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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90화 (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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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이 일어났다. 라고 당사자들은 곱게 포장하고 있는데, 누가 봐도 저건 폭동이다. 내가 봐도 저건 폭동이고, 일을 부추긴 장본인이 봐도 저건 폭동이다. 폭동을 일으킬 생각으로 선동했는데, 혁명은 무슨 혁명.

중국은 박살 났다. 노예들이 궐기해 주인들을 다 쳐죽였다. 정정한다. 거의 다 쳐죽였다.

중국군은 군사 거점에 모여서 생존을 도모하고 있으며, 무림 문파, 무림 세가, 클랜과 길드 등등 힘 있는 놈들은 제들끼리 모여서 살 궁리를 하고 있단다.

노예들의 지긋지긋한 공격을 버텨가면서.

고로, 중국은 망했다. 인구 15억의 대국이 쫄딱 망했다. 나 때문에. 본의 아니게 또 한 건 해버렸다. 음, 이건 반 이상 고의라고 봐도 좋으려나.

내 목적은 중국이 남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 딱 맞는 물건이 마침 있었고, 그걸 이용했다.

나는 죄가 없다. 중국 놈들이 그렇게 효율적인 급소를, 자기 목을 쥘 물건을 만든 것이 잘못이다. 그런 아티팩트가 있다는 걸 알았는데 어떻게 안 노릴 수가 있어?

정책도 그렇다. 세종은 노예 없이 잘만 산다. 이종족끼리도 눈에 보이는 심각한 차별은 없다. 차별 금지가 법으로 제정되어 있다.

이종족과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그들에게 불합리한 증오를 쏟아낸 건 중국놈들이다. 난 자그마한 불씨를 줬을 뿐이고, 그걸 이 지경이 되도록 키운 것은 전부 자업자득이다.

“어마어마한 사상자와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난민은 사방으로, 심지어 검은 늪과 마의 해협으로까지 도망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모랄쉰은 안전할 겁니다. 뮤텐 왕국, 지금은 도적들의 낙원이 된 그곳이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 모든 걸 계산하고 하신 겁니까?”

“미쳤냐. 내가 그걸 다 계산하게.”

그냥 하다 보니 이렇게 됐을 뿐이다. 이걸 예상할 정도로 짱구를 굴릴 수 있다면 좀 더 완만한 방법을 썼겠지. 예를 들어 중국 자금성만 골라서 날려 버리던가, 중국 수뇌를 전부 없애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던가.

“그런데 니들은 왜 그렇게 사정에 잘 아는 건데.”

눈앞의 꼬맹이에게 묻는다. 중국이 터지고 일주일 지났는데, 벌써 중국 내부 사정을 꿰고 있다.

“떨어질 콩고물이 좀 많아야죠.”

꼬맹이가 아주 즐겁게 웃는다. 심계가 깊다 못해 썩어버린 모양이다. 웃음이 검게 보여.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이,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생산 설비와 인프라가 모두 무주공산이 되었다. 파괴된 것도 많겠지만, 그래도 그중 일부라도 건지면 이득이다. 그야 공짜니까.

공짜에 손해가 어디 있어. 있다면 교통비와 운반비 정도? 근데 그것도 마법으로 해결되는 수준의 문제다. 그러니까 중국에 널린 자원이 지금은 초염가 100% 세일! 전부 공짜!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종교가 생겼어요. 당신을 신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건 무슨 개소리야?”

“노예에서 풀려난 사람들 이 만든 조직, 그중 당신을 섬기는 종교 조직도 있다는 말입니다. 파악된 것만 따지면, 그냥 대부분의 조직이 종교적 색채를 띄고 있군요.”

“긴 서론은 좀 건너뛰자, 우리. 뭔 서론이 그렇게 길어.”

“중국을 먹은 걸 축하드립니다.”

“뭐?”

잠깐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중국을 먹어? 난 먹지도 않았고, 먹을 생각도 없는데?

누가 내 뱃속에 중국을 넣어놨냐.

“중국의 신진 세력 대부분이 당신의 말을 성서로, 금언(金言)으로, 진리로 삼고 있습니다. 거기에 당신을 신으로, 선구자로, 현자로서 따르니 그냥 중국을 먹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하아.”

