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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21화 (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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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식후 운동이 필요하던 참에 딱 잘 걸렸다.

“내 방은 어디야?”

“312호입니다.”

“열쇠 주고 가. 신고식 좀 거하게 치를 거 같으니까.”

열쇠는 주었지만 김창형은 가지 않고 남는다. 여기 있다 죽어도 난 책임 안 질 거다. 아, 되도록 살려주기로 했던가. 불똥 튀어도 숨 정도는 붙여주자.

살기는 오피스텔 꼭대기에서 나오고 있다. 꼭대기에는 풍채 좋은 남자가 한 명 있다. 머리에 귀가 있고, 등 뒤로는 꼬리도 있다. 털도 많고 머리색은 노랑과 갈색의 줄무늬. 수인이다.

신서울 거리에서 몇 번 봐서 처음은 아니다. 다만, 대화하는 건 처음이다. 싸우는 것도 처음이 될 거고.

뇌전의 창을 하나 만들어 손에 쥔다. 그걸 수인에게 던진다.

-휙!

수인이 내 창을 손으로 잡는다. 번개가 튀어 살갗을 태운다. 수인은 창을 힘으로 부숴버렸다. 그리고 오피스텔 아래로 내려온다.

“제법 쓸만한.......”

“괭이 새끼가 어디서 똥폼이야.”

세상엔 이상한 놈들이 참 많다. 살기 풀풀 날리며 죽이려 해놓고 제법이니 뭐니 떠드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일반인은 살기만으로 죽거나 미치는 수가 있다.

내가 만약 일반인이었으면 죽이고 그 시체에 제법이니 뭐니 떠들 생각이었나. 시체랑 대화하는 취미가 있다니 거참 고약한 취미다. 시간(屍姦)은 봤어도 시체와 친구 먹는 건 처음 본다.

고양이 귀를 달고 있어서 그런지 연결된 지능도 고양이인 모양이다. 말하는 고양이라. 비싸게 팔리겠어.

“고. 고양이?!”

“울 때는 냐옹하고 울어라. 괭아.”

다가가 고양이의 머리를 발로 후린다. 고양이가 저 멀리 날아간다. 냐옹하고 울라니까 꽥 소리도 못 지르네.

고양이는 물수제비처럼 땅에 몇 번이나 튕기다 자세를 바로잡아 착지한다. 그리고 바로 나에게 뛰어든다.

때리기 좋은 각도로 들어오니 무심코 손이 나간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주먹을 막는다.

“아까는 방심했지만, 고작 이런 공격은 허용하지 않는다!”

마법사를 상대로 육탄전을 하며 좋아하는 고양이가 여기 있다. 심지어 주먹 하나 막았다고 좋아하고 있다. 이거 기교도 안 쓰고 그냥 지른 거다.

그리고 힘도 다 쓰지 않았지.

주먹에 힘을 주자 고양이의 팔에도 힘이 들어간다. 근육이 도드라지고 고양이의 얼굴이 붉어진다.

내 힘의 한계가 어디더라. 내 심장 때문에라도 내 몸은 튼튼해져야 했다. 무한한 마력을 뿜는 동력기관에 버티려면 나머지 기관도 성능이 뛰어날 필요가 있다.

내 몸은 기본적으로 튼튼하다. 튼튼한 몸은 마력을 잘 받는다. 마력으로 몸을 강화할 때 그 효율이 좋다. 그래서 내 힘의 끝은 나도 잘 모른다.

몸이 한계에 달해도 넘치는 마력으로 밀어붙이면 힘은, 근력은 계속 오른다. 그래서 한계를 모른다. 내가 실험해보지 않았다는 점도 있다.

몸이 한계에 달해도 마력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고통은 그대로거든. 근육과 피부가 뒤틀려 폭발하는데 그게 어디 보통 아플까.

고양이의 발이 지면을 파고든다. 내 발은 멀쩡하다. 마력으로 지면을 강화해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크으.......”

고양이가 신음을 흘린다.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은 고통보다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꼴에 자존심은.

오른손에 불꽃을 두른다. 고양이가 꼭 쥐고 있는 손이다. 고양이도 비슷하게 주먹에 마력을 둘러 불꽃을 막는다. 잘 막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전혀 아니다.

불꽃이 점점 커진다. 주변 온도도 높아진다. 몸에 털이 많은 고양이는 통구이가 되기 싫으면 전신에 마력을 둘러 열기를 막아야 한다. 힘이 부치는 상황에서 마력까지 다루기는 힘들다. 고양이의 손에서 힘이 빠진다.

가랏! 파이어 펀치!

