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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심장을 도려낸다. 대동맥을 자른다. 폐를 들어내고, 위장을 자르고, 간에 독을 붓고, 장기를 찢는다.
근육을 가닥가닥 끊는다. 뼈를 자른다. 눈을 파낸다.
나중에 한 행위는 개인적인 놀이에 가까웠다. 사람을 고문하며 노는 취미는 없지만, 주제도 모르고 깝친 게 짜증 나서.
고문을 빙자하고 있지만, 그리고 확실히 고문이지만, 이건 확실히 실험이고, 성과도 있다.
샘플이 치명상을 입으면, 신성력이 절로 일어나 샘플을 치유한다. 심장에 메스를 꽂았을 때도 곧장 메스를 밀어내며 심장이 재생되고 배의 상처가 아물었었다.
신성력이 얼마나 대단한 힘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만, 하루 수십 번씩 몸을 해부해도 신성력이 약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신성력, 신의 성스러운 힘. 이런 걸 복수의 인간에게 나눠주고 있었다면 그 힘을 나눠주는 존재들은 신이라는 직함이 아깝지 않다. 그런 놈들이 나한테 죽었단 말이지.
두 번째로는 여자의 영혼을 조사하고, 실험했다. 일단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마법으로 여신의 영혼이 샘플의 몸에 있다는 것을 확인.
다음으로 영혼의 크기나 영혼이 가진 힘을 측정하는 마법을 만들기 위한 마법 실험이다. 영혼이라는 미지의 힘에 간섭하는 마법이다 보니,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애초에 나는 연구파 마법사도 아니다.
어쩌다 내 신세가 이리됐는지.......
그렇게 한 달여.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미친놈. 유상민이다.
***
유상민과 함께 거무칙칙한 통로를 걸으며, 최연호 총괄 조사 팀장은 주위를 살폈다.
‘딱히 느껴지는 함정은 없음.’
그 남자를 적대할 의사가 있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직업병 같은 것이었다. 그런 최연호에 비해 옆에 있는 유상민은 태연했다. 그도 최연호와 같은 직업병을 갖고 있다.
유상민이 부산스러웠던 것은 통로에 들어오고 몇 초가 전부였다. 눈동자로 벽을 한번 쓱 훑고, 손으로 벽을 만져보고 끝. 그걸로 그는 탐색을 마쳤다. 탐색이라는 분야로 한정한다면, 그의 능력은 최연호가 봤던 사람 중 최고였다.
사회생활과 관련된 능력이 괴멸적으로 부족한 것이 흠이다. 사실, 그게 제일 큰 흠이다.
몇 개인가 있는 방을 지나쳐, 둘은 ‘스승님’이라는 문패가 걸린 방에 도착했다. 방을 열고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거대한 수조였다.
수조 안에는 인어 하나가 헤엄치고 있었다. 헤엄이라는 말은 조금 틀린 걸지도 몰랐다. 인어는 파랗게 질려 수조 안에서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최연호는 그 인어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이가연, 한 달 전에 마현에게 허락 맡고, 최연호 자신이 그 남자에게 넘긴 여인이었다.
“인체개조인가요? 신기하네요. 팀장님.”
유상민이 태연하게 말했다. 미쳐가는 인어를 보고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
사람의 다리가 사라지고, 거기에 물고기의 꼬리가 생겼으니 여인은 확실히 인어였다. 컨셉을 확실히 할 생각인지 웃통도 벗고 있어 그 모습은 확실히 인어였다.
악취미군. 최연호는 혀를 찼다. 인어라면 당연 물속에서 호흡도 할 수 있을 터. 발작하는 것은 이상하다. 다만, 그 인어가 전생에 물에 빠져 죽었더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트라우마로 머리를 물에 집어넣는 것도 못하는 여인을 인어로 만들어 수조에 가둬 놓았으니. 악취미도 이런 악취미가 없다.
감상은 그걸로 끝. 인어에 대한 동정은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최연호도 중간계에서 오랫동안 생존한 인간이다. 인간이, 생물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질리도록 봐왔다. 저 정도는 뭐...... 얌전하다면 얌전한 축이다.
실험실 안쪽 문을 열고 남자 한 명과 소년 한 명이 나온다. 둘 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저 남자가 저런 가운을 입고 있으니 위험한 의미로 어울렸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즈음 될까?
***
인기척을 느끼고 나오니 꼬맹이와 유상민이 있다.
“꼬맹이는 그렇다 쳐도, 넌 무슨 일이냐?”
조금 짜증을 담아 묻는다. 팔자에도 없는 학자 노릇을 하려니 남는 건 짜증뿐이다. 성과라도 좀 남으면 덜하겠지만, 그 성과가 없으니 이러고 있지.
