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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62화 (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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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반역자가 허연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나와 반역자의 차이를 잊고 있었다. 나는 불멸자고, 반역자는 필멸자다.

물론, 나도 죽을 수 있다. 죽일 방법도 많다.

불멸과 필멸을 가르는 기준은 그 정신에 있다. 나는 내일 내가 죽더라도 후회가 없다. 정말 내가 죽을 상황이라면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 발버둥 친 후일 것이며, 더 이상의 길이 없을 때다.

그렇다면 나는 겸허히 내 죽음을 받아들이리라. 나는 내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서 나는 불멸한다.

멸(滅)에 대한 생각이 없고, 사(死)에 대한 이견이 없으니. 이것이 진정한 불사불멸이다.

반역자는 어떠한가. 멀리 있는 희미한 죽음을, 가능성을 두려워해 자유에 투신하고 자유를 위해 투쟁해 일생을 바쳤다.

신에게서 생을 따내기 위해 자신을 판돈으로 건 도박사. 그 도박의 결과가 곧 나온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반역자는 웃으며, 자신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며, 영화를 보며 행복해한다.

자신의 일생을 충실하게 마무리하기 유언을 남긴다. 반역자의 행동이 반역자의 유언이며, 그 유언은 반역자의 머리와 가슴에 남는다.

설령, 숨이 끊어지고 혼이 흩어지더라도, 스스로에게 남긴 유언은 마지막까지 반역자와 함께할 것이다.

역시, 저놈은 이상하다. 나랑 라팔이와 사랑이랑은, 우리와는 다르게 미쳐있다.

우리가 어둠의 구렁텅이에 칭칭 감겨 그 안에서 미쳐버렸다면. 반역자는 손에 닿지 않는 것을 따내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길 택했다. 천상의 빛을 등에 업고 그것만을 바라보며 미쳐버렸다.

우리는 서로 다르게 미쳤지만, 그렇기에 통한다. 광기는 결국 광기이니, 미친놈은 어이하여도 미친놈이라.

그리하여 우리는 동족이다. 잘만 하면, 반역자랑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반역자가 다음 영화를 상영한다. 어둑한 밤에, 하늘에서는 별빛이 빛나고 땅에서는 휴대용 난로가 불을 뿜는다.

그 옆의 태블릿 피시에선 문화가 빛난다. 찬란하게.

***

반역자의 부족을 찾기 위해서는 던전의 3층까지 내려가야 한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사흘이다. 우리 걸음으로 사흘. 그냥 걸어선 한 달이 넘는다.

이 던전은 5층짜리니 5층까지 내려가려면 이동에만 두 달 가까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텔레포트로 계층 사이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 내려가는 ‘길’은 항상 변해서 걸어서 찾을 수밖에 없어요.”

라는 것이 사랑의 설명이다. 텔레포트로 계층 사이를 이동할 수 없다. 내 짐작이 맞다면 각 계층은 하나의 차원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 부분일 것이다. 그러니 계층을 이동하는 것은 차원 이동과 흡사하다.

아무리 인류라도 그런 기술력은 없다. 있으면 벌써 중간계는 지구와 연결해서 무기를 들여오고, 다음은 대전쟁이다. 핵이 터지고 폭격기가 날아다니며 마법과 괴물이 판치는 이질적인 전쟁.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된다고 하지만.’

그것까진 내가 생각할 영역이 아니고.

3층으로 내려오는 것은 쉬웠다. 내려가는 길의 위치는 가변적이지만, 길이 변할 때마다 세종에 있는 길드들이 길을 찾아 명시한다. 최하층인 5층을 제외한 4층까지는 그리되어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이동 속도를 늦췄다.

문제가 생김은 아니고 고의적 늦춤이었다. 모두의 합의하에 우리 모두의 걸음이 느렸다.

다름이 아니라 반역자 때문이었고, 반역자가 가진 영화 때문이었다.

