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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투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때리고, 부순다. 싸움 뒤에 남은 것은 처참한 시체뿐이다.
시체 하나에 네크로맨시 마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시체는 반응하지 않는다. 시체에 닿은 마력이 허무하게 흩어진다.
옆에 있는 시체에 다시 사용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되살아나 시체가 움직인다.
경쟁자, 같은 유물을 노리던 놈들의 시체만이 네크로맨시 마법에 걸리지 않는다.
“저것 때문인가. 쯧.”
네크로맨시 마법에 걸려 있는 놈들의 몸에는, 놈들이 죽었음에도 영혼이 잔류하고 있다. 다른 생명이 죽으면 일부는 죽인 사람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영혼을 다루는 기술은 정말 희귀한데요. 유적에서 얻은 기술일까요? 그러면 저희한테는 손해인데요.”
유상민이 시체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한다.
맞다. 이놈들의 이 기술이 우리와 비슷한 방법으로 유적, 유물을 찾아 얻은 거라면 우리한테는 손해다.
사막에서처럼 일회용인 유적이라면 저놈들이 얻은 순간 사라지고 이미 없다는 뜻이 된다.
경쟁자, 실력은 별거 아니더라도 존재만으로 해악인 놈들이다.
다음에 찾으면 되도록 살려서 고문해봐야겠다.
이건 잠시 접어두고, 나는 땅에 떨어진 지팡이를 집어 든다. 목걸이가 지팡이와 반응하고, 자연스럽게 내 머리로 지식이 전해진다.
사막과 늪지와 달리 객관적으로 정보만 전달하는 방식이라 마음에 든다. 아주 깔끔해.
이 지팡이의 주인이 연구한 것은 시스템에 대해서.
-시스템이란 신이 이 세계에 도입한 새로운 법칙.
-그들은 영혼의 통합성을 위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대표적은 증거가 바로 ‘언어’, 세계 공용어다.
-시스템의 유지에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약육강식 시스템과 함께. 시스템에 포함된 자들이 죽을 경우 그 영혼의 일부가 시스템의 동력으로 사용되도록 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에너지를 시스템에 공급하고 있는 것이 이세계에서 소환된 인간이다.
-신들에게 인간은 단순한 에너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의 멸종은 필연이었다.
언어, 그 지랄 맞은 놈. 그놈에 대한 비밀이 풀렸다. 이 정신 나간 공용어도 신들이 만들었고, 신들이 배포한 거란다. 그 수단은 아마 영혼과 관계되어 있겠지.
모든 지성체가 똑같은 언어를 쓴다는 미친 현상을 이제 이해하겠다.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인간이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이다. 그 말은 즉, 인간이 어떻게, 얼마나 발버둥 쳐도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는 말과도 이어진다.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언젠가는 쓰게 되어 있다. 인류가 살아남을 방법은 신을 죽이는 것 하나. 그러나 신들은 다른 종족들을 등에 업고 있다.
이런 사실이, 이런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만한 성과가 나왔다는 사실을 신들이 알면 바로 인류를 멸종시키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는 바로 인류와 다른 이종족의 전면전쟁이다.
이 세계는 너무 위험하다. 하나만 삐끗해도 전부 멸망으로 이어지다니. 아주 개판이야.
지팡이의 사용 가능 횟수는 3회. 내가 하나 썼고, 두 번 남았다.
나는 라팔에게 지팡이를 던져주고, 정보를 얻은 라팔이 다시 유상민에게 지팡이를 던진다.
역할을 다한 지팡이가 평범한 스태프로 변한다. 평범하다 해도, 내가 가진 아티팩트와도 견줄 만큼 성능이 좋다.
“이건 너 해라.”
“가, 감사합니다!”
지팡이를 받아든 피오라가 넙죽 고개를 숙인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살금살금 내 옆을 차지한 사랑이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황금 태엽을 꺼내 든다.
“지금부터 알아야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과거에는 말도 하고 살아 움직였다. 그렇다면, 과거를 엿보면 된다.
허공에 꽂힌 태엽이 돌아가고, 주변의 정보를 내게 전해준다.
-교전은 최대한 피한다. 물건만 탈취하고 바로 이탈한다.
-뭘 대장인 척 하고 있어. 다 같은 직위이면서.
-그럼 니가 지휘 할래?
-그냥 니가 해라.
경쟁자 놈들이 저택에 잠입하는 루트부터, 그놈들이 나눈 대화까지. 전부 머리에 들어온다.
-뤠인의 아티팩트가 경매에 출품돼? 그것도 텔레포트 아티팩트?
간과할 수 없는 대화도 하나 껴 있다. 대마법사 뤠인. 그 꼬리를 여기서 잡을 줄은 몰랐는데.
