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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몇 명인지는 모를, 초월적인 강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마다 무리를 거느렸으며, 그중 몇 명의 힘은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강자들은 싸웠다. 싸워서 숫자가 줄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아주 소수만이 남았다.
남은 강자들은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었고, 세상은 한동안 평화로웠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사건이 터졌다.
강자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고의 강자 중 한 명이 죽었다. 그는 자신이 이끌던 무리에게 살해당했다.
죽음, 강자들은 생각도 못 해본 일이었다. 그들은 급히 회동했고, 다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강자를 살해한 종족을 멸해버렸다. 그래도 강자들은 불안했다. 그래서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여러 조치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신화는 그 후에, 하나의 하극상 후에 탄생한다. 그래서 진실한 신화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하극상이 있었다.
“그게 끝?”
그게 내 솔직한 감상이었다. 태초에 하극상이 있었다. 이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내가 나중에 자서전을 쓴다면 꼭 저 말을 서두로 쓰고 싶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이 하극상 그 자체다. 실험실 모르모트부터 시작해 한 세계의 패자까지 올랐다. 그리고 여기, 중간계에서는 신에게 도전하고 있다. 하극상만큼 나에게 잘 어울리는 말도 드물 것이다.
그런 멋진 말로 시작한 이야기치고 끝이 너무 허무하다.
이야기 속의 강자들이란 신들로 추정된다.
강자들이 취한 여러 조치라는 것이 진짜 중요한 부분인데, 그것만 쏙 빼고 그 앞일만 알고 있다니 진이 빠진다.
“무슨 소리! 수천, 어쩌면 수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알아낸 것이오. 이것만 해도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데!”
노인이 펄펄 뛴다. 자기 업적을 폄하 당한 인간의 전형적인 반응이다. 여기선 온건하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노인과 적대해 좋을 건 없다. 아까의 말로 봤을 때 오래 버티지도 못할 모양이고.
“그런데, 영감. 아까부터 우리, 우리 하는데. 영감 말고 다른 사람도 있어?”
궁금한 티를 내면서 묻는다.
“나와 함께 신학을 공부하던 자들이오. 모두 흩어져 각자 연구를 하기로 했소. 서론은 이걸로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소. 옛이야기의 강자들. 그들은 모두 영혼의 비밀을 깨달은 인간들이오.”
“진......”
노인이 내 말을 끊는다.
“진명도 물론 영혼의 힘이오.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진실. 그러나 진짜 영혼을 다루는 자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오. 본 적 있소?”
“딱 한 번 봤지.”
난 놈이 그랬다. 그놈은 튜토리얼에 있는 몬스터와 인간들의 영혼을 이용해 자기 힘으로 삼은 적이 있다. 중간계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그건 3급 각성자에 준하는 힘이었다. 막 시작한 초보자가 10년 가까이 몬스터를 잡으면 산 인간들과 같은 힘을 한순간이나마 얻었다.
“제대로 본 건 아니지만. 대단하긴 했어.”
괴로워하는 모습을 봤을 때 자기 몸에도 부담이 가는 듯하지만, 반칙적인 기술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 힘으로 튜토리얼을 휘젓고 다녔으면 그놈 혼자 100명을 몰살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런 능력을 대단하다고 하지 않으면 뭐라 할까.
“그들, 지금은 신이라 불리는 그자들도 모두 그런 힘을 사용하고 있소. 신성력이 좋은 증거지. 한 존재가. 한때 우리와 같은 생물이었던 존재가 수천에 달하는 사제들에게 힘을 나눠줄 수 있다고 생각하오? 그것도 공간을 초월해서!”
“신성력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인가요. 신선한데요. 확실히, 공간을 초월해 신의 힘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면 이상한데요. 힘이 어떻게 전해지는지가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요.”
유상민이 말한다.
동감한다. 텔레포트 마법에 드는 마력만 해도 막대하다. 막 사용할 수 있는 건 나뿐. 세종에서도 텔레포트를 위해서 커다란 마법진을 준비하고 대량의 마력을 공급해야 했다.
공간을 넘는다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신성력은 신의 힘. 신의 힘이 사람의 몸을 통해 발현되는 일이다. 힘이 전달되는 회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성력에는 그게 없다.
