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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33화 (3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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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배신자는 길잡이 하나랑 요리사 하나다. 자주 요리하는 게 저놈이라 그냥 요리사라고 기억하고 있다. 독 어쩌고 하는 거 보면 요리를 하는 이유도 수틀리면 독을 타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작정한 놈들이다.

뭐 먹을 게 있다고 이런 짓을 하는지 난 알 바 없고, 저놈들을 어떻게 요리할까.

“죽일까?”

“지금 죽이고 뭐라고 하게?”

“배신해서 죽였다.”

“다짜고짜 죽여 놓고 그런 말 하면 믿어 줄 거 같냐?”

“아니.”

잠시 고민하던 라팔이 눈을 떨구고 대답한다. 이거 실망하고 있다. 귀여워라.

라팔이 말대로 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잡아다 고문하면 끝난다. 근데 그건 너무 쉽잖아. 힘만으로 세상이 살아지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이 되겠어. 피와 폭력이 낭자하는 광기난무의 세상이다. 난 그런 세상에서 지루해 못 산다.

“더 재미있는 방법이 생길 것 같으니까 보고 있어.”

“응.”

라팔은 순순히 대답한다. 나는 라팔의 허리를 안고 하늘로 든다. 아기들한테 하는 높이 높이다. 그리고 다시 내려 껴안고는 돗자리 위를 구른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솔로는 시린 옆구리나 비벼라.

난 내 좆집이랑 뒹군다.

두 배신자는 아직도 작당모의 중이다.

“남자만 처리하면 여자는.......”

“꿀꺽.”

꿈은 크게 가지면 좋다던데, 저 꿈은 어떤 걸까. 너무 커서 꿈에 먹힐 것 같다. 망해가는 도시를 버티지 못해서 도망친 놈들이 인류 정상급 실력자를 넘보고 있다.

재 딴에는 꿈에 부푼 대화겠지만, 내 입장에선 시트콤이다. 니들이 앞으로 그럴 시간이 있을까 몰라.

오늘이야 있겠지. 그래도 내일부터는 없을 거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자리를 뜬다. 아무도 내가 없어진 걸 알아채지 못한다. 오늘 밤은 살짝 바쁘다.

***

“며칠 안 남았으니까. 오늘도 힘차게 가봅시다.”

실망이의 말에 따라 오늘도 이동을 시작한다. 이틀간 이들을 관찰하며 알아낸 것이 있다. 실망이는 리더쉽이 좋은 것이 아니라 단지 친화력이 좋을 뿐이다.

정해진 일정을 제외한 선택에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느라 선택이 늦어지고 뻘뻘 대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다. 한 번도 강경하게 나가질 못하더라.

실망이는 분쟁을 싫어한다. 그것도 아주.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웃는 얼굴이 찌그러지는 것이 보일 정도다. 내 눈에도 보이는데 정작 언쟁하는 당사자들은 못 보고 있다.

이 경우에는 떨어져 있기에 잘 보인다고 해야 하나?

이 파티의 인원 구성도 흥미롭다. 실망이가 리더로 있던 파티가 하나. 그리고 신서울이 무너지고 함께 행동하기 시작한 그룹이 하나. 이들은 파티도 아니고 개인의 뭉침이다.

“사람을 극한 상황에 던져두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해?”

“네?”

조금 앞에서 걷던 실망이가 고개를 돌린다. 이동할 때 실망이는 대체로 내 근처에 있다. 불편한 표정으로 쭈뼛쭈뼛 모습이 폭탄 처리반. 딱 그 짝이다.

“너 말고, 얘한테 한 질문이야.”

“대부분, 좋은 꼴은 못 봤어.”

“그러냐. 나도 못 봤다.”

가끔 예수의 영혼을 가진 건 아닌가 의심되는 돌연변이가 상황을 수습할 때도 있는데, 내 경우는 그것도 내가 망쳐버려서 곱게 끝난 적이 없다. 전부 죽거나 대부분 죽었다.

그 사이에서 난 항상 살았고.

“이번에는 좋은 꼴을 볼 수 있나 보자고.”

마지막 말은 실망이가 듣지 못하도록 작게 말한다. 괜한 의심 살 필요는 없잖아?

“몬스터다!”

