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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소환된 남자-19화 (1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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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계

똥개의 왈왈과 사람의 왈왈(曰曰)은 다르고. 사람의 왈왈과 공자의 왈왈은 또 다르다. 같은 왈왈이지만 두 왈 사이의 간격은 좁힐 수 없을 정도로 넓다.

굳이 개와 사람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아프리카의 왈왈이 다르고 중국의 왈왈이 다르며 아갈리의 왈왈이 다르고 지구의 왈왈이 다르다. 왈왈은 서로 다 다르며 다르기에 의미를 가진다.

지구에 만약 신이라는 놈이 있으면 그놈의 인류의 신이 아니라 자연의 신이나 환경의 신일 거다. 굳건하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네 왈왈과 내 왈왈을 다르게 만들어 서로 다른 개소리로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오크와 인간이 서로 같은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다고 추측되는 현 상황이다.

왈왈(曰曰). 왈왈왈(曰曰曰). 서로 다른 왈(曰)이 같아지니. 이건 개소리도 심각한 개소리다. 개랑 고양이가 교미하는 소리하네. 그럼 나오는 건 개냥이냐. 더 심각한 건 여기선 이게 있을 법하다.

말빨 좋은 오크가 인간 여자 꼬드겨 결혼하지 말란 법이 어디 있어. 종족 붕괴의 위험을 조래할 정도로 이건 중차대한 일이다. 반인반크가 세상을 지배할 거다.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저 초록색 흉터투성이가 특히 머리가 좋아 이상한 언어를 배웠는지. 아니면 진짜로 이상한 언어가 오크와 인간 공용어라도 되는지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달려가 흉터투성이의 목을 잡는다. 멱살을 잡고 싶었는데 이놈, 상반신 알몸이다.

“야, 아무거나 말해봐.”

흉터투성이가 눈을 크게 뜬다. 놀라지 말고 말을 해 말을. 다행히 이놈이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 말할 놈은 많았다.

“대족장님을 구하라!”

“비겁한 인간들이 기습해왔다!”

오, 하느님.......은 내가 죽였지. 세상에 믿을 놈이 이렇게 없다니. 그럼 난 나를 믿어야겠다. 나를 섬기는 종교의 탄생이다. 오, 진휘님 맙소사.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오크들이 쓰는 언어는 모두 이상한 언어다.

모든 오크가 제2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위급 상황에서도 적인 나를 배려해 제2 외국어로 대화할 정도의 지능과 배려를 가지고 있다면 인간은 벌써 오크와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었거나 오크에게 지배당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다.

즉슨, 이상한 언어는 인간과 오크가 같이 쓰는 공용어다.

무심코, 손에 힘이 과하게 들어간다. 내가 쥐고 있는 흉터투성이의 목이 짜부라진다. 흉터투성이가 즉사한다.

“아.”

이건 실수.

“대족장님이 죽었다!”

“비겁한 인간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오크들이 눈 돌아가 나를 공격한다. 오크가 약하다 한 놈이 누구야. 전사 계급으로 보이는 오크들은 철갑옷으로 급소를 가린 제대로 된 차림으로 마력까지 다루고 있다. 저놈들 셋만 튜토리얼에 던져두면 난 놈같이 특이한 놈들을 빼면 몽땅 죽겠다.

“시끄러 새끼들아. 안 그래도 심란한데 시끄럽게 하고 있어. 뇌수가 산란하게 해주랴?”

눈치 없으면 몸이 고생이라더니. 딱 그 짝이다. 주제 파악을 못 하니 단명하지. 그러게 평소 국어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물론, 난 괜찮다. 난 주제 파악이 필요 없는 몸이다. 내 앞에 선 놈들이 눈알 굴려 가며 주제 파악에 힘써야지.

그런 의미에서 문제. 지금 내 기분을 파악하고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에 따라 행동하시오.

정답은 바로 조아리는 것이다. 저렇게 나에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저건 정답에서 가장 먼 행동이야.

“나는 지금 기분이 매우 언짢아.”

이렇게 말해도 오크들이 알아듣지 못한다. 한국어로 중얼거리고 있으니까. 이러는 건 그냥 짜증 때문이다.

언어 하나에 과민 반응한다? 그럴지도 모르지. 적어도 내 입장에서 이건 까무러칠 일이다.

아갈리에 있을 때, 내가 아직 이 정도로 미치지는 않고 조금만 미쳤을 무렵의 일이다. 꽤 그럴싸한 힘을 얻어 지구로의 귀환도 잠시 미루고 이고깽 짓이나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러 개혁을 시도했고 몽땅 말아먹었었다.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것들은 다른 나라 정치인과 상인에게 모조리 빼앗겼다.

