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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도 그러했고, 세종에서도 그랬다.
유상민이 고서를 살피는데 걸리는 시간은 넉넉잡아 두 달. 그 시간 동안 뮤텐에서 모랄쉰에 장난친 흑막을 잡아 죽일 생각이었다. 취미의 영역이었으며, 거창하게 할 생각도 없었다.
내 목적은 신을 잡아 죽이는 거지. 중간계의 생물을 멸종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핵폭탄 빵빵 터뜨리면서 세종이고 나발이고 몽땅 날려버렸다.
핵폭탄까지 갈 필요도 없이. 대지에 방사능 물질을 대량으로 뿌리기만 해도 생명은 대부분 죽는다. 소리 없이, 기척 없이 방사능에 노출된 모든 생물이 변이하고 죽어간다.
광범위 살상이 목적이라면 핵폭탄보다 방사능 물질만 뿌리는 것이 더 무섭다.
장기전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신을 죽이는 여정. 그 여정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디까지나 되도록 온건하게 개인적인 향락을 즐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결심이 무색하게. 나는 중국과 전쟁을 치르게 생겼다.
세상 참 아이러니다.
망해가는 뮤텐의 도움을 바라는 것도 무리, 고작 50만 병사 때문에 왕까지 출병을 고민할 정도로 모랄쉰도 여력이 없다. 기대도 안 했다. 그쪽에 나와 합을 맞출 인간이 있으리란 생각도 안 든다.
남는 건 나 하나.
나 홀로 전쟁이다. 영화로 나오면 크리스마스마다 가정집 텔레비전을 장악할만한 제목이다. 참혹한 전쟁 영화니 얘들은 못 보겠다.
수위를 따지면 미종군자 시청금지. 전장의 참상을 겪지 않은 자들이여, 이 영화를 볼지 말지어다. 흥행이 절망적이다.
“야. 남은 대신들 사제들, 기타 등등 권력자들 전부 여기로 불러.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알겠습니다.”
“즉시 따르겠나이다.
수인 언데드 둘에게 명령한다. 저놈도 고위 관직자니 문제는 없겠지.
유진청이라는 중국 놈에게도 명령을 내린다.
“너도, 여기서 활동하는 네 부하들 전부 데려와.”
“전...... 최고 책임자가 아닙니다.”
“그럼 최고 책임자만 불러와 봐. 그건 되지?”
“네. 가능합니다.”
그놈만 있으면 다른 놈들도 죽여 조종하면 된다.
“가 봐.”
유진청이 사라진다. 흘러가는 먼지. 저게 저놈 진명이다. 불쌍해서 동정까지 해주고 싶어지는 이름과는 반대로 성능은 놀랍다. 기척을 숨길 수 있고, 몸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진명이 숙달되면, 최후에는 먼지 크기까지 작아질 수 있단다. 첩보 활동에 최고인 능력이다.
세 시간 후.
뮤텐의 고위 공직자가 모두 내 앞으로 배달되었다.
나는 옥좌에 앉아 그들이 모이기만을 기다렸다. 마력을 숨기지도 않았기에, 그들은 옥좌에 앉은 날 보고 곤혹스러워한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섣불리 말을 꺼내지도 않는다.
뮤텐 왕국의 명예가 내 발밑에 있다. 아주 짓밟는 중이다. 뭐, 그것도 문제가 안 된다. 곧 사라질 왕국이니까.
“이게 전부?”
“수도를 벗어나 도망간 이들을 제외하면 전부입니다.”
“그새 도망간 놈들도 있어? 발 존나 빠르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단 말이잖아.
“남은 놈들로도 충분하니까. 상관없나.”
재무관, 국무관, 군무관이 여기 다 있다.
“살아 있으면 일 처리가 귀찮으니까. 일단 죽어.”
놈들을 모두 죽여 언데드로 부활시킨다. 기억과 사고능력은 남겨야하니 모두 고위 언데드다. 수십 체의 고위 언데드를 만드는 데 불과 십여 초.
제자 놈은 꿈도 못 꿀 까마득한 경지다. 제자 놈은 고위 언데드 하나에 몇 시간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제자 놈이 무능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규격 밖이다.
“책, 자료, 서적. 기록된 건 다 들고 와. 특히 종교 서적은 숨겨둔 것까지 다 찾아서. 그리고 유능한 학자가 있으면 부하를 보내서 확보할 것. 확보하지 못하는 것들은 표식을 새기고 땅에 묻어둬라. 이상이다. 모두 흩어지고, 재무 관리는 병참과 곡창의 위치와 규모에 대한 서류를 최우선으로 제출하라.”
이제는 내 부하가 된 전 뮤텐 왕국의 고위 관리들이 흩어진다.
왕은 죽었고, 왕좌에 앉은 건 나다. 나라의 머리는 모두 내 언데드다. 나라 하나를 장악한 것과 다름없다. 이 나라는 이제 내 거다.
곧 망할 거지만. 전선이 길어질수록 소모가 커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나는 모랄쉰만 지키면 된다. 뮤텐이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
“뮤텐을 버리실 건가요?”
