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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127화 (127/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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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깔끔하게 잘린 노인의 머리를 발로 굴린다. 절단면에선 피도 한 방울 안 나온다. 대단한 내용일 줄 알았더니 시답잖은 소릴 지껄이고 있어.

“정말로 그대가 그 사람이오? 신을 죽이고 다니는 그 사람?!”

노인의 목이 굴러다니며 말한다. 목이 베여도 뇌는 바로 안 죽는단 말이지. 보통 길어야 십 초 정도지만, 대마법사라 불릴 정도의 영감은 다른가. 말까지 하고 있네.

“맞다니까 그러네.”

뿌직. 두개골과 얼굴이 무너진다. 징그럽게 뭐하는 짓이야. 목이 잘리면 정상적으로 죽으라고.

노인이 완전히 죽고, 영혼이 날아가는 것까지 확인한다. 죽었군. 탁자에 기대어져 있던 지팡이를 챙긴다. 일종의 본능이다. 약탈 본능? 이겼으니 내꺼지. 전장에서 너무 오래 구르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야.

사람의 본성이 도적이 되어가.

“귀찮구나, 귀찮아.”

수배령도 그렇고 이 일도 그렇고, 인류 연합이 계속 귀찮네. 그냥 없애버릴까. 인류 멸망을 막는 것이 목적? 그렇다면 인류 연합이 사라져도 상관없을 것 같다. 인류 멸망의 원인은 신들인데, 그 신들은 내가 모두 씹어 먹을 거거든.

미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류의 무기와 생산 시설을 두려워한 이종족이 총공격을 해오는 모양이다만, 만약 그렇다면 핵폭탄이나 선물해주자.

탄두는 충분하다.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써먹을 수도 있다. 생물을 상대로 할 때. 방사능 물질은 최고 최강 최악의 무기다. 폭탄으로만 써먹으려 해서 그렇지 다른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인류야 덤벼라. 이종족아 덤벼라. 전부 덤벼도 공멸해주마.

진흙공 모양의 아티펙트를 부순다. 이것도 이제 필요 없어졌다. 음, 하나 정도는 사랑이나 피오라한테 줄까. 그게 좋겠다.

텔레포트를 사용해 죽음의 땅이 된 드뮈나시안테로 돌아간다.

방사능을 잔뜩 포함한 재가 하늘에서 눈처럼 내린다. 황색의 눈이 세계를 물들인다. 핵폭탄으로 황폐해진 땅에 내리는 죽음의 눈.

여기가 죽음이로다. 죽음이로다.

이 죽음이 내가 지켜야 할 땅이니라.

써글.

***

죽음의 땅에 섣불리 들어오는 놈은 없었다. 내 지킴이 작업은 아주 지루한 것이 되었다. 지루해 죽겠다. 다행인 점은, 내가 지루해 죽기 전에 유상민이 작업을 끝냈다는 것이다.

성서와 신화, 그리고 그와 관련된 신학 서적들을 몽땅 챙겼다.

“이 땅을 지켜준다고 하셨지. 죽음의 땅으로 만든다는 계약은 안 하였사옵니다만.......?”

왕녀가 난처한 얼굴로 말한다. 나는 뻔뻔하게 되받아친다.

“죽음의 땅이 되어서 아무도 안 공격해오게 되었으니 다행이잖아?”

하나도 아니고 복수의 핵폭탄, 그것도 큰놈들이 퍼펑 터졌다. 방사능 먼지는 본래 인체에 치명적일 정도는 되지 않지만, 핵을 쏜 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주 방사능이 진하게도 남았다.

방사능이 잔류하면 죽음의 땅이 되었다. 내가 방사능을 억제했다면 저놈들은 대놓고 흩뿌린다는 건가.

하나부터 열까지 나랑은 안 맞는 놈들이다.

덤으로 말하면, 나라면 그 방사능을 치워줄 수 있다. 방사능 마법(내가 붙인 이름이다.)에 나보다 정통한 존재는 없다. 왜냐, 내가 창조한 학파거든.

그래도 안 없애 줄 거다. 그게 더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벌써 가는 건가? 아쉽게 됐군.”

드래곤이 말한다. 말과는 달리 전혀 아쉬워 보이지 않는다. 저놈은 내가 보여준, 그리고 어떤 놈들이 전장에 터뜨린 핵폭탄의 위력에 꽂혔다.

핵폭탄을 만들어 보겠다며, 평범한 생물은 들어가기도 힘든 험지를 헤집고 다니며 우라늄 원석을 모으고 있다.