그때 실패한 것 중 하나가 언어 개혁이다. 구체적으로 따지면 문자 개혁이지.

내가 한글을 던져주면 평민들이 알아서 배우고 퍼뜨릴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난 영주 비스무리한 직책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런 생각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평민들은 한글을 멀리했고, 윗선에서는 날 역도로 규정하고 토벌대가 편성되었다.

내가 하려고 했던 건 언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문자를 바꾸는 거였다. 언어보다 훨씬 쉬운 일인데 그것마저 거부당하고 짓밟혔다.

인류의 언어를 통일하려 한 것도 아니고, 한 나라의 촌구석에서 문자를 바꾸려다 나는 죽을 뻔했다. 문자와 언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여기선 뭐?

서로 다른 종족의 공용어가 있다. 같은 문자도 아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머리 나쁜 나도 느낄 정도로 비상식적이다. 그런데 오크도 인간도 자연스럽게 이상한 언어를 쓰고 있으며, 그 언어로 대화까지 시도한다. 그 광경에 어떤 의문도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제정신이 아니다. 미쳤다.

미친 건 바로 잡아야지. 그래, 바로 잡아야 해.

정신을 차리니 날 공격하던 오크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 어디 갔지? 아 여기 있구나. 오크들은 이름 대신 내장과 핏물과 가죽을 남겼다.

대신 진한 핏물이 남아 질척거린다. 내 몸에도, 내 발아래도. 특히 손과 팔 부분이 심하다. 이쪽은 초록 물감에 푹 담갔다 뺀 것 같다. 오크의 피는 초록색이구나. 처음 알았다. 신기한 동시에 혐오감이 강해진다.

모습도 다르고 피의 색도 다른 종족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이 세상이 더욱 미쳤다고 느껴진다. 두 발로 걷고 말하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냐고? 원숭이도 말하고 두 발로 걷는다.

원숭이랑 살림 차리고 아들딸 낳아 데려오면 그 주장을 인정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오크들은 날 둘러싸고 경계하고 있다.

미친 건 바로 잡아야 한다. 비틀어 고쳐야 한다.

미친놈의 대명사인 내가 상식의 대행자가 되다니. 역시 여긴 미쳤다. 이 세상에선 오크랑 인간이 같은 언어를 쓰는 게 상식이니. 내 상식이 미친 게 되겠군.

이제 누가 미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쳤나? 세계가 미쳤나? 나와 세계 사이에는 상식과 비상식과 비정상의 괴리가 거대하게 놓여있다.

서로 맞물리지 않고 타협되지 않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괴리가 날 부술지 세계를 부술지 아직은 모르겠다. 길고 짧은 건 어지간하면 재보지 않아도 각이 나오던데 이번에는 잘 안 나온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재보자. 우선 내 앞에 있는 이것들부터.

정신이 어지러워서 그런지 몸을 움직일 생각도 안 든다. 쉽게쉽게 가자.

전부, 빠르게 사라져라.

나를 중심으로 불꽃이 타오른다. 염화가 모든 것을 불 지른다. 오크들이 공포에 차 비명을 지른다. 시끄러. 조용히 해.

불꽃은 쉬지 않는다. 묵묵히 나아가 태우고 녹이며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날 닮아 먹성이 참 좋다. 먹고, 먹고, 또 먹어라. 이대로 세상까지 삼켜버리면 참 좋겠다. 내 정신력이 안 따라줘서 힘들다는 게 유감이다.

주변을 둘러본다. 내 눈은 아마 유리처럼 차갑고 투명할 거다. 내 주변에는 검게 탄 재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았다. 오크의 증거는 내 옷과 손에 묻은 피와 내장 조각 조금이 전부다.

그 많은 오크들이 이것밖에 안 남았다.

손을 털고 옷을 말린다. 손과 옷이 세탁되어 피 묻기 전과 똑같아진다.

그리고 이제 아무것도 안 남는다.

습-하. 습-하. 공기를 폐부 깊이 들이켠다. 재와 섞인 공기가 아주 썩은 맛이다.

“아, 상쾌해라.”

주변은 퀴퀴한데, 내 기분이 산듯하다. 여러 의미로 욕구불만이었던 모양이다. 막힌 게 쑥 내려간 느낌이다.

밥은 됐고, 돌아가서 잠이나 푹 자자. 지금 자면 내일도 산듯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기분을 되도록 오래 유지하고 싶다.

