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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애새끼의 아빠가 보낸 조폭이 얌전히 돈을 내면 어쩔 거였냐고? 그때는 내가 실수했다고 말한 다음, 애새끼의 목을 저놈들 앞에 건네주면 될 뿐이다.
어떻게 되든 내 계획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어차피 전부 죽는다. 부탁받은 일이 그러니 이해해 달라.
어째 난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아. 나 사실 머리 꽤 좋은 거 아닐까?
숨쉬기에 충분한 봉투라 호흡에 문제는 없을 텐데, 도련님의 호흡이 거칠다. 가슴까지 부여잡는다. 발작인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심하게 받으면 이러는 사람이 있다.
내 나름대로 정신병의 일종은 아닐까 추측해보지만, 가방끈 짧은 내가 뭘 알겠어.
공장을 포위한 인원이 움직인다. 그들에게서 발해진 마력이 공장 1층에 있는 놈들에게 이어진다.
도청해보면 이렇다.
-이쪽은 준비됐다. 지금부터 작전을 시작한다.
1층에 있는 놈들도 행동을 계시한다. 한 번에 움직여 날 덮친다.
도련님은 라팔을 요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요정의 심부름꾼? 같은 요정? 무엇이든 약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요정에게 덤비는 분수를 모르는 녀석들에게 철퇴를, 얍!”
말끝에 별표를 붙이는 느낌이 포인트. 누구나 할 수 있는 요정 흉내! 그 위력은 이렇다.
나를 공격하던 놈들이 모조리 피떡이 되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
놈들이 들고 있던 검이 날아와 도련님의 어깨를 스치고 벽에 박힌다. 도련님의 발작이 더 심해진다. 이건 일부러 한 연출이다. 나뿐만 아니라, 도련님까지 같이 죽이려 했다는 연출.
발작이 더 심해졌으니 연출은 성공이다. 놔두면 위험하니 마법으로 도련님을 진정시킨다.
전장에서 이런 식으로 발작하는 놈들을 많이 봤다. 진정 마법이면 대체로 진정한다. 진정한 도련님이 그대로 기절한다. 충격이 심했나?
아빠한테 버림받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난 상상도 못 하겠다. 아빠가 없어서 말이야. 있는 아빠를 없다고 말하는 패륜이 아니라 진짜 없다.
처음부터 아빠에 대한 기억 없이 난 엄마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패드립도 아빠 욕은 면역이다. 니 애비 노가다꾼! 하고 놀려도 전혀 상처받지 않는다는 말씀.
딱 좋은 타이밍에 난입자들이 도착한다. 40명 정도, 실력은 나쁘지 않다. 길드의 정예려나. 그래도 아들이라고 꽤 신경을 썼다.
“도련님을 내놔라!”
이 대사를 도련님이 못 들어서 다행이다. 들었다면 양동작전을 깨달았을지도 모르니까. 확인해보니 도련님은 확실히 기절해 있다.
“아란 길드?”
“우리를 알고도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간이 부은 놈이구나!”
“좋은 걸 알려줄게. 너희들, 처형 명령 떨어졌다.”
대한 길드에서 받은 청부서를 앞에 든다. 눈이 좋은 놈들이니 이 거리에서도 충분히 보겠지.
종이를 읽은 놈들의 표정이 하얗게 변한다. 대한 길드에게 버려졌다. 무섭긴 하겠네. 주인한테 버림받은 강아지잖아.
“난 그냥 집행자라는 말씀. 조용히 고통 없이 보내줄게.”
땅이 파도친다. 대지가 입을 벌려 적들을 집어삼킨다. 반항은 무의미하다. 대지의 파도가 적들을 삼키고 잠잠해진다. 폐공장의 쓸쓸한 바닥은 침묵한다. 바닥에 두껍게 쌓여 있던 먼지가 사라졌다. 바닥이 매끈하게 빛난다.
기절한 도련님을 짊어지고 놀이방으로 돌아온다. 애새끼는 조금 괜찮아졌는지 혼자 오락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 그래도 조그마한 소리라도 나면 화들짝 놀란다.
나는 라팔의 옆에 앉는다. 동전을 넣고, 게임을 시작한다. 아직 그날의 설욕을 하지 못했다. 한 라운드라도 따내고 말겠어.
다다다다. 오락기 버튼 누르는 소리가 시끄럽다. 사랑이는 한구석에서 검을 뽑아 검술을 연습하고 있다.
“어떻게 됐어?”
“공격하는 쪽이더라. 인질이나 되는 아이는 필요 없다는데? 이 도련님은 충격에 기절했고.”
