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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124화 (12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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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만의 데스 나이트는 어때?”

미군 총사령부 작전 관리부 소속, 헨리 중령은 그 말을 듣고 식은땀이 흘렀다. 거리를 무시하고 그 말은 중령에게 닿았다.

결계. 하루 꼬박 때려도 흠집도 안 나던 결계가 사라지고, 검은 마력을 뿜어내는 1만에 달하는 언데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데스 나이트, 분명 표적은 그렇게 말했다. 러시아의 라스푸틴도 겨우 200여 마리 거느리는 것이 한계인 그 괴물.

그럴 리가 없다. 상식적으로 1만이나 되는 데스 나이트를 인간의 정신력으로 통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헨리 중령은 이성적으로 그리 생각했다. 직관과 상식, 둘 모두가 불가능을 가리켰다.

그래, 저건 허세다. 데스 나이트가 몇 기 섞여 있긴 하겠지. 그래도 1만의 언데드 정도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다음 말이 들려 왔다. 그의 예상을 모두 깨부수고 뛰어넘는 한 마디.

“아, 얘네 통제 안 된다. 나중에 나한테 뭐라 그러지 마라?”

인간의 정신력으로 통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통제하지 않으면 된다.

산자, 생자들을 찾아 달려오는 1만의 데스 나이트를 보며 헨리 중령은 깨달았다.

아, 여기가 지옥이구나.

***

데스 나이트란 쉽게 말해 생전의 기억을 가진 언데드다. 기억이 있으니 자아 또한 존재한다. 데스 나이트를 부리려면 그 자아를 지배해야한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마력과 정신력. 마력 쪽은 넘치는데, 정신력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부분을 지배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조종할, 반신급이나 성가신 진명을 가진 데스 나이트들만을.

여담으로 평범하게 만드는 언데드는 영혼이 없다. 내 제자가 그런 경우로, 제자놈은 시스템에서 반쯤 벗어난 존재다. 스텟은 보이는데 진명을 잃었다고 한다.

반면, 여기 있는 언데드들은 모두 원혼이라지만, 자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생전에 비하면 미약하나마 진명을 사용한다.

데스 나이트가 진격한다. 원혼들은 데스 나이트가 되고 통제권을 잃는 과정에서 맛이 갔다. 간단히 설명하면 폭주했다.

죽은 것들은 날것들, 산 것들을 싫어한다. 자신과 정반대의 물질을 좋아하는 것은 자석 정도다. 보통은 밀어내고 배제하기 마련이다. 내가 당했듯이.

포격과 레이저 빔이 데스 나이트들을 관통한다. 그러나 데스 나이트가 두른 검은 마력이 상처를 메우고, 데스 나이트는 다시 전진한다.

영화에서 보던 좀비와 군대의 전쟁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저 좀비들은 슈퍼 좀비. 탱크도 맨손으로 때려 부수는 좀비라는 점. 그리고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는 점.

이거, 미군에 승산 완전 없잖아?

그래도 데스 나이트의 회복은 무한이 아니다. 나라도 1만의 데스 나이트가 무한히 회복할 정도의 마력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계의 마법이 다 될 때까지. 날 중심으로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법의 효력이 다할 때까지다.

시간은 충분히 벌어주리라 생각한다. 그 안에 처리할 것들을 전부 처리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사실 지면 도망가면 된다. 내가 잃을 건 아무것도 없다. 편해서 참 좋다.

데스 6개의 데스 나이트가 날 호위한다. 엑스트라A도 여기 있다.

반신으로 만든 데스 나이트 6체. 이놈들을 지배하느라 뼈가 빠져라 마력을 짜내고 정신력을 소모했다. 두 체 더 만들 수도 있었는데, 두 놈은 죽자마자 시체와 영혼이 깔끔하게 사라져 기회가 없었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이것들이라면 언제 어디서 반신이 기습해 와도 내가 도망칠 시간은 벌어줄 수 있다.

데스 나이트의 선봉과 군대가 출동한다. 마법과 검기가 군대를 향하고, 응사가 이어진다.

총포가 빗발치고, 마법이 빗발치고, 레이저가 빗발치고, 뭔지 모를 알 수 없는 공격들도 빗발친다.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 이곳의 정체성을 모르겠다. 현대와 과거와 미래와 판타지가 공존하고 있으며,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어울리고 있다.

폭격을 가하려는 비행기를 데스 나이트가 된 마법사들이 날아가 저지한다. 나이트인데 마법사라니. 데스 위치라고 해야 하나.

데스 위치와 전투기가 화려한 공중전을 벌인다. 땅에선 데스 나이트들이 현대 화기와 미래 화기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다.

여기서 문제, 이 장소의 정체성을 찾아 5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답, 전쟁터.

생과 사가 오가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며 미래에 영향을 주는 장소. 또는 그런 행위. 인생의 어느 부분이 안 그렇겠느냐마는 가장 그것들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바로 전쟁터다.

