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89화 (8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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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티팩트에, 아티팩트에서 나오는 마력에 내 의지가 닿는다. 내 의지를 가진 마력이 중국 전역에 퍼진다. 그 의지는 하나의 마법이 되어 내 말을 중국의 하늘 아래에 퍼뜨린다.

-하나의 유령이 중간계를 배회하고 있다. 광기라는 유령이. 인간이 낳은, 갈 곳을 잃은 유령이 세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주인 잃은 증오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라는 내용으로 끝나는 그 연설문은 참으로 명문이었다. 내용은 반도 이해 못 했지만.

어디서 이런 걸 봐뒀냐고? 여기저기 책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훑어뒀다. 내용은 하나도 이해 못 하고, 그냥 문구만 외웠지. 명언 같은 건 의외로 알아두면 쓸 데가 많거든.

-이 대륙을 보라! 모든 종족이 고통받고, 심지어 인간 스스로도 스스로에게 고통받고 있다. 세계가 고통에 가득 차 있으며 편안은 어디에도 없을 진데.

저 드높은 정신을 가진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다고.

-신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복음도 내려주지 않는다. 모든 소통을 끊고 침묵을 고수한다. 심지어! 신성력이 사라졌다. 신의 증표, 신의 자애, 신의 자비. 신의 증거! 몇몇 종족은 그것을 잃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그들은 언제나 침묵했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며, 그것은 오롯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는 양, 그들은 우릴 돕지 않았다. 않는다. 또는 않을 것이다!

왜냐? 그런 신이 있으면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가 조질 거니까. 내 연설은 내 행동에 의해 논리적으로 완벽해진다.

-고통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었다. 부모의 것도, 형제의 것도, 친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고통이며 나의 고통이다. 누구에게 줄 수도 없고, 누구에게 받을 수도 없는 우리의 업이다. 신마저 우리의 고통을 보고만 있다.

고로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에 다다르라고 부처님을 설하시지만, 나는 부처가 아니다. 사람마다 말이 다르듯, 부처의 말을 빌린 내 말 또한 부처와는 다르다.

-고로 말한다. 신은 죽었다. 우리 삶의 영역에 신이란 불친절한 관측자는 필요 없다. 고통을 방관하는 방관적인 초월자도 필요 없다. 신앙은 버려라. 구깃구깃 접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 그 대신 옛날을 떠올려라. 신도 인간도 수인도 없던 그 옛날. 문명도 없고, 언어도 없고, 원초적이던 그때를. 가장 원초적이던 그때.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단지 투쟁만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이 존재하던 그때를.

모 철학자의 말이다. 굴러다니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 봤다. 누구의 말인지는 기억 안 난다.

-신앙을 버리고 자신의 가슴을 들여다보라, 아직 사라지지 않은, 남아 꿈틀거리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보라. 그 본능을 믿어라. 자신의 본능을 믿어라. 선조들이 믿고 따랐던 투쟁 본능, 그 투쟁에 따라 문명이 언어가 생기고 문명이 생겨나고 사회가 탄생했다. 선조가 다져둔 옥토에 다시금 발을 디뎌라. 한동안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방치해뒀던 그 원초적인 대지를 딛고 서라.

한마디로 하고 싶은 대로 꼴리는 대로 살라고 나는 말한다. 인간을 일깨우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셨던 위인들이 들었다면 뒷목 잡고 쓰러질 말이다. 어쩌면 관뚜껑 박차고 되살아나실지도 모른다.

-고통을 방관하기만 하는 신은 죽었다. 우리의 눈은 앞에 보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벅차다. 도움도 되지 않는 존재가 들어올 틈은 없다. 신은 죽었다. 내가 죽였고, 우리가 죽였다.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손으로 걷어내야 한다. 고통뿐인 세상에 나 자신을 등불 삼고, 내 속에 꿈틀대는 그 본능의 법칙을 등불에 의지해라.

자등명법등명. 자기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아주 훌륭한 말이다. 자신만의 법칙을 우직하게 밀고 나가라는 부처님의 좋은 말씀이다.