앞쪽에서 그런 외침이 들렸다. 떨어져 걷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모여 사방을 경계한다. 양옆에서 숨어있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뭐야? 왜 여기서 몬스터가 나와?”

“영역은 분명 확인했다고.”

길잡이 둘이 당황해 떠든다. 저 말을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우리는 제대로 확인했고, 인솔도 똑바로 했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 책임이 아니다.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은 날 본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몬스터를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순간의 판단이 목숨을 앗아가는 싸움에서 저들은 순간을 투자해 날 본다.

웃기는군.

헛웃음이 나오지만 겉으로 티내지는 않는다. 만나고 사흘 된 나에게 저들은 뭘 기대 하는가? 내가 용사처럼 나서서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목숨을 구해주기라도 바라는 건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이번에는 넘어가 주자.

손짓 몇 번에 이름도 모르는 몬스터가 죽어 나자빠진다.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실망이가 내게 말을 건다.

“식량 확보를 위해 잠깐 도축을 하고 싶습니다만.......”

“해.”

그렇게 죄짓는 것처럼 말 안 해도 하게 해줄 생각이다. 식사와 식량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먹지 않는 자 일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내 말을 실망이가 전달하고, 그제야 도축이 시작된다. 실망이 대신 전달기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네.

빠르게 도축을 마치고 다시 이동한다.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누군가 외친다.

“몬스터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쪼르르 모이고, 이번에도 길잡이들이 한마디씩 덧붙인다. 난 똑바로 했다. 우리 책임 아니다.

“당신들 책임 아닌 거 아니까 빨리 와서 자리 잡아요!”

여자 하나가 까칠하게 대꾸하고, 길잡이들이 얼굴이 구겨진다. 구겨진 얼굴은 금방 사라지고 길잡이들은 얌전해진다.

모인 이들의 시선은 다시 날 향하고,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줬다. 공기탄을 획획 날리니 몬스터가 퍽퍽 쓰러진다. 일행은 익숙해진 얼굴로, 신기한지 죽은 몬스터를 살핀다.

실망이가 다가와 나에게 고개를 조아린다.

“저희만 이렇게...... 정말 감사합니다.”

“다 같이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냥 밥이나 맛있게 차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니가 차리는 거 아니잖아.”

직접 요리하는 것도 아니면서 어디서 생색이야.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겠습니다.”

말을 끝낸 실망이는 다시 등을 돌려 돌아간다. 맛있는 식사가 나왔으며 좋겠다. 최선을 다할 기력이나 있다면.

“어제 뭐 했어?”

“이 주변으로 몬스터를 조금 끌어왔지.”

어젯밤은 그걸로 좀 바빴다. 몬스터가 나타나는 건 길잡이 잘못이 아니다. 어제까지 몬스터가 없는 길에 오늘 몬스터가 나오니 과거의 흔적을 살피는 길잡이는 당연히 몰라야 한다.

***

조금 움직이면 어김없이 몬스터가 나왔다. 한 시간에 한 번꼴로 몬스터를 조우했다. 사람들은 처음 몇 번은 긴장하다, 나중에는 몬스터가 나오면 태연하게 나에게 모든 걸 맡겼다.

“주인님, 호구?”

오죽하면 우리 라팔이가 이런 말을 다 할까. 저놈들의 태도는 그냥 나를 몬스터 잡아주는 기계로밖에 보고 있지 않다. 첫날 날 보던 그 두려움은 모두 어디 버리고 온 모양이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전부 확 뒤엎고 싶어진다. 그래도 참는다. 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내가 호구라니. 나만큼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세상 착한 사람 다 죽었다.”

“착한 사람은 이미 옛 저녁에 다 뒤졌어. 착한 사람이 많다면 세상이 이 모양일 리가 없잖아?”

“하긴.”

라팔은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의 이런 대화를 옆에 있는 실망이가 미묘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이놈만은 유일하게 몬스터를 처리해줄 때마다 나에게 미안한 표정을 보인다.

그나마 이놈이 좀 된 놈이다. 팔자에 없는 리더만 안 맡았으면 마음 편하게 살 것을. 미련한 놈이다. 된 놈이어서 미련한 건가? 그런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생각을 계속하며 걸음을 옮긴다.

그날은 사고 없이 지나갔다. 문제는 다음 날에 일어났다.

“끄아아악!”

