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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나는 요리사 삼인방을 인적 드문 곳으로 데려가 마법으로 얼굴을 바꿔주었다.
“와아. 와아. 이게 진짜 제 얼굴이라고요?”
치킨녀가 손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며 방방 뛴다. 치킨녀 얼굴은 지금 상당한 미인으로 바뀌어 있다. 무료 성형이라는 말에 검과 목걸이 다 필요 없으니 성형만 잘해 달라고 하더라.
혼자 꽃밭에 가 있는 치킨녀를 방치하고, 한중이와 와플 아저씨에게 묻는다.
“유연화는 어디 있어? 소문이라도 들었을 거 아냐?”
“그게.......”
와플 아저씨가 말끝을 흐린다. 답답함에 나는 재촉한다.
“뭔데. 그냥 말해.”
“성 노리개로 쓰였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거 참.”
사람이 위급하면 판단을 못 내린다지만, 마스터 혈 길드의 애첩씩이나 되는 사람을 성 노리개 삼다니 간도 큰 녀석들이다. 후환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내가 할 말은 아닌가?
그 명기를 노리개 삼다니. 나도 못해본 짓을... 아니지. 이게 아니라. 이렇게 되면 나에게는 다행인가. 와이프 선물을 위해 원정까지 다녀올 애처가가 자기 와이프 강간범들을 놔두리란 생각은 안 들고.
목표가 분산될 테니 나한테 손이 닿기까진 여유가 조금 생길 것 같다.
“당분간 어디 숨어 있어. 살고 싶으면.”
“네? 그게 무슨.......”
당황하는 치킨녀를 뒤로 한다. 바쁘다 바빠.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어.
나는 마스터 혈 길드로 돌아간다. 여긴 적진이고, 적은 아직 날 모른다. 적의 최심부에 마법사가 홀로 들어올 꼴이다. 준비할 시간은 많고, 숨은 장소도 많다.
“일단 털까.”
나는 숨어서 지하로 들어간다. 건물 지하에 있는 숨은 공간. 본래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겠지만, 나에게는 간단하다.
방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금은보화, 마법서, 무기. 일단 아공간에 전부 챙겨두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다른 거다. 구린 건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게 최고지만, 구린 놈들은 그런 걸 꼭 기록으로 남기더라. 그렇게 사람을 못 믿어서야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다. 이런 의심암귀 같은 놈들.
텅 빈 비밀 창고에 이번에는 내가 선물을 남긴다. 준비한 마법사가 뭔지 보여주마.
혼자 낄낄 웃는다. 저놈들은 날 모른다. 기껏해야 튜토리얼에서 힘 좀 썼던 미친놈 정도로 알겠지. 신경 써서 정보를 통제했던 보람이 있다.
나는 적을 아는데 적은 나를 모르니 질 수가 없다.
너무 커서 나도 털기 꺼려지는 곳만 빼면 전부 털었다. 내일을 위한 준비고 끝났다. 바깥은 이미 밤이다.
그 식당은 저녁도 하려나. 하면 좋겠다. 아니면 찾아서라도 요리를 내놓게 해야지. 하는 김에 며칠 휴가가 있으라는 말도 하고.
***
느껴지는 살기에 자연스럽게 눈이 뜨인다. 타는 듯한 살기가 내 오피스텔 방 안에서 이글거린다. 진짜로 공기가 타는 듯한 환상까지 보인다.
“하루라. 적당히 빠르다고 할까.”
내 인상은 깊이 남는 편이니 용의자를 줄이기도 쉬웠을 것이다. 나는 느긋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입으로 물도 헹구고 밖으로 나간다. 계단을 천천히 올라 오피스텔 옥상에 선다.
수백 명의 사람이 오피스텔을 둘러싸 포위하고 있다. 면면을 보니 욕심 많은 길드 마스터도 계시고 알바트뢰즈 삼인방도 있다. 남자 둘, 여자 하나. 남자는 청년과 중년이고 여자는 소녀다. 이것까진 예상했던 대로다.
참고로 내가 알바트로스를 알바어쩌고라고 자꾸 부르는 것은 내 나름대로 비꼬는 거다. 저런 놈들을 보면 이유 없이 비꼬고 싶어져. 내 심사가 그렇게 꼬였나.
조무래기는 모르겠는데 저 넷은 고생 좀 하겠다. 아무 준비 없이 싸웠다면.
“이게 다냐? 겨우 이걸로 날 죽이겠다고?”
“너 같은 강간범 상대로는 이걸 것도 과하다!”
누가 떠드나 했는데 어젠가 그저께 나한테 시비 걸다 털린 고양이다. 고양이 옆에는 다른 자들도 있었는데 모두 마스터 혈 길드와는 차림과 태도가 다르다. 저놈들이 식객들이겠지.
전부 호랑이와 비슷해 보인다. 한주먹감이군.
