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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검은 늪지는 그냥 늪지다. 검은색 늪지. 질척한 대지는 발 들이는 사람을 빨아먹고, 마력도 빨아먹는다.
맨몸으로는 고양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인간이 맨몸으로 총탄을 막게 해주는 원동력. 마력. 그것을 빼앗긴다.
늪지를 내딛는 것만으로 그 마력을 빼앗긴다. 그런 늪지의 특성과 다른 여러 요소가 겹쳐, 검은 늪지는 개발이 힘든 험지가 되었다.
나는 그런 험지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력이 빨리긴 한다. 그것도 꽤 많은 양이 빨린다. 그래도 내 마력에 비하면 물 한 방울 새는 것만 하다.
“으. 피곤해에.”
라팔이 나한테 매달린다. 내 허리를 타고 올라와 그대로 내 오른쪽 어깨를 차지해버린다.
“다른 얘들은 다 멀쩡한데 너만 왜 그러냐?”
유상민하고 사랑이는 멀쩡하다. 피오라는 아직 쿨쿨 자고 있어서 모르겠다.
“마력이 많을수록 많이 뽑혀. 그리고 내 동력은 마력.”
“싸우는 데 문제는 없냐?”
“전투는 가능해. 전투력 2할 정도 저하 예상.”
그럼 됐다. 피신할 시간만 있으면, 텔레포트로 피하면 된다. 그게 아니라도 도망갈 수단은 많다. 내가 도망칠 일은 어지간하면 없겠지만, 대비해 나쁠 건 없다.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좋은 게 당연하다.
“정확한 위치는 어디냐?”
아까부터 빛나는 목걸이를 들여다보고 있는 유상민에게 묻는다.
“잠깐만요. 마력이 빨리는 것 때문에 집중력이.......”
푸른빛을 내는 목걸이를 눈이 빨개지도록 노려보던 유상민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눈을 감는다.
“저쪽이요.”
“아, 네 저기요?”
막 깨어나 땅에 내려온 피오라가 작게 눈살을 찌푸린다.
“왜?”
“아뇨, 저긴 유적이 있는 장소라서요.......”
“유적?”
내 눈길이 향하자, 피오라가 몸을 움츠린다.
“오래된 건물인데, 마력 흡수 현상이 극심해서....... 늪의 종족들도 가지 않아요. 마력 흡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저희도 그 주변에선 어쩔 수 없어요.”
즉, 가면 잉여가 되니까 가지 않는다는 건가. 나라도 그런 장소에는 안 가겠다. 자기 힘이 약해질 장소를 굳이 찾아가는 동물은 없다.
“위치를 알면 잘됐네. 앞장서.”
“네, 주인님.”
피오라가 앞장서고, 우리는 뒤를 따른다. 발이 푹푹 빠지는 늪지는 마력으로 발판을 만들어 해결한다. 아갈리에서 늪지도 몇 번 가봤는데, 늪지라고 해도 밟을 자리가 없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잘 찾아보면 보이지 않는 디딜 장소가 많다. 식물도 그런 장소에서 자란다.
그러나 여긴 아니다. 디딜 곳이 없다. 그냥 없다. 풀이나 나무들도 늪지 위에 둥둥 떠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몬스터들도 늪지 위를 스치듯 다니거나 아예 늪 아래에 있는 것들도 탐지 마법으로 관측된다.
피오라의 경우는 하반신을 이용해 헤엄치듯 늪지 위를 스르륵 움직인다.
이동도 힘들고 마력도 빨린다. 질척한 흙과 높은 습도 때문에 기계를 사용하기 좋은 환경도 아니다. 왜 인간이 개척하지 못하는지 알겠다.
“잠깐만요.”
유상민이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앞서가는 피오라를 향해 묻는다.
“그 유적이라는 곳, 정말 사람이 가지 않는 장소에요?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는 유상민. 그 말을 듣고 나도 탐지 마법의 범위를 넓혀본다. 저만치 앞에 있는 구조물, 유적이라 추측되는 구조물에는 인간과 이종족이 몇 명이나 보였다.
대치 중인 것이 평화로운 상황으로는 안 보인다.
“네?”
“일단 가자고.”
피오라를 제치고, 내가 앞장선다. 위치를 확인했으니 안내는 필요 없다.
조금 빠르게 걸으며 유적의 상황을 확인한다.
-썩을 인간 놈들!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먹을 것만 내놓으면 얌전히 물러갈 거다. 그러니까 음식을 내놔라.
-누가 그 말을 믿을 줄 알고!
인간들이 유적에 올라가 있는 이종족을 협박하고 있다. 도마뱀 머리를 리자드맨이라 했던가. 라미아도 몇 보인다.
당장 공격이 오갈 것으로는 안 보인다. 천천히 가도 되겠다.
