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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잠깐 북쪽 왕국에 다녀올게.”
유상민에게 통보한다.
“거긴 왜요?”
왕궁 구석에 있는 서고에서 고서들 사이에 박혀 있던 유상민이 대답한다. 번듯한 외모로 저러고 있으니 젊은 학자로도 봐줄 수 있겠다.
“북쪽의 군대, 그놈들이 총기를 쓰더라.”
“그리고 이거.”
나는 종교계 놈들이 가지고 있던 프로파간다 개요서는 유상민에게 넘긴다. 유상민은 그걸 읽고, 태연하게 이리 말한다.
“인간이 개입한 전쟁. 재미있네요.”
단번에 핵심을 짚는다.
저놈은 미친놈이지만, 머리 좋은 미친놈이다. 직업은 조사관, 자료 조사와 분석을 특기로 하는 직업. 이런 방면은 나보다 빠삭할 것이다.
“같이 가게?”
“아뇨, 지금은 이게 더 재미있어서요.”
내 생각에 저놈도 나와 비슷한 부류다. 세상을 흥미와 재미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족속. 그런 놈들 머리에는 자기 목숨은 저울에 달려 있지 않다.
뭐가 더 재미있느냐. 이것만이 그놈들의 저울에 오를 자격을 가진다.
그러니 틀림없이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안 간단다.
심지어 재미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저 낡은 책들 사이에서 흥미를 끌 만한 것을 찾은 것 같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저는 발로 뛰는 기자보다는 나중에 따라가는 사가 타입이라서요.”
일이 끝난 뒤에도 재미 볼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긴다. 내 짐이라 하면 딱 두 개다. 라팔이와 사랑이. 내 좆집 두 개.
지도를 꺼낸다. 꽤 예전에 꼬맹이에게 받아 놨다. 세종에서 주운 어설픈 지도와는 차원이 다른 지도다. 일단 규모가 다르다. 세계 지도라 불러도 될 법한 지도다.
여러 종족의 영역이나 그 종족들이 세운 나라가 나와 있지만, 그건 넘기고.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북쪽을 찾는다. 왕국 이름이...... 모랄쉰이었지.
모랄쉰 왕국의 북쪽, 뮤텐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지도상의 규모는 비슷하고, 특이점이라면....... 중국.
국경을 접한 수준은 아니지만, 뮤텐 왕국 옆에는 중국이 있다. 두 왕국에 개입한 건 중국일 가능성이 농후한가.
중국의 국경 중 2면은 개척이 힘든 험지로 표기되어 있다.
참고로 말하면 세종과 서울의 옆에 있는 신단 산맥 안쪽 또한 개척 불가능한 험지라고 지도에 나와 있다.
세종과 서울이 광대한 산맥 자원을 개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 또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국경을 한계까지 넓힌 상황에서 다시 나라를 넓히기 위해 열국에 손을 댔다.
일차적 해석으로는 충분하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그때그때 예상을 수정하면 된다.
현장으로 향할 때다. 테라스에서 먼 하늘을 보고, 양 옆구리에 라팔과 사랑을 낀다. 이런 건 시간 싸움이다. 텔레포트로 빠르게 이동하기로 하자.
막 텔레포트를 하려는 차에, 공주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뭐?”
“음, 저기... 감사를 하려고 왔다. 고맙다.”
공주가 볼을 붉힌다. 부끄러운 건 아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라를 두 번이나 구해줬고, 그 원인이 전부 자기 때문이란 걸 알았으면 부끄러움에 자살이라도 하려나?
그거 말고, 상대가 나라는 것도 있겠지. 공주가 어려워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장면을 보여줬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혐오하기에, 내가 왕국에 해준 게 좀 많아야지.
국보 찾아줘, 반란도 진압해줘. 왕의 목숨도 구해줘.
높은 자리 하나 차지하고 권력을 누리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적이다. 왕이 몇 번 권하기도 했는데, 전부 거절했다. 왕이 인정하는 상이나 직위를 받는 건 내가 여기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그건 싫다. 그런 것들은 내가 버리고 싶다고 버려지는 것들이 아니다.
가령 내가 왕을 죽이고 왕이 됐다고 한다면, 그 뒤에 왕을 그만둬도 사람들은 나를 왕이었던 인간이라고 부를 것이다.
한때 왕이었던 남자 진휘. 모랄쉰 왕국의 몇몇 대 국왕 진휘.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친다.
버린 지위가 진득하게 날 따라붙는다. 그런 건 싫다. 버린 지위에 얽매이고, 그 지위가 날 규정하다니. 그런 건 사양이다.
그러고 보니, 공주가 날 보는 시선에서 열등감이 없다. 재능이라는 벽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모양이다. 열등감을 극복하면 상을 주기로 했었나?
