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4화 〉 504화 경제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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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오랜만에 설득에 실패했다. 김영수는 확실히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은 호사카의 도움이 없어도 알아서 경제위기를 잘 극복할 것이었다.
호사카는 김영수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인생은 항상 뜻대로 되는게 아니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분노를 느끼지만 재력과 권력이 가득한 남자는 오히려 재미를 느꼈다.
아직 그가 시도할 수 있는 일들은 한없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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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는 간단하게 진행이 되었다.
먼저 김영수 대통령은 한국이 3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한국에는 1530억 달러라는 외채가 있었다. 이건 뭐 버틸 수 있는게 아니었다.
호사카가 말을 한대로 일본도 미국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일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기에 이어서 일본 중앙은행은 한국 정부의 외평채 50억 미국달러를 조기에 돌려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여러 사건으로 한미 관계가 나빠지면서 재무장관, 상무장관, 부통령이 한국 지원을 결사 반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의 슈퍼 301조 법안까지 말하고 있었다.
슈퍼 301조는 미국이 지정한 국에서 생산 제조한 물품을 수입금지하는 무제한 수단불문의 보족조치였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였고 한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양도 어마어마했다. 한창 한국이 달러를 필요로 하고 있을때, 미국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은 어마어마한 타격이었다.
미국 내각에서도 엄청난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결국 부통령이 승리했다.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빌리 클린턴은 호사카에게 전화를 해서 이걸 계속 진행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호사카는 이런 시련에도 한국이 극복할 수 있음을 알고 있어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럼 역사는 원래대로 흘러갈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은 순결을 경제보다 중요시 여기는 한 대통령 때문이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 경제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 아직 대통령 후보에 불과했던 김중대는 지금이 국가가 부도날 수 있다면서 해외 여행을 줄이고 달러를 모으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걸로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그는 IMF에 주제금융요청을 하자고 주장했다.
김영수 대통령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MF 자금 활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러 정치인들도 이에 동의했다. 오직 대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인 이창회만이 정부가 IMF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제와서 받는다고 하면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IMF와 협상을 했다. 여기서도 여기서도 대선주자들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김중대는 우리나라에 대한 지나친 부담이 되는 부분은 개선을 하고 추가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존의 협상대로 진행되면 대량실업으로 국민이 힘들어진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창회는 한국 정부가 IMF에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경제위기를 빠른 시간 안에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중대의 주장을 인기를 끌기 위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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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경제 위기가 이제 막 시작이 되었는데 15대 대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1997년 12월 18일이 그날이었다.
이 대선은 김중대와 이창회의 싸움이었다. 호사카는 지금은 이창회가 유리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국은 김중대가 이긴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여론은 비등비등했다. 이창회가 살짝 유리해 보일 뿐이었다.
‘이러면 내가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다는거 아닌가?’
호사카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제 위기는 사실 어느 대통령이 되어도 열심히 막을 것이었다. 설령 이창회가 되어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 것이다. 호사카는 이창회가 대통령이 되어도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은 그대로 이어지리라 판단했다.
그럼 자신의 꿈을 좀 더 도와줄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게 나아보였다.
호사카는 먼저 제인 먼데일에게 연락했다.
“지금 한국에서 대선이 준비 중인 것은 알지?”
“네.”
“김중대와 이창회. 두 사람에 대해서 조사를 해봐.”
그리고 호사카는 빌리 클린턴에게도 동일한 부탁을 했다.
“CIA에서 작성한 보고서를 보내드리죠.”
“감사합니다.”
“하하. 호사카 씨가 저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약소한 일이죠.”
얼마지나지 않아서 호사카는 두 사람의 성격과 사생활까지 모두 담긴 보고서를 받았다. 그야말로 미국의 민간과 공적인 보고서를 모두 손에 쥔 것이었다.
호사카는 두 보고서를 천천히 읽은 이후에 결국 한국의 다음 대통령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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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는 먼저 이창회와 만날 약속을 잡았다. 이창회도 나름의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바쁜 대선 홍보 일정 중에도 호사카를 만날 시간을 만들었다. 이들이 모이기로 한 곳은 이창회의 대선 사무실이었다. 서울의 인구가 가장 많기 때문에 이창회는 서울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는 자신의 대선 사무실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고 여겼다.
호사카는 자신의 말에 무게감을 올리기 위해서 한 사람을 비밀리에 초대했다.
