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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54화 (5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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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세종의 주인, 세종을 다스리는 길드. 그게 바로 대한 길드다. 세종이라는 도시의 크기에 비해 대한 길드의 인원은 매우 적다. 성가신 도시 관리는 모두 하청의 형태로 다른 길드에 이양하고, 소수 정예를 추구한다.

그러면서도 도시의 모든 사안에 간섭할 권한이 있으니,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군림하지 않는 척하되, 모든 것을 통치하고 있다.

대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는 겉과 속으로 세종을 지배하는 주인이다.

“언제가 비슷한 일이 터질 줄을 알았지만, 하룻밤 사이 망할 줄은 몰랐는데.”

그 세종의 주인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난 투기장 몰락 사건의 개요를 받아보고 있었다.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소문만 무성한 그는 의외로 이십 대 초반의 평범한 외모였다. 그러나 그것도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평범하지 않았다.

대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 마현은 1년차 소환자로 나이는 이미 30이 넘는다. 그에 반해 그의 외형은 처음 소환될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마스터 혈 길드를 박살 내고, 포루시안과 싸워서 살아남았으니 투기장 하나는 큰일도 아닌가.”

한 달이면 세종까지 서울의 소직이 전해지고, 세종에서 서울로 사람을 파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대한 길드에서 파견된 사람들은 서울이 무너진 이유를 면밀히 조사했고, 한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

처음에는 포루시안과 마스터 혈이 동귀어진한 것으로 각을 잡고 조사했지만, 목격담에 따르면 포루시안이 서울에 나타난 건 이미 마스터 혈과 신의 메아리가 무너진 후.

마스터 혈이 무너진 것과 포루시안이 사라진 것(상처 입고 물러갔는지, 진짜 죽었는지는 불명.)은 다른 사안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두 사건 모두 한 사람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그 남자가 오늘 새벽 투기장까지 박살 내 놓았다. 서울과 포루시안에 비하면 투기장 정도야 작은 사고와 같은 것이다.

“총괄 조사 팀장.”

“네, 마스터.”

마현의 앞에 있던 최연호가 대답했다.

“그런 것치고는 이름도 안 나와 있는데?”

“스스로 이름을 댄 적이 없습니다. 투기장 선수로 등록할 때 쓴 휘라는 이름이 다입니다. 그것도 본명인지 어떤지 모릅니다.”

마현은 종이에 적힌 남자의 행적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최연호가 마현을 만류했다.

“그만두시죠. 건드리지 않으면 조용하지만, 건드리면 큰일 나는 전형적인 사람의 전형입니다.”

“내가 뭘 하려는지 알고?”

“제가 조사하던 자료를 몰래 열람하셨지 않습니까. 안 봐도 압니다. 그의 성격과 무력을 생각하면 세종 일부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진짜로.”

“서울이 붕괴하며 대량의 난민이 발생했지. 강원을 비롯한 서울을 중개하는 역참 도시 몇도 사실상 기능을 잃을 거고. 결정적으로, 세종도 한 번 정리할 때가 됐어.”

최연호는 뒤에 올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도시 일부가 사라지면, 이참에 재개발하면 된다. 마현의 말은 그랬다.

“하아, 알아서 하십시오.”

최연호는 결국 마현에게 항복했다. 재개발 과정에서 일자리도 생길 거고, 그러면 난민 수용이 더욱 용이해진다. 자잘한 문제야 당연히 생기겠지만, 세종이라는 도시는 그 정도 문제는 자정 가능하다.

“그럼 부탁해.”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데려오도록 해보겠습니다.”

깊게 한숨 쉬는 최연호는 어딜 봐도 피로에 찌든 직장인이었다.

***

고아원 주변에 데스 필드가 펼쳐져 있다. 그리고 고아원에 도착하니 제자가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제자 앞에는 막 만들어진 언데드 몇 구가 있다.

“제자야, 이건 뭐냐?”

제자가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니까...... 실수했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전부터 고아원을 노리던 인신매매범 상대로 힘을 조금 과하게 썼다는 모양이다. 처음 쓰는 데다 과하게 쓰기까지 했으니 제어가 잘 안 된단다.

“그래서 하는 김에, 여길 제 영역으로 삼아볼 생각입니다.”

역시 내 제자라 해야 하나. 시작부터 거창하다. 극의를 깨우친 네크로맨서가 지역 하나 어쩌지 못하지는 않겠지.

“그래, 해봐라. 그런데 나리는?”

“들어가서 자고 있습니다.”