여느 전쟁과 다른 점에 있다면 지금 이곳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생과 사가 복잡하게 뒤엉켜 서로를 옭고 있다는 것 정도.

그럼 전쟁을 주체하는 자들은?

답, 지휘관.

예로부터 전쟁은 윗놈들의 특권이었다. 윗놈들이 싸워라! 하면 아랫것들이 으랴! 하고 가서 죽는다. 그리고 공은 전부 위에서 가져가지. 중간계도 퍽 다름없어 보인다.

주체가 죽으면 파티는 어떻게 된다?

답, 쫑난다.

지휘관이, 사람으로 치면 뇌가 뒈졌는데 어떻게 하겠어. 몸도 뒈지거나 누가 고이 모셔가 장기 팔아먹거나 해부학 교재로 써먹겠지.

그런 고로, 난 지휘관만 노리면 된다.

괜히 뒤쪽에서 천천히 산책이나 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지휘관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총사령부는 몰라도, 현장 지휘관은 반드시 전장에 있다.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 명확히 다른 행동을 하는 놈. 열심히 무전 때리는 놈. 화려하게 차려입은 놈.

모두가 대상이다.

수백 발의 마력 화살이 하늘에 생겨난다. 그것들이 일제히 지휘관들을 향해 날아간다. 화살의 방향이 아주 노골적이다.

대령님을 지켜라! 대장을 지켜라! 지휘관을 보호해라! 기타 등등의 외침과 함께 겨우겨우 유지되던 전열이 무너진다.

앞에서 싸우는 저놈들이 좀 해줬으면 한다만, 폭주한 데스 나이트와 데스 위치에게 이성을 바랄 수도 없다.

무너진 틈 사이로 죽은 자들이 파고들어 산 자들을 도륙한다. 전장을 이탈하는 놈들이 생겨난다. 데스 나이트, 보기만 해도 움츠러드는 사념을 품은 언데드. 사기 저하에 좋은 녀석이다.

짓밟히고 도망가는 적군. 그렇다고 마냥 일방적이냐면 그건 또 아니다. 데스 나이트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놈들이 많다. 정화되어 사라지는 놈들도 있다. 성자와 성녀도 데려왔나. 성가시게 됐다.

찾아보니 성자와 성녀로 추정되는 놈들은 저 뒤쪽에서 보호받고 있다. 놈년들을 중심으로 진열이 재정비되는 중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내가 움직일 차례다.

6개의 데스 나이트, 데스 위치와 함께 전장을 돌파한다. 내 주위로 수백 개의 마법과 검기가 날아가 전차와 레이저 발사기를 비롯한 무기를 파괴한다. 사람보다는 무기가 더 위협적이란 판단이다.

옆에서 희미한 살기가 느껴진다. 목을 비틀기 무섭게 칼날이 머리가 있던 자리를 쓸고 지나간다. 암살자로 보이는 놈은 내가 반격하기도 전에 허공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앞과 옆을 네 명이 포위한다.

암살자를 포함해 이놈들 모두 반신이다. 어떤 놈은 기세를 완전히 드러내고 있고, 어떤 놈은 안으로 숨겨 평범한 사람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내 감이 경종을 울린다. 방심하면 따끔할 거라고.

드디어 나왔군.

전열을 붕괴하고 지휘관을 노린다. 마지막으로 최휘의 발버둥인 성녀와 성자를 죽인다. 그러면 이 전쟁은 끝이다.

그 전에 날 견제하기 위한 놈들이 튀어나왔다는 이야기다. 숨어서 기회를 볼 작정이었겠지만, 기회가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나게 생겼는데 지들이 어쩌겠어.

도망가거나 빨랑 튀어나와 한판 붙어보든지 해야지.

날 둘러싼 적을 본다. 다섯. 숨어 있는 암살자까지 포함해 여섯.

그리고 여긴? 반신으로 만든 데스 나이트 여덟에 나까지. 승산은 없다.

“믿는 구석이 있으신가.”

빈정대며 묻는다.

“있다.”

말쑥한 남자한테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있다면 있는 거겠지.

핵탄두 둘을 아공간에서 꺼낸다. 꺼내기 무섭게 핵탄두가 사라지고, 내 손에도 알 수 없는 힘이 간섭한다. 마력장을 풀자 손이 그대로 사라진다. 피도 흐르지 않는다.

재생은? 안 된다. 무언가 힘에 막혀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안 된다. 뭐지 이거?

“통한다!”

일종의 확인 작업이었던 것 같다. 내 손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자마자 사방에서 반신들이 공격해온다.

이럴 때를 대비해 데스 나이트를 만들었다. 반신의 시체와 영혼으로 만들어진 6개의 데스 나이트가 조를 짜 대응한다.

3초 정도는 나에게 닿지도 못하게 할 수 있겠다. 고민할 시간은 충분하다.

