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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라팔이 쪼르르 잰걸음으로 내 옆으로 다가온다. 귀신같이 숨었던 놈이 잘도 오는구나. 그런 뜻을 담아 라팔의 머리를 꾹꾹 누른다. 그러다가 결국 머리를 길게 쓰다듬는다. 뒷머리로 늘어진 금발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진다.
정말 중독되는 감각이다. 라팔은 죽은 드래곤을 빤히 바라본다.
“주인님, 괴물.”
“그래, 내가 바로 괴물이다. 크앙! 영화 보면 드래곤의 사체로 무기도 만들던데. 여기 드래곤도 그러냐?”
“내 몸의 반 정도가 드래곤.”
좋은 재료라는 뜻이구나. 마력의 실을 뽑아 드래곤 사체에 마법을 새긴다. 아공간 안에 넣었다 썩으면 낭패다.
당장 쓸 일은 없지만 놔두면 언젠가는 쓰겠지.
사체를 정리하고 나는 다시 의자에 앉는다. 라팔도 내 위로 올라와 몸을 비빈다.
“이제 뭐 해?”
“기다려야지. 내기가 끝날 때까지.”
망할지 안 망할지를 보려면 일단 그 장면을 봐야 한다. 대충 일이 수습될 때까지는 기다려야겠지.
“얼마나?”
“일주일?”
라팔이 끄덕여 동의한다. 내기도 있으므로 내가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 결국 그냥 기다려야 된다는 말이다. 벌써 내기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심심해져.
라팔의 치마를 걷고 속옷을 옆으로 치운다. 라팔이 고개를 들어 날 본다. 나는 개의치 않고 드러난 작은 균열을 살살 만진다.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문지르고 엄지와 중지로 음부 위쪽을 벌리고 드러난 콩알을 중지로 문지르다가, 손가락을 안쪽에 넣어 살살 간질인다.
남은 손은 옷 위로 가져가 가슴을 약간 강하게 주무른다.
“으응.......”
한참을 만지자 라팔은 몸에 힘이 완전히 풀려 나에게 기댄다. 눈은 반쯤 감고 있다. 남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자 라팔이 내 품으로 파고든다.
음부도 적당히 축축해졌다. 난 라팔을 잠깐 떼어놓고 바지를 벗는다. 물건은 이미 빳빳하게 발기해 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라팔의 허리를 안고 들어 올린다. 음부를 내 물건과 잘 맞춰 그대로 아래로 내린다.
물건은 라팔의 안쪽으로 들어가 금방 끝에 닿는다. 그리고도 늘어나 내 물건을 완전히 삼킨다.
“흐읏.”
라팔이 작게 신음한다. 하얀 피부가 쾌락으로 옅게 달아올랐다. 나는 그대로 라팔을 품에 안는다. 라팔은 가만히 내 움직임에 따른다. 작은 질이 천천히 움직이며 내 물건을 자극한다.
나는 라팔의 정수리에 턱을 대고 문지른다. 간지러운지 라팔이 몸을 비튼다. 나는 라팔을 더욱 꽉 껴안는다. 그러다가 허리를 만지거나 음부를 문지르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하며 논다.
이거라면 일주일은 거뜬할 것 같다. 보들보들 말랑말랑 우리 라팔이의 몸은 최고다. 없던 집착도 생길 것 같아. 내 사상을 외모지상주의에서 촉감지상주의로 바꿔야 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라팔이 날 본다. 나도 라팔이를 본다.
“안 움직여?”
“내가 안 움직이면 니가 움직여야지.”
“응.”
라팔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무표정인데도 뭘 생각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단 말이야. 신기하네.
라팔이 살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약간 풀자 허리의 움직임이 커진다. 앞뒤로 움직이다가 좌우로 흔들고 이내 적응했는지 원을 그리며 살살 돌린다.
몸은 나에게 기댄 채로 그렇게 허리를 움직이다.