내 주먹이 고양이의 안면에 박힌다. 불길이 고양이의 몸에 옮겨붙는다. 고양이가 불탄다. 고양이 통구이다. 난 손질도 안 한 통구이는 싫어한다. 그건 진짜 먹을 게 못 된다. 내장은 안 익고 털뿌리는 까끌하고 아무튼.

내 방에 들어가 잠이나... 하, 힘써서 잠 다 깼다.

“어디 가십니까?”

김창형이 나에게 묻는다.

“바깥. 자려고 했는데, 잠 다 깼어. 혹시 식객은 밖에 나가면 안 된다거나 하는 거 아니지?”

“아닙니다. 한백남 스카우터께서 말한 것처럼 식객에게는 아무런 의무도 없습니다.”

의무도 없다라...... 지랄. 내가 비슷한 경험이 없었다면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겠지. 사람 호구취급 하는 새끼들은 전부 마음에 안 들어. 그런데 이건 자기혐오일까 동족혐오일까.

아마 동족혐오일 거다. 난 자애로운 사람이니까. 아주 자애(自愛)롭지. 내가 하는 건 되는데 니들이 하는 건 안 돼. 내로남불 만세.

신서울 어디를 둘러볼까 고민하고 있는 참에 뒤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그 고양이다. 통구이가 되고도 살아 있다니 참으로 대단한 생명력이다.

그런데 그래서 뭐?

내 뒤를 치려는 고양이를 마법이 요격한다. 응축된 공기탄. 고양이가 땅에 처박힌다. 나는 뒤로 돌아 자세를 낮춰 친히 고양이와 눈높이를 맞춰주었다.

“뭘 잘했다고 눈을 부라리냐?”

고양이는 나를 살기를 담아 노려보고 있다. 이 새끼 이거 뭐야? 미쳤나?

위에서 누르고 있으므로 고양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몸을 일으키려고 상체를 이리저리 뒤틀고 팔을 움직이던 고양이는 이내 포기하고 입을 연다. 눈에는 여전히 살기가 그득하다. 눈깔 뽑아버리고 싶네.

“나는 단지 실력을 알아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오, 하느님...... 아니, 진휘님 맙소사.”

진휘님 가라사대. 개새끼 있으라. 눈앞에 개같은 고양이가 나타나더라. 나에게는 나를 믿는 종교의 근면한 신도로서 이놈을 교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검지로 고양이의 이마를 툭 찌른다. 고양이가 굴욕감에 눈가를 떤다.

“그래그래그래그래. 이 미친 새끼가 방금 뭐래니? 실력을 알아봐? 살기 풀풀 날리면서?”

“여기 식객으로 들어올 정도면 그 정도 버틸 실력은 있을 것이다!”

“내가 몸 쓰는 인간이 아니었으면? 입 터는 거나 머리 쓰는 거로 들어왔으면 어쩌려고? 죽이고 사과하게? 시체가 퍽이나 사과를 듣겠디?”

고양이가 입술을 꾹 깨문다. 이놈은 또라이가 아니라 단세포였다. 뇌 없이 세포 하나로 된 생명체가 틀림없다. 그러니 생각을 못 하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생각할 기관이 없으니까.

“그, 그래도 식객 중에 그런 사람은 없다!”

고작 생각한 변명이 그거냐. 초면인 사람을 죽일 뻔한 변명치고는 참으로 궁색하다.

“내가 처음으로 그런 사람이었다면?”

다시 고양이가 침묵한다.

나는 고양이의 팔로 손을 가져간다. 고양이가 몸부림친다.

“뭐냐! 무슨 짓을 하려는거냐!”

“사람을 죽이려 하고 그냥 넘어가려고? 뻔뻔하기로 하셔라. 수인은 전부 그 모양이냐?”

“종족을 모욕하지 마라!”

고양이가 더욱 몸부림치며 으르렁댄다. 그냥 건드려본 건데 이쪽이 역린이었나.

“모욕한 거 아냐. 사실을 말한 거지.”

고양이의 팔을 잡는다. 뿌득. 팔꿈치 관절이 부러진다. 고양이가 입술을 깨문다. 입술 떨어지겠다. 이어서 어깨도 뽑는다. 팔꿈치와 어깨를 두 번 정도 흔들어 잘 박살 낸다.

“앞으로 잘해. 기절했네?”

겨우 이 정도로 기절하다니. 보기와 달리 약골이다. 난 관절이 아작난 상태로 트위스트도 췄었어.

고양이를 버려둔다. 나를 죽이려 하고 이 정도면 곱게 끝난 축이다. 부디 다음에는 단세포가 아닌 사람으로 보도록 하자. 그건 내가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 서글프다.

오, 진휘님. 저 종자를 구원하소서. 단세포가 분열해 뇌세포가 되도록 하소서. 진휘님 가라사대. 노답은 나에게도 답이 없느니라.

