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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118화 (11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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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야, 니가 그러면 안 되지. 너도 범죄자라서 여기 있는 거잖아.”

“그래도 나는 그 정도로 사람이길 포기하진 않았다!”

장렬한 태도가 뭐라 할까.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을 보는 것 같다. 너무 약해서 죽일 마음도 안 든다고 할까. 사람 사는 도시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서 난동부려 도시를 날려버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은 말할 때 문 열어라. 응? 우리 나비가 옆구리가 시리다고 하는데, 사지를 잘라서 나비 옆으로 갈래?”

그래서 협박했다.

“드, 들어가시죠!”

내 마력을 살짝만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 문지기 둘이 사색이 되어 문을 연다. 정의로운 척해도 뿌리는 범죄자. 약육강식 앞에서는 나약하구나.

가마가 성안으로 들어간다. 시작부터 시선을 왕창 끈다.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이 끄는 가마. 내가 생각해도 수상하긴 하다. 이참에 66마리로 통일해볼까. 진짜로 마왕의 가마 취급당할 것 같다. 중2병이 도지겠어.

다짜고짜 공격해오는 바보는 없다. 간만에 느긋하게, 사람들 사이에 들어왔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야.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한다고.

제일 비싼 여관에서 제일 비싼 음식을 먹으며 푹 쉬고 싶다. 여관은 어디 있을까 찾자니 누가 다가왔다.

딱 봐도 전령처럼 생긴, 온몸에서 ‘전 전령입니다.’라는 아우라가 나오는 사람이다.

“이 도시의 주인께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진짜로 전령이었다. 전령들은 알게 모르게 인상이 다들 비슷하단 말이지. 전령계열 진명이라는 게 진짜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경우 효과는 살아 돌아올 확률의 증가가 되나?

전령을 죽여 목을 보내는 건 어디서나 유행했으니까.

“주인? 그게 누군데?”

“리베리안님이십니다.”

“야, 너는 내가 내 친구가 홍길동이다. 라고 말하면 홍길동이 어디 사는 누구고 직업이 뭐인지까지 전부 아냐? 타심통이라도 익혔어?”

자길 유명인이라고 생각하는, 또 그 유명인 주변에서 일하는 놈들은 이래서 문제야. 자기 이름만 말하면 만민이 모두 아이고 그렇습니까! 이거 몰라뵈었습니다! 하고 떠받들 줄 안단 말이야.

이름만 툭 뱉어놓고 그게 누군지 나한테 알라 하면 알 도리가 있나.

자세한 설명을 하라고.

“리베리안님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이 눈치 없는 전령 새끼는 설명은 안 하고 혼자 놀라고 자빠졌다. 리베리안인지 블루베리인지 그 이름을 내가 왜 외워야 하는데. 전령의 수준을 보니 주인의 수준도 보이려 한다.

만나도 크게 득 볼 거란 생각이 안 든다. 그러면 움직일 필요가 없다. 보복 같은 걸 해봤자 지들이 얼마나 하겠어? 인류 전체에 수배령을 내리는 것보다 심해? 인류의 적이 된 지금 자잘한 일 한두 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었다.

수배령이 내려지기 전에도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리베리안은 드래곤이에요. 그것도 이름 높은 고룡인데요.”

“포루시안인가 포러시안인가 하는 놈보다 쎄냐?”

“글쎄요. 둘이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드래곤이라, 이걸 만나러 가면 두 번째 만남이 되겠다. 첫 번째 만남은 너무 허무하게 끝나서 드래곤이 뭔지에 대해 알아볼 시간도 없었지. 라팔이에게 물어도 되고 유상민에게 물어도 되지만, 내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으니까.

“가자. 안내해.”

“알겠습니다.”

무식해서 목이 언제까지 붙어 있나 안쓰러운 전령이 길을 안내한다. 저런 놈을 전령으로 쓰다니 리베리안이라는 드래곤의 수준도 대충 짐작이 되지만, 예상이 항상 맞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일단 판단은 보류해두자.

리베리안의 거처는 역시라고 할까. 거대한 저택이었다. 힘 있는 놈들이 크고 넓은 집에서 사는 건 종족이 달라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자부심에 차 전령이 저택의 정원이 어떻고 자재가 어떻고 설명하는데, 내 감상은 딱 이거다.

“가마에서 내리지 않아도 돼서 좋네.”

정문에서 정원을 거쳐 저택의 입구까지 길이 나 있어 가마에서 내려도 되지 않아서 좋았다. 그거 말고 다른 감상은 없냐고? 나한테 뭘 기대하는 거냐고 묻고 싶다.

