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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사라진 부위가 머리가 정말 다행이다. 사람들은 불로불사라도 머리나 심장이 없으면 죽는다고 생각한다.
진짜 불로불사인 내 입장에선 왜 그런 개소리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소설이랑 영화에서 그러니까 현실에서도 그럴 거라 착각하는 모양인데, 불사신이 머리가 없으면 죽는다고 누가 그랬던가.
불사신한테 직접 듣기라도 했냐?
나는 머리가 없어도 안 죽는다. 머리가 없으면 머리를 재생하면 된다. 심장 쪽은 아직 당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지구나 아갈리의 인간들이 가지는 불사에 대한 착각을, 이 오크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나에게 행운이었다.
머리가 아니라 몸 전체를 없앴다면 꼼짝없이 죽었다. 죽진 않더라도 차원의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겠지.
오크가 진짜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놈이 마무리로 내 머리를 소멸시켰다는 것. 그렇게 나는 오크에게 마지막 한 방을 꽂을 수 있었다는 것.
“.......뭣?”
오크가 눈을 크게 뜬다. 붉은 총알이 오크의 가슴에 정확히 박힌다. 총알이 박힌 가슴을 중심으로 검은 블랙홀이 생기며 오크의 몸을 빨아들인다.
자기가 쓰던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 받으니까 기분이 어떠냐, 오크야.
오크는 당연히 저항한다. 빨려들던 몸이 반대로 빠져나온다.
반역자에게 받은 무기를 쓸 수 있겠다. 이걸 확인한 건 싸움이 시작한 그 순간부터다. 오크가 육체를 가지고 있으며, 육체로 싸우고, 육체를 재생한다는 것을 확인한 그 순간.
육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육신을 없애는 이 탄환은 쓸모가 있다.
머리가 재생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심장에서 마력을 뽑아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는 오크를 압박한다. 빌어먹을 정도로 힘들고 피곤하다. 그래도 이게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심장을 쥐어짜고 정신력을 쥐어짠다.
손도 가만있지 않는다. 격렬한 전투 속에서도 여전히 벼려진 날을 유지하고 있는 전백귀후십귀로 오크의 몸을 난도질한다.
오크가 고통에 신음을 지른다.
오오오! 나는 사람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변태가 아님에도 황홀함이 뇌를 물들인다.
팔을 잘라도 심장을 도려내도 소리 내지 않던 놈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즐기는 건 중요하다. 쾌락은 사람에게 한계를 넘을 수 있게 해준다. 오크의 고통에 내 뇌수가 기쁨에 찬 비명을 터뜨렸고, 꺼져가던 정신이 또렷이 깨어난다.
“하하하! 죽어라! 죽어라! 죽어! 몇 토막을 내야 죽는지 내가 직접 세어주마!”
블랙홀의 위력은, 대단하긴 하지만 오크를 없앨 정도는 아니다. 내가 딱 기대한 정도. 오크의 몸을 묶을 정도다.
아끼고, 아낀 탄환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처음에 이걸 쐈다면 오크는 간단히 블랙홀에서 탈출했겠지. 이 탄환은 마지막에 쐈기에, 오크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쐈기에 의미가 있다.
오크는 자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도 저항해야 하며 내가 난도질해 조각나는 자신의 몸도 재생해야 한다. 거기에 몸을 압박하는 내 마력까지!
블랙홀이 점점 약해지며, 오크의 몸이 공간의 비틀림에서 빠져나온다.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여줬으니 됐다.
오크의 숨이 거칠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웃는다. 폐부에 쌓인 것들을 전부 토해내듯이 웃어젖힌다.
정신력은 괜찮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크를 보며 나는 흥분해 있다. 한계는 넘었지만, 이걸로 조금 더 싸울 수 있다.
오크가 두려움에 찬 눈으로 날 본다.
나는 아공간에서 핵탄두를 꺼내 손에 잡고, 오크에게 돌격한다.
여신도 이걸로 보냈으니. 너도 이걸로 보내주마. 오크의 심장에 탄두를 꽂고, 폭발시킨다.
한차례 폭발이 지나가고, 나와 오크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오크는 왼쪽 상반신이 날아간, 여신과 비슷한 모습이다.
나도 오른팔과 어깨가 사라지고 없다. 내 몸의 지키는 데 소모하는 마력을 최소화하고, 더 강한 폭발을 노렸다.
더럽게 아프지만, 나는 고통에 익숙하다. 참을만하다.
마지막 한 방으로 오크는 전투 불능이 됐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뿐, 쓰러져 일어나지 않는다.
