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66화 (66/128)

0066 / 0128 ----------------------------------------------

세종

이상하다. 놈이 오크의 신이라면, 가장 먼저 내가 인간이라는 점에 놀라야 한다. 오크가 아니라는 점에서 놀라면 안 된다.

단서는 또 있다.

-나는 분명 오크의 부름을 받고 왔을 건데.

그놈이 순수한 오크의 신이라면, 그냥 부름을 받고 왔다고 하면 될 일. 오크의 부름을 받았다고 말하면 그건 언어의 낭비다.

오크의 부름을 받고 오크의 모습으로 나왔다. 다른 종족의 부름을 받고 다른 종족의 모습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말로도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

놈은 내가 오크가 아니라는 점에서 놀랐다.

놈은 오크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의 부름도 받을 수 있다.

이 두 논증을 합치면 하나의 결론이 도출된다.

오크의 신은 오크의 신뿐 아니라, 다른 종족의 신도 겸하고 있다.

“라팔아.”

“응?”

“전에 말했던 신의 종류. 그거 다시 말해봐.”

“오크, 고블린, 오거, 트롤, 수인, 엘프, 요정, 드워프, 마족 등의 종족 신. 그리고 잊혀진 신들.”

“제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반역자가 끼어든다. 얘는 사제였지. 그러니 라팔이보다는 많이 알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제스쳐를 보낸다.

“잊혀진 신, 고대의 신들이라고 칭해지는 존재들은 일단 현재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없어?”

“신의 상징은 신성력입니다. 가장 하등한 지성체로 꼽히는 고블린의 신도 고블린에게 신성력을 내려줍니다. 그런데 잊혀진 신들의 신성력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학자들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뽑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활동할 수 없거나, 이름을 바꿨거나.”

“이제 거기에 하나를 추가해야겠군.”

내가 끼어든다. 저 가설에는 하나가 빠져있다. 불과 며칠 전에 일어난 신화적인 사건이.

반역자가 고개를 주억인다.

“예, 하나가 빠졌지요. 잊혀진 신들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신도 죽음을, 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내가 증명했다. 사실 증명은 이미 했고, 이건 확인 작업이지.

정말로 잊혀진, 사라진 신이 있다면, 그 신 또한 내가 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

선배 신살자라. 있다면 꼭 만나보고 싶다. 어떤 미친 정신을 가져야 신을 죽이겠다는 생각을 다 할까.

심지어 신이 실존하며, 신도들에게 직접 힘을 내려주는 세계에서.

“그런 신들을 빼면, 각 종족의 종족 신이 있습니다. 그게 끝입니다.”

“끝?”

“대장장이의 신, 사랑의 신, 검의 신. 모두 말은 많지만, 그들이 신으로서의 무언가를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들은 없는 신입니다.”

“그러면?”

“실존하는 신이라는 것은, 각 종족의 종족 신. 그들뿐입니다.”

반역자가 진실을 말한다. 수많은 신은 없다. 오로지 종족을 다스리는 종족 신이 있다. 수십 개의 종족이 있으니 종족 신의 숫자도 수십에 달한다.

환상적이며 논리적으로 완벽해 흠잡을 곳 없는 내 추론이 등장할 차례군.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어떨까? 종족마다 하나씩 신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반역자가 눈을 크게 뜬다. 잠시 멈춰놨던 패드를 잠시 꺼둔다.

나는 반역자에게 오크의 신이 내게 처음한 말과 거기에 따른 내 추론을 들려준다. 반역자가 입을 떠억 벌린다.

“그, 그게 정말이라면......!”

반역자가 사색이 된다. 얼굴이 하얘진다. 오크는 화나면 얼굴이 녹색이 되더니 당황하면 하얘지는구나. 녹색이던 피부는 하얘져 봤자 연녹색이다.

“크, 큰일입니다. 진짜, 정말로 한 신이 여러 종족의 신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고 한다면.......”

반역자가 이마를 짚는다. 그 거구가 휘청인다. 자신이 받은 충격을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크의 신이 죽음으로서 몇 개의 신앙이 사라져버린 건지.......”

반역자가 망연히 중얼거린다.

존재하는 신은 각 종족의 종족 신. 그리고 오크의 신이 다른 종족의 신을 겸한다.

하나의 신이 죽으면 몇 개나 되는 종족이 신을 잃는다.

