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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94화 (9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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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지의 관절이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를 끌고 거리를 걷는다. 저쪽에서 경찰이 다가오다 우릴 발견하고 한숨을 쉰다. 내 눈을 피해 쉰다고 쉰 모양인데, 다 보인다.

그래도 내가 이해해야지. 이번 주만 두 번째. 최근 삼 주로 계산하면 무려 여덟 번째다. 중국 놈들이 슬슬 내 정보를 팔기 시작하는지. 이렇게 암살자가 오는 일이 많아졌다.

경찰복까지 차려입은 경찰들이 다가와 말한다.

“형식상 묻는 겁니다. 형식상. 그러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경찰의 태도가 많이 조심스럽다. 나는 신세종 경찰들의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에 동시에 올라가 있다.

투기장부터 시작해 사건을 몰고 다니는데 윗선에서 관여하지 말라 하니 현장직 입장에선 골치가 아플 거다. 사실 그 투기장도 내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그냥 넘어간 일이지만.

“무슨 일입니까?”

수첩을 꺼낸 경찰이 묻는다.

“보다시피 암살자지.”

“정말 당신은 암살자입니까?”

“아, 아니에요! 전 그냥 길을 물으려고.......”

말을 마치기 전 여자는 주위 분위기가 이상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한 경찰의 얼굴을 발견한다.

저 경찰은 거짓말을 탐지하는 진명을 가지고 있다. 덤으로 과거에 동료의 거짓말에 속아 죽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아주 혐오한다. 자기 앞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을 죽여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이 거리에서 저 경찰에게는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라고 한다.

여기 경찰은, 면책권이 상당하거든.

“어디서, 어디서 혓바닥을 쳐놀려! 암살자 새끼가!”

퍽퍽퍽. 여자의 얼굴을 거리낌 없이 박살 내는 것도 면책될 정도로.

경찰의 발길질 소리가 경쾌하다.

나도 처음 저걸 보곤 놀랐다. 실실 쪼개던 놈이 살기가 엄청나다. 경찰의 동료는 난감한 얼굴로 발길질하는 놈을 보고 있지만, 말릴 마음은 없어 보인다. 처음 나한테 사정을 설명해준 것도 저놈이다.

아무튼, 이 세계에는 미친놈이 너무 많다.

거짓말을 간파할 줄 아는 놈이 거짓말에 속아 죽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는 안 든다. 실생활에서도 알면서 속아주는 경우가 있잖아? 그래도 죽을만한 상황에서도 알면서 속아줬다는 건 저놈이 지나치게 착했다는 거겠지.

사람을 지나치게 믿었다가 죽은 놈이 회귀해서는 거짓말을 혐오하는 인간이 되었다. 눈앞에서 거짓말하는 사람만 보이면 패 죽이려 할 정도로.

암살자를 반죽음으로 만든 경찰이 겨우 진정하고 나에게 사과한다.

“이거 죄송합니다.”

미안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이는 그 모습은 어딜 봐도 호인, 나쁘게 말하면 호구다. 저런 호구가 누가 거짓말만 하면 분노조절장애에 걸려 발작한다. 제대로 된 또라이다.

“여기 포션 값이라도.......”

“필요 없어. 니가 안 했어도 내가 했을 거니까.”

“거듭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로 고개를 숙이던 경찰은 마지막이라고 덧붙이고, 다시 여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암살자입니까?”

이빨이 모두 사라지고 안면이 짓뭉개진 암살자가 더듬더듬 입을 연다.

“우, 아아. 와니.”

“이 씨발 새끼가, 처맞고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어따대고 거짓말이야?!”

경찰이 또 발작했다. 암살자를 잘근잘근 다질 기세로 밟는다.

세 번째 질문에서야 겨우 암살자는 자기가 암살자라는 것을 긍정했다.

“암살자의 처우는 암살 대상에게 맡기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니.......”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자유. 원하기만 하면 죄인으로 만들어 노예로 부릴 수도 있다.”

“그렇습니다.”

경찰이 쓰게 웃으며 말한다. 자주 들어서 저 대사도 익숙하다. 중간계 버전 미란다 원칙이라고 할까? 미란다 원칙치고 내용은 살벌 그 자체다.

암살자라고 확증도 나왔겠다. 거리낌 없이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는다. 콧노래도 흥얼거린다. 투기장의 일과 몬스터 웨이브 때의 일로 나는 세종에서 유명인사다

유명인에게 암살자가 붙는 것 정도는 큰일도 아니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지는 인파. 나는 그사이를 유유히 걷는다. 제자의 집까지 산책이자 하자. 나리를 못 본 지도 한참이나 됐다. 영혼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나리의 상태를 봐두는 것도 좋을 거다.