살기는 여전히 내 살을 콕콕 찌른다. 아주 불쾌하다. 아침 알람으로는 못 써먹겠다. 이렇게 불쾌해서야 기분 좋은 아침이 엉망이다.
“그래, 엉망이야.”
내 손짓 한 번에 정면 전열이 무너진다. 모두 피를 토하거나 죽었다. 죽은 놈 근처에 있던 녀석들은 당황하며 물러난다. 겁에 질린 얼굴이다.
살기가 한껏 가신다. 이제 좀 낫네.
마스터 혈 길드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시체와 부상자를 치우고 원군을 부르러 간다. 그 동안 나는 점검이나 해볼까. 마법으로 살펴보니 내가 어제 설치한 장치들은 모두 무사하다.
이거면 됐다. 그게 무사한 이상 내가 여기서 죽을 일은 없고, 여차할 때 도망갈 수도 있다.
준비 끝. 학살 시작.
우선 너 부터다.
추스르고 있는 포위망 위로,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다. 벼락과 함께 나는 움직인다. 알바트뢰즈 삼인방 중 소녀의 뒤를 잡고 목으로 손을 뻗는다. 그러나 그건 옆에 있던 다른 하나의 창에 막힌다.
“인류 최고 정도 되면 역시 안 먹히나.”
쩝, 입맛을 다시니 검을 갖다 댄 남자가 말한다. 초록색 머리라. 이런 머리는 어떻게 하면 나오는 거지.
“너와 싸울 생각은 없다. 영혼술사가 너와 함께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어디 있지?”
“영혼술사?”
“김백령이라는 이름을 하고 있다.”
“김백령?”
오호, 난 놈이 그런 이름이었구나. 살아서 못들은 이름을 죽어서 듣다니. 로맨틱하다. 난 놈은 로망이 너무 넘쳐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지만.
“시치미 떼지 마라.”
“뗀 적 없어. 그놈 이름을 방금 알았거든.”
나는 낄낄 웃는다. 남자가 나에게 칼에 힘을 주며 나에게 묻는다.
“김백령은 어디 있지?”
“뒤졌어.”
“뭐?”
어지간히 놀랐는지 마주친 검에 힘이 빠진다. 다른 둘도 충격받은 얼굴이다. 특히 소녀 쪽은 하늘이 무너진 얼굴이다. 난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검을 옆으로 흘리며 파고들어 소녀의 목을 부러뜨린다. 한 박자 늦게 남자의 검이 내 옆구리를 깊이 가르고, 아저씨의 주먹이 나를 날려버린다.
미안. 거리를 벌린다고 끝이 아니야. 내가 농담 따먹으려고 대화를 받아줬다고 생각하면 실망이다.
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 조준해서. 쏜다.
“빵.”
내 손 모양을 보고 다른 둘이 피하려 하지만 공격이 나가는 건 내 손이 아니라 니들 아래란다.
강렬한 불기둥이 솟구친다. 둘은 피했지만, 목이 꺾인 소녀는 그대로 불꽃에 휩싸인다. 저래도 죽을 거란 생각은 안 든다. 중상 정도 입어줬으면 싶은 바람이다.
날아가며 그대로 거리를 벌린 나는 균형을 잡고 선다. 제법 멀리 날아간 줄 알았는데 아직 포위망 안쪽인가. 옆구리의 상처는 빠르게 치료되어 벌써 흉터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마법으로 포위망을 교란하려는 차에, 길드 마스터가 나선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자기 키의 2배는 됨 직한 할버드를 꺼냈다. 눈이 이글거리며 살기를 숨기지도 않는다.
“간덩이가 부었구나. 그런 짓을 하고도 신서울에 있다니.”
“여기 음식은 맛있더라.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마웠어. 구멍동서. 다음에는 같이 한 끼 하자. 될 수 있으면 다른 음식도. 아주 쫄깃한 게 있잖아? 손을 많이 타서 이제는 쫄깃하지 않으려나?”
킥킥 웃는 나에게 눈 돌아간 마스터가 할버드를 던진다. 나는 계속해서 웃으며 공격을 피하고 뒤로 크게 물러나 주변을 경계한다. 포위망은 여전하다.
마스터는 한 번 발끈하더니 정신을 다잡고 추격해 오진 않는다. 그래도 감정에 몸을 맡기는 바보는 아니란 건가. 눈이 벌건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지만.
앞에는 반신이라는 소문이 있는 남자. 뒤에는....... 음?
남은 알바트뢰즈 이인방의 모습이 이상하다. 날 경계하는 듯하면서도, 아직도 뿜어지고 있는 불기둥을 불안한 듯 곁눈질한다. 그 소녀한테 뭔가 있나? 일단 지금은 싸움에 집중하자.
관객은 충분하다. 먹이도 충분하다. 처음 이놈을 써보기엔 딱 맞는 상황이다.
