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9 / 0128 ----------------------------------------------
중국
마법의 신, 아갈리에서 가지고 있던 내 별명 중 하나다.
쥬피에텐 지에 브오.
아갈리 언어로 하면 이렇게 된다. 그런데 그걸 한글로 바꾸고, 줄임말로 만들면 전혀 다른 단어가 된다.
마신(魔神).
나쁘지 않은 별명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재해를 일으키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보기는 무리다.
내 발아래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도 그렇다. 네크로맨시와 흑마법이 무작위로 사용되었다.
다양한 저주에 사람이 녹아내리고, 비쩍 마른다. 미쳐서 동료를 죽이기도 한다. 멀쩡한 시체는 제멋대로 결합한다. 시체끼리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과 결합한다.
잘린 팔이 날아가 어떤 이의 뒤통수에 붙고, 팔에 다리가 세 개나 붙어 몸을 못 가누는 사람도 있다.
우연히 거시기 위에 거시기가 하나 더 붙은 사람이 있는데, 그놈은 자기 바지를 까내린 채 좋아하고 있다. 미친놈, 저걸 어디에 쓰려고.
산자의 몸에 시체가 뭉친다. 거대한 괴물이 탄생한다.
괴물은 자기 몸을 보고는 좌절한다. 강한 정신력으로 자아를 잃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그 모습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밖으로 드러난 대장이 꿈틀거리면 항문은 똥을 싸재낀다. 연결된 신경으로 그 과정을 모두 느끼고 있을 것이다.
괴물이 무기를 들려 하지만, 수십 개나 연결된 새로운 신경 때문에 팔이 다섯 개나 됨에도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결국 꼼지락 거리다가, 홀로 땅에 머리를 박는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튄다.
죽고 싶어? 그건 안 돼.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죽을 수 없어. 괴물에게 불사성을 부여한다. 깨져가던 두개골이 빠르게 치유되고, 괴물은 하늘에 울부짖는다. 그 소리는 이미 짐승의 소리다.
시체가 날아가 산 사람에게 들러붙고, 산 사람은 도망간다. 저주와 시체의 지옥이다.
징그럽고 역겹다.
할당량은 채웠다. 이대로 놔두면 군은 와해한다. 살아남는 인간은 대부분 미칠 것이다.
지옥이라 형용해야할 광경을 보면서 나는 즐겁다. 내 얼굴도 내 즐거움을 여실없이 나타내고 있을 것이다.
아직 치워야 할 군대가 2개나 남았다. 즐거운 시간이 예상된다.
높으신 분 하나를 잡아다 다른 군대 두 개의 위치를 알아내고, 그 방향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한다.
이번에도 나는 대화를 시도한다. 하나 하지 않으나 결과는 똑같으리란 것은 알고 있다. 선전포고의 목적은 단순. 나라는 존재를 저놈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나라는 악몽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광기에 몸을 맡겨도, 이성은 충실히 일한다. 광기에 몸을 맡겨도 나는 나이기에.
-헤이, 좋은 아침 제군. 아침부터 아주 슬픈 소식을 하나 전해야 하는 걸 유감으로 생각하네. 자네들의 나들이 목적지가 뮤텐 왕국이라는 걸 들어서 말이야. 거긴 지금 치명적인 바이러스 때문에 격리구역이 되었거든.
내가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나도 모르겠다. 뇌를 거치지 않고 척수를 타고 올라와 나오는 소리를 뱉고 있다.
-이 바이러스가 워낙 치명적이라 바깥으로 새나가면 큰일이야. 그래서 격리구역에 접근하려는 존재가 있으면 모두 말살하라는 닥터의 명령이 있었어. 그 거창한 소풍은 접고 돌아가면 안 될까?
“미친놈의 헛소리다! 격추해!”
“당장 저 미친놈을 떨어뜨려!”
마법과 화살이 날 향해 날아온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슬픈 일이군.
아공간에서 씨앗을 한 움큼 주워 뿌린다.
생명체의 몸에 닿으면 즉시 발아, 그 생명체의 에너지를 흡수해 자라는 식물이다. 발아부터 꽃이 맺혀 다시 씨를 뿌리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는 끔찍한 물건이다.
씨앗이 떨어져, 병사들의 몸에 닿고, 그 부분에서 작은 나무가 자란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민들레 홀씨처럼 생긴 씨앗이 바람을 타고 퍼진다. 또 다른 병사의 몸에 씨앗이 닿는다.
하얀 씨앗이 하늘에 분분히 날린다. 눈처럼 날리는 씨앗은 낭만적이지만, 그 아래서 들려오는 비명은 끔찍하다.
번식력 좋지만, 저 씨앗은 번식할수록 유전적으로 열화 한다. 십여 번 발아와 개화를 반복한 시점에서 평범한 식물이 된다.