사랑이 묻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내가 얘들 살려줄 이유가 있냐?”
“아뇨.”
“동정하냐?”
“아뇨.”
그걸로 끝. 더 돌아오는 질문이나 반론은 없다. 동정심 많아 보이는 사랑이도, 잘 보면 눈이 맛이 갔다.
때론 인간에게, 때론 이종족에게. 여러 종족에게 성노예로 팔려 다녔던 애한테 생물에 대한 무한한 자비를 요구하는 놈이 있으면 그놈은 나 이상의 또라이거나 진짜 예수의 현신이거나 둘 중 하나다.
사랑이가 덜 또라이였다면 아마 우린 이런 대화를 했을 것이다.
구할 수 있는데 왜 구하지 않으세요? 구하기 귀찮으니까.
나중에 당신에게 보답이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무슨 보답? 내가 만족할만한 보답을 줄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강한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에요. 그거 누가 법으로 명시해놨냐? 내가 강해지는데 세상이 보태준 거 있어? 벤 삼촌이 사람 여럿 망쳤다.
비슷한 대화를 수백 번을 했다. 날 계도한답시고 대화를 걸어오는 사람이 그 정도 되었다. 그들 중 반은 대화가 안 통한다며 적반하장으로 화내다가 나한테 맞아 죽었고, 반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극히 소수는 힘으로 날 어떻게 해보려고 하기도 했다.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이상, 나는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진리일 뿐.
재무관에게 명령한 서류가 왔다. 수도의 창고의 돌며 식량과 무기를 턴다. 왕궁 비밀고까지 털었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한 달 치 식량을 재어두거나 하지는 않는다. 식량을 저장하는 것은 군이나 국가 정도. 전쟁이 나면 식량이 부족해지고 난민이 생긴다. 그리고 난민은 무작정 군대를 피해 남쪽으로, 모랄쉰으로 오겠지.
그래서 전부 털지는 않았고, 딱 반만 털었다. 여기 사람들도 살아야지.
여기 사람들도 살고, 모랄쉰으로 오는 난민도 살고. 내가 왜 모랄쉰의 내정까지 신경 써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장에서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가. 사고가 너무 치우쳤다.
난 정치인이 될 생각이 없는데, 미친놈이면 되는데.
털 건 다 털었다.
“가서, 사정 설명 좀 해라.”
대량의 물자랑 사랑이를 모랄쉰으로 보낸다. 밤이 가고, 새벽이 왔다. 유진청이 자기 상관을 데려왔다. 이놈도 죽여서 언데드로 삼는다.
“네 부하들 집합시켜.”
그렇게 모인 중국의 첩보원들도 언데드가 된다.
“조국으로 돌아가서. 신에 대한 정보를 모아라. 성서, 신화 가리지 말고.”
부업을 하면서도 본업은 잊지 않는다. 인류가 중간계에 발 딛고 십여 년, 그렇게 많은 정보가 있을 거란 기대는 않는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그리고 몇 놈. 너희들은 이걸 들고 본부로 돌아가.”
그리고 선물도 잊지 않는다.
“아, 마지막으로. 너희 대장하고 협상하면 군대를 물려주기도 하냐?”
기대는 안 한다. 이만한 인력과 자본을 투입한 작전을 한 번 실패했다고 깔끔하게 포기할 것 같지가 않다.
“최악의 경우 300만의 군이 당해도, 300만을 추가로 투입한다고. 상부는 상정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에겐 넓은 국토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대화로 푸는 것은 불가능. 남은 건 싸움.
“됐다. 흩어져.”
첩보원들이 흩어진다.
나도 내 할 일을 해볼까.
이 자리를 기점으로 북쪽. 중국군이 보일 때까지 텔레포트한다.
얼마 가지 않아서 대규모 군막이 보인다. 꽤 먼 거리인데, 벌써 겁먹고 있었나. 겁쟁이들. 뮤텐의 관리들이 한심해진다.
새벽녘의 군대는 자그마한 소음 속에 있다. 저 거대한 생명체가 기지개 켤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알람은 조금 빠르다. 죽기 싫으면 알람시계를 꺼라.
“전쟁?”
“아니, 학살.”
“구경할래.”
라팔은 멀찍이 날아가 정지한다. 공중에서 무릎을 안고 웅크려 앉는다.
라팔을 놔두고, 나는 공중으로 올라간다. 구름보다 높이. 우주가 보이는 곳까지. 대기권을 뚫으면 나타나는 곳은 우주.
몸에 마력을 두르고, 중력에 몸을 맡긴다.
집적한 마력장에 불이 붙는다. 즐거운 기분이다. 지구에 떨어지는 운석도 이렇게 즐거울까. 걔네는 몸이 타는 거니 분신자살하는 기분이려나.
군영에서 강한 마력 반응이 느껴진다. 일부러, 강력한 마력까지 뿜어주며 경고했다. 그러니까 알람시계다.
막지 못하면 죽는다는 점이 보통 시계와 다른 점일까.
군영 전체를 마력이 감싼다. 나와 마력장이 충돌한다.