“그래?”
타탁. 타타탁. 아, 콤보 걸렸다. 이 게임을 하는 요령을 대강 알 것 같단 말이지. 중요한 건 프레임이다. 공격과 방어, 모든 동작에 걸리는 1프레임이 승부를 좌우한다.
가드가 올라가기 1프레임 전에 공격을 맞추면 되고, 공격이 닿기 1프레임 전에 가드를 올리면 된다. 찰나에 오가는 공방! 이게 바로 격투 게임의 극의!
받아라, 이게 나의 일격이다!
툭. 내 캐릭터의 공격이 라팔의 캐릭터에 닿았다. 라팔이 조작하는 캐릭터의 체력이 쥐꼬리만큼 달았다. 그야 평타 1대인걸. 난 아직 콤보는 전혀 넣을 줄 몰라.
바로 돌아오는 라팔의 반격, 공중 콤보에 기상 콤보까지 맞은 내 캐릭터가 누워버린다.
하지만 괜찮다. 퍼펙트게임만 당하다가 드디어 한 방 맞춘 거다.
“한 대 때렸다.”
“아직이야.”
저건 자존심 상했다는 태도다. 나는 킥킥 웃으며 다시 동전을 넣는다.
***
도련님이 깨어났다. 깨어난 도련님의 눈동자는 탁하다. 순수는 사라지고 탁기가 남았다. 탁기는 흐려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맑던 순수는 어디로 갔는가? 대충 짐작은 간다.
애새끼의 아비의 부하가 던진 칼이 도련님의 어깨를 스쳤을 때. 그 서늘한 칼의 감촉, 그리고 칼이 남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와 함께 순수도 도련님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도련님은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소중한 것 하나를 빼앗겼다. 더 악질적인 사실은 빼앗은 사람은 자기가 그것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모르며, 이미 지하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뺏는 강도, 심지어 자기도 자기가 뺏을 물건을 모르는 강도. 실로 최고의 강도라 하겠다.
좀처럼 초점이 맞지 않던 눈동자가 라팔을 발견한다. 도련님의 의식이 각성한다.
“요정님.......”
현실을 알고, 거짓을 본 꼬마 아이가 요정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네가 아는 현실은 진정한 현실일 것이나, 네가 본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짓이다. 거짓이라는 표현은 너무 그런가? 착각, 착각이다.
시간이 하루 달랐고, 내가 사람을 착각(웃음)해서 생겨난 헤프닝.
현실을 알고 착각을 본 도련님은 자신에게 현실을 알려준 요정에게 의지한다. 그 현실이야말로 도련님을 궁지로 몰아넣은 악독(惡毒)인데도, 도련님은 자신에게 독을 준 사람을 찾는다.
“저는 어떡해요?”
“하나 있어. 해야 할 일.”
라팔이 오락기 기판에서 손을 뗀다. 마침 딱 한 게임이 끝났다.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
정확히는 이미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을 구하고, 단 한 사람을 구제하는 길. 단, 그게 진정한 구제인지는 모른다.
해골에 담긴 물 한 바가지처럼,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도련님이 그 ‘나름’을 잘해준다면 그것은 구제가 되는 거고. 아니면 구제가 아닌 다른 게 되겠지. 그게 뭐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도련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어떻게 읽어?
라팔이 도련님에게 단검을 건넨다. 내가 만든, 암살용 특제 단검이다. 저것만 있으면 어린 아이도 어른을 힘들이지 않고 죽일 수 있다. 그게 설령 인간을 넘은 초인이라도.
“네 아빠를 죽여, 네 손으로.”
도련님의 눈이 떨리고, 떨림은 몸 전체로 번진다.
“저, 정말 해야 돼?”
“해야 해.”
라팔이가 요정이라니, 설정을 잡아도 한참을 잘못 잡았다. 아이에게 패륜을
서큐버스 퀸이나 대악마는 되야 수지가 맞는다. 그러면 라팔이에게 일을 시키는 나는 마왕이나 마신이 되겠다.
마신이라, 그건 안 되지 그럼 내가 날 죽여야 한다. 마왕 정도로 해두자.
마왕과 그를 따르는 요정.
도련님이 주저한다. 주저하다 머뭇머뭇 단검에 손을 내밀어, 잡는다.
“응, 할게.
도련님의 어조는 낮고 힘이 있다. 반대로 그 눈은 탁하다. 탁해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
도련님을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 도련님만을 정문에 텔레포트 시킨 다음 나와 라팔과, 사랑이. 우리는 멀찍이 떨어진 빌딩에서 도련님의 집을 구경한다.
