

패닉이 온 듯했다. 저대로 혼자 떨어졌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지금 상황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물속이라면 잠깐의 공황 상태만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생각을 하니 살갗 위로 소름이 돋았다.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지한이 입술을 짓깨물었다. 머리가 미친 듯이 지끈거렸다.

하, 씹. 이럴 땐, 먼저 어떤, 어떻게 해야.

“빨리, 내리라니까!!!”

“안 내릴 거니까 좀 닥쳐요!!!”

가쁜 숨을 뱉은 김신우가 지한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끼이익!! 쇠를 긁는 소리와 함께 중심이 확연하게 기울었다. 곧 떨어진다. 판단을 마친 지한은 그의 팔을 꽉 붙들며 똑바로 눈을 마주했다. 새카만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잘 들어요. 여기 그렇게 안 높아요.”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빠르게 뱉어냈다. 머리 위로는 쓸데없이 따사로운 햇볕과 함께 자비 없는 찬바람이 휭휭 쏟아져 들어왔다. 정돈되지 않은 둘의 머리칼이 사방으로 사정없이 휘날렸다.

“몇 미터 안 돼. 떨어져도 안 죽으니까 겁먹지 마세요. 듣고 있어요? 지금 봐요, 뚜껑 열어 놔서 탈출 쉽습니다. 수영 못 해도 되니까, 떨어지면 벨트 풀고 정신만 차려요. 아니, 벨트 내가 풀어 줄 테니까 정신만 차리고 있어요. 알겠습니까?”

차 내부의 긴급 구조 버튼을 눌러 놨다. GPS 전송이 되었을 테고, 구조대는 금방 올 것이다. 떨어져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었다.

수영을 해야 하니 어디가 부러지지만 않으면 좋을 텐데. 제발 최악의 상황은 면하길 바랐다. 꼭 그래야 했다.

끼익, 그사이 또 쇠를 긁는 소리가 찢어지게 울렸다.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한은 와락 인상을 굳히며 고함쳤다.

“김신우 씨, 대답해요! 정신 똑바로 잡아!!”

동시에 그의 팔을 한 번 더 콱 움켜쥔다. 지한을 노려보는 김신우의 눈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반대로 낯빛은 창백하기만 했다. 순간 차체가 기우뚱, 하고 기울었다. 삽시에 시야가 거꾸로 확 뒤집힌다. 이 모든 것이 단 1, 2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윽!”

추락은 찰나였다. 놀이기구라도 탄 듯 심장이 뚝, 떨어졌다. 짧은 순간에도 지한은 잡은 김신우의 팔뚝을 놓지 않았다. 강의 중심이니 차 무게를 견딜 만큼의 수심은 있을 것이다. 차라리 그의 차가 묵직한 대형 세단이나 에스유브이 따위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철썩! 물소리라기엔 굉음과도 같은 마찰음이 울렸다. 꼬르륵. 물에 잠기는 방울 소리와 함께 얼음장 같은 수온이 전신을 세차게 덮쳤다. 지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드세게 짓누르는 물의 압력이 무거웠다. 새카만 강물 속에서 시큰거리는 눈을 치켜떴다. 어깨가 굳고 손발이 욱신거렸으나 움직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벨트를 빠르게 푼 뒤 김신우를 보았다. 그는 눈을 거의 찡그리듯 감은 채 벨트에 손을 얹고 있었다.

다행히도 정신은 있다. 이대로라면 반 이상은 성공이었다.

단단히 잡고 있던 그의 팔뚝을 신호처럼 두어 번 흔들고는, 내려가 손바닥의 깍지를 꼈다. 들풀처럼 흩날리는 갈색 머리칼 사이 두 눈동자가 지한을 바라보았다.

점점 숨이 차올랐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발끝에 힘을 주어 시트를 밟고 반동으로 튕겨 올라가며 김신우의 팔을 끌어냈다. 그 또한 지한을 따라 차를 빠져나왔다.

발길질할 때마다 허벅지가 아려왔으나 입술을 꽉 깨문 채 꿋꿋하게 두꺼운 물살을 갈랐다.

프하, 거친 숨을 내뱉으며 차가운 공기를 들이켠다. 불현듯 손에 잡은 것을 다시 한번 쥐어 확인했다. 김신우의 손이었다. 고개를 홱 돌리자, 흠뻑 젖은 그의 얼굴이 보였다.

“어디, 다친 곳 없어요?!”

물으며 낯빛을 살핀다. 희게 질린 얼굴의 김신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다 고개를 저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지한은 거친 숨을 내쉬며 주변을 훑었다.

