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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일곱 개의 보석은 두말해 입만 아프고, 아란 길드도 세종에 있는 거물 길드 중의 하나다.
두 길드의 마스터가 하루 사이에 사망했다. 둘의 사인은 동일, 자기 아들에게 찔려 죽었다. 두 아들은 같은 날 납치당한 전적이 있다. 수상한, 너무도 수상한 일이다. 그 수상함을 캐낼 시간이 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양 길드 모두 길마의 사망 원인을 숨기기 급급했다.
길마가 패륜으로 죽었다고 소문나면 길드 이미지도 씹창날테니까. 특히 일곱 개의 보석 길드는 세종의 행정부다. 대통령이 자기 자식에게 죽었다고 뉴스 뜨면 나라가 개판이 된다.
사망 원인은 숨겼어도, 길마의 사망과, 사망으로 생겨나는 여러 공백은 감출 수 없다.
그러면 세종은 어떻게 될까?
개판이 된다.
권력의 공백을 두고 일곱 개의 보석과 아란 길드는 내란을 일으키고, 지들끼리 싸우니 업무가 정지한다. 승냥이들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세종의 정치 체계가 하룻밤 만에 붕괴했다.
보지 않아도 손에 잡힐 듯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어수선한 중앙 도시의 분위기가 그걸 증명한다. 당장 들리는 싸움 소리와 비명 소리도 십여 개가 된다.
때론 구석진 골목에서, 때론 빌딩의 고층에서, 때론 아예 길거리에서. 말로 싸우고 칼로 싸우고, 명분으로 싸운다. 잘도 싸운다. 싸워라, 싸워.
낄낄,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일이 얼마나 커지던 내 책임은 없다.
내 성격을 알고도 나한테 일을 맡긴 꼬맹이와 마현 책임이다. 그러니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치면 된다. 누구랑? 라팔이랑 사랑이랑.
그 전에 필요한 작업이 몇 개 있다. 공백이 생기면 그 공백을 먹으려는 놈들이 나온다. 그게 빠르게 정리되면 대란은 소란으로 그친다. 그럴 수는 없지.
무시무시한 대한 길드의 정보력은 이 시국에 권력을 잡기 위해 움직일 인간들까지 포착하고 있다.
난 그놈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최고 지도자가 사라지고, 유력한 차기 지도자까지 사라지면 남는 건 진흙탕 싸움이다.
‘벌써 하나 터졌고 말이지.’
행정부, 일곱 개의 보석 길드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신문사를 회유해 가짜 정보를 퍼트렸다. 엄한 사람한테 길마 암살 혐의를 씌워 치우려한다.
삼권분립이 아니라 삼권결탁이 이루어진 상황이니,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모가지 날아간다. 오고 가며 광장에 단두대가 있는 게 보였는데, 실제 처형식 때도 쓰는 건가?
현대적인 도시 중앙에 고풍스러운 단두대라니. 대단히 이질적이다. 날이 날카롭고 단두대 곳곳이 피로 검게 변한 것을 보면 쓰긴 쓰는 모양인데,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누, 누구냐!”
“유환성 본인 맞지? 대한 길드에서 나왔어.”
사기를 치려면 사칭 정도야 기본이지. 대한 길드의 의뢰를 받은 상태니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도 아니고.
“같이 가줘야겠는데.”
“알았소.”
남자는 순순히 따라온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온 내 말을 믿는 거겠지. 이 인간도 자기 정적이 많은 건 아는지 호위는 엄청 삼엄하더라. 나한테는 우리 집 안방이다.
이 남자는 길마가 죽고 일곱 개의 보석 길드의 최고 책임자 자리를 임시로 맡게 된 인간이다.
패륜을 저지른 도련님을 앞에 내세우는 것도 불가능하니 이 인간이 차기 왕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판을 짜기 가장 쉬운 사람이기도 하고.
“제자야, 먹이다.”
남자를 데려온 곳은 제자의 고아원이다. 데스 필드는 아직 유지 중이며, 고아원 아이들을 뺀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데스 필드 아래에도 수많은 언데드가 잠들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며칠 만에 잘도 여기까지 요새화했네.
