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100화 (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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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백 개의 형상 중 남은 것은 4개. 그중 둘은 인간과 고블린이다.

인간도 고블린도, 현재 신성력을 쓸 수 없다. 극히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이 성자와 성녀라는 이름으로 신성력을 행사하고 있다. 즉, 내가 오크의 신을 죽일 때 고블린의 신도 뒈졌다.

-나는 50년의 시간을 들여, 모든 종족이 사용하는 신성력의 성격, 그리고 그들이 가진 신화와 성서에서 신의 성격을 확인했다. 그 공통점을 잡아내는데 다시 10년. 그래서 찾아낸 것이 존재한다고 확신한 것이 네 명의 신이다.

4개의 형상 중에는 인간과 고블린 말고도 드워프도 있었고, 악마처럼 생긴 모습도 있었다.

-적혈신, 녹혈신, 요정신, 마신. 나는 네 신에게 이런 이름을 붙였지. 간단하게 말하면 적혈신은 붉은 피를 가진 종족을, 녹혈신은 초록 피를 가진 종족을. 요정신은 속성 친화도가 높은 종족을, 마신은 마족이라 불리는 놈들에게 신성력을 제공하지.

4개의 형상이 사라진다. 그리고 다른 환영이 나타난다.

-어디까지나 내가 확인한 신이 4명이란 거지. 신이 4명이 전부란 건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믿지는 말라고.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볼까.

“이때까지 본론 아니었어요?”

유상민이 묻는다. 나한테 묻지 마라. 내가 묻고 싶다. 신을 특정했으면 됐지. 거기에 뭐가 더 필요해?

-신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비대한 정신과 영혼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그놈들은 절대 전지전능하지 않아. 흑마법사처럼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해 마력과 영혼을 갈취하는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혹시 신앙을 모아 신이 될 생각은 하지 말라고. 그건 잘 돼봤자 사이비 교주로 끝이야. 신은 못 돼.

목소리만 들리는데도, 20대 중후반의 남자가 너스레 떨며 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신기한 목소리다.

-그럼 그 정신과 영혼의 덩어리인 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시스템의 관리지.

문자 하나가 환영처럼 나왔다가 사라진다. 아마 시스템의 그 당시 발음일 것이다. 중간계 말로 바꾸면 ‘뮈레세임’이라고 한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다.

시스템. 드디어 그 단어가 나왔다. 중간계 계급의 핵심. 인간 생존의 핵심. 그리고 나에게 소외감과 고독감을 안겨주는 녀석. 아직도 날 거부하는 녀석.

시스템이 없었다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마법의 마자도 모르고 마력의 미음도 모르는 인간들을 괴물이 득실득실한 중간계에 던져놓고?

무리다. 절대로 무리지. 총탄을 맨몸으로 버티는 놈들 상대로는 전쟁도 안 된다.

-몬스터를 죽이면 그 영혼 일부를 흡수할 수 있고, 그러면 스텟이 오르고 영혼의 그릇이 커진다. 이상하잖아? 영혼이란 게 그렇게 막 커지는 그런 물건일까?

안개가 나타난다. 안개는 커졌다가 작아졌다, 색깔을 바꿨다. 변화를 보인다.

영혼을 보고 느끼는 내 입장에서 말하면, 영혼은 그런 물건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고,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커지지. 성장하지 않는다.

-시스템은 신들이 생물의 영혼에 새긴 낙인이야. 그리고 효율적인 체계지. 내가 아무리 천재 소릴 들었어도 생물을 벗어난 경지에 오르진 못했을 거고.

효율적인 체계라는 것은 인정한다. 죽이면 강해진다. 더 강한 자를 죽이면 더 강해진다. 심플하지만, 그만큼 효과는 확실하다.

아갈리에서 벽에 막혀 십몇 년씩 시간을 낭비하는 마법사들만 봐도 그렇다. 벽에 막힌다는 것은 영혼의 그릇이 다 찼다는 소리. 마력의 성장도 정체된다. 말 그대로 답보 상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중간계에서는 벽에 막힌 마법사라도 몬스터만 잡으면 계속 강해질 수 있다. 이 얼마나 효율적인가.

-우리에게 영혼이란 진명 정도의 가치를 가지지만, 정신과 영혼의 덩어리인 신들에겐 그게 자기 몸 같은 물건이란 말이야. 만난 적은 없지만, 만약, 신이 진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걸 쓰러뜨린다고 끝이 아니라는 말이지. 신의 영혼을, 정신을 없애야해.

사라졌던 4개의 형상이 다시 나타나고 그것들의 몸에 칼이 꽂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영혼이 튀어나온다. 그 영혼 또한 무언가에 의해 지워진다. 이야기에 따라 나타나는 환영. 어린이 인형극을 보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사막의 노인도, 이 유적의 주인도, 거기에 대해선 같은 의견인가. 신의 육신을 죽인다고 끝이 아니다. 영혼까지 멸해야 비로써 신을 완전히 멸하는 것이다. 그런 건가.

