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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적들이 후퇴하고 있는데도, 내 앞에 남은 용사들이 있다. 절대적인 적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서 있는 인간을 용사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를까.
“저놈 말대로다! 대장군께서는 방심하셨기에 당하셨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용사들이 제각각 이상한 기술을 사용한다. 입에서 벌레를 뿜어내는 녀석. 총기를 꺼내는 녀석. 로봇을 불러내고 몬스터로 변하는 건 조금 심하지 않아? 인간이 아니잖아.
“그런 거로 발목이나 잡을 수 있겠어?”
지팡이가 땅을 찍는다. 대지가 변한다. 마력이 물든다. 내 마력이 대기의 마력을 잡아먹는다. 신들의 이상한 공간에서는 할 수 없었던 기술이다. 그곳의 마력은 이질적이다.
내가 개발한, 내가 내 기술이라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의 위력을 가진 기술.
이름하야,
“제마권.”
이 근방의 마력은 모두 내 것이 되니. 나 이외의 마법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법사들의 악몽이라고 불렸던 마법이다. 그래도 용사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진명이란 거, 진짜로 성가셔.
제마권(制魔權). 이 주변의 마력은 모두 내 것이다. 마법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일단, 도망가는 군대부터. 저렇게 대열을 맞춰서 도주해버리면 목적을 이루기 어려워진다.
지진이 일어난다.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며, 후퇴 중이던 군대의 일부가 구멍 아래로 사라진다.
바람이 분다. 허공에 나타난 허리케인이 병사들을 빨아올린다.
병사들이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대열이고 뭐고 없다.
“괴, 괴물.......”
괴이한 형상으로 변모한 인간이 나에게 말한다. 촉수가 달린 게 진짜 인간이 아니다.
“괴물은 니가 괴물이고.”
저걸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그게 아직 있으려나. 아공간을 뒤적여 플라스크 하나를 꺼낸다. 손에 들어갈 만큼 작은 보존 용기 안에 꿈틀거리는 촉수가 있다.
상태를 보니 아직 쓸 수 있겠다. 손에 힘을 줘 플라스크를 부수고, 지팡이로 내 팔을 자른다.
이해 불가능한 내 행동에 용사들이 동요한다.
설마, 내가 이유 없이 잘랐겠어. 죽음을 각오한 용기는 좋지만, 그 영감처럼 실전 경험이 부족해.
작은 촉수가 날아와 내 팔에 달라붙는다. 작은 촉수가 내 마력을 먹으며 빠르게 자라난다. 촉수와 신경이 이어지고, 촉수의 감각이 곧 내 감각이 된다.
과도하게 전달되는 신경 신호에 분할 사고 일부가 렉이 걸린다. 적응하자 렉도 없어지고 정상적으로 사고도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지금 내 모습은 한쪽 팔에는 지팡이를 들고, 다른 쪽에는 팔 대신 이상한 촉수를 달고 있는 모습이다.
“인간의 상대는 인간이, 괴물의 상대는 괴물이. 이래야 공평하지?”
팔 대신 내 어깨에 달린 촉수가 괴물의 형상을 한 용사를 덮친다. 늘어난 촉수가 무차별적으로 용사를 공격하고, 용사는 촉수의 공격에 밀려난다.
장비는 닿으면 부식되고, 살이 닿으면 독에 중독된다. 괴물 상대에는 제격이다.
팔 하나로 괴물을 상대하며, 나는 나머지 용사들에게 시선을 향한다.
그들의 시선은, 인간이 아닌 이형의 것을 보는 것이었다.
아아, 저것도 익숙한 시선이다. 자기 팔을 촉수로 바꿔 달고, 자연재해를 자유로이 일으키는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을까? 나도 회의적이다.
겉모습은 같되 절대로 같은 선상에 설 수 없다. 육체적인 차이는 차치하고서라도, 저들과 나는 정신 구조가 너무 다르다.
겉이 같아도 속이 이리도 다르면 서로 다가가기란 요원하다.
다가갈 생각도 없지만.
“좋은 눈빛이야.”
분명 사선을 몇 번이나 넘어왔을 맹장의 눈이다. 그런 눈을 한 자들의 공격도 무엇 하나 나에게 닿지 않는다.
“마법사, 저 베리어를 없앨 순 없나?”
“무리야! 저건 단순한 마력 덩어리라고!”
“거짓말!”
믿기 힘든 얼굴로 외치는 검사. 미안하지만, 그 말이 맞다. 이건 그냥 마력 덩어리다. 베리어 해제 마법 같은 건 듣지 않는다.