내 기척을 느끼고 고아원 밖으로 나온 제자는, 내가 끌고 온 남자를 보고 내게 묻는다.
“먹이입니까?”
“강한 사람을 굴복시켜 언데드로 만들어 보는 것도 수련에 도움이 되지.”
“수련? 먹이? 지금 무슨 소리는 하는 거요?!”
제물이 쫑알쫑알 시끄럽다. 이놈을 죽이면 그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내 손에 두는 게 좋다. 그래야 이 혼란이 오래 이어지고, 소란이 대란이 된다.
“스승이 물어다 주는 기회를 그냥 버릴래?”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이봐,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대한 길드라곤 했는데, 증거를 보여준 적 있어?”
“대한 길드를 사칭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안 아까워.”
대한 길드가 뭐라고. 정 안 되면 핵 몇 방 터뜨려주면 된다. 내가 핵폭발을 일으킬 수단이 우라늄 소드 하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갈리에 있는 우라늄 광산을 보이는 대로 털어 와서 재료도 탄환도 충분하다.
잘 숨어다니기만 하면 게릴라로 중간계 전체를 길동무 삼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씀.
어쩐지 말이 많더라니, 제물은 그러며 기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림자, 내 그림자와 제자의 그림자를 포함한 주위의 모든 그림자가 일어나더니 나와 제자를 덮친다.
기술은 좋은데 상성이 나쁘다. 그림자는 내 마력에 밀려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제자의 발밑에서 나타난 기형의 언데드가 그림자를 먹고 있다. 쉐도우 스펙터?
벌써 저런 것까지 만들다니 제자는 흑마법의 재능도 꽤 있는 것 같다.
“4급에 가까운 3급 각성자라더라. 니 언데드 중에는 이런 놈 없지?”
“잘 먹겠습니다.”
역시 내 제자. 다른 건 묻지 않고, 넙죽 제물을 받아먹는다.
“누구 마음대로!”
대기 중의 물이 제물에게 모인다. 무슨 마법인지는 몰라도, 여기는 데스 필드고, 네크로맨서의 영역이다.
제물이 무언가 하려고 하지만, 수백의 언데드에 삼켜져 제물은 제 역할을 다한다.
“상위 언데드로 만들어서 나한테 보내.”
“저 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잠깐 쓸 일이 있어. 그리고 공방도 하나 준비해 둬라.”
앞으로 이런 일이 많을 테니 언데드를 만들기 위한 공방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 제자의 숙련도까지 챙겨주는 나는 착한 스승이 틀림없다.
불만스러운 제자를 두고 다음 목표를 찾는다. 데스 필드까지 있으니 언데드 생성까지는 몇 시간 걸리지 않을 거다. 미숙하다고는 해도, 제자는 네크로맨시의 극의를 익힌 네크로맨서다.
***
중앙 도시와 바로 이어진 위성 도시 하나. 이 도시의 주인은 명목상 대한 길드이지만, 이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발락 길드였다.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과 사법 절차를 처리하기 위한 모든 기관이 이 도시 하나에 모여 있었다.
“유환성 임시 총리. 긴급회의까지 개최해가며 왜 우리를 여기까지 모은 거요?”
노인 하나가 물었다.
그 사법 도시에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삼부를 통괄하는 회의가 열렸다.
어제 살릴 놈이 오늘 죽을 놈이 되고, 어제 죽었을 놈이 오늘 살아야 할 놈이 된다. 누명을 씌우고, 비리를 폭로하고, 폭로를 또 폭로하고 내부 고발자를 콘크리트 아래에 묻고, 최근 세종의 밤은 피의 밤이었다.
더듬어도 앞을 알 수 없는 정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회의를 여는 행정부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아직 정쟁은 한창이며, 말로 무언가를 할 단계가 되기까지는 한참이나 남았다.
선전포고하고 막 초전을 치렀는데 다음 날 동맹제의가 오는 꼴이다.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을 회의였다.
그래도 회의장에는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이 이해 불가한 회의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것이 하나, 이 회의의 주최자가 유환성 임시 총리라는 것이 또 하나다.
유환성 임시 총리는 차기 총리직에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알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자기는 한 발 빼고 관망하는 태도. 야망에 불타던 사람이 보일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였다.