“너는 걔가 신성력을 쓴다는 걸 알고 있었냐?”

“네, 나리한테는 그게 신성력이라고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영특한 제자다. 사제들의 신성력이 한 번에 사라진 상황에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아이가 나타났다. 아이 하나를 두고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본인에게라도 가르쳐 주지 않은 건 잘한 일이다.

“언제부터 신성력을 썼냐?”

“한 달 조금 넘었을 겁니다.”

딱 내가 여신을 죽인 시점이다. 내가 여신을 죽이고 중간계에 무슨 일이 더 있었나.

고아원 안으로 들어와 잠자는 나리는 찾는다. 아직 이른 아침이다. 아이들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나리도 고이자고 있다. 몇 가지 마법을 사용하니, 나리의 몸에서 여신의 영혼이 느껴진다. 내가 흩어버린 영혼에 비하면 아주 작은 조각이다.

내가 흩어버린 여신의 영혼이 이런 데 들어가 있다.

드래x 볼이냐. 전부 모으면 여신이 부활하고 이런 건 아니겠지? 하나 처리하니 찌꺼기가 튀어나오고, 여신의 영혼이 아니라 진짜 여신의 똥 아냐?

영혼은 일단 놔두기로 한다. 난 영혼을 다룰 줄 모른다. 저걸 빼내려면 나리를 죽여야 하는데, 그러면 제자랑 척을 질 것 같다. 빼낸다고 해도 다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면 아무것도 안 되고.

놔두기 싫어도 놔둬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니들 진짜 어떻게 할래?”

“네?”

“너는 언데드고, 니 미래의 여친은 성녀 되신다.”

여신의 영혼을 깃들인 여인이니, 성녀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사령왕과 성녀 커플. 둘이 이렇게 궁합이 안 맞을 수가. 자칫 잘못하면 첫날밤에 제자가 정화되어 버리겠다.

처녀막을 찢는 순간 신성력에 화악! 끔찍하군.

“어?”

제자도 거기까진 생각해보진 않을 것 같다. 목숨 걸고, 아니 진짜로 한 번 죽었다 살아나면서까지 노력했는데 인생 기구하게 꼬였다.

내 제자의 연애에 낀 암운이 너무 두껍다.

“가십니까?”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잘해라.”

다른 건 몰라도, 영혼은 어떻게 찾나. 앞길이 막막하다. 영혼을 보는 사람이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닐 거 아니야.

***

고아원을 나와 대한 길드로 돌아오니, 꼬맹이가 날 기다리고 있다.

“길드 마스터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만나시겠어요?”

대한 길드의 길드 마스터라....... 그런 대단하신 분이 무슨 이유로 날 보자고 한데? 이상하긴 하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 전에.

“꼬맹이. 내 부탁은 어떻게 됐냐?”

조사를 부탁하고 한 달이 넘었는데, 유상민은 물론이고 꼬맹이도 나한테 한마디도 안 한다. 날 가지고 장난친 거라면 그냥은 안 넘어갈 거다.

“그게...... 일단 마스터를 만나는 편이 빠를 겁니다. 하아.”

고뇌하며 한숨 쉬는 모습에서 어쩐지 애환이 느껴진다.

“만나면 조사 결과도 알 수 있다?”

“비슷합니다.”

“그럼 바로 가자.”

“밖으로 나가죠. 마스터가 있는 건물은 다른 건물입니다.”

밖으로 나가 리무진을 타고 이동한다. 택시도 있는데 리무진 가지고 놀랄 것도 없다.

리무진에서 내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범한 사무실 문 앞이다.

“이 안에 마스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잠깐, 지금 뭘 하려는.......”

꼬맹이가 날 말리기도 전에 난 행동에 들어가 있다. 발로 걷어차자 문이 찌그러지며 안쪽으로 날아간다.

길드 마스터를 만나보는 게 빠르다? 분명 뭐가 있다는 뜻이다. 공짜로 알아봐 준다고 한 것은 꼬맹이다. 그런데 갑자기 조건을 걸어? 이것들이 날 가지고 놀고 있다.

“이건 날 호구 취급한 답례다, 새끼야.”

날아가던 철문은 길드 마스터로 보이는 남자 앞에 정지해 있다.

마법은 아니고, 순수한 마력으로 한 일이다. 과연 대한민국 최고 길드의 주인. 중간계에서 내가 만났던 상대 중 가장 강하다.

나한테 마력으로 싸움 걸었던 병신 드래곤은 제외하고. 걘 너무 쉽게 죽여서 전력 측정을 못 하겠다.