마법으로 비유하면, 마력 소모 없이 텔레포트 마법을 이용해 세계 어디든 가는 것. 세계뿐이랴. 생물의 몸속으로 물건을 이동시키는 건 저항이 심해 나도 하지 않는 짓이지만, 마력 소모가 없다면 상대 몸속에 직접 폭탄을 선물해 줄 수도 있다.
절대무적. 이 네 글자로 요약 가능하다.
“이상한 일이오. 그런데 분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오. 신을 그냥 죽인다고 끝이 아니오. 신을 완전히 죽이려면, 그 영혼을 죽여야 할 것이오. 그들의 깨달음과 기술은 그들의 영혼 자체에 집적되어 있을 것이니!”
노인이 흥분해 소리친다.
“그렇다고 치자. 그럼 영감. 영감은 영혼을 다룰 줄 알아?”
“우리는 흩어질 때 각자 연구할 주제를 정했소. 나는 신들이 어떻게 탄생했나. 그것을 주제로 삼았지. 영혼에 대한 깨달음은 그걸 조사하다 얻어걸린 것에 불과하오.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말해야겠지. 그러나 우리 중에는 신을 죽이는 방법, 그 자체를 주제로 삼은 녀석도 존재하오. 영혼에 대해 조사해보겠다던 놈도 있었지. 그때는 뜬금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그놈 나름의 직관이었을지도 모르오.”
노인은 서가를 가로질러 책장으로 가서 책 한 권을 뽑아 펼친다. 책의 첫 장에는 사진이 한 장 끼워져 있었다.
“내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들. 외모를 안다고 해도 나오는 건 없겠지만. 그냥 보여주고 싶었다오.”
흉터 있고, 주름진 손이 사진을 쓰다듬는다. 노인은 사진을 보며 과거를 떠올리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헤어지며 서로를 찾을 방법을 정했고, 만약을 대비해 연구 성과를 보존하자고도 말했소.”
노인이 목걸이 두 개를 던져준다. 일단 내가 받는다.
“여유가 없어서 두 개밖에 만들지 못했소. 시간이 다 되었군.”
노인의 몸이 점점 희미해진다. 처음 나타나는 순간부터 천천히 희미해지고 있긴 했다. 그게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가 되었다. 노인은 이제 반투명한 유령처럼 보인다.
“내 주제는 영혼이 아니었소. 그래도 영혼이 열쇠라는 사실을 알고, 나름 영혼에 대해 강구했지. 그래서 조금은 소득이 있었소.”
노인의 손이 우릴 향한다. 알 수 없는 힘이 그 손에 뭉친다.
“마법을 다룰 줄 아는 그대들이라면 알겠지. 본다는 것은 규정한다는 것이고, 그건 곧 영혼에 간섭한다는 뜻이지. 영혼을 보고 느낀다. 그게 영혼을 다루는 첫걸음이오. 적어도 내가 깨달은 바에 의하면 그렇소.”
힘이 노인에게 뭉칠수록, 노인의 몸이 옅어진다.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기적이 다해가고 있다.
“영혼을 보고 느끼는 능력을 주겠소. 받아들이시오.”
힘의 덩어리가 우리 셋의 몸으로 들어온다. 무언가 변했다. 그렇게 느꼈다.
“보고 느끼고, 다룰 수 있게 되면 마법과는 다른 기적을 만들 수 있소.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도, 이 건물이 시간이 지나도 멀쩡한 것도 모두 그 덕이지. 그 목걸이 또한 영혼의 힘으로만 작동하게 되어 있다오. 신을 죽여주시오.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내 의지. 우리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이어 주시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십 년 만에 사람과 대화를 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오.”
“그건 걱정 마. 그놈들은 내가 멸종시킬 거니까.”
“그럼 안심이오.”
유쾌하게 웃는 얼굴로 노인이 사라지고, 이어서 건물이 녹아내린다. 모래로 만들어진 건물이 모래로 돌아간다.
모든 게 사라지고 서가만이 남는다. 책장과 책상, 그리고 책상 위의 마도서가 남은 전부다.
노인의 영혼은 사라졌다. 완전히 소멸했다. 그건 완전한 죽음이다. 뒤를 남기지 않는 죽음. 어쩐지 알 수 있다. 직감치고는 너무 확실하다. 이게 영혼을 본다는 건가.