파직. 파지직. 번개가 튀며 마찰이 일어난다. 군영을 감싼 마력장이 부서지고, 나는 땅과 충돌한다.
운석이 내가 됐다. 소리를 뛰어넘는 폭력이 작렬한다.
“몇이나 남았나.......”
한 방으로 30만은 정리한 것 같다. 하, 단번에 세계기록을 넘겼군. 사람을 많이 죽인 개인으로 기네스 갱신이다. 오로지 지구인 한정으로 말이야.
“요격! 요격하라!”
“적습이다! 적은 단 하나! 5급 각성자로 보인다!”
“4급 이상 각성자들을 불러와!”
유린당하기만 하던 뮤텐의 군대와는 다르다. 강한 개인을 상대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이 잡혀 있다.
전쟁을 경험해본 나는 알겠다. 교전 경험이 다르다. 100만의 정예군. 뒤쪽의 300만은 또 어떨까.
어떤 정예라도, 아군이 죽으면 보여주는 모습은 다 똑같다.
공간을 찢고, 지팡이가 나타난다. 내 피를 먹이고 농축 우라늄을 사용해 만든 금빛 지팡이. 내가 만든, 나만을 위한, 내 지팡이. 오랜만에 본업으로 돌아가자. 마법이다.
“좋은 아침이다, 제군. 대마법사의 영역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지.”
지팡이를 쥔다. 마력이 끓는다. 부글부글. 몸을 태울 듯이.
이 고양감.
“아아, 오랜만이야.”
무심코 혼잣말을 할 정도로 오랜만이다.
고양되는 기분과 함께 날카로워지는 감각. 그 사이로 몇 명인가의 사람이 파고든다. 내가 겪었던 것 중 역대급으로 빠르다.
칫, 살짝 방심했다. 오크의 신이랑도 접근전으로 싸웠는데, 인간에게 틈을 내주다니 꼴이 우습게 됐다. 하긴, 그건 접근전이라기보다는 난타전이었지. 화려한 기교는 없었어.
반면 다가오는 사람은 몇 겹이나 복잡한 마력의 흐름을 두르고 있다. 무공. 비슷한 걸 쓰는 놈을 투기장에서도 봤다.
다가오는 것은 노인이다. 노인의 주먹이 내 배를 강타한다. 그러나 공격은 몸을 감싼 마력장에 막힌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크흑?”
내부에 직접 충격이 전해진다. 위장부터 시작해서, 심장을 제외한 내장이 모두 터졌다. 일반인이었다면 즉사다. 식도와 기도를 타고 피가 역류한다. 피와 내장이 입안을 채운다. 역하고 비리다.
뭐야 이거? 마력의 흐름은 없었다. 마력의 움직임 없이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진명뿐이다. 저건 무슨 진명이야. 방어관통? 뭐 저딴 사기 기술이 다 있어.
노인은 깔끔하게 손을 털고 나와 거리를 둔다. 이미 이겼다는 표정이다. 내가 불사가 아니었다면 방금 그 일격으로 끝났겠지.
미안하지만, 내 장기는 이미 모두 재생되었다.
“역시 권신!”
“일격필살!”
떠드는 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돈다. 권신. 거창한 이름이구나.
소매로 피를 닦으며 충격으로 굽혀졌던 허리를 세운다.
“신도 죽였겠다. 내가 무적인 줄 알았는데.”
한 방씩 얻어맞기도 하는구나. 인간을 상대로 정타를 허용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진명, 영혼의 힘. 오크의 공간 조작도 그러더니. 정말로 성가시다. 나도 진명을 얻든가 해야지.
노인이 다시 공격해온다. 공격을 내 의지로 허용한다. 목을 노린 발차기는 마력장에 막힌다. 예상대로. 뒤이어 찾아올 내부의 충격도.......“
“뭣?!”
마력을 사용하면 막을 수 있다. 진명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현상만 알면 넘치는 마력으로 방어할 수 있다.
“일격에 적이 쓰러지니, 이격 째는 생각을 안 하는구나? 그래서 죽는 거야.”
불의 칼날이 노인의 몸을 가른다.
“그렇군... 언제부터인가, 두 번째 공격을 생각하지 않았어.......”
노인이 몸이 불타 사라진다. 육신을 잃은 영혼 중 일부가 나에게 날아온다. 영혼의 크기를 봐선 이 영감도 거물이다. 영혼을 마력으로 흩어냈다.
군대는 후퇴, 아니 도망친다. 좌우지간 분간하지 않고 병사들이 탈주한다. 훈련된 정예라도, 살육 앞에서는 이성을 잃는다.
“후퇴! 후퇴다! 병사를 유지하며 최대한 후퇴하라!”
적의 방침이 바뀌었다. 요격에서 후퇴로.
100만 대 1의 싸움.
분명 그러한 싸움인데 100만이 1을 피해 도망간다.
100만을 전부 죽이긴 힘들다. 전부 죽일 생각도 없고, 그러면 너무 깔끔하다.
70만 정도 줄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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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진짜 인류가 반으로 줄지도...... 아니, 지성체가 반으로 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