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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41화 (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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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마력 무효화의 메커니즘 탐구 3시간째. 진척이 없다. 마력이 사라진다는 결과는 알겠는데, 어떤 과정으로 그게 사라지는지를 모르겠다.

전조도 반응도 없이 길마의 몸에 닿으면 마력이 사라지고, 의지에 따라서는 몸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마력도 지울 수 있다.

마력으로 된 공격 대부분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 마력 무효화의 허용량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해봤자 나오는 것도 없는데, 슬슬 치울까.

마지막으로 불을 피운다. 고통에 기절했던 길마는 몸에 불이 붙자 깨어나 땅을 할퀸다. 중간에 실어증에 걸렸는지 이제 말도 못한다.

불이 길마를 삼키고, 재로 만든다. 방어구와 무기도 함께 재가 된다. 재가 어디선가 불려온 바람에 날려간다. 랑 길드의 길마가 세상에 존재했던 흔적은 타고 남은 검댕이 끝이다.

이 작은 검댕이 한 사람의 삶의 최후다.

자기 집 앞마당에서, 자기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는 거. 길드 관리를 어떻게 했으면 인복이 전혀 없다.

그놈 수준을 보면 이것도 이해는 된다.

“길마가 죽었는데, 니들은 안 덤벼? 분하지도 않냐?”

도발해도 아무도 나에게 덤비지 않는다. 길드 기강이 이렇게 해이해서야 강원을 어떻게 지켰는지 모르겠다.

라팔이는 뭐 하고 있나 했더니 꼰대를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 얼굴에 낙서하기. 고전적인 장난이구나. 얼굴을 넘어 전신에 낙서가 되어 있다는 점이 좀 다르다.

중년 남자를 알몸으로 땅에 굴리다니, 너도 참 잔인한 녀석이구나.

“가자.”

쪼그려 앉아 자신이 한 낙서를 구경하던 라팔이 고개를 든다. 나는 라팔을 안아 든다.

“더 안 놀아?”

“그게 놀이로 보였냐?”

“아니야?”

“내가 놀이로 사람을 그렇게 태울.......”

놈이긴 하구나. 놀이로 그런 짓을 한 적도 진짜 있다. 이거 부정을 못 하겠다. 그렇게 보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어.

이 주제로 대화하면 내가 질 것 같다. 주제를 돌리자.

안고 있는 라팔을 목 위로 올린다. 자세만 대충 잡아주니 알아서 올라가 목마를 탄다. 한 손으로는 라팔의 발을 잡아 고정하고, 남는 손으로는 꼰대의 팔뚝을 잡는다. 이 난리를 벌인 게 전부 이 꼰대 때문이니 버리고 갈 수는 없다.

길드를 벗어나며 라팔에게 묻는다.

“그런데 진명이란 건 뭐냐?”

마법이나 마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다소 체계가 달라도 그걸 느낄 수 있다. 내 마력 친화력은 신선이나 현자라고 불렸던 자들과도 비교를 불허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심장이 무한의 마력원이다.

그런데 길마의 마력 무효화라는 능력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도통 모르겠다.

“영혼의 힘.”

“또 영혼이냐.”

난 영혼이란 것이 있다는 것만 알고, 그 이상은 잘 모른다. 구체적으로 영혼을 느낀 것도 중간계에 와서가 처음이다. 그 전에는 어렴풋이 느끼기만 했다.

아, 영혼이 진짜 있구나. 신기하다. 이게 끝이다. 솔직히 내가 영혼을 연구해도 쓸 곳이 없다. 이미 마법으로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는데 영혼에 대해 알 필요가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갈리에서는 마법사라고 전부 학구열에 불타는 과학자일 필요가 없었다. 마법사들이 개발한 마법을 사용하기만 하며 마법사 행세하는 것도 가능했다.

나는 전형적인 연구의 산물을 이용하기만 하는 마법사였다. 랑 길드 길마를 가지고 실험한 것도 전문적인 그런 작업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불에 태우면서 일어난 현상을 기억해둔 것이 전부다.

요는, 나는 공부하는 걸 싫어한다. 그래도 죽는 게 더 싫다. 후. 퇴로가 없어.

“그 영혼의 힘이란 건 뭐야?”

“영혼에서 작용하는 힘. 백령이 전문이었어. 난 잘 몰라.”

“그래, 좆집에게 뭘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나저나 또 백령이냐. 김백령. 난 놈이잖아. 난 놈아. 넌 대체 얼마나 난 놈이었던 거냐.

나만 없었으면 이놈이 주인공 놀이하면서 인류를 구원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든다.