왼팔의 촉수가 괴물을 쓰러뜨리고 돌아왔다. 그 촉수를 이용해 용사들을 공격한다. 수백 가닥으로 나뉜 촉수 하나하나가 창이며 검이다.
잘 잘리지도 않고, 불태워도 재생하는 악몽의 무기.
나에게 맞선 용사들이 다 죽었다. 그들이 목숨을 건 것치고, 건진 건 허무할 정도로 적다.
70만 정도. 목표치만큼 확실히 줄였다. 남은 30만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흔히 탈영병이라고 하는데, 이 탈영병이 정말 골치다. 식량도 없고 내일 마실 물도 없는 탈영병에게 가진 것이라곤 무기뿐이다.
30만의 무장한 거렁뱅이 집단. 사람들은 그런 자들을 도적이라고 부른다.
중국과 뮤텐 사이에는 30만의 도적이 서성거리게 되었다. 뮤텐과 모랄쉰 사이에서도 도적이 늘겠지.
그사이에 낀 뮤텐에는 정말로 도적이 창궐할 것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도적으로 된 방벽이 생겨났다.
이것도 완전하진 않다. 대군으로 밀고 들어오면 그만이고, 소수 정예로 뮤텐에 게릴라를 걸어도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처음 죽인 그 노인. 그 노인 혼자 뮤텐의 수도에 쳐들어가도 수도의 수인들을 몰살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겠더라. 마지막까지 나를 막던 용사들도 마찬가지. 그런 놈들이 유격대로 활동하면 된다.
즉, 적이 게릴라로 나오면 아무리 나라도 곤란하고, 그런 곤란에 처하면서까지 뮤텐을 지켜줄 의리는 없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시간 벌이.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랄쉰을 지키는 것이다.
뮤텐은 중국과 모랄쉰 사이의 완충재 역할이다.
라팔이 둥둥 떠서 나에게 날아왔다. 무릎을 안고 하늘에서 두둥실 회전한다. 라팔 혼자 우주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내 팔에 달린 촉수를 잘라내 다시 아공간에서 꺼낸 보존용기에 담는다. 잘린 팔이 바로 재생한다.
“끝?”
“200만이 더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진득해.”
라팔이 무표정하게, 진저리난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중국이랑 싸워봤냐?”
전생에 몇 번, 현생에 3번. 이라고 말한 라팔이 본격적인 설명에 들어간다.
“총인구 15억. 전시체제에 돌입하면, 그중 5억이 병사로 돌변해.”
“미친? 그게 말이 되냐? 보급은?”
병사의 숫자는 그 정도가 나와도 놀랍지 않다. 튜토리얼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몬스터를 죽이고 사람을 죽이는 법이다.
중간계에 와서도 마찬가지. 죽인 대상의 혼을 흡수해 강해지는 것도 그렇고,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남을 죽여서 살아남는 세계다.
그러니 병사의 숫자가 많은 건 이해가 된다. 그런데 5억이 전쟁 나가면 그 5억은 누가 먹여 살리냐.
“식량 생산계열 진명 소유자 다수 확보. 목축 계열 진명과 기능을 가진 사람까지 있어. 완벽에 가까운 자급자족 시스템.”
식량 생산계열 진명? 성장 촉진 마법으로 식물을 빠르게 재배하던 건 나도 하던 짓이니 놀랍지 않다. 그런데 그런 진명까지 있다니.
진짜 온갖 게 다 있다.
목축도 가능하면 곡식과 고기. 먹고 살기 위한 기초적인 것들이 마련된다.
“그렇게 보급을 군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 별도의 보급병 필요 없어. 식량 생산도 걱정 없음. 이동하는 성벽까지 있어서 말 그대로 이동 요새. 무시무시한 대륙의 기상.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아.”
나도 동감한다. 요새가 이동하며 전쟁을 치른다. 이거 완전 사기다. 일반 상식으로는 쓰러뜨릴 방법이 안 떠오른다.
“일단, 보급은 그렇다 치고, 인구가 15억이라는 건 무슨 개소리인지 설명 좀 해봐라.”
중국 인구를 아주 넉넉잡아줘서 30억이라 치자. 튜토리얼에서만 반이 이상이 죽고, 중간계에 와서는 더 많이 죽는다. 15억이라는 숫자는 나올 수가 없다.
“중국에서 다른 나라를 강제로 흡수 합병했어. 그리고 이종족을 마구잡이로 잡아서 노예로 삼아. 그렇게 나온 숫자가 15억.”
“미쳤군.”
“응. 미쳤어.”
지구에서도 덩치로 승부하더니, 중간계에서도 그러기냐. 진짜 장난 없다.
그 장난 없는 나라와 나는 전쟁을 해야 할 처지고.
