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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그렇고 그런 플레이 전용 채찍을 사랑에게 휘두르며, 나는 귀에 들리는 대화에 집중한다.
감시 카메라란 건 결국 소리와 영상을 저쪽으로 보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쪽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고, 연결되어 있다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당한 수준의 마력 제어 능력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나한테 그 정도는 껌이다.
저쪽과 선을 역으로 연결해 저쪽에서 하는 말을 역으로 도청하고 있는데, 이게 또 개판이다.
탈세, 비리, 배팅 금액 조작. 승부 조작, 여기에 방금 들은 공금 횡령이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약점을 잡을 수 없을까 해서 시작한 건데, 약점을 너무 많이 잡아서 뭘 써먹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막상 써먹으려니 증거가 없어서 무리지만, 증거 몇 놈 족치면 나오겠지. 그럴 필요 없이 이 방에 있는 카메라만 증명해도 투기장은 끝이다.
“오늘부터 점수제던가?”
신입 리그도 꽤 진행되어 이제 한번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 형식에서 몇 번 대결한 다음 승점이 높은 사람이 올라가는 리그 식으로 바뀌었다.
그거라면 꽤 좋은 방법으로 투기장 놈들을 엿 먹여 줄 수 있다.
요즘 배팅으로 벌어들이는 벌이가 줄었거든. 스톡옵션을 세 개씩, 가끔 네 개도 넣는데 배당금이 늘면 늘었지 줄어들 이유가 없다. 어떻게든 배팅을 조작하고 있겠지.
공금을 횡령하든 조작하든 나와는 관련 없지만, 그걸로 나에게 피해가 나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지.
피가 맺히도록 사랑이의 등과 엉덩이를 때리고 있자니, 라팔이 내 팔을 툭툭 친다.
“밥 먹을 시간.”
“벌써 그렇게 됐나? 됐다. 그만해.”
내 말에 따라 개처럼 네발로 기는 시늉을 하던 사랑이 그대로 엎어진다. 음부가 벌렁이며 애액을 뿜는다. 땅은 이미 물로 흥건하다.
“기다려.”
“네에.......”
사랑의 음부를 발로 찬다. 발가락이 질 안으로 들어간다.
“힉!”
사랑이 짧게 신음하며 엉덩이가 작게 떨린다. 가슴은 작은 편이지만, 이년 허리과 엉덩이, 골반 라인은 끝내준다. 이것만보면 유연화보다 한 수 위다.
“개는 뭐라고 운다고?”
“멍, 멍멍!”
“그래 잘했어.”
사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행복하다는 듯 미소 짓는다. 이 변태의 과거가 어땠는지 정말 궁금하다. 무슨 일을 겪으면 사람이 여기까지 망가질까.
그것도 궁금증일 뿐, 그걸로 내가 사랑을 더 신경 써준다거나, 정을 준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간혹 떡정이라는 말로 몸을 섞었다는 것만으로 사람에게 정을 주는 일이 있는데, 반대로 묻고 싶다. 뭘 믿고 떡만친 상대에게 정을 줘?
알몸을 보이고 몸을 섞어도 나와 사랑이 사이의 거리감은 똑같다. 즉, 타인이다.
내가 나와 관계되어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중간계에서 라팔이 하나다.
“밥 먹자.”
“멍!”
사랑이 비틀비틀 일어나 옷을 입는다. 일단 사랑도 3급 각성자다. 과격한 플레이에도 버티는 것은 그런 이유다.
투기장을 나오자마자, 내 앞에 누군가가 끼어든다.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다.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세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갑자기 튀어나와 제자로 받아달란다.
“꼬마야. 내가 무슨 자원봉사자로 보이냐?”
내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 아갈리에 수만 명은 있었다. 그리고 내 제자라고 할만한 놈은 딱 하나뿐이다. 마지막 전쟁에서 쫄병 코스프레하던 그놈. 나머지는 전부 탈락했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할게요.”
“그 전부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냐?”
꼬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머리를 잡고 억지로 머리를 들어, 꼬마의 눈을 본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그 말을 믿는 편이다.
죽을 각오는 된 것 같네.
“왜 내 제자가 되려고 하는데?”
꼬마의 얼굴이 환해진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다.
“이유를 물었지. 제자로 만들어준다고는 안 했다.”
이 순진한 반응을 보니 대한 길드의 꼬맹이처럼 겉만 아이고 속은 40대거나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꼬마의 손을 잡고 바닥에 놓는다. 나는 단검 하나를 꺼내 가지런한 손가락 위에 둔다.
날은 닿는 것만으로 살을 파고든다.
“이걸 자르면 제자로 받아주마. 손가락이 없다고 약하거나 하진 않을 거야. 나는 마법사거든.”
마법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건 머리와 마력밖에 없다. 보존액에 둥둥 떠다니는 뇌도 마력만 있다면 마법을 쓸 수 있다.