이런 저택은, 이것 보다 수십 배는 커다란 궁전도 셀 수 없이 봐왔다. 부수기도 많이 부쉈다. 건축물로 날 감동시키려면 세계 유산 정도는 들고 와야 할 것이다.

너무 감정이 메마른 것도 같지만, 내가 살아온 환경이 그러하니 어찌하랴. 감성적인 놈은 전장에서 판단을 그르치고, 그러면 죽는다. 꽥!

아무리 대저택이라도, 수십 명이 끄는 가마를 들고 저택 안을 거닐 정도는 되지 않았다. 우린 가마에서 내려 저택 안으로 향한다.

“저기... 그건?”

“아, 이거. 애완동물.”

대답을 들은 전령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왜 그래? 애완동물 처음 봐? 고작 애완동물 하나에 저렇게 놀라다니 이상한 놈이다.

참고로 목줄을 찬 나비는 네발로 기어오고 있다. 목줄은 쥔 건 라팔이다. 애완동물의 관리는 나와 좆집들이 내키는 대로 번갈아가며 하고 있다.

나비에게는 쇠로 된 의족을 네 개 만들어주었다. 그것들을 허벅지와 위팔에 끼우고 네 발로 걷는 것이 현재 나비의 이동 방법이다.

의족을 주고 자신이 애완동물이라고 납득시키는 것까지 오래도 걸렸다. 그래도 아직 반항기라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언제 날 잡아 조교를 해야겠다.

애완동물답게 몸은 알몸. 나비가 걸을 깨마다 커다란 가슴이 땅으로 축 늘어져 흔들리고 엉덩이가 실룩실룩 움직인다. 눈이 호강하는 장면이다.

나는 인정 있는 사람이라, 의족에 마법을 걸어 저걸 차고 있는 한 추위와 더위를 타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기타 자잘한 마법 방어에 피로 회복 기능까지 합치면 저 의족 하나하나가 국보급 아티팩트는 될 거다.

애완동물은 애정으로 보살피는 거라고 들었다. 그래서 신경 좀 썼다.

떨떠름한 얼굴의 전령이 우릴 안내한다. 그래도 나에게는 보인다. 전령의 눈이 힐끔힐끔 나비를 향하는 것을. 나 말고 우리 일행은 전부 알고 있을 거다. 전령 본인만 모른다.

나는 이런 말 잘 안 쓰는 데, 엄청 천박해 보인다. 이놈 주인이라는 드래곤에 대한 흥미가 점점 떨어진다. 생산적인 대화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제대로 된 인간, 아니 생물이여라.

“이곳입니다.”

전령이 안내한 방에는 붉은 머리칼을 남자가 앉아 있었다. 머리를 올백으로 넘겨 이마가 훤히 드러나 시원한 인상을 준다. 날카로운 눈빛이 사위를 훑는다. 적어도 멍청하고 하등한 놈은 아닌 것 같다.

일행을 한 번 둘러 본 드래곤이 마지막으로 날 본다. 나도 드래곤을 본다. 난폭한 마력이 내부로 잘 갈무리되어 있다. 반박귀진이라 해야 할까. 겉으로 보면 그냥 놀기 좋아하는 젊은이로 보인다.

“똘마니와 다르게 주인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데.”

“제법 눈칫밥 먹은 놈이라 수족으로 부리고 있긴 하다만. 부족한가?”

“저걸 봐.”

마침 똘마니, 전령은 흔들리는 나비의 가슴을 곁눈질하고 있던 참이었다.

“흠. 확실히 천박하군. 내 앞에서만은 제대로 처신하기에 저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처분하지. 라는 말과 함께 전령의 몸이 녹아내린다.

“끄아아.......! 몸이, 내 몸이이이!”

슬라임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려 마지막에는 바닥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똘마니의 비명이 환청처럼 귓가를 떠돈다. 내가 손가락을 튕기자 환청이 사라진다.

“헛짓하고 있어. 싸우자고 불렸냐. 그럼 바로 싸워주고.”

미약하지만 음산한 저주다. 효과는 며칠 악몽을 꾸는 정도? 저게 날 시험하고 있다.

“이 도시를 포기하는 대가인데, 조금의 시험 정도는 나쁘지 않지 않을까?”

“대가?”

“최근 정세가 안 좋아서 이 도시에는 여러 나라와 길드의 세작이 잔뜩 들어와 있지. 그런데 너 같은 거물이 들어왔으니 도시가 멀쩡할까.”

내 현상금이 얼마더라? 대충 소국의 1년 예산은 된다고 들었다. 음, 그런 먹이가 있다고 소문나면 누구라도 한 번 찔러는 보겠다.

적당한 균형감도 있고, 적당히 건방지기도 하고, 나랑은 잘 맞을 것 같은 놈이다.

