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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사랑이가 기절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 다시 들어온다.
“방천수 선수, 그리고 휘 선수.”
방관자와 내가 한 번에 불린다. 대기실을 나가 직원을 따라간다. 직원이 나에게 묻는다.
“휘 선수. 저기, 그 아이는?”
“내 좆집. 물건은 휴대 안 되냐?”
직원의 웃는 얼굴이 꿈틀거린다. 세 번 봤으면 적응할 때도 안 됐나? 친화력 부족한 사람을 직원으로 뽑아 놓았다.
“일단 사람이니가, 경기장 반입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자제? 되긴 한단 거지?”
직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좀 더 놀리면 울겠다.
“농담이야, 농담. 그 정도는 알아들어.”
눈치라곤 코빼기도 없는 어느 길드의 조사관과는 다르다.
중간에 직원 하나가 더 와서 방관자를 데려가고, 나는 다른 통로로 들어간다.
“쟤가 내 상대는 아니지?”
“아닙니다.”
“그럼 왜 같이 나왔어?”
투기장의 경기장은 하나다. 24시간 내내 경기가 이어지는 것은 투기장이 흥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기장이 하나밖에 없다는 이유도 있다.
“다음 경기는 금방 끝날 예정이라서 그렇습니다.”
“금방 끝나?”
막 입구에 도착한다. 바깥에는 방관자와 누군가가 대치하고 있다.
“3급 각성자. 여명의 검객 방천수. 그게 저 사람의 이름입니다.”
몬스터를 10등급으로 나누듯, 각성자도 5등급으로 나눈다고 하는데, 나는 뭐 봐도 모르겠다. 진짜 쎈놈들 빼곤 내 눈에는 거기서 거기다. 저 정도가 3급이라...... 기억해두자.
참고로 3급 각성자는 6급 몬스터를 혼자 잡을 수 있는 실력이라고 한다.
“3급이 대단한 거냐?”
라팔에게 물었는데, 직원이 대답한다.
“대단하고말고요. 사냥꾼 백 명 중 한 명이 겨우 3급 각성자가 되는 걸요.”
대단한지 잘 모르겠다. 백 중 하나면 1퍼센트나 되잖아. 만 명 있으면 백 명 있고, 백만 명 있으면 만 명이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대단하게 안 느껴진다.
“회귀 후의 숫자가 그거, 회귀 전에는 정말 드물었어.”
라팔이 직원의 말을 보충한다. 그 정도라면 이해한다. 회귀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사기적인 현상이다. 회귀하고도 백에 하나라면 되기 정말 힘든 것 같다.
“나는 회귀 전에도 5급.”
라팔이 가슴을 펴며 말한다. 그래, 대단하십니다. 대견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라팔이 눈을 가늘게 뜬다. 직원은 라팔을 흐뭇한 눈으로 보고 있다. 칭찬받기 위한 농담 정도로 생각했겠지.
“그럼, 3급 각성자라는 것의 실력이나 볼까.”
막 경기가 시작하려는 참이다.
공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된다. 방관자의 상대는 평범한 검사다. 무기는 한 손검과 한 손 방패.
방관자가 움직인다. 빠르게 거리를 좁혀 손날로 상대의 손목을 친다. 무기를 잃은 상대는 바로 항복한다.
-경기 끝! 승자는, 모두 예상하셨듯이 여명의 검객 방천수!
시작하고 10초도 되지 않아 끝났다. 관객들도 환호하긴 하는데, 이미 예상했다는 느낌이다.
“보십쇼. 끝났지 않습니까.”
직원이 말한다. 이래서 같이 불렀구나. 심판이 다음 선수를 소개한다. 내 상대는 어떤 길드 소속의 루키란다. 내 소개는 그냥 이름으로 끝이다. 이름 빼고 다른 정보가 없기도 하다.
-양 선수 입장!
“나가시면 됩니다.”
“기다리고 있어라.”
“응.”
라팔과 보호자 같은 대화를 나누고 경기장으로 나선다. 오래 끌 생각은 없다. 신입 리그 우승까지는 최소 30경기가 필요하다는데, 그걸 언제 다 진지하게 상대해주고 있어.
내 상대는 젊은 게 아니라. 어리다. 십 대 후반 정도? 아직 성장도 다 안 끝난 소년이다. 그래도 싸울 자세는 잡혀 있다. 살기를 보면 사람도 많이 죽여 본 것 같다.
외모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안 드러나는데...... 외모만 보고 판단이 힘드니까 회귀자들은 참 귀찮다. 진명까지 더하면 겉모습만 보고 실력을 파악하는 건 많이 어렵겠지.
랑 길드의 마스터라는 놈도 별거 없는 놈도 마력 무효화라는 사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기, 시작!”
시작 선언과 함께 상대가 선공을 한다. 나는 나를 공격한 사람을 살려둘 정도로 착한 사람이 아니지만, 이건 경기고. 모두가 합의한 게임이다.