엤다.
“이건 뭔가?”
약병 하나를 받아든 공주가 고개를 갸웃한다.
“독, 아마 반신도 죽을걸?”
반신을 죽인다는 것은 농담이고, 그 이하는 확실히 죽일 수 있는 독이다. 취급 주의라는 스티커를 다발로 붙여도 부족한 위험물질이다. 그런 위험물이 자기 손에 들렸다는 것을 안 공주가 경악한다.
“선물. 죽이고 싶은 놈이 있으면 써.”
“자, 잠깐! 왜 이런 위험한 물.......!”
뒤에서 들려오는 공주의 외침을 무시하고, 악의 세력을 깨부수기 위해 출발이다.
***
몇 번의 텔레포트로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북진한다. 목적지는 뮤텐 왕국의 수도다. 여긴 문명은 중세지만, 마법을 이용한 기술력은 근현대 정도 된다.
무력에 관해선 현대를 뛰어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반신이나 드래곤이라는 놈들. 내가 핵무기를 쓰는 이유는 그게 효율이 좋아서 쓰는 거지. 좀 강한 놈이 작정하고 펼치는 기술은 소형 핵무기급 파괴력이 충분히 나온다.
아, 소형이라는 것은 내가 붙인 기준이다.
하늘에는 달이 차오르고 있다. 내가 50만 군대를 사냥하고, 몇 시간이 지났다.
어쨌든, 문명과는 동떨어진, 언밸런스한 기술력에 의해 군대의 전멸 소식은 이미 왕도에 전해졌을 터.
암약하던 놈들의 예상했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무언가 움직임을 보일 터.
나는 그 꼬리를 더듬어 몸통을 찾기만 하면 된다.
지도에 나와 있는 뮤텐의 수도에 도착해, 왕궁의 꼭대기에 착지한다. 이상하게도, 이 나라의 수도는 지구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건물 양식 중 익숙한 것이 많다. 특히 상가 건물과 빌딩 종류.
왕궁 건물은 조금 특이한데, 지구의 사원을 닮았다. 타지마할이라고 했던가? 그런 쪽이다.
빌딩의 숲 사이에 거대한 타지마할이 있다. 정원을 포함해 타지마할이 차지하는 땅이 엄청나다. 정원도 잘 가꾼 게, 비싸게 쳤겠어.
라팔이 묻는다.
“여긴 왜 왔어?”
“이 전쟁, 인간이 부추기고 있더라.”
“네? 인간이요?”
사랑이 눈을 크게 뜬다. 저 바보는 무시하자. 4급 각성자라면 인간 중에서는 뛰어난 편인데, 전생이 성노예라 그런지 헌신적이기는 한데 사랑이는 조금 무식하다.
머리는 좋은 편인데, 경험이 부족하다. 수업도 겸해 나도 라팔이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중국 쪽인 거 같은데, 아는 거 있냐?”
“노예 확보? 영토 확장? 짚이는 게 너무 많아서 모르겠어. 일단, 부추기는 건 아주 쉬움.”
“쉬워?”
두 국가의 형편을 살피고, 외교적 문제를 자극해 군대를 출병시키는 일이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에 나온 말에 바로 납득한다.
“회귀. 전생의 정보.”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적의 정보를 알 수 있으니까, 서로 부추기기 쉬워져요!”
머리 좋은 사랑이는 바로 깨닫는다. 좆집이 알았는데, 주인이 모르면 그것도 자존심 상한다. 나도 당연히 알았다.
인간은 모두 회귀를 했고,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
현재의 기업이 대기업이 될 줄 누가 알까? 그러나 2015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이름을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알고 있다.
현대의 상식도 과거로 가면 무기가 된다. 아주 치명적인 무기가. 그리고 인간들은 모두 미래에서 회귀한 놈들이다.
정보부, 외교 스파이. 이런 놈들이 회귀하면? 미래에서 가져온 그 정보들의 가치는?
만약에, 가능성의 하나로 생각해보자. 왕이 절대로 내보여선 안 될 치부를 들춰낸 인간을 죽였다. 그 인간이 회귀했다. 그리고 그걸 왕에게 가져가 협박하면?
와우. 고작 뇌세포 몇 개로 몇만의 생명을 가지고 놀 수 있게 된다!
회귀란 정말 좆같은 일이다. 동시에 정말 멋진 일이다.
중간계라는 좆같은 곳에 끌려와 뒤진 것도 서러운데 다시 살라고 던져 놨으니 좆같고, 좆같이 산 전생의 기억을 잘만 이용하면 전쟁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으니 멋지다.