좀 더 따라다닐 줄 알았는데 의외다. 귀찮은 혹이 하나 떨어졌으니 나야 편하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인사를 마치고 가마를 찾는다. 가마는 방치되어 있던 것 치고 먼지 하나 없다. 아마 왕녀 쪽에서 손질하고 있었겠지.

가마에 올라타고, 66마리의 언데드를 소환해 가마를 들게 한다.

해골 가마가 드뮈나시를 빠져나와 죽음의 땅을 지난다. 죽음의 땅을 죽은 자들이 멘 가마가 전진한다.

“드뮈나시의 앞이 아니라 죽음의 앞이구만.”

황폐해진 땅은 물론이고, 그 밖에 아직 풀들이 남아 있는 자리에도 죽은 몬스터들의 사체가 부패하고 있다.

부패한 사체는 좋은 양분이 될 거고, 그 양분은 다시 방사능을 흙으로 물들이겠지. 대단한 순환이다.

방사능의 순환.

“저기 주인님... 저희는 괜찮은 건가요?”

피오라가 불안한 듯 묻는다. 실시간으로 하늘을 나는 새가 떨어지고 있으니, 무서워울만 하다.

“아니. 안 괜찮아.”

“네?”

“정체불명의 독인데 나라고 별수 있나. 즉효성은 아닌 거 같으니까. 그냥 지나는 거지.”

사실 우리 쪽으로 오는 방사능은 모두 물리고 있다. 방사능이라 해도 분자와 그 분자가 뿜는 비가시광선의 조합이다. 알고만 있으면 막는 건 어렵지 않다.

피오라를 겁주려고 거짓말 좀 해봤다.

피오라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두른다. 저기 저쪽에 유전자 변이로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몬스터 하나를 가리킨다. 말처럼 생긴 놈에게 뿔까지 달려서 지구였다면 유니콘이 나타났다고 소란이었겠다. 얼룩말 색의 유니콘이라니, 확 깬다.

“우리도 저렇게 되는 거지.”

유니콘은 피부 일부가 녹아 부글부글 끓고 있고, 옆구리가 썩어 내장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살아서 절뚝절뚝 걷고 있다.

“거, 거짓말이시죠?”

“아니, 난 딱히 삶에 미련이 없거든.”

이건 거짓말. 난 삶에 미련이 철철 넘친다. 해야 할 일이 있어 모든 욕구를 잠시 뒤로 미뤄뒀을 뿐이다. 궁극적인 꿈은 현대 문명을 중간계에 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뒹굴거리는 거지. 최고다. 지복이다. 콜라와 컴퓨터까지 있으면 거기가 천당이다.

피오라의 몸이 잘게 떨린다. 치마 사이로 손을 넣으니, 아니나 다를까 약간 축축하다. 당사자는 치마에 뭐가 들어온들 몸이 굳어 반응도 못 하고 있다.

이게 보통의 반응이지. 암.

죽어가는 몬스터에게 눈길 한 번 주고는 매정하게 각자 할 일 하는 저놈들이 이상한 거야.

“당연히 거짓말이지. 뭘 겁먹고 있어.”

말하며 동시에 질 안으로 손가락을 하나 집어넣는다.

“흐응.”

긴장이 풀린 피오라의 몸이 신음과 함께 무너진다. 간만에 야외 플레이고 괜찮으려나... 싶으니까 내 눈치는 귀신같이 읽는 사랑이가 눈을 빛내며 하던 일을 멈추고 슬금슬금 다가온다.

어째 제대로 된 인간이 없냐.

제대로 된 인간이 내 곁에서 버틸 리가 없지만.

가마는 정처 없이 죽음의 땅을 떠돈다. 목적지는 없다. 며칠 후면 내 목걸이의 쿨타임이 끝난다. 다음 유적을 찾을 시간이 가깝다.

인류 연합은 드러나 있는 조직이며, 언제든 정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적은 다르다. 누가 먼저 올지 모른다. 우선순위가 다르다. 그래서 잠깐 미뤄둔다. 유적의 유물을 모두 얻으면, 그때가 진짜 시작이다.

***

목걸이의 쿨타임이 다 되었다. 내 영혼을 목걸이에 넣는다는 느낌으로 힘을 주면, 내 영혼과 목걸이가 공명해 유적의 위치를 알려준다.

유적의 위치가 움직인다. 그것은 땅속이고, 움직이고 있다. 아주 천천히.

“이건 뭐야?”