신서울로 돌아가려 하니 아직도 오와 열을 맞춰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무시하자.

터덜터덜 내가 신서울로 들어갈 때까지 모인 사람들은 오와 열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오열할 일이 있나? 오크는 전부 죽였는데. 다른 적이 나타났나.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다른 적은 없다. 괜히 호들갑이야.

“저기...... 힉!”

나에게 말을 걸려던 남자가 뒤로 넘어진다. 담이 약한 녀석이다. 잠깐 노려본 것가지고 꼴사납게 넘어지고 있어.

내가 가만히 바라보자 남자가 말을 건다. 남자의 목소리가 떨린다. 덤으로 손도 떨고 있다. 너무 긴장하지 마. 안 물어. 나를 무슨 맹수로 생각하나.

“당신을 마스터 혈 길드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용기를 내 남자가 말한 건 이런 내용이다.

잠깐 생각한다. 이 기회는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스터 혈 길드가 어떤 곳인지 알아서 나쁠 건 없다. 사실 나는 마스터 혈 길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거기 침대 푹신하냐?”

안 푹신하면 여관 가서 자고, 푹신하면 오늘 신세 좀 지자.

“푸, 푹신한데요?”

“가자. 안내해.”

남자를 보챈다. 남자는 달달 떨며 앞장선다.

“나 피곤하다.”

남자의 걸음이 더 빨라진다. 팔과 발이 같이 나가고 있네. 호두까기 인형 같아서 재미있다. 이 경우 호구까기 인형인가. 까면 움직이는 호구 인형이라서 호구까기 인형. 이거 히트 상품의 예감이다.

호구까기 인형에게 마스터 혈 길드로 안내되어, 방을 하나 받아 그대로 잤다.

침대인지 과학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편한 침대였다.

***

침대는 과학인가. 과학이 침대인가. 과학이기에 침대인 건가. 침대이기에 과학인 건가. 생각은 점점 깊어진다.

이 둘의 오묘한 관계는 막 일어나 알딸딸한 머리로 꿰뚫을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은 듯하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니 침대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철학자에게 맡기자.

다시 자자.

자려고 눈을 감으니 누가 문을 두드린다.

침대에서 일어나니 그 기척을 느꼈는지 문밖의 사람이 말을 건다.

“일어나셨습니까?”

“알면서 왜 물어.”

“그게.......”

정곡을 찌른 내 말에 문밖의 사람은 대답이 궁한 모양이다. 그게 재미있어 나는 낄낄 웃는다.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연다. 남자 하나가 비켜 서 있다.

“부르러 왔다는 건 볼일이 있다는 거겠지? 가자.”

“알겠습니다.”

남자가 앞장선다. 얘가 어제 날 안내한 호구까기 인형이었던가? 기억이 안 난다.

“어제 걔가 너냐?”

“걔요?”

아닌 모양이다. 흠. 내 기억이 진짜 왔다 갔다 하는 건가. 위험신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가만히 놔두련다. 미치면 미치는 거지. 낄낄.

남자가 나를 데려간 곳은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방이다. 다시 보니 여기 자체가 현대적인 느낌이 강하다. 내장부터 장식까지 모두가 현대를 떠올리게 한다. 용케 이렇게까지 재현했나 싶다.

방 안에는 이미 선객이 있다. 난 놈과 닮은 놈이 의자에 앉아 나를 훑어본다. 은밀한 눈길이지만 난 못 속인다. 내가 상대한 상인과 정치인이 몇인데. 그리고 상대한 숫자만큼 죽인 숫자도 많다는 것을 저놈이 꼭 알았으면 한다.

그랬다면 나를 저렇게 보지도 않았을 텐데.

손이 나가려는 걸 꾹 눌러 참는다. 난 여기 대화를 하러 온 거지 학살을 하러 온 게 아니다. 다행히 손은 잘 통제되고 있다. 아직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맛이 가진 않았나 보다.

탐색을 끝낸 남자가 입을 연다. 오냐, 그 입에서 무슨 막말이 튀어나오는지 내가 똑똑히 들어주마.

“당신을 저희 길드에 식객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의식주 제공에 품위유지비도 섭섭지 않게 나올 겁니다. 어떻습니까?”

“놀고먹으면 돈이 나온다고?”

“마스터 혈 길드의 이름을 걸고 일을 부탁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콜!”

구멍동서가 운영하는 중소기업에 낙하산 취직했다. 아니, 취집했다.

============================ 작품 후기 ============================

동서는 동선데 구멍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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