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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난 놈은 반신을 비롯한 생물의 종착점에 위치한 놈들이 100명 정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건 회귀 전이 기준이다.
회귀한 놈들은 그 전보다 환경이 좋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삽질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반신이 더 늘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중국이라는 나라 하나에서만 반신을 네 명째 상대하는 이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다.
100명 중 4명이 중국에 있다면 중국이 진작 세계를 먹었겠지. 군벌주의에 국토 만능론을 펼치는 중국 놈들이 힘을 가지고 식민지를 더 늘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마현, 그놈이 세종의 ‘유일한’ 반신이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위험한 인간. 위험분자의 숫자를 대폭 상향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당장 세 명의 반신을 상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남자와 한 여자. 모습은 모두 젊다. 그들은 여유롭게 나를 관찰한다.
“마법사인줄 알았는데, 설마 마검사일 줄이야.”
남정네가 입을 연다. 기생오래비 같이 생긴 놈이다. 다른 두 사람은, 중년인 하나에 여자 하나. 여자는 미인이다.
다만, 가슴이 없어서 내 취향하곤 거리가 멀다. 가슴 없는 여자를 보니 살의가 치솟네.
“아니, 난 마법산데?”
뒤에서 라팔이 도착한다.
“인형 넣어.”
라팔이 두말 않고 인형을 넣는다.
반신 세 명. 솔직히 말하면 버겁다. 그 검신 양반도 흥분해 설치지만 않았다면 싸움이 길어졌을 것이다.
날 봉인할 수단이 저쪽에 준비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싸우지 않는다.
나는 내 팔을 자른다. 내 행동에 반신들이 날 경계한다. 나는 그대로 팔을 하늘로 던진다.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마력을 집중시켰을 때 한정이지만, 내 피 한 방울은 엘릭서에 필적하는 마력을 품고 있다. 고맙게도 혈액 속의 마력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 피가 가득한 팔 한 짝이 하늘을 날고 있으며, 흑마법사의 마법 중에는 피를, 피에 담긴 마력을 폭발시키는 것도 있다.
그 마법이 내 피로, 내 신체로 이뤄지면?
핵폭탄 저리 가라다.
펑!
붉은 폭발이 하늘을 물들이고, 나는 라팔을 품에 안고 폭발을 파고든다. 라팔은 내 품에 쏙 들어와 있다.
몇 번 상대해 보며, 반신이라는 놈들에 대한 정보도 얻었다. 이 정도 위력이면 저놈들도 무시 못 한다. 불사인 나는 예외.
폭발과 함께 무너진 성벽으로 파고든다. 동시에 은신 마법 몇 개를 복수 사용하며 거리로 달린다.
현대적인, 전시임에도 평화로운 풍경의 도시다. 여기저기 노예를 학대하는 것이 아주 평화롭다. 평화가 사람이라면 기쁨의 눈물을 흘리겠다.
도시 전체를 탐지 마법으로 훑는다. 재밍이 걸려 있지만, 그런 건 무지막지한 마력과 내 마법 통제 능력으로 가볍게 무시한다.
중국 국토 전역을 커버하는 아티팩트. 넓은 범위를 관리하려면 그만한 장치가 필요한 법이고, 그걸 놓칠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다.
찾았다. 지맥 아래 흐르는 굵은 마력선. 지맥과 흡사한 성질로 꾸며 숨기고 있지만, 내 눈은 못 속이지.
수천 갈래로 뻗어가는 땅 아래의 마력의 흐름을 추적한다. 마력의 흐름이 모이는 장소는, 공교롭게도 자금성의 아래. 본거지 아래에 떡하니 그런 물건을 숨겨 놨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거겠지.
품에 안긴 라팔에게 묻는다. 라팔이는 내 앞섶을 꼭 붙들고 있다. 귀여워라.
“몸 상태는?”
“굿 잡.”
엄지를 척 든다. 나는 라팔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춘다. 라팔이 간지럽다고 몸을 떤다.
“알바트로스에서 나왔다고 했지?”
“이 광역 공간 마법 재밍. 이게 가능한 인류는 딱 한 사람.”
“쎄냐?”
라팔이 고개를 끄덕인다.
“공간 계열 진명에 기능도 그 방면으로 익히고 특화시켰어. 전투력만이라면 어지간한 반신 이상.”
그래 봤자 오크의 신 하위호환이겠지. 하위호환이라고 해도, 까다로운 건 변함없다. 그래서 라팔을 데려왔다.
“나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지?”
“한순간에 목을 꺾고, 다음에 몸을 불태웠어. 짜릿했어.”
살의로 시작된 만남이 이렇게 되리라곤 나도 몰랐다. 라팔이도 몰랐겠지.