그리고 난 그 멋진 혜택을 전혀 못 누리고 있지. 퉤. 이딴 세상 망해버려라.
“유상민의 일이 끝나기 전에 모랄쉰이 망하거나 하면 곤란하니까. 이쪽에서 먼저 여길 부순다. 뒤에서 조종하는 놈들까지 같이.”
“재미있을 것 같아.”
“주인님이 하는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할게요.”
라팔이 눈을 반짝이고, 사랑은 나에게 절대복종이다.
“가자.”
지붕을 타고 내려가 창문으로 침투한다. 내가 투명 마법과 은신 마법을 걸어주자, 완전히 사라진 자신의 기척에 사랑이가 신기해한다.
나는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는다.
자, 50만의 군대가 몇 시간 만에 전멸한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볼까.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왕궁 안쪽은 50만 군대가 전멸했던 것보단 다른 소식에 소란이었다.
-북쪽에서 100만이 넘는 군대가 내려오고 있소!
-어쩌다 이런 일이 되었단 말인가. 신이시여, 어찌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폐하만 계셨더라면....... 폐하만 계셨더라면!
-희망이 없어 우리라도 살아야지. 도망가게 얘들하고 같이 짐 챙기고 있어.
전멸한 군대에 대한 얘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50만 군대가 전멸? 무슨 이유로? 아직도 그 소린가! 빨리 그 원인을 파악하란 말이야! 당장 나가!
-하하, 농담도 지독하군. 50만 군대가, 그 위력적인 화기로 무장한 군대가 몇 시간 만에 전멸? 이건 꿈이야. 꿈이 분명해.
군대가 전멸했다는 이야기를 못 믿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군대가 전멸한 것만 해도 골머리 앓겠는데, 왕까지 죽었으니 어련하랴. 그 왕도 중간계에서 손꼽히는 강자니 더욱 못 믿겠지.
-제길, 중국 놈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군. 애초에 인간을 믿는 게 아니었어!
그중에 딱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대화가 들린다. 은신을 유지한 상태로 소리가 들린 방으로 들어간다.
수인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녕?”
“누구냐!”
“사신.”
쉭. 작은 소리가 들리며, 두 수인의 머리에 작은 구멍이 뚫린다.
나는 인사를 했고, 저쪽에서 내 정체를 물었다. 그리고 난 대답한 후에 빠르게 내 의무를 수행했다. 아주 실용적이고 낭비 없는 대화였다.
죽은 놈들을 언데드로 부활시킨다.
“너는 누구고, 중국하고는 어떤 관계냐?”
언데드에게 거역은 없다.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언데드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한다.
즉슨, 중국에게 무기를 받는 대신 모랄쉰 왕국을 침략한다.
때마침 일어난 반란, 확실히 중국이 일으킨 것이리라. 저쪽에서 뒤를 치려는 수작이 빤히 보였으므로, 뮤텐에서는 왕까지 나서 빠르게 침략을 끝낼 생각이었다.
빠른 전쟁 후에 뒤를 칠 중국에 대비한다. 그 계획은 시작부터 무산되었다.
50만 장병이 전멸, 왕과는 소식 두절.
설상가상으로 북쪽에서는 중국의 100만 대군이 내려오고 있다. 빨라도 너무 빠른 진격이다.
“30만 정도를 추가로 징집해 놓긴 했지만, 화기로 무장한 저쪽의 100만을 막기엔 너무 적은 숫자입니다.”
100만의 군대라. 쩝. 느낌이 싸하다.
“중국의 첩자와 접촉하고 있지? 그놈은 누구야?”
“유진청는 자입니다.”
“어디 있어?”
유진청이라는 놈까지 언데드로 만들어 알아본 결과. 중국의 계획은 선봉 100만으로 뮤텐의 수도를 관통, 그 뒤 모랄쉰까지 진격한다. 뒤따라오는 200만의 후발대가 삼각 진형을 짜고 뮤텐과 모랄쉰을 유린한다.
사로잡은 이종족은 전부 노예로 부린다.
브라보. 내정을 흔들고 외침으로 마무리한다. 훌륭한 병법이다. 손자의 나라답다.
중국 놈들의 오산이라면, 지금 내가 모랄쉰에 볼 일이 있다는 것 정도다.
내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모랄쉰은 안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자들이 고서를 연구해서, 나에게 신에 대한 정보를 뱉어낸다.
그런데 저쪽에서 모랄쉰을 친단다.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전쟁이다. 일인군단이라는 미친 짓을 여기서도 할 줄은 몰랐는데.
============================ 작품 후기 ============================
미친짓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토리는 착실히 진행 중이고, 떡밥도 충분히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은 안심하고 소설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의 테마는 어디까지나 광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