“알긴 알아. 마력과 완전히 다른 원리로 움직임. 그래서 마법으로 상대하려고 하면 안 됨. 현상만 보고 능력을 파악한 후에. 그 능력을 공략할 것.”

무식하다고 놀린 것이 분한지 라팔이 말한다. 의외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진명을 사용하는 놈을 상대할 때의 행동지침이라고 할까.

“4차 각성자 이상의 실력자 중에는 마법이랑 무공 없이 진명과 기능만으로 실력을 키운 사람도 많아.”

“진명은 알겠는데. 기능은 뭐냐?”

“게임 스킬.”

한 방에 이해했다. 상태창이 있는데 게임 스킬이라고 없을쏘냐. 높은 곳으로 가면 그런 놈들도 많다는 소리지. 귀찮긴 엄청 귀찮겠다.

잉여 길마가 약해서 쉽게 잡았지만, 그 드래곤이 마력 무효화를 가지고 있었다면 잡는 데 개고생하는 그림이 훤하다. 어쩌면 잡지 못하고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혹시, 인간 말고 다른 놈들도 진명 가지고 있냐?”

“지성 있는 것들은 전부. 대륙 공용어랑 같이 가지고 있어.”

이 공용어도 기능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 됐든 난 이질적인 존재란 말이군. 진명은커녕 공용어도 기능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배운 거다.

오랜만에 상태창이나 열어볼까.

[이름 : 진휘]

[진명 : ɣɗɓœɱɰʇ°!%:ad]

[히a : [email protected]$&!†‡ ㅁㅣㄴ처ㅂ : Å▩▨♤ 마ㄹur : ≪⤻˝∀∃ ㅈㅓㅇ시s 력 : $$**&%^]

달라진 것 없이 미쳐있다. 아니, 잠깐만. 조금 달라졌다. 달라지긴 했는데, 달라진 내용도 미쳐 있다. 이건 뭐, 달라져도 달라진 게 없다. 기묘하다, 기묘해.

모든 지성체는 진명을 가지고 공용어를 기능으로 익혀? 그럼 난? 나는 이 세계에 지성체로도 인정받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미친 세계는 아직 날 받아들이지 못한다. 빌어먹을 신 새끼들. 소환했으면 에프터케어라도 확실히 해주던가. 이게 뭐야.

내 신세를 자각하자 신들에 대한 살의만 샘솟는다. 나에게서 문명을 뺏고, 평화를 뺏고, 내 여생을 뺏은 빌어먹을 놈들. 몽땅 모가지를 따주마.

도움이 됐다는 뜻으로 라팔의 다리를 살살 간질이자, 라팔이 발을 파닥파닥 움직인다.

“이 꼰대를 처리한 다음 조사관하고 같이 세종으로 가자. 거기서 오크를 찾던지 자료를 찾던지 해야겠어.”

국내 1위 길드인 대한 길드가 관리하는 세종은 한국이라는 국적을 단 도시 중에 가장 번화하고 큰 도시라고 한다. 서울이나 강원보다 모이는 정보도 많겠지.

조사관이라는 직함까지 달고 있는 미친놈, 유상민이 있으면 원하는 정보를 찾기도 더 쉬울 거고.

근데 이 꼰대를 어떻게 처리하지? 땅에 질질 끌리고 있는 꼰대를 본다. 몸이 흙투성이다. 흙에 쓸리고도 상처가 없는 거 보면 피부는 참 질겨.

“이 근처에 강이 있었지?”

“응.”

강원을 관통해 흐르는 강이 하나 있었다. 그 물을 떠다 식수로 쓰고 하는 걸 봤다. 여기 버리자.

강을 찾아 꼰대를 던진다. 물에 뜨지 않도록 발에 돌도 하나 달아줬다. 가라앉지도 않고, 떠오르지도 않는 절묘한 크기로 정하느라 애 좀 썼다. 잘 가라, 꼰대. 살아나도 쫓아가서 죽이진 않으마. 내 앞에 나타나지만 마라.

“귀찮으니까, 오늘은 여관에서 자고. 내일 세종으로 가자.”

실망이한테 듣고 싶은 건 대충 들었으니 느긋하게 걸을 필요도 없다. 텔레포트를 팍팍 사용하면 가면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다. 하루 안이 안이라 한 시간 안에 가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까지가 튜토리얼이고, 세종에 가면 본 게임 시작이라는 느낌이다. 본 게임에 들어가기도 전에 도시 2개를 말아먹었다.

본 게임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야.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라, 세계가.

***

그리운 아침이다. 중간계에서는 두 번째인가? 아갈리에서는 밥 먹듯 매일 이랬고.

뭐냐고? 살기로 잠에서 깨는 거.

