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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126화 (12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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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켈레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방사능의 영향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을 마무리한다. 잔인해 보이지만, 저들에게 저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길고 굵게 갈 고통을 짧게 끝내주는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내 손에 들린 이 아티펙트. 물건을 그 용법에 따라 형태가 정해진다. 무기는 사람을 죽이기 적합한 형태로 발전하고, 옷은 몸을 가리고 보호하기 위한 형태를 한다.

최적의 형태를 향해 계속 진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검, 검의 경우 아갈리나 지구나 여기나 그 형태에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디자인은 다양하겠지만, 검이라는 무기가 가지는 근본적인 요소는 변하지 않는다. 찌르고 벨 수 있는 날이 있다.

이 아티펙트의 외형은 볼품없다. 볼품없고 형편없다. 디자인적으로 무언가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실제로도 그렇다.

찰흙으로 공을 만들고, 그것을 아무렇게나 파놓은 모양이다. 여러 개의 모습이 다른 구멍이 뻥뻥 뚫려 있다. 그런 갈색의 벌레 파먹은 공 모양. 외형도 똑같고, 만들어진 방식도 똑같다.

물건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적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러면 이 볼품없는 외견이 이 아티펙트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다. 아티펙트에 적용된 마법을, 이 엉터리인 모양이 방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티펙트의 제작 난이도가 대폭 올라갔다. 멀쩡한 구 모양이거나, 차라리 평평한 판 모양이었다면 조금 과장해 10배는 더 쉽게 만들었을 것이다.

굳이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아티펙트를 이 모양으로 만들 이유가 있는가? 없다. 생각해볼 만한 건 뤠인이 예술가에 가까운 인간이라는 것인데, 그러면 반대로 같은 모양의 아티펙트를 두 개나 만드는 것이 이상하다.

똑같은 아티펙트를 두 개나 만들어. 하나는 고위층이 참석하는 경매에 내놓고, 하나는 아티펙트 상점에, 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장소에 놔뒀다.

예술가의 심정으로 생각해보자. 하나는 젠체하기 좋아하는 갑부들과 높은 놈들이 구할 수 있는 장소에 두고, 하나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로 흘려보냈다.

우연히 아티펙트 상점에 갔을 수도 있지만, 대마법사가 만든 아티펙트가 우연히 길거리 상점으로 흘러들어갈 확률보다 뤠인이라는 마법사 영감탱이가 직접 갔다 놓았다는 것이 훨씬 설득력있다.

그럼 그 영감탱이는 뭘 노리고 있을까?

대한 길드의 조사에 따르면 시간을 감는 태엽이 투기장의 우승 상품으로 나온 것은 뤠인 경이 직접 관여한 일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마찬가지. 경매 물품을 등록한 사람은 본인이라고 들었다.

똑같은 아티펙트가 이 두 개만이 존재할까? 상점에서도 살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장소에 좀 더 많을지도 모른다.

행방불명된 영감탱이가 꾸준히 자신의 아티펙트를 뿌리며 무엇을 노리는가. 무엇을 바라는가.

알아주길 바라는 건가? 이 물건 안에 포함된 무엇을?

그렇지 않으면 같은 물건을, 그것도 극히 비효율적인 물건을 만들어 뿌릴 이유가 없다. 이 안에 무언가 있다. 분명하다.

귀를 울리는 소음이 잦아든다. 주위에 산 자는 없다. 역시 이렇게 되나. 전쟁만 하면 항상 이래. 나 빼고 다 죽지.

언제부터 그랬더라? 꽤 오래됐다.

널브러진 시체의 산을 혼자서, 때로는 언데드와 같이, 아니면 몇 안 되던 동료와 같이 둘러봤다.

아무리 비명을 들어도, 시체의 산을 보아도, 감흥이 없다.

아공간에서 담배를 꺼낸다. 중간계의 마지막 전투에서 피우고 처음이군. 어떤 담배라도 나한테 영향을 주진 못하니. 이건 기분이다, 기분.

흙탕물에 앉아 담배를 태운다. 몸을 뒤로하며 땅에 손을 집는다. 손이 진흙투성이가 된다.

올라가는 담배 연기와, 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본다. 핵 때문에 하늘이 누렇다.

누런 하늘로 올라가는 흰 담배 연기. 이놈아, 니가 가서 저놈들을 좀 하얗게 물들이면 안 되겠냐.

연기한테 물어보니 연기가 안 된단다. 연기와 대화를 나누다니 나도 미쳤구나.

누런 먼지 구름이 바람을 타고 퍼진다. 저 누런색 어디서 봤는데?

아, 알았다.

그 뤠인이라는 노인네가 뭘 하고 싶은지.

누런 먼지의 색은 시간을 감는 태엽과 비슷했다. 내 옆에는 텔레포트 아티펙트가 진흙탕을 구르고 있다. 진흙공이 진흙을 구른다.