오크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간다. 간신이 벌린 입이 말을 토한다.
“ㄴ, 너는... 누구.......”
첫 발을 쏘자마자 아공간에 되돌렸던 리볼버를 다시 꺼내, 남은 왼손으로 쥐고 오크의 미간을 겨눈다. 담배까지 물고 있으면 그림 최고였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실천하지는 않는다. 그 순간의 방심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모르니까.
“이 세계의 신을 모조리 죽여 버릴.”
탕. 오크의 미간에 흰색 총알이 빨려 들어간다.
“두 번 소환된 남자시다.”
오크의 몸이 소멸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출현한다. 나도 저게 뭔지 정도는 안다. 오크의 영혼이다.
오크의 미간에 박혀 있던 총알이 그 자리에 둥둥 떠서 그 영혼을 흡수한다. 나는 영혼을 볼 수 없지만, 흰 총알의 영향인지 영혼이 보인다. 영혼은 반투명한 녹색이다.
총알은 계속 영혼을 흡수하지만, 영혼의 크기가 만만찮다. 영혼의 크기를 버티지 못한 총알에 금이 가더니, 부서진다.
흡수했던 영혼이 다시 튀어나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총알은 자기가 흡수한 영혼과 함께 고이 가루가 되었다.
총알이 흡수하고 남은 영혼이 날 향해 날아온다.
나는 마지막 힘을 모아, 영혼을 잘게 흩어버린다. 한 번 해봤던 행동이라 저번보다는 쉽다. 총알이 흡수하고 남은 영혼이라 저번보다 영혼이 약하기도 하다.
신이 죽고, 영혼도 흩어버리자 공간이 무너지며 제단이 보인다.
오크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공훈을 한 것은 반역자가 내게 준 리볼버와 두 발의 총알이었다.
반역자는 성공했다.
자유를 위해 인생을 걸고 달린 미친놈은 신조차 죽이고 자신의 인생을 되찾았다.
미친놈의 미친 짓이 운명을, 세상을 바꿨다.
무너지는 공간 사이로 보이는, 얼마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립게 느껴지는 얼굴들을 보며 내 정신은 암흑에 떨어진다.
존나게 피곤하다.
***
눈을 뜨니 보이는 건 푸른 하늘이다. 사람을 바깥에다 재우다니 입 돌아가면 어쩔 거야.
“아, 일어나셨어요?”
옆에 있던 사랑이가 날 부른다. 아직 우리는 제단 위에 있다.
왜 2번 좆집만이 말하느냐 나머지 2명은 뭘 하느냐는 내 질문에 시선이 대답한다. 사랑이 옆에 라팔과 반역자가 모여 영화를 보고 있다. 하긴, 쟤들한테 뭘 기대하겠어.
반역자랑 라팔이가 돌아오셨나요, 용사님! 하면서 날 살갑게 반기면 그게 더 무섭다.
“얼마나 지났지?”
“잠든 시간이요? 아니면 제단에서 사라졌을 때부터요?”
그 두 가지를 분리해 말해야 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났나?
“내가 빌어먹을 신을 죽이러 갔을 때부터.”
“일주일이요.”
“일주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조금 높아진다. 어쩐지 오래 싸운다 싶더니만, 일주일이나 싸워댔군. 피곤한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럼 잠든 지는?”
“열두 시간이요.”
죽도록 피곤했던 것치고 오래 자진 않았네. 사용하지만 않으면 마력이 금방 몸을 치료하니 열두 시간은 순수하게 정신적 피로를 풀 시간이었나.
“야, 오크.”
반역자가 날 돌아본다. 그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다.
“아, 깨셨군요. 영화를 보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얼마나 영화를 보면 눈이 그렇게 되냐.”
“일주일 내내요?”
왜 의문형인 거냐. 나를 사지로 보내놓고 저놈은 일주일 내내 영화만 봤다는 소리 아닌가. 욱하려다가 참는다.
누가 말했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그거랑 같은 거다. 내일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니 저놈은 그저, 그냥 영화를 본 것이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까 가장 하고 싶은 걸 하겠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이나 싸웠다니 지루함에 영화를 볼지도 모르는 일이고. 나도 이 정도의 이해심은 있다.
“죽였다, 신.”
“알고 있습니다.”
반역자가 자신의 상태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저걸 남에게 보여줄 수도 있구나.
[이름 : 라프랄]
[진명 : 無]
보여주는 부분도 조정이 가능한지. 이름과 진명까지만 딱 보인다.
