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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39화 (3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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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강원이 습격받고 있다. 그 흔적을 알 수 있는 장면들이 강원에 남아 있다.

일단 성벽이 손상되었다. 최근 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성벽에 새겨져 있다. 또 부상자가 많다. 길에 나가면 열에 한둘은 붕대를 감고 있거나 부목을 대고 있다.

결정적으로 상점에 재고가 없다. 무기도, 포션도 몬스터의 공격에 대비해 비축하고 있으며, 파는 양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여행 전의 보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실망이를 비롯해 세종으로 가기 위해 강원에 들른 사람들은 모두 발이 묶인 셈이 되었다.

나쁜 선택은 아니다. 사람들이 발이 묶임으로써 그들도 강원의 병사가 된다. 죽기 싫으면 싸워야지 어쩌겠어.

“몬스터 무리 300명이 접근 중. 내일 오전 접근 예정...... 이라.”

게시판에 걸린 내용이다. 성안에는 이런 게시판이 여러 개 있었고,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전담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생부터 쓰던 방법. 정보 전달에는 나쁘지 않아.”

“확실히 그렇겠다.”

관리만 잘해주면 중요한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할 수 있어 보인다. 게시판 관리는 강원에서 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강원을 관리하는 곳은 어디지?

“이봐 거기. 잠깐 말 좀 묻자. 거기, 대머리!”

“누구보고 대머리.......”

발끈한 대머리가 라팔을 보고 바로 입을 다문다. 나는 인형 놀이처럼 라팔의 손을 잡고 흔든다.

“라팔아 아저씨 안녕. 해야지.”

“아저씨 안녕?”

“어, 그래. 그래. 안녕?”

대머리 아저씨가 고분고분해진다. 3초 전까지 화내던 사람은 어디 갔어. 이 불공평함은 대체 뭐야.

“아저씨.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뭐냐? 빨리 물어라.”

대머리 아저씨의 시선은 라팔에게 고정되어 있다. 성적인 대상을 보는 그런 눈은 아니고, 귀여운 것을 볼 때의 눈이다.

“강원은 누구 소유야?”

“소유? 일단 랑 길드에서 관리하고 있지. 세금도 받으니 사실상 소유라고 봐도 될 거야.”

“그래? 고마워.”

“저기....... 그 아이와 악수 한 번만 해봐도 되겠나?”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꼭 뭐 마려운 것 같네. 내가 라팔을 바라보자 라팔이 단호히 대답한다.

“싫어.”

“알았다.......”

아저씨는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걸어간다. 어쩐지 안쓰러운 아저씨다.

랑 길드라. 기억해두자. 게시판이 정보의 중심이 되고, 그걸 관리하는 것이 랑 길드라면, 강원의 정보는 모두 랑 길드 손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즉, 조작도 자유롭다는 말이다. 흑색선전이 자유롭겠어. 한 번 선동해서 빠르게 몰아치면 누구 하나 마녀 사냥하는 건 일도 아니겠다. 나중에 밝혀져도 그때는 이미 늦은 거지. 사냥 대상은 죽고 없을 건데.

내가 직접 당하는 것이 아니니 그런 일이 일어나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고. 일단 당장 뭘 할지를 정하자.

라팔이 내 소매를 당긴다.

“왜?”

“놀자.”

“그거 하고?”

“기분 좋은 짓.”

“차라리 노골적으로 말해라. 저기 저 사람의 눈빛 안 보이냐?”

지나가다 우리 대화를 들은 사람이 날 이상하게 보고 있다. 저건 변태를 보는 눈빛이다. 그냥 섹스라고 하면 될 것은 돌려 말하니 저러잖아. 아니, 라팔이 입에서 섹스라는 말이 나와도 위험한가?

“아무튼, 가자.”

라팔이 날 끌고 간다.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는 게 여관이 이미 봐둔 모양이다. 역시 썩어도 인류 최정상. 방심할 수 없다.

라팔이 봐둔 여관은 강원에서 제일 비싼 여관이었다. 비싼 여관방을 밤꽃냄새가 배도록 마음껏 더럽혔다.

***

아침 일찍 일어나 성벽을 향한다. 라팔은 내 옆에서 비몽사몽하고 있다. 어제 그렇게 혹사시킨 게 아직 남았나 보다. 두 시간 정도로는 안 될 정도였나.

“여기도 수성전은 다를 게 없구나.”