여유롭게 걸어서 현장에 등장한다. 나는 유적 아래서 농성하고 있는 인간들을 차분히 밀치고, 유적을 향해 걸어간다.
“뭐, 뭐야?”
나한테 밀쳐진 남자가 당황한다. 밀쳐졌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내 어깨에 축 늘어져 있는 라팔이를 보고 말을 잃는다. 그 맘 안다. 우리 라팔이가 좀 귀여워야지.
“니들 할 일 해. 우리 건드리면 죽는다. 먹을 거 없으면 이거나 처먹고.”
툭. 가죽 주머니 하나를 던져준다. 입이 심심할 때 먹으려고 챙겨 뒀던 육포다. 육포란 건 먹으면 의외로 배가 찬다. 양도 많으니 아껴 먹으면 사흘은 먹을 거다.
앞을 가로막는 놈을 살려준 것으로 모자라 먹을 것까지 나눠줬다. 나치고는 과한 친절이다.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더니. 내가 죽을 날이 가깝나보다.
“자, 잠깐! 대체 어떻게 여기로 들어온 거야? 노예들, 노예들은?!”
“그런 거 못 봤는데.”
내 대답에 놈들이 머리를 맞대고 소곤댄다.
“갔나?”
“포기했을 수도 있어. 여긴 원래 놈들이 오는 장소가 아니라잖아.”
“넓게 포위망을 펼쳤을지도 모르지. 일단 유적을 거쳐서 크게 우회하자. 늪지만 벗어나면 돼!”
소곤거리는 대화지만 전부 들린다. 들리는 대화에서 유추해보자.
갔나. 포기. 포위망.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 저놈들 복장을 보니 딱 봐도 비싼 장비다. 한 놈이 옆구리에 찬 단검에는 중국군의 마크가 있다.
그냥 중국 기득권이 풀려난 노예들을 피해 도망쳐온 모양이다. 기득권, 군대의 기득권이니 기본적인 실력은 있을 거고, 실력이 있으니 여기까지 도망쳤겠지.
그리고 도주 생활이 한계에 달해, 잡히기 직전에 여기로 도망쳤다는 건가. 범죄자가 성지나 금역으로 도망가는 이야기는 자주 있다. 그 맥락으로 생각하자.
“저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복장을 보라고 등신아! 여기까지 왔는데 옷에 진흙 하나 안 묻어 있잖아. 그리고 처음에 건드리면 죽는다는 소리 못 들었어? 덤비면 죽는 거야. 우리는 그냥 음식이나 받아서 곱게 꺼지는 게 사는 길이야!”
합의를 마친 놈들이 후다닥 달려간다. 한 놈은 인성 좋게 나한테 꾸벅 고개까지 숙이고 간다. 그래, 이게 세상사는 거지. 서로 돕고 감사도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안 그런 놈들이 너무 많아. 하나를 주면 열을 뺏으려 하는 놈들. 완만하게 일이 해결된 것이 얼마만인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상한 것들도 치웠겠다. 유적에 들어가자. 그런데 유적에 들어가려는 우릴 잡것들이 말린다.
“잠깐! 감히 인간들이 어딜 들어가려 하느.......”
말이 끝나기 전에 허공에 커다란 불덩어리가 출현한다. 돌도 녹일 정도의 온도를 가진 불덩어리에 도마뱀 머리가 말을 삼킨다.
“인간이 뭐? 계속해 보지?”
여기는 위협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예의인가? 난 저놈들보고 예의를 잘 지킨다고 칭찬해야 하는 부분이고?
“여기가 니들 집이냐?”
“아, 아니다!”
“니들 땅이고?”
“아, 아니다!”
“깝치지 마라. 진짜 뒤진다.”
입을 다문 이종족 무리를 무시하고, 유적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설게요.”
유상민이 앞으로 나와 길을 튼다. 전문 인력이 일해주면 나야 좋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서 유상민을 따라간다.
멈추지 않고 쭉 앞으로 나아간다.
망할 신들에 대한 정보가 여기 있다. 그래서 난 매우 기분이 좋다. 그러니 다소의 깝죽거림은 관대하게 넘어가 줄 수 있다. 그런데.
“죽고 싶다고 따라오는 거 맞지? 그렇지?”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는 것 못 참겠다. 우리가 유적에 들어오자 이종족들도 슬금슬금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다.
“아, 아닙니다! 그냥 저희도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리자드맨 하나가 황급히 뛰어나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는다.
“볼일? 무슨 볼일?”
“늪지 전체에 큰 시련이 닥친다고 했습니다. 이곳에 오면 그걸 물리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해서 온 겁니다!”
“누가 그랬는데?”
“저희 부족의 대모님께서 예언하셨습니다! 대모님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언이라,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고 애매모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진명이다. 원리는 모르지만 확실하게 존재하는 능력. 차라리 미래를 볼 수 있는 진명이라면 모를까. 예언이라니. 성가시기 짝이 없다.