내 머리는 좋다. 연산 능력은 인간을 벗어나 있다. 그래도 연산 능력과 창의성은 다르다. 지능은 왜 이렇게 여러 영역으로 구분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게임에서처럼 지능 스텟 딱 하나 있고, 그것만 올리면 전부 좋아지면 안 되나.
“부탁한 일, 그거 단서를 얻어서요.”
신을 만날 방법. 벌써 알아 왔나. 생각보다 빠르다. 그 정보가 정확한 정보일 경우에 한하지만.
“잠깐만, 이것만 하고 듣자.”
말을 시작하려는 유상민을 만류하고, 자칭 성녀에서 이제 인어가 된 여인에게 다가간다. 사용하는 것은 개발 중인 마법. 영혼에 간섭하는 마법이다.
마법을 사용하자 인어가 수조 벽에 머리를 박는다. 이마가 깨져 물이 피로 물들고, 인어가 기절한다.
쳇, 실패다. 인어의 영혼에 섞인 여신의 영혼이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일단 신성력은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걸로 나리가 가진 영혼이 인어가 가진 영혼보다 크다는 것은 알았다. 그 이상은 진도가 안 나간다.
내 인내심도 떨어져 가고 있다. 연구실에 박혀서 수식이나 만지작거리는 건 내 성격에 안 맞는다. 모르모트 시절이 자꾸 생각나 불쾌하기까지 하다.
저 인어의 트라우마가 물이라면, 내 트라우마는 이런 연구실이 되겠지. 서로 트라우마를 자극받고 있으니 우리는 피장파장이다.
덤으로 말하면 저년을 인어로 개조한 것도 실리를 위해서다. 멘탈이 부서진 사람은 여타 마법에 더 잘 걸린다. 정신 자체가 마법에 대한 하나의 방어기제다. 절대 내 사적 감정은 없다. 절대로.
한낱 창녀가 감히 내 세력에 손을 대려 해?
기절한 인어를 두고, 다시 두 사람과 마주한다. 유상민은 기절한 인어를 향해 호기심을 보내고, 최연호는 그냥 그렇다. 조금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다.
저놈은 그래도 조금 정상이네.
“그래서 뭔가 알았냐?”
“이게 좀 이상하게 됐는데요. 수인들도 신성력을 못 쓰게 됐데요.”
예상했던 일이다. 신을 둘 죽였고, 그놈들이 다른 종족의 신 역할도 하고 있었다면, 다른 종족이 신성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수인이라....... 우리 인류가 똥꼬가 헐도록 빨던 신께서는 수인과 바람났나 보다. 수인과 바람나 수인에게도 신성력을 제공해주고 계셨군. 아니면 오크 쪽인가?
수인 놈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되도록 여신 쪽이길 바라지 않을까 싶다. 이왕이면 오크랑 같은 똥꼬를 빨기보단, 인간이랑 같은 똥꼬를 빠는 쪽이 좋잖아?
우리 여신님께서는 무려 여자이기도 하셨다. 남자 오크와 여자 여신, 볼 것도 없다.
“그리고 또 하나. 근처 수인 왕국의 공주가 세종에 있다고 해서요. 저쪽을 찾고 있는데요. 아, 공주는 신성력도 쓸 줄 안데요. 못 찾았어요.”
“그럼 찾아와야지 왜 나한테 와? 너희 독재자잖아. 그것도 못 해?”
존재하지 않는 척하되 모든 것을 다스린다. 그것이 대한이라는 길드다.
“저희라고 세종 구석구석을 모두 알고 있는 건 아닌지라. 시간을 감는 태엽이 필요합니다.”
꼬맹이가 끼어든다. 시간을 감는 태엽?
“투기장의 그거?”
“설명에 따르면 시간을 감는 태엽은, 사이코메트리 아티펙트입니다. 저희 쪽에도 한 명 있긴 한데, 그놈은 지금 다른 나라로 파견 나가 있어서 당장 데려오긴 무리입니다.”
사이코메트리, 무슨 뜻이더라? 물건이나 장소에서 과거의 기억을 얻는 초능력의 이름이던가.
꼬맹이가 뭘 말하려는지 알겠다. 사람을 찾는데 이것만큼 괜찮은 능력도 없지. 기억 저편에도 사이코메트리로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이야기가 있다.
“나도 같이 가자. 현장 정도는 조사해 놨겠지?”
아티펙트를 빌려줘도 되겠지만, 훔쳐놓고 한 번도 안 써본 아티펙트, 그것도 사이코메트리라면 흥미가 간다. 내가 직접 써보고 싶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저놈들을 못 믿는다.
나와 저놈들의 관계는 파트너. 파트너는 더 괜찮은 파트너가 나타나면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관계다.
“좋습니다.”