나는 웃는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모습을 바꿔가며 여러 종족의 신을 연기한다고 그놈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줄어든다. 죽일 신의 숫자가 확 줄어든다.

이러니 어찌 웃지 아니하리. 나는 하나를 죽여 하나의 신앙을 빼앗을 생각이었지만, 나는 하나를 죽임으로써 몇 개인지 모를 숫자의 신앙을 죽이고 빼앗았다.

뜻하지 않은 선물은 언제나 기쁘다. 아주 좋은 선물을 받았다.

나는 망연히 있는 반역자에게 말한다.

“그랬다고, 그걸 알았다면 너는 신을 죽이길 포기했을 거냐?”

반역자의 눈에 빛이 돌아온다. 그리고 단호히, 결단코 그럴 일은 없다는 듯이 반역자가 말한다.

“그래도 저는, 자유를 쫓았을 겁니다.”

“그거면 됐네.”

수천, 수만, 수억이 넘을지도 모르는 신앙보다도 자신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 반역자란 돌연변이는 그런 돌연변이다.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내버리는 이기적인 작태. 어쩌면 저게 지성을 가진 생명의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렇다.

생명의 최우선 명제는 생존이리니. 그 밖의 다른 것은 삶에 들러붙은 무언가에 불과하다. 삶이란 생존이니. 생존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다. 들러붙은 무언가를 쫓은 삶이야 말로 잘못된 것이다.

다만, 조금 걱정되는 것은 반역자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 밝게 미친 저놈은 겉으로 멀쩡해도 이 일로 초래된 모든 것들을, 어떤 식으로든 짊어질 것이다.

그 밝음에 미치지 않으면 좋으련만.

우리는 세종으로 던전을 가로질러 세종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세종은, 개판이 되어 있었다.

***

“이게 무슨 일이냐?”

내 물음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상황 파악에 바쁘다.

돌아온 세종은 일단 어수선하다. 한산하던 거리가 어디서 이렇게 사람이 튀어나왔나 싶을 정도로 많다.

우리는 공장지구에 있는 반역자의 저택으로 향한다. 이쪽도 혼돈의 도가니다. 다른 장소는 다른 의미로.

“주인님, 저기 이건.......”

사랑이 묻는다. 공장지구 전역을 데스 필드가 덮고 있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딱 하나뿐이다. 마력의 흐름도 내가 가르쳐준 그대로다. 제자야, 뒷세계를 먹어두라곤 했지만, 이 정도로 거창하게 하라곤 안 했단다.

데스 필드에 덮인 공장들이 기능 정지해 있잖아.

뒷세계는 보이지 않아서 뒷세계인데, 이건 그림자가 튀어나와 빛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꼴이다. 그림자가 나대면 빛이 화낸다. 그러면 보통 그림자는 쓸려나간다.

빛이, 대한 길드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 나 때문인가. 제자가 내 제자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을 테니까.

저택에 가까워지자 언데드도 하나씩 보인다. 하급 언데드도 있지만, 대부분이 중급 이상. 상급 언데드도 심심찮게 보인다.

반역자는 자기 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오크의 저택은 멀쩡했다. 멀쩡하긴 했는데, 완전히 언데드 소굴이 되어버렸다. 짙은 사기가 감돌고 상급 언데드가 저택 근처를 어슬렁댄다. 어이쿠, 저주 함정까지 깔려 있네. 네크로맨서의 요새구만.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안에서 제자가 튀어나왔다.

“스승님!”

놀라지 않고 응수한다. 자기 영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면 네크로맨서 자격도 없다.

“그래, 제자야. 반기는 건 좋은데, 우리가 그렇게 반가워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건 아닌 줄 안다만?”

“뒷세계를 먹으라 하셔서 먹긴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 일은 네가 해결하기 곤란한 일이고?”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사법 도시가 날아가며 행정이 무너진 것은 대한 길드가 빠르게 수습했지만, 뒷세계가 날아간 것은 어찌 수습할 도리가 없다. 결국 남은 놈들끼리 싸우게 되었는데, 그중에 제자는 군계일학이라.