게임에서 분위기 깨는 건 좋지 않다.
찔러오는 공격을 피하고 이마에 딱밤 한방. 그걸로 상대는 튕겨 나가 기절하나.
“승자는 휘 선수! 루키를 꺾어버린 새로운 루키가 등장했습니다!”
이런 일을 자주 있는지 심판은 당황하지 않고 승자를 선언한다. 나는 유유히 입구로 돌아간다.
“가자.”
“응.”
말을 잃은 투기장 직원을 지나쳐 라팔과 투기장을 나온다.
어디로 가야 하지? 대한 길드로 가자. 아무래도 그쪽 침대와 식사를 이길 시설은 없을 것 같다. 유상민에게 아직 부탁도 못 했다.
“대한 길드에서 식객 노릇이나 할까?”
“저희 길드에 식객은 안 받는데요.”
옆에서 유상민이 끼어든다. 얘는 또 언제 왔어?
“어제 그 꼬맹이 권한으로도 안 되냐?”
“돼요.”
“그럼 꼬맹이한테 부탁하지.”
“팀장님 바쁘실 건데요?”
“안 되면 말고.”
유상민의 걱정과 달리, 요청하자 바로 꼬맹이와 만날 수 있었다. 꼬맹이는 총괄 조사 팀장 사무실. 이라고 떡하니 적힌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꼬맹이가 그러고 있으니까 위화감이 장난 아니다?”
“저도 처음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익숙해지니 괜찮아 지더군요.”
꼬맹이가 의연하게 대답한다. 그 대처까지 모두 자연스럽다. 언제 한 번 날 잡고 꼬맹이랑 노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그런데, 너 나이는 몇 살이냐? 회귀까지 합쳐서.”
“올해 마흔 될 겁니다.”
“신체 나이는?”
“제가 일곱 살 때 소환되었으니. 올해 열셋 되는군요.”
일곱 살 때 그 튜토리얼에 던져져서 살아남고, 그 후에 중간계에서 30년가량을 더 산 후에 전생해 이번 생에 마흔 살.
나는 내 인생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줄 알았는데, 꼬맹이도 만만찮다. 일곱 살. 일곱 살짜리가 살인과 강간이 일상인 세계에서 장성할 때까지 버티다니.
이때까지 봐온 어중이떠중이와는 다른 진짜 거물이다.
“대단하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무슨 볼일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겉치레를 싫어해서.”
꼬맹이가 어깨를 으쓱인다. 겉치레를 싫어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바로 본론을 말한다.
“여기 식충이로 당분간 신세 지고 싶은데. 괜찮냐?”
“좋습니다. 손님방을 하나 내드리죠. 덤으로 전담 셰프도 붙여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 꼬맹이!”
꼬맹이를 껴안고 볼을 비빈다. 셰프를 붙여 줘? 만세, 만세, 만만세다. 보나 마나 무언가 속셈이 있어서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어울려주는 건 괜찮다. 반대로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다.
꼬맹이가 싫은 얼굴로 날 밀쳐낸다. 찡그린 표정은 또래로 보인다.
“저놈에게 부탁할 것도 제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힘닿는 데까지 찾아드리죠.”
“팀장님, 일감 뺏어가기 있어요? 없어요? 이건 제 건데요?”
유상민이 끼어든다.
“너도 알아서 조사해. 나는 나대로 알아볼 거야.”
“그래도.......”
“싫음 하지 말던가.”
“에라이.”
유상민이 작게 볼을 부풀리고 방바닥을 툭툭 차기 시작한다. 겨우 그런 걸로 삐치냐?
대한 길드의 조사 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조사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내 목적을 말하면 그걸 역으로 이용당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뭐? 그때를 위한 무력이다.
수작을 걸면 힘으로 모조리 박살 내면 된다. 그게 안 되면 쿨하게 죽는 거고. 내가 약한 놈들을 당연하게 죽이는 것처럼, 나도 당연하게 죽을 각오 정도는 되어 있다.
몸부림치다 안 되면 어째, 죽어야지.
“신을 만날 방법에 대해 알아봐 줬으면 하는데, 그리고 강신술을 쓸 줄 아는 오크에 대해서도.”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신을 만날 방법이지만, 강신술을 쓰는 오크도 만나보고 싶다. 그걸 보고 무언가 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신을요? 별난 부탁이군요.”
꼬맹이가 묻는다. 이건 꼬맹이에게도 의외였나 보다.
“그놈들한테 볼일이 좀 있어서.”
몽땅 찾아서 마지막 하나까지 머리를 깨부수고 심장을 뽑아줄 거다.
“일단 알겠습니다. 찾아보도록 하죠.”
“부탁해.”
몸을 돌려 나가려는데, 꼬맹이가 라팔을 부른다.
“아, 라팔님은 조금 남아주실 수 있습니까?”
“왜?”
