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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104화 (10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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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알베르토라고 불린 그놈이 걸어와 다섯 발짝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멈춘다.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본다.

다른 인간이 저랬다면 안면을 짓뭉갰지만, 저놈에게는 소용없다. 저 모습은 환영. 극도로 정밀해 실체와 똑같은 물리력을 지니는 환영이다.

물리력을 행사한다고 해도 환영은 어디까지나 환영. 없애도 본체에는 타격이 없다. 마력의 끈이 이어지지 않았나 찾고 있지만, 그것도 없다.

진명으로 인한 능력으로 추측된다.

죽여도 소용없다는 것을 안 이상. 라팔과 저놈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정보를 캐내는 쪽이 빠르다.

“가만있어.”

내 말에 사랑이 칼에서 손을 떼고, 피오라가 사용하려던 마법을 취소한다.

“듣던 대로 실력은 진짜인가 보네. 싸워서 이길 거란 생각이 안 들어. 라팔, 너는 강한 남자가 취향이었어?”

“으응.”

라팔이 고개를 흔든다.

“그럼 왜?”

“재미없어서. 여긴 재미있어.”

“큭. 하하. 재미, 재미 중요하지. 그 재미 때문에 닥터도 나가버렸으니까.”

“닥터, 나갔어?”

라팔이 고개를 갸웃한다. 이건 정말 의외라는 반응이다.

“그 아줌마도 괴짜니까. 영웅 놀이에는 질렸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할 일은 다 끝내놓고 갔으니 다행이야. 그런데, 진짜 안 돌아올 거냐? 일단 길마는 추격대를 보내니 마니 하는데.”

“죽어도 안 돌아가.”

“그래? 그럼 다음에 만날 때는 적이겠네. 배신자를 보고 보고를 안 할 수도 없으니. 아마 라이켄이 갈 거야. 혼자서라도 널 죽이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거든. 바이바이.”

“바이바이.”

금발 남자가 공간에 녹아들 듯 사라진다.

“너희 내부 사정이 상당히 개판인 모양이다? 탈퇴자가 그렇게 많아?”

“세 명 정도 나갔어. 닥터랑 나까지 포함하면 다섯. 서른에서 꽤 많이 줄음.”

서른 중에서 셋이면 1할이다. 많다면 많은 숫자다. 그리고 내가 죽인 게 셋. 나머지가 멀쩡하다고 해도 스물넷밖에 안 남는다.

많이 줄었네.

“저건 누구냐?”

“알베트로, 환술사 겸 탐지 전문. 캘리포니아 전역의 방위를 담당하고 있어. 들킬 줄은 알았는데. 너무 빨라.”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라팔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캘리포니아 전역의 방위라. 20개의 도시를 감시하는 레이더라는 거군. 괴물인가. 내 탐지 마법으로도 그건 힘들 것 같다.

“라이켄은 그 초록머리 맞지?”

“라이켄은 힘만 센 애송이. 그래도 다른 사람이 같이 오면 골치 아파.”

“그건 그때 생각하고, 가자.”

골목을 나와 목걸이의 반응에 따라 길을 걷는다. 막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동하고 있던 목표는 현재 멈춰 있다.

목걸이의 반응을 신중히 살피며, 로스앤젤레스의 거리를 눈에 담는다. 빽빽한 빌딩의 숲,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길거리에 주차한 푸드 트럭.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다. 그런데 하늘을 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거 아니냐?

요란한 소리를 내는 오토바이 무리가 하늘을 날고 서로 총을 쏴대며 빌딩 사이로 들어간다. 총격에 유리창이 요란하게 깨지지만, 누구 하나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만 빼면 총격전은 세종 길거리에서도 보던 거다. 여기나 저기나 치안은 비슷한 모양이다.

흑인이나 백인이나 황인이나, 피부색만 다르고 하는 짓이 다 똑같다. 심지어 종족이 달라도 하는 짓은 똑같으니 지성을 가진 것들은 다 이런 게 아닌가 하는 철학적 논제도 던져보고 싶어진다.

“신기하냐?”

나와 비슷할 정도로 눈동자를 바삐 움직이는 사랑이에게 묻는다.

“네, 조금요. SF 소설 같아요.”

대답하면서도 사랑이는 신기한지 하늘을 여기저기 구경한다. 하늘을 나는 탈것 말고도 홀로그램 간판이나 골렘처럼 생긴 무인 청소기 등 구경할 게 많다.

21세기 도시가 미래도시로 바뀌는, 그 절묘한 순간을 담아놓은 것 같다.

