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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123화 (12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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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쟁이 터져도 지형이 이렇게 변하진 않을 거다. 황폐해진 땅에는 용암이 온천처럼 솟아나고 있다.

폐허가 된 땅에 드러누워 휴식을 취한다. 불사가 아니었다면 10번 정도 죽었다. 치명상을 입은 숫자로 따지면 더 많다. 오크의 신하고 싸웠을 때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래도 피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알바트로스는 인류 최정예를 칭할 자격이 있다. 내가 인정한다. 빌어먹을. 특히 엑스트라A라는 행동대장이 대단했다. 농담이 아니다. 둔기인지 대검인지 모를 무기의 일격에 대지가 갈라졌다.

검신이라는 노인은 전백귀후십귀를 들고 공간까지 갈랐다만, 그건 진명. 마력과 물리력을 초월한 능력의 힘이다. 행동대장은 순수한 자신의 힘만으로 이걸 이뤘다.

전백귀후십귀 없이 검신과 행동대장이 싸웠다면, 행동대장이 여유롭게 이겼을 것이다.

여태 진명을 너무 경계했다는 생각이 새롭게 든다. 진명 없이 강한 인간도 충분히 존재한다. 능력도 능력 나름이고, 사람도 사람 나름이라는 거다.

진명 없이 순수하게 본신의 능력이 뛰어난 인간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깨닫고 보니 그 끝에 있는 게 나구나.

진명도, 기능도 없는, 이 세계의 주민들이 받는 혜택은 하나도 못 받고 있는 나 말이야. 심지어 기본 기능이라는 언어 능력도 내가 스스로 학습해 익힌 것이다.

세계의 악의가 느껴진다. 세계가 날 왕따시키고 있어.

적당히 쉰 것 같다. 땅에 난 구덩이 몇 개를 메우고, 알바트로스 5명의 시체에서 목을 벤다. 불에 그슬려 머리카락을 태우고, 가죽을 벗겨 두개골을 분리한다.

그걸 쌓아 작은 탑을 만든다.

“이건 좀 초라하네.”

100개짜리는 전투에 휘말려 가루가 되었다. 그것과 비교하면 5개짜리 탑은, 탑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초라한 물건이 되어 있다.

앞으로는 신경 써서 관리해야지. 죽일 놈도 많은데 이런 소일거리라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죽이겠어.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난다.

하루하루, 날이 지날 때마다 목을 베는 단검의 날이 나간다. 날이 새면 날이 나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피를 닦지 않은 단검에 녹이 슨다. 아침과 저녁의 단검은 분명 같은 단검이지만 검의 날은 하루하루 메말라 쩍쩍 갈라져 간다.

단검의 날이 나가고 녹슬수록, 녹이 묻은 해골도 늘어간다.

해골이 탑을 쌓고, 탑이 늘어간다. 내 키만한 백색 탑이 황색과 흑갈색의 흙 위에 자라나듯 생겨난다.

인도의 그놈들과 알바트로스를 빼면 그다지 강한 놈들도 없었다. 유럽에서 왔다는 마법사 늙은이들도 왔었지만, 마법사는 나와 상성이 너무 나빴다.

덤으로 왜 마법사란 놈들이 전부 늙은이냐고 라팔이에게 물었는데, 그런 인간들은 대부분 지구에서 이름 날리던 과학자나 수학자란다.

노인들의 마법은 꽤 매서웠다. 맨몸으로 중간계에 던져진다고 젊은이가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지혜와 지식을 쌓은 인간은 무시할 게 아니란거군.

나는 백색 탑들 사이에 앉아 해골을 굴리며 놀고 있다. 데굴데굴 내 손에서 해골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다. 불어온 바람에 떼구르르 해골이 탑에서 굴러떨어진다. 몇 개의 탑은 무너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탑을 다시 세운다. 손으로 하나하나 차분하게. 정성스럽게? 그건 잘 모르겠다. 무너졌으니 세운다. 적이 오니 죽인다. 죽인 적의 해골을 쌓는다.

이 과정이 내 안에서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작동하고 있다.

이곳엔 삭풍이 늘었다. 바람이 살을 엔다.

잡초가 무성하던 평원은 무참한 황야가 되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해골이 서로 부딪혔는데, 그게 꼭 해골의 노래로 들린다.

해골의 합창이 때론 고요하게, 때론 높게, 멈추지 않고 황야에 깔려 깔짝거린다.

“대단하군. 너는 정말 인간인가.”

난데없이 불청객이 나타났다. 붉은 머리의 불청객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나의 정적을 깬다.

“왔다 싶으니 개소리냐. 인간 맞다.”

“인간이 이런 외도를 걷는가?”