“그때처럼, 딱 한 순간만 벌어주면 된다. 할 수 있지?”
한 순간의 방심, 그걸 위해서 라팔을 데려왔다.
“응.”
라팔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 앞에서 주먹을 쥐며 파이팅한다.
준비가 끝났으니 바로 자금성으로 돌입...... 하는 건 바보짓이다. 목표가 지하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 지하로 가면 될 일이다.
“가자.”
우리 앞에 구멍이 뚫리고, 나와 라팔이는 그곳으로 뛰어내린다. 구멍은 자동으로 메워지게 해뒀다.
땅굴을 파며 자금성 지하를 향한다. 자금성 근처에 도달하자. 벽이 무너지며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눈에 보일 정도의 농밀한 마력이 지하 내부에서 외부로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아티팩트가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장소에는 막대한 마력이 밀집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막대한 마력 앞에 있는, 아티팩트의 마력에 뒤지지 않는 마력 반응이 둘.
나와 라팔은 천천히 다가간다.
아티팩트는 거대했다. 지구에서 본 슈퍼컴퓨터를 생각나게 하는 크기와 형태를 하고 있다.
아티팩트 앞에는 두 사람이 서 있다. 둘 중 하나가. 라팔의 얼굴을 확인하고 얼굴이 굳는다.
“안녕, 발. 오랜만. 그리고 안녕.”
“안녕? 라팔? 무슨 소.......”
무슨 소리긴. 말 그대로 안녕이지. 방심한 남자에게 다가가 전백귀후십귀를 찌른다. 남자의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며, 전백귀후십귀의 검끝이 기이하게 꺾인다.
내 오른쪽 상반신을 노리는 공간 왜곡도 펼쳐진다. 허를 찔렀는데도 완벽한 방어와 치명적인 반격이 돌아온다. 이 한 공방이. 내가 중국과 싸우며 했던 싸움 중 가장 수준 높다.
내 몸을 노리는 공격은 무시한다. 어차피 재생된다.
일 점 집중, 전백귀후십귀에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공간 자체가 뒤틀려 검이 닿지 않는 상황, 그러나 고작 이런 장애물에 굴하면 광검의 이름이 운다.
공간 계열 능력은 확실히 사기지만, 나는 그 끝판왕 오크의 신과 싸워 이겼다.
베이기 전에는 백 걸음 가까이 오지 못한다.
그래서 전백귀.
베인 후에는 열 걸음 걷지 못한다.
그래서 후십귀.
오늘 네 이름은 전백귀후십귀가 아니라. 그냥 후십귀다.
불그스름하던 검날이 초록색으로 변한다. 뿜어지는 환한 빛은 없다. 모든 힘을 검 안에 극도로 응축했다. 응축된 힘이 비틀린 공간을 억지로 움직여 뚫는다.
후십귀가. 후십귀 모드의 전백귀후십귀가 남자의 옆구리를 가른다.
끝이군. 그런 생각과 함께 내 오른쪽 상반신이 사라진다. 찰나에 몸이 사라지는 느낌. 오크의 신을 상대하며 질리게 맛본 감각이다.
나는 바닥에 쓰러진다. 이건 연기다. 쓰러진 척하는 연기.
재생도 일부러 막아뒀다. 대신, 한순간에 재생할 수 있도록 마력을 모아둔다.
“위험했어. 라팔, 이 남자가 그 남자야?”
“응. 림돔팔을 죽인 사람.”
“이런 데서 만나는 건 의외였지만, 원수는 갚았으니 됐나. 라이켄이 난리겠어. 자기가 원수를 갚겠다고 폐관까지 했는데.”
나는 쓰러진 상태로 귀만 기울인다. 시체가 마법을 쓸 수는 없으므로 오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 오감도 몸 반짝이 없는 반쪽짜리다.
대화를 들어보니 내가 죽인 중년 아저씨의 복수랍시고 알바트로스에서 사람이 오지 않았던 이유가 라팔 덕분인 것 같다. 솔직히 살았다는 느낌이다.
중간계에 익숙하지 않던 나에게 인류 최상급 실력자가 무더기로 몰려오면 나는 끝이었다.
항상 말하지만, 내가 아무리 불로불사에 가까워도 죽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점을 잊지 않으려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방심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나는 미친놈이지만, 미친놈도 죽는 건 싫다. 되도록 오래 살고 싶다.
“라이켄은 바보니까. 몇 마디 해주면 돼.”
“하긴, 그것도 그런가.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걔는 좀 단순한 면이 있어.”
“발렌타인 공. 이건 무슨 일이오?”
