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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68화 (68/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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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엑스칼리버? 아니, 패황단천검 이상일지도.......”

반역자가 전백귀후십귀를 보고 침음을 흘린다. 사랑은 멀리 떨어져 벌벌 떨고 있다.

“주인님, 그 검은 뭐예요? 대체 그 기운은.......”

기운? 잘 보니 전백귀후십귀가 조금 변한 것 같다. 검집에서 뽑으니 더 확실히 알겠다.

검날이 번들거리며 붉은 기운을 풍기고 있다. 전에는 안 이랬다.

쯧. 진화했나. 잘 만든 검들은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그냥 쇳덩이가 진화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겠지만, 마력을 이용하면 안 될 것도 없다.

특히 이 놈은 내 마력을 듬뿍 먹은 녀석이다. 검이 진화하려면 계기가 필요한데....... 그것도 있네. 신을 아주 토막토막 베었지. 일주일 밤낮으로.

신을 베고 날이 상하지는 않을망정 오히려 진화했다. 주인을 닮아 검도 미쳤다.

진화한 걸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미친 검이 웅웅 운다. 그러자 여기 있는 다른 무기들도 호응한다.

웅웅웅. 무기들이 진동하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검에 조예는 없지만, 대충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꺼져, 씌벌!

다른 무기들이 기겁하며 내 검을 왕따시키고 있다. 아니, 반대로 전백귀후십귀가 다른 무기를 왕따시키는 건가.

주인 닮아 미친 검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무기 사이에서도 왕따라니.

“그 검은 대체 뭡니까?”

반역자가 묻는다. 이 만큼이나 무기를 모은 만큼, 무기에 대한 안목도 각별한 것 같다.

“광검.”

마검도 성검도 아닌, 광검이다. 내가 나를 위해 만든 검.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만들었어.”

“네?”

“내가 만들었다고.”

대장장이 노인의 손길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 검의 중심을 만든 것은 나다.

모두가, 멍하던 라팔도 눈을 크게 뜨고 놀란다. 놀라는 사람들을 놔두고, 나는 빛나는 세 개의 검으로 다가간다. 광검을 들고.

전백귀후십귀가 다가갈수록 검의 울림은 심해진다.

광검이 우니 평범한 명검이 깨갱한다.

웅웅, 쇳덩이가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전백귀후십귀를 아공간에 던져 넣는다. 그러자 쇳덩이 우는 소리가 그친다.

“안 팔아.”

아까부터 전백귀후십귀를 위험한 눈빛으로 보고 있던 마현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말을 끊는다.

“그리고 이거, 들어도 넌 못 써.”

전백귀후십귀의 모든 기능은 방사능에 기반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쓰면 10분도 안 돼서 피폭으로 쓰러져 죽는다. 이 광검이 나 말고 다른 주인을 인정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런 면에서 보면 가장 마검 다운 마검이 바로 이놈이다.

내 말에 마현은 오기가 생겼는지 눈썹이 일자로 굳는다.

그는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움찔하고는 다시 입을 닫았다. 당장 전백귀후십귀를 들어보겠다고 날뛸 줄 알았는데, 뭔가 느낀 건가?

엑스칼리버, 듀랜달, 쿠사나기의 검. 이 세 자루는 마현과 꼬맹이가 직접 가져갔고, 나머지도 조만간 사람을 보내 가져가기로 했다.

그 대가로 반역자가 얻는 것은 세종에서의 일에 대한 면죄부와 켈리포니아로 가는 포탈의 제공, 그리고 신원보증서와 소개장이다.

포탈은 돈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지만, 면죄부와 신원보증서의 경우는 돈으로 되는 물건이 아니었다. 영화 보는 것이 취미이며, 이제는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반역자는 무기 밀거래를 생업으로 삼는 뒷세계의 거물이다.

“밀거래는 손 씻을 거냐?”

“신을 죽인다는 목표는 이뤘으니까요. 맨손으로 다시 시작할 생각입니다.”

상쾌한 얼굴로 말한 반역자가 말한다.

“끙, 그나저나 제가 준 총알. 사실 그건 쓸모없었던 것 아닙니까?”

반역자가 입을 일자로 만들고는 말한다. 내가 보여준 전백귀후십귀를 염두에 둔 말 같다.

전백귀후십귀에 비하면, 반역자가 나에게 줬던 리볼버와 총알은 대단치 않은 무기다. 그래도 전투에서는 무기의 좋고 나쁨만으로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는다.