내가 뒤돌아 대답한다.
“잠깐 대화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죠.”
“남을래.”
라팔이 말한다.
“끝나고 방으로 와라.”
“응.”
라팔을 남겨두고 방을 나온다. 흠, 불안한데. 내가 인간불신이라 그런지 나를 빼고 무슨 이야기를 하면 자꾸 켕긴다. 의심병도 이 정도면 병이군. 이게 다 아갈리의 귀족과 정치인들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내 뒤통수 칠 일이 하나씩 준비되어 있어 봐라. 아침에 일어나면 날 미치게 하는 소식이 하나씩 찾아왔다. 그때는 발 뻗고 잠도 편히 못 잤지. 힘은 있지만, 멘탈은 단련이 덜 되었던 시절이라 더 그랬다. 아직은 내가 나를 인간이라고 분류하던 시절이다.
꼬맹이는 세종을 관리하는, 대한민국 최강 길드의 고위 간부고, 라팔은 인류 최정예 길드 소속이다. 둘이 작당하면, 나아가 대한 길드와 알바트로스가 합작하면 나도 쉽게는 못 빠져나갈 거다.
“조금 엿들을까.”
위험은 줄일수록 좋다.
***
하나가 나가고 셋만 남은 방에서 최연호가 라팔에게 말을 걸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니. 요즘은 잘 지내.”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소년이 소녀를 극도로 공손히 대하고, 소녀는 대충대충 대답한다. 또래로 보이는 소년, 소녀가 나누는 것치고는 기묘한 대화였다.
“알바트로스의 다른 분들은 요즘 어떻습니까?”
“몰라. 자기 할 일 하고 있겠지.”
라팔은 고개를 저었다. 알바트로스의 모두는 자기 일로 바쁘다. 애초에 길드원들이 함께 움직이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만나서 수다나 떠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라팔은 그런 일에 끼지 않는 편이었다.
“저분, 휘라고 했던가요. 그분도 알바트로스십니까?”
“아니. 내 주인.”
“에?”
최연호가 입을 헤 벌렸다. 아무리 그라도 이건 예상할 수 없었다. 라팔, 인류라는 종족의 정상에 서 있는 자. 모든 종족을 합쳐도 견줄 존재가 없는 세계 최강의 인형술사. 자기 자신이 최강의 인형이 된 자.
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주인으로 둔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수라장을 거쳐 온 최연호도 생각할 수 없었다.
“새로 취직했어. 좆집으로.”
“헤에?”
귀로 들은 말을 머리가 해석하지 못했다. 최연호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좆집, 포주들이나 건달들이 곧잘 사용하는 말이다. 뜻은...... 그렇게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저기, 농담 아니십니까?”
“농담 아냐.”
최연호는 엄지와 검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있지도 않은 두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형이 좆집이라 하니 한순간 어울린다고 생각한 자신의 뇌를 파내고 싶어졌다.
세계 최강의 인형술사가, 세계 최고의 인형이 좆집?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겠다.
최연호는 구석에 서 있는 유상민을 봤다. 그다지 놀라지도 않는 표정이다. 저놈은 원래 저러니 놔두기로 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인간사(人間事)에 대해서는 벽창호인 놈이다.
좆집? 주인? 아무래도 좋다. 최연호는 정신을 되돌렸다. 하려던 일만 끝내자.
“라팔님, 그럼 당분간 저분과 함께 여행하실 생각이십니까?”
“응.”
“그렇다면 또래에 맞는 대화를 배워보시지 않겠습니까?”
전부터 생각하던 일이었다. 라팔의 외견은 경국지색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그런 것치곤, 항상 라팔의 언동이 불만이었다. 좀 더 제대로 된 언동을 구사하면 훨씬 좋을 건데, 그런 불만.
“배우고 싶어. 그런데, 베풀 이유가 있어?”
타산적으로 생각하면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최연호 개인의 호기심이며, 직업정신이다. 라팔 같은 인재를 그냥 둘 수 없다는.
“없습니다. 그냥 그 쪽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잠시 생각하던 라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는 중요해. 응, 할래.”
“좋습니다. 이제 너도 나가라.”
“바로 내쫓을 거면 왜 냅뒀어요.”
유상민이 투덜거리며 방을 나갔다. 입으로는 투덜거리고 있어도, 유상민은 최연호가 이 대화를 들려주려고 자신을 놔뒀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알바트로스의 라팔. 대단하긴 했지만, 유상민에게는 크게 의미 없는 단어였다. 대충 거물이니 알아두라는 의미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둘만 남은 방에서, 최연호가 라팔에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공짜로 물건을 얻고 싶을 때는 이렇게 말하시면 됩니다. ‘오빠, 나 이거 사주면 안 돼?’. 따라 해 보십시오.”
“오빠, 나 이거 사주면 안 돼?”
이상한 교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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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은 없지만 사심은 가득한 꼬맹이. 직업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