“과격한 답례군. 이제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스터가 말한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실력만 아니라 다른 쪽으로도 쉽게 볼 상대는 아닌데? 마음에 든다.

공주에 떠 있는 문짝을 잡고, 창밖으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비어 있는 소파도 발로 차 치워버린다.

“의자.”

“네!”

사랑이가 네발로 엎드리고, 난 그 위에 앉는다. 라팔이 자리는 내 품이다.

“대화가 통할 것 같은 상대라 다행이야. 세종을 엎을 필요가 없어졌어.”

“이쪽도 오랜만에 대화가 통할 상대를 만나 기쁘군.”

내가 웃고, 상대도 웃는다. 본능적으로 알아봤다. 저놈은 미친놈이다. 나랑 비슷하지만, 동시에 전혀 다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동질감.

흑도 백도 아니고 그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닌, 낄 곳 없지만 혼자로 완성되는 그런 광기다. 전문용어로 정신병자라 한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읊어봐.”

“강신술을 쓸 수 있는 오크가 세종 내에 둘 있다. 그중 하나는 뒷세계의 거물이지. 그놈을 포함해 암살을 청탁하고 싶다. 오크의 경우 죽이지 않아도 좋다.”

“다음 말은 신중해야 할 거야. 세종이 사라지기 싫으면.”

말투가 절로 험악해진다. 대놓고 날 이용해 먹겠다? 대화가 통할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벌써 주먹이 날아갔다.

저놈 입에서 튀어나오는 다음 말이 날 만족시키지 못하면 주먹이 날아간다.

선빵치고 세종이랑 전쟁이나 하련다. 핵 몇 방 터뜨리면 문명 따위 초기화된다. 해봐서 알지.

“대가는 무제한 면책특권. 세종 내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에도 책임을 묻지 않지. 대한 길드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세종을 멸망시켜도 좋다. 그리고 조사팀 단위가 아니라, 대한 길드와 세종의 이름으로 신을 만날 방법에 대해 찾아주지. 동맹 도시, 국가와 연계할 수도 있겠지.”

내 상상을 몇 단계나 뛰어넘는 대답이 나왔다. 역시 내가 인정한 미친놈이다. 고작 이런 청부에 저런 조건이다. 말하자면 내가 세종을 전부 때려 부숴도 놔두겠다는 거다. 미쳐 돌았군. 그래서 더 만족스럽다.

“콜.”

몇 놈 죽이는 것으로 세종을 내 집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개새끼, 신을 찾을 방법이 더 늘어난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거래다.

***

세 사람이 방에서 나가고, 방에는 마현과 최연호가 남았다.

“마스터, 조건이 많이 과합니다.”

최연호가 표정을 구겼다. 무제한 면책 특권이라니. 잘못하면 그 미친놈이 일으킨 일에 대한 길드가 모두 덤탱이 쓰는 수가 있었다.

대한 길드가 세종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인 것은 맞지만, 세종 전체를 적으로 돌려도 좋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독재는 언젠가 떨어진다.

“어쩔 수 없었어. 미래가 안 보였거든.”

마현의 말에 최연호가 눈을 크게 떴다. 마현의 진명은 선구자. 먼저 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 능력은 미래를 본다. 그런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니?

“그 남자와 적대하는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순간, 모든 미래에서 세종이 사라졌다.”

반응 하나, 말 한마디에 따라 미래가 미친 듯이 바뀌었다. 바뀌는 미래에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미쳤다는 말이 그토록 어울리는 사람을 마현은 처음 보았다.

단, 남자와 적대하는 선택지를 고르면 마지막은 예외 없이 같았다.

“수십 개의 버섯구름과 함께, 말 그대로 세종이 지워지고 없었어.”

세종을 제물로 거대한 버섯이 봉우리 맺는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그래서 바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대우를 해줬지.”

“뭡니까, 그게.......”

괴물의 위험성을 깨달은 최연호는 말을 잃었다. 세종 일부가 사라지는 정도는 예상했다. 그런데 인구 수백만의 도시가, 이미 나라라고 칭해도 좋을 도시가 한 남자에 의해 사라진다?

최악의 농담이다. 그것도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농담.

“반신이 되고 이렇게 자신이 없기는 또 처음이야.......”

마현의 손가락이 책상을 툭툭툭 두드렸다. 그 손가락이 마현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뛰어난 리더를 가진 세종은 기적적으로 멸망을 회피했습니다!

다만,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직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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