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47화 차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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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그 말에 이마이 유마는 곤혹스러운 눈치였다.
1억엔 섹스 토너먼트의 투표 시스템은 여배우의 작품이 첫 발매되고 일주일 동안 받는 투표권만 유효로 처리했다. 당연히 삼일 정도 지나면 나중에 투표 결과가 예측이 가능할 수준이었다. 여배우들이 갑자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매일 들어오는 투표권의 양은 전날의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투표 결과는 판매량과는 정반대로 쿠도 히로미가 이기고 있었다.
이마이 유마는 AV 팀의 팀장으로서 잘팔리는 여배우 그리고 자신이 기획한 작품의 여배우인 츠지 미유가 승리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팀장은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마이 유마는 이미 회사에서 많은 인맥을 쌓은 호사카는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진실을 털어놓았다.
“쿠도 히로미가 이길거야.”
“그래서 팀장님 생각은요?”
호사카는 투표 결과를 조작하는 일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필요하다면 투표 결과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투표 조작이 일어날 경우 여배우가 입을 마음의 상처는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인터넷도 보급이 되지 않은 시절, 회사에서 투표 조작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회사 밖에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오직 이 일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는 여배우가 가장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을 것이었다.
“나는 츠지 미유가 이겼으면 좋겠네. 내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회사의 매출을 위해서라도.”
“회사의 매출은 이미 충분하지 않나요?”
팀장은 호사카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호사카는 자기가 아무리 회사에서 잘나간다고 하더라도 팀장의 아랫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팀장의 선택을 존중해주되 자신은 이 일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팀장님께서 결정을 하셨다면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다만, 쿠도 히로미에게는 진실을 직접 알려주셨으면 좋겠군요.”
이건 호사카가 이마이 유마에게 개인적으로 해보는 테스트였다.
야쿠자의 아래에서 일을 하고 AV 업계로 뛰어들고 발기부전에 걸려 인생의 바닥까지 맛보았을때 호사카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주변에 있던 쓰래기 같은 인간이었다.
호사카는 회귀를 한 이후에 최소한 자신의 옆에는 마지막 선은 넘지 않는 인간들로만 채우고 싶었다.
만약 이마이 유마가 더러운 일은 자신에게 떠넘기거나 쿠도 히로미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하려고 한다면 호사카는 자신의 모든 정치력을 동원해서 이마이 유마를 회사에서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한번 그런 짓을 한 인간은 나중에 호사카에게도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다.
이마이 유마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래. 그래서는 안되겠지. 아무리 그래도 쿠도 히로미도 우리 회사의 식구니까.”
호사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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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에게 쉴틈은 없었다.
이제 쿠도 히로미와 츠지 미유의 대결인 마무리가 되었으니 바로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야 했다.
‘자, 이제 어떤 컨셉을 취하지?’
호사카는 하마사키 아이와 마코토 미유키를 기용하느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4번의 여배우 선택권 중 2번을 사용했다. 쿠도 히로미와 츠지 미유는 이마이 유마를 뒤에서 교묘하게 이용해서 기용했다.
이제 남은 선택권은 2개였다.
호사카는 슬슬 회사 밖으로 움직여서 좋은 여자를 스카웃 해야 함을 느꼈다. 회사 안에 있는 여배우들로는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호사카는 오랜만에 자신이 과거에 몸을 의탁했던 이케다 타카하시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재일 조선인으로 야쿠자 선배이기도 했다.
호사카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쿠자는 밤에는 업소를 관리한다고 바쁘고 낮에는 잠을 자고 사무실을 관리한다고 바쁘니 그의 집에 전화를 걸수는 없었다. 호사카는 용감하게 야쿠자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뭐, 형님은 와카슈 였으니까 전화를 거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와카슈는 행동대원을 뜻하는 말로 일반 조직원을 의미했다. 전화를 받기 위해서 대기하는 것은 그보다 낮은 친삐라일테니 이 정도는 괜찮으리라 판단했다.
“누구십니까?”
정중하지만 험악함이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이케다 타카하시 형님의 아는 동생입니다. 연락이 잘되지 않아서 그런데 혹시 사무실에 계십니까?”
“아, 와카가시라 말입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호사카는 이케다 다카하시가 어느새 또 승진을 해서 부두목의 위치인 와카가시라로 올라갔다는데 놀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케다 타카하시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냐?”