“후, 하아... 으으응.”
라팔이 작게 흐느낀다. 턱을 잡고 고개를 올려 입을 맞춘다. 라팔이가 먼저 혀를 내밀어 온다. 어색하게 내민 혀를 살짝살짝 씹는다. 그리고 나도 혀를 내밀어 혀끼리 엮고, 내 쪽으로 끌어들여 힘들여 빤다.
손을 라팔의 아래로 가져가니 애액이 흥건하다. 인형인데 애액이란 말을 써도 되나? 상관없겠지.
애가 타는지 라팔은 허리를 점점 크게 움직인다. 그냥 움직이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의자 팔걸이를 잡고 몸을 지탱하고 움직임을 더욱 크게 한다. 내가 다리를 벌려주자 중심을 앞으로 기울여 엉덩이를 더 내 쪽으로 붙인다.
그래, 난 운동 많이 했으니 이제 니가 움직여라. 나는 느긋하게 즐기련다.
***
내기의 결과를 보기 위해 일주일은 있어야 한다. 일주일. 할 게 없다. 멍하니 앉아 있다 밥때 되면 오지랖 아줌마 집에 가서 밥이나 먹고 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중간에 식량이 없다며 구박당해 직접 몬스터를 잡아 오기도 했는데 별거 없었다. 이블아이의 정체를 확인한 것이 하나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이블아이, 풍선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둥근 눈알이 허공에 떠 있고 아래로 줄기가 땅과 연결되어 있더라. 저런 게 맛있다니 살짝 충격이다.
어쨌든, 내가 한가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 마법은 어떻게 되어 있는 거냐?”
“마법?”
내 앞에 앉아 있던 라팔이 고개를 들어 날 본다. 내 일상이 한가하듯, 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멍하니 있다가 나랑 가서 밥 먹고, 가끔 하고 싶을 때는 알아서 내 바지를 벗기고 혼자서 한다.
그러다 혼자서는 불만인지 나를 보채 나도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지만 많다. 많다기보다는 전부 그렇다.
“어떻게 쓰냐고.”
조금 고민하던 라팔이 입을 연다.
“으음, 수학?”
“때려쳐. 써글. 여기서도 머리 터지겠네.”
아갈리도, 여기도. 왜 마법은 전부 수학이냐. 이게 가장 효율적이긴 하다만 다른 방법을 찾는 용자는 없는 건가. 영웅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거늘.
장르 소설에서 마법이 수식 어쩌고 하는 거 보고 비웃었었다. 그런데 아갈리에서 몸으로 겪어보니 이게 또 좋은 방법이다. 학문이 성립하려면 뭐가 필요하냐? 규칙이 필요하다. 논리가 필요하다. 규칙이 없고 논리가 없다면 종교로 섬기면 된다.
우선 규칙이 있어야 마법을 발전시키든 억압하든 한다. 그런 점에서 수학은 참 잘 만든 학문이다. 1+1=2. 2+2=4. 4x4=16. 얼마나 직관적이고 편해. 이거 말로 설명하려면 개고생이다.
사과 하나가 있는데 거기 하나를 더하면 두 개.
사과 두 개에 두 개를 더 가져가면 네 개.
사과 네 개가 네 묶음 있으면 열여섯 개.
간단한 기호가 이렇게 길어진다. 기호를 단순화하고 그 움직임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갈리에서의 마법도 수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 마법을 쓸 때까지 수식 계산하고 있을 필요까진 없었다만.
여기 마법도 수학과 비슷하다니 갑자기 흥이 팍 식는다. 노는 김에 라팔이한테 마법이나 조금 배워볼까 했는데 관두련다.
실전 마법이야 마력의 흐름을 외우면 된다만, 이론은 배워야지 어쩌겠어. 지금 그게 싫다는 거고. 나중에 배울 날이 오겠지. 오늘은 아냐.
“아아...... 심심하다.”
