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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43화 (4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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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현대적인 내부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해도, 역시 투기장은 투기장이다. 싸움이 벌어지는 장소는 투기장 그 자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흙이 깔려 있는 원형의 경기장, 몇 개인가 있는 출구. 마찬가지로 관중석 또한 돌을 깎아 투박하게 만들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갈색 흙빛을 띠어 보는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떠올리게도 한다.

관중석을 저렇게 만들 거면 왜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건데. 관중석이 돌로 만들어져 있어서 더 분위기가 사는 것도 부정은 못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황야에서 이뤄지는 두 검투사의 결투. 오, 있어 보인다.

관중석에는 사람이 차 있다. 막 시작하려는 참인 것 같다.

“여, 형씨. 오늘은 누가 나와?”

대충 옆에 있는 남자한테 말을 건다. 남자 주제에 머리에 토끼 귀를 달고 있다. 토끼 귀 주제에 얼굴은 또 험상궂다. 여러 가지로 대단한 형씨군.

“뭐냐? 그런 건 입구에 다 나와 있을 건데.”

“아, 그래? 안 보고 왔어.”

우리가 들어온 통로에는 없었나? 기억을 되살려도 본 기억이 없다.

“새 시즌이 시작된다. 신입들이 데뷔하고 신입을 위한 상품도 준비되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세종 투기장의 새 시즌 개막식을 시작합니다!

경기장 입구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난다. 손에 든 저건 마이크인가. 마이크에서 증폭된 소리가 경기가 전체에 울린다.

“이제 시작한다.”

“시작하는 건 나도 알겠네.”

-오늘도 많은 경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상품부터 공개하겠습니다. 이번 시즌 우승자가 가져갈 상품은.......

땅이 열리고 바닥에서 받침대가 올라온다. 받침대 위에는 작은 단봉이 올려져 있다.

-마법 대국 영국의 대마법사. 뤠인 경의 역작. 시간을 감는 태엽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있다. 저 물건. 내가 저걸 잊을 리가 없다. 잊을 수가 없다.

“왜?”

라팔이 묻는다.

“아니.”

진정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래도 의문이 사라진 건 아니다.

씨발. 씨발. 씨발! 저게 왜 저기 있어! 아니, 내가 봤던 거랑은 다르긴 한데. 형태도 처음 보는 형태이긴 한데, 저건 틀림없이 그거다. 저 특유의 마력은 확실하다.

시공간 마법을 보조해주는 물건. 내가 차원 이동 할 때 차원을 여는 역할을 한 물건.

아갈리의 성물이 저기 있다.

왜? 왜? 왜! 왜 아갈리의 성물이 저기 있냐고! 씨발! 욕이 안 나오게 생겼냐? 전혀 다른 차원의 성물이 내 눈앞에 있는데, 욕 안 나오겠냐고!

이 건 아갈리와 지구가, 또는 아갈리와 중간계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가리킨다.

정신을 차리니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떨어져 있다. 피하지 못하고 기절한 사람도 몇 있다. 나도 모르게 살기를 흘린 모양이다. 후, 진정하자. 진정. 릴렉스.

“하, 씨발.”

진정이 되겠냐. 겨우 살기를 내면으로 억눌렀다. 그 이상은 못하겠다.

차원 마법의 내용이 어땠더라? 책을 몇 개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찾아보자. 더 급한 일이 있다.

“저거 나갈 수 있냐?”

토끼귀에게 묻는다. 이놈은 내 살기에도 태연하게 버티며 내 옆에 있다. 꽤 하는 놈이다.

“신입 리그의 신청은 리그 진행 중 언제든지 받는다. 단, 나중에 참가할수록 패널티가 달리고 일정이 빡빡해진다. 그래서 나중에 참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늦게 신청한 놈은 쉬지도 말고 죽어라 싸우란 말이다. 상당히 공평한 시스템이다. 처음부터 출전해서 싸우며 다쳤는데, 중간에 들어온 멀쩡한 놈이 상품을 가져가면 불공평하니까.

좋아, 일단 저기 나가자. 나가서 성물을 얻자. 그리고 하나 더.

라팔과 유상민에게 말한다.

“뤠인 경이 누군지 아냐?”

“영국의 대마법사.”

“아니, 그건 말했잖아. 다른 거.”

우리 라팔이는 오늘도 백치미 넘친다.

“시공간을 다루는 마법사로 유명한데요. 텔레포트 마법도 그 사람이 만들었어요. 기존이 있던 걸 개량해 쓰기 쉽게 만들었죠.”