이쪽도 끝. 다음 가자.
나는 덤덤히 그 비명을 듣는다. 내 안 은밀한 곳에서 푸른 쾌락이 차오른다.
내가 나를 보는 풍경은 오래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광기에 몸을 맡기면 항상 이렇다. 내가 나를 관망한다.
내 눈에 비치는 세계는 아직도 붉다. 붉은색을 광기의 색으로 표현하는데, 광기에 몸을 맡긴 내 시야가 붉은 것을 보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아니면 이 붉은색도 내 편견에 기초해 만들어진 걸까?
정답이 무엇이든, 나는 학살을 자행한다.
***
“300만 장병이...... 전멸?”
있을 수 없는 일을 들을 사람들이 대게 그렇듯, 양차위 중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는 빠르게 신색을 가다듬고, 두어 번 헛기침해 방금의 추태는 잊으라고 부하에게 눈치를 준다. 그리고는 다시 묻는다.
“300만 장병이 전멸했다고? 사실인가?”
양차위 중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공용어가 아닌 중국어였다. 저번 국토방위 대책 회의 때를 제외하면 반년 만에 입에서 나오는 중국어. 양차위 중장은 모국어를 살짝 어색하다 느꼈다.
“선봉 100만과는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200만의 후속 부대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던 터라. 특수 정찰병을 투입해 간신히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하는 부하가 사용하는 언어 또한 중국어였다. 기밀을 요하는 정보는 중국어로 전달한다. 중화민국군 간부가 제일 먼저 몸에 배게 해야 하는 습관이었다.
한때 20억 인구가 사용하던 중국어도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각인되는 중간계 공용어에 밀리고, 지금은 이런 비밀 대화에서나 사용되는 처지가 되었다.
암구호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편하다는 의견이 많다. 지금 이 대화는 이종족과 이국인의 귀에만 안 들어가면 되는 대화다.
“구체적인 피해는?”
“후발대 200만 중 140만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 50만은 패닉을 일으키고 흩어졌습니다. 군법에 따르면 전장이탈, 탈영병이 됩니다. 10만 정도만이, 정상적인 절차로 후퇴해왔습니다.”
여느 군이 그렇듯, 중화민국군, 중국군에서도 전시의 탈영은 즉결 처형으로 다스린다.
중화민국 남방군은 졸지에 50만의 사형수를 떠안게 되었다. 예외를 허용하기 힘든 게 탈영병의 처우다. 한 번 탈영을 용서하면, 그 뒤는 없다. 군대의 집단 탈영만이 있다. 양차위 중장은 머리가 아파졌다. 그러나, 그를 머리 아프게 할 사안은 아직 산더미였다.
그는 가장 중요한 화제를 꺼냈다.
“대체, 대체 무엇에 당했지? 작전지역 근방에 있던 반신들의 동태는 모두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을 것이었다.”
십만 단위의 군대라면, 5급 각성자가 다수라도 상대할 수 있다. 상교급 장교, 장군이나 대장군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보통 4급 후반이나 5급 각성자이니 화력 지원을 받으면 못할 것도 없다.
그런 이들을 뿌리치는 것이 가능한 것은 반신들. 인간의 탈을 벗어난 인간들 정도인데, 그자들이 움직였다는 정보는 없었다.
“후방 부대 세 곳 모두. 자신들을 상대는 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양차위 중장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아리까리했다.
“세 곳을 한 사람이 상대했다는 것인가? 세 곳을 각각 한 사람이 상대했다는 것인가?”
“그게....... 모르겠습니다.”
“몰라?”
양차위 중장은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몰라, 모른다? 이렇게 중대한 사안에 대해 보고를 하러 왔으면서 정확한 정보도 들고 오지 않은 부관을 갈아치우고 싶어졌다. 그가 손짓 한 번만 하면 그렇게 될 것이었다.
그는 그러는 대신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이어질 부하의 말을 기다렸다.
“셋의 인상착의는 같습니다. 그러나 사용하는 말투가 너무 다르고, 사용하는 마법이 너무 다릅니다.”
말을 끊는 부하에게, 계속해보라고 눈짓했다. 부하는 딱딱하게 굳은, 그러나 불신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말한다.
“한 명은 극한의 연금술을, 다른 한 명은 러시아의 라스푸틴에 필적하는 네크로맨시를, 다른 한 명은 영국 대마법사들과도 견줄만한 자연계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
양차위 중장도 부관과 비슷한 표현이 되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서 나타나는 불신.
극한의 연금술에 대해선 양차위 중장이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뒤의 두 가지. 라스푸틴과 영국 대마법사들은 달랐다.
요승 라스푸틴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러시아의 네크로맨서 라스푸틴. 정확한 역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100만의 언데드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그의 힘은 반신이거나 그에 가깝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다.