“할래?”
내 무릎에 앉은 라팔이 치마를 걷는다. 뽀얀 허벅지와 검은 레이스 속옷이 드러난다. 난 손으로 치마를 누른다. 아서라. 그럴 기분이 아니란다. 그리고 주로 즐기는 건 너잖아. 나는 지금 권태기라 뭘 해도 귀찮기만 하다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푸른데 내 기분은 우중충하다. 회색으로 칙칙한 것이 누믈누믈. 이러다 우울증 걸리겠다. 이미 걸렸나? 몰라, 걸릴 거면 걸리고 아니면 말라지. 우울증이 내 머리에 찾아왔다가 기겁해 도망가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으음. 할 거 없나. 난 놈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것 같은데....... 보고 들은 것과 생각한 것은 다른 영역이어서. 가끔 내가 전에 했던 생각도 그대로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곤 한다.
하나 생각났다.
“이 회귀. 니들 짓이냐?”
라팔은 전생에 난 놈보다 오래 살았다. 난 놈이 몸 받쳐 내 좆집을 지켰지.
장하다, 난 놈. 네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내 손에 들어왔구나. 그 거품은 지금 내 품에 안겨있고.
인류 최강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던 놈이 어쩌다 인생이 이렇게 기구하게 꼬였는고. 나 때문이구나.
중요한 건 라팔이 난 놈보다 미래의 일을 알고 있다는 거다.
“인류 멸종 앞에서 논의되던 방법 중 하나. 너무 허구한 이야기라 물망에 오르지도 않았지만 들은 적 있어. 그 후에 죽어서 잘 모르지만.”
모르긴 뭘 몰라. 다 말했네. 난 놈 보다 오래 살았으니 아는 것도 더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답이었다. 원하는 답이 거의 나왔다.
“너한테도 안 말해주더냐?”
“관심 없어. 알 필요도 없고.”
“하긴.”
보통 사람은 궁금해 죽겠다만, 나나 얘는 그런 거 신경 쓸 타입이 아니니까. 회귀는 이미 일어났다. 그러면 그걸로 끝. 그 이상 파고든다고 누가 돈 주는 게 아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걸 모를 때도 사람은 잘만 살았다.
모르면 그걸로 됐다. 언제 알 날이 오겠지.
내가 말이 없자 라팔이 묻는다.
“알아봐?”
알바트뢰즈에서는 아직 우리가 들러붙은 것을 모르니. 라팔이 잠깐 갔다 오면 알 수는 있을 거다. 그래도 내 대답은 이거다.
“냅둬라.”
이 인형을 내 품에서 떼어놓으면서까지 알고 싶은 사항은 아니다. 그건 그때의 재미로 해두자고.
나는 라팔을 안고 정수리에 이마를 문지른다. 시간은 느리지만, 꾸준히 잘도 간다.
***
일주일이 지났다. 떠오르는 태양은 느긋하다. 도시는 지켜졌다. 이렇게 말하면 꼭 내가 지킨 것 같군. 정정하자. 도시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내기는 내가 이긴 것 같은데.”
끄덕. 내 품의 라팔이 고개를 끄덕인다. 일주일이 지났어도 우리의 자리는 똑같다. 내가 만든 의자에 앉아 있다. 이 의자를 두고 마왕의 의자니 어쩌니 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럼 난 마왕이 되는 건가? 꼭 틀린 말도 아니네.
라팔이 나에게 뭔가를 내민다. 직사각형 모양의 금속 덩어리에 빨간 단추가 달려 있다. 빨간색이니 괜히 눌러보고 싶어진다.
“내기 상품. 내 목숨.”
“이게?”
“한 번 누르면 작동 정지. 두 번 누르면 재가동. 다섯 번 연속 누르면 자폭.”
떨떠름하게 단추를 받아 든다. 그리고 눌렀다. 품에 있는 라팔의 몸에서 힘이 빠진다. 반응이 전혀 없다. 한 번 더 누르자 라팔이 다시 움직인다.