풀숲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스쳐 지나갔고,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어제 일로 오늘도 긴장을 풀고 있던 사람들은 제때 반응하지 못하고 한 타이밍을 놓친다.

몬스터가 일행을 덮친다. 뱀과 닮은 몬스터가 땅을 기어 사람을 물어뜯는다. 나는 즉시 반응해 몬스터를 처치한다. 피가 튀며 몬스터가 죽는다.

몬스터는 죽어도, 다친 사람은 치료되지 않았다.

“포션, 포션!”

“지혈제 좀 가져와!”

다치지 않은 사람들이 달려가 다친 사람들을 치료한다. 다섯이 경상이고, 둘이 크게 다쳤다. 처음 공격당한 남자는 다리가 반쯤 끊어졌다. 다른 한 명은 옆구리가 크게 베였고.

“상혁 씨, 다리는.......”

포션을 부어도 상처는 치료되지 않는다. 이들이 쓰는 포션은 기껏 이 정도다. 간신히 목숨을 건질 정도는 되지만, 몬스터가 드글대는 숲에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리 끊어진 남자, 상혁이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애꿎은 땅만 노려보고 있다.

허리를 다친 쪽은 그나마 낫다. 움직일 수라도 있으니까. 걷지도 못하는 상혁이는 누군가의 어깨를 빌려야 한다.

속도는 느려지고 부상자와 부상자를 부축하는 사람의 체력은 빠르게 떨어진다. 결국 일행 전체의 속도가 늦춰진다.

모두 그걸 안다. 그러니 표정이 밝지 않다.

“빨리 정리합시다. 피 냄새가 퍼지면 몬스터가 더 올지도 몰라요.”

실망이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움직인다. 분위기는 전혀 밝아지지 않는다.

“몬스터가 이동하고 있어요. 실시간으로 몬스터의 영역이 변합니다. 길잡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출발하기 전에 배신자 길잡이가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실망이가 대답한다.

“편한 길만 찾아서 최대한 빠르게 강원으로 향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다른 의견 있으신 분?”

아무도 대답이 없다.

“그럼 갑시다.”

길잡이가 앞장서고, 사람들이 뒤따른다. 피 냄새나는 몬스터의 시체를 뒤로한다.

내 위치는 처음부터 변하질 않는다. 일행의 맨 뒤에서 그들을 본다. 침울한 분위기에서 나와 라팔만이 떨어져 있다. 앞쪽의 길잡이들은 긴장한 기색이 등으로도 느껴진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니들이 긴장한다고 몬스터가 안 나오는 건 아냐.

얼마 걷지 않아 또 목소리가 터진다.

“몬스터!”

비명과 같은 짧은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아까는 찾아볼 수 없던 기밀한 동작이다. 한 번 데여야 꼭 정신을 차린다.

그들은 한데 모여서 몬스터를 경계하며, 눈으로는 또 날 본다. 날 보는 시선이 간절하다. 아까는 호구처럼 보더니 잠깐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태도 바꾸는 것 좀 봐라. 내가 정나미 안 떨어지게 생겼나.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칼춤추고 싶다. 그래도 아직 저들을 죽게 놔둘 순 없다. 재미 볼 장면은 멀었다.

항상 먼저 공격해오던 몬스터들과 달리 이번 놈들은 멀리서 간을 보고 있다. 꼭 고블린처럼 생긴 놈들이다.

“저놈들 이름이 뭐야?”

“고블린.”

그냥 고블린이란다. 이렇게 보니 상상보다 훨씬 추악하다. 역시 간단하게 공기탄만으로 처리한다.

도축도 하지 않고 다시 움직인다. 침울한 공기. 사람들의 얼굴에는 진한 피로가 깔린다.

밤이 되었다. 캠프의 규모가 어제의 반으로 줄었다. 모닥불의 크기를 줄이고 모포 간의 거리도 좁혀 최대한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했다.

식사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어제는 그래도 대화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조차 없다.

모두 침울하게 죽을 뜨고 있다. 나를 신경 쓴 건지 죽은 맛있다. 나만 즐겁게 식사를 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기대되 맛없는 식사도 맛있어질 기분인데 맛있는 식사까지 있으니 더욱 좋다.

사람을 극한 상황에 던져두면 어떻게 될까?

그 대답을, 곧 눈으로 구경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이미 답을 알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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