“자, 어떡할래?”
결심을 굳힌 얼굴로 꼬마가 단검 손잡이를 잡는다. 단검을 건네주자, 꼬마가 스스로 자기 손가락을 자른다. 힘들일 것도 없이. 단검을 아래로 내리자 저항 없이 잘린다.
“으아아아악!”
꼬마가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잡고 비명을 지른다. 그 표정에는 놀람도 있다. 설마 이렇게 쉽게 잘릴 줄은 몰랐겠지. 그래도 명검이라고 불리는 검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소리 지르며 제자로 안 받아준다?”
즉시 꼬마가 침묵한다. 네 개의 손가락이 없는 오른손을 끌어 잡고 있다.
대단한 꼬마다. 마음에 든다.
고통 경감 마법을 걸어주고 아공간에서 포션을 꺼낸다. 보통 포션이 아니다. 내 피다.
한 방울로도 엘릭서급 효능을 자랑하는 내 피가 작은 약병에 담겨 있다.
“마셔.”
한 방울은 만능의 묘약이지만, 한 병은 치사량의 독이다. 넘치는 마력을 받아들이면 대부분 생물은 죽는다.
이걸 마시고 살아남지 못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꼬마는 갑자기 사라진 고통에 의아해하면서도, 내가 내민 포션을 마신다. 피에 섞인 마력에 고통 경감 마법이 씻겨 내려가고, 고통이 꼬마를 덮친다.
“으아아아!”
비명도 처음뿐. 곧이어 비명도 사라지고 꼬마는 몸을 웅크린다.
“살아남으면 내일 다시 여기로 와라.”
대답이 없다.
“대답하지 않으면 제자로는 안 받아줄 건데?”
“오, 올게요.”
힘겹게 꼬마가 대답한다.
꼬마를 버려두고 택시를 잡는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사랑이 묻는다.
“저, 주인님....... 그 꼬마는?”
자꾸 뒤쪽을 곁눈질하는 게 꼬마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답이 없는 변태인 것만 빼면, 우리 셋 중에는 얘가 그나마 정상이다. 쾌락을 대가로 내걸면 사람도 죽일 것 같긴 하지만.
“살아남으면 오겠지. 그리고 난 다른 방법은 몰라.”
제자로 받을 거면 손가락을 자른 시점에서 받았을 거다. 결심을 확인하는 건 그 정도면 충분하다.
저것도 다 필요한 작업이다. 한 방울에 엘릭서 하나. 그러면 한 병은 엘릭서 몇 병일까?
그 마력 덩어리를 다 먹고 버텨내면 그 몸에는 얼마의 마력이 쌓일까?
그런 마력을 몸에 품으면 그 힘은 얼마나 강할까?
그걸 먹고 죽지 않으면 내 수업의 반은 끝난다. 나머진 마력을 쓰는 법을 알려주면 된다.
대한 길드에 도착해 밥을 먹고, 다시 투기장으로 돌아간다. 투기장 입구에는 아직도 꼬마가 쓰러져 있다. 죽을 것 같지만 잘 버티고 있다.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진짜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
다음날, 아침을 먹기 위해 투기장에서 나오니 꼬마가 날 기다리고 있다. 어제 그 꼬마와는 풍기는 기세 자체가 다르다. 잘 소화한 것 같다.
날 보자 꼬마가 넙죽 절을 한다.
“일어나.”
재깍 꼬마가 일어선다. 자신감 넘치고 딱딱한, 좋은 얼굴이다. 동시에 꼬마가 하기엔 이른 얼굴이고.
“4급 각성자가 된 기분은 어떠냐?”
“예?”
꼬마가 눈을 크게 뜬다.
“4급 각성자가 된 기분이 어떠냐고.”
내가 준 엘릭서를 모두 소화했다면, 4급 각성자 이상이 됐을 테지만, 꼬마의 몸이 너무 약했다. 손가락의 재생을 포함한 육체 개조까지 끝마친 꼬마의 상태는 4급 각성자와 비슷하다.
내가 본 것만을 기준으로 했으니 정확하지는 않다.
꼬마의 뒷덜미를 끌고 투기장 안으로 들어간다.
“어, 어어?”
“얌전히 있어라.”
뭐가 이놈을 이렇게 만드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들으려고.
투기장의 내 방에 꼬마를 앉힌다. 꼬마는 신기한 듯 방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너는 누구냐?”
“신전 고아원의 고아요.”
“존댓말, 그리고 스승님이라고 불러라.”
“네, 스승님!”
“왜 내 제자가 되고 싶은데? 이야기해봐.”
“네.”
세종에는 사제가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데, 신전에는 고아들을 키우는 고아원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사제들이 신성력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신성력을 쓸 수 없는 사제는 힘의 대부분을 잃은 것과 같다. 특히 사제의 가장 큰 역할, 상처의 치료가 불가능하다. 사실상 신전은 무너졌고, 고아원도 방치되었다.