성벽 위에 원거리 무기를 든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그걸로 끝.

공성전에 뭐가 더 있겠어? 좋은 성벽 놔두고 내려가서 싸우면 그게 등신이다. 성벽이 소용없는 존재라면 또 몰라. 나처럼 말이야.

아갈리에서는 날 상대한다고 만 단위의 대군이 집결하고 그랬다. 공성전은 어떻게 해서든 피하더라. 성벽이 안에 있는 도시와 함께 사라지는 데 무슨 수가 있겠어.

나한테도 그게 더 편하기도 했다. 살인에 망설임은 없지만, 죄 없는 사람을 학살할 마음은 없다. 내가 정해둔 최소한의 선이라고 할까? 그 선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선이긴 하다. 내 좆대로 변하는 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용돈이나 벌러 왔나?”

성벽에 올라가니 활을 든 남자가 말을 건다. 화살통에 화살이 빽빽한 것이 작정하고 온 것으로 보인다.

“용돈? 이거 잡으면 돈도 줘?”

“그럼. 참가비도 들어오고 몬스터를 잡고 나온 부산물도 조금씩 나눠주지. 활 연습하고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 거기 예쁜 여자친구 모시려면 돈 안 필요하나?”

“여자 친구 아냐. 좆집.”

조용하던 라팔이 덧붙인다. 조곤조곤 하는 말이 핵폭탄급 파괴력이다.

“무. 뭐? 귀가 잘못됐나?”

“댁 귀는 정상이야. 소개할게, 내 여친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닌 좆집. 라팔이.”

말문이 막힌 남자는 어버버 말을 더듬는다.

“ㅈ, 좆집? 미친!”

남자가 급히 자리를 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낄낄댄다. 진실을 말해도 믿지를 않으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소통이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나는 남자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성벽 아래를 내려다본다. 시야 확보도 잘 되고 몸을 가릴 엄폐물도 있다. 명당이다.

라팔이를 안고 만지작거린다.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된다.

훗. 하고 웃어주니 욕지거리가 들려온다. 꼬우면 덤비던가.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좋은 좆집을 구하라지. 우리 라팔이처럼 예쁘고 정신 나간 년이 또 있다면 말이지만.

의외로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겠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이니 미친놈년은 많지 않겠어? 그중에 예쁘고 좀 심하게 미친년을 찾으면 된다.

그래도 우리 라팔이가 최고다. 흐음. 쓰다듬고 있으면 질리지가 않아.

“라팔아.”

시간도 있으니 전부터 묻고 싶었던 것을 물어보자.

“왜?”

“여기 신은 몇 놈이나 있냐?”

“신? 신발?”

“그거 말고, 제우스나 포세이돈 같은 놈들.”

“그거? 잠깐만.”

라팔은 고개를 하늘로 올려 하늘을 본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자 대답이 나온다.

“많아.”

“많아?”

“인간의 신. 수인의 신. 엘프의 신. 오크의 신. 드워프의 신. 고블린의 신 등등 그리고 잊혀진 고대의 신들까지. 수십 명?”

“은거할까.......”

그냥 이대로 세종에 가서 라팔이랑 같이 천년만년 살까.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다. 저걸 언제 다 잡고 있어. 아주 엿 같은 기분이다. 다 잡아 족치는 데 몇 년이 걸릴지 예상이 안 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 인생 뒤엎은 놈들의 숫자가 그렇게 많다는 거지? 사라지려던 의욕이 다시 팍팍 솟아난다.

그래, 복수 상대는 많을수록 좋은 법이지. 많아야 오래 즐길 수 있다. 이건 아갈리에서 경험에서 나온 사실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좋으니 기필코 모두 찾아 아작을 내주마.

“아파.”

라팔이 표정을 찡그린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라팔이 머리카락이 몇 가닥 빠졌다.

“미안, 미안. 원망은 신들에게 해라.”

내 책임 아니다. 내 생각에 나타난 신들 잘못이야. 마구니는 썩 물럿거라!

“몬스터가 다가온다!”

“몬스터가 다가온다!”

정문 방향에서 같은 말을 복창한다. 복창 소리는 이쪽으로 다가오며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구나.

곧 나무 사이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인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뭐랬더라. 강원을 공격하는 몬스터 중 약한 개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약한 것들은 강원에 모인 사람들을 무서워해 도망치며, 또 약한 놈들이라면 이렇게 모여서 막을 필요도 없다.