두 사람의 대화에 다른 한 명의 남자가 끼어든다. 이쪽은 노인이다. 워낙 미친 세상이니 겉만 저렇고 속은 20대라든가 하는 것도 있을 수 있겠다.
꼬맹이가 훌륭한 예다. 신체 나이는 십대 초반이면서 속은 40대 아저씨라니. 조금만 더 어렸으면 여탕에 가도 되는 건데. 나 같으면 그걸로 일주일은 한탄했을 것이다.
참고로 목욕탕은 세종에도 있다. 지하수를 끌어올린 온천이라 나도 몇 번 갔었다.
“우연찮게. 이 남자가 저희도 쫓고 있던 남자였다는 겁니다. 그런 것 치고는 별거 아니었.......”
후십귀. 베인 후에는 열 걸음 걷기 전에 귀신이 된다. 열 걸음 걸을 시간은 이미 지났다.
독이 돌 시간이다. 방사능이라는 미지의 맹독이.
모아뒀던 마력으로 우측 상반신을 재생, 땅에 떨어져 있던 전백귀후십귀를 들며, 확인하지도 않고 휘두른다. 손맛이 있다. 수천 번이나 느꼈던, 사람의 목을 벨 때의 감각.
“무슨! 크헉...!”
노인이 무언가 하려는 것 같지만, 그전에 라팔이 움직였다. 내가 노인에게 시선을 향했을 때는 라팔의 손에 노인의 심장이 들려 있었다.
“칭찬해줘.”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손에 들고, 라팔이 내게 말한다.
나는 라팔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라팔의 표정이 조금 풀린다. 고양이 같다.
목이 잘린 시체와 심장이 뽑힌 시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끝났다. 이래서 방심이 위험하다. 자신과 비슷한, 또는 자기보다 강한 상대 앞에서 방심하면 이 꼴 나기 딱 좋다.
잠깐. 이거 이상한데. 나는 노인의 시체에 발을 올린다. 그리고 힘을 준다. 이 영감 아직 살아 있다. 힘을 줄 때 목 근육과 등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심장이 뽑혀도 살아 있는 능력이라. 불사 비슷한 건가 보네.”
노인이 내 발을 치우며 고개를 든다. 그 눈에 다급함이 어린다.
“나는 중국 주석이네,. 자, 잠깐 대화를.......!”
“대화로 풀 거면 처음부터 대화를 청했어야지. 이 새끼야.”
후십귀 모드인 전백귀후십귀로 노인의 목을 자른다. 이래도 모자라다 완자를 만드는 것처럼 몸을 조각조각 자른 뒤, 불로 소각까지 마치고, 나에게 들어오려는 노인의 영혼까지 흩어낸 다음에야 안심한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날지를 모르니 불사 속성을 가진 것들은 방심할 수가 없다. 나만해도 그렇다. 내 상반신이 날아간 것을 보고 완전히 방심했기에, 발렌타인이라는 놈은 반격도 못 해보고 죽었다.
퉷.
노인의 시체가 있던 자리에 침을 뱉고 신발로 문지른다.
존나 웃기는 놈이다. 지가 유리하면 힘으로 조지다가, 불리해지니까 대화하잔다. 대화로 풀 거면 처음부터 해야지 조질 거 다 조지고 지가 밀리니까 말로 풀어보려는 건 무슨 지랄이냐.
문명인답게 처음부터 대화하면 좀 좋냐? 안 그래? 그랬으면 이렇게 뒈질 일도 없었을 거 아냐.
나는 라팔과 컴퓨터를 닮은 아티팩트 앞에 선다. 윙윙거리며 아티팩트 안을 마력이 계속해서 돌고 있다. 그 마력은 지맥을 타고 수만 갈래로 퍼져나가 중국 전역으로 향한다.
여기 간섭하면, 노예 목걸이에 간섭하는 것은 물론 중국 국토 전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아티팩트에 손을 가져간다. 난 중간계의 마법 따위는 모른다. 아티팩트를 안을 흐르는 복잡한 마력의 흐름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간단히 간섭하는 정도라면 가능하다.
아티팩트에 간섭한다. 정확히는, 아티팩트를 타고 퍼지는 마력에 간섭한다.
“아. 아아.”
간단하게 목을 푼다.
나는 말주변이 없다.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사에 이름 올린 사람들에 비하면 내 언변은 쓰레기통에서 썩어가는 음식물 쓰레기다.
그러니까, 잠깐 그 역사적인 인물들의 말을 빌리자.
-신은 뒈졌다. 또 뒈질 것이다.
우선 니체 선생님부터 시작하자.
============================ 작품 후기 ============================
슬쩍, 작가는 옆에 있는 고등학교 윤리책을 펼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