-그런데 이놈들이 참 영악한 점이 뭔지 알아? 바로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거야! 시스템, 온갖 종족의 영혼이 뒤섞이는 장치! 그리고 슬며시 자신들의 영혼을 그 루틴 속에 집어넣었지. 바로 자신들이 선택한 종족들에게.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네 개의 색을 가진 안개가 떠오른다. 뒤로는 작은 인형들이 나타났다. 인형들은 모두 하나의 색을 가지고 있다. 안개는 수백 개로 흩어져, 수백 개의 인형 속에 들어간다. 인형의 색이 안개의 색과 섞인다.

인형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영혼은, 색깔은 더욱 섞여간다.

인형이 얼룩덜룩 물든다.

-내가 말했지? 신이란 정신과 영혼의 집합체라고. 그놈들에게 영혼은 자신의 몸과 같아. 즉, 신의 일부가 우리 안에 깃들어 있다 이거야. 중간계의 원주민들은 신을 해할 수 없어. 신을 해하려 하면 자신의 안에 있는 신의 영혼. 그게 막을 테니까. 그럼 신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여러 색의 페인트를 끼얹은 모양의 인형이 사라지고, 하나의 색을 가진 인형이 나타난다.

-그게 바로 인간. 중간계에 존재하지 않는 외래종. 그런 우리가 중간계를 활보하면 신 입장에선 너무 무섭지 않아? 그래서 신들은 우리를 소환하고, 우리의 영혼을 물들이는 거야. 시스템, 그리고 튜토리얼.

하나의 색을 가진 인형이 괴물을 죽인다. 괴물을 죽이고,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죽일수록 인형의 색이 변한다. 알록달록, 얼룩덜룩. 더러워진다.

-튜토리얼에서부터 우리는, 인간은 이미 더러워지기 시작했어. 그게 무슨 소리냐? 억울하게 끌려온 우리는 신에게 복수조차 못 한다는 뜻이지.

더러워진 인형이 검게 물들어 머리부터 으스러진다. 그건 마치, 목소리 주인의 좌절을 표현한 것 같았다. 인형에 불이 붙는다. 불이 붙은 인형이 천천히 되살아난다. 처음의, 본래의 색으로.

-신이 우리를 여기에 부른 이유는 나도 몰라. 그리고 인류를 멸종시키려는 이유도 모르고. 그건 내 연구 주제가 아니거든. 그래도 이 사실을 안 이상 가만있을 수는 없지 않겠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놨지.

불 속에서 되살아난 인형은 알통을 만들며 자세를 잡는다.

-오염된 영혼을 정화하는 마법. 그걸 천재이신 이 몸이 개발했다.

근육을 자랑하던 인형이 안개로 화하고, 안개는 다시 복잡한 마법진을 그린다.

-만들긴 했는데, 영혼이란 게 건들기 어렵더란 말이야. 그래서 막대한 마력을 먹게 되었어. 이런 오지에 내가 유품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지. 왠지 모르겠지만, 이 땅은 마력을 흡수한단 말이야. 땅에 흡수되는 마력 일부를 이곳으로 돌려서 모으고 있지. 다음 사람이 올지도 모르니까, 딱 한 사람만 영혼을 정화해줄게.

허공의 마법진이 사라지고, 바닥에 똑같은 마법진이 생겨난다. 막대한 마력이 마법진으로 응축되고 있다.

-주의점. 중간계 대부분의 인간이 가진 강함은 남의 영혼을 흡수해 생기는 강함이야. 영혼을 정화해버리면 스텟도, 마력도 전부 초기화되겠지?

상큼한 목소리로 끔찍한 말을 하고 있다. 게임같은 시스템이 있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다. 현실이다. 스텟이 초기화되면 다시 찍을 수 없다. 인간이, 이종족이 평생을 걸쳐 쌓아 올린 것 대부분을 앗아간다.

신을 죽이겠다면, 그 여정에 몸담겠다면 이 정도의 역경에는 기꺼이 몸을 던지라는 의지가 느껴진다.

음, 이놈들은 회귀 안 한 거 맞지? 회귀한 인류는 여기뿐이지? 세상에 미친놈이 너무 많다.

-물론 수련으로 강해진 부분은 어느 정도 남고, 앞으로는 몬스터를 잡아도, 사람을 잡아도 스텟이 오르지 않을 거야. 오로지 수련으로 강해져야 한다는 뜻이지. 아, 진명은 남아. 그건 니 영혼이거든.

그것만으로 모자라 족쇄까지 채운다. 수련으로만 강해져라. 중간계 인간들은 그게 얼마나 개 같은 일인지 모르겠지. 물론 나도 모른다.