그 모습에 나는 낄낄 웃는다. 참 재미있는 걸 만들었다.
“이런 건 왜 만든 거냐?”
나야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면 미친 짓도 상 미친 짓이다. 자기 목숨을 좌우하는 물건을 만들다니. 이게 남들 손에 넘어가면 어쩌려고?
“블랙 조크? 전에 받은 질문에는 그렇게 대답했어.”
“기억을 잃기 전의 너랑 꼭 만나보고 싶어진다.”
우린 참으로 좋은 콤비가 되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고작 유머를 위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물건을 태연하게 만들다니. 미쳐도 곱게 미치진 않았어.
손에 든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묻는다. 가볍고 매끄러운 금속의 감촉이 전해진다. 안쪽에 있는 복잡한 마법도 어렴풋이 읽힌다. 이 물건 하나만으로도 초보 마법사들의 보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냐? 장난이었다고 시치미 떼면 그만인데.”
문제는 왜 나한테 이걸 주느냐는 거지.
“안 그러면 버릴 거잖아?”
라팔이 나를 빤히 보며 대답한다. 청색 눈동자가 날 주시한다. 라팔의 몸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지나치게 성능이 좋다는, 감촉이 좋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버려?”
“사람은 버려도 물건은 안 버림.”
되물으니 선문답이 돌아온다. 구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시 그렇게 보이겠지. 그래도 나에겐 선문답이 아니라 정답이다.
라팔과 눈을 맞춘 채로 나는 낄낄 웃는다. 정답, 그래. 정답이다.
“어째 십년지기 친구보다 네가 날 더 잘 아냐.”
라팔의 말 그대로다. 나는 사람은 쉽게 버려도 물건은 잘 안 버린다. 사람은 붉은 피가 흐르고 물건은 피가 흐르지 않는다. 물건은 붉은 정열에 지배되지 않는다. 사람은 배신하고 물건은 배신하지 않는다.
함께 십 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그놈이 배신하며 했던 말이 뭐였더라? 아직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한다. 내 기억력이라면 당연하지만.
‘이제 적은 없다. 평화로운 세상에 너는 너무 위험해.’
누가 소설 쓰는 줄 알았다. 여기가 현실인지 꿈인지 몰라 자살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저게 제정신 박힌 인간이 할 소린가? 미친놈. 내가 무슨 자원봉사자로 보였나. 세계평화 이룩하고 뿅하고 사라지게.
나 편하자고 그 지랄을 벌였는데 누구 좋으라고 죽어줘? 그래서 내가 역으로 몽땅 쳐 죽였다. 2년 정도 같이 다니던 애인도 있었는데 자기 나라 병사들이랑 도매가로 같이 보내줬다.
사람은 너무 쉽게 변한다. 머리통을 까도 보이는 것은 뇌뿐이고, 가슴을 열어봐도 뛰는 심장이 보일 뿐 사람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서 안 믿는다.
차라리 물건을 믿지.
그런 점에서, 이 리모컨 하나는 무엇보다 확실하게 내 신뢰를 얻는 방법이다.
“감.”
“감이라. 감. 감, 참 중요하지.”
라팔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강하게 문지른다. 감으로 알았다는데 뭘 더 파고들랴. 찍은 문제에 왜 찍었냐고 묻는 것만큼 염치없는 짓이다.
내가 웃으니 라팔도 웃는다. 무표정이 아닌 제대로 웃는 표정이다. 경국지색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유대가 깊어진 느낌이다. 다만 그 유대는 싸늘하다. 살얼음처럼 파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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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약쟁이는 안 받는답니다....... 는 농담이고 제가 우울증이 있는지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치료 받고 재신검 받으라네요.
어째 진짜 약쟁이라 안 받아준것 같기도 하고..... 갑작스럽지만 연재 재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