***

사지의 관절이 모두 빠져 반항조차 못 하는 여자를 끌고 가는 내 모습은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관여해오는 사람은 없었다.

여인이 희롱당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니. 말세다, 말세. 세상 사람들 인심이 정말로 팍팍해졌다.

제자의 저택에 도착해. 나리를 부른다.

“스승님!”

나리를 나를 스승님이라 부른다. 제자놈이 그렇게 부르는 걸 단순히 따라 부르고 있다.

“그건 뭐에요?”

“이거, 나쁜년이란다. 그러니까 무시하렴.”

“네!”

착한 아이다. 순수하기만 하던 나리도 성녀로 불리기 시작하고, 꼬맹이에게 이것저것 배우고 있다.

그래서 상당히 뒤틀린 아이가 되었다. 내가 봐도 불쌍해 보이는 모습의 여자를 보는 눈에는 일말의 동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꼬맹아, 나리한테 뭘 가르친거냐.

나는 나리의 영혼을 보고 느낀다. 마법 없이도 볼 수 있으니 편리하다. 여신의 영혼이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커졌다. 중국에 있던 성자 성녀들이 오늘도 죽어가고 있으니 그건 예상했던 바다.

공주의 영혼에 들러붙은 여신의 영혼도 조금씩 커지고 있는 걸 확인했다. 그래도 크기의 증가폭은 나리가 압도적이다.

원인은 짐작된다. 여신의 영혼과 균형을 이루고 있는 나리의 영혼, 보통 사람 보다 수십 배는 큰 그 영혼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균형을 이루고 있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여신의 영혼이 더 짙게, 더 많이 모여 나리의 영혼을 감싸버리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의 경우 영혼이 커지더라도 그건 여러 영혼이 잡탕처럼 섞인 모양이라 중심이 되는 본인의 영혼이 빛을 바라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나리의 몸에는 나리의 영혼과 여신의 영혼. 단 두 개만이 존재한다.

최악의 경우, 여신이 나리의 몸을 가로채 부활할지도 모른다. 그걸 막겠다고 나리를 죽이는 것도 할 수 없다. 성녀, 성자라 불리는 다른 자들보다 훨씬 큰 여신의 영혼을 가지고 있는 나리를 죽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칫, 영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 보고 느끼게 된 것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하루빨리 뭐라도 단서를 잡아야 하는데, 들어오는 정보가 너무 적다.

일의 우선순위를 바꾸자. 신을 찾는 것보다 신을 죽이는 방법을 찾는 걸 우선하자. 단지 육신을 죽이는 것이 아닌. 영혼까지 완전히 죽이는 법을 알 필요가 있다.

개고생해서 죽였더니 상대가 부활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다.

“쯧. 마음에 안 들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신의 영혼을 앞에 두고 없애지 못하는 것도, 날 죽이려는 암살자가 허구한 날 파견 나오는 것도. 전부 마음에 안 든다.

사랑이를 괴롭히는 것도 재미있는데, 그건 본인이 좋아하니 어떤 의미로는 조금 내가 욕구불만이다.

피오라는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장난감이다. 사람은 너무 과한 자극을 한 번에 줘버리면, 그보다 약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게 된다. 한 번씩 가지고 놀 때는 즐겁지만, 그 한 번씩이 까다롭다.

그런 상황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이 손에 들어온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라팔아, 고문은 좋아하냐?”

“별로. 그래도 구경할래.”

“좋아, 가자.”

나리한테 간단히 인사하고, 나는 라팔과 함께 텔레포트로 이동한다. 목적지는 모랄쉰 왕국 지하에 있는 지하 고문실이다.

***

세상에는 남의 고통을 자신의 즐거움 삼는 인간이 너무 많다. 취미로 사람을 고문하는 놈들도 있는데, 나는 그런 놈들을 하수 중의 하수로 구분한다.

고문이 동반하는 건 고통, 단순한 고통이다. 무릇, 군자라면 고통 속에서도 고아함을 추구해야 함이다.

단순한 고통을 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고문에서 더하고 빠지는 건 고통의 정도뿐이고, 그건 고문 기술자의 기교에 달린다. 물론, 고문 기술자의 전문성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마취도 하지 않고 산 사람을 2만 겹으로 포 뜨는 신기는 보고도 믿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런 고문에는 빠진 것이 있다. 복잡하고 미묘한, 그래서 더 애가 타는 번뇌가 고문에는 빠져 있다.