성물, 시공간 마법. 고민하지 않고도 답이 나오니 좋네. 뤠인이라는 영감탱이는 아갈리와 관련이 있다.

“그 영감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는데?”

뤠인을 영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대마법사니까. 대마법사는 노인이다. 그런 법칙이잖아?

“몰라요. 알아봐 줘요?”

“그래 주면 고맙고. 아, 이건 그 찾는 거 도와준다는 일에 안 들어간다.”

뤠인이라는 영감쟁이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건 신이다. 아갈리에서는 그래도 어째어째 지구로 돌아갔다. 즉, 지구가 멀쩡했다면 나는 지구에서 이 힘으로 잘 먹고 잘살았을 거란 말이다.

그 지구는 현재 진행형으로 중간계와 합병되고 있다. 내 밝은 미래는 여기 없다.

제일 나쁜 놈은 인류를 망하게 한 여기 신들이다.

“그러죠, 뭐.”

뤠인이라는 영감은 조금 기다리라고 하고, 일단 투기장 등록부터 해야겠다. 저 막대기는 내꺼다.

끝나지 않은 상품 소개가 이어진다.

-아직도 더 있습니다. 이번 시즌은 정말 풍성하게, 요 몇 년을 따져도 이 이상 없을 정도로 풍성한 상품을 자랑합니다. 투기장하면 도박, 도박하면 투기장! 이번 시즌 가장 많은 승자를 맞춘 사람에게는 짜잔. 이 상품을 드립니다!

땅에서 감옥이 올라온다. 그 안에는 여자가 있다. 목에 팔에 쇠 목걸이와 팔찌가 달린 걸 보면 저 여자는 그거다.

“여기 노예도 취급하냐?”

“아뇨. 비슷한 건 있는데요.”

“노예랑 노예랑 비슷한 건 대체 무슨 차이인데?”

“대한민국에 노예가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얼마 전에 저희 투기장을 공격했다가 잡힌 죄인입니다! 아직 파릇한 수인족 처녀! 판결은 10년!

“죄인이라고 불러요.”

관객들이 열광한다. 우승 상품보다 이게 더 반응이 뜨겁다.

“사법부의 권한을 대한 길드에 위탁받은 발락 길드, 입법부의 권한을 대한 길드에 위탁받은 화랑 길드, 행정부의 권한을 대한 길드에 위탁받은 일곱 개의 보석 길드. 위탁하고 있긴 해도 전부 대한 길드의 권한이고, 세 길드도 서로 밀접한 관계에요.”

“끼리끼리 해 먹는다?”

“21세기를 사는 지성인이 노예를 거느리면 보기 안 좋잖아요? 대신 없는 죄도 만들어서 노역하는 죄인으로 만들 수는 있어요.”

“너 대한 길드 소속 아니었냐?”

자기 소속 길드를 신랄하게도 깐다.

“자기 길드라도 깔 건 까야죠. 알만한 사람은 전부 알고 있어요. 길마도 알 걸요?”

“알고도 놔둬?”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죠.”

“남을 사람.”

뒤에 대답한 것은 라팔이다. 라팔의 위치라면 대한 길드의 마스터와 만나봤다 해도 이상하지 않으려나.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수완 대단해.”

“죄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게 깨끗한 거냐?”

“너무 깨끗하면 잘 더러워져. 적당히 더러우면 자정해.”

“대충 무슨 뜻인지 알겠다. 하얀 도화지는 싫다?”

라팔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얀 도화지에 검은색 점 하나는 너무 눈에 띈다. 더러워 보이지. 반면 도화지가 조금 더럽다면, 점 하나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도화지 전체가 거메질 수도 있지만, 그건 대단한 수완으로 어떻게든 하겠지.

대한 길드의 마스터라.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나와 비슷한 부류의 냄새가 난다.

“대단한 대화를 하고 있군. 대한 길드의 귀빈이라도 되나?”

옆에 있는 토끼귀가 묻는다. 그러고 보니 이런 놈도 있었지.

“우리 귀빈 맞냐?”

“네.”

“귀빈 맞단다. 그런데 넌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그쪽이 먼저 반말했으니까.”

그래, 내가 먼저 반말했지. 내가 잘못한 거 맞네. 난 내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남자다. 그러니까 쿨하게 넘어가자.

“신세 졌어. 토끼귀.”

이 이상 상품을 들어도 더 나올 건 없어 보인다. 가서 참가 신청이나 하자.

***

“첫 등록이시군요? 오늘 저녁부터 바로 경기가 있으니 대기해 주세요. 예선에서는 한번 지면 그대로 탈락하니 조심해 주시고요. 세종 내에 계시면 경기 3시간 전에 선수 등록증으로 신호가 갑니다. 시간에 맞춰 와주시면 돼요.”