물살이 제법 드세고 빨랐다. 엉겨 붙은 두 남자의 몸이 철썩철썩 흐르는 강물을 따라 아래로 떠밀렸다.

“수영, 후우. 할 줄, 압니까?!”

얼마나 지났지. 구조대가 올 때가 됐을 텐데. 긴급 구조 버튼이 전송되지 않았더라도 도로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고라 누구든 신고를 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시선을 드니 대교 위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아래를 보고 있었다.

“하아. 시발. 그냥 떠 있는 것밖에, 모릅니다.”

“하, 그거면, 돼요. 이리 와요!”

김신우의 등 뒤에서 팔을 뻗어 가슴께 위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푹 젖은 옷감 위로 그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된 것이 느껴졌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교량 아래 기둥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했다. 정신없이 올라왔으나 당장 제 체력도 언제 동날지 몰랐다.

“몸에 힘 풀고, 나한테 기대요.”

고개를 숙이고 귓가에 속삭인다.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살 탓에 아래로 계속 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여전히 김신우는 딱딱하게 경직된 상태였다. 그는 공포에 질려 있는 듯했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힘 풀어요.”

부드럽게 달래는 목소리에 김신우의 몸이 찬찬히 느슨해졌다. 멀리서 어렴풋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좋아요. 지금 저 기둥까지 갈 겁니다. 정신, 잃지 마시고. 추워도 조금만 참으세요.”

김신우가 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끌어안고 있는 단단한 몸의 떨림이 지한에게 확연히 전해졌다. 지한은 허벅지의 근육이 저릿할 만큼 바짝 힘을 주었다.

끝이다. 빨리 끝내자.

드센 물살에 목표까지는 까마득히 멀어 보였으나 일부러 그렇게 되뇌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었다.

이를 아득 깨문 지한이 드센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턱선 위에 힘줄이 서고, 관자놀이가 툭툭 불거졌다. 찌푸린 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굉음 같은 물소리가 첨벙첨벙 퍼지고, 폐가 쑤실 정도로 숨이 찼다. 헐떡거리는 숨을 삼키며 무슨 맛인지도 모를 물을 꿀떡꿀떡 삼켜댔다. 코끝엔 물비린내가 가득했다.

툭 튀어나온 철근 덩어리가 점점 눈앞으로 가까워졌다. 지한은 물속으로 힘차게 발길질하며 몸의 반동으로 튀어 올랐다. 손을 뻗어 삐져나온 철근을 콱 움켜쥔다. 오돌토돌한 감촉과 함께 날카로운 통각이 느껴졌으나,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는 이제 완전히 선명해졌다.

“하아, 하. 김신우 씨! 잠들면 안 됩니다. 구조대 왔으니까 정신 차려요. 추워요?”

그는 고개를 숙여 죽은 듯 미동 없는 김신우를 보았다. 느닷없이 기운을 모조리 쓴 탓에 한쪽 팔에 거의 감각이 없었다. 물 밖에서 철근을 붙든 팔도 잠깐 사이 시리다 못해 딱딱하게 얼어 버린 느낌이었다.

“일어나. 돌아서 나 봐요. 안을 수 있겠어요?”

지한의 팔뚝을 움켜쥔 김신우가 느리게 돌아섰다. 혹시나 놓칠까, 마른침을 삼키며 허벅다리로 그의 몸을 꽉 감쌌다. 강물을 실컷 먹었는데도 목 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온몸의 근육을 한계치까지 쓰고 있었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안고 있어요. 다 끝났어요.”

파래진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김신우가 손을 뻗었다. 지한이 붙든 철근을 꽉 쥐어 잡고는 함께 매달리며 힘을 나눴다. 지한이 남은 팔로 그의 허리를 감자, 그 또한 지한의 등을 감싸 안았다.

“하아. 절대 놓지 말아요.”

그 말에 김신우가 푹 젖은 속눈썹을 느리게 들어 올렸다. 지한의 눈 아래에 물에 젖은 섬세한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의 유려한 얼굴은 청초하기 그지없었다.

둘의 시선이 좁은 틈에서 마주친다. 가쁜 숨을 헐떡이던 지한 또한 저를 바라보는 김신우를 살폈다. 창백하게 질리기는 했으나 아직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머리 위에선 소란스러운 웅성거림과 함께 스피커를 통해 구조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기! 아래입니다!!!”