“제 본래 진명은 신의 대행자였습니다. 그 진명이 강신술의 조건이죠. 그게 사라졌습니다. 전 이제 자유의 몸입니다.”
반역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돋보인다.
진명, 자신의 성향, 재능, 또는 특별한 능력을 나타내는 것. 그리고 운명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반역자는 기어이 자신의 운명에 반역했다. 진명 없음. 반역자의 진명은 자신의 역할이자 운명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니.
진명이 없음은 그 운명이 없음이라.
헤아릴 길이 없는 끝없는 미래가 저 앞에 있음이라.
인간 승리...... 는 아니고 이것이 진정한 오크 승리다.
오크의 부족이 있던 제단은 일주일 사이 깔끔하게 치워져 있다. 빗물이 증발하고, 바람이 불며 녹색 대지는 본연의 갈색을 되찾고 있다. 커다란 제단은 그대로 버려두게 되었다.
부락을 옮길 때는 제단을 통째로 옮겼다는데 이제 그 일도 필요가 없어졌다. 의식을 치러도 그걸 받을 대상이 없다.
“강신술이 가능한 오크가 하나 더 있지 않았냐?”
“당신이 만든 그 폭풍에 휘말려 죽어버렸습니다. 저와는 달리 맹목적으로 신을 따르던 녀석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만큼 대화가 통하지 않았을 겁니다.”
남은 하나는 통성명할 기회도 없이 가버린 모양이다. 말이 안 통한다니 죽였어도 후회는 없다.
돌아가는 길도 올 때와 비슷하다. 매일 밤, 조그마한 패드에 둘러앉아 자그마한 상영회를 실시한다. 반역자의 영화 선정이 다소 바뀌었다.
갈 때는 소위 명작이라 불리는, 나도 이름 한 번은 들어봤던 그런 영화들이었다면, 이번에는 히어로 영화부터 로맨스, 코미디 다양한 장르를 본다. 그 선정 기준의 변화가 반역자의 심경 변화를 대신 보여주는 느낌이다.
생의 마지막에 명작들을 눈에 담자는 것에서, 마음 편히 즐기자는 것으로.
“제 저택에 가면 홈시어터가 있습니다. 한동안 거기서 영화나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다. 그 빌어먹을 오크를 죽이는 데 힘을 너무 써서.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 전에 말했듯, 내 여정은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긴 여정이다. 적당한 완급 조절은 필수다.
“너희 집 요리는 먹을 만하냐?”
“마피아하면 남는 건 느와르적 감성과 사치, 그리고 만찬뿐입니다. 손님에게 내놓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좋아, 가자.”
홈시어터도 있겠다. 이런 벌판에서 패드로 궁상맞게 영화 볼 이유가 없다. 우리의 걸음이 빨라진다.
빠른 걸음으로, 남들이 봤을 때 거의 달리는 듯한 속도로 움직이며 나는 오크와의 싸움을 복기한다.
역시, 여신은 방심해서 한 방에 뒤진 것이 맞았다.
신은 신의 이름값을 했다. 죽이기 더럽게 힘들다. 하지만, 죽일 수 있다. 영혼의 힘으로 보이는 특수 능력이 가장 성가셨지만, 그것도 마력으로 떨쳐낼 수 있다.
그게 중요하다. 나도 신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신에게 초월적인 힘이 있다 해도, 그 힘이 나에게 미치지 못한다.
내 순수한 영혼이 원인이겠지. 엄밀히 말하면 불순물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세계의 모든 것들을 의심하고, 불신한 내 선택은 정답이었다. 심적으로도, 신적으로도, 이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올발랐다.
나는 여기 중간계에 있다.
동시에, 나는 여기 중간계에 없다.
중간계에 있으며 중간계의 모든 것을 거절하고, 끊어낸다. 본래 자연스러운 흐름인 영혼의 흡수를 거부하고, 시스템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세계에서 나만이 홀로 동떨어진 존재이며, 세계와 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괴리가 있다. 이 괴리는 둘 중 하나를 부숴야만 기어코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될지, 세계가 될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이 세계에서 오직 나만이, 신의 천적이다.
싸움을 복기하던 중, 문득 걸리는 것이 있다. 머리 한구석을 갈고리로 긁는 듯하다.
잠깐, 그놈이 날 처음 보고 뭐라고 했지? 내 기억력은 완벽하다. 결손은 없다. 나는 기억을 되감아 오크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린다.
오크는 처음 날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인간? 나는 분명 오크의 부름을 받고 왔을 건데.
놈의 의문은 내가 인간이라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오크가 아니라는 것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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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훗 그놈은 우리 사천왕중에서도 최약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