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소환된 남자-42화 (4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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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유상민은 이게 무슨 개판인가 싶었다. 상사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다, 그 남자랑 같이 세종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 어제. 그리고 하루 지난 오늘.

강원이 망하고 있었다.

성벽은 이미 제 기능을 잃어 몬스터가 도시 안으로 들어와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고, 사람들은 상점을 약탈하며 당장 필요한 물품을 챙기기 바빴다.

성벽이 유명무실해진 지금. 살 방법은 얼마간의 물품을 챙겨 강원을 탈출하는 것 정도였다.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 뭘 하면 하루 만에 도시가 이렇게 되는 걸까. 소문은 들었다. 누가 랑 길드의 길마를 죽였다. 겨우 그거 하나 가지고 도시가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가 조사관이라고는 해도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도시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은 더더욱 알 도리가 없었다.

유상민은 혼란이 일어나는 방향을 따라 도시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벽이 날아간 여관과 흩어져 있는 시체들을 발견했다. 시체는 모두 랑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인형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여자아이의 흔적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또 그 남자다.

이번에는 저 멀리서 폭음이 울렸다. 랑 길드의 제2 길드 본부가 있는 방향이다. 폭음의 주인이 그 사람 말고 달리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유상민의 걸음이 자연히 폭음이 일어난 방향을 향했다.

길드장이 죽고, 간부들도 모두 죽고, 길드원들까지 죽었으니. 강원은 이제 망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네.”

앞에 있는 미친놈, 또라이, 유상민을 본다. 강원을 벗어나 텔레포트를 사용하려는데 말을 걸고 한다는 말이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세종까지 같이 가자는 거다.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냐?”

“찾는 물건이 있거나 하면 도와줄 수 있는데요.”

“콜.”

바로 승낙한다. 대한 길드, 세종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길드에 속한 조사관이 도와주겠다는데 뭐가 더 필요해. 사람 하나 소개받고 이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이득이다. 엄청난 이득.

난 득보는 장사를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 가죠.”

유상민이 앞장선다. 내가 말한다.

“어디가?”

“안 가요?”

“난 걸어서 안 갈 거야.”

더 좋은 텔레포트 두고 왜 걸어가. 유상민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먼 산에 시선을 고정한다. 목표를 고정하고, 마법을 써주면.......

텔레포트.

짜잔. 바로 산꼭대기랍니다.

“?”

갑자기 변환 환경에 유상민의 고개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고 나한테 묻는다.

“뭐 했어요?”

“텔레포트.”

“텔레포트여?”

마법사가 텔레포트 하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 전부 이 정도는 할 줄 알잖아. 거 왜. 블링크라는 마법도 소설에 자주 나오더만. 단거리 텔레포트 마법.

“바로 다음 간다.”

“아, 잠.......”

연달아 텔레포트를 사용한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허공을 딛고 이동하는 모양이다.

“깐. 저.......”

유상민이 뭐라 말을 한다. 소리가 전달되는 속도보다 내 텔레포트 속도가 더 빨라서 잘 안 들린다.

“뭐라고?”

“테, 레.......”

“제대로 안 들려!

“잠......”

“살, 려.......”

“우웨에에엑!”

“더럽게 뭐해!”

얘가 갑자기 내 옷에 오바이트를 한다. 초인적인 반응속도로 입에서 나온 액체가 내 옷에 닿기 전에 유상민을 던져버린다. 아, 여기 허공이지.

“으아아아우웨웨웩!”

입에서 오색빛깔 액체를 뿜어내고, 비명도 지르며 유상민이 떨어진다. 자기 입에서 나온 액체로 옷을 더럽히고 있다. 구토도 햇빛을 받으면 빛나는구나.

“으아웨에엑아아웨엑!”

토할 거면 토하고, 소리 지를 거면 소리 지르고 하나만 해라.

비명을 지르는 걸 보니 도와주긴 해야겠다. 도와주긴 해야겠는데 더러워서 도와주기 싫다. 구토를 흩뿌리면서, 심지어 자기 옷을 구토 범벅으로 만들면서 낙하하고 있어. 장기자랑 대회 나가도 되겠다. 엄청난 기예다.

손으로 잡기는 기분 나빠서 부유 마법으로 잡아줬다. 공중에 멈춘 유상민은 비명을 멈추고 계속 토한다. 하늘을 보고.

“우웨에엑!”