먼지 구름과 진흙 공.

시간을 감는 태엽과 텔레포트 아티펙트.

뜬금없이 정답이 떠올랐다. 이런 걸 영감이라고 하나?

공에 숭숭 뚫린 구멍, 그중 하나가 시간을 감는 태엽과 꼭 들어맞았다. 이 간단한 걸 왜 떠올리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 구멍 말고도 다른 구멍이 많아 처음부터 연관 짓지 않으면 힘들 것 같기도 하다.

아티펙트의 구멍에 태엽를 꽂는다. 아티펙트의 마법이 변한다. 텔레포트 좌표 하나가 갱신되었다.

이 아티펙트는 3개의 텔레포트 좌표를 저장하고, 발동하면 셋 중 하나를 선택해 이동할 수 있다. 난 필요가 없어 하나도 설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가 멋대로 설정되었다.

여기에 가면 뭐가 있어도 있겠지.

끝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진흙탕 속에 던진다. 빨간 담뱃불이 진흙에 가라앉는다.

가볼까.

아티펙트에 마력을 주입하고, 익숙한 감각이 전해진다. 공간이 뒤바뀐다.

***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느릿하게 고개를 든다. 날 발견한 노인이 눈을 크게 뜬다.

“뤠인이라는 영감이 당신 맞아?”

“맞소. 그래, 내가 그 뤠인이라는 영감이오.”

노인은 지친 모습이다. 옷도 낡았고, 자잘한 상처가 얼굴과 목에 있다. 탁자 옆에 세워둔 지팡이가 그나마 새것이다.

“도망 다니길 5년. 드디어 그걸 풀어낸 사람이 나타났어.......”

“닥치고 영감. 전생에 이 물건, 이것과 비슷한 물건들을 차원 이동시킨 적 있지?”

황금 태엽을 꺼내 탁자에 거칠게 내려놓는다. 내 기세에 노인이 움츠러든다. 이날을 기다렸다. 아갈리의 성물과 같은 마력을 포함한 물건이 왜 중간계에 있는가. 그 물건을 만든 인간은 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몰랐다면 모르되, 안 이상 그 뒤에 있는 사정을 듣지 않고는 못 살겠다. 순수한 호기심과, 일말의 증오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죽일 놈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 그렇네만?”

“왜, 어떻게, 무슨 이유로 그런 건지 전부 말해. 죽기 싫으면 말이야.”

“우, 우선 그 살기부터 치워주게!”

노인이 짜내듯 외친다. 안색이 하얗다. 나도 모르게 진심이 되고 말았다. 그 정도로 나에게 이가 갈리는 일이다.

중간계와 아갈리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다. 아갈리와 지구는 이어져 있고, 지구와 중간계도 이어져 있다. 그러면 이 세 차원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을까?

라팔이 전에 말했다. 인류의 회귀는 인류가 멸종을 피하기 위해 거론되던 방법의 하나라고.

회귀, 시간을 되돌린다는 미친 짓까지 거론하던 놈들이고, 실제로 해낸 놈들이다. 이놈들이 시도했던, 또는 거론했던 방법 중에 이런 것도 있을 법하지 않을까?

-차원 이동으로 인한 다른 차원으로의 회피.

조건이 더럽게 까다로울 뿐이지 차원 이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원 이동이라는 방법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인류의 회귀의 주도한 놈들은 인류 연합이다. 만약 그놈들이 차원 이동 또한 시도했었고, 내 인생이 좆된 것과 그 계획이 모종의 관계가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자, 말해.”

살기를 치우도 다시 노인에게 얼굴을 들이댄다.

노인은 기가 빠진 표정으로 입을 뗀다.

“그 시간을 감는 태엽과 같은 물건을 차원 이동시킨 적이 있는가? 궁금한 게 이거 맞소?”

고개를 끄덕여 답한다.

“있소.”

그 순간, 손이 튀어나갈 뻔했다. 참자. 이 노인과 내 첫 번째 소환이 관련 있다고 확정된 것도 아니다. 죽이든 살리든, 이야기를 듣고 해도 늦지 않다.

그러니 참자, 참자. 참아. 참으라고!

비틀린 광기를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이야기는 좀 듣자 개새끼야. 내가 나랑 협상해야겠냐. 드디어 내 제정신 수치가 위험 게이지를 돌파한 모양이다. 조만간 자살이라도 해야겠어.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 몇 가지 계획이 거론되었소. 회귀가 가장 마지막에 시도되었던 방법이고, 그 전에는 살아남은 사람끼리 다른 차원으로 차원을 이동해 살아간다는 방법이 시도되었지. 우리도 지구에서 중간계로 차원 이동으로 이동되어 왔으니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었소.”