안달복달 못하는 사랑. 잠시도 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고문에 대해 이렇게 말하겠다.

고아한 고문이란 애가 타는 고문이다. 고문자와 피고문자 사이에 안타깝고 야릿한 교감이 오가는 고문이야말로 진짜 고문이다.

쾌락으로서의 고문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고문을 추구해야 양반 소릴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충분한 양반이다.

이 장면을 보면 이 순간에도 어딘가 은밀한 장소에서 고문에 힘쓰고 있을 고문 기술자들이 나에게 존경을 표할 것이 틀림없다.

나와 좆집들, 그리고 나를 죽이려 했던 암살자를 포함한 우리는 모랄쉰 지하 감옥에 있는 고문실에 와 있다. 고문실에는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벽과 바닥에 뿌려져 있다.

날 노렸던 암살자들, 오늘의 메뉴인 저년의 선배격 되는 놈들이 거쳐 간 자리다. 선배들의 자리를 오늘 후배가 대신하게 되었으니 진정 영광이로다.

이런 복되고 영광된 자리에서 오늘의 주인공은 손톱이 뽑히고 있다.

“이제 겨우 세 개 째야. 아직 손톱은 일곱 개나 남았어. 아니면, 아까처럼 대신이 될래?”

내 말에 피오라의 허리가 떨리고, 하반신에서 분수가 뿜어진다. 기다란 하체도 부들부들 진동하고 있다.

나는 즐거운, 사랑스러움을 담은 눈으로 그런 피오라를 바라본다. 내 눈을 본 피오라의 진동이 더욱 격렬해진다.

“으읏......!”

얼굴은 창백히 질려 있지만, 몸은 솔직하다. 억누르지 못한 신음이 입술 사이로 새나온다. 피오라는 팔로 떨리는 몸을 껴안는다. 그러나 떨림은 줄어들지 않는다.

주륵. 오줌이 비늘을 타고 흐른다.

“시간을 줄게. 삼, 이, 일.”

공포에 질린 피오라가 고문 기구의 레버를 당긴다. 기계가 작동하고, 고정되어 있던 여자 암살자의 손톱이 뽑힌다.

“꺄아아아아악!”

암살자. 본디 고문을 대비한 훈련도 받았을 여자가 비명을 지르고 오줌을 지린다. 사람은 성적으로 흥분하면 예민해진다. 그리고 발정 마법은 사람을 성적으로 흥분시킨다. 발정 마법을 몇 겹으로 겹쳐서 건다면? 그리고 그 사람에게 고문을 가하면?

고문을 대비한 훈련이 무색하게, 암살자도 비명을 지르게 된다.

고문 기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은 두 여자가 오줌을 지린다. 한쪽은 공포와 쾌락에 지리고 있고, 한쪽은 공포와 고통에 지리고 있다.

과정은 다르지만, 지린다는 결과는 같다.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함께 지리는 두 여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지르는 여자 암살자에게서 시선을 피하는 피오라의 모습은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다.

공포와 쾌락으로 옷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피부가 진동하는 모습은 예술이다. 피부에 맺힌 땀이 그 야릇함을 더한다. 색기만 보면 우리 라팔이랑 동급이다. 아니, 저 몸매랑 비등한 색기를 자랑하는 우리 라팔이가 대단한 건가.

“바로 다음 간다. 준비해.”

“흐읏.”

“아아아!”

피오라가 진한 신음을 뱉고, 여자 암살자는 깊게 탄식한다.

“니가 누군지. 또 너희 본거지는 어디 있는지만 말하면 풀어준다니까 그러네.”

“아아. 아아아! 아아!”

여자 암살자가 나에게 필사적으로 호소하지만, 그건 언어가 아니라 짐승의 외침이다.

“난 문명인이라 사람의 말밖에 못 알아들어. 그러니까 사람 말로 해.”

라고 해도 혀가 없으니 무리려나. 고문 전에 미리 혀를 뽑았다. 보기 흉한 얼굴은 내가 보기에도 기분 나쁘므로 치료해 줬다.

여자의 생명인 얼굴을 혀 하나를 대가로 치료해준 것이다. 저 여자도 싸게 먹혔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자비롭다.

============================ 작품 후기 ============================

어째 피오라만 나오면 글이 팍팍 써지네욥. 이러다 작가 마음 속의 인기 순위에서 라팔이를 제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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