저건 역대급으로 더럽다. 입에서 나온 액체가 턱을 타고 옷에 떨어지고 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지경이 돼서야 구토가 멈춘다.

덤으로 정신을 차린 유상민은 자기 복장을 보고 울상이 된다.

“뭐, 잘못 먹었냐? 배탈 났으면 말을 해야지.”

“말했는데요....... 텔레포트 멀미 있다고 몇 번이나.......”

“텔레포트 멀미? 그건 뭐냐?”

살다 살다 텔레포트 멀미란 게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눈 깜빡하면 이동하는 건데 멀미할 건덕지가 있나?

“아무튼, 있어요. 우웨엑.”

나올 게 없는데도 유상민은 헛구역질한다.

“하, 잠시 내려가면 안 돼요? 옷 좀 갈아입게요.”

“그러지, 뭐.”

그대로 가자고 했으면 강제로라도 갈아입힐 생각이었다. 텔레포트하려면 몸을 접촉하고 있어야 하는데, 저 더러운 몸에 손대기는 싫다.

근처의 숲에서 유상민이 옷을 갈아입고, 다시 텔레포트를 준비한다.

“이번엔 토하지 마라?”

“안에서 나올 것도 없어요.”

다시 텔레포트를 사용한다. 몇 번 사용하니 또 유상민이 말썽이다.

“우웨엑. 우웨에엑!”

잠깐 멈추고 묻는다.

“안 한다며?”

“안에서 나올 게 없다고 했는데요?”

“.......”

그게 그런 뜻이었냐? 그래, 제대로 안 물은 내 잘못이다. 그런 걸로 하자. 이제 실수는 없다.

어깨를 잡고 있던 유상민을 옆구리에 낀다.

“어어? 왜요?”

“넌 이제부터 짐짝이다.”

위액을 게워내든, 아예 위장을 게워내든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온리 마이웨이. 난 세종으로 간다!

연속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한다. 배경이 휙휙 변하는 것밖에 안 보인다. 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유상민은 바동거리며 구역질한다. 이걸 대비해서 옆구리에 낀 거다. 내 선견지명이 어떠냐.

참고로 라팔이는 아직 내 머리 위에서 목마타고 있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빙글빙글 꼬기도하며 장난도 친다. 목마가 마음에 든 것 같다.

얘가 내 좆집 맞지? 내가 얘 보호자 아니지? 자꾸 뭔가 바뀐 기분이 드는데....... 밤에만 내가 주인이면 상관없나. 좆집은 좆집만 잘하면 된다.

세종까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텔레포트를 그렇게 썼으니 당연히 빨라야지. 나니까 막 쓰지. 텔레포트는 최상급 마법이다. 특히 살인적인 마력 소모로 악명 높던 마법이다.

중간계의 텔레포트 마법은 어떤지 모르지만, 아갈리에서는 그랬다.

“와우. 여기가 세종이냐?”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도시죠.”

“그래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종은 웅장하다는 말이 어울렸다. 도시의 크기가 크다. 서울의 열 배가 족히 넘는다. 높이도 수십 미터는 되는 성벽이 그 커다란 도시를 감싸고 있다.

수십 개의 문을 따라 정비된 도로가 있고, 도로를 따라 작은 도시가 또 있다.

세종이라는 커다란 도시를 중심으로 수십, 어쩌면 백이 넘는 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저 대단한 것은 그 내용물이다. 단순히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장, 공장이 있다. 푸른색 지붕을 가진 공장들이 굴뚝에서 연기를 뿜으며 돌아가고 있다.

“서울은 촌구석이었어.”

이렇게 대단한 세종을 두고 서울은 뭐했나 모르겠다. 1위와 2, 3위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마스터 혈하고 신의 메아리가 한 다스씩 있어도 세종에는 못 비비겠다.

내 옆구리에 매달린 유상민이 말한다.

“세종은 무역을 개방하고 있어요. 서울은 폐쇄적이고요.”

웩웩, 계속 헛구역질하더니 말하는 걸 보니 상태는 괜찮아 보인다.

“왜?”

“던전 개발 때문에요. 세종에는 던전이 많거든요. 매년 소환자들과 함께 소환되는 던전도 있고요. 서울은 이제 막 던전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던전이 왜?”

“그러니까 던전은.......”

“짧게.”

누굴 가르치려 들어. 난 공부하는 건 질색이라고. 그러니까 짧게 하자. 짧게.