***

마스터 혈 길드에서 나온 나는 신서울 빈민가를 찾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골목 변두리만 찾아도 집 없이 떠도는 빈민이 바글바글하다.

여기가 지구 같았으면 이들도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한국은 살기 편한 측이다. 살기 쉬운 측이 아니라 살기 편한 측. 이 두 개는 미묘하게 다르다.

적어도 목숨 걸고 몬스터 잡아 팔아 생계를 꾸리진 않아도 된다. 그런데 여긴 대부분 물자가 그렇게 돌아간다. 사냥해온 걸 팔고, 사냥해온 걸 먹고.

군데군데 농사짓는 땅이 보이긴 하는데, 농사꾼들은 전부 이상한 마법을 사용하더라. 농부도 아무나 못 하는 전문직이다.

결국 전문 기술 없는 사람은 몬스터로 생계를 꾸려야한다는 말이다. 튜토리얼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고작 이주일. 그 동안 평범한 사람이 몬스터 잡는 백정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건 무리다.

하물며 몬스터에게 죽은 경험이 있는 인간이라면 더더욱.

회귀란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잡아먹는 건데 만약 미래의 내가 몬스터에게 잡아먹혔으면? 퍽도 몬스터 잡을 마음이 나겠다. 나사 빠진 놈들은 복수하겠다고 날뛸지도 모르겠네, 그래.

꼭 그게 아니더라도 사람이 떨어질 이유는 많고, 그런 놈들은 전문 빈민가로 들어온다. 이 말이다. 뭐, 이것도 오지랖 아줌마에게 들은 소리지만.

내가 빈민가로 들어온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빈민들은 아는 게 없지만, 여기 빈민들은 무려 시간 여행을 통해 미래에서 돌아온 빈민들이시고. 빈민들답게 여기서 누가 죽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지들끼리 서로 죽이기도 하더라. 죽이면 강해지는 세상이니 그런 놈들도 있을 법하다.

제대로 된 빈민가에 들어오자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추악한 뒷골목. 그게 딱 이곳이다. 가게에서 파는 무기는 이가 나갔고, 방어구는 녹이 슬고 헤졌다.

음식은 상하려는 게 반이다. 누가 저런 걸 나한테 내놓으면 항문으로 먹여버릴 거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적당한 놈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여기 살 정도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한 때 조막만 한 명성은 가졌던, 그러니까 정보를 아는 놈.

명성과 정보는 밀접하게 따라다닌다. 정보로 명성을 사거나, 명성을 얻고 정보가 따라오거나.

무기도 없는 내가 무방비하게 보였는지 골목 안쪽, 어두운 곳으로 들어오자 바로 뒤에서 칼침이 날아온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하긴, 산 사람 터는 것보다는 시체 털기가 더 쉽긴 해.

내 등에 맞은 식칼이 튕겨 나간다.

찌른 놈을 붙잡아 손가락을 분지른다. 마디마디 꾹꾹 누르니 수제비 반죽 같다. 놈은 비명을 지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할 일을 한다. 반죽이라 하니 좋은 방법이 생각나서 써먹어 보려고.

손가락을 눌러 으깨고, 잘근잘근 만져 반죽한다. 비명이 너무 크다. 적당한 벽돌이 옆에 있어서 그걸로 입을 막는다. 너 틀니 해야겠다.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수제비를 잘 반죽하면 이제 먹기 좋게 떼어야지. 손으로 툭툭 떼니 붉은 수제비가 뚝뚝 떨어진다. 피도 뚝뚝 떨어진다.

기절한 놈을 마법으로 대충 치료한다. 입에서 벽돌을 뽑고 두드려 깨운다.

놈은 날 보고 겁에 질려 말을 더듬는다. 실어증은 안 왔으면 좋겠는데. 그럼 다른 놈을 찾아야 하거든.

“내 말 이해해?”

“이햬햡늬댜.”

다행히 실어증은 안 왔다.

“여기서 이것저것 제일 많이 알고 있는 놈한테 안내해. 도망가면...... 뭐, 가보던가.”

놈이 앞장서 걷는다. 비틀비틀 위태로운 걸음이다. 상처는 치료해 줬는데 왜 저런데. 손을 다치면서 뇌도 다쳤나.

그렇게 빈민가에서도 으슥한 곳에 도착했다. 다른 곳과 달리 여긴 으슥한데 질서가 잡혀 있다. 어둡지만 쓰레기도 없고 깨끗하다. 그래도 냄새까진 어쩌지 못해 조금 퀴퀴하군.

“일단 쓸어버리고 시작하자.”

날 본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지금 날 감시하는, 마스터 혈 길드에서부터 따라 나온 시선을 포함해서.

============================ 작품 후기 ============================

붉은 수제비 만둣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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