“이제 끝?”

“네, 끝났습니다.”

등록은 쉬웠다. 콜로세움 내부에 있는 접수처에 가서 등록하고 이름 쓰고 선수라는 걸 증명하는 신분증 받고 끝. 모든 게 5분도 되지 않아 이루어졌다.

저녁부터라. 다른 일을 하나 더 처리할 시간은 있을 것 같다. 슬슬 본격적으로 신을 찾아야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그거 지금 소개시켜달라는 소리 맞죠?”

“문맥으로 좀 이해해라.”

“제가 그런 건 좀 약해서.”

그래, 그래 보이더라. 그러니 실망이 파티에게 그런 미친 소리를 했지.

“그래서, 소개시켜 달란 거 맞죠?”

아 놔.

중간에 속 터져 죽을 뻔했지만, 유상민에게 대답을 얻었다. 오늘 저녁에 그 소개시켜주기로 한 사람과 만나기로 했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좀 있다. 해가 이제 중천이다. 생각보다 시간 엄청 안 간다. 콜로세움 안에서 배팅도 할 수 있던가?

배팅장을 찾는다. 수백 개는 되는 선수 이름이 배팅장 한쪽 벽에 붙어 있다. 내 이름도 막 추가되는 참이다.

나는 바로 배팅을 하러 간다.

“어떤 선수에게, 얼마나 하시겠습니까?”

“휘라는 선수한테 이만큼.”

“저기, 손님?”

여직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날 본다. 배팅을 준비하던 도박꾼들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금 처음 봐? 겨우 이 정도로 뭘 그렇게 놀라. 내가 꺼낸 금괴는 고작 10개밖에 안 된다. 내 아공간에는 이건 수천 배가 잠들어 있다. 수천 배는 좀 오반가? 수백 배로 하자.

“아, 금은 안 받아?”

“아니, 받아요. 받는데.......”

“그럼 뭐가 문제야?”

“그... 양이 조금.......”

“적어?”

“아뇨, 아뇨. 아뇨!”

여직원이 거세게 머리를 흔든다.

“너무 많아요! 신입한테 거는 것치고는 너무 많아서!”

“안 돼?”

“돼요. 되는데.......”

“그럼 걸어.”

금도 받고, 걸 수도 있고. 문제없는데 자꾸 호들갑이야. 돈을 날리는 걸로 보여서? 난 확신이 있어서 거는 거다. 설마 내가 이런 투기장에서 지겠어. 그러면 신을 죽이는 것도 그만두고 귀농하련다.

사람도 못 잡는데, 신을 어떻게 잡아.

“최종 우승과, 단발 승리. 어느 쪽으로 거실 생각이십니까?”

여직원이 웃으며 말한다. 웃고 있는데 눈썹이 꿈틀꿈틀 움직인다. 호? 그런 것도 있나? 그럼 둘 다 걸어야지.

“어느 쪽이 페이가 더 쌔?”

“최종 우승이요.”

“이건 단발로 돌리고. 이걸 최종 우승으로.”

아공간에서 물건을 더 꺼낸다. 이건 보석이다. 무슨 종류인지는 나도 모른다. 갑부도 털고 왕궁 창고도 털고, 어쨌든 여러 곳을 털면서 챙긴 것들이다.

보석을 한 주먹 꺼내자 여직원이 기계가 된다.

“저, 저저저. 이거 전부요?”

“안 돼?”

“되는데! 되는데요.”

“그럼 걸어.”

안 되면 안 걸면 되고, 되면 걸면 되지. 호들갑은 무슨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도박장이라며? 돈 쓰는 사람 많을 거 아니야.

여직원이 떨리는 손으로 내가 내민 금괴와 보석을 정리한다. 잠깐만요! 라는 다급한 외침을 남기고는 안쪽으로 사라진다.

한참을 기다리자 여직원 대신 땀을 뻘뻘 흘리는 돼지가 나와 나한테 표를 두 장 주었다.

-휘. 단발 승리. 배율 1.0001배.

-휘. 최종 우승. 현재 배율 30.24배.

오, 간단한 투자로 30배나 불렸다. 공짜로 돈 번다는 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최종 우승은 마지막까지 배율이 변한다고 했다. 여기서 더 벌 수도 있겠다.

돈 벌기 참 쉽다.

============================ 작품 후기 ============================

그 자주 나와서 질린다는 투기장 클리셰! 문제는 투기장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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