-본능이라 말하기 힘든 것. 본능이라 하면 이미 본능이 아닌 것. 그러나 달리 본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 내면을 바라봐라. 그것을 찾아내라. 광천수처럼 끝없이 솟아나는 투쟁의 원천이 우리 안에 있다. 우리 모두가 투쟁의 화신을 내면에 품고 있다.

도를 도라고 하면 그건 이미 도가 아니다. 생명체는 모두 안에 부처를 가지고 있다. 깨우치기만 하면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다.

나한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그러나 적절히 응용하면,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이다.

-하나의 유령이 중간계를 배회하고 있다. 광기라는 유령이. 인간이 낳은, 갈 곳을 잃은 유령이 세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주인 잃은 증오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하자.

-방황하는 유령의 광기가 우리를 향하고 있다. 우리는 불합리한 증오에 짓밟히고, 걷어차여 상처 입고 있다. 갈 곳 없는 유령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있다. 이 불합리를 걷어내기 위해 투쟁하라.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라. 우리의 작은 한 걸음이 종 전체의 큰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세계는 오늘을 기억하지도 않고, 주목하지도 않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용기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용기가, 투쟁이. 세계 전체로 번지기를!

마지막 한 문장을 토해내기 전에, 숨을 고른다.

어쩌다 봤을 뿐인 문장이지만,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 문장이 머리에 각인되었다. 아갈리에 비하면 천국이었다만, 지구의, 한국의 입시생들이 겪는 무한 경쟁도 힘든 건 매한가지였기에.

그랬기에.

모든 것을 엎어버리자는 이 한 마디가 그렇게 좋았더랬지.

그러니까 마무리는 이 문장이다. 이 문장 말고 다른 문장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만종(萬種)의 노예들이여, 투쟁하라!

마지막 말과 함께 간섭하던 아티팩트에 주먹을 때려 박는다.

치지직. 번개가 튀고 마력이 새나온다. 아티팩트가 담고 있던 거대한 마력이 폭주한다.

“가자.”

라팔을 낚아채 자금성 상공으로 이동한다. 공간 좌표를 이미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금성 위쪽 아득한 하늘에서도 자금성 지하에서 폭주하는 마력이 느껴진다.

인구 15억의 나라 중국. 노예에 의해 나라가 지탱되는 기이한 나라 중국.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광기와 원한으로 노예를 대하던 중국.

노예들이 풀려난다. 탄압받고 학대받으며 반항도 못 하던 노예들의 고삐가 풀린다.

무한한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축포다. 화려하게 폭발해라.

삼. 이. 일.

“펑!”

자금성이 날아갔다. 자금성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두 휘말리게 하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여기는 중국의 수도.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 그 도시 중앙에서의 폭발.

축포로는 이만한 것도 없다.

축제가 시작된다. 살인이 일어나고, 비명과 원망의 곡소리가 거리거리 떠돈다.

수도는 혼란의 늪에 빠진다. 발버둥 쳐도 나올 수 없는 깊고 깊은, 자기들이 자초해 만든 늪이다.

중국 전체가. 이 늪에 빠져들었다.

“이러면 추가 파병은 없겠지.”

“파병보다는, 그냥 중국이 망했어.”

망하다니, 말이 나쁘다. 그러면 꼭 내가 중국을 멸망시킨 것처럼 들리잖아. 잘못된 걸 바로잡았다고 해라. 잘못된 걸 바로잡았다고.

“내 알 바냐. 구경 좀 하다 갈래?”

“응.”

아래쪽에선 흔히 보기 힘든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어지간한 전장 저리 가라 하는 광기의 도가니다.

***

주변 국가를 모조리 흡수하고 이종족을, 심지어 인간까지 노예로 만든 중국은 인구 증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건 단어 그대로 ‘모든’ 일이었다.

마법과 과학을 활용한 체외 인공 수정, 그리고 노예의 가축화. 그 가축이란 임신용 노예를 일컫는다.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하는, 사육장의 돼지만도 못한 취급. 가축들의 고통은 죽어서 끝난다는 점에서 이들보다 더 나은 편이다.

임신 노예는 철저한 건강관리를 받으며 죽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폐경이 올 때까지 임신과 출산만을 반복한다. 그리고 ‘처분’ 된다.