사고 가속 실시. 소리가 길어지고, 세계가 느려진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른다.

진명을 사용할 땐 영혼이 움직인다. 내 왼손을 없앤 진명을 가진 건 왼쪽에 있는 여자다. 진명의 효과는?

체감시간으로 약 이틀을 생각했지만, 짐작이 안 된다. 그 영향으로 살짝 머리가 띵하다.

반대로 이 손을 자라게 할 방법은 있을까? 진명의 대응법은 그걸 보고, 일어나는 현상에 대응하는 것. 일어난 현상은 내 왼손의 소멸, 그리고 재생 불가.

진명의 효과는 고밀도의 마력으로 걷어낼 수 있었다. 어디 볼까.

팔목, 손이 사라진 절단면에 마력을 집중한다. 고밀도의 마력이 모여든다. 반응이 있다. 왼손이 재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재생을 중지한다. 속으로 웃는다. 이거면 됐다.

이 소멸이 저놈들 비장의 수단이라면, 걸리는 척해주면 알아서 죽을 자리를 찾아올 것이다.

난 편하게 수확만 하면 된다. 아주 편한 싸움이 될 것 같다.

사고 가속을 푼다. 데스 나이트를 뿌리친 두 명의 반신이 지척에서 날 공격하고 있다. 사뿐히 옆으로 피하며 마법을 안면에 박아준다. 공간 좌표가 꼬여 있어 텔레포트는 못 쓴다. 이렇게 만든 놈도 잡아야 할 텐데 말이야.

몇 번 피하다, 공격 두어 개를 허용한다. 하반신이 걸레짝이 되었다. 그 대가로 날 공격한 근육질 아저씨가 데스 나이트의 먹이가 되었다.

하나 처리.

남은 넷이 뒤로 빠지며 숨을 고른다. 첫타의 암살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놈도 조심해야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들리지 않는다. 텔레파시 계열이라면 나도 도청할 방법이 없다.

재생하는 하반신을 소멸을 가진 여자가 소멸시키려 하는데, 마력장을 형성해 막는다. 사라지는 것이 곤란하면 소멸 자체를 막아버리면 된다.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고 안간힘을 쓴다. 팔을 주는 거면 몰라도 다리를 줄 수는 없다. 이해해 달라.

대신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능력이 확실히 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나방을 꼬실 때 중요한 것은, 불나방들이 달려드는 장소가 불이라는 것을 모르게 하는 데 있다. 불나방들도 자신이 뛰어드는 장소가 불 속이라면 주저할 것이다.

비밀 회의를 마쳤는지 네 명의 반신이 다시 신중히 다가온다. 데스 나이트는 하나가 망가졌고, 하나가 간당간당하다. 소멸의 진명을 막느라 데스 나이트에 가는 마력이 줄었다.

그래도 승기가 나에게 있다는 것은 변함없다.

자, 승산 없는 싸움을 계속해보자. 불나방은 자기가 날아가는 장소가 지옥의 불꽃 속이라는 것을 언제 알아챌까.

***

로스앤젤레스는 중간계에서 새롭게 탄생한 미국의 중심이다. 말만 로스앤젤레스지 실은 실리콘 밸리와 로스앤젤레스 사이에 생겨난 것이 중간계의 로스앤젤레스, 신 로스앤젤레스다.

실리콘 밸리의 막대한 최신 생산 시설들. 그것들로 핵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동남아시아 연합군이 그토록 원하던 우라늄 광산도 옛날에 확보했다.

이번 전쟁에도 핵의 투입이 작전안에 올라와 있다.

“한 사람, 개인과 5개 연합국의 전쟁이라니, 우스워서 말도 안 나오는군.”

혼잣말하며 총사령부 작전 입안자 겸 작전 책임자 잭 메이슨은 손에 든 열쇠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열쇠를 책상 서랍 둘째 칸에 숨겨진 공간에 꽂고 돌린 다음,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면 목적지를 향해 5발의 핵미사일이 발사되게 되어 있었다.

자신의 계획에는 핵 투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인류 연합과 인도 정부, 유명무실해졌지만 아직 목소리만은 높은 중국 정부에 의해 작전안 마지막에 핵 투하가 추가되었다.

전장에 투입된 6명의 반신이 모두 죽거나, 병사들이 7할 이상 죽으면 핵을 쏘게 된다. 핵은 공간이동으로 목표지점 상공으로 이동, 피할 틈도 없이 폭발해 사방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잭 메이슨은 피식 웃으며 열쇠를 손 안에서 굴렸다. 투입된 반신만 6명. 중국의 대 반신용 전술 병기 3대. 기타 병력 6만 가량.

어마어마한 전력이다. 그러니 이 열쇠가 사용될 거라는 상상은 허황된 것에 불과하다.

잭 메이슨은 손안에서 열쇠를 굴렸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려고.’

============================ 작품 후기 ============================

그런데 그 설마가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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