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의 마법 (20/20)

별의 마법

사방에서 요란하게 마력이 공명하고 있다. 이 세상을 부숴 놓을 것처럼, 집어삼킬 정도로, 위험하고 강대한 마력이 넘실대는 광경은 장관이었으나 동시에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정말로 하실 작정이십니까?”

대마법사 에스투르는 허공에서 맺어지는 마법진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현자를 향해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현자는 에스투르의 걱정조차 시건방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네 앞가림이나 잘해라, 에스투르.”

“하지만 현자님…….”

현자가 에스투르를 매섭게 노려보자, 에스투르는 힘없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에스투르가 현자를 걱정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눈앞의 현자는 과연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마법사였다. 혹자는 현자가 인간이 아니라 마법 그 자체가 형상화된 생명체라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일례로 현자는 비의 마법사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하는 현자가 기상을 움직여 제가 있는 자리에 항상 비를 내리기 때문이었다. 비뿐만이 아니라 현자는 대규모의 기상 변동을 어렵지 않게 제어했다. 지진이나 화산 분출 등의 재앙을 막는 것도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법사가 바로 현자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개의 수식을 쌓는 현자의 마법은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에스투르조차 초라해지게 만들었다. 에스투르가 반딧불이라면 현자는 태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현자라 해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할 수 있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무리가 아닐지…….”

“에스투르.”

현자라고 불린 남자는 경고의 의미로 에스투르를 불렀다. 한마디만 더 하면 아예 쫓아낼 기세라 에스투르는 낮은 신음을 삼키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에스투르는 현자가 보고 있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마법진이 완성을 앞두고 있었다. 이 마법진을 위해 현자는 꼬박 10년을 노력했다. 마법진은 돌발 상황에 대비해 수많은 지식들을 담고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이 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규모의 거대한 대마법을 발동시키는 것. 동시에 그 마법을 영원히 수호하는 것. 불가능하게만 들리는 이야기였으나 실제로 현자는 마법진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계속 걱정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에스투르를 돌아보며 현자가 웃었다.

“말리고 싶으면 원로 마법사에게 달려가 보지 그래. 오만하고 시건방진 현자 놈이 제멋대로 이 세계의 명운을 가르려 하고 있다고.”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현자와 마법사 원로회는 사이가 몹시 나빴다. 기득권층인 원로회의 의지에 현자가 사사건건 반발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자가 독단으로 마법을 자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현자에게 마력 박탈형을 내리려 할 터였다. 호락호락 당해 줄 현자는 아니지만, 이 장소를 잃고 도망자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마법 자체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건 처음 듣는데.”

“……함부로 할 말이 아니니까요.”

현자가 만드는 마법은 이 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마법이었다. 현재 세계에는 수많은 악마를 비롯한 여러 이종족들이 건너와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제 먹이 취급하는 놈들로 인해 인간은 쉴 새 없이 유린당했다.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계약하던 악마들의 행위는 점점 도를 지나쳤다. 악마들이 날뛰니 자연스레 사람들은 신보다 악마에게 의지하게 되어, 이 세계를 수호하는 신의 힘조차 지금은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그 틈을 타 이 세계에 오래 머무른 악마들은 인간들처럼 계급을 만들고 이 세계의 인간과 유착 관계를 맺었다. 더 많은 절망과 혼을 얻기 위해, 왕이나 귀족들과 계약한 악마들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전쟁을 요구했다. 전쟁이 터지니 침략당한 쪽에서도 악마와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악순환이었다. 덕분에 하루라도 지상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악마 계약을 인생 역전으로 여기는 풍조도 있었지만 에스투르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풍조 또한 인간 사이에 스며든 악마들이 만든 것이다. 악마와 인간은 공존할 수 없다.

현자는 이 비극의 굴레를 끊을 생각이었다. 현자가 마법을 완성하면 마계와 이곳 중간계를 가르는 거대한 벽이 생긴다. 악마들은 쫓겨나 더 이상 이곳으로 넘어올 수 없게 되며, 피로 더럽혀진 세계에서 많은 힘을 잃은 신은 원래 가진 힘을 회복하고 세계를 수호할 수 있게 된다.

에스투르 역시 마법 자체에는 찬성이었다. 그러나 염려되는 것은 후폭풍이었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할지……. 자칫하면 마법의 명맥이 끊길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야. 이 세계는 마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

“현자님이 하실 말씀이 아닌데요.”

모든 생활을 마법에 의존하는 현자는 대꾸 없이 웃었다. 세계를 가르는 벽을 만드는 건 아무리 현자라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무리였다. 제힘이 온전한 신이라도 힘들었다. 때문에 마법진은 벽을 만드는 것 외에도 아주 중요한 마법을 하나 더 품고 있었다.