그리고 마법대국 영국의 대마법사들. 그들의 자연계 마법은 말 그대로 자연을 조종한다.
연금술도 그것과 필적할, 터무니없음이 예상된다.
그런 존재가 셋. 아니, 어쩌면 하나일지도 모른다.
“유마환 남방 참모처장.”
“넵, 중장 각하.”
“귀관의 소견은 어떻지?”
부하가 말을 망설인다. 양차위 중장도 이해한다. 말 한마디에 목이 날아가는 것이, 사람의 목이 지나치게 가벼운 것이 중국의, 중국군의 실태다. 대체할 인재가 차고 넘치니 생겨나는 하나의 폐단이랄까.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 불문에 부치기로 하지.”
“새로운 세력이 아닐까합니다.”
양차위 중장의 생각도 그러했다. 중간계는 넓다. 인간의 발이 닿지 지역과, 발을 내디딜 수 없는 험지가 아직도 존재한다. 심지어 개척 정신의 상징인 미국이 발 딛지 못하는 마경까지.
세계의 베일을 벗기지 못했으니. 그 안에서 괴물이 튀어나오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아마도 마법사 집단. 목적은 불명이나,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뮤텐과 모랄쉰 근방에 근거지를 뒀던가. 모랄쉰과 모종의 관계가 있거나.”
“하필 모랄쉰인 근거는?”
“뮤텐과 관계가 있다면, 저희 첩보조가 냄새를 맡았을 겁니다.”
타당한 의견이다. 아예 무능한 건 아니군. 양차위 중장은 아까 전 잠깐 참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직 쓸 수 있는, 유능한 부하를 버리는 건 아깝다.
‘어떡한다?’
반신급 마법사가 복수 소속되어 있는 집단의 등장. 그래도 남방 정벌은 시행되어야 한다. 지금 중국은 서쪽으로는 마의 해협, 동쪽으로는 검은 늪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둘 모두 개척이 힘든 험지. 개척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토가 국력이라는 중화민국의 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너무 비대하진 중국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노예와 토지가 필요하다.
북방군과 남방군 사이의 신경전, 양차위 중장 자신의 실적. 그리고...... 세계 대전이 일어날 미래에 대한 대비까지.
이 남벌에 걸린 것은 생각 이상으로 많다.
적이 설령 반신들이라도, 중국은 진격을 외쳐야 한다.
“예정대로 300만 병사를 추가로 준비하게. 그리고 상장께 가봐야겠어.”
“상장께... 말입니까?”
상장. 기존 중국군에서 대폭 계급을 수정한 현재에는 중국 남방을 지배하는 왕이라고 해도 좋았다.
“육군만으로는 부족하다. 공군에의 지원요청 및 중앙에의 지원요청도 하겠다. 편재를 다시 짤 준비를 하고 있어라.”
“넵! 알겠습니다!”
막 방을 나가려는 부관에게 양차위 중장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참모처장.”
“넵, 각하.”
“만약, 그들이 셋이 아니라면. 셋이 아닌 하나라면 어쩔 텐가?”
부관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자기의 얼굴도 비슷하겠지. 양차위 중장은 생각했다.
“사견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군에 사표를 내고 도망가겠습니다. 아주 멀리.”
“동감이야.”
그런 상대 인간이 존재한다면, 절대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악몽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지옥이다.
양차위 중장은 저택을 나와 차를 탔다. 커다란 정원까지 딸린 저택은 차를 타고도 입구까지 5분 이상이 걸렸다.
‘최소 세 명의 반신. 힘자랑 좋아하는 문파들과 중앙군이 좋아라하겠어.’
상대는 생물을 초월한 반신. 그러나 중국에는 어디 죽일만한 반신이 없나 벼르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
“공군에 중앙군. 숫자는 비슷해도 총 전력은 몇 배야 이게?”
이래서 언데드는 상급 언데드를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의 중요성은 이럴 때 나온다.
중국에서 뮤텐에 침투시켰던 첩보팀. 모두 언데드가 되어 고스란히 내 손에 들어온 그 첩보팀이 중국 내부의 신화나 경전을 모아오라고 보냈더니 대물을 물어왔다.
중국 군대의 동향과 재남침 계획에 관한 서류다. 하급 언데드면 이런 게 있어도 우직하게 내가 명령한 것만 모아왔겠지.
상급 언데드라 생전의 사고능력을 그대로 가진 이놈들은 당장 급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내가 명령한 자료를 모으다 말고 이렇게 돌아왔다.
중국의 선택은 재남침, 그것도 전력을 몇 배나 증강한 남침이다.
짜증나는 것들. 정말로 벌레 같다. 벌레는 밟아 죽여야지.
============================ 작품 후기 ============================
이제 그만 죽여....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