목을 쭉 빼든 지한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김신우는 가만히 시선을 들어 그의 날렵한 턱선과 불거진 목젖을 보았다. 흠뻑 젖은 새카만 머리칼이 흰 뺨 위로 들러붙어 있다. 날카롭게 치켜떴던 눈동자가 언뜻 느껴지는 시선에 아래를 보았다. 또다시 둘의 눈이 마주쳤다.

온몸을 휘감는 시린 강물과 쉼 없이 철썩거리는 마찰음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교량 밑의 축축한 공기와 보이지 않는 시커먼 발밑이 두려워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김신우에게는 외려 그 사실이 더 공포스레 다가왔다.

세찬 바람에 떠밀린 것들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그것이 드센 물살에 휩쓸리는 몸인지, 또는 불현듯 피어오른 감정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똑, 똑. 링거액이 떨어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렸다. 병원 침상 위에 고요히 눈을 감고 있던 김신우의 눈가가 움칠, 떨렸다. 커튼을 쳐 둔 창가에서 스며든 빛 한 줄기가 고운 얼굴 위로 사선을 그었다.

‘그런 벌은 없어요.’

나직한 목소리에 파르르 떨리던 속눈썹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는 찬찬히 감은 눈을 떴다.

나붓이 뻗은 속눈썹 아래로 초점 없는 밤색 눈동자가 깜박, 눈을 감았다가 뜬다. 머릿속에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형상들이 어지러이 섞여들었다. 관자놀이를 헤집는 지독한 두통에 그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러나 깊은 잠에 빠져들지는 않았다.

꿈과 현실의 어디쯤, 일렁이는 어둠 속에서 또다시 익숙한 소리가 잦아들었다.

왜앵 왜앵, 사이렌 소리와 수군수군 사람들의 웅성거림. 코를 찌르듯 매캐한 연기와 훌쩍이는 흐느낌, 거칠게 철썩거리는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온몸을 휘감는 퍼렇고 까만 시린 물살과 공포, 등 뒤에서 몸을 단단하게 감싸 안아주던 따스한 감촉. 함께 밀려든… 안도.

‘괜찮아, 괜찮으니까.’

물에 잠긴 듯 먹먹한 귓가로 나직한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시린 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듯,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절대 놓지 말아요.’

가슴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훅 솟구쳤다. 거대한 안온과 초조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어울리지 않는 상반 된 감정들이 조금씩 희석되어 흩어지다 다시 뭉쳐지기를 반복했다.

헉. 눈을 뜬 김신우가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대로 자리에서 상체를 홱 일으킨다. 사위는 고요했다. 고개를 돌리니 햇볕이 드는 창가에 푸릇한 싹이 튼 화분이 보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하얗게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 아래에 놓인 실내화를 신고 일어서자, 드르륵 소리와 함께 손등이 따끔했다. 링거 바늘이었다. 굳은 얼굴로 바늘을 툭 뽑아낸 그가 성큼성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브이아이피 병실이 모여 있는 복도는 한산했다. 그 속에서 김신우는 보폭을 빠르게 좁히기 시작했다. 주변을 훑는 눈동자는 무언가를 조급히 찾고 있었다. 가야 할 목적지도 모른 채, 그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어…. 김신우 환자.”

차트를 들고 지나가던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 있습니까.”

김신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얼굴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와중에도 병원복을 입고 차분하게 머리를 내린 김신우의 고운 외모에 뺨이 붉어진다. 세밀한 조각상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실물에서 훨씬 빛이 났다.

“네?”

“공지한, 어디 있냐고요.”

그는 경직된 얼굴로 다급하게 물었다. 모르는 이에게는 친절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도 모조리 잊은 채였다.

구조대에 의해 물 밖으로 먼저 건져진 후 기억이 없었다. 목 뒤부터 싸하게 식어가는 느낌에 손바닥으로 입가를 주물렀다. 뭐가 이토록 초조한 건지 본인조차 알 수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맥동하고 있었다.

“공지한…. 아, 같이 오신 분 말씀이시죠? 바로 맞은편 병실에 입원해 계시는데. 못 만나셨어요?”

간호사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저어….”

수줍게 고개를 숙인 그녀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대로 시선을 드는 찰나,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미 그녀의 눈앞엔 아무도 없었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김신우의 머릿속은 새하얬다. 자꾸만 울렁이는 감정들이 그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마음이 조급했다. 촬영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뛰는 일이 없던 남자가 병실 복도를 뛰기 시작했다. 한시 빨리 그 무던한 얼굴을 마주해야 이 초조와 불안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하아… 하.”