사이코메트리를 마친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가자.”
대화에 따르면 경매는 나중에 열린다. 경쟁자의 뒤를 캐고 나서도 충분히 손을 쓸 수 있다.
***
시간을 감는 태엽을 거듭 사용해, 경쟁자들이 왔던 길을 따라갔다. 그 끝에 로스앤젤레스 한 건물의 지하에 있는 비밀 공간에 도착했다.
“뭐 찾아지는 건 없냐?”
“없는데요. 텔레포트로 사라진 걸 무슨 수로 찾아요. 사이코메트리는요?”
“여긴 그냥 이동용 창구 중 하나. 특별한 의미는 없음.”
특별히 나눈 대화도 없었다. 대신, 흔적을 더듬으며 놈들끼리 한 잡담에서 몇 가지 정보를 건질 수 있었다.
조사대라는 팀이 따로 있고, 그 팀은 최소한 3개가 있다. 목적은 역시 우리와 같은 유적을 찾는 것. 유적에서 얻은 힘으로 뭘 하려는 건지는 불명.
검은 늪지에 갔다가 허탕친 팀이 있다는 말과, 경쟁자가 나타났다는 대화도 들었다. 저놈들도 우리를 의식하고 있다. 조금만 늦었다면 늪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 할 뻔했다.
만날 때마다 죽여주는 것이 좋겠다. 경쟁자는 되도록 빠르게 줄여두는 편이 좋다.
급한 일은 끝났다. 여행의 목적은 이뤘다고 봐도 되겠지. 뤠인의 아티팩트가 경매에 나오는 날은 모레. 하루 정도 경매에 대해 알아본다고 해도 하루가 남는다. 남은 하루는 관광이나 다니자.
지하에서 나와 할렘가도 빠져나온다.
치안 좋은 큰길을 걸으며 유상민에게 묻는다.
“여기 경매도 열리냐?”
“허구한 날 열리는 게 경매인데요. 곧 로스앤젤레스에서 직접 주최하는 큰 경매가 열릴 때긴 해요. 참가하게요?”
“이 태엽을 만든 사람의 물건이 나온단다.”
시간을 감는 태엽의 태엽 부분에 손가락을 넣고 빙글빙글 돌린다.
“갑부들만 참가하는 경매야. 돈 많아?”
라팔이 날 올려다본다.
“돈.......”
없다. 현물은 많은데 정작 가진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길거리 음식도 꼬지 하나에 아갈리 금화 하나로 퉁칠 정도로, 나는 현금이 없다.
“거기 현물도 받냐?”
“응.”
다행이다. 아공간에 있는 걸 전부 끄집어내면 어떻게든 되겠지. 나라 몇 개의 보물 창고가 그대로 내 아공간에 들어있다. 인플레를 계산해도, 설마 하나도 못 사겠어?
경매에 얼마를 써야할지. 낙찰 못 받으면 힘으로라도 해결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경찰이 다가왔다.
“거기, 다섯 분. 신분증을 제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말투만 정중하고, 얼굴로는 우리를 업신여기고 있다. 신분증? 그런 없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유상민이 신분증을 제시한다. 경찰의 시야를 가리며 다른 손으로는 우리에게도 신분증을 하나씩 던진다. 던진 신분증이 깔끔하게 손안에 들어온다.
경찰이 보면, 자연스럽게 신분증을 꺼낸 것처럼 보일 것이다.
신분증을 본 경찰의 표정이 구겨진다.
“음. 가짜 같은데? 여러분. 잠깐 경찰서까지 동행해주시겠습니까?”
생트집이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놈이 준비했다. 설령 위조라 해도 일반 경찰이 알아볼 거란 생각이 안 든다. 그리고 저 표정. 무슨 말을 해서라도 꼬투리 잡겠다는 얼굴이다.
한 방 갈길까?
갈기자.
“쿠헉!”
죽빵을 맞은 경찰이 날아가 유리창을 깨고 가게 안으로 날아간다. 유상민이 한숨을 쉰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
“처음부터 시비 걸 목적으로 접근한 것 같은데요. 이러나저러나 똑같아요.”
경찰이 일어나 총을 뽑아 조준하며, 무전기에 손을 댄다.
“여기는 오토 03. 여기는 오토 03. 원숭이들이 경관을 공격하고 있다. 지원 바란다!”
“무전 내용도 인종차별이냐.”
“여기도 경찰은 절대권력. 인종차별로 시비 걸고 반격당하면 실적 올리기 딱 좋아. 덤으로 예쁘면 인신매매로 팔려가.”
라팔이 말한다.
“경찰이 인신매매?”