“던전 is 석유 매장지.”

“그래, 짧게 하니 얼마나 좋아.”

석유 매장지라. 돈 덩어리란 거군.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는 건가.

생각해보자. 던전. 던전은 몬스터가 나오는 장소다. 죽여서 먹기도 하고, 가죽으로 옷도 만들고, 뼈로 무기도 만든다. 내가 아는 것만 이러니 배운 놈들이면 얼마나 많은 걸 만들지 상상도 안 된다.

이러니 문명이 발전하지.

“내려갈까.”

라팔은 대답대신 내 머리를 툭툭 친다.

하늘에서 내려가는 우릴 주목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이 지붕을 넘어다니거나 날아다니고 있다. 진짜 판타지라는 느낌이다.

현대적인 건물이 많으니 현대 판타지?

“오, 오오.”

높이서 봤을 땐 세종의 규모에 놀랐다면, 내려와서는 다양한 인종에 놀란다.

인종이라는 말보다는 종족이라는 말이 어울리겠다. 고양이 귀를 단 저 남자는 수인이고, 딱 봐도 알 수 있는 오크도 있다. 귀가 긴 저건 엘프인가? 오, 하반신이 뱀인 여자도 있어.

서울에서는 사람이 많았는데, 여긴 다른 종족의 비율도 높다.

“이종족 처음 봐요?”

“처음 본다. 소환되고 나서 석굴에만 짱박혀 있었거든.”

그동안 생각해둔 설정이다. 힘만 무식하게 센 내가 세상 물정에는 지나치게 어두운 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변명을 생각했다. 기연을 얻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렸다.

정신이 이상한 것도 오랫동안 혼자 있었다고 하면 그만이다.

거짓말도 먼저 숙지하는 편이 술술 나오니 생각해뒀다. 난 참 부지런해.

“짱박혀?”

“기연을 얻어서 말이야. 그걸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

설정을 더 말해보자면, 전생에는 기연을 발견하자마자 죽었다. 전생에 발견한 기연을 찾아 현생에 취하고, 힘을 얻은 것이 4년차 소환자 진휘다. 전생에 뭐 했냐는 질문까지 대응 가능한 완벽한 설정이다.

“원래 천천히 와서 쉴 생각이었는데.”

너무 빨리 와버렸다. 한 시간도 안 걸렸어. 이동 속도만 따지면 음속을 한참 넘으니 당연한가. 아무튼, 지금은 해가 쨍쨍한 낮이다. 이대로 들어가 쉬긴 아깝다.

“여기 투기장이나 그런 건 없냐? 즐길 거리.”

“세종의 명물 중 하나가 오락거린데요.”

“안내해.”

“어디로요?”

“아무 데나.”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니. 세종에 처음 온 사람이 뭐가 있는지 알 리가 없잖아. 그래도 음. 오락시설이 있다면 가보고 싶은 장소는 있다.

“아니다, 투기장 있냐?”

역시 피 튀기는 게 가장 좋지.

“있는데요.”

“가자.”

“따라오세요.”

유상민의 안내로 도착한 장소는 콜로세움이었다. 콜로세움. 지구에 있는 그거. 진짜 그거랑 똑같이 생긴 건물이 그대로 있다.

“투기장은 역시 콜로세움이 유명하니까요. 지금은 다른 종족들도 좋아해요.”

투기장 입구를 통과한다. 유상민이 신분증 비슷한 걸 제시하니 끝이다.

“대한 길드는 공짠가봐?”

“저 이래도 1급 조사관인데요? 고급 인력인데요?”

“내가 대한 길드 들어가면 몇 급이냐?”

“1급이요.”

“공짜 맞네. 다른 것들도 공짜냐?”

“대부분요.”

갑자기 대한 길드에 가입하고 싶어진다.

외견은 투박하지만, 투기장 안쪽은 현대적인 디자인이다. 매끈한 회색 통로가 뻗어 있다. 통로를 따라 걷는다.

나도 내 목적을 잊은 것은 아니다. 소환과 관계된 모든 신을 잡아 죽이는 것.

장기전이 예상되는 일이다. 마라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달릴 필요는 없다. 천천히, 조금 쉬엄쉬엄해야 지쳐 나가떨어지는 일이 없다.

그러니까, 절대 내가 놀고 싶어서 노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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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잊지 않고 있다만, 전혀 그런것 같지 않은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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