과연, 드래곤인가. 성가셔하는 머리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외도? 그럼 반대로 묻겠는데. 인도(人道), 아니 생도(生道)란 뭐냐?”

내가 하는 짓이 인간을 벗어나 있어 외도라면, 그 전에 인간을 묻고 생명을 물어야겠지. 난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도 없고 남에게 당당히 내세울 철학도 없다.

그냥 이렇게 살아왔으니 이렇게 살아간다. 이유도 철학도 없이 내가 이 모양이니 이 꼴로 살고 있다.

잠시 고민하던 드래곤이 말한다.

“그렇군. 내가 실수했다. 한 방 먹었어. 이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지. 그러니 외도와 인도를 논할 수도 없음이다.”

이해했다면 됐다. 시비선악? 전부 개나 주라지. 결국 세상이란 내가 보는 세상이다. 다른 어느 세상도 아니고 내가 보는 세상. 내가 결정하고 내가 만족하면 된다.

“그걸 떠나서도, 정말 너는 인간인가?”

드래곤의 눈은 백골의 탑에서 떠나지 않는다.

“출생을 따진다면 인간이지.”

나는 담담히 무너진 탑을 세우며 말한다. 흑마법으로 처리된 해골의 표면은 매끈하다.

“어떻게 하면 한낱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지?”

“좆빠지게 발버둥 치면.”

한참을 침묵하다. 드래곤이 입을 연다.

“그런가.”

즐겁다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 이상의 대화는 없이, 드래곤은 돌아갔다.

***

해골이 늘어난다. 현상금 사냥꾼. 명성을 원하는 애송이. 내게 불만인 조직과 나라.

모두 해골이 되었다. 단검은 녹슬어 쓸 수 없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딱밤을 날리니 툭 부러졌다.

“끄응차.”

허리는 전혀 아프지 않지만, 기분상의 신음을 내며 일어선다. 해골도 많이 늘었다. 너무 늘어서 백 단위는 넘어 보인다. 잡초가 자라듯 모르는 사이 백골의 탑이 자라난 기분이다.

탑을 쌓은 건 나지만 모르는 사이 이렇게 늘어나 있다니 무서울 지경이다.

저 멀리서 강한 적의가 느껴진다. 또 적인가.

수는 만 단위. 드워프, 동남아 연합인가? 만 단위의 병력을 쓸 수 있는 건 그놈들 정도다.

우라늄을 가지고 왕녀가 교섭에 들어갔을 건데, 실패했나?

이 전쟁의 시작은 우라늄 광산 때문이었다. 내 존재와 별개로 왕녀가 상대방에게 사신을 보내 우라늄 매장이 사실인지 다시 알아보라고 교섭을 했었다. 왕녀도 나 때문에 나라가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내가 몽땅 뽑아내 그 땅에 우라늄은 없으니 전쟁할 이유도 사라졌을 터. 얻을 이익이 없다면 전쟁은 단순한 돈 낭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병력을 끌고 온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무시하고 탑 쌓기를 계속한다. 탑의 숫자가 늘어나니 삭풍에 무너지는 숫자도 늘어나 큰일이다. 마법으로 고정하면 안 되냐고? 소일거리로 하는 짓인데 마법으로 안 무너지게 해버리면 일거리가 사라지잖아.

데굴데굴, 바람에 이리저리 구르는 해골을 모아 쌓길 반복하는 사이 군대가 가까워졌다.

과연, 그런 건가.

가까워진 군대를 보고 저들이 비효율적인 행동을 한 이유를 알았다. 군대 사이사이에 나부끼는 미국의 국기. 병사들의 무기도 확연히 다르다.

미국이 끼어들었나. 거물이 뜨셨군. 그 밖에 내가 모르는 나라의 국기도 드문드문 섞여 있다. 아주 작정하고 왔다.

군대는 내 결계와 거리를 두고 멈춘다. 포격이 쏟아진다. 포탄과 마법과 레이저 빔이 결계를 두드린다. 결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가 괜히 여기 가만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동안 잉여 마력을 전부 결계에 투자했다. 전에 얻은 우라늄도 가공을 끝냈다.

왕녀는 최고의 인력을 꾸려 내 요구 사항에 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상민에게서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정확히는 여길 뜰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고.

일이 커지자 최대한 자료를 복사하거나 간추려 나라를 뜬다는 방향으로 정해졌다. 아직은 괜찮지만, 적의 규모와 화력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위험해질 때가 반드시 온다. 가령, 봉인 계열 진명을 가진 반신을 포함해 다섯 정도의 반신이 오면 나는 도망갈 수밖에 없다.

그걸 위한 도주 준비다. 내 처지에 한 장소에 오래 있어 좋을 게 없다.