차원 이동에 의한 인류 보존 계획. 여기까진 예상대로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지. 공간 이동에 좌표가 필요하듯. 차원 이동에도 좌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끄덕여 답한다. 나만큼 그걸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 좌표를 구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것이 아갈리의 성물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 않아? 아갈리의 성물이 차원 이동을 돕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시실이. 그 의문이 막 풀리려 한다.

“다른 차원을 특정할 물건이 필요했소.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물건이. 그런 물건을 대량으로 만들어 여러 차원으로 보냈소.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저쪽으로 보낸 물건들에서 반응이 오지 않았소. 다른 차원에 도달하지 못하고, 결국 물건이 모두 차원 사이에서 사라졌다는 결론만 남기고 계획은 취소되었지. 좌표 없는 차원 이동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였소. 더 설명이 필요하오?”

내 추측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결론이 조금 다르다. 그 물건들은 훌륭히 아갈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성물로 추앙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갈리에서 차원 마법이 금기로 통하던 것도 성물의 탄생과 뭔가 관련이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하나 더, 만약 그 물건들이 만약 다른 차원에 성공적으로 도착했다고 하면, 그 차원과 지구가 연결될 수도 있나?”

잠깐 생각하던 노인이 말한다.

“충분히 가능하오. 중간계와 지구는 지금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니까.”

“차원간의 연결이 쉽게 되는 건가?”

“그게 쉽다면 인류는 회귀하지 않았겠지. 따지고 보면 회귀가 더 위험천만한 방법이었소만.”

좋아, 결국 내가 아갈리에 소환된 건 이 영감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뜻이군.

시간적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원 사이에 작용하는 시간은 엉망이니까. 내가 아갈리에서 10년을 넘게 지냈는데, 지구에서는 고작 4년 남짓이 지났으니까.

“마지막으로, 그걸 주도한 건 인류 연합인가?”

“맞소.”

판결을 내린다.

사형, 사형, 사형. 전부 사형이다. 영감탱이도 인류 연합도 죄다 뒈져버려라. 내가 뒈지게 만들어주마. 첫 번째 소환과 관련된 자들은 살려둬도 괜찮 겠다? 지랄. 막상 진실을 마주하고 보니 전혀 안 괜찮다. 전부 뒈져라.

“날 죽이기 전에 이 늙은이의 이야기나 조금 들어주시오.”

이야기? 기껏해야 유언이나 시답잖은 이야기겠지.

“다른 차원에 다녀왔지? 그럼 회귀하지 않았겠구려.”

내가 손을 쓰기 전에 노인이 선수를 친다. 칫, 이래서 머리 좋은 놈들은 짜증나. 벗어날 수 없는 말로 사람을 속박한다.

그 짧은 대화로 내가 다른 차원에 다녀왔다는 것까지 유추했다. 죽일 생각에 단서를 너무 많이 줬어. 일단, 노인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몇 겹의 결계로 이 장소를 막는다.

이 노인이 도망가면 낭패다. 내 가장 큰 비밀이 알려진다.

“도망칠 생각도 없으니 안심하시오. 나는 지쳤어. 구차한 생을 이어온 전부 내가 알아낸 것들을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함. 생에 큰 미련은 없다오.”

“그거라면 그냥 인류 연합에 말하지?”

“회귀, 시간과 공간과 영혼의 영역이오. 그리고 난 그 영역의 최고라고 평가받는 사람이고.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으니, 두 번이라고 없을까.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소?”

노인이 회귀의 단서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 인간들이 이 늙은이를 잡기 위해 사방에서 물어뜯으려 한다는 소리다. 인류 연합이 아무리 똘똘 뭉쳐 있다고 한들, 뭐, 영생은 아니더라도 영생 비슷한 것의 단서를 준다고 하면 눈 부릅뜰만하다.

여긴 생물을 초월한 존재조차도 죽어 나자빠지는 살기 팍팍한 세상이니까. 영생의 가치는 지구와 비교해도 비교가 안 된다.

“이해한 거 같구려. 그렇소. 난 날 노리는 자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소. 그 아티펙트들, 텔레포트의 공과 시간을 감는 태엽을 비롯해 여러 아티펙트를 남긴 것도 누군가 날 찾아와주기를 바라서였소. 실력 있고, 눈썰미 있고, 운까지 따라주는 그런 사람. 그런 자가 아니라면 이 말을 전달해도 소용없을 테니까.”

“뭔데? 말해봐.”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인류의 멸망은 막을 수 없소. 멸망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신들이니까. 인류의 신이 인류를 버리고, 멸망으로 이끄는 주범이오. 인류가, 우리가 살기 위해선 신들을 죽여야 하오. 그리고 이미 신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있소. 이미 몇 명의 신을 죽인 모양이오.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야 하오.”

“응, 그거 알아. 그리고 그게 나야.”

뭐야, 진지한 척 분위기 잡더니 다 아는 내용이었어? 시시하네.

“할 말은 끝?”

“저, 정말이오? 그대가.......”

툭, 노인의 목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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