아공간에서 검을 꺼낸다. 전백귀후십귀. 칼집은 그대로지만, 내용물은 완전히 바뀐 그 검.
내가 검을 들자 나에 대한 경계가 심해진다. 검을 뽑고, 앞으로 내민다. 왼손으로 오른 팔뚝을 잡는다.
“깨어나라. 후십귀.”
검심의 마법이 작동하며 검이 방사능을 뿜는다. 그건 퍼지지 않고 검 주위에 작은 막을 만든다. 검이 초록색으로 빛난다.
“이 검에 묻히는 첫 피가 구멍동서의 피라니 참으로 유감이야. 안 그래, 동서? 와이프는 잘 있고?”
두 번은 안 통하는지 마스터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침묵한다. 대신 손을 들어 돌격 명령을 내리자 나를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나를 공격한다.
나는 그들을 베어 넘긴다. 모두 특색은 있지만 간단하다. 여러 개로 분열하는 검은 먼저 찌르고, 무거워 보이는 공격은 상대해주지 않는다.
평생 갈고닦은 자들의 공격에 반격하는 내 대응에 특별함은 없다. 보고, 피하고, 찌르고. 남들 수십 배는 되는 인지능력과 판단능력, 그리고 신체 능력이 있으면 어려울 것도 없다.
난 신체의 성능만으로 저들의 노력을 가지고 논다. 그건 절망적인 기분이겠지. 낄낄 웃는 내 웃음에 겁에 질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들은 늘어난다.
전백귀후십귀에 베인 사람은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피를 토하며 쓰러져 침묵한다. 내부 피폭이 이렇게 위험하다.
전선이 무너지고 싸움이 붕괴해간다. 동시에 그건 학살로 변해간다. 그러나 알바트뢰즈가 그걸 보고만 있지 않는다. 날 공격하는 자들 사이에 껴 청년이 날 기습한다.
청년의 공격은 막았지만 대신 팔이 반쯤 잘리고 배에 구멍이 났다. 역시 상처는 빠르게 아문다.
제길, 더럽게 아프네. 낫는 건 낫는 거고 아픈 건 아파서 다치는 건 싫다.
“괴물.......”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유쾌해진다. 내 웃음에 힘이 실린다.
괴물, 참 오랜만에 듣는다. 그거 말고도 악마, 사신, 재앙 등등 많다. 신이라는 소리도 들은 적 있었지.
지형은 나에게 있고, 숫자는 저쪽에 있고, 분위기는 나에게 있다. 청년의 표정이 어둡다. 분위기 쇄신을 위한 일격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분위기를 나에게 가져오는 것이 되었다. 고맙다는 인사로 손을 흔들어주자 청년이 날 노려본다.
“지원, 지원은 아직인가!”
마스터가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원이 없는 건가. 어찌 됐든 나에겐 좋은 일이다.
에피타이저는 됐고, 슬슬 메인을 먹어볼까.
너희에겐 볼일 없다.
조무래기들아. 뒤져라.
“잠식해라. 전백귀.”
이름을 부르는 이유는 없다. 따지자면 똥폼?
갇혀있던 방사능이 해방된다. 폭발적인 녹색 섬광이 검을 중심으로 뿜어진다. 빛이 지나가며 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증발한다. 빛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사라지지 않은 자들은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선 모두 피를 쏟으며 쓰러지거나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는다. 피폭량이 치사량을 한참 넘었다. 이들은 모두 죽는다.
나는 죽어가는 이들 사이를 걷는다. 중간에 시체가 있으면 짓밟고 마찬가지로 사람이 있어도 짓밟는다. 밟힌 자들의 신음에 고통이 하나 추가된다.
전백귀후백귀는 여전히 빛을 뿜고 있다. 내가 근처에 다가가는 자들은 더욱 빠르게 죽어간다.
나는 걸으면 소리 내어 웃는다.
초록빛을 내며 피로 물든 땅을 시체와 사람을 짓밟으며 걷는 남자라. 악역도 이런 악역이 없다. 나는 내 목숨을 지키려는 것뿐인데, 세상이 나를 가만 안 둔다.
나는 마스터를 본다. 놈의 얼굴도 어둡다. 분노는 눈동자 아래 깊이 가라앉았고, 현실을 계산하고 있다.
반신이라는 게 고작 이 정도인가? 실력의 고하를 떠나. 저 정신력은 실망이다.
“아까의 분노는 다 어디 간 거야? 네 사랑은 그 정도였어?”
마스터가 할버드를 치켜든다. 그리고 날 똑바로 바라본다. 눈에 의지가 돌아온다.
막 메인 요리가 상에 차려지려는데 뒤에서 초를 친다.
이상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내가 방심한 것도 있지만, 시작부터 완성까지가 지나치게 빠르다. 인식하는 순간 기술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검은 입방체가 날 가두고 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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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한 마왕은 그렇게 용사에게 봉인당하고 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