인구수에 대한 광적이 집착, 그렇게 탄생한 숫자가 15억. 그중 반 수가량이 노예, 또는 노예와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이루어지는 학대와 경멸. 그들은 그것을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18년이나 버텨...... 아니, 참아왔다.

그렇기에 그들은 귀 기울였다. 중국 전토를 때리는 강한 목소리에.

그 소리는 산과 들과 강을 가리지 않고, 그곳이 중국이라면 어디에서나 들려왔다. 또렷하게 귀를 통해 뇌리를 때렸다.

그는 많은 것을 말했다.

-신은 뒈졌다. 또 뒈질 것이다.

믿어 왔던 신이, 빌어왔던 신이 죽었다고 말했다.

-이 대륙을 보라! 모든 종족이 고통받고, 심지어 인간 스스로도 스스로에게 고통받고 있다. 세계가 고통에 가득 차 있으며 편안은 어디에도 없을 진데.

세계에 만연한 고통을 말했다.

-신앙은 버려라. 구깃구깃 접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려라. 그 대신 옛날을 떠올려라. 신도 인간도 수인도 없던 그 옛날. 문명도 없고, 언어도 없고, 원초적이던 그때를.

신앙을 버리라 말했다. 옛날을 떠올리라 말했다.

-신앙을 버리고 자신의 가슴을 들여다보라, 아직 사라지지 않은, 남아 꿈틀거리는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보라. 그 본능을 믿어라. 자신의 본능을 믿어라.

그리고 새로운 믿음을 말했다. 새로운 성서를 말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성스러운 복음을 말했다.

신을 죽이고, 신에게서 벗어나서야 비로소 태어나는 전혀 다른 신앙. 사상. 생각.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신은 죽었다. 빌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믿어라. 나를 믿고, 내 안에 있는 것을 믿어라. 선조로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투쟁에 대한 본능을 믿어라.

한 음절이, 한 마디가, 한 문장이. 그 복잡하지만 단박에 이해되는 언어들이 노예들의 머리를 분노로 씻어내렸다.

그것은 구원과 같았다. 신조차 해주지 못했던 구원. 고통스러운 삶을 저주하면서 바랐던 구원.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만종(萬種)의 노예들이여, 투쟁하라!

투쟁하라! 투쟁하라! 투쟁하라!

그 단어가 세상에 온통 메아리쳤다.

그 외침과 동시에.

기적처럼.

소리가 들렸다.

딸깍.

몸을 속박하고 삶을 고통의 수렁으로 만든 노예 목걸이가 풀렸다. 딸깍. 인생을 저당잡고 있던 고리는 그런 허무한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그들이 받던 고통의 크기에 비해, 그 소리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었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는 소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바꿨다.

“고통뿐인 세상에 나 자신을 등불 삼아, 투쟁하라!”

누군가 외쳤다.

“고통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었다. 누구도 고통을 대신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투쟁하라! 쟁취하라!”

다른 누군가가 외쳤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죽여라! 죽이고 빼앗아라! 투쟁하라!”

누군가 이어서 외쳤다.

저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은 달랐다. 자기 생각을 덧붙이기도 하며 노예들은 마음에 든 구절을 인용하며, 때론 자기 생각을 덧붙이기도 하며 되뇌고, 외쳤다. 그 외침의 끝에는 반드시 마법의 단어가 들어갔다.

투쟁하라! 투쟁하라! 투쟁하라!

투쟁, 그 마법의 단어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어디서 처음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중국 전토에서 다발적으로 튀어나온 불길은 빠르게 중국 정체를 뒤덮어 불살랐다.

중국이 불길에 휩싸였다.

혁명이라는 이름의 불길에.

그리고 불씨가 날아갔다. 사방팔방으로 마법의 단어, 투쟁과 함께 새로운 복음과 성서가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세계는 오늘을 기억하지도 않고, 주목하지도 않겠지만, 우리는 서로의 용기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용기가, 투쟁이. 세계 전체로 번지기를!

오, 주여. 모든 것이 그대의 뜻대로 될지어다.

타오르는 들불 중앙에서 누군가가 읊조렸다.

============================ 작품 후기 ============================

이 걸 쓴다고 윤리 책을 한참이나 붙들고 있었습니다. 간만에 공부한 기분....

아, 그리고.

중국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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