결국 감투를 쓰고 말았나.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그것도 세계 정치에 끼게 생겼다. 정치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말은 부가적인 것. 주가 되는 것은 힘, 폭력이다.

중국에 나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으면(반드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정보들은 도주에 성공한 중국 윗대가리들이 망명 조건으로, 또는 다른 나라에 정착하기 위한 정착금으로 비싸게 팔릴 거다.

나는 실시간으로 세계적인 유명인이 되고 있다.

와우, 표절 덩어리 연설 한 번 하고 세계적인 현상수배범이 되었다. 이거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계산서가 잘못됐어. 바가지 왕창 썼다.

“뭐, 할 말이 끝났으므로 저는 가보겠습니다.”

꼬맹이가 나간다. 쟨 왜 왔던 거야. 정보를 물어다 주니 나야 좋지만.

“그래서, 내 정보는 어디까지 보고했냐.”

품에 있는 라팔에게 묻는다. 반쯤 졸고 있던 라팔이 눈을 뜬다. 스흡. 하고 입가에 흐르던 침도 닦는다. 이 녀석. 잤구나.

“안 잤어.”

찔리긴 찔렸나 보구나.

“진짜 안 잤어.”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단다.

찌릿. 라팔이 무표정한 얼굴로 날 올려다본다. 시선이 따끔하다.

“그래그래, 안 잤다. 안 잤어.”

“응, 안 잤어.”

“그래서. 내가 뭐라 물었게?”

“.......”

라팔은 대답이 없다. 시체인 듯하다.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한테서 눈을 피한다. 봐, 역시 잤잖아. 그래도 여기선 어른답게 넘어가 주자.

“내 정보, 어디까지 보고 했냐?”

알바트로스 소속의 중년 아저씨를 죽이고 몇 달이 지났다. 그놈들이 동료가 죽든 말든 놔두는 냉혈한들의 모임이 아니라면 무언가 조치가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내 품에 안겨 있는 요 깜찍한 놈이 무언가를 했다는 뜻이다. 짐작은 하고 있었고, 자금성 지하에서 발렌타인이라는 놈이 보여준 반응으로 확신했다.

라팔이 내 정보를 알바트로스 쪽으로 빼돌리고 있다. 그래서 알바트로스의 습격을 늦추고 있다.

“이름, 성별. 끝.”

“끝?”

“여기, 복사본.”

라팔이 종이 하나를 꺼내준다. A4 크기의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름 : 진휘

-성별 : 남자

-나이 : 모름

-무력 : 측정불가.

-기타 등등 : 다 몰라. 관찰 필요.

끝이다. 진짜 이게 전부다. 그런 주제에 ‘라팔’이라고 싸인에 인장까지 찍혀있다.

“진짜냐?”

“알고 있는 걸 전부 보냈으면, 그렇게 쉽게 안 끝났어. 발렌타인은 전투에 한해선 사기케.”

그것도 그렇다. 내 정보를 전부 알고 있다면, 전백귀후십귀에 그놈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방사능을 독 대용으로 쓰고 있다고 알기만 했어도 전백귀후십귀에 베이는 순간 조치를 취했겠지.

나는 라팔을 껴안고 그대로 뒤로 넘어간다. 둘이서 침대를 뒹군다.

“나는 막을 수 있을 만큼 막았어. 이제 한계. 나도 배신자로 찍혔을 거야. 추격자도 더 올 거야.”

라팔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너도 이제 천애고아구나. 갈 곳 없는 고아끼리 서로 먹고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팍팍하기 그지없는 세상. 삭막하도다. 삭막해.

세상이 이렇게나 삭막하다. 우리 같은 젊은것들에게 너무 가혹해. 하나는 40대 아줌마고, 하나는 자기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노망난 미친놈이지만.

“걔네들 쎄냐.”

“방심하지 않는다면, 이번처럼은 안 돼.”

“더럽게 힘들다는 말이구나.”

라팔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저기 사상을 짜깁기한 사이비 종교의 교주로 국제 사회에 찍혔는데, 세계 최정상급의 암살자들이 목숨을 노려온다.

세계 정복에 나서는 마왕도 이것보다는 편한 환경에서 싸우겠다. 그놈들은 퇴로도 있고, 자기 병참과 병영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집도 없고 퇴로도 없다. 아주 빌어먹을 세상이다. 세상이 날 못살게 군다.