돌아온 병실 앞에 도착해 벌컥, 문을 열었다. 어느새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안을 빠르게 훑었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창가를 바라보던 지한이 찬찬히 고개를 돌렸다. 새카만 눈동자를 살짝 치뜬 채였다. 어깨를 따라 오른팔까지 감아 놓은 깁스를 보며 김신우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 마치 따지듯 성큼성큼 그를 향해 걸어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가슴께가 부풀었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뭐라도 내뱉고 터뜨리고 싶은 충동이 난잡하게 흩어졌으나, 제가 무슨 말을 하기를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몸, 괜찮으십니까?”

지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만히 선 채 씩씩대는 김신우의 희멀건 얼굴을 응시한다. 담담한 눈길이 답이 없는 김신우의 팔을 따라 느리게 내려갔다. 이윽고 손등에 맺힌 핏방울을 발견하곤 설핏 인상을 찡그렸다. 링거 주삿바늘을 아무렇게나 빼낸 탓이었다.

“피나는데요.”

말하며 고개를 돌려 협탁 위의 티슈를 한 장 뽑아 건넨다. 김신우는 그것을 받아 들지도 않은 채,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옅어진 숨소리만 울려 퍼졌다.

허공에 멀거니 떠 있던 지한의 손가락이 티슈를 말아 쥐었다. 쓸 수 있는 손은 한 손뿐이었다. 그대로 뻗어 김신우의 손등 위를 찍어내듯 감쌌다.

“이틀 넘게 주무셨어요. 여기에 서 있지 마시고 가서 쉬세요.”

핏방울을 꾹꾹 눌러낸 손이 그대로 거둬졌다. 휴지통을 찾으며 내리까는 눈길에 김신우가 멀어지는 손목을 탁 붙들었다.

지한의 시선이 교차된 두 개의 손에 머물렀다.

“…많이, 다쳤습니까?”

묻는 말은 찌푸린 채였다. 지한은 딱딱하게 굳은 그의 눈을 묵묵히 응시했다. 이내 작게 침음하고는 무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 못 쓰게 됐다네요. 이제 운동도 못 한다는데.”

깁스한 팔을 들어 올리며 답하는 말에, 김신우의 눈꼬리가 움칠 떨렸다. 지한의 팔목을 잡은 손에 마디가 불거질 정도의 힘이 들어갔다.

“…….”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던 지한이 다시 시선을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눈썹을 한번 치켜떴다가 내린다. 종전보다는 조금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장난입니다. 인대가 좀 늘어나서 고정만 해놓은 거예요. 얼마 있다가 풀어 준대요. 몸이 좀 튼튼한 편이거든요.”

다소 짓궂은 어조에 김신우가 다 식어버린 숨을 내뱉었다. 화도 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입 안에 온통 섞여들어서 무엇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저 혼란스러웠다.

“걱정도 하십니까?”

걱정.

시답잖은 물음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평소처럼 헛웃음이 터지지는 않는다. 그저 어금니를 꽉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지한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자책하실 필요도 없고. 그 상황에 김신우 씨가 아니고 누구더라도 그랬을 겁니다.”

당돌한 모습을 보며 김신우는 뜨거운 숨을 삼킨다. 속이 답답했다.

“내가… 언제….”

애써 잠긴 목소리를 끌어 올리자, 낮은 음색이 갈라졌다.

짧은 반문에 지한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새카맣고 짙은 눈동자가 그를 올려다본다. 마치 자신을 뚫어 버릴 듯한 집요한 시선에 김신우가 눈가를 찌푸렸다.

“걱정돼서 눈 뜨자마자 뛰어오신 거 아닙니까?”

“…….”

“지금 엄청 미안해 보이시는데요.”

희멀건 한 얼굴을 응시하던 지한이 픽 웃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기다란 눈매가 살짝 휘어지자, 냉랭했던 인상이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시원스레 뻗은 입매 또한 살짝 올라간 채였다.

아주 옅은 미소였으나 따스하고 다정했다. 그가 김신우를 보며 지어 보인 첫 웃음이었다.

김신우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고 입을 다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는 금세 거둬졌으나, 처음 본 지한의 웃음에 묘한 감정이 번져 나갔다.

다시 보고 싶다. 손을 뻗어 만져 보고 싶을 만큼 다정한 미소를 다시 보고 싶었다. 갈증이 난 속과는 달리 굳은 얼굴은 마치 노려보는 듯했다.

그를 눈에 담는 순간부터, 사납게 흔들리던 모든 감정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지한과 마주하며 그는 비로소 안도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울렁이는 속을 잠재우고 또 잠재웠다. 손안에 쥔 단단한 팔목은 여전히 놓지 않은 채로.