“아니, 그놈한테 결정타를 날린 게 그 두 발이야.”

그거 두 발이 없었다면 나는 이기지 못했거나. 진짜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나서야 승리를 거머쥐었겠지. 반역자가 준 두 발의 총알 덕분에 일이 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무기가 이렇게 많으면 이것 중에서 다른 걸 줬으면 됐잖아?”

이 많은 무기 중에서도, 반역자가 나에게 준 건 단 두 발의 총알이 전부였다.

내 말에 반역자가 쓰게 웃는다. 아련한, 쓰라린 과거를 바라보는 웃음이다.

“명공 하회탈이 만든 무기들, 확실히 뛰어납니다. 그러나 그것들의 별명은 고작 반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검에 그칩니다.”

반신을 죽이는 검. 반대로 말하면, 신은 죽이지 못하는 검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 두 발의 총알. 그래 봬도 그거 두 발의 가격이면 세 개의 검 중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소모품이. 나름 제가 가진 최고의 패였습니다.”

반역자는 최고의 패를 나에게 줬고, 나는 그 패로 최고의 결과를 냈다. 서로에게 좋은 이야기다.

***

내가 막은 몬스터 웨이브는 첫 번째에 불과했다. 연이어 두 번째, 세 번째가 들이닥쳤고, 그걸 막는 것은 세종 시민들과 길드들의 몫이었다.

사람은 가끔 극한의 상황에서 새로운 힘을 각성하기도 한다. 수만의 몬스터와 수만의 사람이 어울리는 전장에선 극한의 상황도 흔하게 보이고, 힘을 각성하는 사람도 나올 법하다.

그래도 성녀가 나오는 건 아니지.

“자신을 성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신성력도 쓸 줄 알고?”

“네, 스승님.”

내 앞에 다소곳이 앉은 제자가 말한다. 햇님 고아원, 전 반역자의 저택에 눌러앉은 나는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자를 통해 받아보고 있었다.

뒷세계의 거물이고, 세종에 정치적으로도 의미 있는 인물인 제자에겐 온갖 정보가 흘러들어온다.

제자를 키운 보람이 있다. 내가 굳이 제자를 키운 건 내 명령에 따라 자기 손가락까지 자르는 제자의 인내심과 독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고, 키워서 이런 식으로 써먹을 목적도 있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세종을 주무르는 거물들에 이름 올리게 된 것은 나한테도 오산이었지만, 그런 오산은 얼마든지 일어나도 좋은 오산이다.

“세종에서는 그 여자를 몰래 처리하고 싶어 하는 눈치입니다.”

제자의 비서가 말한다. 내가 납치해 제자에게 재료로 던져줬던 놈인데, 훌륭히 고위 언데드로 거듭나 지금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제자를 돕고 있다. 유 어쩌고 하는 이름이었는데....... 떠올리기 귀찮다. 그냥 비서라고 부르자.

“왜?”

“그 여자가 자신도 성녀라며 그에 맞는 대접을 원하고 있습니다.”

“뭐야, 그 골빈 년은?”

성녀 대접? 햇님 고아원에 들어오게? 나리는 정치적 상징일 뿐. 하는 일도 없고, 얻는 이익도 없다. 잘 먹고 잘 자며 친구들이랑 넓은 저택에서 밥걱정 없이 뛰어노는 게 이익이라면 이익이겠다.

그밖에는 대한 길드 측에서 제자가 하는 여러 불법적인 행위를 눈감아 주는 정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니 이건 이익이라고 할 것도 못 된다.

나중에 나리가 필요해지면 여러 방면으로 이용하게 되겠지만, 당장은 그것뿐이다.

“조사해본 결과. 회귀 전에도 그렇게 나이를 먹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럴 만 하네.”

이래서 사회 경험이 중요하다. 낄 데 안 낄 데 구분하는 능력도 없으니 빨리 죽지. 전생에도 빨리 죽었으니, 이번 생에는 무슨 부귀라도 누릴 줄 알았나. 빨리 죽은 놈은 빨리 죽은 이유가 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무식한 제자가 묻는다. 독심 있고 영악하다 해도 열넷. 정치를 이해하기엔 조금 이른 나이다. 내가 제자를 챙겨주는 건 이런 점도 한몫한다. 모르모트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이런 실수나 무지에 나는 관대하다.