잔챙이들이 동맹을 맺고 공격해 왔고, 그 와중에 제자가 힘의 컨트롤을 미스. 데스 필드가 폭주해서 공장지구 전체를 먹어버렸다. 계속 확장하는 데스 필드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나리가 성녀의 힘을 보여서 또 혼란이 일어나 버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종 옆에 있는 신단 산맥에서 몬스터의 대군이 세종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 이야, 그거 굉장하네.”

영혼 없이 대답한다. 솔직히 이 정도 되면 나라도 당황한다.

신단 산맥은, 서울과 세종 사이를 막고 있는 산맥으로, 내가 넘어온 산맥이기도 하다. 그곳은 인류를 포함한 지성체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나무 쓰러트리고 숲 없애기 좋아하는 인간이 저 거대한 산맥을 그대로 놔둔 이유가 있다. 산맥 안에 있는 몬스터가 너무 쌔거든.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7급 몬스터가 우글거린단다.

그래서 산 근처에 도시를 만들어 조금씩 나무와 약초를 채취하고 몬스터를 잡는 정도로 그치는 거라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몬스터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다.

이야,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이게 전부 나 때문이라는 것이 대단하다.

“산 초입의 주인 중 하나인 8급 몬스터, 비늘 여우가 죽은 게 원인이라고 합니다.”

제자가 쐐기를 박는다. 짐작이 확신이 됐다. 그런 것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제자야.

내가 화풀이로 죽인 몬스터 하나 때문에 세종에 몬스터가 몰려오고, 내가 여신을 죽어서 성녀가 된 소녀 때문에 민심이 흔들리고 있으며, 내가 제자를 네크로맨서로 만들어서 도시의 생산 능력이 마비되었다.

이야, 대단하다. 대단해.

나비 효과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잘못됐다. 미친놈 효과. 아니면, 진휘 효과로 이름을 바꿔야겠다.

이 모든 일이 나 때문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아갈리에서 비슷한 일이 많았지. 나타나지 않은 내 진명이 나타나면 파괴자나 종말자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아, 그리고. 대한 길드에서 사람이 와 있습니다.”

말하는 제자의 눈이 조금 흔들린다.

“야, 잠깐. 좀 움직이자고 이 꼬맹이들아!”

“헤헤헤! 같은 꼬맹이면서 꼬맹이래요!”

“꼬맹이래요!”

“이것들이 진.......”

아이들을 몸에 매달고 질질 걸어오던 꼬맹이와 눈이 마주친다. 꼬맹이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 큼큼,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무마하려 한다.

“스승님, 저분 정말 대한 길드 사람 맞습니까? 아이들과 놀아주니 저야 편합니다만.”

“고아원 얘들은 왜 여기 있냐?”

“여기 마스터가 스승님하고 여행을 갔다고 해서요. 무슨 관계인가 해서 여기도 지킬 겸 고아원도 이사했습니다. 시설도 이 저택이 더 좋고.”

반역자가 없는 사이 저택을 강탈해 고아원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과연, 내 제자답다.

“그래서, 꼬맹이 너는 무슨 볼일이냐?”

“햇님 고아원과 협상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주인이 협상을 거부해서 말이죠. 자기 대신 스승이라면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프랄, 당신에게도 볼일이 있습니다.”

“최연호 님인가. 본인은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만.”

반역자가 점잔을 떨며 말한다.

“당신에게 볼일이 있는 건 제가 아닙니다. 마스터입니다.”

그 말에 반역자의 얼굴이 굳는다. 마현, 그놈 이름은 세종 내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데, 나는 모르겠다.

“언제까지 가면 됩니까?”

“던전에서 돌아와 회포도 푸셔야 할 테니. 내일이나 모레쯤 오시면 됩니다.”

말을 마친 꼬맹이는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저택을 나선다. 고아원 꼬맹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떨어져! 떨어지라니까, 이놈들아!”

겉모습은 저래도 꼬맹이도 어엿한 회귀자. 힘으로는 사랑이 보다도 강할 것이다. 그런 놈이 아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와와!”

“나이 마흔에 이게 무슨 꼴인지.......”

한숨을 포옥 내쉬는 모습이 영락없는 애늙은이다. 내가 사고 칠 팔자라면, 꼬맹이는 휘말릴 팔자인가보다.

고아원이 된 저택에 다시 놀러온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꼬맹이는 아이들에게 해방되었다.

***

“영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반역자가 말했다.

============================ 작품 후기 ============================

부제 : 오크, 꿈을 찾아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