지하에서 올라오자,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라팔이 쪼르르 달려온다. 나는 라팔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묻는다.
“얘들하고 노는 건 재밌냐?”
“응.”
평소보다 크게 끄덕인다.
최근엔 놀이방에 있던 물건들도 이쪽으로 옮겨와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고아원 얘들하고 게임 하는 라팔이 자주 보인다. 그러냐, 그게 즐겁냐. 니 나이 마흔이란다. 얘가 언제 철들지 막막하다.
아니지, 철들면 귀염성 없어지니까 싫다. 라팔아 넌 평생 이대로 있어라.
라팔을 추가해, 꼬맹이가 맡아뒀다는 현장으로 향한다. 으슥한 뒷골목이다.
“여기입니다.”
“여기서 추적이 끊겼어요.”
꼬맹이와 유상민이 한마디씩 한다. 그냥 뒷골목이다. 비밀 통로가 있었던 흔적은 없다.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날았나. 땅구멍의 흔적도 없으니 하늘로 날았겠군.
“단거리 텔레포트 정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꼬맹이의 보충을 들으며, 아공간에 던져뒀던 시간을 감는 태엽을 꺼낸다. 얼핏 봐선 짧은 막대기다. 마력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물건의 사용법은 대게 정해져 있지.
막대기에 마력을 넣는다. 푸른빛을 뿜으며 막대기의 형태가 변한다. 짧은 막대기가 황금빛 태엽이 된다.
쓰는 방법을 대충 알겠다. 머릿속에 속삭이는 감각으로, 사용법이 흘러들어 왔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태엽을 꽂는다. 태엽이 허공에 쑥 들어간다. 태엽을 감는다. 시간을 감는다. 충분히 감았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태엽에서 손을 뗀다.
허공에 꽂힌 태엽이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주위의 공간이 왜곡된다. 텔레포트? 아니다. 그냥 환각이다. 나한테만 보이는 환각.
회백색 세계가 내 앞에 펼쳐진다. 나는 그 세계에 서 있다. 벽을 만져보니 손이 통과한다. 유령 같다.
똑같은 골목.
골목으로 사람이 뛰어들어온다. 남자 둘이 여자 하나를 들쳐 매고 있다.
남자들은 다급하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모습이다.
-빌어먹을. 어디서 정보가 샌 거야? 아직 멀었어?
-앞으로 5초 남았어.
-제길, 임 영감은 안전할까?
-그 영감이 끝나면 그때는 깔끔하게 포기해야지.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다. 뒤늦게 추적자들이 당도한다.
공간이 다시 왜곡되고, 세계에 색이 돌아온다. 떨그렁. 허공에서 빠져나온 태엽이 땅에 떨어진다.
“봤어요?”
유상민이 호기심을 가득 담아 묻는다.
“사라진 방법은 텔레포트, 임 영감이라는 소리를 하던데.”
“텔레포트라, 쫄 하나가 가지고 있기에는 비싼 수단인데요. 쩝, 그래서 못 찾았구나.”
“역시 단거리 텔레포트군요. 임 영감은 이 근처에 있는 사람입니다.”
꼬맹이가 앞장선다.
임 영감은 상인이다. 암상인과 그냥 상인 사이에 있는, 이도 저도 아닌 상인. 신뢰도 괜찮고 딱히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므로 이번 숙청을 피해간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이 꼬맹이의 설명이다.
임 영감은 머리가 하얗게 센, 그러나 몸은 우락부락 근육질인 할배였다.
“임 영감. 찾는 게 있어서 왔는데.”
꼬맹이가 운을 뗀다.
“누가 올 줄을 알았지만, 이거 거물이 왔군. 찾는 건 이쪽이네.”
망설임 없이 영감이 척척 내딛는다. 일이 어떻게 될지 이미 짐작한 모양이다. 임 영감이 안내한 곳에는 손과 발, 목에 족쇄를 찬 죄인이 있었다.
봤던 죄인이다. 투기장에서 상품으로 걸렸던 그 여자.
“이 여자가 공주였어? 그리고 공주를 노예로 부리려 했고? 대단도 하다.”
내가 감탄을 담아 말한다. 대단하다. 정치 문제를 넘어, 이건 그냥 선전포고네.
꼬맹이가 한숨을 푹 쉬고는 말한다.
“공주가 신분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로 이것저것 꼬이고, 거기에 부패한 놈들까지 꼬여서 이렇게 된 겁니다. 이번 숙청의 일부분은 이 공주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저쪽 나라에 보여주는 쇼라는 거군. 공주를 괴롭힌 놈들은 모두 단두대에 올랐습니다! 라는.
꼬맹이도 여러모로 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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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 못치는 인어(웃음).
새해입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기념 연참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