강원을 공격하는 놈들은 강원을 뚫을 자신이 있는 놈들이라는 뜻이다.

숲을 빠져나오는 몬스터의 모습은 다양하다. 고블린도 뒤쪽에 보인다. 알고 보니 저놈들도 말하는 놈들이었다. 강한 놈들이라고 해도 내 기준에선 다 고만고만하니 잘 모르겠다.

일단 보이는 것들은 전부 그 비늘 여우보다는 약하다. 비늘 여우는 그 지역 터주였으니 그보다 약한 게 정상인가?

몬스터가 보이자 이미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사격을 시작한다. 화살을 쏘는 사람부터, 표창에 창. 마법까지 있다.

몬스터들은 달려와 성벽을 오른다. 대부분이 성벽에 다가오다 쓰러지고, 운 좋게 올라온 놈들은 위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사냥당한다.

성벽은 폭이 넓어 무기를 들고 싸우기에 충분하다. 이미 마법과 원거리 무기에 얻어맞고 올라온 놈들이라 상처 하나씩은 달고 있다. 그래도 다치고 죽는 사람이 나오는 걸 보면 강한 몬스터라는 말이 거짓은 아닌가보다.

시시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재미있지도 않다. 애매해.

“거기, 놀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

열심히 싸우던 사람 중 하나가 우릴 보고 말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도와달라니 조금은 도와줘야겠지. 보여주는 이미지는 착한 게 좋으니 말야. 자처해서 악명을 쌓을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콰광!”

파이어 볼과 함께 커다란 새 몬스터가 폭발한다. 사체도 남기지 않고 말 그대로 폭발했다. 피와 내장이 사방에 튀어 성벽을 더럽힌다.

“콰과강!”

다른 몬스터들도 차례차례 폭발한다. 몬스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피를 뒤집어쓰고 피투성이가 된다.

“끼에에엑!”

“키이잉!”

아직 남아 있던 몬스터들은 기성을 지르며 도망친다. 몬스터가 모두 정리된 자리에 사람들은 얼빵한 얼굴로 날 본다.

내가 산듯하게 대답한다.

“왜, 도와달라며? 불만 있어?”

도리도리.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고개를 격하게 젓는다.

***

몬스터를 모두 정리한 나는 랑 길드에 초대받았다. 큼직한 건물 안으로 안내되어 앉아 기다리는 중이다.

초대의 이유는 안 봐도 뻔하다. 우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들어올 거고.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겠지.

덜컹. 문이 열린다. 그리고 아저씨 한 명이 들어온다.

“저희 강원을 도와주십시오.”

거 봐. 뻔하다니까.

“얼마?”

“네?”

이런 반응도 말이야.

“얼마 줄 거냐고.”

아저씨의 표정이 굳는다. 더 볼 것도 없네. 이놈들도 날 호구취급 하려 했다. 왜 사람들은 타인이 자길 공짜로 도와줄 거라고 믿는 걸까. 그렇지 않은 놈들도 많지만, 그런 놈들을 훨씬 많이 봤다.

간혹 도와주지 않으면 화내는 놈들도 있었지. 그때마다 웃겨서 말이 안 나오더라. 내가 자원 봉사자도 아니고 왜 공짜로 도와줘야 되는데. 그럴 이유가 없잖아?

“왜? 설마 공짜로 도와달라고 하게? 아무것도 없이?”

거리의 게시판 관리하는 놈들도 돈은 받고 일할 건데, 지들이 소유의 도시를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공짜로 해달라니. 그게 진짜 미친 소리다.

“듣자듣자 하니 어이가 없어. 새파랗게 젊은 놈이.”

아저씨가 말한다.

“조금 도와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모두 살자고 하는 데 젊은 사람이 말이야. 사람은 돕고 사는 거라고 부모님에게 안 배웠어? 힘이 좀 있다고 뻐팅기는 거 같은데, 우리 쪽에서도 자네 같은 사람은 필요 없어. 나가게.”

“.......”

이건 시비인가, 자살 시도인가. 너무 고도의 정치적 발언이라 정치 레벨 쪼렙인 나는 감도 못 잡겠다.

“어서 나가라니까!”

이제 소리까지 지른다.

엎을까? 엎을까? 강원이라는 도시를 지워버려?

============================ 작품 후기 ============================

어째 제대로 된 인간이 한 명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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