근데 보기는 했다. 수십 년 동안 수련해도 경지가 오르지 않아 미쳐버린 마법사를 아갈리에서 숱하게 봤다. 그들 대부분은 사도에 손을 대 흑마법사로 전직했다. 그리고 토벌됐다.

이 인간은 지금 사람들에게 그런 길을 강요하고 있다.

“누구 할 사람? 아니면 내가 하고.”

뭐, 나는 상관없다. 내 영혼이 순수하다는 사실은 신이 증명해주었다. 그래도 약간의, 티끌만큼 오염된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상태로도 신을 죽이는 데는 문제 없겠지. 그런데 내가 싫다.

내가, 내 영혼이 이 세계에 물드는 것이 싫다. 그뿐이다.

“전 사양할게요.”

“나도 싫어.”

유상민과 라팔이 거절하고.

“저도 사양하고 싶습니다.”

“싫어요.”

남은 둘도 거절이다. 살짝 피오라에게 얼굴을 갖다 대며 묻는다.

“진짜 싫어?”

“시, 싫.... 하 할게요.......”

“농담이야.”

나는 피오라의 어깨를 두드린다. 피오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신과 싸우는 건 나 혼자면 된다. 끼워달라고 해도 끼고 싶은 마음도 없다. 누가 뭐래도 그놈들 목은 내 몫이다.

-마법을 받을 사람이 중앙에 서고, 나머지는 벽으로 물러가. 중앙에 아무도 서 있지 않으면 마법은 그냥 취소될 거야.

나만 중앙에 서고, 나머지는 벽으로 물러난다. 마법진의 빛이 강해지고, 내 몸에 마법이 작용한다. 그 흐름을 관찰한다.

마법과 영혼은 따로 떨어진 영역이다. 사막의 노인은 영혼만을 이용해 자신의 유지를 남겼고, 진명이란 힘도 마법으로 간섭할 수는 없다. 간섭하는 것은 진명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뿐. 그것도 나는 순수한 마력으로 떨쳐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마법으로 영혼에 간섭하는 경우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억해둬서 나쁠 건 없다.

작은 기대를 가지고, 오감을 끌어올린다. 동시에 노인에게서 얻은 능력. 영혼을 보고 느끼는 능력도 최대한 사용한다. 내면으로 파고든다.

내 의식은 나의 영혼만을 비춘다. 마법진에서 나온 마력이 꼬여서 작용하는 것을 관찰한다.

흐음. 이런 건가. 마법식이 많이 귀찮다. 일단 통으로 베껴두자. 나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완전기억능력 최고다.

마법진에서 나온 마력이 영혼과 뒤섞인다. 그리고 내 영혼의 오염된 부분을....... 정화하는 장면을 보기 전에 움직여야 했다.

“뭔가 와요!”

“홀리 쉿.”

유상민이 가장 먼저 눈치챘고, 라팔이 무표정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 정도로 상황은 안 좋다.

유상민이 사랑을 안고, 라팔이 피오라의 꼬리를 잡는다. 둘이서 나에게 달려온다. 라팔아, 그래도 그 취급은 너무하지 않니. 피오라의 안면이 바닥에 쓸리고 있다. 불쌍한 것.

나도 마찬가지로 네 사람을 향해 달린다. 집중하고 있던 내가 반응이 제일 늦었다.

서로 뻗은 손이 맞닿는 순간. 텔레포트로 상공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거대한 촉수가 유적을 감싸고 짓뭉개고 있다. 유적은 구겨지고 부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된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촉수의 아래서 무언가 움직이며 유적을 삼킨다. 저건 몬스터의 일부다. 내 감이 말한다.

“저런 몬스터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데요.”

유상민이 난감한 얼굴로 말한다. 그 얼굴은 창백해져 있다. 저 촉수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빨리는 마력이 극심해졌다. 늪지의 마력을 흡수하는 원인이 저놈이었다.

유적을 먹어치운 촉수가 지상으로 나온다. 늪을 헤엄쳐 올라오고 있다. 그 거대함 속에서 나는 신성력을 보았다. 저 특유의 느낌은 신성력이 틀림없다.

“신성력을 가진 몬스터. 들어본 적 있냐?”

“전혀 없는데요. 죽이고 나면 시체는 조금 가져와 주세요.”

“그래.”

네 사람을 검은 늪지 밖으로 텔레포트 시킨다. 빌어먹을 몬스터 하나가 겨우 얻은 단서를 가져가버렸다. 화풀이를 위해서라도 넌 좀 죽어야겠다.

내 몸에서 마력이 뿜어진다. 마력 흡수? 좆까. 난 마력 무한이다.

============================ 작품 후기 ============================

무효화 상위호환인 마력 흡수. 마력 흡수 상위호환인 마력 무한.

너와 나는 완전한 상성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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