마도서를 챙기고, 책장도 아공간에 챙긴다. 회귀하지도 않은 주제에 미쳐버린 노인이 평생 모은 책이다. 분명 도움이 되겠지. 마찬가지로 이유로 책상도 챙겼다.
“일단 돌아갈까.”
목적은 이뤘다. 소득이 너무 많아 손익 계산이 힘들다. 돌아가서 천천히 생각하고 싶다.
두 사람도 반대하진 않았다. 라팔을 옆구리에 끼고(이게 귀엽다), 유상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
모랄쉰으로 돌아온 나는 새로 얻은 힘에 집중했다.
영혼을 보고 느낀다. 그건 색다른, 기존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왜 노인이 보고 느낀다고 말했는지 절절히 이해된다.
본다고 하기에는 불명확하고, 느낀다고 하기에는 확실한 시각 자극이 있다.
사람마다 희미하게 뭔가 보이는 듯하면서, 그게 또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 내 일과는 길거리에 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영혼을 보는 것만큼 이 능력을 단련하기 좋은 방법이 없다.
라팔도 내 옆에 딱 붙어서 멍하니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더럽다.”
“응, 더러워.”
정말로 더럽다. 사람들의 영혼은 뭐 하나 순수한 것이 없다. 전부 이것저것 덕지덕지 덧붙인 다음 억지로 기워 크기를 키웠다.
마치 눈사람 같다. 더러운 눈으로 뭉친 눈사람. 중심이 되는 눈덩이는 흰색일지 모르나 더러운 눈에서 구르다 보면 눈덩이 자체가 더러워진다.
사람들의 영혼도 그렇다. 몬스터의 영혼과 사람의 영혼이 섞여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길로 다니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몬스터를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다. 우리 둘은 세종의 거리에 있다.
몇 곳을 다녀본 결과. 세종에서도 던전 근처의 상가인 여기가 제일 영혼을 보기 좋다는 것을 알았다. 세종에서 여기가 가장 다양하고, 더러운 영혼이 모이고 다니는 장소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내 영혼을 보고 느낀다. 내 영혼은 순수하다. 그야말로 순백. 때 묻지 않은 영혼이다.
미친놈의 영혼이 순수하다니 이만한 농담이 있을까 싶지만, 진짜로 내 영혼은 순수하다. 때 묻은 부분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작은 부분. 현재 내 능력으로는 관찰하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영역이다.
오크의 신이 말한 순수한 영혼이 뭔지 확실히 알겠다. 중간계에 온 뒤의 내 선택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하잘것없는 반항심에서 나온 선택이긴 했지만.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를 본다. 뭐가 보이긴 하는데, 사용법은 모르겠다. 예상이지만, 영혼의 힘으로 작동하는 마법을 걸어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마법은 나도 처음 봐서, 시간 날 때마다 관찰하고 있다.
영혼의 힘, 영혼의 힘 연호하니 옛날 만화 같아서 유치한 감도 조금 있다. 그렇지만 영혼의 힘을 영혼의 힘이라 하지 뭐라 해.
목걸이 하나는 유상민에게 줬다. 걔도 이 일에 적잖이 관심이 있는 눈치였고, 라팔과 나는 항상 같이 다니니 둘이서 두 개를 쓴다는 것은 낭비이기도 했다.
“총각. 길 좀 묻고 싶은데.”
아줌마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온다. 길거리에 앉아서, 멍하니 행인들을 구경하기만 하는 우리에게.
“라팔아. 니가 좀 해라.”
“응.”
대답과 함께 튀어나간 라팔이 아줌마를 때려눕히고 양팔과 양다리의 관절을 뽑아버린다. 프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행동에 망설임이 없다.
“뭐야?”
“살인이야?”
소란이 일어나지만, 크지는 않다. 이 세계에서 이 정도는 일상이다. 경찰이 와서 무슨 일인지 묻는 정도가 끝이고, 그것도 정당방위면 넘어간다. 그게 살인이라도 말이다.
말세다, 말세.
나는 아줌마의 품을 뒤져 소지품을 찾는다. 몸이 탱탱하다. 아줌마가 아닌가? 얼굴과 목 사이에 이어지는 흔적이 있다. 그 부분을 잡고 얼굴 가죽을 벗기니 평범한 모습의 여자가 나타난다.
“젊은 여자 암살자라.”
젊은 여자는 언제나 쓸모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