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51화 (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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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꼬마가 내 제자가 된 건, 어떤 의미로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이밍이 너무 나빴다. 죽어도 괜찮냐고 내가 물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라팔과 사랑은 거의 항상 나와 붙어 있어 건드릴 틈이 없다. 그 상황에서 제자를 들인다 하니, 투기장 측이 내 약점을 잡으려면 노릴 사람은 하나다.

그냥 감시만 하고 끝나면 꼬마한테는 다행이다. 그냥 내가 몇 수 가르쳐 주기만 하면 몸 하나 건사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다. 만약 투기장에서 꼬마에게 손을 대 꼬마가 죽는다면, 그때도 에프터케어 정도는 확실하게 해줄 생각이다.

제자로 들이겠다고 했고, 내 피를 마시고도 살았으니 나도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지.

-제자를 데리고 있다. 오늘 새벽 쓰레기장으로 나와라.

그러니까 죽지만 말고 있어라. 딱히, 죽어도 상관없고. 4급 각성자급 마력을 가지긴 했어도, 경험도 없고 쓰는 법도 모르니 잡기는 쉬웠을 거다.

꼬마로 제자로 인정하고 이틀 만에 행동에 나서다니. 나한테 원한 있는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내가 어지간히 싫은 듯하다. 난 누가 싫어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적어도 최근에는.

저쪽이 이유 없이 날 싫어한다면, 내가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주면 된다.

내 제자를 건드리다니 간도 크다.

“방에 누구 들어왔었냐?”

“방 치우는 직원 하나.”

라팔이 대답한다. 라팔과 사랑은 내가 경기 뛸 때도 방에 있었다. 내 경기는 봐도 재미없으니까.

직원이 놓고 간 편지라. 더 볼 것도 없네. 다른 세력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이건 무조건 투기장 쪽에서 한 짓이다.

“노출 플레이란 것도 한 번 해볼까.”

“네!”

사랑이 힘차게 대답한다. 벌써 흥분되는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

새벽이다. 나는 라팔과 방을 나왔다. 손에는 급히 구한 목줄 하나를 쥐고 있다. 목줄을 아래로 이어져, 사랑의 목에 연결되어 있다. 그 사랑이는 알몸으로, 네발로 기고 있다.

“감시 카메라로 우릴 보던 놈들이 시끄럽더라.”

알몸으로 나오려면, 당연히 방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 우릴 감시하던 놈들도 이 꼴을 다 봤다. 반응이 재밌더라.

사랑의 몸이 굳는다. 음부를 만져보니 서서히 젖고 있다. 저 만져달라고 엉덩이를 흔들어 음부를 비비기까지 한다.

“적당히 하고 가자.”

“깨갱!”

목줄을 당긴다. 사랑의 몸이 딸려온다.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목적지를 나선다. 쓰레기장이란 오락지구의 쓰레기들이 모이는 쓰레기 처리장이다. 투기장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자리에 있다.

24시간 돌아가는 투기장이지만, 새벽에는 사람이 적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은 사랑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그때마다 이 변태는 흥분으로 몸을 떤다.

골목으로 들어오자 인적은 더욱 적어진다. 대신 몸 어딘가에 싸구려 문양을 달고 있는 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뒷세계의 주민들이다.

“어이, 형씨.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랑 같이.......”

“이 미친 새끼. 상대가 누군 줄 알고 건드리는 거야!”

날 어떻게 해보려던 놈이 친구에게 끌려나간다. 골목 구석으로 가 지들끼리 속닥속닥 얘기한다.

“야, 왜?”

“저거 그놈이야! 원샷원킬 미친놈.”

원샷원킬. 요즘 새로 생긴 내 별명이다. 별명의 연원이야 뻔하다. 전부 한 방에 보내버리니까. 그것 말고도 내가 첫날에 사랑이랑 사랑을 나눈 일이 퍼져서 강간마, 미친놈 등의 별명도 있다.

강간마라니 나는 억울하다. 서로 즐겼으니 그건 그냥 섹스였어.

“야, 니들 어디가?”

도망가려는 두 놈을 부른다. 시비를 걸었으면 확실히 해야지. 하려다가 마는 건 없다.

“일로와.”

두 건달이 쭈뼛쭈뼛 나에게 다가온다. 그러면서도 눈은 라팔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것이 이것들도 남자는 남잔가보다. 아니면 죽을 위기를 느끼고 성욕이 동하는 걸지도.

“내 취미가 좋은 건 나도 알고 있는데, 그래서 니들이랑 같이 뭐?”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님!”