분수까지 딸린 정원에 가꾸어진 조화가 호화롭다. 도련님의 등장에 저택이 시끄럽다. 납치당해 내일까지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정작 납치당했던 사람이 멀쩡히 나타난 것이다.
전후 조사에 바쁘겠지.
검은 옷이 도련님을 더듬어 몸수색을 하고, 둘러싸 철통같이 지킨다.
저택 안에서는 중년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나온다. 도련님이 잘 생겼더라니. 애비도 인물은 괜찮네. 인신매매를 주도하고 애 엄마를 살해한 인물로는 안 보여.
사람 속은 머리를 까도 장기를 까도 안 나와서 싫다니까. 나쁜 사람의 뇌는 주름이 없다거나 살인마의 심장은 검다거나 하는 표식이 있으면 정말 편하겠는데. 그걸 모르니 불편해.
신이라는 놈이 있다면 인간을 만들 때 조금만 더 신경 써서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면 나 같은 인간이 살아 설칠 일도 없고, 저런 놈이 살아 있을 일도 없는데.
중년 남자가 도련님을 포옹한다. 도련님의 손이 작게 움직인다.
일곱 개의 보석 길드의 길드 마스터.
김훈영. 4급 각성자.
도련님은 그냥 꼬맹이다. 애새끼처럼 어른을 압도하는 힘도 없고, 마법도 쓸 줄 모른다.
도련님이 지 애비를 죽이려면 특수한 방법이 필요하다.
도련님이 손에 찬 팔찌를 살짝 건드린다. 팔찌는 소리도 흔적도 없이 단검으로 화한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도련님의 손에 단검이 잡힌다.
단검에 담긴 마법이 발동한다. 체감시간 가속.
세계의 시간이 느려진다. 그리고 도련님의 손만이 그 속에서 자유롭다.
푹찍. 단검이 심장이 가른다. 일곱 개의 보석을 손에 쥔 욕심쟁이가 쓰러진다.
욕심쟁이가 마지막에 손에 쥔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닌 품에 안은 아들이었고, 그 아들이 손에 쥔 것은 아버지의 심장을 찌른 단검이다.
갑작스러운 보스의 사망 그것도 범인은 보스의 아들. 혼란은 예정되어 있다. 내우는 충분하다. 내환은 조금 있다 만들어주자. 그러면 내우외환의 완성이다.
내우외환 속에서 도련님이 마지막까지 살아 있다면, 도련님은 이번 대청소 대상에서 빼준다.
라팔의 말대로 이건 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이다.
악의 덩어리가 비극이라도 해도 좋을 상황 속에서 죽음으로서, 악의 덩어리, 일곱 개의 보석으로 인해 삶이 비극으로 변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평안을 얻겠지.
한 번의 악행, 한 번의 패륜으로 도련님은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을 얻는다. 내가 나서면 도련님이고 나발이고 생존확률 제로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 또 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미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을 구하고, 단 한 사람을 구제하는 길이다.
하나는 처리했고, 다음 가자.
***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가지를 비교할 때 저울에 올려놓는다고 말한다.
엄마와 아빠.
돈과 권력.
병마와 죽음.
저울에 올라가는 것들은 대게 가치가 비슷한 것들이다. 재보지 않아도 한쪽으로 기우뚱할 것이 빤히 보이면 저울에 잴 필요도 없다.
나는 애새끼에게 저울을 주었고, 저울에 올릴 두 가지를 주었다.
자신의 목숨과 나에 대한 두려움.
아버지에 대한 믿음과 사랑.
-이걸로 니 아버지를 찔러라. 그러면 너는 살려주마.
아주 간단한 말이다. 말만 이라면 하루 천만 번이라도 입 밖으로 뱉을 수 있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뱉기 쉬운 것.
내 입에서 가볍게 나간 말이 애새끼 귀로 들어갈 때는 무거우니 언어는 마법이다.
난 아란 길드가 소유한 빌딩 옥상에서 별을 보고 누워 있다. 오염이 없는 이곳 밤하늘은 별이 잘 보인다.
중간계와 지구의 별자리가 같을 리는 없을 테고. 중간계는 중간계의 별자리가 생겼을까?
조용하던 밤하늘을 흔들어 깨운다. 내가 아니라, 조폭들이.
빌딩에 전체에 불이 켜지고 아래층의 고함이 여기까지 들린다.
내가 애새끼에게 준 저울이 기울었다. 애새끼는 자기 목숨을 선택한 모양이다.
두 번째도 성공. 자, 다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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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중추 길드가 무너지기까지 단 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