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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류를 훑던 중 이상한 단어가 보인다. 화산파, 소림사. 남궁검가, 남궁창가. 분류는 무림 문파.
“그런데 무림 문파는 그거냐? 내가 생각하는 그거.”
“그렇습니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그 무림문파들입니다. 서양의 길드, 클랜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캬, 진짜 소림은 진짜 중이고, 무당은 진짜 산에서 도 닦고 그러냐?”
“그럽니다. 도를 닦으며 자신의 진명과 기능에 관한 깨달음을 얻으면, 사냥과 관계없이 능력치가 오르는 일도 있습니다.”
“영혼의 성장이라고 표현.”
라팔이가 옆에서 설명을 덧붙여준다. 영혼을 먹어서도 강해지고 영혼이 성장해서도 강해지고.
“그러면 영혼과 마력은 무슨 관계야? 영혼을 흡수하면 진명이 강해지냐? 마력은? 마력은 어디서 수급해?”
영혼을 흡수하면 강해진다. 놓고 보면 간단한 말이지만, 그 원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영혼을 흡수할수록 진명도 강해져. 그리고.”
라팔이 볼펜을 들고 서류에 끼적인다.
내 의문을 라팔은 아주 간단한 공식으로 이해시켜 주었다.
영혼=마력의 그릇.
과연, 그런 건가. 영혼이 커지면 그릇도 커진다. 몸에 받아들일 수 있는 마력도 늘어난다. 다룰 수 있는 마력이 늘어나면 강해진다.
사람의 몸에 쌓을 수 있는 마력의 한계를 그런 식으로 뛰어넘는다면, 깨달음을 통해 단번에 강해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마력을 어떻게 몸에 효율적으로 쌓느냐에 관한 것은 아갈리에서도 중요한 화두였다. 영혼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그럼 다른 의문이 생긴다. 내 마력은 무한하다. 그럼 내 영혼의 크기 또한 무한하다는 뜻이 되는 건가?
모르겠다. 내 존재가 워낙 괴이해야지. 이 세계의 상식으로 판단하는 것은 관두련다.
“이번엔 300만 대군 재투입. 대 반신용 전술 병기 동원. 각 문파에서 장교 차출. 최근 발견된 성자와 성녀를 추가 투입. 음? 반신도 껴 있네.”
작전 물자와 참전군인 목록 다음에는 작전 개요가 있다. 나는 그걸 보고 웃을 폭소를 터뜨린다.
“이게 뭐야? 예상 적병. 반신급 마법사 3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정예 마법사 집단으로 추정?”
마법사 각각에 대한 설명도 첨부되어 있다.
-극의에 이른 연금술사. 현자의 돌도 만들 수 있을 거라 추정됨. 연금술사 교전 교범에 따를 것.
-극의에 이른 네크로맨서. 러시아의 라스푸틴과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음. 기밀 서류, 대 라스푸틴용 전술서의 열람 허가. 해당 전술 교범에 따를 것.
-극의에 이른 자연계열 마법사. 대 영국용 시나리오를 참고.
웃기는 건 이놈들은 3개의 군대를 괴멸시킨 인간을 서로 다른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다. 전술도 전부 한 사람을 위해 짜여 있다.
대인을 위한 전술이나 다른 나라와의 싸움을 대비한 시나리오가 있는 건 대단하다. 중국의 전쟁에 대한 열의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정성이 크게 빗나갔다.
난 혼자거든.
“라스푸틴은 누구고, 영국은 왜?”
“라스푸틴은 반신에 가까운 러시아의 네크로맨서입니다. 영국은 마법의 명문으로 마법대국으로도 불립니다.”
첩자답게 아는 것이 많다. 라팔이에 이어 설명충이 하나 늘었다. 나야 좋지.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알 수 있으니까.
“그렇단다. 그런데 아직 멀었냐?”
책에 코를 처박고 있는 유상민에게 묻는다. 내가 있는 장소는 모랄쉰 왕국에서 고서가 모여 있는 서재다.
“책을 한 다발은 더 들고 와 놓고 그런 말이 나와요?”
유상민의 옆에는, 내가 뮤텐 왕국에서 털어온 자료가 쌓여 있다. 저것 말고도 중국에서 더 모아올 예정이다.
아, 일단 물어봐야겠다.
“너, 중국어는 할 줄 아냐?”
“읽고 듣고 쓰고 다 되는데요. 그건 왜요?”
“다행이다. 중국에서도 자료가 더 올 거거든.”
유상민이 와락 표정을 구긴다.