우리는 매일 밤 영화를 담은 패드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난로가 뿜는 온기에 기대어 그날 반역자가 선정한 영화를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난로는 따뜻하고 패드는 빛난다. 패드도 빛나고 패드에서 나오는 영화도 빛난다. 두 빛이 합쳐져 어둠을 몰아내고 인간과 문명을 외친다.

오랫동안 문명에 목말라 있던 나는 물론이고, 라팔이도 반역자가 보여주는 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라팔이만큼은 아니었지만, 사랑이도 비슷했다.

감상회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은 대게 영화가 끝난 후 각자의 감상을 토하며 토론을 나누기 마련이다. 그들은 토론하며 서로의 감정을 엮는데, 그 엮음 속에서 소속감과 일체감과 동질감을 느낀다. 자신이 이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심장으로 확인한다.

우린 그러지 않는다. 우리 모두 미쳐 있었으며, 토해낸다 한들 토한 감정을 남들과 엮을 수 없음을 안다. 입에서 뿜어진 실은 엮이지 않고 교차하여 허공을 가로지를 것이다.

내가 반역자에게 무력신봉주의를 설파하면 오크는 내게 자유를 설파할 것이고, 토해낸 실타래는 엮이지 않고 서로의 심장을 찌를 것이 자명하다.

죽는 건 반역자요, 사는 건 내가 되겠지.

엮이지 않을 것이 아니 실을 뽑지 않는다. 엮지 않을 실을 뽑아 방치하면 그건 쓰레기에 불과하다. 괜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우리야말로 자연보호에 앞장서는 모범시민이다.

“그럼, 잘까요.”

영화 한 편을 마무리하고, 반역자가 패드를 짐 속에 챙긴다. 매일 밤 가동하는 이 패드는 놀랍게도 마력으로 충전된다. 자동차도 다니는데 이 정도 기술에 놀랄 건 없나.

함께 영화를 보는 대신 잠은 매일 4시간은 자기로 했다. 반역자와 라팔이는 수면 없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안됐다.

선잠을 자다 일어난다. 저 멀리, 인간이 싸우고 있다. 라팔이 나보다 조금 늦게 기척을 느낀다.

명백하게 인간이 밀리고 있다. 죽이네 살리네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상대는 고블린인가? 저런 몬스터한테도 고전하니 어련한 약골이구나.

우리 둘은 눈빛을 교환한다. 나는 다시 자리에 눕는다.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줘야 한다고 묻는 놈들에게는 반대로 묻고 싶다.

어째서 구해줘야 해?

밤에 무시했더니, 같은 일이 낮에도 일어난다. 달릴 때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린다. 따라오는 적이 없는데 굳이 주변을 살피며 갈 필요는 없음이고, 낭비다. 그래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를 때도 있다.

“도와주세요!”

그 말은 듣고 사랑이 발을 멈췄고, 사랑을 따라 남은 셋도 발을 멈춘다.

가까운 장소에서 파티가 몬스터에게 당하고 있다. 이기고 있으면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니, 상황은 당연히 열세.

“그냥 가자.”

내가 말하고.

“응.”

“네, 주인님.”

“큰일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다른 셋도 동의한다.

“너 때문에 시간만 버렸잖아!”

“앗흥!”

반성이나 하라는 의미에서 엉덩이를 걷어차니, 사랑은 야릇한 신음을 흘린다. 맞으면서 좋아하는 변태에게 체벌은 진정 무리란 말인가. 통탄할 일이다.

“저기, 잠깐만요! 도와주세요! 제발요!”

급한 와중에 누가 우릴 발견했는지 열심히 손을 흔든다. 인사는 중요하지.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준다. 안녕.

“야, 이 씨발 놈들아! 육시할 놈들아아!”

뒤쪽에서 쌍욕이 날아온다. 살기 위한 발악이 참으로 처량해 내 가슴에서 자비심이 솟는다.

살려는 줘보자. 그리고 이야기를 듣자. 제대로 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고 마음 한편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확신이라도 해도 된다. 그래도 가끔은 뻔한 이야기가 재미있을 때도 있다.