모르는 건 알려줘야지, 모른다고 타박하면 서럽다.

씌벌 놈의 마탑 영감들,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이니 무슨 능력이 있을 거라는 발상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그래서 내가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아이에게 아이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면 안 되지, 안 돼.

“제자야.”

“네.”

“나라에 왕이 둘이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제자는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 고민에 빠진다. 고개를 든 제자가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어조로 말한다.

“싸움이 납니다.”

“왜?”

“왕이 둘이면....... 섞입니다.”

제자는 자기가 대답하고도 고개를 갸웃한다. 단어 선택도 모호하다. 섞인다. 여러 의미를 가진 말이다. 본능적으로 나온 대답을 설명하지 못하는 건가?

진짜 그렇다면 제자의 감은 매우 뛰어나다. 본능만으로 정답에 거의 근접한 대답을 생각했다.

“섞이지. 성녀로 가는 신앙이 섞이고, 성녀의 가치가 섞이고, 성녀의 정치적 입지가 섞이고, 성녀를 따르는 무리가 섞이고.”

섞이고 섞여 뒤죽박죽된 다음 그것들은 서로 분리 된다. 성녀는 둘이고, 한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을 하나로 섞을 수 없으니 성녀라는 이름을 두고 섞였던 것들도 두 명의 성녀처럼 두 개로 분리된다.

나리라는 하나의 성녀로 뭉쳐 있던 것들이 둘로 나뉘고 나눔은 갈등을 낳는다. 단수는 갈등을 낳을 수 없다. 갈등은 언제나 복수 사이에서 성립한다.

“결국 두 패로 나뉘어 한쪽이 죽어야 끝날 거야.”

그 전에 끝날 화해할 수도 있지만, 내가 봤을 땐 그게 더 위험하다. 눈치 없는 것들이 항상 판을 크게 벌인다. 무식한 놈들이 좋다고 따라가 일이 더 커지고.

“이봐, 비서. 그 성녀라는 년은 어디 있어? 세종에서 확보하고 있을 거 아냐.”

“대한 길드 귀빈실에서 투숙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자야, 가자. 나리도 데리고.”

나리한테도 이참에 세상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편이 좋겠지. 나도 개인적으로 그 성녀라는 년한테 볼일이 있다.

나리는 이미 성녀라는 카드로 써먹고 있으며, 제자의 연인(?) 이기도 하니까 건드리기 꺼려지지만, 그년은 아니라는 말씀.

실험용 샘플로는 제격이다.

***

대한 길드의 빌딩에 도착하자마자 꼬맹이가 우릴 반긴다.

“오셨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좀 많군요.......”

힐긋, 제자와 나리를 일견하는 꼬맹이.

“내 제자랑, 성녀다. 자격은 충분하지 않나?”

“충분합니다만.......”

꼬맹이가 말끝을 흐린다. 앞으로 오갈 대화를 얘들한테 보여주긴 싫은 건가? 고아원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것도 있고, 이 꼬맹이는 묘하게 애들한테 약하다.

자기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없앴을 거면서, 그중에는 저 귀염상의 어린 외모를 이용한 방법이 분명, 반드시 있을 것이다. 라팔이에게 그런 걸 가르치는 놈이 정작 자기가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 놈이 애들을 걱정하다니. 조금 기묘한 것을 본 기분이다.

“난 이놈 스승이며, 이건 교육이다. 이놈들은 세상의 어두운 면을 너무 몰라.”

내 말에 제자가 발끈하려 하지만 눈빛으로 찍어 누른다. 제자는 깨갱하고 물러선다.

자기도 힘들게 살아왔는데, 그 인생이 밝은 인생 취급받으니 반항심도 들겠지. 그런데, 고아들이 뒷골목에서 보낼 생활은 끽해야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투거나 적선 영역을 두고 다투거나겠지.

그건 어둠의 일부분. 어스름에 불과하다.

빛이 밝으면 어둠도 깊다. 진정한 심연은 빛의 중심에 있다. 심연이 있기에 빛이 빛나는 것이고, 빛이 있기에 심연이 검게 존재할 수 있다.

“그 골빈 년은 어디 있냐?”

“이쪽으로 오시죠.”

오늘은 그 일부의 교육이다. 라는 건 핑계고, 진짜 목적은 내 실험.

성녀의 영혼에 관한 여러 가지 인체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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