“내가 언제부터 니들 형님이었냐.”

“아닙니다, 선생님.”

“난 니들 선생 아냐.”

두 놈은 서로 눈치를 본다.

“죄송합니다!”

겨우 생각한 말이 그거냐.

“뭐가 죄송한데?”

“그, 그게.......”

“아무것도 안 죄송한데 왜 죄송하다고 말해?”

“모르겠습니다!”

“모르는데 뭐가 죄송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냐?”

“아닙.......”

“아닙니다, 빼고.”

두 놈은 차렷 자세로 식은땀을 뻘뻘 흘린다. 춥지도 않은데 땀을 흘리긴 왜 흘려. 내가 때린 것도 아니고, 대화나 하자는데.

“쓰레기장까지 지름길 알지?”

“압니다!”

“안내해.”

“넵!”

두 건달을 앞장세운다. 가끔 등으로 살기를 쏘아주니 똥오줌을 지려서 큰일이다. 축축하고 묵직하고 냄새까지 나는 바짓자락을 붙잡고 걷는 것이 쟤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큰일이겠다.

“다 왔습니다!”

“꺼져.”

“네!”

똥지린 바지를 입고 두 놈이 달린다. 바지를 타고 내려온 똥이 아래로 줄줄 샌다. 에이, 더러워.

쓰레기장 입구부터 날 환영하는 인파가 있다. 조용히 숨어서 감시하는 시선이 수십 쌍이나 있다. 날 잡으려고 작정을 했다. 나보다는 내 옆에 있는 여자들이 목적일 수도 있다. 라팔은 당연하고, 사랑이도 잘 보면 꽤 미인이다. 최근 더 예뻐지는 것 같기도 하다.

찰싹.

“흐응!”

엉덩이를 때리자 사랑이 몸을 떨며 애액을 흘린다. 이런 반응도 좋고. 전생에 성노예기도 했다고 하니, 잡아다 조교하면 확실히 조교하는 맛은 있겠다.

쓰레기장 안쪽으로 갈수록 쌓인 쓰레기가 높아진다. 잡동사니가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다.

중앙으로 난 길을 따라가니 납치범들이 기다리고 있다. 고문이라도 당했는지 제자의 모습은 엉망이다.

“의자.”

“멍!”

사랑이 내 뒤로 기어와 등에 힘을 준다. 나는 그 위에 앉는다.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사랑의 음부를 향한다. 음핵을 괴롭히고, 안쪽을 쓰다듬는다. 변태가 멍멍거리며 좋아한다.

“인질까지 잡고, 뭘 원해?”

미쳤다는 시선으로 날 보고 있던 납치범들이 정신을 차린다.

“신입 리그를 그만둬 줘야겠다.”

“나보고 기권하라고?”

“그렇다.”

나는 낄낄 웃는다. 납치범이 제자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우습게 보이나? 이건 장난이 아니다.”

나는 더 크게 웃는다. 저놈들이 날 꺼린다. 인질을 잡고 협박해? 경기를 그만둬?

“개지랄하고 있네.”

내 더럽게 꼬인 인생에 대한 단서가 바로 그 상품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고작 저런 놈들 때문에 시합을 포기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한다. 쪼렙한테 휘둘리는 것 같잖아.

“인질이 어떻게 돼도 좋은 거냐?”

“야, 이 개새끼들아. 말은 똑바로 해라. 어떻게 돼도 좋아? 이미 어떻게 만들어놨네. 인질을 멀쩡히 데려다 놔도 모자랄 판에 얘를 병신으로 만들어놓고 하는 말이 그거냐? 나랑 협상하기 싫다는 거지?”

이 세계의 포션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저 상태로 구해봤자 사람구실할지 모르겠다. 인질을 저 꼴로 만든 거 보면 처음부터 제대로 돌려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꼬마가 반항하는 바람에 이쪽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다.”

남자가 표정을 구긴다. 제자가 된 지 이틀밖에 안 됐지만, 내 제자는 내 제자인가보다. 지랄 맞게 반항한 것 같다.

“제자야.”

“네, 스승님.”

“몇 명 해치웠냐?”

“한 명 죽이고, 한 명의 눈알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아킬레스건을 물어뜯었습니다. 그것밖에 못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 잘했어.”

첫 실전, 그것도 다굴 맞는 상황에서 한 것치고는 잘했다. 저 나이 때는 어른 남자가 인상 쓰고 다가오기만 해도 무서울 나이인 것도 고려해야지. 내가 들였지만, 내 제자 참 독하다.