날 욕하는 남자의 머리 뒤로 몬스터의 발톱이 떨어진다. 그 전에 내가 움직인다.

맨손으로 몬스터의 목을 비틀어 뽑고, 그 목을 날려 다른 놈의 대가리를 날린다. 또 옆에 멀쩡한 몬스터의 목을 뽑아 다른 녀석의 대가리를 뽀갠다.

서로 머리를 맞대니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이 아니라 피가 샘물처럼 샘솟는다. 투명한 뇌수와 시뻘건 피가 섞여 희멀건 피가 되었다. 희멀건 피 사이를 하얀 척추가 헤엄친다.

“도와줬지? 그럼 간다.”

도와 달래 해서 도와줬다. 그럼 됐다. 그럼 됐는데, 왜 저것들은 또 말을 거나.

“자, 잠깐만요! 가까운 게이트까지 저희를 안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왜?”

남자는 말문이 막힌다. 사실, 그렇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데 이유는 필요 없다. 이유가 필요 없기에 문제가 된다. 도울 필요도 없고, 도와줄 필요도 없다.

“가, 같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얘는 오크인데?”

“그래도,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겁니다.”

“내가 널 도우면 너희가 날 어떻게 돕는데?”

“도.......”

“돈도, 권력도, 정보도. 난 전부 필요 없는데?”

남자가 말문이 막힌다. 사실 그렇다. 사람은 돕고 살아야 한다고 배우는데, 모두 정작 그 이유를 모른다.

전지전능한 신께서 내려와 사람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느니라. 했으면 또 몰라. 공자니 맹자니 하는 것들은 전부 사람이 사람에게 한 말이다. 사람이 한 말이 사람 위에서 사람을 지배할 수는 없다. 설득력은 있어도 절대성은 없다.

모두 하나의 주장일 따름이다.

“또 내가 너희를 구해준다고 하자. 그럼 우리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이쪽은 신을 죽인다는 장대한 사명이 있다. 일의 경중을 따지자면, 우리 쪽이 수억 배는 무겁다. 급하기로 따지면 그다지 급한 건 아니지만.

“만약 우리가 늦어서 누군가 죽는다면? 그건 너희가 책임질 건가?”

“그럼 포션이라도.......”

“그 포션이 모자라 우리 파티원이 죽으면?”

봐라. 남자는 아무런 말도 못 한다.

“가자.”

나는 등을 돌린다. 대화는 끝이다. 저들은 내가 저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당위를 입증하지 못했다. 망가진 방어구와 무기를 보면, 다음에 몬스터를 만나면 싸우다 전멸할 모양새지만, 나한테 빌었던 것처럼 운명에게 빌면 운명한테 기도나 하라지. 나한테 한 것처럼 운명 개새끼야! 하면 운명이 홧김에 살려줄지 또 모른다.

***

던전 3층으로 내려와서, 반역자의 인맥을 이용해 고블린을 만나고 마족을 만나고 다양한 종족을 만났다.

리자드맨이라는 종족이었는데, 외형은 게임에서 자주 보던 그게 맞았다. 이족 보행하는 도마뱀 인간. 놀랍게도 그놈들도 중간계에서는 지성체로 분류되었다.

물어물어 드디어, 우리는 반역자의 부족을 찾았다.

멀리서도 알아보기 쉬웠다. 천막들 사이에 적당한 높이의, 하얀 제단이 서 있었으므로.

“누구냐! 이름을 밝혀라!”

부락에 다가가자 오크 하나가 튀어나와 묻는다.

“나, 부족장의 장남, 카라브가 돌아왔다 아버지에게 일러라.”

“카, 카라브?”

“20년 전, 전쟁놀이에서 내 왼팔에 상처를 낸, 디반아. 그 일을 가지고 한 달이나 좋아하던 디반아. 정녕 나를 몰라보겠느냐?”

반역자의 태도는 당당했다. 앞으로 종족에 대한 폭거, 용서받지 못할 만행을 저지르려는 사람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당당함이다.