수십만 겹으로 쌓이고 압축한 마법진을 해제하는 순간, 마법진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 하늘을 가득 채우며 이 별의 마력을 모조리 빨아들인다. 모든 마도 기계는 작동을 멈출 것이고, 이 세상에 쌓여 있던 마력조차 한없이 줄어든다. 생명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정 이하의 마력을 지닌 생명체의 마력을 빨아들이지 않게 해 두었지만, 마법사들의 마력 또한 빼앗겨 회복에는 최소 수십 년이 걸릴 터였다.

그 정도로 마력이 오랜 기간 사라진다면 마법이 쇠퇴하고도 남았다. 이 세계의 문명은 마법 위에서 꽃핀 것이다. 세상은 퇴보하고 이전보다 악화된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현자는 결심했다.

“마지막까지 갈등이 없었냐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부디 조금은 더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야.”

“……현자님.”

심각하게 저를 부르는 에스투르를 현자가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한없이 딱딱하던 얼굴 위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이 마법진을 관리해 줘. 위험한 물건이야. 내 모든 지식이 담겨 있어. 악용되면 처참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적당히 숨겨 줘.”

“왜 직접 하시지 않고…….”

“나는 마법을 완성하는 순간 죽을 테니까.”

아무리 현자라 한들, 별을 뒤덮는 마법을 대가 없이 쓸 수는 없었다. 격발 장치로 현자는 제 혼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제 혼에 담긴 강력한 마력은 상당량이 소실되고 제 환생 또한 최소한 몇 백 년으로 늦춰진다. 최악의 경우에는 혼 자체가 사라지겠지만 이미 각오한 바였다. 에스투르는 대답하는 대신 현자를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화 안 내네.”

“예상은 했습니다. 주변 정리를 하실 때부터…….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볍게 말씀하실 줄은 몰랐군요.”

“미안. 그리고 고마워.”

“한다고 말 안 했습니다.”

“해 줄 거잖아.”

에스투르를 보며 현자가 가볍게 웃었다. 화를 내고는 있지만, 에스투르가 제 억지를 들어줄 것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제멋대로의 태도에 에스투르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별거 없어. 이 마법진은 내 마력이 아니고는 움직이지 않거든.”

“당신의 환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어찌합니까?”

이 시대에는 혼의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어 있었다. 혼은 언젠가 마지막 때가 다가올 때까지 세상을 순환하며 환생한다. 환생하게 되는 종족이나 위치는 매번 달랐으나 마력만은 지문처럼 꼭 같았다. 몇몇 마법사들은 그를 이용해 가족이 죽으면 마력 패턴을 추적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인간이 아닌 이 별에 있는 수많은 종들 중에 하나로 태어나므로, 새로 찾은 제 옛 가족을 애지중지 끼고 사는 마법사들이 많았다.

“내 환생이면 분명 나처럼 착하고 잘생겼을 테니까 문제 일으키지 않을 거야.”

“……영혼이 일치한다는 이유로 환생체의 외모가 일치한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인간으로 언제 환생할지도 모르겠는데요.”

“인간일 확률이 높을걸. 조금 잃는다고 해도 마력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이종족이 사라지면 마력이 많은 종족은 인간밖에 안 남잖아. 어쨌든 난 착할 거야.”

“왜요?”

“난 잘났잖아.”

말을 말자. 에스투르는 논리적으로 말하기를 포기했다. 그런 에스투르를 위로하려 현자가 어깨를 두드렸지만, 별 위로는 되지 않았다.

“걱정 마. 마법진을 발동하는 것도 힘들어. 마력 조금 소실되고 나면 한 번 발동하기도 힘들걸.”

“그것 참 위로가 되는 말씀이군요.”

“마법진을 잘 찾아갈 수 없는 장소에 숨겨 줘. 그러면 될 거야.”

말도 참 쉽게 한다 싶었지만, 에스투르에게는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에스투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현자의 의지를 받들기로 결정했다.

석 달 후, 현자는 기어이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수없이 많은 마력으로 짜인 마법진이 하늘을 뒤덮고 세상을 물들였다. 발동에만 사흘이 걸리는 대마법이었으니 거의 대부분의 악마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도망쳤다. 마법 발동을 막으려고 하는 자도 있었으나 소용없었다.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마법사의 목숨을 집어삼킨 마법진은 그 소망대로 두 세계를 갈랐다.

악마가 사라지고 인간의 것으로 돌아온 세상에서 마법진은 에스투르의 관리하에 조용히 잠들었다. 먼 훗날, 자신을 만들었던 주인이 다시 찾아올 때를 기다리면서.

별의 마법 마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