“잡담은 됐고, 본론으로. 왜 불렀지?”

“인류라는 종족이 말살해야 한다고 지정할 정도로 위험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

리베리안은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띄웠다.

“그래서 감상은?”

“제법 공들여 만든 도시 하나가 사라지게 생겼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거 다행이군.”

“그런데 그건 뭐지?”

리베리안이 나비를 가리키며 묻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 묻네. 애완동물이라도 써놓고 다녀야 할까보다.

“애완동물.”

“좋은 취미군. 오래 살다보면 애완동물 하나 정도는 키우고 싶을 때가 있지.”

내 예상이 맞았다. 저놈도 저거 미친놈이다. 드래곤의 수명이 5천 정도라고 했던가. 미칠만하네.

“그래, 좋은 취미지. 아직 말을 잘 안 듣지만.”

그리고 나도 미친놈이고.

“볼일은 이걸로 끝? 그럼 대신 몇 가지 묻고 싶은데.”

이런 놈들 상대로 구태의연한 잡담은 필요 없다. 본론만 빠르게. 그게 제일 잘 통한다.

“뭐지? 아는 범위 내에서라면 대답해주겠다만.”

봐라. 효과 만점이다.

“이 근방에서 전쟁 중인 엘프 왕국이나 드워프 왕국은 없냐? 마족도 괜찮고.”

“다섯 개 정도 있지. 뭘로 원하나? 입맛에 맞춰 줄 수 있다만?”

반달을 그리는 눈웃음. 틀림없이 한 발 걸쳐서 즐길 생각이다. 내가 전쟁에 끼어들 생각이라는 건 이미 짐작한 것 같고. 비슷한 놈들끼리는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편하다.

“최대한 많은 종족이 얽히는 쪽으로.”

그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고, 그쪽이 더 많은 자료를 모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실리와 취향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매우 뜻깊은 전장이 될 것이다.

“조건에 맞는 게 딱 하나 있군. 엘프, 드워프, 요정, 인간까지 섞여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전쟁터가 있다.”

“오호.”

작게 감탄한다. 요정족이라도 엘프, 드워프 등을 묶어 부르긴 하지만, 엄밀히 요정이라는 종족도 따로 존재한다. 요정 그 자체는 매우 숫자가 적은 종족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종족까지 있다니 운이 좋다.

“그거 자세히 듣고 싶은데.”

“얼마든지. 그게 조건이었으니까.”

참으로 유익한 대화가 오간 후에, 최고급 숙소에서 최고급 음식을 먹으며 오랜만에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 사는 데는 한계가 있어. 특히 요리 부분에서.

***

중간계는 지구 전체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결국엔 중간계, 이 이름 모를 행성과 지구가 합쳐진다. 중간계라고 부르는 별의 크기는 지구보다 크다. 거대한 별은 여러 종족을 받아들이고 그 분쟁도 받아들인다.

인간과 인간의 전쟁이 있다. 인간과 엘프의 전쟁이 있다. 엘프와 드워프의 전쟁이 있다.

개중 가장 복잡한 것은 인간, 드워프, 엘프, 요정이 섞인 전쟁이다. 실질 마족을 제외한 북대륙의 종족 전체가 섞인 전쟁이다.

엘프의 국가에 드워프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광산이 있다. 엘프는 광산 개발권을 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전쟁이 터졌다. 아갈리에서도 느꼈지만, 지구의 현대 문명은 지나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복잡한 법과 체계가 없는 세계를 보라. 죽음과 전쟁이 이토록 간단하다.

드워프, 엘프, 요정, 오크, 고블린. 모두 익숙한 이름이다. 그 특성까지 비슷하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도 안 되잖아. 다른 세계 이종족의 특성이 우리가 알던 공상 속의 그것과 흡사하다니.

그에 관해 질문하니 유상민에게선 통일차원 이론이니 어쩌니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드래곤에게도 한 번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어쨌든, 중간계의 드워프도 내가 알던 것처럼 손재주 좋고 대장 능력이 뛰어나다. 동시에 대장일을 좋아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그들이 살아가는 것에는 다량의 광석이 소모된다.

반대로 엘프는 자연을 벗 삼는다. 요정은 다양하지만, 이 경우 숲의 요정이다. 숲을 아낀다.

둘은 숲이 개발되어 광산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것도 신령한 숲이라면 더더욱.

고로, 전쟁이다.

“장관이군.”

하늘에 있는 내 발 아래에서는 엘프와 요정이 무더기로 죽어나가고 있다.

============================ 작품 후기 ============================

다녀가는 것만으로 도시가 사라지는 수준하고는.......

최종보스가 너무 강해 인류가 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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