***

[남간들-남자 간호사 익명 커뮤니티]

[오늘의HOT글]

제목 : 아오늘 ㅅㅂ진짜 황당한 일 겪음....

오늘 겪은 따끈한 썰 푼다.....심심한 애들 댓좀 달아줘.....

우리 병원 브아피 병동이 시설 잘되어 있거든, 높으신 분들이나 유명 연예인들 다쳤을 때 많이 옴ㅋ 보안도 철저해서 누구와도 우리도 절대 몰라ㅋㅋㅋ시발 근데 오늘ㅋㅋㅋ존나 황당한 일 겪음.

우리 특실은 딱 10개임, 당연 다 1인실이고 아예 욕실부터 시작해서 관리 퀄리티 자체가 다르잖아? 호텔처럼 ㅈㄴ별게 다 있는데....우리 병원은 10개 중에서도 또 등급이 있어서 타입 여러개로 나눠져 있음 가격도 천차만별이긴한데 기본적으로 다 개비쌈 알지ㅇㅇ

근데 시발 갑자기 오늘 남자 직원들만 다 올라오래 (특실이 젤 윗층임) 뭐 이유도 모르고 까라면 까야 되니까 걍 갔지. 근데 갑자기 N001호 특실 침대 하나를 N002호 옆 병실에 옮겨 넣으라는 거?;

뭔 개소린가 해서 들어봤더니 일부러 1인으로 넓고 편하게 쓰라고 만든 병실에 둘을 넣겠대? (이건뭔개소리야???) 난 또 내가 누군지 아냐 시전하면서 병실비 깎아달라는 진상 짓인가 싶었거든ㅋㅋ근데 들어보니까 비용을 두배로 지불했다대?ㅋㅋㅋ특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짜리를 걍 두배로 지불했대.....;;ㅅㅂ그거 하루 한 호실만 계산 때려도 졸라 헉소리나는곳인데;; 여기까지 이해가냐? (일단난안감)

암튼 남자 셋이서 그거 침대랑 침구 옮겼는데 하는 김에 자잘한 어메니티도 그냥 다 옮겨주라해서 시발 냉장고 에비앙부터 커피머신까지 싹 다 갖다 놓고 한 시간을 병실 정리해 주고 나옴;;스바 순간 내가 청소부인줄ㅋㅋㅋㅠㅠ

아니.....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맞은편 병실인데 돈까지 줘가며 같이 쓰겠단 심보 뭐임?ㅋㅋㅋㅋ갔을 땐 비어 있어서 누군지도 모르는데ㅡㅡ존나 미친 분리불안아니냐? 고작 일주일 입원한다면서 시발 그걸 못떨어져 있어서 돈을 몇천주냐고ㅋㅋㅋㅋ돈 쓸데가 그렇게 없나ㅋㅋㅋㅋㅋㅋㅅㅂ

짐 날라주고 땀닦으면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개현타오더라......근무하면서 수많은 ㅈ같은 상황들이 있었지만 이런 복합적인 현타는 처음임ㅋ

아무튼 오늘 안그래도 ㅈㄹ까이고 환자 개진상에 시바 피곤한데 얼척 없어서 집 와서 혼자 소주 까면서 글씀 존나 그사세 새끼들...부럽다...

결론-ㄹㅇ누굴까;

[댓글32개]

└ㅠㅠ고생했다ㅅㅂ좀 에바긴하네ㅋㅋ최근에 입원한 유명인이면 사정건설 정회장 아님?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던데ㅋㅋ

└ㄴㄴ두명이라잖음 한꺼번에 두명 입원하려면 사고 같은거 난거 아닌가?

└헐ㅋㅋ그럼 폭시걸스 아니냐 걔네 이번에 교통사고 낫잖아;

└└걔네 데뷔한지 이제 한달됐는데 그런 돈까지 써가며 진상 피울 클라스 아닌듯?

└└└-ㅇㅇ폭시 클라스를 떠나서 멤버들이 그런성격이 아님 존나 그냥 순해 같이 있고 싶었으면 병실 놀러가서 있었을 걸 별로 다치지도 않았다함

└궁금해서 뒤져봤는데 혹시 김신우 아님? 무슨 경호원이랑 둘이 성진대교에서 떨어졌다는데??????거기 존나 위험하다고 말 많던곳 이번에 일터져서 보수바로한다더라

└└헐 김신우 다침? 몸값이 얼만데 팬들 난리났겠네ㄷㄷ

└└└응아니야~대가리 총 맞았나 김신우가 남자끼리 왜 그 짓을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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