“재미있긴 한데, 이건 학대 아니에요?”
“뭐가?”
“일이 줄어들질 않잖아요.”
“그럼 하지마.”
“그건 싫어요.”
그러고는 다시 책에 코를 처박는다.
“세종에서 연락은 없냐?”
“살아만 나오래요. 전투 구경할 시간이 나면 구경도 좀 하고.”
“그건 염탐이냐?”
“네.”
어이쿠. 그렇게 말하면 잘도 내가 전력을 보여주겠다,
사랑이는 요즘 혼자 훈련하고 있는 것 같더라. 한동안 상대해주지 않았더니 날 만나기 전으로 돌아갔다. 지칠 때까지 수련하고 먹고 자고 수련하고의 반복이다.
본인 말로는 내가 상대해주지 않으니 욕정을 억누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래도 아무한테나 대주고 다니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 좆집으로서는 합격점이다. 대주고 다녔다는 소문이 들렸다면 버리거나 죽였겠지. 주인을 배신하는 물건은 필요 없다.
300만 대군은 뮤텐을 관통해 모랄쉰으로 향하고 있다. 뮤텐은 예정대로 버렸다. 탈영병 척살이라는 명목으로 군대가 흩어져 도적들을 사냥하며 오고 있다.
그나저나 탈영병만 50만 가까이 될 건데, 그걸 전부 잡아 죽이고 있다니. 군대라는 집단이 얼마나 미쳤는지를 잘 보여준다.
예정대로 시간은 벌었으니 됐다.
나는 모랄쉰의 국경에서, 아니. 국경보다 조금 앞에서 그들을 맞이하기만 하면 된다. 시간은 충분했다. 준비는 해놨다.
중간계에 최초의 ‘준비된 전투’라는 녀석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쪽 준비도 하고 있지만.
“중국 내부 활동은?”
“남방군 주요 거점 세 곳을 폭파했습니다. 그리고 부하 셋이 산화했습니다.”
부하가 산화했다는데 일정 동요가 없다. 그렇게 키워진 첩자인데다, 언데드까지 된 결과다.
“그 중장이라는 놈의 동태는?”
“정벌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통에 파악이 쉽습니다.”
그 중장이라는 놈을 먼저 치고 싶었지만, 그놈이 죽어도 정벌은 이루어질 것 같아 일단 놔뒀다. 군대를 처리하고 나서는 그놈이다.
그놈을 시작으로 중국 수뇌를 손봐야지. 적어도 당분간 모랄쉰에는 손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모랄쉰을 버리면 편할 것을 나도 참 힘들게 돌아간다. 자존심이 걸린 이상 여기까지 와서 손을 놓을 수도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누가 더 미친놈인지를 두고 나 혼자 중국하고 자존심 싸움하는 꼴이다. 나를 위한 전략까지 짜 오는 걸 보면 저쪽도 날 적수로 인정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그게 그나마 위안이다. 혼자 하는 쌩쑈는 아니라는 거니까.
삐이이익! 나에게만 들리는 경고음이 울린다.
설치해둔 경보 마법이 발동했다. 중국군이 사지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300만의 대군. 적은 대 마법사전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일방적인 싸움이 되지 않으면 좋겠는데, 오크의 신을 죽일 때와 같은,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거 반만큼의 스릴은 주었으면 좋겠다.
***
두 남녀, 청년과 소녀가 사라졌다. 마력의 잔향도 남지 않는 깔끔한 텔레포트. 마력을 어떻게 다루면 저런 게 가능한지 유상민은 늘 궁금했다.
완벽한, 한 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마력 통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300만이라고 했던가.’
중국의 대 반신용 전술 병기. 그게 뭔지는 유상민도 알고 있다. 대단하다. 대단한 기술로 만들어진 병기이긴 한데, 그걸로 저 남자를 어쩔 수 있냐고 물으면 회의적이었다.
미래 예지라는 손꼽히는 사기성을 가진 진명 보유자인 마현도 저 남자와 대적할 생각은 안 한다. 자신의 능력과 세종의 저력을 총동원하면 미국, 중국과도 싸울만 하다던 마스터가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얼마 전 마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중국의 미래를 봤다고.
유상민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중국 상층부의 어리석은 결정에 사람들만 불쌍할 따름이었다.
***
하늘에서 300만의 대군을 내려다본다. 전열은, 그냥 생각했을 때는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10만 정도가 앞으로 떨어져 나와 있다. 뒤쪽에도 10만 정도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이상한 전열이지만, 나는 저게 내가 나타나 기습할 때를 대비한 각성자들이라는 것을 안다. 나를 발견하는 순간, 저들이 대열을 맞춰 나에게 공격을 퍼붓기로 되어 있다.