중간계에서는 마스터 혈 길드의 오피스텔이었다. 아갈리에서는 날 노리는 암살자가 한둘이 아니었던 데다가, 전장에서는 야습도 흔했다. 나도 쪼렙 때는 창하나 꼬나쥐고 병사들 사이에 섞여서 싸우고 그랬다.

“기분 더럽네.”

내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누가 깨워서, 그것도 살기로 깨워서 일어났는데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라팔도 나와 거의 동시에 일어나 옷을 걸치고 있다.

백치미 넘치긴 해도 역시 인류 정상급 집단에 속해있었던 것은 겉멋이 아니다.

나도 옷을 걸친다. 그리고 여관방 한쪽을 날려버린다.

여관 벽이 사라지고 바깥이 보인다. 예상했던 대로 포위당해 있다.

랑 길드를 상징하는 호랑이 마크를 단 사람이 반. 그렇지 않은 사람이 반. 다들 놀라있다. 놀랐냐?

조금 조심하든가. 그렇게 살기를 흘리면 당연해 깨지.

사람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다.

“어이, 거기 너. 그래, 거기 너.”

어제 길마 죽는 모습 구경하던 놈 중 하나가 이 자리에도 나와 있다. 저놈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

“어제 나 봤지?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나왔냐?”

어제 겁먹고 아무것도 못 하던 놈이 날 잡겠다고 나와 있다.

“어제와는 다르다! 널 죽이고 마스터의 복수를 하겠다!”

“그래, 열심히 해. 목이 떨어져도 살 수 있으면.”

“어?”

어? 하니 억! 하고 죽었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죽었을 거다. 혼란이 퍼진다. 가장 공격하기 좋은 순간이다. 한 번의 마법에 포위 인원 반이 죽는다.

보이지 않는 칼날에 토막 나 죽었다. 토막 난 시체는 생각 이상으로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생생한 고깃덩이가 떨어져 있는데 그게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실감이 잘 안 되기 마련이다.

“누가 또 덤빌래?”

“으아아!”

“괴물이다! 도망쳐!”

혼돈과 광기. 포위망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반이 죽은 시점에서 사실 무너졌다.

나는 자기가 지른 오줌 위에 앉아 있는 랑 길드 길드원을 하나 붙잡는다.

“이거 누가 시켰어? 말하면 살려줄게.”

“이사들! 이사들이 시켰어요!”

“좋아, 가봐. 이사들한테는 네가 불었다고 말할게.”

가보라는 말에 좋아하던 놈이 이사들에게 고자질한다고 말하자 안색이 창백해진다. 그 안목 좋은 길마가 뽑은 이사들 성격이 평범할 리가 없다.

남자를 놓아주고, 다른 길드원을 또 붙잡는다.

“이사들 어디 있어? 말하면 살려줄게.”

“제2 길드 본부에.......”

“거기가 어딘데?”

“제1 본부에서 북쪽.......”

“좋아, 살려줄게. 이사들한테는 네가 말했다고 말할 거야.”

이번에도 안색이 하얘진다. 두 놈이 반응이 똑같아. 말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니 걱정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왜냐? 이사란 놈들은 오늘이 제삿날이니까.

라팔을 데리고 제2 길드 본부를 향한다. 여기도 병력아 쫙 깔렸다. 날 포위하러 왔던 병력보다 더 많다. 이사라는 놈들이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보인다.

날 죽이곤 싶은데, 그래도 자기 몸보신이 우선이다, 이건가.

괴롭혀봤자 내 귀랑 눈만 썩겠다. 그냥 그 안에서 죽어라.

작은 쇠구슬 하나를 꺼내 하늘로 던진다. 쇠구슬을 하늘로 쭉쭉 올라간다.

메테오 스트라이크.

불꽃에 휩싸인 쇠구슬이 제2 길드 본부에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건물이 붕괴하고 폭발이 일어난다. 길드 본부와 주변 건물이 모두 사라졌다. 안에 있던 사람도 모두 죽었다. 생명 반응이 안 느껴진다.

정리 끝. 그리고 강원도 끝.

몬스터 대이동 때문에 지금도 몬스터가 강원을 공격하고 있는데, 강원을 수호하는 최대 세력을 날려버렸다.

그 세력은 강원의 머리 역할도 하고 있다. 팔다리 잘리고 머리고 잘리면 죽어야지.

잘 있어라, 강원. 지루한 도시였어. 나는 세종으로 간다.

“가자.”

라팔과 함께 혼란에 빠진 강원을 나왔다. 벌써 몬스터가 성벽을 넘어 거리에서 활개 친다. 개판이군.

============================ 작품 후기 ============================

이렇게 강원이란 도시는 사라졌다고 합니다.

세계가 걱정되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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