포격은 꼬박 하루 밤낮을 이어졌다. 그래도 결계는 거뜬하다. 버티려면 사흘은 더 버틸 수 있다.

하루 동안 적의 전력을 파악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미래 병기와 현대 화기, 그리고 병사들. 반신이 없을 턱이 없는데, 보이지 않는다. 숨겨둔 거겠지.

내가 저것들과 싸우고 있으면 빈틈을 찔러올 것이다. 노림수에 그대로 걸려줄 수는 없지.

결계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엉덩이의 흙을 털어내고, 손에 묻은 흙도 털어낸다. 적들은 갑자기 사라진 결계에 반대로 경계하며 공세를 멈춘다.

드래곤이 나보고 말했지. 외도라고.

확실히 이건 남들이 보면 외도다. 인외마도. 그러나 나는 답한다. 이게 나의 인도라고.

살기 위해 뭐든 해왔던 나의 인도가 이것이다.

“생천(生天)을 묶어 지상에 저주한다.”

아갈리의 언어가 내 입에서 나온다. 주술적 언어가 황야 가득한 백골에 깃든다. 주술도 마법의 한 갈래긴 하다. 그러나 사용하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마법이 인위적인 것이라면, 주술은 자연적인 것을 활용한다. 자연적인 현상을 살짝만 왜곡해 원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 주술이다.

사람이 죽으면, 살해당하면 영혼은 어디로 갈까? 일부는 시스템에 속박되어 다른 사람의 경험치가 되고, 나머지는 허공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영혼을 흡수하지 않는다.

내 몸에 흡수되지 않은 영혼들은 백골의 탑에 묶여 있다.

바람이 차갑고 날카롭다. 훈풍이 불던 장소에 이유 없이 삭풍이 불 리 없지 않은가. 영혼이 지르는 귀곡성이다. 영혼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나에게는 만에 달하는 영혼이 지르는 고통과 저주가 보이고, 느껴진다.

영혼이 원한을 가지면 원혼이 되고, 유령이 된다. 그걸 잡아 활용하는 것이 흑마법이라는 마법이다. 뭐, 엄밀히 따지면 영혼과 원혼은 전혀 다른 거지만.

“지상에 묶인 불쌍한 원혼들이여, 나를 따르라.”

영혼은 내 저주에 의해 훌륭히 원혼이 되었다. 생전 그들의 육체, 두개골은 멀쩡하다.

자, 제자리를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의 충실한 종이 되어라.

결계에 충전되어 있던 마력이 원혼들에게 주입된다. 하늘에서 거대한 회백색 회오리가 소용돌이치며 지상으로 강림한다.

수백 개의 해골탑, 원혼이 그 사이를 누비며 자신의 머리를 찾는다. 원혼이 해골에 들어간다. 해골이 떨그럭 거리며 말하기 시작한다.

저주한다. 저주한다. 죽어라. 죽어라. 내장을 입에 처넣어주마. 네놈 해골을 항문에 쑤셔주마.

세상 모든 욕이 다 여기 있다.

언어 그 자체가 저주가 되어 날 덮친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다. 그 정도 저주로는 날 어쩌지 못한다. 미적지근하다.

더 저주해라. 저 강해져라. 더 날 즐겁게 해봐라.

회백색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가운데서, 나는 양팔을 펴고 미친 듯이 웃는다.

외도? 천만에. 이건 인도다.

이 소리를 들으라. 이 저주를 들으라. 가장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집념과 사념과 저주와 원망을.

걸걸한 시장판이 여기 있다. CEO들의 사내회의가 여기다. 아래에서 위까지를 어우르는 인간적인 것들의 총체가 바로 여기. 이것. 이 저주들이다.

드래곤에게 들려주고 싶다. 자, 인간의 소리를 들으라!

저주가 사그라든다. 어차피 이런 것이다. 저놈들의 의지는 내 마력을 뚫지 못한다.

백골의 탑, 그 자체가 곧 영혼을 묶어두던 마법진이며 마법의 매개다. 탑이 해체되며 해골이 회백색 회오리 속에서 떨그럭거리며 저주를 토한다.

땅에서 뼈가 파 올려져 해골의 몸에 조립된다. 살이 자라고, 머리가 자란다. 해골이 사람이 된다.

“이봐, 미국에서는 좀비 영화가 인기라지?”

소용돌이가 사라진다. 검은 마력을 두른 1만의 언데드가 나를 둘러싼다.

“1만의 데스 나이트는 어때?”

무려 미국을 상대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해줘야 균형이 맞지.

============================ 작품 후기 ============================

데스 나이트 한 마리에 일희일비하는 쪼잔한 네크로맨서는 가라!

바야흐로 데스 나이트가 범람하는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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