미쳤구나. 경찰이라는 이름의 마피아 조직 아니냐?
“인종차별 개쩔어. 마족이 걸어가다 총 맞아도, 총 쏜 놈이 돈 좀 많으면 무죄야. 건드렸으니 우리 이제 수배자. 렛츠 파이트!”
귀엽게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라팔이. 그러면서 자기도 마력으로 몸을 강화하고 있다. 피오라는 죄 없는 마족이 총 맞는 일도 있다는 소릴 듣고 덜덜 떨고 있다.
“저항하지 않으면.......”
시끄러운 경찰의 사지를 잘라내고 내 쪽으로 끌어당긴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경찰의 배를 밟아 내장을 터뜨린다. 죽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경매는 어디서 열리냐?”
이렇게 된 이상 경매장으로 간다. 전부 털어버리고, 미국 일정을 깔끔하게 끝낸 다음에 귀국해버릴 거다.
“도시 중심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빌딩.”
“저는 좀 빠지고 싶은데요?”
돌격 태세인 우리에게 유상민이 의견을 타진한다. 딱 봐도 싫은 얼굴이다. 나는 놈에게 웃으며 대꾸한다.
“싫어. 너만 쏙 빠지게?”
찍혀도 모두 함께 찍혀야지. 혼자 즐길 거 다 즐기고 역경이 닥치니 쏙 빠지겠다니. 그런 건 내가 용납 못 한다.
“제 전투력은 4급 각성자한테도 밀리는데요? 미국의 화기에 버티지도 못하는데요?”
“그건 니가 알아서 할 일이지.”
“진짜요? 저 죽으면 앞으로 어쩌게요?”
“우리끼리 남은 걸 찾지.”
“저 죽는데요. 진짜 죽을 건데요.......”
유상민이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경찰의 지원이 사방에서 속속히 도착하고 있다. 빌딩 위에서 저격총을 들고 우릴 조준하고, 사방을 에워싸 무기를 들이댄다.
“라팔아, 사랑이 맡아라.”
사랑이 라팔 옆에 붙고, 나는 피오라를 어깨에 짊어진다.
“에, 네? 주인님?”
피오라가 당황해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조건 반사로 몸을 부르르 떨며 눈에 붉은 기운이 돈다. 아래쪽에 손을 넣어보니 벌써 흥건하다. 포위당한 상황이 무서웠던 것 같다.
“인질을 해방하고 순순히 투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무력행사에 들어가겠다.”
번쩍번쩍한 계급장 단 백인놈이 말한다. 나는 대답으로 상큼하게 엿을 날려 주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사방에서 야유가 들려온다.
“유전적으로 열등한 놈들이!”
“노란 원숭이가!”
“하, 동양인은 거시기가 달려있기는 하냐!”
저놈들이 감히 내 대구경 샷건의 존재를 의심한다. 그래, 사람은 보지 못한 건 믿지 않는 법이지. 나는 바지를 깐다. 당당히 발기한 내 물건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마력으로 혈류를 조절하면 발기 정도는 간단하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우둔한 하얀 원숭이와 검은 원숭이가 내 샷건의 자태에 감히 입을 열지 못한다. 비빌 걸 비벼야지. 남자의 자존심을 걸고 나한테 싸움을 걸다니. 배짱 좋은 놈들이다.
“더 지껄여봐. 패배자들.”
나는 우쭐대며 원숭이들을 조롱한다. 먼저 성기 크기를 물고 늘어진 건 저놈들인데, 내가 바지를 내리자 침묵한다.
내리라 해서 내렸는데, 왜 말을 못하니! 어쩐지 오늘은 운수가 좋더라니!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니다. 인질은 무시한다. 쏴라!”
인질? 아. 내 발밑에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하나 있었지. 지렁이의 머리를 밟아 부수고, 날아오는 총탄과 광선을 막는다.
광선총. 탈 것뿐만 아니라 무기도 미래 기술이다. 화려함에 비해 위력은 그렇게 크지 않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바지를 끌어올리고, 텔레포트를 사용한다. 도시 중앙에 있는 빌딩은 봐뒀다.
빌딩 옥상으로 텔레포트. 탐지 마법으로 빌딩 전체를 훑는다. 가장 지위가 높아 보이는 놈을 찾아 그놈에게 다시 텔레포트를 사용한다.
콧수염 기른 중년 신사의 멱살을 잡는다.
“이번 경매에 나오는 물건들, 어디 있어?”
내가 물건을 찾는 게 먼저냐. 경찰들이 우리를 잡는 게 먼저냐. 술래잡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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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추격전 같은 것도 써보고 싶었습니다만.
텔레포트 앞에서 그딴 건 없었습니다. 텔레포트, 진짜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