세상에 대한 악의가 무럭무럭 자란다. 이런 세상 망해버려라.

세상을 망하게 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누를 거다.

“피오라. 일로와.”

방구석에 앉아 있던 피오라가 흠칫 떨고 침대 위로 올라온다. 다음에는 어떻게 얘를 겁줄까. 중국의 혁명 현장에 데려가는 것도 재미있겠다. 나도 질겁할 정도의 광기가 떠도는 장소도 가끔 있다.

혁명이라는 이름의 폭동은 그 정도로 미쳤다.

한쪽 팔에 라팔을 끼고 한 손으로 피오라의 가슴을 주무른다. 탄력 있는 가슴이 내 손을 밀어낸다.

아아, 여기가 극락이로다. 세상아 망해버려라.

***

모랄쉰에서 세종으로 돌아온 최연호는 마현이 기다리는 집무실로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 그를 감쌀 생각이십니까?”

마현이 보고 있는 서류를 보고, 최연호가 말했다. 그건 정보 공유 요청에 대한 서류였다. 요청 대상 정보는 하나. 한 남자에 대한 정보.

“감싸다니 말이 이상해. 총괄 조사 팀장. 나는 세종이, 대한 길드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야.”

마현은 늘 그렇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미래를 보는 그가 당황하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인류 연합입니다. 모든 인류의 위에 있는 총괄 단체. 인류의 뜻보다 그 남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까?”

인류 연합. 과거 인류 대 이종족의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인류의 미래를 위해 성립되었으며, 인류 존속을 위해 앞장섰던 기구. 그 기구는 인류 존속 계획의 마지막.

전 인류 회귀라는 전무후무한 마법이 성공한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다. 존재하는 것을 넘어 세계 정부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인류라는 종이 멸망해가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기적의 마법을 성공시킨 최고, 최강의 강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인류 연합이라는 집단이다.

일단, 명목상 마현과 최연호도 인류 연합에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최연호는 답답하기 이전에 궁금했다. 마현의 선택이 틀린 적은 거의 없다. 그 선택 덕분에 대한 길드는 인류가 망해가는 와중에도 거의 최후의 최후까지 이름을 지키고 있었다.

“중국 봤잖아.”

“중국의 사태는 예견되어 있던 사태였습니다.”

피지배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제한 독재는 무너지게 되어 있다. 미숙하던 시절의 최연호가, 마현이, 대한 길드가 뼈를 깎으며 얻은 교훈이다.

대한 길드의 올드비가 봤을 때 중국의 폭동은 예견된 사태였다. 다만, 그 폭동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다. 누구도 중국이라는, 그 거대한 괴물이 무너지리라고 최연호는 상상조차 못 했다.

“그리고 그 후에 올라온 보고서도 봤지. ‘우리는 서로의 용기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용기가, 투쟁이. 세계 전체로 번지기를!’ 진짜로 투쟁은 번지고 있어. 들불처럼 무섭게. 이후의 예상도를 올린 건 팀장 본인이었을 텐데?”

그 남자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연설은 단순히 폭도를 낳고 종교를 낳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만들어진 광신자들이 그 내용에 살을 붙이고 부풀리며 사방으로, 인간의 국가, 이종족의 국가를 가리지 않고 퍼뜨리고 있다.

그렇게 예상되는 최악의 결과가.

“인간과 이종족의 대립이 격화. 최악의 경우 좀 더 빠른 세계 대전 발발의 가능성.”

이다. 인류 연합 차원에서도 조심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걸 막기 위한 정보 통제와 기술 통제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게 고작 한 사람에 의해 망가지려 하고 있다.

그 연설의 내용이 철학자의 말과 유명한 연설을 적당히 짜깁기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최연호는 뒤로 쓰러질 뻔했다. 그런 연설이 인류를, 세계를 광기의 소용돌이에 끌어들이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그 남자는 인류 연합 보다 우선되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 어떤 인간보다 위험하다는 점에서.

“알짜는 숨기고 적당한 정보만 제공해. 이번 일에 대한 개요도 작성하고. 그러면 수배서나 척살령이 내려지는 시간도 조금은 벌겠지.”

“온 더 레코드로는 절대 못 할 말이네요.”

마현은 세계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남자의 편을 들자고 말하고 있다. 최연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명령에 따르기 위해 움직였다.

한 남자를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일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한 편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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