“사랑아.”
“네!”
얘는 변태라도 불러도 좋아하지만, 내가 사랑이라고 불러주면 더 좋아하더라. 설마 나한테 마음이라도 있는 건가? 미쳤군.
“신전이 어떤지, 읊어봐.”
한 달간 이 변태에게서 뜻밖의 용도를 찾았는데, 바로 정보 검색기다. 아는 게 꽤 많아서 물으면 대체로 대답한다.
“갑작스러운 신성력 소실로 폐업했어요. 신성력이 사라져도 마력이 있으니 간신히 유지는 되고 있지만, 그것도 점점 세력이 줄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래도 여긴 신의 메아리보다는 상황이 좋네. 신의 메아리는 여러 악재가 겹쳐 한 번에 사라졌는데.
“고아원이 망했다고 하자. 그거랑 내 제자가 되는 게 무슨 상관인데?”
“제자가 돼서, 강해진 다음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고 싶습니다.”
“니가 그럴 이유가 어디 있는데?”
강함은 돈이 된다. 투기장만 봐도 명확하다. 그런데 그거랑 아이들을 돌보는 건 관계가 없다.
꼬마가 한참이나 생각하다 입을 연다. 이해한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도 말로 꺼내려니 힘들 때가 있다.
“그냥. 그냥 하고 싶습니다.”
“너, 죽기 전에는 몇 살이었냐?”
“열셋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덟 살입니다. 여섯 살에 소환됐습니다.”
“더러운 것도 많이 봤겠다. 그치?”
꼬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도 남을 돕고 싶다?”
다시 끄덕.
“만약 네가 죽어서, 그 고아원 놈들이 클 때까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하겠습니다.”
“죽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날까지 날 스승이라고 불러라.”
“네, 스승님.”
방에 설치된 카메라가 이 대화를 모두 듣고 있을 거다. 저쪽이 나한테 악의가 있다면, 다음에 나설 행동은 뻔하다.
***
지문열은 투기장의 운영을 맡고 있는 간부다. 뒤룩뒤룩 살찐 모습에 사람들은 그를 돼지라는 멸칭으로 부른다. 그런 그가 자신의 방에서 물건을 던지고 있었다.
퍽! 유리 재떨이가 남자의 이마에 맞으며 피가 흐른다.
“배팅이 틀려? 하나도 안 맞아?! 그게 무슨 개소리야!”
“진짜입니다. 이번에 그는 싸우지도 않고 기권했습니다.”
“거기 건 돈이 얼마지?”
“3천만 원입니다.”
“으아아아! 이러다 감사 떨어지면 누구 목이 떨어지는지 알아?! 아냐고!”
니 목이 떨어지겠지. 남자는 치밀어 오르는 말을 꾹 삼켰다. 돼지가 공금을 까먹은 거니 돼지만 죽으면 끝날 일이다. 남자 자신은 기껏해야 한 직위 강등되는 것이 전부다. 전부 돼지한테 뒤집어 씌울 테니까.
투기장의 도박 구조는 특이하고 복잡하다. 대체로 투기장 관계자들이 조작이 쉽도록 바꾼 것이다. 이게 부작용이 하나 있는데. 외부에서 자금이 투입되면 바로 티가 난다.
투기장 내부의 돈을 굴려서 재투자하거나 승부 조작으로 돈을 따가는 건 걸리지 않지만, 실수로 까먹은 돈을 사비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이다.
돼지는 이번 신입 리그에도 승부 조작과 불법 배팅으로 상당한 돈을 벌 예정이었다. 성격은 단순해도 투기장의 간부가 될 정도로 능력은 있는 인간이다. 실패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무산되었다. 반 이상이 한 남자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의 남자는 말도 안 되는 스톡옵션으로 돈을 쓸어가고 있었다.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생각한 꼼수가 그 남자와 똑같은 옵션으로 돈을 거는 것. 투기장 관리 측이니 그 남자가 무슨 옵션을 걸었는지 알기는 쉽다.
처음부터 조작을 위해 만들어진 옵션이니 걸기만 하면 착실히 돈이 벌린다. 정확히는 벌렸다. 오늘 경기 전까지는.
오늘 남자는 경기장에 올라가자마자 기권했다. 자신이 건 조건과는 다르게. 거기에 돈을 건 이 돼지는 3천만 원을 허공에 꼴아 박은 셈이다.
모니터실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던 돼지가 기분 나쁘게 웃는다.
“제자를 들였단 말이지? 영약까지 먹여가면서 키우고. 그리고 그놈은 망한 고아원에 다니고 있다?”
하아, 남자는 한숨을 삼켰다. 뒷말이 어떨지 뻔히 예상되었다.
“무슨 수를 써서도 잡아.”
예상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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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적은 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