이창회는 호사카가 한 서양인을 데리고 오자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호사카는 웃으면서 서양인을 소개해주었다.
“미 재무장관 로빈입니다.”
이창회는 머리가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다.
미 재무장관?
그런 사람이 일개 포르노 배우가 오라가라 한다고 한국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인가?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뛰어나가서 반기고 온갖 군악대 행진까지 열어주어야 할만한 사람이었다.
원래 이창회는 호사카를 불러들이면서 신체 검사를 할 생각이었다. 정치인은 모략의 사이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녹음기도 작게 숨기고 다닐 수 있었다. 자신의 사무실로 호사카를 부른 것도 비서들이 몸수색을 편하게 하라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일개 대선후보가 미 재무장관의 몸수색을 할수는 없었다. 미 재무장관은 한국 경제 위기에 핵심이 되는 인물이었다. 그의 기분을 거스르는 행동을 이런 시기에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이창회는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호사카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공식적으로 방문하면 이리저리 말이 많아질 수 있으니 비공식적으로 온겁니다. 다행히 한국 사람들은 미국 재무장관까지는 모르더군요.”
정치를 오래한 이창회도 모를 정도였으니 미 재무장관을 몰래 한국에 들여오는 것은 쉬웠다.
이창회는 이 상황이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호사카라도 조금만 조사를 하면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대선후보에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로빈은 이창회와 악수를 나누면서 간단히 말했다.
“저는 그냥 한국에 휴가를 온겁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려드리죠. 미국 정부는 호사카를 지지합니다.”
“빌리 대통령의 뜻입니까?”
로빈은 그저 싱긋 웃기만 했다.
이제 세 남자는 탁자에 둘러 앉았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창회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그저 김영수 대통령과도 독대를 하는 호사카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호사카가 돈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정치 후원금이나 조금 받으면 족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미 재무장관이 나타나 호사카가 어떤 사람인지 힘을 실어주는 상황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로빈 장관은 왜 데리고 온 겁니까?”
“예전에 대통령에게 딜을 하려고 갔는데 포르노 배우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더라구요. 하지만 그 사람은 이제 며칠 후면 권력이 끝날 사람 아닙니까. 새로운 대통령에게 같은 실수는 하면 안되겠다. 뭐, 그런 생각이죠.”
경제 위기의 한국에서 미 재무장관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이창회도 여기 로빈 재무장관이 미국 내각에서 있었던 논쟁에서 승리했고 그게 한국에는 안좋은 결과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 나는 좀 다를 것 같습니까?”
“당신은 한국의 경제위기를 극복시키고 싶겠죠. 동시에 대통령도 되고 싶고. 그럼 제 말을 잘 들을 수 밖에 없을걸요?”
“듣고 있습니다.”
이창회는 눈썹을 찡그렸다. 호사카의 힘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지자 그의 말을 순순히 듣고 있는 것도 뭔가 고까웠다.
“뭐, 문제 있습니까?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김중대 후보에게 가죠. 어차피 서로 시간이 소중하지 않습니까. 내 말을 안들으려면 시간을 낭비하지는 맙시다.”
“아뇨. 듣겠습니다. 들어보죠.”
호사카는 김영수 대통령에게 했던 말을 좀 더 짧게 말했다. 한번 말한적이 있어서 그런지 말이 더욱 술술 나왔다.
현재 한국의 경제위기를 벗어나는데 호사카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는 한국의 포르노 수입과 성매매 합법화 뿐이었다.
그리고 이창회도 구식이었다. 그도 나이가 있었도 대법관까지 했던 판사 출신이었다. 그는 호사카의 제안을 도저히 받아들일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이라는 명예가 있었다. 국무총리, 대법관, 국회의원, 감사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큰 당의 총재까지. 그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원동력은 명예욕이었다.
그런 이창회가 포르노와 성매매를 자신의 업적에 추가할 수 없었다. 그런 오욕을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상당수가 호사카 씨 덕분이겠죠.”
“그런가요. 저는 국민들의 요구라고 보는데.”
이창회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도 구식인 모양입니다. 그런 제안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군요.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중요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정말 망할 것 같으면 여러 나라에서 도와줄 겁니다. 그리고 한국은 작은 기회만 있으면 살아날거구요.”
“그럼 역시 포르노와 성매매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곘다는 말입니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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