200만이 얘들 장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 특이한 진명이 몇이며, 그 노인처럼 나한테 한 방 먹일 수 있는 인간은 또 몇 명일까.
200만을 넘어 15억으로 넘어가면? 그중 나를 죽일 수 있는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란 것도 별거 아니다. 내 자아를 빼앗으면, 생각을 빼앗으면 그게 죽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봉인이나 사고 능력의 박탈도 일종의 죽음이라 할 수 있다.
200만을 죽이면 그걸로 끝일 줄 알았는데, 중국에는 그것의 100배가 넘는 여유 병력이 있다. 잘못 건드리면 신과 싸울 때보다 힘들 것 같다.
중국과 싸우는 것이 살짝 망설여진다.
뮤텐과 모랄쉰을 내어주고, 자료만 빼서 세종에서 조사할까? 뮤텐에서 필요한 자료는 전부 가져오거나 숨겼으니 그래도 되긴 된다. 그래도 그러면 도망간 것 같잖아.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중국과 싸우는 건 미친 짓이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이성이냐, 자존심이냐.
결정을 내린다.
자존심이 먼저다. 미친 짓? 미친놈에게 미친 짓 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하아, 팔자 사납네, 진짜.
내가 자초한 팔자지만 정말 사나워.
라팔과 함께 북쪽으로 텔레포트. 중국의 후발대를 찾는다.
찾았다. 진열을 이룬 대군이 남진해오고 있다. 숫자는 선봉 100만보다 적어 보인다. 삼각 진형을 짜고 뮤텐 국토를 유린하는 작전이라 했으니. 이건 세 개의 부대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에도 전멸시킬 생각은 없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어, 적을 흩어버릴 뿐이다. 그놈들은 살기 위해 도적이 되고, 학살의 충격에 미쳐서 도적이 되거나 죽거나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하나? 그런 종류의 정신질환을 일으켜서 미친놈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은 단단하지만, 무너질 때는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내가 좋은 예다. 무너질 대로 무너졌지만,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내가.
-여러분 좋은 아침.
시간은 새벽을 지나 이른 아침이 되었다. 어제 50만을 처리했고, 오늘 새벽 100만을 정리했다. 아침 일정은 오전 중으로 200만을 정리하는 것이다.
-니들이 진군하려는 장소는 안타깝게도, 마왕님이 지배하는 장소시다.
합계 350만.
하, 내가 생각해도 정신 나간 숫자다. 이 모든 일이 24시간도 안 되어 일어날 예정이라는 것을 더욱 그렇다.
중국에는 저것의 100배가 넘는 예비군이 남아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정신 나갔다.
인간이 개미로 보이기 시작했다. 짓밟으면 터져 죽는 그런 놈들. 개미집을 찾아서 뜨거운 물을 부었었던, 철없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오른다.
저것도 다르지 않다. 운석 한 방이면, 큰 마법 한 방이면, 혹은 주먹 크기의 우라늄 한 덩이면, 뜨거운 물을 부은 개미처럼....... 위험 신호로군.
-그러니까 경고한다. 지금 당장 물러가라.
정신이 맛이 가고 있어.
내가 참는다고, 버틴다고 버텨지는 그런 게 아니다. 미치기 싫다고 미치지 않을 수 있다면 세상에 정신병자는 하나도 없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을 볼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진짜 지옥을 보여주마.
극약처방을 해야 하나. 나야 괜찮다. 극약처방인 만큼, 효과는 확실하니까. 걱정되는 것은 라팔이. 저놈이 날 어떻게 볼지. 으음? 내가 이런 걸 신경 썼던가.
피식 웃고 만다. 좆집, 좆집 했어도. 라팔을 상당히 마음에 두고 있었나 보다. 뭐, 저만큼 마음 맞는. 저 정도로 나와 비슷하게 미친놈이 있다면 동질감이 들 법도 하지.
하지만, 나는 애초에 혼자였다. 둘이었던 적은 처음부터 없었다. 아갈리로 첫 번째 소환된 그때부터 쭈욱.
그러니까, 아까부터 선전포고도 안 끝났는데 공격부터 날리는 저 날파리들 먼저 처리하자.
-이 공격은 경고를 무시한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미쳤지만, 미쳐 돌아버릴 생각은 없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자아를 놓을 수는 없다. 그러면 극약처방을 해야지.
극약처방. 가슴 속의 분노와 광기에 몸을 맡긴다. 시야가 붉게 물든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런 착각이 들고 환각이 보인다.
-전쟁이다.
내 손에 지팡이가 들리고, 마법의 신, 마신이 강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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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나라와 미친놈의 격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