“거짓말 같냐?”
유상민에게 묻는다. 거짓말 판별에 대해선, 우리 중에 얘가 제일 뛰어날 것 같다.
“아니요.”
“라팔이 너는?”
어깨가 불편했는지. 내 목으로 기어 올라와 목마를 타고 있는 라팔한테도 묻는다.
“아닐 것 같아.”
자기 차례가 오지 않을까 사랑이가 두근두근하며 날 보고 있다. 본인이 원하니 한번 물어는 보자.
“너는?”
“거짓말은 아닐 것 같아요.”
“피오라.”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만장일치로 거짓은 아닌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면.
“그래, 잘 찾아봐.”
니들 갈 길 가라.
“무시하고 가자.”
짐 덩어리를 들고 가도 될 정도로 우리 몸은 가볍지 않다. 라팔이를 봐라. 그 팔팔하던 얘가 축 늘어져 있다. 나도 빨리는 마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말로 무시 못 할 정도로, 상당한 양이 빠져나간다. 강제로 마력을 뽑아가는 것이 나한테 시비 거는 것 같다. 쪽쪽 뽑아가며 성질을 살살 긁고 있다.
늪지 개간 사업을 추진하고 싶어졌다. 유적에서 얻을 것만 얻으면 갈아엎어 버리겠어.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냐?”
“목걸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는 가고 있는데요.”
유적 안쪽으로도 상당히 들어왔다. 규모가 꽤 있는 유적이다. 자세히 보면 유적 내벽에 마법적 처리가 되어 있다. 투시 마법과 탐지 마법으로 살펴보니 유적 전체가 그렇다.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다.
사고를 분할해 분석 중이긴 한데, 복잡해서 분석하려면 한참 걸릴 거다.
뒤에선 이종족 종합 선물 세트가 우리를 계속 따라오고 있다. 짜증나는데 죽일까. 여기까지 참은 것도 아주 많이 참은 것이다.
나는 뒤로 돌아 말한다.
“최후통첩이다. 거기서 한 발짝이라도 더 디디면 죽일 거다.”
살기를 담아, 내 진심을 보여준다. 불청객들은 잔뜩 굳어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걸음을 돌린다. 몰래 따라오는 건 아닌가 보니 그것도 아니다. 다른 통로로 들어갔다.
“도착했어요.”
유상민이 멈춰선 곳은, 커다란 공동이었다. 공동 천장에는 벽화가 새겨져 있다. 천장 전체를 덮는 거대한 벽화다.
우리가 들어온 통로가 닫히며, 벽화가 빛을 내기 시작한다.
유적에 새겨진 마법 전체가 반응하고 있다. 거대한 마력이 이 방안으로 모여든다.
-이 장치가 작동한다는 것은, 옛 친구들의 후예가 여길 방문했다는 거겠지.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사막에서 들었던 노인의 것과 비교하면 너무 젊은 목소리다.
-그 친구들은 잘 지내던가? 아니, 잘 죽었던가? 누굴 만나고 왔지? 아란? 핀? 자키라? 누구의 물건을 가지고 왔다고 해도 내 연구는 꽤 도움이 될 거야. 내 연구 주제는 이것이었지. 신이란 무엇인가. 자세한 건 영상을 보는 편이 빠르겠네. 즐겁게들 감상해.
벽화의 빛이 한순간 공동 전체를 뒤덮고, 다음 순간, 나는 환각을 보고 있었다.
수백 개의 사물이 지나간다. 인간의 모습 나무의 모습 수인의 모습. 다양한 물건이 시야를 스친다.
그리고 그것들이 겹치고 사라지기 시작한다. 나무와 물이 겹치고, 불과 물이 사라진다. 고블린과 오크가 겹치고, 트롤과 오우거가 합체한다. 그것과 오크가 또 합쳐진다.
진화하는 계통수를 같다.
수백 개의 형상이 점점 사라진다. 사라지고 사라져 4개만이 남는다.
-아란에게서 왔다면 아마 알겠지. 그놈이 제대로 연구했다면 이거랑 비슷한 결론을 얻었을 거거든. 그게 아니라면 아란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거야. 그놈은 세계수의 산맥에 틀어박혔거든. 그 근처로 가봐.
“세계수의 산맥의 다른 이름이 신단 산맥이에요.”
아란이란, 우리가 만난 그 노인의 이름이란 거다. 몇 명의 강자. 지금은 신이라 불리는 그들. 그리고 네 개의 형상. 딱 들어맞는다.
-신은 수백 명이 아니야. 단 몇 명. 단 몇 명이 복수의 신을 흉내 내고 있을 뿐이지. 신이 몇 명인지는 몰라. 다만, 내가 확인한 것은 4명이다.
벌써 2마리 죽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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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