280만의 중간에도, 내 기습을 대비해 마법사들이 항상 반마력장과 탐지 마법을 펼쳐두고 있다.
“적 발견! 적 발견! 바로 요격에 들어간다! 일단 떨어뜨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다!”
공군에게 발견되었다. 공군이래도 맨몸으로 하늘을 나는 마법사다. 수백에 달하는 마법사가 나를 둘러싸고, 땅에서는 지원 포격이 올라온다.
모두 마력으로 무효화하고, 주변에 광범위 중력 마법을 펼친다. 마법사들이 모두 떨어진다. 운이 좋으면 살고, 아니면 땅과 진득하게 키스할 것이다.
“잘 가아. 바이바이.”
하늘 정리 끝. 제공권을 확보했다. 땅에선 여전히 포격이 올라오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핵탄두를 몇 개 꺼낸다. 탄두라 해도 늘 똑같은 공 모양이다.
핵은 언제나 옳다. 핵은 최고다. 선빵, 기습, 효율을 모두 만족하는 최고의 무기다. 우라늄 저장량도 많이 줄었는데, 시간 나면 우라늄 광산이라도 하나 찾아야겠다.
숫자만 바글바글 많은 전장은 머리 아프기만 하다. 잔챙이는 전부 정리하고 시작하자.
핵탄두를 하늘에 뿌린다. 강한 마력 반응이 일어나며, 핵분열이 일어난다. 그대로 탄두가 낙하한다.
중국군이 빠르게 방어 마법을 펼친다. 거기서, 나는 손가락을 튕긴다. 미리 준비한 마법이 발동한다.
딱.
중국군이 펼친 방어 마법이 한순간에 소실. 그들의 맨몸이 노출되고, 그때를 노려 공중에서 핵이 폭발한다. 강렬한 빛이 세상에 도래한다.
지상에 태양이 강림하사, 태양보다 약한 놈들은 전부 사라질지어다.
방어 마법에 안심하고 있던 놈들, 방어 마법이 사라지고 폭탄이 터지기까지의 짧은 시간 안에 방어하지 못한 놈들은 전부 죽었을 것이다. 나는 남은 놈들만 상대하면 된다는 말씀.
한순간이지만, 적의 방어막을 모조리 걷어낸다. 내가 설치한 함정은 딱 그거 하나다. 전조 없이 즉시 발동하도록 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결과는 훌륭하다.
적 태반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가버렸으니 편하다면 편한 죽음이다.
폭발 후에 생긴 먼지 구름을 뚫고, 나에게 무언가가 날아온다. 몸을 틀어 피하며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다. 돌멩이? 그냥 돌멩이다.
이어서 수백 개의 암기가 연달아 날아온다.
쳇, 시야 확보가 안 된다. 바람으로 먼지를 걷어낸다. 암기의 정체는 모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나사, 돌멩이, 말뚝, 천막을 고정할 때 쓰는 기둥. 흙더미와 풀떼기도 날아온다. 모두 마력이 담겨 있지만, 마력과는 다른 힘도 작용하고 있다.
또 진명, 또또 진명이다.
나를 애먹이는 건 진명밖에 없다니까. 그래도 이 정도가 딱 좋을지도 모른다. 너무 싸움이 안 되면 재미없다.
마력으로 날아오는 암기를 허공에 강제로 고정. 방향을 틀어 암기를 날린 놈에게 되돌려준다. 유도 기능은 보너스.
자기가 날린 암기에 남자가 구멍투성이가 되어 죽는 걸 확인하며.
나는 땅으로 내려간다. 내 손에는 전백귀후십귀가 들려있다. 분명, 서류상에는 군에 자원한 반신이 있었다. 이 검으로 그놈도 벨 수 있을까? 심히 기대된다.
땅에 내려서자마자 수천 명의 인간이 나를 둘러싼다. 날 둘러싼 게 수천. 살아남은 것은 2만 정도. 나머지는 몸을 추스르고 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이 살아남았다. 중국도 그만큼 정예를 준비했다는 거겠지. 인종도 다양하다.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도 여러 가지가 보인다. 모두 몸 어딘가에 검은색 띠를 달고 있다. 흔히 말하는 노예 각인으로 저놈들은 노예병이다.
인간이면 어떻고, 노예면 어때.
이들은 모두 나를 죽이기 위해 모였고, 난 저들을 죽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