각 조직의 정예들과 함께. 이런 회의를 열고 기습으로 적 수뇌를 몰살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이어질 비판이 어때서? 그런 건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 그 정도는 가볍게 하고도 남을 사이코패스였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모여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환성이 운을 뗐다. 그는 탁자 아래에서 검은 상자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수십 쌍의 눈길이 상자를 향했다.
“여러분, 여러분과 함께 온 사람들은 모두 결계에 갇혔습니다. 결계를 깰 열쇠는 이 상자 안에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유환성, 이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알다마다, 누가 꾸민 행동인데.”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위를 향한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나자가 허공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알몸의 여자 위에.
“?”
그 장면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대체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뜬금없는 결계란 소리, 그 열쇠라는 상자. 마지막으로 나타난 수수께끼의 남자. 심지어 알몸의 여자 위에 앉아서.
여자는 흥분으로 얼굴을 붉히고, 환히 드러난 음부에선 애액과 정액이 섞여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대로 이해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다.
“너희는 평소 나를 소중히 하지 않았지.”
“그게 무슨 개소리냐!”
“사람이 사람 소릴 하는데 그걸 개소리라고 하면 쓰나. 사람 소릴 못 알아듣는 사람이 진정으로 개렷다. 이 자리에 개는 필요 없어.”
휙. 대들었던 남자의 머리가 사라졌다. 대한 길드의 똥꼬나 핥으며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까 기회나 보던 경찰청장이었지만, 무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몸뚱이만 남았다.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고 모두가 이해했다. 다만,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의 자각은 해결의 시작일 뿐이었다. 반대로 자가에 의해 상황이 나빠지는 것도 충분히 존재했다.
바로 지금이 그때다.
“들린다, 우주의 소리가 들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떼굴떼굴 들려.”
남자가 입을 연다. 아름다운 여인이 발정한 모습도 눈길을 끌지 못했다. 남자가 가진 자체의 분위기, 몇몇 사람은 광기라고 눈치챈 그 압도적인 존재의 질량이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내가 할 말은 딱 두 개다. 니들은 해 먹은 게 너무 많아. 그래서 대한 길드가 니들을 전부 버렸다. 내가 손대는 영역은 여기까지니 여기서 탈출하면 반란을 일으킬지 도망갈지는 알아서 정해라. 음, 이러면 세 개를 말한 건가? 뭐, 어때. 알아서들 잘해.”
남자가 사라진다. 검찰 쪽과 경찰 쪽에서 남자를 찾으려고 기능과 진명을 사용했지만 허탕이었다.
밖으로 나갔던 발락 길드의 간부 한 명이 이 일대가 모두 결계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모두 밖으로 나가 결계를 부숴보려 했지만, 결계의 단단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유환성을 붙잡아 고문해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떤 결계인지는 몰라도 부수지 못하는 이상, 결국 이 상자를 열 수밖에 없는 모양이오.”
남은 방법은 탁자 위에 있는 상자를 여는 것뿐. 상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열렸다.
누군가가 무기로 쓰는 망치로 몇 번 탕탕 내려치니 달칵. 온갖 마법을 버티던 결계에 비하면 고생이랄 것도 없었다.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둥근 공이었다. 금속으로 된 매끈한 검은 공은 어디에 쓰는지 용도를 알 수 없었다.
“이거, 마력을 흡수하는데?”
처음 한 명이 공에 마력을 충전하다 탈진했고, 이어서 마력을 충전하다 탈진하는 사람이 늘어섰다. 공은 터무니없는 마력을 요구했다.
공, 농축 우라늄음 이미 예전에 임계질량에 달해 있었다. 축적되는 마력이 우라늄 분자의 운자의 운동을 활발하게 하지만, 공의 표면에 걸린 마법에 막혀 그 힘을 발산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우라늄 분자의 운동이 그걸 막고 있는 마법의 힘을 뛰어넘었다. 응축된 힘이 바깥으로 뿜어졌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도시를 덮고 있는 결계를 날려버리고 그 위력을 사방으로 뻗친다.
세종에서 핵폭탄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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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종에서도 터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