지도에 집중해도 위치가 표시되지 않는다. 이 지도는 세계 전도다. 험지를 포함한 중간계 행성의 모든 장소가 포함된 지도.

그런데 지도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무슨 경우야? 어이가 없다.

“진짜 땅속에 있는 거 맞아요?”

“어떤 느낌일지는 니가 제일 잘 알 거 아니야.”

영혼과 직접 연결된 느낌. 감각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감각이 아닌 거 같기도 한 아리까리한 무언가. 육감을 넘어선 제 칠감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한 건 이건 여기에 가면 있다! 라는 확신이 온다는 것이다.

지금도 확신은 있다. 아래에 유적이 있다.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지도에를 보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수수께끼다.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볼래.”

라팔이 나한테 목걸이를 조른다. 라팔도 목걸이를 사용해보곤 고개를 갸웃한다.

하는 김에 유상민에게도 쥐여줘 봤다. 이 목걸이에 주인 등록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돌려쓰는 것 정도는 괜찮다.

“이상해.”

“이건 이상한데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 좋을까. 뇌 뒤쪽을 누가 긁는 것처럼 간질간질하다. 저 둘도 비슷할 거다.

우리 셋은 지도를 놓고 둘러앉아 말이 없다. 피오라와 사랑이가 뭐하나 싶어 기웃댄다.

“이거, 올라오고 있어.”

목걸이를 들고 있던 라팔이 말한다. 나는 목걸이를 뺏어 들고 다시 집중한다.

땅 아래에 있는 유적은, 아주 조금씩이지만 상승하고 있다. 옆으로 움직이며 상승 중이다. 여전히 지도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 해괴한 일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저도요.”

유상민도 목걸이를 들고는 미묘한 표정을 한다.

“일단 기다려보자.”

결국 결론은 이것이다. 유적이 움직이고 있다면, 또 땅에서 올라오고 있다면 언젠가는 지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보자. 그것 말곤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가마가 죽음의 땅을 순행한다. 시간이 지난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돌아간다. 쟤들도 바쁜 인생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뺑뺑이 돌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로 나중에 폭발하는 건가? 신빙성 있는 이야기다. 만년 뺑뺑이 칠 운명인 태양이 불쌍해서 조물옹께서는 한 한 수십억 년쯤 후에 자살로 생을 마치게 하였다.

평생 뺑뺑이 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태양 놈도 제대로 된 인생은 아니다.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른다. 유적도 서서히 지상으로 올라온다. 지상으로 올라와, 하늘로 상승한다.

어떤 확신이 내 안에 심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진실성을 띄고, 명확해진다.

유적은 하늘로 떠올라, 지금은 하늘에 있다. 목걸이가 그렇게 말하고, 목걸이와 공명하고 있는 내 영혼이 그렇게 말한다.

“.......”

“.......”

“.......”

우리 셋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타이밍 좋게도 하늘엔 보름달이 떠 있다. 판타지답게 달이 여러 개라면 낭만적이련만, 아쉽게도 중간계의 달은 하나다. 색깔도 지구의 달과 같다.

“지도에 안 나타나는 것이 당연해.”

라팔이 달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한다. 무표정하게 기막혀하고 있다. 그래, 너한테도 이건 황당한 일이겠지. 나도 아주 많이 황당하단다.

그 황당한 감정을 그대로 담아, 미친놈에게 바톤을 건넨다.

“야, 너 우주선 가지고 있냐?”

“설마요.”

유상민이 어깨를 으쓱한다. 마찬가지로 답이 없다는 얼굴이다.

기대도 안 했다. 오히려 진짜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난 저놈을 형님으로 모셨을 거다.

야망과 로망으로 살기에 중간계는 너무 팍팍하다. 땅을 밟고 살기도 힘든데 누가 하늘로, 그것도 우주로 눈을 돌리겠어. 그러니까 생각하지 못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유적은 처음부터 지상에, 이 행성에는 있지 않았다. 땅속에 있다는 것도, 땅속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모두 착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의 착각이다.

땅에서 보면 영락없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겠지. 그 커다란 스케일에 그것이 땅속에 있다고 착각하고 만다.

사실 그것은 아래에서 움직여 옆으로 크게 돌아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옆으로 돌아 땅으로 들어간다. 그걸 반복한다.

그런 운동을 하는 녀석을, 행성을 우리는 알고 있다.

찬란하게 떠 있는 보름달.

유적은 저곳에 있다.

============================ 작품 후기 ============================

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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