피오라도 안 그런척하면서, 잘 보면 꼬리 끝부분이 파닥파닥 움직이고 있다. 저거 자르면 다시 자랄까?

길에는 종족도 다양하다. 수인은 동물, 엘프는 귀, 드워프는 키와 근육. 내가 본 이종족은 일단 통일성이란 것이 있는데, 이놈들은 그게 없다.

리자드맨도 마족이고, 라미아도 마족이다. 켄타우로스도, 미노타우로스도 마족이다. 굳이 통일성을 찾자면 몸의 일부 또는 전신이 몬스터의 일부라는 정도다.

지구인이 보면 동물의 일부라고 하겠지만, 여기서 제대로 된 동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실상 몬스터의 일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언데드도 경우에 따라 마족으로 취급된다던데, 그건 어떨까 궁금하다.

음식도 사먹고, 길거리 공연도 구경하고. 그러면서도 착실히 목표와의 거리는 좁히고 있다.

“중심거리를 벗어나면 바로 할렘가야. 치안이 나빠져.”

딱 봐도 위생이 나빠 보이는 거리를 앞에 두고 라팔이 말한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은 전혀 다른 세계로 보인다.

일부가 부서지고 무너진 건물에 거리에 뿌려진 쓰레기들. 버려진 총기류도 보인다.

“시비 거는 놈들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건가.”

기왕이면 좀 참신한 방법을 사용해 줬으면 싶다. 여태 봤던 건달들은 패턴이 너무 뻔해서 재미없었단 말이야. 사람은 창의적이야 하는데, 그놈들은 머리에 뇌 대신 우동사리가 찼는지 매번 너무 똑같다.

“저희는 밀입국자라 일 크게 벌이면 바로 사형인데요?”

유상민이 말한다.

“나랑 로스앤젤레스. 누가 사형당할 것 같냐.”

날 사형하려다 로스앤젤레스가 사형당하는 수가 있다.

“그럼 진짜 인류 연합에 찍힌다고요. 인류랑 싸우고 싶어요?”

“덤비면 싸워야지.”

“전 싸우면 도망갈 거예요.”

당당한 도주선언이다. 처음부터 저 미친놈한테 전투력을 기대하진 않았다. 내가 저놈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설명충이다. 설명충은 설명만 잘하면 된다.

목걸이의 반응은 하렘가에서도 깊은 곳에서 느껴진다. 아까부터 멈춰있다.

목걸이의 인도에 따라 걸으니 커다란 대저택이 보인다. 더러운 주변과 달리 저곳만은 공기가 산뜻할 것 같다.

정문 앞에는 황소 두 마리가, 미노타우로스들이 커다란 기관총을 들고 지키고 있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기관총이다. 저걸 갈기면 빌딩도 무너지겠는데.

유상민과 라팔에게 눈짓하니. 둘 다 저 집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정면 돌파가 답인가.

정문에 다가가자. 미노타우로스가 나에게 기관총을 들이댄다.

“무슨 일이지?”

“손님에게 살기 풀풀 날리라고, 주인이 그렇게 가르쳤냐. 소머리 새끼야.”

어이쿠, 이렇게 험하게 돌아가는 혀는 누구 혀야? 내 혀네? 나는 아직 한마디도 안 했는데 총 들이대고 시비조로 말하면 내 심사가 고울 수가 있나.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오는 말에 똥을 한가득 발라 냄새가 진동하는데, 내가 고운 말을 돌려줄 이유가 없다.

“소머리?! 소머리라고!”

“감히 그 말을 꺼내다니!”

오, 내 혀가 독자적으로 짓거린 말이 저 소대기리의 역린이었던 것 같다. 두 소대가리는 능숙하게 잠금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긴다.

두두두두! 귀 따가운 소리와 함께 마력을 두른 탄환이 내 몸을 두드린다. 정신 나간 새끼들. 건물도 날려버릴 물건을 사람한테 쏴 재낀다.

나는 기관총을 무시하고 다가가 소대가리 하나의 무릎을 찬다. 무릎이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이고 소대가리가 음모하고 길게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다.

조준이 빗나간 기관총이 옆에 있는 소대가리를 갈겨 그 몸을 고깃덩어리로 만들고, 바로 이어서 기관총의 입구가 저택을 향한다.

마력이 담긴 탄환이 저택을 후려치고, 저택에 구멍이 뚫린다.

“.......”

고깃덩어리가 된 소대가리. 구멍 뚫린 저택. 그리고 기관총. 내 안에서 뭔가가 끓어오른다.

기관총이 날 부르고 있다.