“헛소리는 거기까지. 우리 제안에 응할 건지를 먼저 대답해라!”

남자가 나를 보챈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제자야.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냐?”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미 제자는 결심을 굳힌 표정이다.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정말로 크게 될 놈이다. 나 같은 놈의 제자로는 아까울 정도로.

“내 말을 무시하지 마라!”

무시당하는 것이 불만인지 납치범이 칼로 제자의 허벅지를 찌른다. 제자는 표정만 구기고 신음하나 뱉지 않는다. 누구 제잔지 참 독한 놈이야.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자. 존나 아픈데 빠른 거랑, 그저 그렇고 느린 거랑. 어떻게 수련하는 게 더 좋냐?”

“빠른 게 좋습니다.”

“내 제자라면 그래야지.”

“그 이상 대화하면 인질을 죽이겠다!”

“죽여.”

“...?”

“선택지를 둘 줄게. 꼬마를 내놓고 얌전히 집에 가던가, 아니면 꼬마를 죽이고 나랑 싸우던가.”

나는 다리를 꼬고 쓰레기장에 쌓인 쓰레기를 한 바퀴 눈으로 훑는다. 준비된 수십 명의 인간이 기다리고 있다. 납치범의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우릴 공격하겠지.

납치범이 제자의 다리를 몇 번 더 찌른다. 나에게 위기감을 주기 위해서로 보이지만, 나한테는 전혀 효과가 없다.

무덤덤하게 그 모습을 바라본다. 제자의 입은 무겁게 닫혀 있다. 입에 추라도 달았나.

제자의 다리가 붉게 물든다. 출혈이 이미 치사량에 가깝다.

납치범이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찔리는 사람이 태연하고, 찌르는 사람이 초조하다. 이상한 광경이다.

납치범의 손에서 절제가 사라진다. 과격하게 제자의 몸을 헤집는다. 제자의 눈이 흐릿하다. 만난 지 사흘도 안 된 나를 믿고 저러고 있다. 자기가 죽더라도 내가 고아원을 봐줄 거라는 약속을.

제자가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다.

“이런......”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납치범이 낭패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죽였지? 이번엔 니들 차례야.”

나는 하늘로 손을 든다. 두 번째 제자의 장례식이다. 화려하게 해줘야지.

밤하늘은 어둡다. 소설을 보면 이세계에선 달이 여러 개이거나 색이 다르거나 한데, 중간계의 달은 지구와 똑같다.

둥근 달이 하늘 저편으로 넘어가 지상에 비추는 빛이 적다.

“먼치킨 놀이 해본 적 있어?”

소설의 주인공처럼 화려하게 싸우고 이런 건 내 타입이 아니다. 싸움은 효율적으로. 낭비는 필요 없다. 그게 내 지론이다.

“자주하면 질리는데, 가끔 하면 그게 또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

그래도 가끔,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짓밟는 것도 좋다. 수준 차이를 알려주는 데는 이게 최고다.

“니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봐라.”

하늘이 밝아진다. 납치범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유성, 수십 개의 유성이 떨어지고 있다.

“저게 뭐야.......”

“피해! 도망가!”

“도망쳐! 도망쳐어!”

숨어 있던 놈들이 시끄럽다. 어딜 도망가.

쓰레기장을 감싸는 얼음의 벽이 출현한다. 두껍고 거대한 벽이 놈들의 퇴로를 막는다. 달빛이 얼음 안에서 난반사 되어 신비롭게 빛난다.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도망치던 놈들이 말을 잊는다.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 내가 사용한 마법이, 떨어지는 유성과 솟구친 빙벽이 어떤 마법인지.

“돼지 새끼 때문에 똥 됐어.......”

납치범이 중얼거린다. 돼지 새끼. 도청하며 가장 많이 들은 간부의 이름이다. 이 일을 사주한 게 그 돼지 새끼인가.

“증인이 필요하니까, 단 한 명만 살 거야. 누군가를 죽이면 살 확률이 더 높아지겠지?”

말이 떨어지고 딱 3초가 지났을 때. 납치범들이 서로 죽이기 시작했다.

내 제자를 죽인 놈도 최선을 다해 자기 동료를 죽이고 있다. 같은 직장에 다닐 뿐이니, 동료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가?

유성이 떨어진다.

거대한 폭발이 빙벽 안에 갇히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불타오른다.

“땡,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얼음의 벽 안에 불바다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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