“형님, 저 호사카 켄토입니다.”
이케다 타카하시는 잠깐 멍 때리다가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이 미친 놈! 야쿠자를 때려친 놈이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하하. 오랜만에 형님께 안부를 전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저 같은 일반인이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그래. 안그래도 네가 잘 지내는 것은 둘러둘러 듣고 있었지.”
둘은 전화로 간략히 안부를 전했다.
“그나저나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만 전화한거냐?”
역시 이케다 타카하시는 젊은 나이에 와카가시라에 오를만큼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역시 형님은 예리하시군요. 사실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뭐야? 야쿠자 일과 관련이 되있냐? 그런거라면 법률의 도움을 받는데 나아.”
야쿠자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평생 그들과 연관이 된다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케다 타카하시는 아끼는 동생에게 진심으로 충고를 했다.
“야쿠자 일과는 크게 관련 없습니다. 아무튼 직접 뵙고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십니까?”
둘은 바로 약속을 잡았다. 호사카는 자신에게 많은 배려를 해준 이케다 타카하시를 위해 긴자의 고급 참치집에 그를 모셨다.
“후우. AV 배우가 돈을 많이 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야쿠자보다 많이 벌줄은 몰랐는걸.”
“형님께 한턱 쏠 정도는 됩니다.”
호사카와 이케다 타카하시는 자신의 앞에 차례차례로 쌓이는 고급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했다. 이 두 남자는 그 동안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배포를 푸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렇지. 네가 칸넨 마사야가 사무실의 돈을 슬쩍한다는걸 알려준 덕분에 내가 놈의 손가락을 다 잘라버렸지. 그리고 위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아내어서 뒷처리까지 깔끔하게 한 나를 좋게 봤나봐.”
호사카가 복수를 위해서 던져둔 사소한 일이 이케다 타카하시에게는 행운의 시작이었다. 상부에서 호평을 받고 더 큰 일을 맡게 되었고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는 재일조선인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와카가시라라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나저나 너도 잘나가더구나. 요즘 잘나가는 AV에서는 다 네가 나온다고 사무실에 젊은 애들이 난리야.”
“하하. 다는 아니죠.”
둘은 그동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답하며 충분히 시간을 보내었다. 그리고 이케다 다카하시가 말했다.
“그래서 부탁할 일이란게 뭐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쿠자와 연관된거라면 거절하마.”
“아니에요. 사실 제가 요즘 무슨 AV를 찍고 있는지는 알고 계세요?”
“무슨 섹스 토너먼트인지 뭔지…”
잘나가는 야쿠자는 여자는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이케다 다카하시 정도의 수준이 되면 혼자서 자위를 할 필요 없이 여자를 원하면 섹스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이케다 다카하시까지 1억엔 섹스 토너먼트를 알 정도니 호사카는 자신이 만든 시리즈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재차 실감이 갔다.
“네. 그 시리즈는 매번 새로운 여배우를 출연시켜야 하거든요. 하지만 회사의 여배우는 영 시원찮고 밖에서 새로 모집을 하려고 해도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네요.”
“뭐야. 설마 나보고 여자를 소개시켜달라는거냐?”
“야쿠자는 관리하는 업소가 많잖아요. 그중에도 풍속점도 있구요.”
이케다 다카하시는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호사카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말했다.
“걱정마세요. 형님이나 그 여자에게 피해가 갈 일은 하지 않을테니까. 사실 여자도 이 남자 저 남자한테 몸을 팔면서 푼돈을 버는 것보다는 작품에 하나 출연해서 천만엔씩 버는게 좋잖아요.”
이케다 다카하시는 인정이 있는 야쿠자였다. 그가 관리하고 있는 업소의 여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좋아. 그런 의미라면 풍속점을 몇개 소개시켜주지.”
호사카의 생각은 맞았다.
일본도 성매매는 불법이었고 음성적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불법인만큼 야쿠자들과 연계가 잘되어 있었다.
이쪽에서 신인 여배우를 찾기 위해서는 야쿠자를 통해서 찾아가는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이케다 다카하시는 야쿠자로서 이미 자리를 잡아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녔고 자신의 부하 중 하나가 운전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호사카는 그의 차에 얻어타면서 이케다 다카하시가 관리하고 있는 구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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