무릎이 부러진 소대가리를, 머리를 밟아 터뜨려 마무리하고, 나는 떨어진 기관총을 든다. 묵직한 놈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라팔도 옆에서 나와 같이 기관총을 향해 허리를 굽힌다. 저 작은 몸으로 자기 몸만 한 기관총을 거뜬히 든다.

라팔이 날 보고, 나도 라팔을 본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다. 분명, 지금 우리 둘의 마음은 통하고 있다.

끄덕. 우리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라팔아!”

“발하라로!”

쇠문을 발로 차서 날려버리고, 내가 먼저 돌격하고, 라팔이 내 옆을 바짝 쫓는다. 기관총 옆으로 늘어진 탄환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낸다.

평화협상은 이미 글렀다. 그렇다면 무력시위만이 있을 뿐!

저택 안에서 검은 옷을 입은 놈들이 우르르 튀어나온다. 인간, 수인, 엘프. 다양한 종족이 있다. 나와 라팔이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거기에 기관총을 갈긴다.

두두두두!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람이 고깃덩어리가 된다. 탄환을 막으며 저항하는 놈들도 있지만, 마력으로 총알을 추가 강화해주면 그놈들도 똑같이 다진 고기 신세다.

“인간이 쓰레기 같구나!”

“인간이 쓰레기 같아.”

고기를 관통한 탄환이 잘 정리된 정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번쩍번쩍한 저택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

안쪽에서 계속 사람이 튀어나오지만, 기관총의 밥이다. 화력이 바로 진리다. 화력 앞에 인간은 폐기물에 불과하다.

기관총의 진리가 나와 함께한다.

털컥. 총알이 동났다. 기관총을 버리고 걸어서 저택을 향한다. 조금 떨어져 있던 라팔이 내 옆으로 붙는다.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며 살폿 웃는다.

총기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본 시간이었다.

뒤늦게 거물로 보이는 인물들이 저택에서 나온다. 걸음걸음에서 강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강자는 지랄. 니들이 신보다 쎄냐. 난 신보다 쎄다.

약한 놈들이 재롱떨고 있어.

걸어 나오는 놈 중 하나에게 목걸이가 반응한다. 정확히는 그놈이 들고 있는 지팡이에 반응하고 있다.

지팡이라. 마법사인 날 위한 물건이군. 곧 주인이 찾아갈게. 조금만 기다려라.

보스로 보이는 놈이 앞으로 나온다.

“노란 원숭이 하나와 유녀 한 명에 뚫리다니. 보안이 말이 아니군.”

인종차별이라. 이건 조금 참신하다. 그래도 너무 뻔해.

“속 터지면서 분위기 잡는 척 그만해. 존나게 없어 보이네, 쌍팔년도 연출이야 그거. 저 지팡이만 주면 관대하게 넘어가 줄게. 그러니까, 넘겨.”

“말이 통하지 않는 원숭이다. 죽여라!”

“제발 부탁이다, 싸우기 전에 수준 차이를 알아라. 제발! 하나뿐인 목숨은 소중히 해야지.”

목숨은 그렇게 막 버려도 되는 게 아니라고 내가 적을 설득하고 있다. 진짜, 정말로 자기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좀 알 필요가 있다.

적이다, 죽여라! 이 얼마나 무식한 사고방식인가. 못 배운 놈들의 무지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저 대가리로 용케 여태 살아 있다.

“응? 우리 수준 차이는 알고 싸우자.”

내 손짓 한 번에 달려오던 놈들이 바람에 찢겨 죽는다. 기관총에 맞은 것과 비슷할 정도로, 시체는 처참하다.

뒤에 오던 놈들이 몸을 사린다.

“지팡이. 넘겨.”

“아니, 그건 안 될 말이지.”

소리는 다른 쪽에서 들렸다. 저택의 뒤에서 나타난 일단의 무리가 저택 주인 일파의 퇴로를 막는다.

“저 지팡이의 주인은 우리다.”

“너흰 뭐야?”

저택 안에서 기척이 느껴져서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적이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노리고 있다. 지팡이는 겉으로는 크게 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걸 노린다면, 이유가 있겠지.

나와 같은 유적을 노리는 경쟁자라거나.

“대체 이 지팡이가 뭐라고!”

“우리의 비원을 이뤄줄 물건이다.”

저 말로 확실해졌다. 새로 나타난 저놈들은 우리 경쟁자다.

경쟁자가 나타나면 어떻게 한다?

죽이고, 뺏는다!

============================ 작품 후기 ============================

진정한 바이킹에게 대화는 필요 없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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