내심 말해주고 싶었다. 보아라! 이놈은 반역자다! 네놈들 신앙의 탑을 무너뜨릴 악마의 형상이다! 라고, 꼭 희극대사 같다.

희극, 나쁘지 않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는 비극이라.

내 인생은 이미 내 손을 떠나 저 멀리 부유하는 허영이니. 내 인생은 나에게 이미 희극인데, 타인인 반역자의 인생이야 말할 것도 없다.

나는 희극 속에 살고 있다.

디반이라고 불린 오크는 놀라더니, 눈물을 글썽인다.

“정말, 카라브님이십니까?”

“내 왼팔의 상처를 보여줘야 믿겠느냐. 그러니 아버지에게 일러라.”

디반이 부락 안쪽으로 달려가고, 내가 반역자에게 묻는다.

“너희들은 어디 희극 배우냐?”

“저희 부족은 대대로 신을 모시는 사제를 배출해 왔습니다. 일족 전체가 족보를 타고 올라가면 한 번씩은 사제를 했었죠.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습니다. 중간계에 처음 갔을 때는 이 말투의 도움도 많이 받았죠. 과장되긴 해도, 교양은 있어 보이니까요.”

반역자가 어깨를 으쓱인다. 교양까지 신경 쓰다니....... 반역자에게 진 것 같아 분하다. 좋아, 니가 교양을 앞세운다면 나는 미친 짓을 앞세우겠다.

디반이 돌아오고, 우린 부락 안쪽으로 들어간다. 부락이라고, 떠돌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만들어진 천막들은 재질은 모르겠지만, 그 견고함은 보기만 해도 전해진다. 괜찮은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앙, 아아앙.”

부족장의 천막 안에서는 여자의 교성이 들려온다. 오크의 그건 아니길 빌며 안으로 들어가니, 인간이다. 인간 여자가 거구의 오크에게 범해지고 있다. 약에 절은 모습인데 저건 강간이라도 봐도 되겠지?

“아버님, 손님 앞에서 그 태도는 족장의 품위가 깎입니다.”

“이 손으로 비틀기만 해도 죽어버리는 나약한 족속이다. 그런 자들에게 차릴 예의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내 심장이, 내 피에 흐르는 전사의 피가 말한다.”

그러며 부족장 오크는 날 힐긋 보며 비웃는다. 허리를 튕기니 약에 절은 여자가 교성을 지르며 흐느적댄다.

“.......”

OK. 그 시비 받았다.

“좆도 쓸 줄 모르는 놈들이 좆을 좆대로 놀리니, 내 통탄을 금할 수 없구나. 무릇 수컷이란 어떻게 허리를 사용해야 하는가. 그 모범을 보여주마. 미천한 태생의 괴물아, 두 눈으로 새기거라.”

“히앙!”

나는 옆에 있는 사랑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거칠게 옷을 벗기고, 나도 바지를 내린다.

부족장과 반역자의 눈이 동그래진다. 그래, 인정한다. 체격 차이가 있으니 물건 크기는 니가 더 크겠지. 그래도 내 대구경 라이플의 조형미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발기부전에 걸린 노인네들이 풀지 못하는 성욕을 담아 만들어낸 걸작이 바로 내 물건이다.

나한테 걷어차여, 질척하게 젖기 시작한 사랑이의 음부에 내 물건을 꽂아 넣는다. 배려라고는 없는 난폭한 움직임. 그러나 내 상대는 난폭함조차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최고의 좆집이다.

“히야아아아앙!”

사랑이의 간드러지는 음색이 천막을 울린다. 나는 계속해서 허리를 쳐올린다. 사랑이는 계속해서 절정하며 정신을 못 차린다.

나는 부족장을 비웃는다.

뭐, 새꺄? 이것도 못 해?

부족장의 얼굴이 썩어들어 간다. 남자 대 남자의 싸움이다. 수컷 간의 싸움에서 내가 이겼다.

압승이다.

============================ 작품 후기 ============================

한편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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